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 스티븐 킹의 사계 봄.여름 밀리언셀러 클럽 1
스티븐 킹 지음, 이경덕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o 영원한 희망(Rita Hayworth and Shawshank Redemption)

 

앤디 듀프레인은 1947년 아내와 정부를 살해한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고 쇼생크 교도소에 수감된다. 앤디는 자신이 무죄라고 주장했지만 불리한 증거들에 대해 적절한 설명을 할 수가 없었다. 단지 술이 너무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재판 과정중에 보여준 앤디의 차분한 태도 역시 배심원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수감된 된 앤디는 '시스터'라 불리는 남색가들에게 강간을 당했지만 언제나 저항했고, 교도소 운동장에 굴러다니는 돌들을 조각하며 희망을 잃지 않으려 했다. 교도소에서 물품을 공급하는 레드는 앤디를 위해 수석용망치를 구해다 주고 리타 헤이워드의 대형 포스터와 같은 것도 조달해준다.

어느 날인가  교도소 옥상에 타르를 칠하는 작업에 앤디와 레드 등이 차출되어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악질적인 간수 하들리가 세금 문제에 관해 동료들에게 투덜대는 것을 들은 앤디는 하들리에게 난데없이 '부인을 신뢰하는지'를 묻는다. 레드는 앤디의 돌발행동에 경악했고, 하들리는 어처구니 없어 하며 앤디를 죽일 듯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앤디는 태연하게 하들리에게 '아내를 신뢰한다면 6만달러 이하를 그녀에게 증여하여 세금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러면서 앤디는 동료들에게 맥주를 먹게 해 준다면 서류 작업을 대신 해줄 수도 있다는 말까지 덧붙인다. 레드는 앤디와 하들리 사이에 팽팽한 긴장이 흐르다가 마침내 앤디쪽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는 과정을 바라본다.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그 후로 앤디는 간수들의 세금신고를 대신 해 주었고, 교도소장이 돈을 빼돌릴 수 있도록 이중장부를 만들어 주었다. 상대급부로 얻은 것은 독방과 도서관, 시스터들로부터의 자유였다.

앤디가 수감된지 15년이 지난 어느 날, 토미라는 수감자가 앤디 사건의 진범에 관한 단서를 제공한다.  토미는 과거 블래치라는 자와 같은 감방에 수감된 적이 있는데 블래치는 자신이 벌이고도 처벌받지 않은 강도살인에 관해 떠벌린 적이 있었다. 블래치가 이야기한 내용은 앤디의 아내와 정부가 살해된 사건과 꼭 들어맞았다. 앤디는 자신이 항소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품고 교도소장을 찾아가지만 교도소장은 앤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부정한 돈 외에는 관심이 없었기에 앤디의 의견을 미친 소리라며 묵살하고 만다.

앤디는 레드에게 자신이 바깥에서 벌어들인 돈과, 그 돈을 불려준 친구, 그리고 위조신분증과 은행 개인 금고를 열 수 있는 열쇠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남미의 따뜻한 지후아타네조라는 곳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앤디는 그 모든 것을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준비했었다. 하지만 자신이 그토록 오랫동안 수감생활 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아침 점호 시간에 한 명이 부족한 것을 안 교도소측이 비상을 내리고 앤디를 찾았지만 그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날 저녁에서야 앤디의 방 포스터가 치워지면서 커다랗게 입을 벌린 구멍이 발견된다. 27년이 걸린 일이었다.

레드는 가석방 된 후에 앤디가 금고 열쇠를 숨겨두었다고 말한 장소에 찾아간다. 그곳에는 앤디가 써놓은 다정한 편지와 지후아타네조까지 올 수 있는 돈이 있었다. 

