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 외 문학의 세계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지음, 최병근 옮김 / 책세상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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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향 >

제대 명령을 받은 공훈부대 대위 알렉세이 알렉세예비치 이바노프가 4년 만에 귀향하게 된다. 기차는 제 때 오지 않았고, 그 역시 귀향을 서두르지 않는 듯 했다. 아내와 두 자식을 보고 싶은 마음이 컸음에도 그는 마샤라는 여자에게 집적대며 뭉그적거린다.

마침내 집으로 돌아가 보니 무언가 달라져 있다. 아내는 셰몬 예브세예비치라는 사내에게 잠시나마 위안을 얻었던 듯 하고, 아직 어린 큰아들은 너무 어른처럼 굴었다. 아직 어린 다섯 살 나스차 만이 어린애다운 귀염성을 간직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아내에게 셰몬이라는 사내와의 관계를 다그치며 윽박지르다 집을 나가 기차를 탄다. 마샤에게 갈 작정이었을까. 하지만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어린 아들과 딸이 그가 탄 기차를 좇아 뛰어오고, 자꾸만 넘어지는 모습을 본 그는 기차에서 뛰어 내린다. (1946년)

< 프로 >

프로샤의 남편 페지카는 집을 떠나 멀리 일을 하러 떠났다. 프로샤는 남편이 없는 빈 자리가 너무나 쓸쓸해서 공부도 잘 할 수 없었고,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녀는 우편배달부 일을 얻어서 마음을 달래려 했지만, 엉뚱하게도 남편에게 자신이 위독하다는 거짓 전보를 보낸다. 남편은 곧 돌아왔고 며칠간 프로샤와 지낸다.

어느 날 일어나보니 남편은 다시 극동으로 일을 하러 떠나고 없었다. 프로샤는 이웃에 사는 하모니카 부는 꼬마 손님을 집으로 청한다. (1936년)

< 포투단 강 >

적군 병사 니키타 피르소프는 제대 후 이웃에 살던 류바와 결혼한다. 류바의 어머니는 시립학교 교사였고, 그녀의 집은 품격있는 가구들로 채워져 있었다. 예전에 니키타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청혼하고자 했으나 주눅이 들어 그러지 못했다.

지금은 그녀의 집이 몰락해 끼니를 걱정하는 처지가 되었고, 품성이 착한 니키타가 류바를 돌봐주자 류바는 니키타에게 시집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니키타는 류바를 육체적으로 사랑하지 않았고, 끊임없이 불길한 생각을 해댔다. 급기야 포투단 강에 몸을 던져 자살하려는 망상에 시달리다가 집을 나가 노숙자 생활을 하게 된다.

꽤 오랫동안 노숙자 생활을 하던 니키타가 우연히 아버지를 만나고, 집으로 다시 돌아온다. 니키타는 아내 류바에게 이제 "행복해지는 데 익숙해졌어"라며 안심시킨다. (1937년)

< 안갯빛 청춘 >

열네 살 올가의 부모는 장티푸스로 사망했다. 의지할 곳 없는 올가는 이모를 찾아갔지만 그녀는 냉담했다.

어찌하다 적군 병사들의 도움으로 철도 요원 교육 과정에 입학하고, 기숙사에서 살 수 있게 된 올가는 열심히 공부해서 기관사가 된다.

화차가 떨어져 나간 열차를 통제하려다 사고가 난 올가가 깨어나서 보고 싶었던 것은 유모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알게 된 귀여운 아기 유슈카였다. (1938년)

< 기관사 말체프 >

알렉산드르 바실리예비치 말체프는 뛰어난 기관사였으나 번개를 맞아 일시적으로 실명하게 된다. 하지만 곧 시력을 회복해 무사히 운행에 성공했으나 법원은 과격하게 운전한 죄를 물었다. "나"는 그가 번개에 맞아서 시력을 일시 잃었던 탓이라고 증언했으나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얼마 후 말체프는 실제 실험을 통해 무죄를 입증하지만 이번에는 시력을 영구히 잃어버리고 만다.

