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님 수술로 인해 어영부영 넘어간 생일에 남편은 미안해하지만 사실 난 기념일 챙기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던 터라 솔직히 아무렇지도 않다. 생일 선물로 그냥 눈에 띄였던 오리털 외투를 하나 사줬는데 그게 남편 생각에 좀 부족해보였나보다. 사실 나갈 일도 별로 없어서 옷 욕심도 안생기고, 가방도 멜 일이 없어서 천 가방으로 하나 샀더니 더 이상 살 것도 없고, 부츠도 있고 뭐 부족한 게 없다. 책이라면 모를까?

 

그래서 요며칠 열심히 장바구니에 담는 중이다. 일단 담아둔 책들은 일전에 쓴 페이퍼들에 올라온 책일 것이고 이 페이퍼는 또 조만간 찾아올 구매의 시간을 위해 정리해 둔다. 난 원래 충동구매는 잘 안하는 편이다. 영화도 간판 다 내리면 비디오로 보고 그랬다. 원래는 책도 일정 시간이 지나고 나서 사고 읽는 편인데 요게 요샌 잘 안된다. 어쨌든 2013년 마지막으로 신간에 입맛 좀 다셔본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사계절 출판사의 역사 일기 시리즈가 완간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아동 도서에 관심이 많은데 이 시리즈는 나올 때 간간히 읽었던 것이라 무척 반갑다.  더 많은 양이길 기대했는데 10권으로 끝나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아쉽다. 아이들에게 익숙한 일기의 형식이며, 이야기 속에서 시대 생활 모습과 사건들을 알 수 있고 깨알 정보도 주는 구성이 좋은 책이다. 수업 시간 응용하기도 좋다. 역사 속의 인물이 되어 일기를 써보는 활동을 하면 좋다.

 

 

 

 아니 작가님을 이다지도 닮은 표지가 소설의 표지라니! 혼자 까르르 웃었다. [플루트의 골짜기]는 절필을 선언한 고종석 작가의 현재 유통되는 유일한 단편소설집이다. 엄선한 열두 편이라는데 고종석이라는 이름과 알마라는 이름을 믿는 독자에겐 반가운 책이다. 사실 장편 소설 한 편과 에세이들만 읽은 나로선 뭔가 설레는 느낌도 있고 살짝 긴장된다. 표지만 보면 까르르 웃음이 나오지만 말이다. 이후 알마 출판사에서 선집이 이어서 나올 모양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판형의 허밍버드 클래식의 세번째 책이 나왔다. [어린 왕자]. 이 책은 너무 잘 알려진 책이라 내용보다 번역이나 판형이 구매에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책이다. 한유주, 부희령에 이어 이번엔 무려 시인 김경주의 번역이다. 옮긴이의 말에서 어린 왕자에게 편지를 띄운다고 하던데 일전에 읽은 책에 본문보다 더 뛰어난 추천사를 읽고 대략 난감했던 적이 있는데, 그래도 생텍쥐페리니까 쉬이 넘진 못했을 것이다. 초록색의 표지가 무척 맘에 든다.  네번째 번역은 누가 하게 될까? 김연수? 김영하? 어떤 작품일까? 정글북? 로빈후드? 기대된다.

 

 

[밤이 선생이다]를 읽어보니 삼십 년 동안의 글에 일관성이 있어서 좋았다. 하성란의 에세이 [아직 설레는 일은 많다]는 작가가 십 년 동안 쓴 글들을 모은 책이라고 한다. 마음 산책이야 에세이에서는 믿음직한 회사이니 어련히 잘 엮었을까만은 하성란이라는 이름이 주는 믿음 또한 커서 기대가 커진다. 일단 표지나 제목은 무척 맘에 든다. 마침 추천글도 황현산 평론가이다. 믿음직스럽다.

 

 

 

 

 

 

 

2013년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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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3-12-24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입맛만 다셨어요~

행복한 크리스마스 이브 되세요~^^

그렇게혜윰 2013-12-24 19:05   좋아요 0 | URL
지금은 입맛으로도 충분해요^^

내년엔 건강한 웃음 소리 기대할게요^^ 메리 크리스마스!
 