 

o 여름·타락(Apt Pupil)


열세살의 토드는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고 성적도 우수했다. 어느 날 친구집에서 나치에 관한 잡지를 본 토드는 그 내용에 매료되었는데, 자신의 이웃에 사는 커크라는 사람이 나치친위대 장교 모습과 매우 닮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랐다. 토드는 시간을 들여 커크를 조사한 끝에 그가 나치친위대 장교 듀샌더가 틀림 없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토드는 듀샌더를 찾아가 대뜸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부인하던 듀샌더는 토드가 빈틈없이 조사했다는 것을 알고 체념한다. 토드는 듀선더의 비밀을 적은 편지를 친한 친구에게 맡겨 놓았고, 자신의 신상에 무슨 일이 생기면 편지가 공개될 것이라며 협박했다. 

토드는 듀샌더에게 수용소에서 겪었던 일과 기억하는 모든 것들을 말해 달라고 한다. 듀샌더는 과거 자신이 저질렀던 일들과 끔찍한 기억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토드는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빠져들어가 어느날인가는 나치제복을 사다가 듀샌더에게 선물하기까지 한다. 일상 생활은 점점 무너지기 시작했고 그 결과 형편 없는 성적을 받는다. 토드는 성적표를 위조하여 부모를 속인다.

하지만 겉잡을 수 없이 떨어져버린 성적 때문에 상담 선생이 부모님과의 면담을 요청하자 토드는 머리를 싸쥔채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때 듀샌더가 자신이 토드의 할아버지인 것 처럼 상담 선생을 찾아간다면 아무 문제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상담 선생은 듀샌더에게 속아 넘어간다. 하지만 다음 번 시험에서 또다시 낙제한다면 부모님을 모시고 가야했다. 듀샌더는 토드에게 공부할 것을 명령하고 토드는 듀샌더를 저주하면서도 공부에 매진한다. 그 결과 우수한 성적을 회복한다.

듀샌더는 어느 순간 자신이 토드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즐기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 아이는 듀샌더의 이야기에 매료되어 듀샌더와 똑같은 악마가 된지 오래였다. 듀샌더는 이제 토드가 자신을 살해하길 열망하는 단계에 와 있다고 생각하여 안전장치를 마련한다. 듀샌더는 토드에게 자신이 편지 한 통을 써서 개인금고에 넣어 두었는데, 자신이 죽으면 공개될 것이라 했다. 그 편지의 내용은 토드가 자신이 나치전범자라는 것을 알고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채 끔찍한 이야기를 흥미 깊게 들어왔다는 것과 부모님과 학교를 속였던 일들이 적혀 있다고 했다. 

토드와 듀샌더는 그즈음부터 부랑자와 거지들을 살해하기 시작한다. 듀샌더가 거지 한 명을 꾀어 집으로 데려가 살해한 후 시체를 처리하던 중 심장 발작이 일어난다. 듀샌더는 토드에게 전화를 걸어 처리를 부탁한다. 병원에 입원한 듀샌더를 과거 수용소에 끌려갔다가 살아 남은 유태인 환자가 알아본다. 즉각 모사드에서 사람이 파견되어 듀샌더를 찾아와 음울하게 듀샌더가 겪게 될 일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날 밤 듀샌더는 약을 훔쳐 자살한다.

토드를 찾아간 경찰은 여러 가지 질문을 한다. 토드는 처음에는 자신이 썩 대답을 잘했다고 느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질문 속에 경찰이 쳐놓은 함정이 곳곳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집에 찾아온 상담 교사를 살해한 후 몇 시간 지나지 않아 토드 역시 경찰에 체포된다.

 