"나"는 말체프가 기차를 탈 때야 말로 예전의 활기를 되찾는다는 사실을 알고 가끔 그를 기차에 태워 운전을 보조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러던 어느 날, 말체프는 기차와 온전히 하나가 되어 다시금 시력을 회복한 것과 같은 환희를 느낀다. (194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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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토노프 소설에는 불만족스러운 현실과 막연한 미래 사이에서 고민하는 인간들의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현실을 개조하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도망치거나(귀향), 병리적 상태로 자신을 몰아간다.(포투단 강, 프로)

하지만 작가는 그들을 다시 현실로 복귀시키는 데 그 이후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게 될 지는 모르지만 <안갯빛 청춘>의 유슈카나 <프로> 의 하모니카 부는 꼬마 손님, 즉 다음 세대에는 달라질 거라고 낙관하는 듯 보인다.

1917년 혁명과 연이은 내전, 스탈린의 독재와 숙청을 겪은 세대의 러시아 작가들이 흔히 그렇듯 플라토노프 역시 비평계와 정치권력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고,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돌아온 아들을 간호하다 폐병에 감염되어 1951년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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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더벤드에서 느린 왈츠를
로버트 제임스 월러 / 시공사 / 199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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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틸먼은 주유소를 꾸려가는 아버지 밑에서 터프하게 성장했다. 고등학교 때는 농구선수로 활약했고, 대학도 장학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무릎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계속할 수 없게 되자 경제학으로 방향을 돌려 1970년에 교수 자격증을 따고, 1978년에는 정교수가 된다.

어느 날, 마이클 틸먼은 새로 부임한 교수 지미의 아내 젤리 브래든을 우연히 모임에서 만나게 된다. 둘은 처음 본 순간 서로에게 끌린다.

젤리 브래든은 마이클 틸먼이 '세상에 섞여 살기에는 뭔가 잘못 디자인된 것 같은 사람' , '두주불사에 19세기 뱃사람을 1980년대 세상에 조물주가 잘못 옮겨 놓은 듯한 사람' 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그녀는 그런 남자에게 매력을 느꼈다.

둘의 끌림이 마침내 고백으로 이어지지만 남편과 가정에 대한 의무감으로 젤리는 한 발 빼고, 둘은 그렇게 정리되는 듯 했다. 하지만 대학측에서 오리 연못을 폐쇄하고 새로운 건물을 짓기로 결정하자 마이클 틸먼이 이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도했고, 젤리가 오리 옮기는 것을 도와주게 되어 둘은 다시 만나게 된다. 젤리는 그날 틸먼의 아파트로 간다.

하지만 젤리가 지미를 떠나 마이클에게로 오기만 하면 되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는 것이 곧 드러난다. 젤리는 무언가 사연이 있는 것으로 여겨졌던 나라 인도로 갑자기 떠나버리고, 지미도 그녀가 무엇 때문에 떠난 지 알지 못한다.

마이클은 즉시 본능에 따라 그녀를 찾기 위해 인도로 떠나고 그곳에서 벨라유둠이라는 낯선 이름으로 호텔에 투숙한 젤리를 찾게 된다. 그리고 그녀 옆에는 자야라는 이름의 한 소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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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월러의 본업이 경제학과 교수였는데, 작품의 주인공 마이클이 그렇다. 어쩌면 작가의 내밀한 욕망을 한껏 반영한 인물일지도 모르겠다.

시종일관 <채털리 부인의 연인> 플롯을 차용하여 진행되던 소설은 약간의 변주를 가하는데, 이로써 소설은 '야성을 가진 마이클 틸먼 교수 對 거세된 현대의 지미 교수' 가 아니라 '오토바이맨 對 혁명가 디렌 벨라유둠'의 게임이었음이 밝혀진다. 누가 승자였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작가는 젤리가 프랑스로 떠나 한동안 방황하고 심지어 프랑스 남자와 침대에 갈 뻔한 짧은 에피소드를 삽입함으로서 대답을 대신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생각해보면 작가가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도 나흘간의 짧은 만남을 - 어쩌면 인생 전체를 놓고 본다면 순간에 불과한 시간 - 발전시키지 않은 이유도 사랑이란 그 충만한 순간을 벗어나면 결국 변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사랑의 감정이 충일한 나흘간의 순간을 곧 완성이라고 보았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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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 실레 재원 아트북 8
박덕흠 지음, 박서보.오광수 감수 / 재원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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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6월 12일, 오스트리아-헝가리를 지배하던 합스부르크 제국철도의 고급 관료였던 아돌프 실레와 어머니 마리 실레 사이에서 두 명의 누이인 멜라니와 엘피라 실레를 두고, 빈에서 40킬로 떨어진 도나우 강변의 작은 도시 툴른(Tulln)에서 "성적(性的) 열정에 사로잡힌 정신병자"로 혹은 "매우 비극적이며 신경증적인 화가"로 일생을 살았다고 혹평을 받기도 한 에곤 실레가 태어났다.

