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안 2 - 마리 이야기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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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가 없네."
마리는 중얼거린다. 아주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전혀 다른 인생을 살면서도 우리는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371쪽

죽은 사람을 가슴에 안고 죽은 사람의 말을 인생의 지침으로 하는 사람에게 삶이란, 시간이라 슬쩍 비켜서 있으면 마냥 흘러만 가는 무엇이었습니다. 흐르고 흘러 뒤에는 운명이란 이름으로 뭉쳐지는.
마리의 삶에 운명적으로 많았던 요소는 멀리 떠나간 사람들입니다.
~
하지만 아무리 멀리 떠났어도 삶이 지속되는 한, 돌고 돌아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은 내가 만나야했던 사람, 그리고 내가 마주해야 했던 내 삶이 아니었나 싶군요. 작품의 말미에서 서로의 긴 인생을 돌고 돌아, 엽서 한 장의 끈으로 만나게 되는 마리와 큐처럼 말이죠.
한편, 놀라운 것은 사람의 기억 속 내가 타인이 기억하는 나와 참 다르다는 것입니다. 함께 했던 생의 한 장면인데, 훗날 그날을 더듬다 보면 기억의 오차에 그 순간의 어긋남에 그저 경악할 따름입니다. 결국 사람이란 자신의 생의 흐름 속에서만 나와 타인을 판단하고 가늠하나 봅니다. 그래서 흐를 만큼 세월이 흐른 후에야, 그 순간에 진의를 그 진실을 깨우치게 되나 봅니다. -405-4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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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걷고 싶은 길 - 도보여행가 김남희가 반한
김남희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8년 5월
절판


메스너는 고비 사막 횡단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편안히 내 삶에 안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나이 드는 법을,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삶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내 삶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내 마음속 사막 한가운데서 멈추지 않고 반짝이는 오아시스를 향해 행군하고 싶었다."-64쪽

"밤에 깨어서 내 뼈가 모두 있는 게 느껴질 때도, 이제껏 해왔던 것을 머지않아 더 이상 할 수 없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나는 나 자신의 몰락을 의식하고 있었고, 힘과 능숙함과 인내심도 계속 줄어들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이번만 잘 견뎌내려고 할 뿐이다. 이번 한 번만 더 말이다."
질병처럼 엄습하는 외로움 속에서 몸의 쇠락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영혼의 버석거림이 느껴진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우울하게 고백한다.
"여행을 했다고 해서 내가 더 노련해지거나 현명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오래 돌아다녔기 때문에 더 늙고 몸만 뻣뻣해졌을 뿐이다."
아니다. 메스너는 지나치게 겸손을 부린다. 그는 조금씩 현명하게 늙어가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게 틀림없다.
-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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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없는 그곳, 노웨어 - 적도의 태평양에서 오로라의 북극까지
김지희 외 지음 / 예담 / 2008년 6월
품절


비행기가 바다로 다이빙하기 시작했다. 수바 공항에서 푸나푸티섬까지 2시간 50분을 달려온 50인승 프로펠러기가 난데없이 하강했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온통 파아란 바다. 기체가 파도에 닿을 기세다. 아니, 대체 활주로가 어디 있다고 착륙이야?
‘이 광활한 바다 어딘 줄 알고 찾아가는 거야? 불시착하면 구조대가 우릴 찾을 수나 있는 걸까?’이륙 직후부터 온갖 불안과 흥분으로 안절부절못하다가 잠깐 존 사이에 비행기가 바다로 내리 꽂히고 있는 것이다. 좌석이 절반도 채 차지 않은 에어피지에서 외국인은 우리 일행과 일본인 청년들뿐이었다. 나머지 승객들은 대부분 오스트레일리아나 뉴질랜드에서 ‘이주 노동자’ 생활을 하다가 금의환향하는 투발루 젊은이들이었다.
급작스레 활주로가 나타났다. 비행기가 브레이크를 밟았다. 활주로의 왼쪽 끝에서 착륙하기 시작한 기체는 오른쪽 끝까지 가서야 요란한 굉음과 함께 가까스로 섰다. 한숨 돌리는데 이번에는 선체가 낑낑대고360도 기수를 돌리더니 공한 건물 앞까지 슬금슬금 기어갔다. 기장을 용케도 찾아냈다. 가늘고 긴 눈물처럼 생긴 섬, 투발루.