스티븐 킹의 중편 연작소설집 <Dirrerent Season>에 수록된 이야기 중 봄에 해당하는 <Rita Hayworth and Shawshank Redemption>과 여름에 해당하는 <apt pupil> 두 편이 수록되어 있다. 다른 사람이 산 책을 읽는 것은 흥미롭다. 특히나 어느 정도 시일이 흐른 뒤에 읽는 것은 더욱 그렇다. 원래 책 주인의 과거 모습을 상상하며 책을 읽을 수 있으므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홉살 인생 - 개정판
위기철 지음 / 청년사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방영된 드라마 <응답하라 1994>를 보고 당혹감을 느낀 기억이 난다. 당시 유행했기에 드라마에 나온 것이 분명한 책들이나 영화, 패션들이 같은 94학번인 나에게는 무척 낯설었기 때문이다. 당시 내가 속해 있던 동아리는 좋게 말하면 사회 문제 이외에는 큰 관심을 쏟지 않던 분위기가 잔존해 있었고, 나쁘게 말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촌스러운 곳이었다. 내가 드라마의 배경이 낯설었던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 동아리에서 처음 읽었던 책이 위기철이 쓴 <노동자 이야기 주머니>였다. 서른 네개의 진보적인 꽁트와 '이런 부모를 갖게 하소서'라는 글로 구성된 이 책이 첫 세미나 교재로 쓰였기 때문이다. <노동자 이야기 주머니>는 <자본론>의 가장 핵심적인 아이디어, 참교육, 노동조합과 파업, 법의 속성, 통일, 위정자들과 역사에 관한 이야기들을 열거식으로 늘어놓고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알기 쉽고 명쾌하게 쓰여진 책이었다. 다소 감상적인 '이런 부모를 갖게 하소서'라는 글도 지극히 정의로운 글이었기에 선배들은 이 책을 우리 학번의 의식화를 위해 새로 채택하는 모험을 감행했는지도 모른다. (그 전에는 <껍데기를 벗고서>라는 책이 쓰였다)

하여간 위기철은 소설가가 아니라 진보적인 성향의 글을 쓰는 사람이었고 <아홉살 인생>이라는 소설책이 나왔을 때 같은 사람일거라는 생각을 못했다. 

 

<아홉살 인생>은 산꼭대기 무허가 판자촌으로 이사 간 아홉살 여민의 눈으로 본 세상을 작가 위기철이  나직한 어투로 풀어낸 소설이다. 

깡패 노릇을 하다가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 온 여민의 아버지와 잉크 공장에서 일하다 사고로 그만 한쪽 눈을 실명하게 된 여민의 어머니, 그리고 여민이와 동생이 산꼭대기 동네로 이사를 가서 그곳 이웃들과 일년을 지내며 겪게되는 소소한 이야기들이 작가의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지는 이 소설은 성장소설이자 교양소설이다. 

매양 허풍을 떨지만 삶의 진실에 맞닿아 있는 직관적인 이야기를 하는 신기종, 골방에 틀어박혀 공부하고 고민하지만 이를 세상에 풀어내지 못해 끝내 자살하고 마는 골방철학자, 술주정뱅이 아버지를 죽이고 싶어하다가 정작 아버지가 죽자 공장에 일하러 나가 삶의 고단함에 짓눌리고 마는 검은 제비, 가난함을 자존심으로 가리려다 도도한 외톨이가 되고 마는 우림이, 그리고 노란네모 여민이 등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사실 <노동자 이야기 주머니>에 나올 법한 이야기들의 소설 버전이다. 소설적 형상화에 높은 점수를 줄 수는 없지만, 위기철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여전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20995857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푸른 꽃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6
노발리스 지음, 김재혁 옮김 / 민음사 / 200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노발리스의 본명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필립 폰 하르덴베르크이다. '노발리스'라는 필명은 라틴어로 '새로운 땅을 개척하는 자'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한다. 

<푸른 꽃>의 원제는 <하인리히 폰 오프터딩엔(Heinrich von Ofterdingen)>이다. 노발리스가 이 소설을 구상하면서 중세 후기의 성담(聖譚) 전설들을 참조하였는데 하인리히는 이 전설에 등장하는 인물로 13세기 초엽에 기사 시인인 볼프람 폰 에셴바하, 발터 폰 포겔바이데와 함께 발트부르크에서 노래 시합을 벌인 것으로 전해진다. <푸른 꽃>이라는 제목은 시인 하이네가 자신의 평론 <낭만파>에서 "이 작품 곳곳에서 푸른 꽃이 번쩍이고 드높은 향기를 풍긴다"고 말한 것으로 부터 유래하여 부제가 '푸른 꽃'인 것으로 알려진 것이다.

