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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강남
주원규 지음 / 네오픽션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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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가 지난 시각,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자리한 호텔 '카르멘' 에서 열 구의 시체가 발견된다. 남자 다섯, 여자 다섯. 전라의 그들은 몸 전체가 피투성이였고, 주변엔 술과 마약이 널부러져 있었다.

로펌Y에 설계 의뢰가 접수되자 소속 변호사 민규가 투입된다. 민규는 다섯 명의 남자는 개별 처리하고, 다섯 명의 콜걸은 소위 '던지기' 하기로 계획한다.

다소 문제가 될 인물은 '몽키'라는 신예 랩퍼. 하지만 혈연 관계 없는 그의 가족은 '마약을 하고 난교 중 사망한 몽키' 보다 '자살한 몽키'의 이미지를 선호할 것이기에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강남 경찰서 소속 강력반 형사 조재명이 돈 냄새를 맡고 사건에 달려든다. 조재명 형사는 2억의 도박빚을 지고 있었기에 이번 사건이 기사회생할 수 있는 기회가 될 터였다.

민규는 재명을 판에 끼워주고, 재명은 '몽키'를 자살로 처리한다. 그런데 얼마 지마지 않아 몽키의 친부라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난다. 그는 강남 부동산 업계를 쥐락펴락하는 민경식 회장이었다.

민경식은 재명에게 몽키를 살해한 범인 살해를 의뢰하고, 이 과정에서 사건 당일 현장에 있었던 또 한 명의 여자 혜주와 그녀를 관리하는 포주 '검은개들의 왕' 엄철우가 떠오른다.

엄철우를 범인으로 확신한 재명이 민경식 회장으로부터 지원 받은 열다섯 명의 용병을 데리고 모텔을 급습한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엄철우에게 몰살 당하고, 엄철우가 가진 CCTV USB가 민규에게 건네지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열외인종 잔혹사>가 철학의 부재와 디테일에 대한 얼버무림 문제를 드러냈다면 이 작품에서는 작가로서의 기본적 소양에 대한 의심 마저 불러 일으킨다.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가 없었다'는 <커피프린스 1호점>의 이윤정 PD의 서평과 달리, 두 세 페이지 마다 멈춰서서 문장을 다시 읽어봐야 할 정도로 작품은 허술하다.

매력적이지 못한 인물과 엉터리 설정은 차치하고, 기본적인 단어나 문장 구사 능력마저 의심스럽다.

이를테면 이런 문장들이 그렇다.

삼키다 만 수면제가 탁자에 남겨져 있다 (삼키다 말았으면 목구멍까지 넘어가다 말 았나?)

PC방의 14인치 대형 모니터 (14인치...대형?)

아반떼XD 경찰차 (2019년에.. 관공서 차량 내용년수가 도대체 몇 년이길래?)

어떤 소재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방에서 강한 빛을 발하는 루비 반지 (루비라면서 뭘 어떤 소재인지 몰라?)

차명으로 15억원 입금 (고액현금거래 CTR, 의심거래보고 STR 등 제도는 어떻게 피했을까)

1성급 특급호텔 (1성급이면 모텔을 겨우 면한 수준인데 특급 호텔?)

스너프 필름을 보다가 비역질을 참지 못했다 (스너프 필름을 보다가 갑자기 비역질을? 두 번이나 썼으니 실수는 아닐거고... 비역질 뜻을 알고 쓴건가?)

도무지 자연스럽게 읽히지 않는 이런 엉터리 문장과, '제발 영화판에서 관심 좀 가져줬으면' 하는 강력한 욕망이 불러온 온갖 자극적 설정이 더해져 작품은 매우 기괴한 느낌을 준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353116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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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나지 않음, 형사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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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홍콩섬 웨스턴 서덜랜드가에 위치한 둥청아파트에서 잔혹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살인사건의 내막은 이랬다. 정위안다라는 가정 있는 남자가 1년 전 한 술집 여종업원을 알게된 뒤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었다.

술집 여종업원의 남편은 린젠성이라는 폭력적이고 성격 급한 사내로, 별명이 '귀신'이었다. 린젠성은 아내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되자 정위안다의 집을 찾아가 정위안다 뿐 아니라 그의 아내 뤼슈란까지 칼로 찔러 살해했다. 뤼슈란의 뱃 속에는 아이가 있었다. 다행히 딸 정융안은 이모 뤼후이메이 집에 가 있었던 덕분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 린젠성의 지문이 발견되어 경찰은 그를 유력 용의자로 수배했다. 하지만 린젠성은 경찰 추격을 피해 차량을 탈취한 뒤 인도로 돌진하는 등 막무가내로 도주하던 끝에 사망 8명, 부상 5명이라는 참사를 기록한 뒤 자신도 사망하고 만다.

