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몽키 하우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에프 모던 클래식
커트 보니것 지음, 황윤영 옮김 / f(에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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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키하우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커트 보니것, 황윤영, 푸른책들

이 책은 총 25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미국의 소설가 커트 보니것의 단편집입니다. 지난 6월에 커트 보니것의 <세상이 잠든 동안>을 읽었던 지라, 이 작가의 작품이, 특히 단편집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이 책은 <세상이 잠든 동안> 에서 보다 전반적으로 50년대에서 60년대 초반까지의 미국의 분위기를 더 잘 느끼게 하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를 다루는 이야기들이긴 하지만, 50~60년대의 상황을 대입해서 생각해보면 조금 더 잘 이해가 되는 단편들이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소련을 중심으로한 공산국가들과의 냉전 체제가 굳어지던 시기인 50년~60년대인지라, 인류를 종말에 이르게 할 수도 있는 과학기술의 오남용에 대한 두려움, 공산주의의 과도한 평등주의에 대한 거부감, 과도한 국가주의에 대한 경계감 등이 배어 있는 단편들이 있었습니다.

짧은 단편이지만,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뚜렷하고 생생합니다. 전혀 다른 시간대와 장소의 사람들인데도 낯설지 않고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우리와 별로 다르지 않은 사람들. 그만큼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을 그리며, 인간 본성의 측면들을 잘 드러냈다고 생각됩니다. 


커트 보니것은 2차 대전에 참전했다가 포로로 잡혀 드레스덴에 있었다고 합니다. 드레스덴. 

독일의 약 8개월에 걸친 런던 대공습때 약 4만여명이 사망했다고 하는데, 연합군의 드레스덴 폭격에서는 단 3일만에 2만5천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거대한 화염폭풍이 몰아쳐서 일단 산소부족으로 기절했다고들 하니, 얼마나 끔찍했을지. 그의 반전 의식은 그때 그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합니다. 문명의 산물과 그 미래에 대한 시니컬한 관점도 그렇구요.

25개의 단편에 대한 느낌을 간략하게 적어 보았습니다. 이걸 적으면서 어떤 것이 가장 좋았을까 순위를 매겨보려 했으나 포기했습니다. 25개중 대부분의 작품들이 묵직하게 뭔가를 느끼게 하고, 그러면서 씁쓸한 유머를 느끼게 하는 수작들입니다.


1. 내가 사는 곳: 읽으면서 케이프 코드란 곳이 어딘지 구글맵으로 들여다 보았습니다. 참 희안한 지형이더군요. 초승달 모양으로 바다로 돌출된 반도였습니다. 그 동네가 어떤 곳인지 가벼운 유머코드를 섞어서 묘사하고 있네요.

2. 해리슨 버저론: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사회를 그리는 (굳이 분류하자면) SF소설입니다. 과도한 평등주의가 가져올 페해에 대한 시니컬한 풍자였습니다. 결말은 쇼킹하네요...

3. 이번에는 나는 누구죠?: 주요 등장인물이 좀 과도하게 정형화된 느낌은 있지만, 이 또한 의도적인 설정인 것 같습니다. 남녀 주인공이 서로의 아픔과 단점을 보완하게 되는 과정이 참신하게 그려져 있네요. 희곡 작품들을 그렇게 활용하다니...이 단편의 제목으로 사용된 대사가 초반부와 종결부에서 그 의미가 전혀 다르게 나타나는 것도 졀묘했습니다.

4. 몽키 하우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역시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그린 소설입니다. 의학기술이 극도로 발달하고, 인구가 과도하게 증가한 미래의 한 모습을 그렸습니다.

5. 영원으로의 긴 산책: 두 남녀가 오랫만에 만나는 짧은 순간을 그린 단편입니다. 조금씩 변화해 가는 감정의 묘사가 압권입니다. 로맨틱 단편의 끝판왕이랄까요~

6. 포스터의 포트폴리오: 이 역시 인간성의 한 단면일까요? 어떤 부귀영화보다도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그 무언가가 더 중요하다는...

7. 유혹하는 아가씨: 1956년에 여성에게 이 정도의 발언권을 준 것은 시대를 앞서간 것이었을까요? 시대를 감안하고 보지 않으면 조금 구닥다리 같이 보이는 구석도 없지 않아 있네요.