 

작품은 1부 <기대>, 2부 <실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노발리스가 2부 초반을 쓰다가 사망하였기 때문에 이 작품은 미완의 유고작이다. 

 

1부 1장~8장은 하인리히가 낯선 세계와 접촉하고 많은 이야기들을 들으며 시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튀링겐 지방의 아이제나흐라는 도시에서 유복한 가정의 아들로 태어난 하인리히는 어느 날 낯선 나그네가 들려준 이야기에 매혹당한다. 낯선 나그네는 보물들과 푸른 꽃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하인리히는 이 푸른 꽃 이야기에 매혹당한다. 2장은 어머니와 하인리히가 상인들을 따라서 어머니 고향인 아우크스부르크를 향해 여행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하인리히는 상인들로부터 아리온의 전설과 아틀란티스 이야기를 듣는다. 그들은 시인이 얼마나 특별한지에 대해 하인리히에게 들려준다. 4장에서 하인리히는 동방의 여인 출리마를 만나 류트와 노래에 대해 이해하게 된다. 5장에서는 보헤미아 출신의 늙은 광부와 은둔자 호엔촐레른 백작 이야기를 듣고 6장에서 아우크스부르크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하인리히는 새로운 시의 스승 클링스오르와 그의 딸 마틸데를 만난다. 마틸데는 곧 하인리히의 뮤즈가 되고, 그녀가 곧 푸른 꽃이 된다. 7장은 클링스오르의 가르침이, 8장은 시의 목표와 임무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1부 9장은 클링스오르가 들려주는 동화이다. 줄거리는 복잡하고 상징과 은유로 가득 차 있다. 해설을 쓴 김재혁의 글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9장의 동화는 에로스와 파벨에 대한 알레고리적인 동화인데, 아르크투르스의 별의 세계는 얼음으로 굳어 있고, 프라이아(평화의 정신)는 영원한 잠에 빠져 있다. 이 동화에서 아버지(감각)와 어머니(마음)는 아이를 하나 두고 있는데, 그것은 에로스(사랑)이다. 기니스탄(상상력)도 딸을 하나 두고 있는데 바로 파벨이다. 기니스탄은 에로스와 함께 자기 아버지가 있는 달로 여행한다. 바로 그때 서기(이성)가 모반을 일으켜 어머니를 사로잡아 화형에 처한다. 파벨만이 지하 세계로 도망쳐 운명의 여신들을 제압한다. 소피(지혜)가 희생당한 어머니의 재를 물그릇에 담아 모두에게 마시라고 하자 곧 모두의 가슴속에서 어머니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된다. 파벨이 마침내 아르크투르스의 왕국에 도착하여 얼음을 녹게 하고 에로스를 프라이아에게 데리고 가 그녀와 결합시켜 준다. 그녀는 그와 힘을 합쳐 여왕으로서 새로운 황금시대를 다스린다. 에로스의 방랑은 인간의 타락과 구원을 상징하는 일종의 순례이자 정화의 과정이다. 

이 동화에서 태양은 계몽주의를, 서기와 그 일당은 합리주의 정신을 상징한다. 반면 파벨은 시에 대한 환유이다. 지루하고 단조로운 합리주의가 시적인 자발성과 보편적 사랑 앞에 길을 양보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이 동화는 결국 낭만주의의의 승리를 그린 노발리스의 알레고리적인 동화인 것이다.

 

2부는 하인리히와 마틸데의 첫 키스로 태어난 아스트랄리스의 이야기이다. 2부에서 마틸데는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 하인리히가 실제 사랑했던 소피 폰 퀸 역시 노발리스와 알게 된지 3년이 못 되어 폐병으로 죽은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인리히는 마틸데의 죽음에 괴로워하며 방랑하다가 노인을 만나 양심의 본질에 대해 토론하고 황금시대의 도래에 대해 이야기한다. 

 

1801년 3월 소피가 죽은지 거의 사 년째 되던 날 노발리스 역시 폐병으로 세상을 뜨게 된다. 

