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손가락의 아픔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60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홍현숙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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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토미와 터펜스가 에이다 고모님을 만나러 양로원에 가면서 시작된다. 그곳에서 우연히 마주친 할머니가 터펜스에게 "그 가엾은 애가 당신의 애였나요?" 라고 묻는데, 터펜스는 묘한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그 할머니가 고모에게 선물한 유화 - 조그만 아치형 다리가 놓여 있는 운하 옆 분홍색 집을 그린 - 도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얼마 후 고모님이 사망하고, 요양원에서 묘한 말을 한 랭카스터 라는 할머니도 행방이 묘연해 진 상황에서 터펜스는 그림 속 집이 3년쯤 전 여행하다 본 집이라는 데 생각이 미쳐 그곳을 찾아가 본다.

터펜스는 집과 관련해 이런 저런 조사를 해보니 여러가지 의심쩍은 사건들이 얽혀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 집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전면부에만 사람이 살고 있었다. 거기 살고 있는 엘리스 페리-에이모스 부부는 마을 사람들과 별다른 친교 없이 자기들끼리 음침하게 살아가는 듯 했다. 과거에 그 집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다소 꺼림칙했는데 당시 여자아이들이 행방불명된 사건과 어떤 관계가 있는 듯 했다.

또한, 그림을 그린 사람이 보스코원이라는 화가인데, 애초에 화가가 그린 그림에는 '릴리 워터스' 라는 이름이 쓰여진 나룻배가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점차 사건이 묘하게 돌아가는 가운데 양로원에서도 과거 사망한 할머니 세 명이 몰핀 과용 등 의심스럽게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된 터펜스는 행방불명된 랭카스터 할며니도 무언가 과거의 사건을 알고 있어서 사라진 것은 아닌지 의심을 하며 조사를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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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손가락의 아픔 By The Pricking of my Thumbs> 은 아가사 크리스티가 77세가 되던1968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그녀의 77번째 추리소설이다. 아울러, 토미-터펜스 부부가 활약하는 시리즈 중 네 번째 작품인데, 작가는 서문에서 독자들이 "토미와 터펜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 하는 궁금증을 편지로 보내와서 다시금 부부의 활약상을 책으로 엮었다고 밝히고 있다.

토미-터펜스 부부는 <비밀결사 The Secret Adversary, 1922>, <부부탐정 Partners in Crime, 1929>, <N 또는 M N or M?, 1941>, <엄지손가락의 아픔 By The Pricking of my Thumbs,1968>, <운명의 문 Postern of Fate, 1973>에 등장다. 그러니, 이번 작품은 전작인 <N 또는 M> 으로 부터 27년이 흐른 뒤에 부부가 등장한 셈이다.

소설을 시간 별로 다시 구성하면 과거 어린아이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이 랭카스터 할머니이다. 그녀는 젊었을 적 어린애를 유산시킨 뒤 정신이 이상해졌고, 어린아이를 보면 '죽여서 유산한 자신의 아이 친구를 만들어주겠다'는 강박에 시달리게 된다.

랭카스터의 남편 필립 스타크는 이러한 사실을 알고 아내가 살인을 멈추기 위해서는 어린아이가 없는 곳에서 지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여 요양원에 보내지만 그곳에서도 우유에 독을 타는 수법으로 사람들을 살해한다.

터펜스에게 랭카스터가 "그 가엾은 애가 당신의 애였나요?"라고 물은 것은 터펜스가 아이을 죽인 범인인 자신을 찾아 양로원에 왔다고 오인했기 때문이었다.

"내 엄지손가락이 쿡쿡 쑤시는 걸 보니 무슨 불길한 일이 닥쳐오려나 보다" - 맥베스

다소 음울한 인용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70% 이상의 지면을 변죽을 울리는 데만 할애하고 있어 긴장감도 떨어지고 메인 스토리 라인도 희미하다. 그리고 아가사 크리스티의 전매 특허라 할 만한 '사실은 이랬다' 수법도 남발되기 때문에 훌륭한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추천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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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과 십자가 버티고 시리즈
이언 랜킨 지음, 최필원 옮김 / 오픈하우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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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주인공 존 리버스는 최면술사인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동생 마이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도피하듯 SAS에 입대한 후, 우수 대원으로 선발되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는다.

하지만 SAS가 도입한 새로운 프로그램에 차출된 존 리버스는 훈련 과정에서 트라우마를 입게 되고 이 때문에 군에서 제대하게 된다.