8. 모두 왕의 말들: 소름끼치는 체크 게임이었습니다. 그 안에 일말의 진실이 담겨 있었기에 더욱 그랬었는지도 모르지요. 게임에 묘사된 아시아 본토는 베트남인 듯 합니다. 베트남은 야만적으로 그리고 소비에트 러시아는 신사적으로 그리는 것은 무언가 불편한 점은 있네요.

9. 톰 에디슨의 털복숭이 개: 발상이 신선하면서도 유머감각이 넘치는 소설입니다. 이 소설을 SF로 분류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커트 보니것에게도 이런 입담 강한 재담가로서의 면모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10. 새 사전: 이 단편은 소설이 아니라, 평론인 것 같습니다. 당시의 세상에 대해 여러가지 재미있는 얘기들을 들려주지만, 영어에 관심이 없다면 지루할 것 같습니다.

11. 옆집: 하나의 타운하우스에서 두 가정이 사는 것. 우리나라에서는 다가구 주택이 워낙 흔하고, 아파트 생활이 일상이지만, 미국 사람들에게 듀플렉스 등의 다가구 주택은 가난의 상징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50년대에는 그게 가난도 아니었겠지요. 그냥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았을 겁니다. 그러다 일어날 수 있는 일을 그린 듯합니다. 절묘하게 꼬여버린 소년의 처지가 막판에 웃음을 주네요.

12. 한결 위풍당당한 저택: 끝없는 허영, 그리고 환상. 거의 돈키호테를 연상시키는 정도 였습니다.

13. 하이애니포스트 이야기: 케네디 시절의 이야기네요. 민주당의 젊은 지도자 케네디에 대해서, 그에 반발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빙 둘러서 하고 있습니다

14. 난민: 전쟁 고아라고 불러야 할 어떤 소년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전쟁으로 단련되었을 강심장의 군인들의 여린 마음도... 울고... 저도 읽다가 울컥했습니다.

15. 반하우스 효과에 관한 보고서: 초능력을 이렇게도 사용할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작가의 반전의식이 얼마나 강렬한지 볼 수 있었습니다. 이 단편의 출간연도가 1950년이라는 것도 참... 의미심장하네요.

16. 유피오의 문제: 과학 기술이 마약이 될 때, 그리고 그것으로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자 하는 또다른 인간의 욕망을 그린 소설입니다.

17. 당신의 소중한 아내와 아들에게로 돌아가: 이 단편에서 최종 승자는 결국 몇 마디 대사도 나오지 않던 ‘그녀’ 인 것 같습니다. 어리석은 인생들을 품어 안는 강력한 멘탈에서 나오는 유머의 소유자인 그녀.

18. 공장의 사슴: 거대한 공장은 미국의 산업화를 상징하지만, 또 그만큼 비인간적인 조직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주인공이나 사슴이나 그 공장에서는 얼른 도망치는게 살 길이었겠지요.

19. 거짓말: 미국이 학벌에 대해서는 우리보다는 유연하긴 하지만, 특정 학교 출신이냐 아니냐는 뭐..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말이 여기서도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부모들이 초반에는 속물스럽고 어리석게 보여도 마지막에는 그래도 합리적이긴 하네요. 애를 잡지 않는 걸 봐서도...

20. 입을 준비가 되지 않은: 특이한 형태의 신인류의 얘기입니다. 이건 무슨 안드로이드도 아니고, 로봇도 아니고... 유체이탈한 양서인이라니... 

21. 아무도 다룰 수 없던 아이: 상처 입은 어린 소년을 다시 거둬들이는 얘기는 흔한 소재이긴 합니다. 다만 그 과정, 그 방식이 어떠하냐는 것일 텐데요. 이 단편에서 나타난 방식은 저로서는 생경합니다. 예상했던 바와 전혀 달랐습니다. 대략... “이제 헬름홀츠는 사람들과 그들의 보물들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문장과 그 이후 주인공의 액션에서 단서가 좀 있을 듯 합니다. ‘우리는 결코 다른 사람이 아니야. 너나 나나 우리는 허공을 딛고 있는 것이야. 그럴 수록 자신을 사랑하고...’ 이런 얘기가 아닌가 싶네요.

