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평범한 사람들 (증보판) - 101예비경찰대대와 유대인 학살
크리스토퍼 R. 브라우닝 지음, 이진모 옮김 / 책과함께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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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철학의 개념 중에서 '성선설'과 '성악설' 이 있다. 태어날 때부터 착하게 태어난다는 것이 성선설이고 태어날 때부터 악하게 태어난다는 것이 성악설이다. 천사 같은 아기의 얼굴을 보면 어떻게 성악설을 주장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오랫동안 성선설을 믿어왔다. 그러나 최근 촉법 소년 사건에서 보듯이 어리다고 마냥 착한 것이 아니라 어른 못지 않게 사악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그 신념이 흔들리고 있다.


사실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처신을 잘 한다기 보다는 그러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 정도 이상으로 못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도 자기와 가까운 사람에게는 한없이 착하고 다정한 사람인데 자기와 덜 친하면 사람이 바뀌는 것이다. 무엇보다 어떤 상황에서 양심이 있나 없나 할 정도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제법 볼 수 있는데 그런 것을 보면 진짜 인간은 원래 악한 존재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악한 사람을 욕하기는 오히려 쉽다. 그러나 평소 좋은 모습을 보이다가 특정한 순간에만 악마의 모습을 보인다면 사람들은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가 나쁜 사람이 맞는가 나한테는 그 나쁜 면을 숨겼을까. 문제는 숨긴 것이 아니라 원래 그런 사람일 경우다. 평소 주위에 친절하다고 소문난 사람이 어떤 경우에는 전혀 다른 행동을 할 때 두 모습 모두 그 사람의 본 모습인 것이다. 이 책은 그런 평범한 사람들에게 생각지도 않았던 평범한 악의 모습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수 많은 학살이 있어왔지만 제 2차 세계 대전의 '홀로코스트'와 같은 유대인 대량 집단 학살은 없었다. 사실 유럽에서 크리스트교가 확립이 된 이후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민족이라는 오명을 쓴 유대인에 대한 혐오는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그 강도가 덜하고 더하고의 차이일 뿐 유대인을 멸시하는 감정은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는데 홀로코스트도 그것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주장이 있어왔다. 그러나 유대인 혐오 사상이 오랫동안 있어왔다고 해서 그것을 지지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것에는 의문이 따른다. 분명 유대인 옹호자보다는 혐오자가 많았을 것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별 다른 감정이 없었을 것이다. 


나치의 히틀러가 홀로코스트의 결정권자이지만 그가 수 백만의 유대인을 '직접' 죽이지는 않았다. 유대인 학살에 대한 명확한 그의 의도는 아래로 내려가면서 더 구체적이고 더 실제적이고 더 확실한 정책이 되었고 그것을 직접적으로 실행한 사람들은 수많은 보통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그 평범한 보통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어떤 사람들이었기에 그런 학살에 동참하게 되었을까. 이 책은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 이 집단 학살에 어떻게 가담하고 그들의 실제 마음은 어떠했는지 실체적으로 규명하는 내용이다.


책은 주로 중년의 노동자 출신인 101예비 경찰 대대 대원 210명에 대한 전후 취조 기록을 발굴하여 심층 분석한 연구물이다. 결론적으로 이들은 어쩌면 선량하면서도 성실한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때로는 어려운 사람을 돕기도 하고 슬픈 일에 눈물 흘리기도 하고 불의에 항의하기도 하는 그야말로 평범한 민주 시민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유대인 학살이라는 그 끔찍한 일에 큰 저항 없이 큰 고민 없이 작전을 수행했다. 


문제는 이들이 나치의 세뇌 작업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았고 히틀러에 특별히 열광하지도 않았으며 정치적으로는 오히려 반나치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작전을 위해서 특별히 훈련 받고 뽑은 사람들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예비 경찰 대대 인원들을 그대로 동원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작전을 거부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었는데도 소수의 사람들만 안 하겠다고 한 것이다. 