에곤 실레의 그림을 처음으로 찬찬히 살펴보게 된 것은 작년 여름이었다. 어머니 집에 갔다가 작은형 내외와 우연히 담양 메타프로방스 인근 카페에 갔는데, 주인이 에곤 실레를 애호하는 모양이었다. 에곤 실레의 자화상을 비롯한 다양한 작품의 복사본을 실내 곳곳에 걸어 두었는데 묘하게 눈이 갔다.

한동안 그림만 찾아 보다가 그의 생애가 궁금해서 책을 샀는데, 실레의 다양한 그림들이 연대기 순으로 삽입되어 있어 꽤 만 족스럽다.

에곤 실레는 1890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를 비롯한 집안이 모두 철도 고급 관리였다. 실레는 어렸을 적부터 미술에 관심이 있었고 재능도 이써 1906년 빈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한다. 하지만 그곳의 보수적인 교수 방법에 실레는 잘 적응하지 못했다.

한편, 당시 화단의 대표 화가는 구스타프 클림트였다. 실레는 클림트를 동경해서 끊임없이 <빈 분리파> 주변을 기웃거렸다. 이런 노력 끝에 실레가 17세 되던 해 45세의 클림트를 만나는 데 성공하고, 클림트는 실레의 천재성을 알아본다.

클림트는 실레에게 요세프 호프만이라는 사람을 소개시켜 주는데, 호프만은 그후 실레의 재정을 돕게 되는 중요한 인물이다. 이듬해인 1908년에는 철도 감독관이던 하인리히 베네슈(Heinrich Benesch)와 인연을 맺는데, 그 역시 미술 애호가로 실레의 작품을 다수 수집하게 된다.

1909년 4월 실레는 끝내 학교를 그만둔다. 그리고 결성한 것이 <신(新) 예술 그룹> 이었다. 당시 주로 모델로 삼았던 인물은 후에 화가 안톤 페쉬카(Anton Peschka)와 결혼하는 여동생 게르티였는데, 확실하게 확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근친 혐의가 있었다.

이 시기 실레는 국제 무대인 <군스트 샤우>에 작품을 출품하는데, "병든 뇌의 기형"을 보여준다"는 혹독한 비평이 주를 이루었지만 아더 뢰쓸러 같은 일부 비평가는 그의 천재성에 주목했다.

이후 실레는 <빈 분리파>의 영향에서 점차 벗어나 '비틀림의 미학'을 추구하게 된다. 그는 자화상을 통해 자신을 적극적으로 노출시키기 시작했고, 어린 소녀들의 신체에 대한 열망을 그림에 담기 시작한다. 찡그리거나 비명을 지르는 얼굴, 웅크린 몸, 긴장되어 폭발 직전인 신체, 남근상을 보여주며 자위하는 자신의 치부 등이 작품에 나타나게 된 것이다. 성기나 배꼽, 유두와 눈동자가 선홍색으로 강조되고 배와 겨드랑이 근육은 노란색으로 표현된다. 훗날 미술사가들이 '실레만의 선'으로 부르는 단호한 선들도 이 때 나타난 특징이다.

또한 극단적인 몸짓들이 작품에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당시 빈의 사교계를 울리던 무용수들(루스 생드니스, 이사도라 덩컨), 판토마임을 하던 동료 오젠 등의 영향으로 짐작된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러한 작품 성향과 달리 사람들은 실레를 무척 수줍음 많고 내성적이라고 판단했으며, 실레 역시 스스로를 이중적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실레가 자화상 못지 않게 집중했던 분야가 누드화였다. 인체의 뒤틀림을 극한으로 몰아간 누드화 들을 통해서 실레는 성(性)에 대한 절박한 관심을 나타냈다.

1911년 발리 노이질을 만나 동거를 하며 그녀를 모델로 다수의 누드화를 그리게 되고, 모친의 고향인 크루마우로 이주를 한다.

하지만 어린 소녀들을 모델로 누드화를 그리는 것에 대해 주민들이 반대하고, 비틀린 자화상들이 의뢰인들로 부터 외면받자 실레는 노일렝바흐라는 전원도시로 이주한다.

이 시기 실레는 랭보의 시에 영향을 받는 한편, 죽음이라는 주제를 차츰 작품에 반영하기 시작한다.