SAS는 존 리서브가 형사가 될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SAS에서 겪었던 일체의 경험은 철저히 기억 속에 봉인한 채 살아가도록 강요한다.

존 리버스는 제대 후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 기르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려 했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삶을 살아가는 아내와 잘 해나갈 수 없었고 결국 이혼한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애든버러에서 연쇄유괴사건이 일어난다. 범인은 소녀들을 납치해 살해했는데 일정한 패턴도 없었고 성적인 폭행의 흔적도 없었다. 그리고 그 즈음부터 존 리버스에게 '매듭 지어진 노끈'과 짤막한 문장이 적힌 편지가 배달되기 시작한다.

편지는 '단서는 사방에 널려 있다'거나, '시간의 틈을 읽으라'거나 하는 따위의 암시적인 문장만 적혀 있었고 존 리버스는 이 편지들이 단순한 장난 편지라고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영문학 교수가 존 리버스에게 범인이 살해한 아이들의 머릿글자가 어쩌면 '약성구' 장난일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한다.

Sandra Adams, Mary Andrews, Nicola Turner, Helen Aboot의 앞 글자를 따면 SAMANTHA가 되는 데 어쩌면 다음 희생자일지도 모른다면서.

그제서야 존 리버스는 장난 편지의 발신인이 연쇄살인범이고, 그 범인이 최종적으로 노리는 희생양은 자신의 딸 사만다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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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리버스는 SAS 복무 당시 '전투원이 적에게 포로로 사로잡힌 상황에서 고문을 이기고 비밀을 유지할수 있는' 군인을 양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에 투입된다. 존은 고든이라는 동료와 함께 무려 6개월 이상을 감금당하게 된다. 처음에 존과 고든은 자신들이 훈련 받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구금 기간이 길어지고 영어를 일체 사용하지 않는 적들이 고문하기 시작하자 차츰 실제 상황이라고 인식하게 된다.

둘은 살아남기 위해 삼목두기(Noughts And Crosses)를 하거나 과거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둘의 정신은 점차 망가지기 시작하고 끝내 고든이 존 리버스에게 동성애를 느끼며 의지하는 상황까지 이른다.

SAS는 실험이 실패했음을 인정하지 않고 존 리버스는 프로그램을 이수한 우수대원으로, 고든은 동성애에 빠지는 나약한 정신을 가진 대원으로 분류해 버린다. 고든은 이 모든 상황을 책임지고 자신의 비난을 받아야 할 사람은 바로 존 리버스라고 생각하고 복수를 다짐한다.

평범한 사람의 일상이 '잊고 싶은 과거의 기억'에 의해 지속적으로 지배당하는 상황을 매우 끔찍하고 공포스럽게 추적한 <매듭과 십자가>는 제임스 엘로이에 의해 '타탄 느와르의 제왕'이라는 칭송을 얻게 되는 '존 리버스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첫 작품이다.

타인의 정신을 지배하는 '최면술사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군대로 도피하지만, 그곳에서 또 다시 '정신을 붕괴시키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는 존 리버스의 아이러니한 상황을 통해 작가는 우리 인생 자체가 '우리의 정신을 붕괴시키려는 작용에 대항하는 일련의 과정' 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드라마 <홈랜드> 시즌 1을 보면 이라크 전쟁 중 8년간의 포로생활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와 영웅이 된 니콜라스 브로디 하사가 사실은 고문으로 인해 정신이 붕괴되고 끝내 이슬람으로 개종한 뒤 미국의 심장부에 총구를 들이댄다는 설정인데 <매듭과 십자가>의 존 리버스 사건을 오마주한 것이 아닌가 싶다.

태국 방콕에서 아유타야로 가는 3등 기찻간에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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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갇힌 외딴 산장에서 히가시노 게이고 산장 3부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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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쿠라 고원에 소재한 펜션 '사계'에 연극 오디션 합격자 일곱 명이 모인다.

그들은 연출가 도고 신페이가 편지로 지시한 바에 따라 모인 것인데, 편지에는 '모임 사실을 외부인은 물론, 다른 단원들이나 사무원에도 일절 발설하지 말 것', '내용에 관한 질문은 일절 받지 않음' 따위의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이 펜션에서 할 일은 간단했다. 펜션이 기록적인 폭설로 외부와 단절되었다고 가정하고 앞으로 일어나는 일에 잘 대처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행동은 작품의 일부로서 대본과 연출에 반영될 것이고, 만약 전화를 사용하거나 외부 사람과 접촉하면 오디션은 즉시 취소될 것이라 했는데, 단원들은 도고 신페이가 괴팍한 성격이었으므로 일종의 엽기적인 실험이라고 여겼다.