사실 이 임무를 대원들이 처음부터 안 것은 아니다. 갑자기 임무를 하달 하고 싫으면 앞에 나오라고 하니 어리둥절해서 나서지 않았을 수도 있다. 만일 정상적인 양심을 갖고 있었다면 그 뒤에 이어지는 잔혹한 행위에 거부를 했어야 했다. 뒤에 거부한 사람들도 물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다수가 이 작업에 충실히 임했다는 사실이다. 책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이 사람들이 어떻게 학살 작전을 수행한 '전문 살인자'가 되었는지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하고 들여다보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의외로 보통 사람들은 권위에 복종하거나 체제에 순응하거나 자신의 직무에 충실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들도 경찰이라는 직무에 충실한 나머지 자신의 일이 어떤 것인지 깊이 생각하지도 않았고 설사 잘못 된 것이라고 느껴도 조직에서 분리될까 혹은 겁쟁이로 몰릴까 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그리고 반복되는 행위에 익숙해지면서 나중에는 적극적으로 나서기까지 했다.


평범한 악은 이 101 대대에서만 보였던 것이 아니다. 유대인들이 수용된 수용소 근처 평범한 주민들에게도 보였다. 주민들은 수용소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렸고 이들을 상대로 상업적인 활동을 했을 뿐만 아니라 도망친 유대인들을 밀고 했다. 이들은 수용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았고 결국 유대인들이 죽음을 맞는다는 것을 애써 외면하고 침묵하고 방관했다.


유대인의 학살에 참여한 독일인들이나 폴란드인들이 특별히 잔혹한 인종인가? 아니다. 특별히 더 잔학한 인종이란 없다. 그들이나 우리나 다들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더 무서운 사실이다. 우리도 저런 상황이 되면 과연 양심을 지킬 수 있을까. 그들의 평범함이나 우리의 평범함이나 비슷한데 우리는 살인을 거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보이는 악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가 있어 와서 처음 듣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상상 밖으로 더 평범한 사람들이 벌이는 상상 외의 잔혹성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정말 이 정도 까지였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아무리 히틀러가 유대인 말살 정책을 세웠어도 이런 평범한 사람들의 동조와 침묵이 있었기에 결국 대학살이 실제로 일어 난 것이다.


이런 책 참 소중하다. 이렇게 심층 분석해서 이야기하니 설득력 있다. 그리고 관련되는 반박과 논쟁에 대해서 수정, 보완하고 있어서 더 신뢰가 간다. 초판본에 비해서 주장의 논거를 더 선명하게 해서 내용을 더 풍부하게 한다. 전쟁이 끝난 지 반세기가 흘렀지만 아직도 규명할 일이 많다. 더 많은 자료가 공개되어서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면 좋겠다.


홀로코스트와 같은 엄청난 일을 히틀러에게만 책임 지우는 것은 너무 속 편한 일이다. 그 일에는 수 많은 사람의 협조와 방관이 있었다. 특히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일상의 악'은 언제라도 또 일어날 수 있고 어느 나라 어느 사람들에게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이 책을 통해서 사람들의 의식을 깨워야 한다. 성악설은 인간이 본래 악한 존재이기에 끊임 없이 성찰하고 법과 규범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것인데 불합리하고 불의한 것에는 저항해야 한다는 것을 교육해야 한다. 그것이 진짜 양심이고 진짜 민주 시민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야 우리 속에 있을 수도 있는 평범한 악을 방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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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가 재미있어지는 39가지 길 이야기 세계사가 재미있어지는 이야기
일본박학클럽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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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역사는 '길' 위에서 이루어졌다! 뭔가 그럴싸하지만 사실 집 앞을 나서서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서 움직이는 것 자체가 길이니까 모든 역사가 길 위에서 이루어진다는 말은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이 책은 그런 당연한 뜻으로 사용한 것이기보다는 수 많은 길 중에서 그 길을 지나서 일어난 역사적인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잘 이야기 해주고 있다.


