월든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이레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난 소로우와 에머슨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 역시 이 둘을 영문학 시간에 접했다. 역사가 짧은 미국서는 이정도의 철학(?)으로 철학가 대접을 받는구나 싶었다. 소로우를 더욱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그의 그 청빈해보이는 삶이 실은 얼마나 우스운 농간인지를 알기 때문이다. 단지 몇달러 들여서 자연과 하나되어 살아가는 것 같은 그의 삶은, 실은 부유층 도련님의 허랑방탕 백수생활에 지나지 않았다.

그의 부모님의 대농장이 불과 걸어서 한시간도 안되는 곳에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 그는 자연과 하나된답시고 오두막 하나 덜렁 지어놓고 툭하면 부모님 집에가 밥 얻어먹으며 살아다는 것을 아는 사람? 죽는 순간 조차도 대중의 인기에 부응하려 자신의 이미지를 너무도 의식한 나머지...자신이 길이 남을(?) 마지막 한마디를 했는지 확인하려 혼수상태에 빠졌다 깨어나 끝까지 기록인에게 거듭 확인하고 죽는, 진면목을 보여줬다. 난 삶으로 증명해 보이지 못한 이상은 싫다.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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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rmoo 2012-01-22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봤습니다. 기존의 시선과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소로우와 월든을 평해주셨는데, 저도 저자의 생각과 삶이 일치하는 철학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는 평에 공감합니다. 화려한 문장과 이론으로 가득찬 실천 없는 사상가보다, 삶 자체가 메시지로 다가오는 이태석 신부같은 분의 인생이 더 감동적으로 다가오게 되지요.

그런데 그의 부모님의 대농장이 걸어서 한시간도 안되는 곳에 있었다는 것, 그가 월든 생활 중에 부모님 집에서 밥을 얻어먹었다는 것, 그리고 소로우의 마지막 순간에 기록을 의식했다는 이야기의 출처가 어디인지 궁금합니다.

월든과 소로우는 국내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지식인들의 뿌리와 같은 존재이며, 시간이 갈수록 그 가치를 더욱 인정받는 작품인데 만약 톡톡캔디님이 적어주신 소로우의 에피소드가 사실이고 명확한 근거가 있는 이야기라면 세계의 석학들이 소로우와 월든을 이토록 높게 평가할 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톡톡캔디님이 저에게 답변을 해주실 의무는 없지만 보편적으로 인정받는 명저에 대한 부정과 비판을 했을 때에는 더 명확한 출처와 근거가 있었을 터인데 그 부분을 생략하셨기에 의문이 들어 댓글을 남겨봅니다.

명절 연휴인데 혹시 제 댓글을 보고 공격적으로 느끼셨거나 마음이 상하셨을까봐 우려도 되는군요 ^^;; 단지 의견을 나누고 싶은 마음과 호기심 때문이니 너그럽게 봐주시기를 바랍니다. 글로써 생각을 주고받는다는 것은 비언어적인 소통이 생략되니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행복한 명절 보내시기 바랍니다.

톡톡캔디 2012-01-22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부 수업 시간에 들었습니다. 고 장영희 교수님께요. 덧붙여서 소로우가 죽어갈 때 죽다가 기어코 떨치고 일어나 자신이 마지막 말을 남겼는지조차 확인하고 죽었다는 말씀도 하셨지요. 소로우 전기를 찾아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소로우와 에머슨의 글은 미국에서 정책적으로 띄운 바가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적인 정신이 무엇인지 나타내주는 담론이 필요해서요. 이들이 속한 철학사조가 초절주의인데, 세계적인 석학이 인정할 만한 철학적인 사조였는지요 (아마 거의 들어보신 적이 없으실텐데요.) 마치 허클베리 핀이 막상 읽으면 뭐가 좋은지 잘 모르겠지만, 미국에서 가장 큰 강 중 하나를 배경으로 소수자들 (흑인,아웃사이더인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다는 점에서 미국적인 소설이라는 중요한 의미로 해석되면서 명작이 된 것과 같은 맥락이 아닐까 합니다.

전 더 이상 문학을 하지 않고, 미국문학은 더더군다나 제 전공은 아니었습니다. 미국적인 색채를 떠나 좀 더 보편적인 인간과 가치를 이야기하는 문학 작품으로 저는 멜빌의 작품과 에밀리 디킨슨의 시가 훨씬 좋습니다.

airmoo 2012-01-25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영희씨에 대해서는 물론 톡톡캔디님이 더 잘 아실거라 생각되지만, 소로우에 대한 호감이 있고 직접 월든 호수까지 찾아가신 분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맥락에서 저런 에피소드들을 이야기 하셨는지 개인적으로 궁금하네요. 그때로 되돌아가서 청강이라도 하고 싶군요 :)