펜션 책꽂이에는 <그리고 아무도 없게 되었다>, <Y의 비극>, <그린 살인사건> 등 등장인물이 한 사람씩 죽어나가는 고전 미스터리가 꽂혀 있었기에 참여자들은 살인사건이 일어날 것이고, 누군가는 탐정, 누군가는 범인의 역할을 맡게 될지도 모른다고 막연히 추측했다.

그런데 예상대로 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하는데 처음엔 연극이라고 여겼던 사건들이 점차 실제처럼 진행되자 일동은 혼란에 빠지고 만다.

가사하라 아쓰코 - 모범생 타입, 연출가 도고 신페이와 내연관계라는 소문

모토무라 유리에 - 연기력 보다는 미모 덕을 보는 타입, 재력가의 딸

아마미야 교스케 - 모범생 타입, 모토무라 유리에와 약혼했다는 소문

혼다 유이치 - 연극에 대한 열정이 뛰어나고 우직한 성격

다도코로 요시오 - 경박한 성격으로 모토무라 유리에에게 집적댐

나카니시 다카코 - 전형적인 백치미 스타일이지만 때로 핵심을 짚어내는 발언

구가 가즈유키 - 나머지 여섯 명과 달리 수호 극단 사람이 아님. 냉철한 성격.

처음에 가사하라 아쓰코가 살해당했고, 모토무라 유리에가 뒤를 이었다.

두 명이 사망한 뒤 또 한 명의 연극단원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아사쿠라 마사미라는 연기력 좋은 단원이었다. 그녀는 줄리엣을 연기했는데 빼어난 연기에도 불구하고 모토무라 유리에의 미모에 밀려 오디션에서 탈락했다. 그 직후 그녀는 스키를 타고 활강하다가 다쳐 하반신 마비가 되었는데 사실은 자살 시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과연 그녀와 이번 사건이 연관이 있는 것일까?

마지막으로 아마미야 교스케가 살해당한 뒤 구가 가즈유키는 사건의 비밀이 알아냈다며 일동을 레크레이션실로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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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쿠라 마사미는 오디션에서 탈락한 뒤 실의에 빠져 연극을 그만 두기로 하고 고향으로 내려간다. 가사하라 아쓰코, 모토무라 유리에, 아마미야 교스케가 그녀의 집으로 와 위로하지만 아사쿠라 마사미는 냉담하게 반응한다. 아쓰코는 도고 신페이와의 관계 덕에, 모투무라 유리에는 재력과 미모 덕에 오디션에 합격했다고 생각했기에 그들의 위로가 진심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게다가 우연히 엿들은 그들의 대화도 아사쿠라 마사미의 의구심을 뒷받침 하는 내용이었다.

화가 난 아사쿠라 마사미는 그들의 차 타이어에 구멍을 내 골탕을 먹이려 한다. 그런데 그들이 떠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쓰코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걸려온다. 차가 굴러 유리에와 교스케가 사망했다는 것이었다.

아쓰코는 후회하며 자살을 시도하고, 그 결과 하반신 불수가 되고 만다.

하지만 뒤늦게 모든 것이 아쓰코의 장난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아사쿠라 마사미는 극심한 복수심에 사로잡히고, 그녀를 남몰래 흠모하던 혼다 유이치에게 세 명을 죽여달라고 부탁한다.

혼다 유이치는 살해 대상인 셋을 죽이는 장면을 아사쿠라 마사미에게 보여주면 그녀의 복수심도 누그러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하여 세 명에게 연극을 제안하고 무대를 펜션 '사계'로 설정한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걸작부터 망작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한데 데뷔 이후 점점 그 수준이 하락세인 것 같다. 초기 학원물과 가가 시리즈, 탐정 갈릴레오 등은 꽤 괜찮은 작품이 많은데 그 이후 과학을 가미한 작품들은 대부분 실망스럽다. 이번 작품도 평균 수준 이하이다.