 

노발리스는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에 대한 일종의 도전적인 작품으로 <푸른 꽃>을 썼다고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클링스오르의 모델은 괴테에서 찾았으며 시에 있어서 질서와 절제를 강조하는 면 역시 괴테를 따랐다고 한다. 

노발리스는 소설 속에서 시인을 단지 시를 읊는 자가 아니라, 미래를 예언하고 세상에 균형과 조화를 가져오며 인간의 마음에 불꽃을 일으키는가 하면 하느님과 보이지 않는 교류를 통해 지상에 하늘나라의 지혜를 알릴 수 있는 비밀스러운 사람으로 그리고 있다. 그리하여 영웅들보다 더 훌륭하고 한 나라의 국왕보다 알고 지낼 가치가 있는 것이 바로 시인이라고 노발리스는 이야기한다. 노발리스가 말하는 시인(詩人)은 철인(哲人)과 같은 이상적인 인간이다. 

일신의 영달을 위해 매문(賣文)을 일삼고, 정작 제대로된 글은 쓰지도 못하면서 SNS에 일기나 써대며 작가연하는 가짜들이 판치는 지금, 노발리스가 이야기하는 시인은 얼마나 낯선가? 

 

http://blog.naver.com/rainsky94/8020982384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떨림
마르시아스 심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10월
평점 :
품절


<떨림>은 마르시아스 심으로 창씨개명한 심상대가 섹스를 소재로 엮어낸 여덟 편의 연작 소설집이다. 마르시아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티로스로 아테네가 버린 피리를 얻어 일가를 이룬 후 아폴로에게 도전했다가 패하여 가죽이 벗겨진다. 심상대가 마르시아스라는 이름을 취한 후 공공연히 사용하기를 꺼려하지 않으니 스스로 자신을 미(美)와 예술의 담지자로 자처하는 사뭇 도도한 행태라 하겠다. 

연작소설 <떨림>은 작가가 자신의 분신으로 생각될 화자를 내세우는데 사드에 비견될만한 이 난봉꾼이 화장실 벽 낙서 수준의 개연성으로 여성들과 관계를 맺고, 그 관계 속에서 아름다움이라든가 떨림, 또는 젊은 날에 느꼈던 까닭 모를 울증에 대해 '썰'을 푸는 것이다. 그 '썰'이 꽤나 독자의 말초적 신경을 자극하는 바가 있어 소설은 술술 읽히고 심미주의자를 자처하는 작가의 탐미적 성향이 사춘기적 감수성에 어필하는 바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탐미적 성향은 오스카 와일드 이래 새로운 것이 아니다. 거칠고 순발력 있는 입담 속에 숨겨진 이야기가 사실은 화장실 낙서를 창작의 원천으로 삼아 발현된 그저그런 '코사지'에 불과하다는 혐의는 못내 지울 수가 없는 것은 어찌된 이유인가. 

 

소설의 화자는 심상대의 분신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강원도에서 반항기 어린 학창 생활을 보내며 소설가의 꿈을 키우던 주인공이 상황에 떠밀려 일시 화류계에 몸담다가 군대에 다녀와, 중간 생략, 그리하여 소설가가 된 주인공은 결혼을 하는데 결혼의 그 폭력적인 속성을 견디지 못하여 다섯살 난 아이가 있지만 이혼하였고, 때때로 대학강의나 문화원 창작강의를 나가기도 하며 목하 여자를 '따먹거나 따먹히거나' 하고 있다. 

그가 '따먹거나 따먹히거나' 하는 상대는 미성년자 자매일 때도 있고 육십세가 넘는 고상한 유부녀일 때도 있다. 한 가지 주목할만한 점은 그가 '따먹거나 따먹힌' 여자들과의 관계를 나름의 진정성으로 꾸려 나간다는 사실과 그 속에서 미추의 전연 새로운 기준을 발견한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절름발이 여자와 관계를 맺거나 매독에 걸려 머리가 모두 빠져버린 친구 어머니의 눈을 보다가 주체할 수 없는 성욕을 느끼는 것이 정상적이고 아름다운 여성과 관계 맺는 것과 동일한 층위에서 다루어진다. 