그리고 톡톡캔디님에게 출처를 밝혀달라는 요구를 하면서 세계적인 석학들이 인정했다는 저 자신의 주장에 근거를 밝히지 않는 우를 범했군요 ^^;; 소로우와 월든이 간디, 톨스토이, 법정스님의 사상에 뿌리가 되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고, 이외에도 존 메이너스 케인즈, 버드난트 러셀, 마르틴 루터 킹 등 수많은 경제학자, 철학자, 사상가들이 소로우의 사상을 인용 및 확대재생산하고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월든을 읽으면서 자유롭게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좋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었습니다. 특히 대한민국처럼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획일화되고 다양한 삶의 방식에 대해 인색한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월든같은 책을 만난다는 것은 나다움과 인간다움을 유지한다는 것에 대해 아주 좋은 사유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 같습니다. 설령 소로우의 청빈이 완전한 것이 아니었고, 그의 글을 미국에서 정책적으로 띄워줬다고 하더라도 소로우와 월든의 사상은 여전히 큰 가치와 힘을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톡톡캔디님이 보시기에 더 뛰어난 다른 작품들에 비해 정책적으로 대중적으로 과대평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제가 멜빌이나 에밀리 디킨슨의 작품을 접해보지 못했기에 이 점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기는 어렵겠네요. 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것이 이럴 때 참 아쉽습니다.

톡톡캔디님의 의견에 동의하는 부분도 있고,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찬사 일색인 리뷰들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소로우의 옆구리를 과감하게 찌른 리뷰였기에 ^^;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마음에 댓글을 달았던 것이었는데 정성스럽게 답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쨌거나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온오프라인을 불문하고 참 즐거운 일인 것 같습니다. 즐거운 독서 생활 되시길 :)

톡톡캔디 2012-01-25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교수님은 제 은사님이시고 제가 존경하고 개인적으로 가까이 모셨던 맨토이십니다. 장교수님이 미국문학 전공자이셔서 소로우와 에머슨은 꿰뚫고 계셨을 거예요. 음..전 덕이 부족해서 주로 시니컬합니다만 (특히 글이 그렇습니다), 장교수님은 글은 아주 따뜻하시지만^^ 직접 대하면 가끔 권위나 정통을 뒤집거나 도전하는 발언들 하셨습니다.

제 성향이 그런 거 같습니다.
예를 들어 퍼시 쎌리가 아무리 위대한 시인이었다고 해도 사상활이 개차반인 사람이 사랑이 어쩌구 저쩌구하면 던져버리는 스타일이라서요 ㅠ.ㅠ -_-ㅋ

정치적인 바탕이 되기에는 소로우나 에머슨의 글들이 낫겠지요. 멜빌은 아주 난해하고 디킨슨은 면도날같은 자의식을 주체하지 못해 스스로를 가두어버린 사람이니까요. 문학 작품은 이미 작가의 손을 떠나 해석하는 이들에 그 가치와 의미가 달렸다고들 말하기 시작한지가 이미 수십년이라 그런 맥락에서는 - 소로우의 글과 사상의 가치는 그걸 해석하고 믿는 사람들에게 있다고 밖에는 말을 못하겠습니다.

다만 제가 개인적으로 정치적인 혹은 거시적인 시각과 거리가 지극히 먼 사람이라 .... 개인의 삶에서 구현되지 못하는 가치를 타인에게 떠들지 말아야한다고 믿어서말입니다. ㅠ.ㅠ 이 편벽됨으로 인해 그냥...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볼려다 모래만 보는 인간이랄까요. 소로우에 대한 호불호는 그냥 모래 한 알 같은 세계에 갇힌 사람이 한 말이라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ㅠ.ㅠ

울프심 2012-06-18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내용이 있었는 줄 몰랐네... 쏘로우 얘기는 학부때 19세기 미국문학시간 때 나도 들었던 것 같은데..그래서 월든을 아름다운 글로서 보지는 않았던 것 같군..벌써 17년전 얘기네..군대 갔다와서 3학년 이었으니까...너도 나도 많이 늙었네...ㅋㅋ

톡톡캔디 2012-06-18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도 장교수님 수업 들었어? 넌 복학해서 17년전이지만 난 더 옛날 얘기다. ㅠ.ㅠ 장교수님 보고싶네. 얼마 전에 유고 나왔더라. 강의록. 너도 보고 싶은데... 참 사는 게 그렇다. 넌 딴 모습은 사라지고 아빠만 남은 것 같아서 ^^ 서울 올라오면 연락해라.
 