숙취에서 깨어난 형사 쉬유이는 경찰서로 갔다가 자신이 6년 동안의 기억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현재를 2003년이며 둥청아파트 살인사건을 수사중이라고 생각했지만 오늘이 2009년 3월 15일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수사중이던 둥청아파트 사건은 6년 전 이미 해결이 끝난 사건이었다.

단기 기억상실에 걸린 것을 깨달은 쉬유이에게 시사정보지 FOCUS의 루친이 기자가 인터뷰 약속을 했었다며 찾아온다. 둥청아파트 사건은 최근 영화로 제작되면서 다시금 재조명 되고 있는 중이었다. 이에, 당시 피해자의 언니 뤼후이메이를 수사에 참여했던 쉬유이 형사와 함께 인터뷰한다는 기획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뤼후이메이를 인터뷰 하고, 린젠성의 아내 리징루를 만나는 등 과거 사건을 재구성하는 동안 쉬유이는 린젠성이 범인이 아닌 것 같다는 강한 느낌을 받는다.

게다가 발견되는 증거들도 린젠성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었다. 린젠성은 정위안다를 만나기 전 후 어르신이라는 사람과 다툼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후 어르신을 홧김에 때린다거나 하지 않았다. 또 계획된 범죄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장갑을 끼지 않았다. 여기저기 지문을 남기는 계획 범죄가 있을까? 게다가 그는 당일 엄지손가락 부상으로 칼을 쥐기가 수월치 않았다는 점도 밝혀진다. 과연 그가 진범이 맞을까?

그 시점 옌즈청이라는 인물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는 린젠성의 절친이었는데 직업은 스턴트맨이었다. 쉬유이는 옌즈청의 뒤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가 둥청아파트 사건에 깊이 개입된 증거들을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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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호께이는 1970년에 홍콩에서 태어나 홍콩 중문대학 컴퓨터학과를 졸업했다. 저우하오후이, 히가시노 게이고 등과 같이 공과대학을 졸업한 뒤 미스터리 소설 작가의 길에 접어든 케이스이다.

찬호께이는 홍콩 국내 보다 타이완, 일본에 인정을 받아 작가의 길로 접어들었는데 <잭과 콩나무 살인사건>으로 제6회 타이완추리작가협회 공모전 결선에 진출했고, 2009년 <푸른 수염의 밀실>로 제7회 공모전에서 1등을 한다. 본작인 <기억나지 않음, 형사 The Man Who Sold the World>는 제2회 시마다 소지 추리소설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구성에 상당한 공을 들인 본작은 뇌의 기능과 관련한 신뢰도를 문제 삼는다. 기억상실, 이중인격 등을 십분 활용한 본작은 따라서 수수께끼 풀이 보다 서술 트릭과 구성에 힘을 쏟는다. 각각의 트릭은 모두 이중으로 직조되어 있다.

작중 화자인 쉬유이는 사실은 옌즈청이다. 그는 2009년 현재 둥청아파트 살인사건 소재 영화에서 쉬유이로 캐스팅되어 작품에 몰입해 있는 상태이며, 본래 약간의 기억상실 증세가 있다 보니 자신이 쉬유이이고, 현재 2003년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한편, 진범은 자신을 뤼슈란이라고 착각한 뤼후이메이이다. 뤼후이메이는 동생 뤼슈란을 부러워한 나머지 이중인격을 띄게 되었다. 즉 뤼슈란이 되고 싶은 뤼후이메이가 된 것이다.

자신이 뤼슈란이라고 믿게 된 뤼후이메이는 자신의 남편(사실은 매부)이 언니(사실은 동생 뤼슈란)와 바람을 피워 언니의 애를 가졌다고 오인한다. 그래서 진짜 뤼슈란을 죽인 뒤 뤼후이메이 행세(사실은 행세할 필요 없이 원래 뤼후이메이임)를 한 것이다.