태평양 한복판에 눕다-투발루 중-140-141쪽

나의 진정한 길벗 <론리 플래닛-남태평양과 마이크로네시아>는 투발루에 20쪽을 할애하고 있었다. 9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투발루는 육지 면적을 다 합쳐봐야 마포구 정도. 서울의 20분의 1 면적밖에 안 된다. 그러니 여행자 안내센터나 브로슈어는 필요 없다. 공항이 있는 푸나푸티 섬에 은행과 우체국, 호텔과 택시회사, 중국 식당과 스쿠터가 있으니까.
5,000원을 주고 ‘DAERIM' 스쿠터를 빌렸다. 한국산 중고 대림 오토바이가 투발루에 와 있었다. 스쿠터로 남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 도는 데 40~50분이면 된다. 이게 푸나푸티 사람들이 대부분의 인생을 사는 세상의 전부.
"탈로파!"
‘부르릉 부르릉’ 마을을 취젓고 돌아다니니 사람들이 눈썹을 약간 치켜뜨며 눈인사를 한다. 푸나푸티의 인구가 4,500명. 한 사람 건너면 친구뻘이고, 두 사람 건너면 친척뻘이다. 그러니 1년에 200명이 채 되지 않는 방문객이 들어오면 당연히 투발루 사람들의 레이더에 잡힌다.

태평양 한복판에 눕다-투발루-143쪽

추락. 짧은 몇 소 사이 머릿속에서 삶과 죽음, 두 가지 명제가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혔다.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고 전나무 숲을 질러 나는 듯싶더니 별안간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게 아닌가. 비명이 터져 나왔다. 노련한 조종사만 파로 공항 진입이 가능하다는 소문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지구상에서 최고로 행복한 나라의 비밀을 훔치다 부탄 왕국 -1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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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삐돌리오 언덕에 앉아 그림을 그리다
오영욱 지음 / 샘터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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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즈막이 일어나 바다를 보면 간단한 아침을 먹고
그늘에 앉아 파도소리를 음악 삼아 책을 뒤적거리다가
한적한 해변을 걸어 작은 레스토랑에 들어가 버섯버거를 먹고
오후 햇살을 피해 침대로 돌아와 달콤한 낮잠에 빠지고
늦은 오후 햇살 아해 바람에 머리카락을 맡기며 책을 읽고
이것저것 몽땅 집어넣어 직접 만든 저녁을 먹고
호스텔 내의 바에 가서 남아공산 맥주를 마시며
가볍게 취하고 나니
어느덧 자정이 되어버렸다.

의식을 놓아버린 바로 그 느낌.

남아프리가 공화국 중 -77쪽

코끼리들이 어슬렁거리는 남아프리카의 초원에서
지금까지 나도 모르던 지난 여행들의 이유를 찾아냈다.
여태껏 살아왔던,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나의 ‘현재’들 자체가
어찌 보면 하나의 긴 여행길이었던 것이다.

모든 이들이 각지 다른 자신들의 여행에 나선 가운데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먼 길을 돌아가는
작은 중간역.

남아프리가 공화국 중 -88쪽

슬럼프에 빠져버렸다.
슬럼프는
언젠가는 극복될 운명을 갖고 있기 때뭉에
존재가지차 있는 것이지만
몸이 아픈 것과 함께 와버리니
기약 없는 무기력에
빠지고 말았다.

네델란드 중 -200쪽

인생은
가끔 무대 위의 주인공인 가수도 되어보고
가끔 무대 뒤의 우직스런 스탭도 되어보고
가끔 무대 앞의 열광하는 관중도 되어보고
가끔 무대 밖의 지나가는 행인도 되어보는
것.

베네치아 중 -278쪽

‘절절’으로 치닫기에는 갑자기 모든 것들이 이전 세계의 현실과 가까워져 버렸다.
인정하고 이해하자.
소설이나 영화가 아닌 것이다.
지루하면서도 자극적인 ‘전개’만이
콩나물처럼 이어져 있는 것이 이 세계의 현실이라
인정하고 이해하자.

내겐 여전히 미움이 존재한다.
그 미움은 밤사이에 꿈으로 인지된다.
사실 그건 매우 비겁하고 어가 없는 일이다.
미워하는 것 말ㄹ고도 세상에는 할 일이 무척 많고,
미운 대상 말고도 꿈에 나타날 것들은 무궁무진할 텐데 말이다.

런던 -298쪽

유럽에서는 여행 중인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각자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할 기억들을 만들어가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다만, 어쩌면 내가 그들을 다소 피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에게 있어 여유는 한가한 해변에서보다 북적거리는 도시에서 더욱 짜릿하게 느낄 수 있다.
여행에 있어 포기할 줄 안다는 것은 꽤 유용한 기술이다. 내 앞에 놓인 서너 개의 선택 앞에서 하나만을 취하면서 다른 것들을 먼 훗날로 미룰 수 있는 여유가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어쩌면 맞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사가 그러하듯 버린 만큼 얻을 수 있는 것이고, 가끔은 과감한 포기가 더 큰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믿는다.
나에게 여유는 그런 것이다.