강한 여자의 낭만적 딜레마
마야 스토르히 지음, 장혜경 옮김 / 푸른숲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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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음...난 융의 심리학적 접근이 참 좋다. 동화를 심리의 초등학교, 라고 부르며 원형적인 모습들을 밝혀내는 것이.'손없는 소녀'라는 동화를 통해 강한 여자들이 연애라는 환상에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 혹은 꼭 왜 잘못된 남자들을 만나는지, 설사 만나도 일상속에서 어느순간 관계가 왜 파탄나는 것인지...를 밝히고 있다. 음.. 또 내 심리 분석을 하면 한번 나자신을 갈아 엎고 있는데, 고통없이 성장이란 없고, 성장은 불가피하다는 대목은 수긍한다.

지금 이자리에서 그래도 나는 20대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아줌마'라는 중성적 딱지가 그 아무리 이 사회에서 '굴욕적인' 가치 평가로 자리매겨진다 한들, 한편으론 놈들이 신경 안써서 참...편하다. 놈들한테 신경 쓸 필요도 참 편하다. '여자 놀이' 따윈 신경 안써도 되니 참 편하다. 가증스런 평화일 망정, 그 평화로운 숲속에서 내 속에 내면화된 지긋지긋한 '손 자르는 아버지들을, 은으로된 가짜 손을 달아주는 아버지들을' 더 이상 분노로 징벌하고 밟으려 하지않고 그저, 깔끔히 넘어서리라.

그리하여 '봉해진' 정원이 아니라.... 그저 내 온 세상이 '정원'이 되기를 ... 아직은 '지뢰밭 사이를 춤추며 지나가며' 소망한다. 그리고, 애타는 그리움으로. 내 속에서 빙긋이 '둥그렇게' 미소짓는 어머니, 하나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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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
진 시노다 볼린 지음, 조주현 옮김 / 또하나의문화 / 199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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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많은 여성 관련 저작들을 읽으면 이론에 치우친 나머지 분노에만 들끓고 마음이 팍팍해지는 걸 많이 느낀다. 좀더 어렸던 20 대엔 그 들끓는 분노의 힘으로 살았다. 하지만, 그 뜨거운 분노로 성취한 것들, 실패한 것들을 이제 줏어담자 보니, 차가운 분노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게되었다.

겉으로 갈무리 된듯 보이고, 이젠 내 불완전함과 내 죄로 (대상이 남자든 여자든) 남의 불완전함과 죄를 어느 정도 가늠하고 한발짝 물러서는 법도 배웠지만, 여전히 손을 뻗을 줄은 모르는 한계를 느낀다. 여전히 정화되지 못하고 앙금처럼 가라앉은 상처를 보듬어주는 언어들을 가진 지혜로운 이마를 가진 여자들이 있구나 싶다.

사실, 난 아르테미스와 페르세포네의 원형을 가지고 있다. 이 두개가 동전의 양면이다. (우습게도) 난 아르테미스 부분을 읽으며 울었다. 아르테미스 딸과 그 어머니부분을 읽으면서. '난 엄마처럼 살지 않을거야'하는 아르테미스 딸들의 결연한 말속에는 결코 엄마의 삶을 구원해줄 수 없는 자신에 대한 분노와 슬픔이 있다는 저자의 통찰이 날 울렸다. 많은 여성들을 만나며 카운셀링을 하며 치유한 저자의 통찰이 원형편 다음에 실제 생활의 예에서 잘 드러난다. 읽어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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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박완서 지음 / 창비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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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내용이 이렇구나, 하고 주억거렸다. 박완서님의 작품을 거의 다 읽었고, 좋아하는데 박완서란 사람이 가장 잘 드러난 건 이 수필집이 아닌가 싶다. 앞 부분의 글은 좋았다. 주로 어릴적 개성 근처 시골서 자란 얘기들....말이다. 죽음에 대한 명상들, 그 낼모레는 바라보는 마음가짐은 어떨땐 눈물까지 났다. (음..요새 왠지 죽음과 관련된 꿈을 많이꾸는지라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라 생각한다, 이건.)

나이들어 적당히 아집도 있고, 집착도 있고, 그냥 사람살아가는게 다 그렇지 아닐까 싶다. 나름대로의 엘리트 의식이든, 누누이 부정(?)하며 '강조'하는 양반의 뿌리이건, 비평가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은 ㅎㅎ 사실 작가라면 누구나 그렇테지 하며...웃으며 읽었다.
피붙이들 알뜰 살뜰 그러모으고, 과거를 끊임없이 회상하고, 적당히 나이든것을 핑계삼아 어린것들 훈계도 좀 하고... 사람냄새나는 글이었다. 내 늙으면...어떠하리라...하는 '이상'은 나름대로 있지만 이상은 이상일 뿐이고, 박완서님 만큼만 늙었음 딱 좋겠다.ㅎㅎ 그리고, 구사하는 언어들은 정말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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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드러커의 자기경영노트
피터 드러커 지음, 이재규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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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 책을 여러개로 나눠서 번역하고 그럴듯한 유명인사(?)의 이름을 빌려 출판하는 관행은 이젠 좀 그만 없어졌음좋겠다는 작은 소망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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