같은 작가가 2014년에 발표한 <13·67>이 홍콩 역사에 기반하여 큰 호흡으로 써내려간 작품이라면, 본작은 다소 실험적이고 유희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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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한 최면술사 형사 뤄페이 시리즈
저우하오후이 지음, 허유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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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중국 룽저우시에서 기묘한 사건이 발생한다.


첫번째는 야오바이라는 26세의 IT엔지니어가 생판 처음보는 사람의 얼굴을 물어뜯은 사건이었다. 그는 사건 발생 직전 중캉병원에서 항T바이러스 혈청을 달라고 했다고 알려졌는데, 조사해보니 그런 혈청은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진다. 항T바이러스는 영화 <레지던트 이블>에 나오는 가상의 바이러스 항체였던 것이다. 야오바이는 현장에서 천자신 순경에 의해 사살되었는데, 사후 조사 결과 그의 목에도 누군가가 깨문 이빨 자국이 있었다. 야오바이는 자신을 좀비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두번째는 55세의 실직자 장밍이 옥상에서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다가 비둘기들이 하늘을 향해 날아가자 그 역시 하늘을 향해 두 팔을 펄럭여 점프했다가 그대로 추락해 사망한 사건었다. 그가 하늘을 향해 날아가기 직전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고 목격자들은 증언했다. 장밍 역시 야오바이의 경우처럼 자신을 비둘기라고 믿었던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룽저우 형사대장 뤼페이는 이 사건들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과연 얼마 뒤 인터넷에 누군가가 자신의 범행을 대담하게 자백하는 다음과 같은 글을 올린다.


나는 세계 최고의 최면술사다. 너희들의 생사가 내 손에 달려 있다.

어제는 좀비를 훈련시키고 오늘은 비둘기를 조련했다.

나는 지금 최면술사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룽저우에 와 있다.


만약 인터넷에 글을 올린 이 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최면을 통해 마음먹은 사람은 누구든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셈이다. 형사대장 뤄페이는 최면술사 총회를 주최하고 있는 사람이 중화최면술사협회의 링밍딩이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그를 찾아가 조력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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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 주된 대립구도는 심교 이론을 내세우는 링밍딩과, 폭파이론을 추종하는 바이야싱간의 대결이다.


링밍딩은 사람 마음 속에는 각기 심혈이라는 것이 있는데, 컴플렉스, 트라우마 등의 총칭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 심혈이라는 구멍 때문에 개개인은 현실에서도 아파하거나 힘들어한다. 링밍딩은 이 구멍을 메우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그 위에 다리인 심교를 만들어 지나가게 하면 된다는 이론이다.


반면, 바이야싱은 이와 대척점에 서있는 최면술사다. 그는 원래 뤄페이와 같이 형사대장이었으나 마피아 조직에 잠입했다가 그곳에서 총탄에 맞아 성불구가 된다. 그에게 총을 쐈던 자가 한때 바이야싱이 구해줬던 범죄자였기 때문에 악인은 끝내 교화되지 못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한편, 성불구에도 불구하고 연인에 대한 소유욕을 버리지 못한 바이야싱은 링밍딩에게 최면을 배워 그 상황을 타개하려 하나 링밍딩이 최면 가르쳐주기를 거부하자 자신이 스스로 폭파이론이라는 최면술 기법을 창안한다. 이를 활용해 링밍딩의 부인이 가진 심혈을 건드려 자살하도록 충동하고, 끝내 전국의 범죄자들 모두를 죽여버리려는 거대한 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보험금을 가로챈 뒤 현직 형사들을 최면으로 포섭하기 시작한 것이다.


두 최면술사의 대결이 기본적 주조를 이루는 가운데 샤멍야오라는 아리따운 여인이 최면을 배워 링밍딩에게 가세하는데, 샤멍야오의 '모든 이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천사같은 바람이 담고 있는 의미가 사실은 '모든 이가 죽음을 통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의미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작품은 종장을 향해 달려간다.


주하오후이는 1977년 생으로 칭화대 공과대학 석사과정을 마친 뒤 '형사 뤄페이' 시리즈를 발표하며 인기를 얻은 작가다. 현지에서는 '중국의 히가시노 게이고'라 불리며 사랑을 받고 있으며, 영화화도 활발하게 진행되어 <연화삼월>, <경탐가인>이 그의 작품을 각색한 영화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미스터리물 이면서도 '최면' 이라는 양날의 검을 사용하고 있다. '최면'이나 '첨단과학 기술' 등은 자칫 잘못 사용했다간 소설 전체의 개연성을 붕괴시키는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 치밀한 논리의 구조물 속에 사건이 배치되고 복잡하게 얽힌 실타레를 탐정이 풀어나가야 하는데, '최면'이나 '과학기술'이 개입하면 '만능열쇠' 역할을 해버리는 경우가 종종 생기기 때문이다.