역사적인 일이 일어난 공간이라고 해도 모든 것이 기념이 되는 것은 아니다. 대구에 3.1만세 운동길이라고 있는데 당시 그 지역에서 일어났던 모든 만세 행렬의 길 중에서 이 길이 의미가 있는 것은 일제의 감시를 피해 도심으로 모이기 위해 지났던 길이라서다. 많은 사람들이 태극기를 안고 몰래 지나갔던 길이 하나의 역사적인 공간이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책은 역사적인 일이 일어난 공간 중에서 훗날에도 이름이 남겨질 만한 길의 공간을 설명하고 있다.


크게 고대, 중세, 근세, 근 현대의 시대 구분을 가지고 각 시대의 사실들 중 인류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었던 일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첫번째로 인류 최초의 위대한 선택의 길인 출아프리카의 길을 소개하고 있다. 인류의 기원은 아프리카라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인류가 아프리카를 떠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고 그 호기심은 인간의 뇌 용량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후 도구를 만들면서 점점 더 더 나은 삶을 위한 욕망의 결과로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게 되었고 그것이 결국 세계사에 등장한 최초의 길이었던 것이다.


세상의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다. 현대 유럽 문명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 그리스도교와 그리스 로마 문화인데 로마의 번영은 길 자체를 만든 것에 있다. 지중해의 패권을 잡고 있던 페니키아의 카르타고와 치열한 전쟁을 통해서 결국 지중해를 장악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유럽과 북아프리카, 중동까지 대제국을 건설하게 되었는데 그 통치가 공고해진 것은 총 연장 30만킬로미터에 이르는 로마 가도에 있다. 로마와 각 지역을 잇는 거미줄 같은 통로를 만들어서 제국내에서 통행은 물론 상업도 발달하게 되어서 그것이 제국이 탄탄하게 발전하게 되는 길이 되었던 것이다.


로마 제국을 능가하는 국가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는데 그것을 가볍게 뛰어넘은 나라가 나왔다. 바로 몽골 제국이다. 몽골은 인류 최대의 판도를 이룩했고 또 그것이 최후였다. 그 전과 그 이후 몽골에 맞먹는 나라는 없었다. 몽골에 의한 평화를 뜻하는 '팍스 몽골리카'에 의해서 동서 문화가 활발히 교류했고 특히 유라시아의 실크로드는 안정적인 무역로가 되었다. 이 것은 서양에서 동방에 대한 관심을 높이게 했고 훗날 '신항로 개척시대'로 이어지게 된다.


이밖에 서양에 제지법이 전해지는 계기가 된 탈라스 전투, 동아시아 우위 시대를 과시한 중구 명나라 정화의 대항해, 신항로 개척시대의 선구자가 된 포르투갈 등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오늘날 유일 초강대국이 된 미국이 초기의 분열을 딛고 진정한 합중국의 초석이 된 대륙횡단철도는 그 자체가 역사적이 길이 되었다.


책은 총 동서양의 총 39가지 길을 통해서 인류의 역사를 바라보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알아두면 좋을 역사적 사실들을 흥미롭게 소개하고 있다. 각 길에 해당하는 지도와 사진, 연표가 적절하게 실려 있어서 본문을 더 잘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세계사는 너무나 방대하고 복잡하다. 다 알 필요는 없지만 어떻게 세계가 형성되었나를 알기 위해서 중요한 몇 가지 역사적 사실을 아는 것은 좋을 것 같은데 거기에 부합하는 책이다. 부담스럽지 않게 굵직 굵직한 큰 역사적 사실을 재미있게 잘 소개하는 책이어서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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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의 국보 -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숨은 명작 문화재
배한철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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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떤 문화재를 보면서 가치가 엄청나다고 여길 때 국보'급' 이라고 한다. 실제로 국보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국보에 지정되어도 손색없는 큰 가치를 갖고 있다고 여겨지기에 그런 표현을 하는 것이다. 국보와 보물은 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지정한 가치 있는 문화재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유명한 문화재가 정작 국보나 보물로 지정되지 않은 경우가 제법 있다. 지정 문화재가 되기 위한 여러 조건에 합당하지 않아서 그렇게 되었는데 그 이유라는 것이 비합리적인 경우도 많다. 아쉽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알만한 문화재라면 큰 박물관에서 관리중인 경우가 많아서 그나마 다행이랄까.


