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 - 2017년 제13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박생강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인공 태권은 20대 후반 한 일간지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뒤 3년간 소설을 썼다. 하지만 생계 유지가 안 되서 논술학원 강사를 전전하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아 이제 막 신도시 부촌의 중심에 위치한 헬라홀 피트니스 사우나의 매니저로 취직한 터다.

회원권이 3천만원에 달하는 고급 회원제 사우나에서 태권이 해야할 일이란 하품이 날 정도로 단조로운 일이었는데, 수건과 운동복을 가지런히 개서 보충하거나, 반 남은 로션 두 개를 합해 하나로 만드는 일 따위였다.

힘든 것은 일의 내용이라기 보다 그곳에서 자신이 '갑'을 떠받드는 '병'의 위치에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었다.

그곳의 회원은 부로만 따지면 대한민국 1% 내에 속하는 사람들이었지만, 정점에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사람들이었는데, '권력'의 중심부에서 얼마쯤 밀려났기 때문이었다. 이미 퇴직을 했거나, 국회의원 뱃지가 더 이상 자신의 옷깃에 달려있지 않은 그들은, 그런 이유로 나이대도 오늘 내일 하는 지경인 경우가 많았다.

헬라홀 피트니스 사우나도 조금은 그런 느낌이었다.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최고급 시설이 아님이 드러났다. 천장은 곰팡이가 피어서 시커맸고, 운동복과 양말의 고무줄도 조금씩 늘어나 있었다.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노령의 1%와, 이제 막 벼락부자가 되어 그들에 합류하려는 신진 1% 사이에서 태권은 한없이 무료한 세월을 보낸다.

처음엔 1%만을 위한 허위의식을 내면화하는 데 저항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무감동하게 그런 상황을 관조하게 되고, 완전히 타성에 젖어들기 직전에 그곳을 빠져나온다.

고장난 시계가 하루 두 번 시간을 맞추듯이 JTBC가 옳은 소리를 할 때가 아주 잠깐 있었는데 그 즈음 출간된 소설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몇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대학에 들어간 해에 상문고 사태가 터졌다. 선배가 사학 비리에 대한 대자보를 쓰다가 '연고대를 나와도 취직이 안 되는' 이라는 문구를 썼다. 그래서 왜 서울대는 안 넣어요, 했더니 '서울대는 왠지 취직이 될 것 같아서...'라고 말했다. 헬라홀 사우나는 작가에게 있어서 '연고대' 느낌의 사우나 같다.

작년에 집에 물이 샜다. 부족한 기술 대신 업자는 말이 많았고, 실패에 대한 완벽한 변명거리를 가지고 있었다. 소설 말미에 작가는 태권과 소설가인 자신을 대면케 한 뒤 '관찰만 한 것'에 대한 변명을 늘어 놓는다. 그래서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씨워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는 싯구가 생각났다. 소설가가 소설로 말하지 않고 후기나 인터뷰로 변명을 늘어 놓는 일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하물며 소설 속에 본인 등판이라니.

박진규 이름을 쓰던 당시 발표한 <수상한 식모들>에서도 '소설에 대해 공감하려 했지 분석하려 하지 않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역사인식과 철학의 빈곤에 따른 분석과 비판의 부재를 '공감'이나 '관찰' 이라는 이름으로 윤색하는 것 아닌가 의심이 든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32978515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