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 자살 노트를 쓰는 살인자,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2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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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키 마운틴 뉴스>에서 살인사건 기획 기사를 다루는 잭 매커보이에게 어느 날 형사 두 명이 찾아온다. 그들은 잭의 쌍둥이 형 션이 호숫가에 차를 세운 뒤 권총으로 자살했다고 알려준다. 잭은 죽음과 어느 정도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함으로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왔지만 그들이 알려준 소식은 그런 잭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션은 <블랙 달리아> 사건에 비견될 정도로 잔혹하게 살해된 테레사 로프턴 사건에 몰두해 있었는데 사건에 자신을 투영시킨 나머지 우울증에 시달려 왔었고 죽기 전 차 유리창에 '공간을 넘고 시간을 넘어' 라는, 모호하긴 하나 유서로 간주될 만한 말을 남겼다.

잭은 션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라도 기사를 써야만 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잭의 결심이 가족들에게는 직업적인 이기심으로 비춰진다. 

잭은 기사를 쓰기 위해 자살한 경찰관들의 사건을 검토하기 시작하는데, 우연히 다른 경찰관의 자살 사건에서도 션이 남긴 것과 같은 모호한 문구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것은 에드가 엘런 포의 시구였다. 잭은 이러한 사례가 더 있는지 조사하기 시작하는데, 놀랍게도 여섯 건이나 되는 경찰관 자살 사건에서 포의 시가 유서로 사용되었음을 알게 된다. 그들의 자살 사건은 사실은 교묘하게 위장된 경찰관 살해 사건이었던 것이다.

잭은 자살로 처리된 경찰관들의 파트너를 찾아다니며 자신이 알아낸 바를 공유하고 재수사를 촉구한다. 파트너들은 자살 사건이 납득 되지 않았지만 너무나 명백해 보이는 증거들 때문에 살해 사건으로 다루지 못했을 뿐이었으므로 잭의 출현은 환영을 받았다. 이제 경찰관 연쇄 살인범을 잡기 위한 수사가 시작된다. 

하지만 전국적인 연쇄살인의 수사는 FBI가 맡도록 되어 있었고, 단서를 얻는 과정에서 전직 기자이자 정보원인 워런의 실수, 혹은 의도적인 배신 때문에 잭은 FBI에게 노출되고 만다. FBI는 만약 잭이 기사를 쓴다면 특종은 얻을 수 있겠지만 형을 살해한 범인은 영영 자취를 감춰버릴 것이라며 사건 해결 이후에 기사를 써줄 것을 요청한다. 잭은 특종이 아쉬웠으나 FBI의 의견도 옳다고 여겨 자신을 수사에 참여하게 해줄 것을 조건으로 제안을 받아들인다. 

잭은 FBI 요원 레이철의 감시 하에 수사에 참여하게 되는데 그녀와 잭은 한정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함께 하다 보니 점차 상대방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레이철의 전 남편 소슨은 그런 잭을 고깝게 생각했고 전직 기자 워런에게 정보를 흘린 것도 그의 소행으로 생각되었다. 

그 즈음 아동성추행범 글래든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가 살해된 경찰관들이 집착했던 사건의 범인임이 확실시 되었다. 그가 경찰관들을 꾀어내기 위해 아이들이나 아이들의 보모를 잔인하게 살해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추적하는 경찰관을 살해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의 행적과 경찰관들의 사망 지점은 일치하고 있었다. 그가 경찰관에게 체포되었다가 보석으로 풀려나며 카메라를 압수당했다는 사실에 주목한 FBI는 그의 생계 수단이 아동들을 찍은 추잡한 사진이라 판단하고 동일 기종의 카메라를 사리라 추측한다. 그가 카메라를 주문한 가게를 확인한 FBI는 함정을 파고 그를 기다린다. 마침내 나타난 글래든은 소슨이 실수하는 틈을 타 그를 살해하고 잭과 난투극을 벌인다. 총이 그를 향한 순간, 그는 그것을 원하기라도 한 듯이 방아쇠를 당겨 죽음에 이른다. 

얼마 후 워런이 넉살 좋게 잭에게 인터뷰 요청을 한다. 잭은 동업자 의식을 발휘해 그의 요청에 응해준다. 헤어질 때 워런은 잭에게 기삿거리를 가로챈 것을 사과하며 자신에게 정보를 준 것이 누군지는 밝힐 수 없지만 적어도 소슨이 아니라는 것만은 밝힐 수 있다며 떠나간다.

잭의 머리속에서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며 퍼즐 조각들이 맞춰지기 시작한다. 소슨이 자신의 방에서 워런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다면 그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것은 레이철 뿐이었다. 잭은 그 날 소슨의 방에서 걸려간 전화 번호 모두를 조사한다. 그리고 글래든이 드나들었던 아동성애자들의 인터넷 사이트 접속 번호가 그 안에 들어 있음을 알게 되고, 레이철이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당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녀의 방에서 본 달력의 휴가기간과 경찰관이 살해된 기간이 일치하는 점 등 모든 것들이 글래든의 뒤에 숨어 있던 범인이 레이철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이 사실을 FBI 팀장에게 모두 이야기한 잭은 레이철의 범행을 입증하기 위해 도청장치가 되어 있는 집으로 떠난다. 그리고 그 집에서 잭은 또 다른 진실을 목도하게 된다.

 

얼마 전에 경향신문에서 프로파일러에 관한 기사를 읽다가 인용된 <시인>의 첫 구절에 끌려 읽게 되었다. 그 첫 구절은 이렇다.