이 책은 국가 공인 문화재로 지정이 되지는 않았지만 '국보급' 이라고 평가받을 만한 비지정 문화재를 소개하고 있다. 국보나 보물을 소개하는 책들은 많지만 지정 문화재가 아닌 비지정 문화재만을 모아서 설명하는 책은 잘 없었기에 우리 문화재를 더 다양하게 소개한다는 점에서 반가운 책이었다. 내용을 보니 평소 알지 못했던 내용도 많지만 잘못 알고 있었던 문화재도 있었다. 분명 국보나 보물로 지정이 되었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아니였던 것이다. 


내용은 총 8부로 나누어서 적절한 주제에 맞는 문화재를 소개하고 있는데 1부에서 인상적인 것은 '경주 열암곡 마애석불'이다. 그전에 언론을 통해서 알고 있었는데 책을 통해서 살펴보니 정말 기적이라는 말밖에 나올 것이 없다. 통일신라 시대 불상이 지진으로 추정되는 천재지변으로 무너졌는데 그것이 부서지기 5cm 전에 멈춰서 원형 그대로 보전이 되었다는 게 무슨 드라마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왕조가 바뀌고 전쟁에 일제강점기도 거친 이때 발견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런데 너무 무겁고 위치한 곳이 산 중턱이라서 복원이 쉽지 않다. 아마 이 유물은 복원만 된다면 바로 국보로 지정되지 않을까 싶다.


지정 문화재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가 아님을 확인한 문화재는 '분청사기' 다. 국립중앙박물관이나 유명 사립 박물관에 소장중인 명품 분청사기의 많은 수가 지정 문화재로 되어 있지 않다는 것에 놀랐다. 물론 국보나 보물로 지정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국보는 6점, 보물은 27점이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책에서도 소개한 국보급 작품이 많은데 지정된 것은 적은 편이다. 고려 청자에 비해서 그 수가 많아서 희소가치가 떨어져서 그럴까. 그러나 분청사기가 많이 남아 있다고는 하나 더이상 실현되지 않는 조선 시대의 유물이다. 가치가 있다면 국가 문화재로 지정해서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문화재 중에서 회화 부분은 국가 문화재로 지정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적다고 한다. 김홍도의 남은 그림은 진품이라면 대부분 지정 문화재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안 된 것도 많다. 책에서는 여러 다양한 '신선도'를 소개하고 있는데 유려한 필선과 색채가 돋보이는 명작들이 많다. 모두 큰 박물관에서 잘 보관하고 있지만 비지정 문화재인 것이다. 


한편 '세계 최고의 달마도'라는 찬사를 받은 김명국의 '달마도'도 비지정이라고 한다. 이 그림은 워낙 유명해서 당연 국보인줄 알았다. 아마 일본에 사신으로 갔을 때 그려 남겨두고 왔던 작품을 우리나라에서 들여와서 그런것 같다. 그밖에 우리 회화사에서 '영묘화의 일인자'라고 불렸던 변상벽의 그림들도 거의 지정이 되지 않았다. 영묘화는 일종의 동물 그림으로 오늘날에도 독특한 화풍으로 사랑받는 경우가 많은데 명작 영모화 중에서 '화조구자'만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하니 뭔가 홀대받은 느낌이다.