 

 

 아들이 병원에 가야하는데 다니는 병원은 언제나 환자들로 만원이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께서 성의껏 진료해주시기 때문에 환자가 많다는 것에 큰 불만이 없다.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자마자 가서 일찌감치 진료를 마치고 도서관을 다녀가기로 했다.

 

남편이 있는 날에는 남편에게 아이를 맡겨놓고 둘이서 어린이실에서 놀라고(?)하고선 비교적 여유있게 책을 고를 수가 있다. 마침 읽고 싶었던 단편집 두 권이 있길래, 더구나 남의 손도 아직 타지 않은 깨끗한 모습으로 있길래 손에 잡았다. 그리고 이름만 들어본 아고라 크리스토프의 엽편소설집 [아무튼]을 빌렸다.

 

 빌리기 전에 [아무튼]을 읽어보았는데 사람들이 아고라 크리스토프의 팬이 되는 이유를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굉장히 짧은 소설인데, 그 소설들을 옮겨 적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느 한 부분만을 옮겨 적기에는 매우 부족한, 어쩌면 하나마나한 일일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이 책을 읽고 다른 더 유명한 소설에도 도전해 봐야겠다.

 

 

 집에 와서 점심 식사를 준비하는데 같이 사시는 친정 엄마께서 물어보신다.

"또 박물관 책 빌려왔어?"

"오늘은 안 빌렸는데?"

"이거!"

"!!!"

 

 이 책 역시 빌리기 전에 몇 페이지 들춰봤는데 아름다운 문장이 기대된다. 박물관 지식책은 결코 아닙니다 어머니....^^

 

 

이 책이 출간되자마자 읽은 이들 사이에서 일어난 입소문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익숙하지 않은 것에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하는 나이기에, 더구나 나보다 어린 작가에게는 더더욱...(이건 무슨 심린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소식이 들린다. 한국일보 문학상 수상,,,,,소설가 부부의 탄생....그리고 도서관에서 딱 내 눈에! 읽으라는 계시는 아닐지....^^

 

 

아들 책을 빌리려는데 또 마침 내 눈에 한 권의 책이 쏙 들어왔다. [책 청소부 소소]와 [코끼리 아저씨와 100개의 물방울]로 유명한 노인경 작가의 그 이전 작품 [기차와 물고기]였다.

높은 산에 사는 빨간 기차와 깊은 호수에 사는 물고기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로 사실 확인을 하자면 죄다 뻥이지만 그 상상력에 아이는 무척 유쾌해했다. 내가 한 번 읽어주고 제가 한 번 읽어주었는데, 읽다가 흥이 났는가 글밥에 음을 붙여 노래처럼 읽어주었다. 이야기의 행복감이 아이에게 전해지는 것 같아 좋았다. 어쩌면 앞의 두 작품보다 이 작품이 나와 아이에겐 더 큰 공감을 준 것 같다. 

 

이 책들 말고 두 권의 책을 더 빌릴까하고 살펴봤었다. 책에 관한 책들이었다. 그 중 한 권은 사기로 결정하고, 다른 한 권은 그저 거들떠만 보았다. 글이 좋다고 좋은 책이 만들어지는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도 했다. 안타까운 마음도 들고 슬픈 마음도 들었다. 책이 가지는 운명이, 대다수의 운명이 그러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너무 많은 책들이 나오는 것은 아닌지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작가가 독자보다 많을 거라는 야유가 귀에 들리는 듯 했다. 견디기 힘든 비난이고 수정되기를 기대한다. 좋은 책을 빨리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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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2-24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아가는 이야기는 책으로 태어나도 즐겁고
책으로 태어나지 않아도
가슴에 곱게 남으니 즐겁구나 싶어요.

애써 책으로 태어났다면
널리 사랑받을 수 있으면
아주 좋겠지요...

다음에도 또 즐겁게 도서관마실 누리셔요~

그렇게혜윰 2013-12-24 19:06   좋아요 0 | URL
도서관 마실 다니면서
거기에서 직업의식 없이 잡담에 정신 없는 직원을 보면
내가 도서관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러네요 ㅎㅎㅎ

도서관 좋은 곳입니다!!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3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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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로잉을 하는 트위터리안의 상당부분이 문인들이다보니 그들의 트윗에 많은 영향을 받곤 한다. 하지만 나도 나름 줏대 있는 인간인지라 아무리 그들이 황현산 평론가의 [밤이 선생이다]를 격찬해도 내가 모르는 사람이면 그저 모르는 사람의 범주에서 평등하므로 그냥 미뤄두었다.