미스터리 작가가 가장 공을 들여야 하는 부분은 수수께끼 풀이가 아니라 범행 동기이다. 바로 이 범행 동기가 독자에게 공감을 얻었을 때 독자는 작품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동기가 억지스럽다. 그러다 보니 수수께끼 풀이도 조악하고 작위적이다.

'눈 덮인 산중의 펜션에 모인 젊은이들' 이라는 설정만으로도 미스터리 독자라면 두근두근할 법 한데, 그 설정 자체부터 가짜였으니 애초에 작품은 망작으로 방향을 잡고 출발했는지도 모르겠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258825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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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신도들 버티고 시리즈
오스틴 라이트 지음, 김미정 옮김 / 오픈하우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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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사 교수 해리 필드는 은퇴 후 문화센터에서 사이비 과학에 대해 강연하고 틈틈이 집필작업을 하며 소일하고 있다. 어느 날 손녀 헤이즐의 친부 올리버 퀸이 찾아와 '딸과 잠깐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부탁한다. 해리는 찜찜한 마음이 들었지만 친부의 부탁을 거절할 수도 없어 허락한다.

하지만 올리버 퀸은 그 길로 헤이즐을 데리고 밀러 농장으로 향한다. 밀러는 자신을 재림한 신이라 했고, 올리버는 그 말을 믿었다. 그는 어린 딸 헤이즐을 공동농장에 데려가면 밀러도 좋아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동행한 닉 포스터는 올리버가 시키는 일이면 뭐든지 하는, 다소 지능이 떨어지는 청년이었다.

해리는 뒤늦게 손녀가 납치 당했다는 것을 깨닫고 딸 주디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경찰과 FBI에게 신고했지만 그들은 적극적인 대응을 해주지 않았기에 해리를 멘토로 생각하고 주디에게도 마음이 있는 데이비드 레오가 영웅노릇 할 기회라 생각하여 직접 밀러 농장에 찾아간다.

올리버 퀸은 데이비드 레오가 찾아오자 당황하면서도 그에 대한 증오심을 해소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는 흑인인 데이비드가 딸의 의부가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기에 닉을 시켜 원거리에서 저격하기로 한다. 폭포수를 지날 때 저격에 성공하면 데이비드의 시신이 추락할 것이고, 그러면 총상에 의한 것인지 추락과정에서 생긴 것인지 모를 상처가 만들어질 것이었다.

한편, 밀러 농장의 실무 책임자 격인 제이크 루머는 밀러가 어린 딸을 납치해 농장으로 데려온 일을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납치와 관련해 연방경찰이 개입하면 골치아픈 일이 생기리라 우려했기 때문이다.

밀러는 올리버 퀸이 데이비드 레오를 저격하려는 사실을 알아채고 닉을 속여 총을 쏘지 못하게 단도리한 후 자신이 직접 올리버를 저격해버린다.

밀러 농장은 어린 헤이즐을 뒤늦게 찾아온 해리와 주디에게 돌려준다.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것은 닉의 반응이었다. 닉은 자신의 스승이 사망한 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누구든 올리버 퀸의 사망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피를 원했다. 루머는 우둔한 닉을 속여 올리버 퀸을 죽인 것이 데이비드 레오라고 믿게 만드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데이비드 레오를 죽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재판이라는 명목으로 데이비드 레오를 외딴 섬으로 납치한 뒤 영원히 섬에 가두어 둔다는 식으로 닉을 설득하고, 실행한다.

데이비드 레오는 섬에 갇혔다가 간신히 빠져나오는 데 성공한다. 그는 자신이 왜 이토록 위험한 일에 뛰어들었었는지 다시 생각해본다. 그는 아무런 성공보수도 받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물론 주디는 그에게 섹스를 허락할 것처럼 얘기하긴 했다. 하지만 실제 잠자리를 가진 것은 아니다. 그는 점차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만난 여성들 중 한 명과 잠자리를 갖게되고, 되돌아 와서도 주디와 소원하게 지내다가 옛 연인에게 돌아가버린다.

그즈음 닉은 루머에게서 버림 받고 스승도 없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복수에 골몰하고 있었다. 문제는 누구에게 왜 복수해야 하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는 점이었다. 그는 해리 교수를 찾아가 그를 살해하려 한다. 하지만 해리에게 설득당해 그를 죽이는 것을 포기한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어쩌면 죽어야 될 사람은 루머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닉은 해리에게 반복해서 루머를 죽이겠다고 말을 하고, 해리는 오지랖을 발휘해 닉을 설득하려 한다. 끝내 밀러 농장으로 가겠다는 닉을 가면서 설득하기로 한 해리는 그러나 밤 사이 사라진 닉이 루머 뿐만 아니라 밀러까지 살해했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도망쳐 나온 여성은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점성술에 경도된 예전 애인 레나였다.