사실 책에서 소개하는 작품들은 지은이가 말한대로 무관의 국보급 문화재라서 거의 대부분 큰 박물관에서 소장중이다. 말만 국가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을 뿐이지 대우는 국보와 마찬가지로 관리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일반 사람들은 가치 있거나 급이 높은 문화재는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에 지정 문화재에 비해서 관심을 덜 가진다. 문화재에 관심 있는 사람들한테는 지정이 되거나 안 되거나 상관이 없을테지만 말이다.


어쩌면 국보급 문화재라면 지정 비지정의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국가 문화재로 지정하는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고 여러 상황과 여러 입장이 있어서 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 문화재로 지정이 되면 국외 반출이 엄격히 규제되고 또 안전하게 관리가 되기 때문에 멸실의 걱정이 줄어든다. 그리고 일반 사람들에게 문화재의 가치를 알리는데도 더 수월한 면이 있기에 좀 더 적극적인 지정 정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은 국보나 보물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가치가 있는 걸작 문화재 35점을 소개하고 있는데 각 문화재의 예술적 의미와 역사적인 가치를 그림과 함께 잘 설명하고 있고 관련한 사진도 풍부하게 싣고 있어서 이해를 돕는다. 읽어 보면 새삼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깨닫게 된다. 전쟁이나 일제강점기가 없었더라면 더 명작들이 남아 있었을 것이란 아쉬움도 느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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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위의 개척자, 황금 천막의 제국 - 세계를 뒤흔든 호르드의 역사
마리 파브로 지음, 김석환 옮김 / 까치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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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에서 위대한 황제나 제왕이 많지만 그 중 으뜸이라고 할 사람은 칭기스 칸이 아닐까 싶다. 역사상 가장 넓은 땅을 지배했던 나라를 세웠기 때문이다. 물론 칭기스 칸이 살아 있을 때 최대 판도를 이룩한 것은 아니다. 그의 후계자들이 지속적인 정복 사업을 벌인 결과다.하지만 그 모든 것의 밑바탕은 칭기스 칸의 말발굽 아래에서 일어났기에 우리는 몽골 제국 하면 칭기스 칸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사실 인구도 얼마 안되는 몽골이 아무리 뛰어난 전사와 전법, 무기들을 갖고 있다고 해도 중국을 포함한 동서양에 걸친 대제국을 만들었다는 것은 다시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실제로 몽골 이전과 이후로 그만한 나라를 건설한 사람이 없었다. 다른 나라를 침공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몇 배 더 많은 인구와 국력이 필요한데 각 지역마다 터전을 잡은 나라들의 세력이 만만치 않아서 점령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 말은 점령을 한다고 해도 수성하기가 어렵다는 말과도 통한다. 몽골 제국도 마찬가지로 유라시아에 걸친 나라를 만들었지만 어떻게 유지를 했을까가 궁금해진다. 


몽골이라는 이름 아래 복속한 국가는 수도 없다. 그들이 쉽게 몽골의 통치를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한 사람이 드넓은 제국을 다 다스리기 보다는 나누게 되는데 훗날 대원 제국이 되는 황제 직할지 외에도 킵차크 칸국, 일 칸국, 오고타이 칸국, 차가타이 칸국 이렇게 크게 다섯 개의 나라로 이루어진다. 각기 독립된 제국으로 기능을 했다고 해도 이들은 기본적으로 대몽골에 속해있고 대몽골의 관습과 의식에 참여함으로써 결속과 협력을 다지게 되었다.


이 중 킵차크 칸국은 몽골에서 가장 서쪽으로 떨어진 지역이다. 본래 칭기스 칸의 맏아들인 주치가 원정을 떠났던 지역인데 몽골의 관습으로는 장자는 가장 멀리 있는 땅을 분봉 받는다고 한다. 이 지역을 지배하던 사람들이 킵차크인들이라서 킵차크 칸국이라고 불렀고 황금 천막의 제국이라는 뜻인 금장 칸국이라고도 불렀다. 몽골인들은 주치가 받은 땅에서 세운 나라라고 해서 주치 울루스 라고 불렀다. 여기서 주치 울루스는 주치 씨족의 영지라는 뜻이다.