 

외출을 앞두고 지하철에서 읽을 책을 고르는 시간이 있다. 책의 무게, 성향, 공공장소에서 읽기 적합한가를 고려하여 한 5분 정도 책꽂이 앞에 머무는 시간이다. 그 시간을 보내고 이 책이 가방에 들어갔다. 첫 글부터가 침이 꿀꺽 넘어갔다. '아니 이 분 내 스타일이잖아?' 하긴 그도 그럴 것이 문인이라도 죄다 팔로잉을 하지는 않을 터, 내 스타일에 맞는 글을 쓰는 분들을 팔로잉하니 그분들이 격찬하는 글이면 일단은 내 취향에 어느 정도 가깝다는 뜻이 될 테니까 말이다.

 

아무튼 첫 글에서 보여준 사회에 대한 냉정하면서도 열정적인 태도는 1부 내내 계속 되었고, 그의 글을 읽으면서 첫 글에 쓰인 '자기 안의 무력한 분노'를 어느 정도는 해소할 수 있었다. 그는 불문학자이고 문학평론가이지만 그 이전에 이 시대를 사는 진정한 지식인이었다. 하지만 1부는 비교적 최근의 글이기에 이런 목소리는 요즘 많이 들어온 터라 이것이 지식인으로서 그의 됨됨이에 반하게 되는 계기는 되지만 아직 사랑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러다 2부를 읽었다. 2부는 사진 작가 강운구의 사진을 찬찬히 분석하면서 그것을 사회의 문제로 확대하기도 하고 개인의 문제로 축소하기도 하는 그의 유려한 글이 돋보인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사진이나 그림에 관해서 너무 세세하게 쓴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 반함이 반감되는 시간이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문제는 3부이다. 3부를 읽으며 멀리는 1986년의 글과 가깝게는 2012년의 글이 있지만 대개는 2000년대 초반의 글이다. 그 글들이 어쩜 이리도 생생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스스로가 책머리에 '결과적으로 삼십여 년에 걸쳐 쓴 글이지만, 어조와 문체에 크게 변함이 없고, 이제나저제나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내가 보기에도 신기하다.'고 하였지만 타인이 보기에도 참 신기하고 믿음직스러웠다. 마침 이 책을 읽던 중에 철도노조 파업과 민주노총에 대한 정부와 경찰의 탄압에 대한 기사와 트위터들이 폭주하던 터였는데 책을 넘길 때마다 현재의 상황과 딱딱 맞는 것은 그의 글이 시대를 초월한 절대 진리라는 뜻인지 우리 나라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답답함을 연출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아마 둘 다 이리라.

 

그러나 영화는 80년대의 정치와 사회에 대한 이런 은유를 제시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범죄를 감시하고 범인을 체포해야 할 경찰력은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엉뚱한 곳에 배치된다. p203-204

 

정치는 자유로워야 하고 문화는 엄숙해야 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것이 거꾸로 된 세상에서 살아왔다. -「밤이 선생이다」p215

 

폭력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폭력이 폭력인 줄을 알지 못한다.-「밤이 선생이다」p231

 

글은 시간의 나열도 아니고 딱히 눈에 보이는 선명한 기준에 의해 나뉘어진 느낌도 아니지만(2부는 제외) 순서가 참 잘 어우러졌다. 황현산 평론가가 30년 전에 이런 책을 내고자 기획해서 쓴 것일리가 없을 테니 이 기획력 없는 글들을 추려 모아 [밤이 선생이다]라는 멋진 제목을 붙이고 이렇게 멋지게 배열하고 편집한 편집인들의 능력이 돋보인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황현산 평론가의 글이 더 힘을 얻게 되고 나처럼 전혀 알지 못했던 독자도 앞으로 챙겨 읽도록 만들었다. 좋은 글이 좋은 책이 되었을 때의 기쁨을 알게 해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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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2-23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거운 마음으로 읽으셨을 책에서
즐거운 넋과 사랑을 얻으셨겠지요

그렇게혜윰 2013-12-23 21:43   좋아요 0 | URL
좋은 책이 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박준 시인이 주관하는 낭독회를 다녀온 참이다. 시집을 한 번 읽기는 했지만

잘 알지 못한 채 갔다가 깜짝 놀라서 왔다. 시인은 무척 따뜻했고 낭독을 참 잘했다. 맨 앞자리에서 시인이 읽어주는 시인의 시는 내 마음을 내내 흔들었다. 시인의 목소리를 타고 어떤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게 참 좋았다. 시집을 사지 않은 터라 사인도 받지 못하고 집에 와서 쓰다듬으며 읽어보지도 못한 것이 안타깝지만 주섬주섬 기억들을 주워 낭독된 시들을 추려나 본다.