이 대목에서 이제 심상대가 엮어낸 <떨림>이 사실 화장실 낙서와 마광수의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를 적절히 리믹스한 '독자적' 상부구조로서의 도색소설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심상대가 추구하는 미(美)와 예술관은 오스카 와일드가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 기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아름다운 사물에서 추한 의미를 찾아내는 사람은 아무런 매력 없이 타락한 인물이다. 그것은 잘못된 일이다.

아름다운 사물에서 아름다운 의미를 찾아내는 사람은 교양이 있다. 이들에게는 희망이 있다.

아름다운 사물을 오직 '아름다움'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이들은 선택된 사람들이다.

도덕적이거나 비도덕적인 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책은 잘 썼든지, 잘못 썼든지 둘 중 하나다. 단지 그 뿐이다.

 

심상대는 아름다움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는 모름지기 남녀간의 성애에서 찾아야 한다. 여덟 편의 성애 이야기 속에서 관계 맺기의 개연성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제거되어 있다. 그러나 그가 찾아낸 아름다움이 나에게는 마광수 식의 '나는 OOO가 좋다' 이상으로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 

문학평론가 황현산은 발문에서 심상대를 우리 시대의 귀한 재능이라고 전제한 뒤, 광주의 처절한 기억과 그 피비린내를 뇌리에서 지울 수 없었던 사람들(항상 더 급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에만 마음을 내주었던)에 밀려 적절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한탄한다. 그러면서 환상과 현실 사이의 얇은 막을 회칼로 저미는 것처럼 파고 들어가는 문체와 체험과 기억과 문학이 맺는 변증법적 관계에 대해 탁월한 탐구를 풀어내는 업적을 추켜세운다. 과연 온당한 한탄인가. 

심상대는 미성년자를 '따먹기' 전에 여자에게 남자 성기를 마르크스와 엥겔스라고 부르게 한다. 장정일은 <너에게 나를 보낸다>에서 시위 도중 운동권이 여자와 관계를 맺는 상황을 설정한 후 운동권의 입에서 파쇼 타토를 외치도록 한다. 자신들이 참여하지 못한 진보의 흐름에 침을 뱉고 비아냥 거리는 것에 다름 아니다. 독학자들의 패거리짓기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과 비겁한자의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

 

나는 '여전히 문제는 리얼리즘이다'라고 외치는 리얼리즘 지상론자는 아니다. 그러나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하며 현실에 환상을 덧칠하고 마침내 매니큐어 칠한 여자의 손톱에서 미를 찾는 부류와는 아직까지도 타협할 수가 없다. 그것은 취향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것은 양심의 문제이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20972660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푸라기 여자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4
까뜨린느 아를레 지음, 송홍빈 옮김 / 해문출판사 / 2001년 9월
평점 :
절판


매일같이 신문 구혼 광고란을 보며 신데렐라가 될 것을 꿈꾸던 힐데가르데 마에나의 눈길을 사로잡는 광고가 있었다. 막대한 유산을 가진 남자가 함부르크 출신이고 가족과 친지가 없는 여성을 베필로 맞고 싶다는 광고를 신문에 실은 것이다. 힐데가르데는 자신에게 드디어 행운의 여신이 미소를 지었다고 생각하며 편지를 보낸다. 힐데가르데는 솔직담백하게 자신이 안락한 삶을 원한다고 편지에 적었는데 그 점이 좋게 생각되었는지 만나고 싶다는 답장이 온다.