<사악한 최면술사>에서도 최면이 만능은 아니라면서도 실제로는 물고 물리는 최면 때문에 작품의 큰 방향이 여러차례 뒤바뀐다. '사실은 최면 걸었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00페이지가 넘는 장편을 우직하게 끌고 나가는 힘과 치밀한 구성은 빼어난 편으로, 다른 작품들도 기대가 된다.

작품 말미에 후속편을 예고하는 짤막한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아쉽게도 국내에 번역된 작품은 <사악한 최면술사> 한 권 뿐이라 아쉽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336113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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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 - 2017년 제13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박생강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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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태권은 20대 후반 한 일간지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뒤 3년간 소설을 썼다. 하지만 생계 유지가 안 되서 논술학원 강사를 전전하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아 이제 막 신도시 부촌의 중심에 위치한 헬라홀 피트니스 사우나의 매니저로 취직한 터다.

회원권이 3천만원에 달하는 고급 회원제 사우나에서 태권이 해야할 일이란 하품이 날 정도로 단조로운 일이었는데, 수건과 운동복을 가지런히 개서 보충하거나, 반 남은 로션 두 개를 합해 하나로 만드는 일 따위였다.

힘든 것은 일의 내용이라기 보다 그곳에서 자신이 '갑'을 떠받드는 '병'의 위치에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었다.

그곳의 회원은 부로만 따지면 대한민국 1% 내에 속하는 사람들이었지만, 정점에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사람들이었는데, '권력'의 중심부에서 얼마쯤 밀려났기 때문이었다. 이미 퇴직을 했거나, 국회의원 뱃지가 더 이상 자신의 옷깃에 달려있지 않은 그들은, 그런 이유로 나이대도 오늘 내일 하는 지경인 경우가 많았다.

헬라홀 피트니스 사우나도 조금은 그런 느낌이었다.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최고급 시설이 아님이 드러났다. 천장은 곰팡이가 피어서 시커맸고, 운동복과 양말의 고무줄도 조금씩 늘어나 있었다.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노령의 1%와, 이제 막 벼락부자가 되어 그들에 합류하려는 신진 1% 사이에서 태권은 한없이 무료한 세월을 보낸다.

처음엔 1%만을 위한 허위의식을 내면화하는 데 저항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무감동하게 그런 상황을 관조하게 되고, 완전히 타성에 젖어들기 직전에 그곳을 빠져나온다.

고장난 시계가 하루 두 번 시간을 맞추듯이 JTBC가 옳은 소리를 할 때가 아주 잠깐 있었는데 그 즈음 출간된 소설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몇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대학에 들어간 해에 상문고 사태가 터졌다. 선배가 사학 비리에 대한 대자보를 쓰다가 '연고대를 나와도 취직이 안 되는' 이라는 문구를 썼다. 그래서 왜 서울대는 안 넣어요, 했더니 '서울대는 왠지 취직이 될 것 같아서...'라고 말했다. 헬라홀 사우나는 작가에게 있어서 '연고대' 느낌의 사우나 같다.

작년에 집에 물이 샜다. 부족한 기술 대신 업자는 말이 많았고, 실패에 대한 완벽한 변명거리를 가지고 있었다. 소설 말미에 작가는 태권과 소설가인 자신을 대면케 한 뒤 '관찰만 한 것'에 대한 변명을 늘어 놓는다. 그래서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씨워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는 싯구가 생각났다. 소설가가 소설로 말하지 않고 후기나 인터뷰로 변명을 늘어 놓는 일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하물며 소설 속에 본인 등판이라니.