다시, 여행을 떠나며 중-3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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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트 라이크 헤븐
마르크 레비 지음, 김운비 옮김, 권신아 그림 / 열림원 / 2009년 3월
품절


"아더, 당신은 내게 얽매여선 안 돼. 난 아무것도 줄 수가 없어. 함께 나눌 것도, 베풀 것도 없어. 난 하물며 커피 한 잔도 끓여줄 수가 없단 말야."
"빌어먹을. 그래, 당신이 나한테 커피도 끓여줄 수 없다면, 가능한 미래 따위는 쥐뿔도 없겠지. 난 얽매이는 게 아냐. 로렌. 나를 위해서 이러는 거야. 난 벽장 속에서 당신을 만나자고 청한 적 없어. 그냥 당신이 거기 있었어. 그런데 나만이 당신을 도울 수 있는 거야. 그건 옳은 일이고 단 하나의 길이야. 그게 인생이야, 그런 거야. 아무도 당신 목소리를 듣지 못해. 보지도 못하고 대화할 수도 없어. 이젠 저를 저버릴 수 없다고."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녀 말이 옳다. 그녀 문제에 매달리는 것은 두 사람 모두에게 위험천만한 짓이다. 그녀에게는 헛된 희망을 심어줄 수 있으며, 그에게는 자기 시간을 다 잡아먹고 인생을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인생이야, 바로 그게."
그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녀가 거기 있었다. 그의 곁에, 그의 아파트에.-115쪽

"단순하게 생각해. 이건 하나의 게임이야. 매일 아침 누군가가 당산한테 팔만육천사백 달러를 준다. 하루 동안에 그걸 소비하라는 유일한 제약을 두고서 말이지. 사용하지 않은 돈은 당신이 잠들때 다시 몰수되는 거고. 하지만 이 하늘의 선물, 혹은 게임은 언제라도 중단될 수 있다, 알겠어? 고로 물음은 이거야. 만약 그런 선물이 당신에게 내려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는 대답했다. 자신에게 즐겁도록,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안겨주는 데에 모든 돈을 쓸 것이다. 그 ‘마법의 은행’이 제공해준 한 푼 한 푼을 자신의 삶과 주의 사람들의 삶에 행복을 안겨주기 위해 사용할 것이다.
"하물며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도. 나랑 가까운 사람들과 나만을 위해서 하루에 팔만육천사백 달러를 다 쓸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거든. 그런데 결국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거야?"
" 우리 모두는 이 마법의 은행을 가지고 있어. 그건 시간이거든. 째깍째깍 흘러가는 매초들로 이루어진 풍요의 뿔!"-290-291쪽

매일 아침 깨어날 때 우리에겐 하루당 팔만육천사백 초의 시간이 예치되고, 밤에 잠들 때 다른 계좌로의 이월 같은 건 없다. 그날 살아지지 않는 것은 유실된다. 어제는 지난 것이다. 날마다 이 마법은 새로 시작되어, 매일 아침이면 다시금 팔만육천사백 초의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지고 우리는 그 비껴갈 수 없는 규칙과 놀이를 한다. 시간 은행은 어느 때라도 아무런 예고 없이 우리의 계좌를 닫을 수 있다. 어느 때라도 삶은 멈출 수 있는 것. 그렇다면 우리에게 매일 주어지는 팔만육천사백 초를 가지고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게 돈보다 더 소중하지 않을까, 삶의 순간들이?"
사고 이후로 그녀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인가를 실감하며 사는 사람들이 정말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날이 깨닫고 있었다.-291쪽

"당신이 한 해의 삶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다면, 방금 학년말 시험에서 낙제한 학생에게 물어봐. 한 달의 삶은, 미숙아를 출산해놓고 그 아기가 아무 탈 없이 무사하게 인큐베이터에서 나와 자기 팔에 안길 수 있기를 고대하는 어머니에게 물어봐. 한 주에 대해서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공장이나 탄광에서 일하는 남자에게 물어봐. 하루는, 가슴 두근거리며 다시 만나기를 기다리는 두 연인에게 물어보고, 한 시간은, 고장난 엘리베이터 속에 갇힌 밀실공포증 환자에게 물어봐. 일 초는, 자동차 사고를 간발의 차로 모면한 사람이 하는 말을 들어봐. 천분의 일 초는 올림픽 경기에서 은메달을 딴 육상선수에게 물어봐. 그가 온 삶을 바쳐 훈련해가며 따려고 한 금메달이 아니라 은메달을 딴 선수에게 말야. 삶은 마술이야, 아더. 나는 사정을 알고서 말하는 거야. 사고를 당한 후로 나는 매순간의 가치를 느끼고 있으니까. 그러니 제발, 우리에게 남은 이 모든 순간을 만끽하자."
"너랑 함께하는 매순간은 다른 어떤 순간보다도 훨씬 소중해."-291-2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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