22. 유인 미사일: 미소의 냉전 체제가 강화되어 가던 무렵인 1958년에 나온 소설입니다. 우주인이 되어야 했던 소련의 어떤 젊은 과학자의 이야기, 미국의 어떤 젊은 비행사의 이야기를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차원에서 그리고 있습니다. 공산주의 같은 전체주의, 그리고 그와 지극히 닮은 국가우선주의는 ‘집단’의 이름으로 ‘개인’을 무시합니다. 하지만, ‘개인’이 존중받지 않는 ‘집단’은 모두를 위한 집단이 아니라 지배층의 이익을 위한 명분에 불과합니다. 커트 보니것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차원에서의 이야기들로 냉전의 한가운데에서 반전을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23. 에피칵: 인공지능이 인간의 많은 부분을 그대로 따라할 거라는 상상은 이전부터 많이 했었습니다. 20세기초의 공상과학 영화에도 그런 주제들이 있었던 것 같구요. <스페이스 오딧세이>에서의 HAL도 그 예중 하나지요. 여기 또 하나의 사례가 있었네요. 이 인공지능도 인간을 능가하는 시적 재능과 상대방을 배려하는 공감능력까지 갖추었네요. 

24. 아담: 네히트만 집안에 한 아기가 태어납니다.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부부에게 찾아온 한 생명. 자기만의 일에 바쁜 세상은 그 감격을 알아주지 않지만, 작가는 그 아기가 ‘아담’이라고 말합니다. 새로운 시작, 풍요에의 약속을 담지한 이름이라 생각됩니다.

25. 내일, 내일, 그리고 또 내일: 극도로 발달한 의학 기술과 그로 인한 인간의 수명 연장. 수명만 연장되는 것 뿐 아니라 늙는 것도 늦출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끝이 없는 인간의 욕심은 이런 세계에서는 어떻게 나타날까 상상해 보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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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개정판)
메리 앤 섀퍼.애니 배로스 지음, 신선해 옮김 / 이덴슬리벨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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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에 2차대전 발발 초기를 배경으로 한 Darkest Hours 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윈스턴 처칠을 그린 거죠. 덩케르크 직전까지의 상황입니다.
그 무렵 2차대전 당시의 영국에 대해서, 특히 초기의 영국에 대해서 여러 아티클들을 찾아서 읽었습니다. 하지만, 건지 섬과 저지 섬으로 구성된 채널 제도의 존재 자체는 전혀 몰랐었습니다.

이 책을 읽다가 보니, 2차대전 관련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생각나더군요., 몇 년 전에 무척이나 감명 깊게 읽었던 이언 맥큐언의 <속죄> 라던가. 그 무렵 보았던 영드 '닥터 후'에서 2차대전 중의 영국을 배경으로 했던 에피소드... 2년 쯤 전에 읽었던 2차대전 뒤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했던 <오르부아르> 등등

상황은 조금씩 달라도, 사람 사는 모습은 어디나 비슷합니다.

건지 섬이라는 아름다운 풍경 속의 아름다운 사람들...
그리고 그들 모두에게 다른 모습으로 닥쳐온 고난, 비극...

우연챦게 모이게된 북클럽을 통해 그들은 문학을 접하고,
그 문학에 대해 나누게 되면서 새로운 우정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들은 문학을 통해 무엇을 발견한 것일까요.

깊고 풍성한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을 통해 새롭게 갱신된 세상과 사람에 대한 인식,
그 인식 과정이 불러 일으키는 인간의 고귀한 본성, 
새롭게 발견한 그 고귀함을 통해 고취되는 자긍심. 
그 자긍심을 통해 세상을 향해 다시 일어서게 하는 용기.
그런 서로의 모습을 통해 다져지는 연대감. 

이런 것 아니었을까요.

서간체의 장점인지, 등장인물들이 무척이나 가깝게 느껴집니다. 
그렇게 가깝게 느껴지던, 그 좋은 사람들, 
그 어두운 시기에 더욱 빛나던 사람들에게 닥치는 비극들이 마음을 쥐어 짜네요.

근데, 이 작가는 특유의 유머로 계속 웃게 합니다.
그래서 더 가깝고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더 강인하고, 더 매력있게...

결말까지 이어지는 과정이 절묘하게 직조되어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에 대해 차차 알게 되고, 새로운 등장인물들이 나타나고,
새로운 소식들,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나는 그 방식, 그 순서 하나하나 
섬세하게 짜여져 있다는 느낌입니다. 
흡인력 있게 단숨에 읽게 만드는 놀라운 작품이네요.

이 작품에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편지의 '보이스'가 거의 비슷합니다.
아마 작가의 캐릭터가 그랬나 싶습니다.

하지만, 읽으면서 그게 거슬리기 보다는... 
이대로 좋으니 그냥 안 끝났으면 하는 바램이 더 큽니다. 
작가가 이미 돌아가셨다는 것으로 인해...