1912년 4월, 마침내 실레는 어린 소녀들을 유혹하고 유괴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구속된다. 노일렝바흐 주민들도 실레를 탐탁치 않게 생각했고, 작품실에서 발견된 그림들은 그를 곤란하게 했다. 결국 21일간의 구금과 3일간의 징역형으로 끝났지만 실레 인생에서 충격적인 경험이었음에 분명하다.

그런데 실레의 구속은 뜻밖에도 '오해받는 천재화가', '박해받는 예술적 순교자', '불우한 시대의 고독자' 라는 명성을 안겨주었다.

노엘바흐 사건 이후인 1912년 11월, 실레는 빈의 부유한 제13지역에 새 거주지와 작업실을 마련했다. <하겐분트(Hagenbund)> 전시회에서 만난 사업가 아우구스트 레데러와 프란츠 하우어 등이 전시회 작품 상당수를 구입해 준 덕에 재정상태가 무척 좋아졌고, 하인리히 베네슈의 지원 등에 힘입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이 시기 실레는 예술가협회 <제마(Sema)> 회원이 되었고, <위대한 독일 예술 전시회>에 작품을 전시하였으며, 드레스덴의 아르놀트(Arnold), 함부르크예술협회, <뮌헨 시세션> 등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또한 1914년 쾰른의 <미술공예협회>에 작품을 보냈고, <디 악티온(Die Aktion)>에서 실레 특집을 마련하는 등 클림트의 뒤를 잇는 또다른 오스트리아 미술계의 대가로서 자리를 굳혀가게 된다.

1914년 6월 합스부르크 왕조 후계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공작이 사라예보에서 암살되면서 유럽은 전쟁에 휩싸이게 된다. 실레의 나이 24세였다. 실레는 두 차례 징병검사를 받지만 건강이 좋지 못해 징집대상에서는 제외되어 작품 활동을 계속한다. 그리고 이 해에 철도 공무원 집안의 에디트 하름스와 결혼을 하게 된다.

그 동안 동거하며 모델로 헌신했던 발리 노이질에게는 상당히 가혹한 결별이었을 것이다. 발리 노이질은 적십자 간호병으로 지원하여 전선에 배치되었다가 1917년 군병원에서 병사한다.

1914년과 1915년에 노골적 성 행위가 그려진 작품들을 그리던 실레는 1916년 징집된다. 오스트리아 남부 뮐링에 배치된 실레는 이곳에서 군인들의 인물화만을 그리다가 1917년 귀향하게 된다.

1918년 2월 클림트가 사망한 후 1918년 3월 개최된 <빈 시세션>은 실레가 클림트의 뒤를 잇는 대가가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전시회였다. 이 전시회에서 팔려나간 작품들 덕에 실레는 명성과 돈 모두를 갖게 된다. 이에 따라 실레의 감정과 정서도 차츰 '안정' 쪽으로 향하게 된다. 그의 마지막 대작 <가족>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그의 성공은 1918년 10월 31일, 스페인 독감이 실레의 생을 앗아감에 따라 끝이 난다. 실레의 아이를 임신한 에디트 실레가 죽은 지 3일 후의 일이었고, 실레의 나이 28세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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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에서 온 소년들
아이라 레빈 지음, 이창식 옮김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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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74년 9월 어느 이른 저녁, 브라질의 상파울루 중앙에 위치한 일본식당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회합을 갖는다. 그 자리에서 리더인 듯한 사람이 다음과 같은 선언을 한다.

"지금으로부터 2년 반 사이에 94명이 어떤 특정한 날에 죽어야 한다"

이 말을 내뱉은 자는 아우슈비츠에서 <죽음의 천사>로 알려진, 의학박사이자 철학박사인 멩겔레였다.

이러한 음모는 용감한 유대인 청년 배리에 의해 녹음된다. 하지만 배리가 녹음본을 믿을 만한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해 호텔에서 전화를 건 직후 나치 잔당들에게 살해되기 때문에 모든 내용이 전달되지는 못한다.

배리가 전화한 사람은 리베르만이라는 사람으로, 나치 전범들을 추적해 이들을 법정에 세우는 단체를 이끌고 있었다.

