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를 뒤바꾼 위대한 생각들 - 유가에서 실학, 사회주의까지 지식의 거장들은 세계를 어떻게 설계했을까?
황광우 지음 / 비아북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세상에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 많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사는 요즈음입니다. 우물 안 개구리인 저에게 세상을 보여주는 창은 바로 책이랍니다.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들려주는 사람과 유익한 이야깃거리를 들려주는 사람들, 엉뚱한 이야깃거릴 들려주는 사람들, 모두모두 저에게는 세상과 통하는 창인 셈입니다. 그 중에서 황광우씨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재미있고도 심오하면서도 유익하기 그지 없습니다. 철학콘서트를 읽었을 때 그 감동을 뭐라 표현해야 할른지요. 신기하게도 주위 사람들 중에는 쉬운 이야기도 어렵게, 어려운 이야기는 더 어렵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가득합니다. 그래야 권위가 있어보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 그런 사람들은 자꾸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어렵게 이야기할수록 우린 그들을 뜬금없이 바라보는데 그 시선을 사람들은 존경이라는 말로 고착시켜 버린 모양입니다. 그런 면에서 황광우씨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귀에 쏙쏙 들어오는 쉬운 이야기 투성이입니다. 저렇게 거창한 사상들이 이렇게 쉽다니 신기하기만 합니다. 이때 우리들의 시선은 하찮음일까요? 이게 바로 진정한 존경의 시선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쉬운 이야기를 쉽게 이야기하기는 쉬울지 모르지만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이야기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요. 그런 의미에서 그가 훑어준 사상사는 읽기 참 좋았습니다.  철학이란 나와는 동떨어진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그를 통해서 철학이 곧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간의 의식은 보수적이라서 한 번 지어놓은 사유의 집을 부수고 새로운 사유의 집을 짓는 일은 매우 두려운 일이라고 한 그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그런 두려움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철학자라고 그는 말했지요.그래서 저 역시 그런 두려움을 견디어 보고자 노력하는 중입니다. 그런 저에게 황광우씨는 이번엔 사상사를 들려주었습니다. 사상 역시 철학자들의 생각인 만큼 겹치는 이야기도 있을 법 한데 어째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 드는지 모르겠습니다. 신종플루에다 세종시 건설까지, 성폭행과 어린이 폭행까지 세상이 뒤숭숭한 요즈음 그의 글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참으로 많아 보입니다. 

백성들이 가장 존귀하고 사직은 그 다음이며 군주는 가벼운 존재이다. 이런 까닭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얻으면 천자가 되고, 천자의 마음을 얻으면 제후가 되고, 제후의 마음을 얻으면 대부가 되는 것이다. 제후가 사직을 위태롭게 하면 다른 사람으로 갈아 치운다. 좋은 제물을 준비하여 때를 어기지 않고 제사를 올렸는데도 가뭄이나 홍수가 나면 사직도 갈아 치운다.(p155) 

 과거 맹자의 사상인데 불구하고 지금 역시 되새겨야 할 말이 아닐까요? 천자는 백성의 마음을 얻은 사람임이 분명한데 요즘은 어찌 된 것이 백성이 천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혈안이 되려고 하는지 모를 일입니다. 우리가 잘못 마음을 주다 보니 엉뚱한 천자가 지위를 얻은 것은 아닐까요? 모든 국회위원들은 국민을 위해, 국민만을 생각하여 정치를 한다고 하는데 정작 국민들은 나날이 힘들어지는 것은 무슨 이치일까요. 하긴 지금 상황에서는 정작 누가 백성이고 누가 천자인지도 모호할 때가 많기는 합니다. 모두들 국민을 위한 방책이라고 의견을 내놓기는 하는데 그 모양들이 제각각이니 말입니다. 황광우씨가 말하는 '대중이 가담하는 야바위'가 바로 이런 것일까요? 

공원 모퉁이에서 삼삼오오 모여 벌이는 야바위판은 그 사기성을 쉽게 간파할 수 있지만 국가권력이 앞장 서고, 수천만 대중이 가담하는 역사의 야바위는 그 진위를 가려내기가 참으로 힘들다.(p54) 

제가 지금 서 있는 이 자리가 혹 야바위판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자신의 모습과 이 세상을 조금 더 신중히 돌아보아야 할 때인 듯 합니다. 이러다가는 노자와 장자의 말처럼 옳고 그름조차 판단할 수 없는 혼돈에 빠질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너와 논쟁을 해서 네가 이겼다면 과연 너는 옳고 나는 그른 것인가? 내가 너를 이겼다면 과연 너는 틀린 것인가? 우리가 결론을 내릴 수 없어 제 삼자를 부른다면 누구에게 판정해 달라고 할 수 있을까? 너와 의견이 같은 사람은 이미 너와 의견이 같으므로 바르게 판정할 수 없다. 나와 의견이 같은 사람은 이미 나와 의견이 같으므로 바르게 판정할 수 없다. 우리와 의견이 다른 사람이라면 이미 우리와 다른데 어떻게 바르게 판정할 수 있겠는가? 우리와 의견이 같은 사람이라면 이미 우리와 같은데 어떻게 판정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너와 나와 제삼자가 모두 알 수 없는데 또 다른 사람을 부른다고 해결되겠는가?(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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