작가가 너무 일찍 돌아가셨네요. 

줄리엣이 쓴 칼럼이나, 전기나 이런 것들이 후속편으로 나올 수 도 있었을 텐데요. 진심으로 우리 모두의 큰 손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읽으면서 번역 때문에 걸리적 거린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원문과 비교를 해본 건 아니라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번역도 상당하다는 느낌입니다.


하이라이트 친 것 중 일부 입니다.

**************************************
제 책이 어쩌다 건지 섬까지 갔을까요? 아마도 책들은 저마다 일종의 은밀한 귀소본능이 있어서 자기한테 어울리는 독자를 찾아가는 모양이에요. 그게 사실이라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요.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내는 최선의 방법은 유머’라는 옛말이 역시 틀리지 않네요.

쏟아지는 비도 아랑곳하지 않고 흠뻑 젖은 채 앉아서 예전에 살던(지금은 남에게 팔린) 집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더군요.

제가 보기에 그는 말을 아낄수록 더 많은 아름다움을 창조해내는 것 같습니다. 제가 가장 찬탄하는 문장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밝은 날이 다했으니 이제 어둠을 맞이하리라.’ 바로 이겁니다.

‘지금껏 해온 것들이 그토록 사소한 일이란 말인가. 태양을 즐기고 봄의 빛을 느끼고 사랑을 하고 생각을 하고 일을 하고 진정한 우정을 쌓은 것이?’(19세기 영국 작가 매슈 아놀드의 두 번째 시집 《에트나 신의 엠페도클레스》에 수록된 시의 일부) 

사소하지 않습니다. 저는 엘리자베스가 어디에 있건 이 구절을 마음에 새기고 있길 바랍니다.

“쳐다볼 거야. 철창에 갇힌 동물은 우리가 아니라 그들이야. 우리와 함께 이 섬에 갇혀 있잖아. 우리가 그들과 함께 여기 갇힌 것처럼. 가자, 가서 구경해주자고.”

아들 이언이 이집트 알알라메인에서 죽었을 때(엘리의 아버지인 존과 함께 전사했지요) 조문객들이 찾아와 나를 위로한답시고 하는 말이 “삶은 계속되는 거예요”였어요. 엉터리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당연히 삶은 계속되지 않아요. 계속되는 건 죽음이죠. 이언은 이제 죽었고 내일도 내년에도 그 후로도 영원히 죽어 있을 테니까. 죽음에는 끝이 없어요. 하지만 어쩌면 슬픔에는 끝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엄청난 슬픔이 노아의 대홍수처럼 나의 세상을 휩쓸어버렸고, 여기서 벗어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리겠죠. 그런데 벌써 물 위로 솟은 작은 섬들이 있네요. 희망? 행복? 뭐 그런 것들로 부를 수 있겠죠. 당신이 의자 위로 올라서서 부서진 건물 더미를 애써 외면한 채 반짝이는 햇빛을 받는 모습을 기분 좋게 상상해본답니다.

구멍 장식이 촘촘히 난 아주 조그만 아기용 베개, 밭일을 하다가 도시를 향해 웃음을 짓는 엘리자베스의 사진 한 장, 희미하게 재스민 향이 나는 여성용 리넨 손수건, 남자 것인 도장 반지, 그리고 작은 릴케 시집이 한 권 있었는데 가죽 표지에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었어. ‘엘리자베스, 어둠을 빛으로 바꾸는 그대에게. 크리스티안.’ 책갈피에 여러 번 접힌 쪽지가 있었어. 킷이 고개를 끄덕이기에 나는 조심스럽게 쪽지를 펼쳐 읽었지. ‘아멜리아, 아기가 깨어나면 나를 대신해 뽀뽀해주세요. 6시까지 돌아올게요. 엘리자베스가. 추신, 우리 아가 발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지 않아요?’


제 책이 어쩌다 건지 섬까지 갔을까요? 아마도 책들은 저마다 일종의 은밀한 귀소본능이 있어서 자기한테 어울리는 독자를 찾아가는 모양이에요. 그게 사실이라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요.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내는 최선의 방법은 유머’라는 옛말이 역시 틀리지 않네요.

쏟아지는 비도 아랑곳하지 않고 흠뻑 젖은 채 앉아서 예전에 살던(지금은 남에게 팔린) 집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더군요.

제가 보기에 그는 말을 아낄수록 더 많은 아름다움을 창조해내는 것 같습니다. 제가 가장 찬탄하는 문장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밝은 날이 다했으니 이제 어둠을 맞이하리라.’ 바로 이겁니다.