힐데가르데의 눈 앞에 나타난 남자는 60대의 점잖은 신사였다. 그는 자신이 세계적인 갑부 칼 리치몬드의 비서이고 이름은 앤턴 콜프라고 했다. 서로간에 솔직한 대화가 몇 마디 오고간 끝에 앤턴 콜프는 속내를 털어놓는데, 그 내용이 사뭇 충격적이었다. 힐데가르데가 칼 리치몬드를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앤턴 콜프의 도움을 받아 그와 결혼한 후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고, 20만 달러를 앤턴 콜프에게 사례비조로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힐데가르데는 애초에 정상적인 결혼일리 없다고 생각했으므로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앤턴 콜프는 힐데가르데가 결혼 후에 자신을 팽 시킬 것을 우려가 있으므로 몇 가지 안전장치에 따를 것을 요구한다. 첫번째는 힐데가르데가 자신의 양녀가 될 것이고 두번째는 20만달러 짜리 횡선수표를 의미 있는 문구와 함께 자신의 뉴욕 주소로 보내는 것이었다. 첫번째 안전장치는 힐데가르데가 결혼한 후 앤턴 콜프가 그녀에게 집적인다며 '팽'시킬 것을 차단할 목적이었고, 두번째 안전장치는 20만달러의 지급을 거절할 경우를 대비해서였다. 자존심 강한 불구의 칼 리치몬드는 앤턴 콜프의 훈수대로 행동하는 힐데가르데에게 반해 청혼하고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가는 듯 했다. 

그러나 결혼식을 올린 후 입항 하기 하루 전, 칼 리치몬드가 급사하고 만다. 앤턴 콜프는 새로 작성한 유서가 아직 등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칼 리치몬드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면  자신들은 한 푼도 받지 못한다며 그의 죽음을 숨기자고 제안한다. 힐데가르데는 칼 리치몬드의 시체를 잠이 든 것처럼 휠체어에 태워 집으로 옮기고 하루를 버티려 하지만 이를 이상하게 생각한 운전사의 신고로 경찰이 들이닥친다.

칼 리치몬드의 사망 사실을 은폐한 죄를 추궁받던 힐데가르데에게 새로운 죄목이 추가된다. 바로 칼 리치몬드의 살해죄였다. 부검 결과 그는 살해당했음이 밝혀진 것이다. 힐데가르데는 앤턴 콜프가 곤경에 빠진 자신을 구해줄 것이라 생각하지만 경찰들은 알 수 없는 말만 반복한다.

유서를 새로 등록하기 위해 앤턴 콜프가 시간을 늦추자고 했다는 그녀의 말에 경찰들은 새로운 유서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고 말한다. 또 앤턴 콜프가 양부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앤턴 콜프가 친부로 버젓이 등록되어 있는데도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했다. 혼동에 빠진 그녀를 찾아온 앤턴 콜프가 그녀를 이용해서 무슨 짓을 했는지 하나 하나 알려준다.

앤턴 콜프는 힐데가르데가 폭격당한 도시 함부르크 출신의 고아라는 것에 착안해 함부르크 관청의 서류를 위조하여 그녀가 자신의 친딸인 것처럼 서류를 꾸미고, 칼 리치몬드를 살해한 후에 유서를 등록해야 한다는 핑계를 대며 그녀로 하여금 시체를 옮기게 만든다. 그외에도 앤턴 콜프는 여러가지 조작을 가해 힐데가르데가 유산을 노리고 칼 리치몬드를 살해한 것처럼 꾸민다. 그녀가 교수형에 처해지면 그녀가 물려받은 모든 재산은 아버지인 자신에게 자동으로 넘어올 것이었다. 힐데가르데는 자신의 무죄를 항변하면 할수록 헤어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비단 양말의 튼튼함에 의지해 생을 마감하고 만다.

 

1956년에 발표된 <지푸라기 여자(La Femme de Paille)>는 불어의 'Homme de Paille'에서 따온 것으로 미끼가 된 여자를 뜻한다고 한다. 미스터리 소설에서는 보통 범인이 밝혀지고 그가 처벌 받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소설에서는 범인에게 걸려든 가련한 여인이 스스로 자살함으로서 막을 내린다. 

1964년에 배질 디어든 감독, 숀 코네리와 지나 롤로브리지다가 주연한 영화 <Woman of Straw>에서는 관중들의 정서를 감안하여 해피 앤드로 수정되어 제작된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20956278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