 

동지(冬至)

 

 

그때.

 

(작은 냄비에 두 개의 라면을 끓여야 했던 일을 열락悅樂이나 가는귀라 불러도 좋았을 때, 동짓날 아침 미안한 마음에 난 귀신도 아닌데 팥죽이 싫더라하거나 라면 국물의 간이 비슷하게 맞는다는 것은 서로 핏속의 염분이 비슷하다는 뜻이야라는 말이나 해야 했을 때, 혹은 당신이 배 속에 거지가 들어앉아 있나봐하고 말해올 때, 배 속에 거지가 들어앉아 있어서 출출하고 춥고 더럽다가 금세 더부룩해질 때, 밥상을 밀어두고 그대로 누워 당신에게 이것저것 물을 것도 많았을 때, 그러다 배가 아프고 손이 저리고 얼굴이 창백해질 때, 어린 당신이 서랍에서 바늘을 꺼낼 때, 등을 두드리고 팔을 쓰다듬고 귓불을 꼬집을 때, 맥을 잘못 짚어올 때, “맥박이 흐린데? 심하게 체한 것 같아바늘 끝으로 머리를 긁는 당신의 모습이 낯설지 않을 때, 열 개의 손가락을 다 땄을 때, 그 피가 아까워 아름다울 가자나 비칠 영자를 적어볼 때, 당신을 인천으로 내보내고 누웠던 자리에 그대로 누웠을 때, 손으로 손을 주무를 때, 눈을 꼭 감을 때, 눈을 꼭 감아서 나는 꿈도 보일 때, 새 봄이 온 꿈속 들판에도 당신의 긴 머리카락이 군데군데 떨어져 있을 때)

 

 

 

꾀병

나는 유서도 못 쓰고 아팠다 미인은 손으로 내 이마와 자신의 이마를 번갈아 짚었다 “뭐야 내가 더 뜨거운 것 같아” 미인은 웃으면서 목련꽃같이 커다란 귀걸이를 걸고 문을 나섰다

한 며칠 괜찮다가 꼭 삼 일씩 앓는 것은 내가 이번 생의 장례를 미리 지내는 일이라 생각했다 어렵게 잠이 들면 꿈의 길섶마다 열꽃이 피었다 나는 자면서도 누가 보고 싶은 듯이 눈가를 자주 비볐다

힘껏 땀을 흘리고 깨어나면 외출에서 돌아온 미인이 옆에 잠들어 있었다 새벽 즈음 나의 유언을 받아 적기라도 한 듯 피곤에 반쯤 묻힌 미인의 얼굴에는, 언제나 햇빛이 먼저 와 들고 나는 그 별을 만지는 게 그렇게 좋았다

 

 

 

마음한철

 

미인은 통영에 가자마자 
새로 머리를 했다 

귀밑을 타고 내려온 머리가
미인의 입술에 붙었다가 떨어졌다 

내색은 안 했지만
나는 오랜만에 동백을 보았고
미인은 처음 동백을 보는 것 같았다 

"우리 여기서 한 일 년 살다 갈까?"
절벽에서 바다를 보던 미인의 말을 

나는 "여기가 동양의 나폴리래" 하는
싱거운 말로 받아냈다 

불어오는 바람이 
미인의 맑은 눈을 시리게 했다 

통영의 절벽은
산의 영정(影幀)과
많이 닮아 있었다 

미인이 절벽 쪽으로
한 발 더 나아가며
내 손을 꼭 잡았고 

나는 한 발 뒤로 물러서며
미인의 손을 꼭 잡았다 

한철 머무는 마음에게
서로의 전부를 쥐여주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미인처럼 잠드는 봄날

  


