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옥이 새겨진 소녀 ㅣ 스토리콜렉터 44
안드레아스 그루버 지음, 송경은 옮김 / 북로드 / 2016년 7월
평점 :
더운날이 지속되는 여름에는 사실 책 읽기가 여간 고역이 아니다. 더운 날씨에 집중력이 떨어져서 책진도가 잘 안나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럴때일수록 딱딱한 내용의 책들보다는 속도감있고 흡입력있는 소설이 읽기에 좋은데 참 오랫만에 정신없이 빠져들게 하는 책을 만난거 같다.
바로 이 책 '지옥이 새겨진 소녀'다. 제목부터 뭔가 심상치 않는 느김낌을 주면서 표지가 선명한게 인상적인 책인데 지은이는 '안드레아스 그루버'라는 작가인데 국내에는 아직 출간된 책이 얼마되지 않아 생소한 이름이었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목록에 그의 저작물이 있을정도로 인기가 많은 작가라고 한다. 기본적으로 범인을 쫓는 경찰시리즈인데 이 책은 그 두번째 시리즈다. 사실 전에 나온 책을 들어만 봤지 아직 읽어보진 않았는데 과연 어떤식으로 내용을 전개시킬지 궁금하기도 기대되기도 했던 작품이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그냐야 시간을 망각하게 하는 책이랄까. 재미있는 좋은 스릴러 작품은 많다. 분명히 재미있고 좋은 책이긴 한데 막 뒤의 내용이 궁금해서 쭉쭉쭉 읽어내려가고 싶어지는 정도는 아닌 책들도 많다. 그런데 이 책, 그냥 시간 가는줄 모르고 읽게 된다. 밤에 읽는다고? 그럼 날밤 샐 각오는 해야한다. 덥고 잠온다고? 그럼 정신이 또렷해지는걸 경험하게 될것이다. 그만큼 흡입력있고 도저히 끊을수없게 만드는 매력적인 내용의 책이었다.
주인공은 최고의 프로파일러이자 경찰아카데미 교수인 슈나이더와 당찬 여형사 자비네다. 두 사람은 이미 전작에서 악전고투끝에 함께 사건을 해결한 사이다. 자비네의 능력을 알아본 슈나이더에 의해서 매번 떨어지던 독일 연방범죄수사국 아카데미에 그녀가 합격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소수정예로 교육이 시작되는데 얼마안가서 실전같은 일들이 벌어지면서 슈나이더와 자비네의 활약이 시작된다. 서로 연관성이 없어보이는 여러건의 잔혹한 살인사건들이 일어난것이다.
한편 또다른 공간인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1년간 실종되었던 한 소녀가 갑자기 발견된다. 그것도 피투성이가 된 채 등에는 천사와 악마모양의 문신이 새겨진 상태로. 내용은 단테의 '신곡' '지옥편'을 묘사하는 서사시중의 한 편이었다. 그리고 연이어 등 피부가 벗겨진 소녀의 시신들이 하나 둘 발견된다. 대체 누가 이 소녀들에게 이런짓을 했단 말인가. 그리고 살아남은 그 소녀는 어떻게 그 지옥으로부터 탈출을 하게 되었을까.
이야기는 두개의 시공간에서 동시간에 일어나는 내용을 교차해서 보여주고 있다. 독일의 비스바덴에서 여러건의 잔혹한 살인사건을 쫓는 슈나이더와 자비네, 그리고 오스트리아 빈에서 아동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멜라니 검사. 한 챕터가 독일이면 그다음에는 오스트리아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자칫 느슨해질수있는 긴장감을 팽팽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각 챕터의 내용이 길지 않고 빠른 템포로 끊어지고 연결되어서 도무지 끊을수가 없게 하는 것이다. 각 지역에서 수사를 해나가는 과정이 계속 연결이 되기에 끝까지 읽을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책을 읽다보면 짐작하겠지만 두 공간의 사건은 합일점을 찾게 된다. 연관성이 있는것이다. 둘이 합쳐졌다가 떨어졌다가 결국에 합쳐지면서 거대한 밑그림의 전체적인 윤곽을 잡게 하는 형식이었는데 각 사건의 진행이 대단히 치밀하고 논리적으로 잘 짜여진 작품이었다. 조금씩 풀리는듯하면서 또다른 벽을 만들고 그 벽을 부수고 나면 새로운 갈림길이 나오게 하는 식으로 차근차근 나아가지만 결코 소홀함이 없게 이야기 구조를 구축해서 흡입력 높게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었다.
슈나이더와 자비네의 시리즈라고 할수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다른 공간과 사건의 또다른 주인공이라고 할만한 멜라니 검사가 있어서 흥미로왔다. 슈나이더와 자비에의 활약에 전혀 뒤지지 않는 활약상을 보여줘서 이 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또다른 시리즈를 만들 계획이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는 출간되지 않았지만 이미 또 다른 형사를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가 있다고 하니 멜라니 검사 시리즈가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마침 외적으로도 매력적이라고 하니깐.
전체적으로 참 흡족하게 봤던 책이었다. 내용에 나오는 살인도 그 참혹성을 상세히 묘사함으로써 긴박감을 더 배가시킨거 같고 사건과 인물을 촘촘하게 배치해서 빈틈없이 진행시키면서도 작은 반전과 예상치 못한 순간을 혼합해서 스릴감을 더 증폭시켰다. 그러니 책에서 손을 놓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읽어내려갈수밖에 없었다. 이제 '안드레아스 그루버'라는 작가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읽어야하는 작가가 되버렸다.
아쉬운점이 있다면 등장인물들간의 대화체다. 캐릭터상 슈나이더는 유머없고 냉철한 성격에 유아독전적인 거만함이 있는 인물인데 원작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번역상 그 성격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강의에는 반말하다가 강의실문을 나서는 순간 높임말을 쓰는건 대체 무슨 경우인지 모르겠다. 아예 반말을 하던가 아니면 좀 무뚝뚝한 높임말을 쓰던가 하는 걸로 통일을 했어야 했다. 그리고 범인들의 말투도 그 악랄한 범죄에 비해서 왠지 상냥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여기 나온 범죄자들이 죄다 친절한 성격이던가? 평소땐 그렇다고 해도 적어도 악마성을 드러낼때는 거칠고 사악한 모습이 말속에 나왔어야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말투가 몰입에 좀 방해가 된 면이 있었다.
그밖에 위험을 자초하는 전형적인 실수나 상황등이 있긴 했지만 이만한 재미를 느낀 책도 근래에 없었던것 같다. 날 더운데 잠오는 책 붙잡고 있지말고 이 책을 읽으면 시간 가는줄 모르는 시원한 스릴감을 만끽할수 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