주치 울루스를 세운 것은 주치지만 실질적으로 나라를 부강하게 한 것은 주치의 아들인 바투다. 그의 형인 오르다를 대신해서 러시아등 서방 원정을 떠났고 그 결과 막대한 땅을 정복하게 되었다. 그래서 주치 울루스는 바투가 이어받게 되고 바투는 서부의 백장 칸국, 오르다는 동부의 청장 칸국으로 나누어서 통치를 한다. 두 칸국은 서로 협력하면서 주치 울루스의 더 큰 이익을 도모하게 된다.


책은 이렇게 킵차크 칸국이라고 불렸던 주치 울루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몽골 제국이라고 하면 보통 칭기스 칸이나 그를 이은 대원제국에 대한 책들이 많고 각 칸국에 대해서 다룬 책은 적은 편인데 그 중에서도 주치 울루스에 대한 책은 잘 없었는데 이 책은 주치가 땅을 받고 하나의 독립된 나라로 존속하다가 쇠락하는 과정을 세밀하게 설명하고 있다.


몇 십년을 갔던 다른 정복자들에 비해서 주치 울루스는 비교적 오래 존속했는데 사실 권력 지배층인 몽골인이나 튀르크인들은 피지배층에 비해서 그 수가 적었는데도 불구하고 효율적으로 통치를 했다. 이것은 유목 민족 특유의 유연성 있는 정책 때문이다. 이들은 점령한 땅을 절멸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기에 그대로 살면서 세금을 몽골에 내는 형식이었다. 대신 통일된 도로를 통해서 문물 교환이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무역을 통한 부도 축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칭기스 칸이 시행했던 여러 관용적인 정책들도 계승을 했는데 종교의 자유가 그 하나의 예이다.


책은 호르드가 어떻게 발전하고 어떻게 역경을 견뎌냈는지 잘 설명하고 있는데 특히 이슬람을 국교로 받아들인 부분은 호르드가 오래갈 수 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튀르크인들이 이슬람화 되었다고 해서 몽골인까지 될 필요는 없었겠지만 정책의 확실함을 보여주기 위해서도 결단을 내려야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타 종교를 박해하지 않고 관대하게 대했다. 역사를 보면 다른 종교를 억압하면 국력이 약해지고 존중하면 국력이 커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호르드는 종교적 교조주의에 빠지지 않아서 큰 갈등이 일어나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이 많았고 몽골 제국을 좀 더 폭넓게 알아가게 되는 내용이었다. 다만 내용 자체가 많은 사실들을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칭기스 칸과 몽골에 대해서 기본적인 지식이 있어야 좀 더 읽기 편할 것 같다. 평소에 들어보지 못한 몽골 용어와 이름들이 나오기 때문에 초반에 조금 지루할 수도 있다. 초반부를 잘 넘기면 그나마 잘 읽힌다.


파괴와 약탈이라는 부정적인 면이 많이 부각되었던 몽골 제국, 그 중에서도 호르드 제국이 어떠한 정책을 썼는지 그런 정책으로 유럽과 아시아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알게 되는 책이라서 몽골과 유라시아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추천한다.




"본 서평은 부흥 카페 서평 이벤트(https://cafe.naver.com/booheong/219138)에 응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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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의 망상 - 욕망과 광기의 역사에 숨겨진 인간 본능의 실체
윌리엄 번스타인 지음, 노윤기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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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역사를 거듭하면서 발전을 해 온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합리적인 능력이라고 생각이 든다. 합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더 좋은 방안 더 좋은 방법이 있으면 그것을 수용해서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에 발전이 있는 것이다. 합리적이라는 말은 이성적이라는 말과도 연결이 되는데 과거보다 현재가 비교적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는 주장에는 대부분 동의한다.