사건이 수습되고 일상으로 돌아온 해리는 다시 대학원생들을 데리고 과학적 글쓰기 세미나를 개최한다. 거기에 모인 사람은 12명이었고, 다들 명석한 사람들이었다. 12명의 제자는 해리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다들 헌신과 믿음을 맹세하는 표정으로 해리의 정신세계로 떠나는 난해한 여행에 동참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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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다소 엽기적인 납치 사건으로 시작된다. 독자는 손녀의 납치라는 이 사건이 어떤 식으로 해결될 지 궁금해하며 줄거리를 따라가게 된다. 그런데 의외로 손녀 납치 문제는 올리버 퀸의 사망과 함께 싱겁게 끝나 버린다. 그러면서 새로운 의문이 제기된다. 과연 광신자들은 누구인가?

처음에 떠오르는 광신자는 당연히 올리버 퀸이다. 그는 밀러를 재림한 신이라고 생각했으며, 딸을 납치해다 공동체에 바친다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실행에 옮긴 자다.

그런데 닉은 어떠한가? 그는 모자란 지능을 가진 청년으로 올리버 퀸이 하는 말은 무엇이든 믿고, 따라서 사람을 죽이라는 명령도 여과 없이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닉도 광신자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데이비드 레오는 또 어떤가? 데이비드는 해리를 멘토로 생각하고 주디라는 백인 여성과 섹스하기 위해 무모한 모험에 뛰어들어 영웅노릇을 하고 있다. 그 역시 일종의 광신적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밀러가 자신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와, 해리가 제자들을 대하는 태도에 극적인 차이점이 있을까?

해리는 자신이 죽음에 대해 안다고 생각하고, 신이 없다는 것도 이해했으며, 타인을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죽음과 적극적으로 화해하지도, 밀러의 사기를 입증해 옛 애인을 구원하지도, 닉의 살인 행위도, 그 어느것도 막아내지 못한다. 책 말미에 해리가 12명의 제자를 모아놓고 세미나를 하는 장면은 예수와 12명의 제자를 연상시킨다.

"예전에는 저 위 왕좌에 오른 신이 있다고 했다. 만약 저 위에 신이 없다면, 내가 왕좌에 올랐다고 주장해도 누가 막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광신적인 행동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인물은 밀러였는지도 모른다. 그는 신이 없으므로 신을 사칭해도 아무런 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므로 그의 행동이야 말로 선악을 떠나 가장 이성적인 행동이었는지도 모른다.

카노사의 굴욕을 떠올려 보라. 교황이 스스로 신의 대리인임을 내세워 왕을 파문하면, 신으로 부터 버림 받은 왕은 백성들에게 공격받게 된다. 누가 교황에게 파문의 권한을 주었을까? 그 권한이 권능을 갖을 수 있었던 근거는 무엇일까? 가장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무신론자에게 광신도들이 권한과 권능을 부여하면 이와 같은 멋진 연극이 상연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재림 예수를 자처하는 수많은 자칭 신과, 과학을 신봉하며 절대 진리를 설파하는 지식인들의 행동 양태는 종국에 구별하기 어려운 양태를 띠게 되는 것이다.

교회 목사들이 진정 신을 믿고 두려워한다면 저렇게 높은 첨탑을 세우고, 헌금을 거둬들이고, 자식을 그 돈으로 유학보내고, 끝내 편법으로 세습까지 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들은 신이 없다는 것을 백퍼센트 확신하기에 그런 짓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257019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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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에서 온 편지 범우 사르비아 총서 646
펄 벅 지음, 김성렬 옮김 / 범우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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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소설은 1950년 9월 25일, 버몬트의 산악 지방 한 마을에 사는 리즈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그녀는 북경에 있는 남편으로부터 올 편지를 기다린다.