‘지금껏 해온 것들이 그토록 사소한 일이란 말인가. 태양을 즐기고 봄의 빛을 느끼고 사랑을 하고 생각을 하고 일을 하고 진정한 우정을 쌓은 것이?’(19세기 영국 작가 매슈 아놀드의 두 번째 시집 《에트나 신의 엠페도클레스》에 수록된 시의 일부)

사소하지 않습니다. 저는 엘리자베스가 어디에 있건 이 구절을 마음에 새기고 있길 바랍니다.

"쳐다볼 거야. 철창에 갇힌 동물은 우리가 아니라 그들이야. 우리와 함께 이 섬에 갇혀 있잖아. 우리가 그들과 함께 여기 갇힌 것처럼. 가자, 가서 구경해주자고."

아들 이언이 이집트 알알라메인에서 죽었을 때(엘리의 아버지인 존과 함께 전사했지요) 조문객들이 찾아와 나를 위로한답시고 하는 말이 "삶은 계속되는 거예요"였어요. 엉터리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당연히 삶은 계속되지 않아요. 계속되는 건 죽음이죠. 이언은 이제 죽었고 내일도 내년에도 그 후로도 영원히 죽어 있을 테니까. 죽음에는 끝이 없어요. 하지만 어쩌면 슬픔에는 끝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엄청난 슬픔이 노아의 대홍수처럼 나의 세상을 휩쓸어버렸고, 여기서 벗어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리겠죠. 그런데 벌써 물 위로 솟은 작은 섬들이 있네요. 희망? 행복? 뭐 그런 것들로 부를 수 있겠죠. 당신이 의자 위로 올라서서 부서진 건물 더미를 애써 외면한 채 반짝이는 햇빛을 받는 모습을 기분 좋게 상상해본답니다.

구멍 장식이 촘촘히 난 아주 조그만 아기용 베개, 밭일을 하다가 도시를 향해 웃음을 짓는 엘리자베스의 사진 한 장, 희미하게 재스민 향이 나는 여성용 리넨 손수건, 남자 것인 도장 반지, 그리고 작은 릴케 시집이 한 권 있었는데 가죽 표지에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었어. ‘엘리자베스, 어둠을 빛으로 바꾸는 그대에게. 크리스티안.’ 책갈피에 여러 번 접힌 쪽지가 있었어. 킷이 고개를 끄덕이기에 나는 조심스럽게 쪽지를 펼쳐 읽었지. ‘아멜리아, 아기가 깨어나면 나를 대신해 뽀뽀해주세요. 6시까지 돌아올게요. 엘리자베스가. 추신, 우리 아가 발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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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시즌 모중석 스릴러 클럽 44
C. J. 박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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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시즌> 


조 피킷... 참으로 평범해서... 그래서 특이한 주인공이네요.

시리즈의 첫 권, 일종의 프리퀄로 봐야할 듯한 내용이 맞는 것 같습니다.


조 피킷이 어떤 사람인지, 그 가족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등등이 소개되고,

심각하지 않은 음모론으로 그를 부각시키는 역할인 듯 합니다.


음모론이 심각하지 않다는 거야, 그 간 맛을 봤던 다른 스릴러 소설 대비 그렇다는 거지,

한 개인의 입장에서는 정말 자신과 가족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거대 조직의 무자비한 횡포지요.


조 피킷,

그는 정말 평범합니다. 평범한 가장, 

생활비에 쪼달리지만, 본인이 어렸을 때 하고 싶었던 멋진 일을 쫓아서 하는 이상주의자 같은 면모로 나타납니다.


총도 제대로 못 쏘고,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타협을 시도하려고 하기까지 합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거든요.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아내와 딸들을 생각하자니 이상만 고집할 수는 없었던 거지요.


그가 가진 것은 이상을 쫓으려는 순수한 마음과 진실을 밝히려는 소박한 노력이었습니다.,

현명하고 강한 아내 메리베스의 변함없는 서포트도 그를 지키는 기둥이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미국의 메이저 문화코드를 반영하는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평범한 소시민, 

총도 제대로 못쏘는 것으로 마치 제대로 하는 일이 뭐 하나 있을까 싶은 자책감을 버리지 못하는 그런 소시민. 자신의 이상을 쫓아 살지만, 가족을 위해서라면 타협도 생각해 보는, 그런 평범함. 많은 미국의 중산층, 또는 중하류층의 공감을 살 만한 포지션입니다.