그런데 살면서 많은 수의 사람들이 정말 말도 안되는 논리에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아왔다. 정치와 경제 부분에서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최악 대신에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인데 그것과 관련 없이 그냥 막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분명 과거보다 교육 수준도 좋아졌고 세상 보는 눈도 밝아졌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결정을 보면 과거의 묻지마식 선택을 하는 것을 보면 인간이 합리적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은 합리적인가 비합리적인가. 여기에 대한 답은 이분법적으로 딱 구분해서 하기는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인간은 '합리성'을 추구하기 보다는 '합리화'에 더 치중해왔다는 사실이다. 합리성을 추구한다는 것은 사안을 합리적으로 차근 차근 살펴본다는 뜻이지만 합리화에 치중한다는 것은 정해진 결론에 끼워 맞추는 것이다. 합리화 한다는 이야기가 바로 그 말 아니겠는가.


이 책은 대중이 합리적이 아니라 그냥 많은 수에 쫓아간다는 것을 이야기 하는 책이다. 역사상 수 많은 예를 들어가면서 합리적으로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비합리적인 것이라고 해도 그것을 '합리화'하면서 쫓아가는 군중들의 모습을 이야기 하는데 상당히 공감이 많이 가는 내용이었다.


사실 실제의 예를 보자면 최근 우리 주위에 일어난 일을 봐도 알 수가 있다. 바로 몇 년 전 전국에 휘몰아 쳤던 '부동산 광풍'을 보면 된다. 차근 차근 돈을 모아서 단계를 밟아서 집을 사는 것이 보통이었던 것이 지금 집을 사지 않으면 영원히 사지 못한다는 '망상'이 전국에 퍼졌다. 그래서 이른바 영혼까지 끌어모은다는 '영끌'로 대출을 해서 집을 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 어떻게 되었나. 부동산 과열은 결국 부동산 하락으로 이어지고 지금은 집값이 많이 떨어진다고 아우성이다. 상황을 면밀하게 살펴보고 투자 하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에 휩쓸려서 남이 하니까 나도 하다 보니 지금은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책은 수 천 년의 인류 역사를 통해서 수 많은 망상에 빠졌던 인간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인간의 비합리성을 설명하고 있는데 특히 돈이나 종교 등에 비이성적으로 열광했던 사례들을 연대순으로 이야기해준다. 책을 읽으면 정보가 개방된 현대에 와서도 망상에 빠지는 사람들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과거처럼 어떤 사안을 판단할 근거를 알기 어려울 때는 이해하지만 지금처럼 정보가 많은데도 헛된 판단을 하는 것을 보면 인간은 똑 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되는 것이다.


지은이는 19세기 찰스 맥케이가 쓴 '대중의 미망과 광기'라는 책의 내용을 재해석해서 썼는데 사실 그 책에 나오는 내용만 봐도 인간의 특성을 잘 이해할 수 있다. 이미 200년전에 경제적인 버블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오늘날에도 비슷한 주기와 강도로 반복되고 있다고 하니 인간성은 변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책이 좋다. 본문만 거의 700여 쪽의 내용인데 쉽게 쓰여져서 금방 금방 진도가 나간다. 책에 나오는 역사상의 수 많은 예들은 군중이 얼마나 어리석을 수 있는가를 깨닫게 하고 그것을 쫓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느끼게 해준다. 사실 남들 다 하는데 나 혼자 안 하기가 쉽지가 않다. 그래도 과거와 달리 판단할 근거는 충분히 주어지지 않는가. 근거 없이 군중을 쫓기 보다는 차분히 상황을 살펴 보는 것이 중요할 터이다. 다양한 의견을 가진 개인이 많아 질수록 결국 망상에 빠지는 군중도 적어질 것이다. 


물론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 돈이나 종교에 결부된 비이성적 광기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결국 인간의 강렬한 욕망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위기게 휩쓸리지 않는 개개인이 늘어난다면 파국까지는 가지 않을 것 같다. 너무 희망적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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