박진규 이름을 쓰던 당시 발표한 <수상한 식모들>에서도 '소설에 대해 공감하려 했지 분석하려 하지 않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역사인식과 철학의 빈곤에 따른 분석과 비판의 부재를 '공감'이나 '관찰' 이라는 이름으로 윤색하는 것 아닌가 의심이 든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329785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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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의 토토
구로야나기 테츠코 지음,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 권남희 옮김 / 김영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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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토토가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기 직전 고바야시 소사쿠 선생님이 운영하던 일종의 대안학교 '도모에 학원'에 입학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토토짱은 기존 학교에서 책상 뚜껑을 하루에 100번 이상 열었다 닫았다 하는가 하면, 선생님 말씀을 듣지 않고 창가에서 지나가는 친동야(이상한 복장을 하고 악기를 울리면서 거리를 돌아다니며 선전하는 사람) 아저씨를 부르는 등, 요새라면 ADHD 판정을 받았을 법한 행동을 해서 퇴학 당한다.

엄마는 이런 토토짱을 데리고 지유가오카 역 부근에 있는 도모에 학원에 데리고 가는데 교장 선생님인 고바야시 소사쿠 선생님은 그런 토토에게 '무슨 얘기든지 좋으니까, 얘기하고 싶은 것 전부' 얘기해 보라고 한다. 토토는 순서도, 말투도 뒤죽박죽이었지만 여러가지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했고, 4시간이나 걸린 끝에 모든 얘기를 마칠 수 있었다. 교장선생님은 토토의 얘기를 모두 들어준 뒤 토토의 머리에 크고 따뜻한 손을 올려놓으며 "자, 이제부터 넌 이 학교 학생이다" 라고 입학을 허가해 준다.

도모에 학원은 교문이 나무 두 그루였고, 교실은 전차였다. 학교는 소아마비, 발달장애, ADHD를 가진 아이들도 아무런 장애가 없는 것처럼 생활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점심은 '산과 들과 바다에서 나온 것'을 싸오도록 했고, 혹시라도 모자라다면 교장선생님의 부인이 채워주었다. 오전 수업은 여러가지 과목 중 좋아하는 과목 먼저 시작해서 자율학습과 선생님의 도움을 병행했고, 오후에는 산책을 하는 등 자연에서 뛰어놀았다.

교가가 없으면 즉석에서 교가를 만들어 보는가 하면, 신체적 장애가 있는 아이들도 자신의 몸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도록 모두가 알몸으로 수영장에 뛰어들기도 했다. 여름방학엔 학교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했고, 친구들과 다 함께 이즈로 온천여행도 갔다.

토토는 매일 매일 학교가는 것이 즐거웠다. 도모에 학원의 어린이들은 한 사람의 인격체로 대접받았기 때문에 자신이 진정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타인과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하는지 등을 자연스럽게 배워 나간다.

어린이들은 옷이 찢어지는 것을 염려하지 않고 마음껏 뛰어 놀아야 하므로 '가장 허름한 옷을 입혀서 학교에 보내'달라는 교장선생님은 학교 운동회도 신체적 결함이 있는 아이들이 좀 더 유리한 경기들로 구성했기 때문에 가장 키가 작은 다카하시가 다수의 종목에서 일등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언제까지고 평화롭고 즐거울 것만 같았던 토토의 어린 시절은 소아마비를 갖고 있는 친구 야스아키의 죽음, '조센징'이라는 욕을 하도 많이 들어 '조선인'이라는 단어 자체가 욕이라고 착각하고 만 마사오짱의 이야기, 사랑하는 개 로키와의 이별 등을 겪으며 차츰 슬픈 색채를 띠게 된다. 그러다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 전쟁으로 도쿄가 공습당한 끝에 도모에 학원에 불이 나면서 끝이 난다.

작가 후기에 따르면 도모에 학원은 1937년 부터 1945년 까지 운영되었다고 한다. 교장인 고바야시 선생님은 '어떤 아이든지 갓 태어났을 땐 선하게 마련이므로 이 선한 기질을 일찌감치 찾아 그걸 키워주며 개성 있는 사람으로 자라게 해야 한다'는 것을 교육 철학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는 '어린이를 교사의 계획에 맞추지 말며 자연 속에 풀어놓아야 한다'고 했는데, '교사의 계획보다는 어린이들의 꿈이 훨씬 크기 때문' 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증오와 혐오를 반복적으로 주입당해 세대간, 성별간, 국가간, 민족간 갈라치기가 횡행하는 지금, <창가의 토토>는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가꿔 나가야 하는지, 나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어린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줘야 하는지 같은 근본적인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물론, 책을 읽는 동안 동심으로 돌아가 나도 도모에 학원과 같은 학교를 다녔다면 얼마나 신나게 생활했을까 하는 신나는 상상도 덤으로 할 수 있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327149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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