어쩌면 Underdog이라고 할 수도 있지요.


그의 선임자는 막강한 영향력으로 주변의 여러 사람을 좌지우지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동료는 타고난 친화력을 기반으로 사람을 잘 사귀면서 그의 선임자의 후계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두사람에 비해 조 피킷은 평범하고 소박합니다. 모자라 보입니다. 상대적으로 Underdog입니다.


그 Underdog이 자신의 막강한 선임자와 유능한 동료가 꾸민 음모를 보기 좋게 격퇴합니다.

그것도 너무 기상천외하지 않게.... 평범한 방식으로요..


미국은 태생적으로 Underdog이 강력한 기존 권력을 해체하는 것에 대해 박수를 보내는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의 미국 이상의 패권 국가였던 영국으로부터의 독립 이후, 미국민들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영국을, 유럽을 자신의 마음 속의 권좌에서 내려 버렸습니다.


권위에 대한 용기있는 도전 뿐 아니라 근거없는 경멸까지도 미국에서는 용인되는게 이러한 태생적 문화의 명암입니다.


리처드 호프스태터의 <미국의 반 이성주의>라는 60년대에 씌여진 책은 오늘날까지도 이러한 흐름을 정확하게 짚어 냅니다. 


최근에는 영화를 잘 안보지만, 이러한 정서를 드러내는 옛날 영화로서 떠오른 게 브루스 윌리스가 나왔던 <아마겟돈>입니다.


작은 소행성이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것이 발견되었고, 지구에서는 핵폭탄을 설치하여 소행성을 쪼개서 지구를 빗껴가게 하자는 계획을 세웁니다. 핵폭탄을 표면에서 폭발시켜봐야 큰 효과가 없다고 해서, 핵폭탄을 소행성 깊숙히 설치해야 한다고 나옵니다. 그래서 지구상에서 깊이 구멍을 뚫는 기술자들이 이 작전에 참여하게 됩니다. 말이 석유 시추 탐사기술자이지 영화에서는 불량배, 양아치 수준으로 묘사됩니다. 


그런데, NASA와 관련 지질학자와 물리학자의 전문성을 뛰어넘는 문제 해결 역량을 이 탐사 기술자들이 보여줍니다. 결국 지구를 구하는 것은 이들이지요.


필드에서 단련된, 학위도 없는, Underdog 느낌의 기술자들이 책상 머리에서 학문이나 익힌 권위자들의 코를 납작하게 한다는 식의 구조는 미국의 영화나 쟝르소설에서 수도 없이 반복됩니다. <아마겟돈>에서의 양상과는 다르게, 불량배 처럼 보이는 Underdog들이 더 순수하고, 매너 있는 상류층, 지식층이 더 부패하고 사악하다는 주제들이 여기저기 나옵니다.


그 중 하나가 <타이타닉> 이기도 하지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Make it Count 건배는 기가막히게 그런 장면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오래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조지 W. 부시가 알 고어 부통령에게 이기고, 재선에서 케리 민주당 상원 의원에게 이길 수 있었던 것이 이 Underdog코드이기도 했씁니다. 조지 W. 부시는 텍사스의 석유자본을 배경으로 하는 부자이긴 하지만, 그는 순박해 보이고, 적당히 단순해 보여서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줬습니다. 반면 알 고어는 지나치게 똑똑해 보여서  'snobbish' 하다는 느낌을 주었었습니다. 케리 상원의원도 알 고어 만큼은 아니지만, 그런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최근의 사례로는 힐러리 클린턴과 트럼프의 대결에서도 이 코드가 일부 나타났다고 여겨집니다. 힐러리의 패인이 그 한가지만은 아니지만, 힐러리는 지나치게 똑똑한 말들로 사람을 기만하려 한다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반면 트럼프는 끝까지 자신의 지지 기반의 정서를 대변하는 과격한 말을 쏟아냈지요. 그 지지기반은 백인 Underdog이라고 볼 수도 있지않을까 합니다. 


저는 이 <오픈 시즌>을 읽으면서 그런 문화코드가 여기에 나타나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고,

한국 사람들에게는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왜 이게 인기가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게 하는 이 작품이 어쩌면 미국인들에게는 우리가 받는 인상의 몇 배로 더 큰 임팩트를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 자체도 흥미롭게 읽었지만, 이런 저런 미국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읽었습니다.


