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악한 최면술사 형사 뤄페이 시리즈
저우하오후이 지음, 허유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중국 룽저우시에서 기묘한 사건이 발생한다.


첫번째는 야오바이라는 26세의 IT엔지니어가 생판 처음보는 사람의 얼굴을 물어뜯은 사건이었다. 그는 사건 발생 직전 중캉병원에서 항T바이러스 혈청을 달라고 했다고 알려졌는데, 조사해보니 그런 혈청은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진다. 항T바이러스는 영화 <레지던트 이블>에 나오는 가상의 바이러스 항체였던 것이다. 야오바이는 현장에서 천자신 순경에 의해 사살되었는데, 사후 조사 결과 그의 목에도 누군가가 깨문 이빨 자국이 있었다. 야오바이는 자신을 좀비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두번째는 55세의 실직자 장밍이 옥상에서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다가 비둘기들이 하늘을 향해 날아가자 그 역시 하늘을 향해 두 팔을 펄럭여 점프했다가 그대로 추락해 사망한 사건었다. 그가 하늘을 향해 날아가기 직전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고 목격자들은 증언했다. 장밍 역시 야오바이의 경우처럼 자신을 비둘기라고 믿었던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룽저우 형사대장 뤼페이는 이 사건들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과연 얼마 뒤 인터넷에 누군가가 자신의 범행을 대담하게 자백하는 다음과 같은 글을 올린다.


나는 세계 최고의 최면술사다. 너희들의 생사가 내 손에 달려 있다.

어제는 좀비를 훈련시키고 오늘은 비둘기를 조련했다.

나는 지금 최면술사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룽저우에 와 있다.


만약 인터넷에 글을 올린 이 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최면을 통해 마음먹은 사람은 누구든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셈이다. 형사대장 뤄페이는 최면술사 총회를 주최하고 있는 사람이 중화최면술사협회의 링밍딩이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그를 찾아가 조력을 청한다.


------


소설에서 주된 대립구도는 심교 이론을 내세우는 링밍딩과, 폭파이론을 추종하는 바이야싱간의 대결이다.


링밍딩은 사람 마음 속에는 각기 심혈이라는 것이 있는데, 컴플렉스, 트라우마 등의 총칭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 심혈이라는 구멍 때문에 개개인은 현실에서도 아파하거나 힘들어한다. 링밍딩은 이 구멍을 메우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그 위에 다리인 심교를 만들어 지나가게 하면 된다는 이론이다.


반면, 바이야싱은 이와 대척점에 서있는 최면술사다. 그는 원래 뤄페이와 같이 형사대장이었으나 마피아 조직에 잠입했다가 그곳에서 총탄에 맞아 성불구가 된다. 그에게 총을 쐈던 자가 한때 바이야싱이 구해줬던 범죄자였기 때문에 악인은 끝내 교화되지 못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한편, 성불구에도 불구하고 연인에 대한 소유욕을 버리지 못한 바이야싱은 링밍딩에게 최면을 배워 그 상황을 타개하려 하나 링밍딩이 최면 가르쳐주기를 거부하자 자신이 스스로 폭파이론이라는 최면술 기법을 창안한다. 이를 활용해 링밍딩의 부인이 가진 심혈을 건드려 자살하도록 충동하고, 끝내 전국의 범죄자들 모두를 죽여버리려는 거대한 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보험금을 가로챈 뒤 현직 형사들을 최면으로 포섭하기 시작한 것이다.


두 최면술사의 대결이 기본적 주조를 이루는 가운데 샤멍야오라는 아리따운 여인이 최면을 배워 링밍딩에게 가세하는데, 샤멍야오의 '모든 이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천사같은 바람이 담고 있는 의미가 사실은 '모든 이가 죽음을 통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의미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작품은 종장을 향해 달려간다.


주하오후이는 1977년 생으로 칭화대 공과대학 석사과정을 마친 뒤 '형사 뤄페이' 시리즈를 발표하며 인기를 얻은 작가다. 현지에서는 '중국의 히가시노 게이고'라 불리며 사랑을 받고 있으며, 영화화도 활발하게 진행되어 <연화삼월>, <경탐가인>이 그의 작품을 각색한 영화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미스터리물 이면서도 '최면' 이라는 양날의 검을 사용하고 있다. '최면'이나 '첨단과학 기술' 등은 자칫 잘못 사용했다간 소설 전체의 개연성을 붕괴시키는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 치밀한 논리의 구조물 속에 사건이 배치되고 복잡하게 얽힌 실타레를 탐정이 풀어나가야 하는데, '최면'이나 '과학기술'이 개입하면 '만능열쇠' 역할을 해버리는 경우가 종종 생기기 때문이다.

<사악한 최면술사>에서도 최면이 만능은 아니라면서도 실제로는 물고 물리는 최면 때문에 작품의 큰 방향이 여러차례 뒤바뀐다. '사실은 최면 걸었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00페이지가 넘는 장편을 우직하게 끌고 나가는 힘과 치밀한 구성은 빼어난 편으로, 다른 작품들도 기대가 된다.

작품 말미에 후속편을 예고하는 짤막한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아쉽게도 국내에 번역된 작품은 <사악한 최면술사> 한 권 뿐이라 아쉽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33611319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