리베르만도 처음엔 배리의 제보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진짜로 죽어나가기 시작하자 대륙을 오가며 조사에 착수한다. 그리고 7~8명이 죽어나간 뒤에야 리베르만은 멩겔레가 저지른 가공할 범죄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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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에 발표된 소설로 냉전시대 영향으로 나치 잔당과 공산권이 함께 악의 축으로 다뤄진다. 어딘지 프래드릭 포사이어스의 <자칼의 날>, 존 르 카레의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와 유사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멩겔레 박사의 범죄는 브라질에서 히틀러의 유전자를 단핵 복제하여 94명의 아이들을 탄생시킨 것이었다. 그는 이 소년들을 히틀러의 유년시절과 유사한 집에 입양을 보낸 후 히틀러의 아버지가 52세에 사망한 것과 같은 조건을 만들기 위해 살인 계획을 수립한 것이다.

리베르만과 함께 멩겔레를 추적하지만 입장 차이로 대립하는 인물이 나오는데 유대인 랍비 고린이다. 고린은 94명의 아이들을 모두 추적해서 살해하자고 하지만 리베르만은 이에 반대하여 명단을 없애버린다.

리베르만은 30년대와 같은 사회적 조건, 히틀러의 등장, 그리고 추종자의 존재가 맞물려야 비극이 시작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TV 매체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더 똑똑해 졌기 때문에 그런 확률이 낮다고 주장한다.

TV가 결국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더욱 효율적인 수단으로 기능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한편 리베르만은 "복수보다 중요한 것은 기억"이라고 주장한다. 복수는 휘발유와 같아 한순간 타오르는 폭발성은 있지만 지속력이 없다. 기억은 세대를 이어가며 재발을 방지하는 열쇠이다. 최근 들어 일본제국주의의 강점기 기억 자체를 잊자고 하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으니, 리베르만의 말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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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숲
스가 히로에 지음, 이윤정 옮김 / 포레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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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멀지 않은 미래, 예술품을 소장한 박물관 소행성 아프로디테가 작품의 배경이다.

주인공 다카히로는 이 박물관의 학예원으로 신체에 컴퓨터가 이식되어 있다는 설정으로, 그는 갖가지 예술품과 연관된 소소한 사건들을 맡아 해결해 나가게 된다.

<천상의 음악을 듣다> 에서는 <어린 아이에게 바치는 선율>이라는 그림을 보고 특정한 사람들이 천상의 음악을 듣는 경험을 하는 내용이다. 행성 이름만 '아프로디테'인게 아니라 음악과 무대를 관할하는 부서는 '뮤즈', 회화 공예담당 부서는 '아테나', 공식물 부문 담당은 '데메테르', 컴퓨터 이름은 '므네모시네(기억의 여신)' 라는 식으로 작품 전체의 컨셉을 풀어놓는 도입부이다.

<이 아이는 누구?>는 어딘지 모르게 Uriah Heep의 노래 'Come Away Melinda'를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낡은 인형의 이름을 찾아달라는 부탁으로 인형의 과거를 추적하다 보니 과거 지구에서는 행방불명의 미아를 찾기 위해 똑같은 모습의 인형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직면한다.

<여름에 내리는 눈>은 피리 명인의 습명공연과 관련한 에피소드인데 각종 기모노와 기모노 문양을 활용해 일본적 느낌을 살린 소설이다.

<꿈을 보여주는 사람>은 매너리즘에 빠진 인도계 무용가가 '고독한 예술'에서 벗어나 '스스로 빛나는 예술'로 거듭나는 내용이, <포옹>은 올드스쿨 학예원이 진정한 예술품 감상을 위해 자신의 남은 생을 바치는 얘기이다.

작품의 표제작인 <영원의 숲>은 생체시계라는 가상의 시계 시스템을 둘러싼 표절 시비를 다루고 있는데, 사실은 지극히 서로를 연모했던 두 연인이 한 시계에 비슷한 모티프를 다루게 된 사연이 소개된다.

<라리사의 거짓말>은 인어공주를 테마로 한 짧은 소품이고, <반짝반짝 작은별>은 우주에 있는 미지의 존재가 보내는 메시지에 관한 소설이다.

마지막 작품 <러브송>은 작품들 사이에서 반복적으로 소개되는 '97 건반의 흑천사'라는 피아노의 해머에 이달고의 연꽃 홀씨가 붙어서 해머의 스펀지 역할을 대신 하다가 러브송과 함께 홀씨가 되어 공기중에 눈꽃송이처럼 흩뿌려지는 환상적인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컨셉이 과도해서 자칫 오글거릴 수 있는 작품인데 상복은 많아서 일본 SF 작가와 서평가들이 뽑는 '베스트 SF 2000', SF 독자의 인기투표로 선정되는 '세이운상',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등을 수상했다고 한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179042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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