와이오밍 주에 있는 빅 혼산이 배경이던데,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는 엘로 스톤 국립공원이 와이오밍 주에 있습니다. 옐로스톤 남쪽에 있는 Mt. Teton 이란 곳도 경치가 끝내 줍니다. 빅혼도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었네요.


조 피킷이 신혼여행을 갔다고 하는 잭슨 홀이란 동네는 Mt Teton 남쪽에 있습니다.

작은 국내선 공항이 있어서 옐로스톤을 가고자하는 여행객들이 많이 거쳐가는 곳이지요.

신혼 여행지가 같은 와이오밍 주 내의 다른 마을이라니, 그 평범하고 소박한 서민성은 신혼 여행지 선택에서도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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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천국 주식회사
사이먼 리치 지음, 이윤진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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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절대로 진지함과는 거리가 먼 소설입니다.

(God을 '하느님'이라 번역했어서 일단 '하느님'으로 통일합니다.)

하느님이 '천국 주식회사'의 CEO 인데, 아주 불성실하고 놀기만 하고, 엉뚱한 존재로 나옵니다.

주인공은 천국주식회사의 '기적부'라는 곳의 직원 두 명.
기적부라는 부서는 우연의 조합을 통해 인간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돕는 직책입니다.
너무나 많은 기적이 필요한 사례 앞에 이들의 업무는 전체 사례 중의 극히 일부분에 국한되지만,
이들은 기뻐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위안 삼아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간 사회의 한심함에 넌덜머리가 난 하느님은 결국 지구를 파괴하기로 결정합니다.
이에 이의를 제기한 '기적부'의 젊은 두 직원.

이들은 하느님과 딜을 합니다. 30일 안에 뭔가를 보여주겠다는 거죠.

더 이상은 스포로 넘어가기에 생략하겠습니다.

재미난 발상에 의한 설정, 배치된 캐릭터들이 유머러스 하고 웃깁니다.
미국 사회의 전형적인 답답한 인간상 몇몇들이 희화화되어서 나타나는 것을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분량이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은데, 워낙 쉬운 문체에 유머러스하기까지 하니, 금방 읽힙니다. 5시간 정도?
<백치>를 읽으며 과로 했던 뇌를 좀 연휴 기간 동안 쉬게 해주자는 취지로 시작했으나, 연휴 시작하기도 전에 다 읽고 말았네요.

유머 코드란 게 또 안 맞는 사람들에겐 안 맞는 것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짜증을 유발시키기도 하지만, 
이런 유머 코드가 맞을 분들에게는 진지함은 쉬게해주고, 그저 가볍게 웃고 싶은 목적이라면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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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 우리가 하지 않은 일
김종옥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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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 우리가 하지 않은 일 - 김종옥 지음


73년생의 이 작가는 2012년에서야 비로소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소위 '등단'이란 것을 했다고 한다. 1년 뒤 같은 작품으로 2013년 젊은 작가상 대상을 수상하여 이 단편집의 첫 출간에 이른 듯 하다. 이 바닥에선 어쩌면 늦깎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작가의 최근 2~3년간의 단편을 모은 이 소설집의 제목은 이 소설집에 포함된 또다른 단편의 제목이기도 하다.


12개의 단편을 하나하나 읽어가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무척 낯설다는 점이었다. (사실 '12월10'일이라는 단편집의 손더스라는 작가도 다른 작가들과 많이 달랐고, 처음 읽은 버지니아 울프도 '등대로'라는 작품 속에서 무척 달랐다. 그렇게 '다름'이 일반적으로 접하는 모습이기에 '다름'이 당연하게 보일 수 있지만, '다름'은 그래서 작가들에겐 더욱 어려운 과제가 되고, 그래서 소설이 가질 수 있는 '가치'의 하나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특히나 요새 같은 '표절'의 시대엔 더더욱. )


낯설음. 다른 말로 하자면 그동안 읽던 것들과 많이 달랐다고나 할까. 그러고 보니, 문학상 수상작을 읽어본 지가 꽤 된 것 같다.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는 어디일까. 수많은 소설들을 읽어왔지만, 한국의 현대 문학이라는 카테고리는 참으로 오랜만에 읽은 듯 하다. 그래서 '다름'이 더욱 강하게 다가왔는지도.  같은 한국 사회의 한국 사람을 보는 것이어서일까. 분명히 잘 아는 사회이고 사람들인데, 이 낯설음은 무얼까. 다른 시대, 다른 사회이기에 다를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잘못된 전제인지도 모른다.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허상이었을 수도 있다.