리즈는 레드클리프 대학교 4학년이던 때에 남편 제럴드 맥레오드를 처음 만났다. 첫눈에 그에게 반한 그녀는 적극적인 태도로 구애했지만, 제럴드는 자신이 중국인 혼혈이라는 이유로 부담스러워했다. 리즈의 어머니도 제럴드를 편견 어린 시선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그 모든 시련을 극복하고 리즈는 제럴드와 결혼했고, 북경으로 가서 행복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에 공산주의 물결이 밀려 들었다. 미국인인 제럴드와 리즈는 공산당원들에게 백안시 되었다. 상황이 점차 안 좋아지자 제럴드는 리즈와 아들 레니를 미국으로 보내고, 자신은 대학 총장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학생들과 남는 쪽을 선택했다. 상황이 호전되면 다시 함께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별은 세계정세가 냉전으로 치달으면서 항구적인 것으로 변해간다. 맥레오드의 편지는 몇 달에 한 번 띄엄띄엄 왔고, 그나마도 검열되어 내용이 삭제되어 있었다.

고통의 시간동안 리즈의 아들 레니가 성장하여 연애를 하게 된다. 하지만 레니 역시 1/4은 중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이유로 첫사랑에서 실패를 경험한다. 한편, 리즈는 남편과의 추억을 조금이나마 떠올리기 위해 시아버지 맥레오드 노인을 집으로 모시고 와 극진히 보살피지만 그마저 치매에 걸리고 만다.

아들이 집을 떠나고, 시아버지가 치매에 걸려 리즈의 외로움이 한층 더해갈 무렵 북경에서 매란이라는 여자로부터 편지가 온다. 그녀는 남편 제럴드가 공산당의 의심스런 눈초리를 피하기 위해 현지 여자와 결혼하는 것이 불가피하게 되었다며 허락을 요구했다. 리즈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여자와 남편이 결혼하는 것에 대해 동의해 줄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흘러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떠나갔던 아들이 진정한 사랑을 찾아 결혼을 하게 되었고, 리즈에게도 구애하는 남자들이 생겨났다. 시아버지는 치매에 뇌졸중이 겹쳐 끝내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북경으로부터 온 마지막 편지에 제럴드가 북경을 탈출하려다가 발각되어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남편의 죽음으로 인해 리즈는 슬펐고, 자신을 찾아오기 위해 탈출을 감행했다는 사실로 인해 안타까움이 뒤섞인 기쁨도 느꼈다.

그리고 시아버지가 중국인 여인과 결혼하고, 그 여인을 진실로 사랑하지 않아 그녀가 혁명가가 되고, 그 아들과 사랑에 빠진 자신이 또 혼혈인 아들을 낳은 것, 그리고 지금 그 아들이 죽어버린 일들에 대해 리즈는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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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렸을 때 삼성출판사 판으로 <대지>를 읽었다. 세계명작이니, 노벨상이니 하는 타이틀을 단 책은 당연히 어렵고 지루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인생의 드라마에 푹 빠져 밤을 세운 책은 그 뒤로 딱 한 권이 더 있는데 미우라 아야꼬의 <빙점>이다.

<북경에서 온 편지>는 작가의 개인적 체험과 세계정세를 적당히 직조해 만든 자전적이고 고백적인 글인데 딱히 드라마로서 성공적이지도, 관점에 공감도 가지 않는다.

펄 벅은 다분히 오리엔탈리즘에 경도된 시각을 곳곳에서 드러내고, 천품에 따른 인간의 품격 차이를 강조하는 등 요즈음 주장했다간 큰일 날 소리들을 해댄다.

리즈는 레니의 첫사랑인 알레그라에 대해 그녀는 '별로 바라는 것도 없는 평범한 남자, 책을 읽지 않고 경음악이나 들으며 서부 활극에 열광하는 남자나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여성'이며, '그 사람들의 마음은 컵 하나 정도의 크기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이와 반대로 자신과 남편, 아들은 하버드에 다녔거나 진학할 예정이고, 책을 읽는 사람들로 속물들과 다른 계급에 속해 있다고 이해한다.

중국 현대사에 대해서도 꽤나 편향된 시각을 갖고 있다.

이를테면 리즈는 제럴드의 어머니가 혁명가가 된 이유를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해 방황하다가 그렇게 되었다'고 평가하는가 하면, 그녀의 오빠 한유렌이 친일행위를 한 것을 두고 '...반역자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그 분은 자신의 신념을 최선을 다하여 행동으로 옮긴 것으로 믿고 계셨단다. 아마 그분이 그러지 않았더라면 북경도 쑥대밭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야...' 라는 해괴한 논리를 늘어 놓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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