  믿을 수 있는 나무는 마루가 될 수 있다고 간호조무사 총정리 문제집을 베고 누운 미인이 말했다 마루는 걷고 싶은 결을 가졌고 나는 두세 시간 푹 꿇은 백숙 자세로 엎드려 미인을 생각하느라 무릎이 아팠다어제는 책을 읽다 끌어안고 같이 죽고 싶은 글귀를 발견했다 대화의 수준을 떨어트렸던 어느 오전 같은 사랑이 마룻바닥에 누워 있다 미인은 식당에서 다른 손님을 주인으로 혼동하는 경우가 많았고 나는 손발이 뜨겁다 미인의 솜털은 어린 별 모양을 하고 어린 별 모양을 하고 나는 손발이 뜨겁다 미인은 밥을먹다가도 꿈결인양 씻은 봄날의 하늘로 번지고 나는 손발이 뜨겁다 미인을 생각하다 잠드는 봄날, 설핏 잠이 깰 때마다 나는 몸을 굴려 모아둔 열을 피하다가 언제 받은 적 있는 편지 같은 한기를 느끼며 깨어나기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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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낭독회는 눈과 귀가 동시에 즐거운 종합예술무대였는데 그것은 이번에 제39회 서울 독립 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이름들>을 상영해준 것이다. 신이수 최아름 감독은 이 영화를 박준 시인을 떠올리며 그를 만날 구실을 만들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박준 시인은 이 영화 속의 시인인 현철의 모습이 자신을 많이 닮아 놀랐다고 하니 감독님들과 시인은 어차피 만나야 할 사람들이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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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시의 만남, 독립 영화 감독과 젊은 시인의 만남 만으로도 충분히 풍성한데 신이수 감독과 개인적 친분이 있는 인기 가수 손지연 씨가 마지막 무대를 빛내 주었다. 노래를 들으며 '볼매(볼수록 매력있는)'임을 확신하게 되는 손지연 씨의 노래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세 곡을 부르고 들어가셨지만 박준 시인의 요청으로 3집 앨범에 수록된 '그리워져라'를 피아노 연주와 함께 들었는데 이걸 못 들었으면 어쩌나 싶을 정도로 노래가 좋았다. 울컥 해서 자칫 눈물 봉인 풀릴 뻔했다. 잘 들었다고 인사를 하는데 "들을 것도 없는 데 뭘~"이라고 말해서 더 좋았다. 볼매 맞다.

 

참 많이 변했어 모든게 마지막이야   커다란 상실감으로 어디도 간곳없고 머문곳 없어라
커다란 구름앞에 서있네 그리워져라 그리워져라 그리워 하면서 떠나가라
그리워져라 그리워져라 그리워 하면서 떠나가라

참 많이 변했어  모든게 마지막처럼 아쉽게 사라져만가고 낙엽이 떨어져 날아 너에게 닿으면
또 다른 계절이 찾아오네 그리워져라 그리워져라 그리워 하면서 떠나가라
그리워져라 그리워져라 그리워 하면서 떠나가라

그리워져라 그리워져라  그리워 하면서 떠나가라
그리워져라 그리워져라  그리워 하면서 떠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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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이름을 지어다 몇 달은 먹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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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3-12-20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자신의 시를 낭독해서 시너지 효과는 플러스 10배 정도 내는 분이 박준 시인일 겁니다.
시낭송가 못지 않은 목소리를 가지셔서 가끔 깜짝 깜짝 놀람..

그렇게혜윰 2013-12-21 03:46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이에요. 첫 낭송을 듣는데 그대로 마음으로 직행하더라구요^^

2013-12-20 1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렇게혜윰 2013-12-21 03:48   좋아요 0 | URL
오늘 하루종일 이 노랠 엇박으로 흥얼거렸어요ㅋㅋ

옮겨적은 글은 받으실분도 좋아하시길 바라 봅니다^^
 
[디어 라이프 ] 밑줄 긋는 중

 

 

누군가를 위해 옮겨 적어 본 [디어 라이프] 속 문장들.

 

 

 

 

12월을 이 한 권과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젠 물리적 안녕을 고해야 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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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3-12-20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연히 왔는데... 혹시 문동 혜윰님?

그렇게혜윰 2013-12-21 03:44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ㅎㅎ 여기서 뵈니 더 반가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