자본주의 한국에서 소설 문학의 '소비자'로서 살아 오면서, 대략 가지게 되는 느낌은 이 바닥도 포화 상태라는 안타까움이다. 해외의 기라성 같은 작가들의 최신작의 번역물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와중에 지난 시대의 걸출한 작품들도 세계명작이란 이름으로 갱신을 거듭한다. 쏟아지는 수많은 선택 앞에서 '소비자'로서의 나는 큰 고민 안하고 늘 안전한 선택을 하게 마련이다. 해외 베스트셀러 번역물 아니면, 세계 명작.


그런 와중에 우연히 접하게 된 이 한국의 현대 문학 작품. '신춘문예', '젊은 작가상', 심지어 '문학동네'라는 출판사 마저 오랫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작가의 문체, 생각을 풀어나가는 방식. 모든 것이 낯설다. 그 낯설음은 만만치 않은 저항감으로 다가온다. 편안하지 않고 불편하다. 그러다 문득 생각해본다. 편안하고 익숙한 읽기란 애시당초 얻을게 적은 읽기일 수 밖에 없지 않나. '12월 10일'이나 '등대로' 등도 만만치 않게 불편했다.


첫 단편인 '그녀는 거기에 있을 것이다.' 에서부터 이 단편은 참 다르게 다가온다. 특별한 사건 없이, 담담하게 일상을 그린다. 일상의 한 순간에 몰려오는 기억들. 다시 돌아와 마주한 현실. 특별하게 없다. 아쉬움도 크지 않다. 기억은 흐릿하고 현실은 남루하다.


이어지는 몇개의 단편들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작은 우연이 몰고오는 기억을 통해 과거를 반추한다. 그 과거는 뭔가 흐릿하다. 아쉬움이 드러날 법한 기억을 작가는 무심한 듯, 냉정한 듯 건조하게 서술한다. 여기서 드러나는 독자와의 거리. 소설 속의 주인공은 독자가 이해하기 힘든 '타자'로서의 거리를 계속 유지한다. '공감'의 순간, '동일화'의 순간은 찾아오지 않는다. 누구나 있을 법한 기억들을 참으로 낯설게 그려낸다.


많은 내용이 작가의 개인적인 체험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몇몇 단편은 서로 이어지기도 하는 듯 하고, 적어도 같은 세계를 공유하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이 가운데에도 다른 단편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작품들이 있다. '유령의 집', '거리의 마술사', '방학식', '크리스마스 포커' 등의 작품에서 작가는 또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독특한 설정을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나가는데, 묘한 필력으로 눈을 떼지 못하고 소설의 주인공에게 몰입하게 한다.


읽는 내내, 다 읽고 덮으면서도 참으로 새롭고 독특한 작품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맨 뒤의 문학 평론가 해설을 찬찬히 읽으면서 작가의 작품을 다시 돌아보기도 하면서, 그 새롭고 독특함이 더욱 무겁게 다가왔다. 그런 새로움 가운데 돌아보는 우리네 삶은 이전과는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되는 듯하다.


"기억이 결국 흐릿한 것이 과거에 '지금'을 제대로 붙잡아 내지 못했기 때문이라면, 그럼 나는 '오늘'은 어떻게 '지금'을 제대로 붙잡아낼 수 있을까."


문학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내가 이 작가의 평생에 걸친 관찰과 사유가 담긴 작품들을 며칠만에 읽고서 무슨 말을 궁시렁 거리는 것 부터가 작가에 대한 실례라는 생각이 들어서 조심스럽기도 하다. 이 작가가 오늘의 나와 같은 시대를 가까운 거리에서 살아온 동시대인이여서 더 특별하고 귀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2015년이라서 새롭고 독특하다는 것이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장점임을 실감한다. 표절 의혹의 소용돌이가 한국 문학 뿐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이슈가 되고 있다. 자본주의의 '효율'과 '수익'이라는 상대적이고 제한된 가치가 분야를 막론하고 침투해 들어가서 마치 '절대' 인 양 우상이 되고 있는 현실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어찌보면 쉬워 보이는 길을 가기 보다, 오랜 시간 동안 꿋꿋하게 자기만의 세계, 자신만의 시각과 스타일을 고수하며 쉽지 않은 길을 걸어온 작가에게 동시대인으로서 격려를 보내고 싶다. 다음 작품을 또한 기대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의 삶의 모습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담아내는 우리의 작가가 귀하다.


(2015.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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