 

나는 죽음 담당이다. 죽음이 내 생업의 기반이다. 내 직업적인 명성의 기반도 죽음이다. 나는 장의사처럼 정확하고 열정적으로 죽음을 다룬다.

 

스티븐 킹 역시 코넬리의 첫 문장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스티븐 킹은 <시인>의 빼어난 구성과 매끈한 반전을 꼽아가며 이 작품을 고전의 반열에 올려도 손색이 없다고 말한다. 첫 문장에서 독자를 사로잡은 후에도 소설은 독자를 시종일관 긴장하게 만들고 반전은 게임의 법칙을 지키며 거듭된다. 독자를 속이지 않는 반전은 통쾌하다.

 

사이코패스라는 말이 회자된 것이 십년 이쪽 저쪽으로 생각된다. 사이코패스에 관한 가장 훌륭한 소설 중 하나인 기시 유스케의 <검은집> 과 마찬가지로 <시인>에서도 사이코패스가 등장한다. 

 

작가는 레이철의 입을 빌어 말한다.


"우리가 뒤쫓는 놈들은...... 개중에는 아무 이유 없이 그러는 놈들도 있어요......그런 놈들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건 산산조각으로 부서진 거울을 다시 맞추는 것과 똑같아요. 그놈들의 행동을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에 우린 그냥 놈들은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해버려요. 달나라에서 온 놈들이라고. 이 시인이라는 녀석이 살던 달에서는 그런 본능을 따르는 것이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일이겠죠. 놈은 그런 본능에 따라 자신이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에요."

 

성폭행범들이 출옥한지 일주일만에 범행을 저지르거나 전자발찌를 찬 채로 여성을 노리는 일들이 비근한 요즘, 성폭행범들의 범죄 행태 역시 사이코패스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느낀다. 달나라에서 온 그들에게 지구의 법칙을 습득하도록 재활의 기회를 준다는 것은 비극의 씨앗을 심는 행위이다. 그들은 그들의 본능을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없는 자들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성폭행범들에 관한 기사 댓글에는 유독 전체주의적인 댓글들이 많이 달린다. 삼청교육대 부활을 부르짖는 사람도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사회가 보수화되면 될 수록 성폭행이 증가하고, 그에 대한 대책으로 더욱 보수적인 정책들이 입안된다는 것이다. 

150여년 전, 현명한 사람이 공창 제도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르주아지들이 자신의 아내를 성폭행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필요한 제도라고 했다. 또한 가족을 구성할 수 없는 가난한 자들이 성적 욕구를 해소함으로서 사회에 대한 안전판 역할도 하리라면서 부르주아지들이 공식적으로는 공창제도를 혐오스러워하면서도 뒤로는 그 공창제도를 유지 존속시킬 것이라 예견했다. 공창제도가 안전판 역할을 해야만 하는 사회 모순은 전혀 해결된 바가 없다. 성범죄는 더욱 증가하고, 우리 사회는 더욱 보수화될 것이라는 나의 불안감은 전혀 근거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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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를 죽였다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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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히로와 미와코는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각기 다른 집에 맡겨져 길러진다. 15년 동안 떨어져 지내는 동안 다카히로는 착실히 공부해서 대학교 연구원이 되었고 미와코는 보험회사에 취직해 일을 하는 한편 틈틈이 시를 쓴다.

성년이 되어 다시 만난 남매는 어릴 적 살던 집에서 15년의 공백을 벌충하기라도 하듯 서로를 아끼며 생활한다. 하지만 서로의 고독감과 상실감이 너무나 닮았다는 점을 발견한 후 서로를 이성으로 바라보기 시작했고 결국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고 만다.

얼마 후 미와코가 쓴 시가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된다. 소설가 호다카가 그녀에게 호감을 나타내는데 그는 베스트셀러 소설가로 많은 돈을 벌어들인 후 드라마 각본과 영화에도 손을 대고 있었다. 미와코는 다카히로와 계속 관계를 지속시켜 나가선 안된다는 생각에 호다카에게 마음을 열고, 둘은 결혼 약속을 잡는다.

 

결혼식을 앞둔 날 관계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결혼식 준비를 의논한다. 모인 사람은 다카히로와 미와코, 호다카, 그리고 호다카 기획의 실무를 보고 있는 스루가 나오유키, 미와코를 담당하고 있는 편집 담당자 유키자사 가오리 이상 다섯 명이었다. 그들이 담소를 다누고 있을 때 창 밖에 한 여자가 나타난다. 그녀의 이름은 나미오카 준코, 호다카에게 버림 받은 여자였다.

사실 호다카는 소설로 돈을 벌어들인 후에 이것 저것 손을 댔다가 재정이 악화일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때 미와코의 시가 대 히트를 치자 그녀에게 전략적으로 접근한 것이다. 호다카는 자신의 아이를 낙태하기까지 한 나미오카 준코가 거치거리자 그녀에게 별다른 설명도 없이 버렸고, 뒤늦게 호다카의 결혼 사실을 알게 된 나미오카 준코가 호다카의 집을 찾아온 것이다.

호다카는 스루가를 시켜 그녀를 따돌리지만, 결국 그날 나미오카 준코는 다시 호다카의 집을 찾아와 유서를 남긴 채 음독자살하고 만다. 호다카와 스루가는 나미오카 준코의 시체와 유서를 그녀의 맨션으로 옮긴 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음 날 결혼식장으로 간다. 하지만 버진 로드를 먼저 걸어가던 호다카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진 후 사망하고 만다. 사인은 나미오카 준코와 마찬가지로 초산 스트리크닌 중독, 그가 상용하던 비염약이 바꿔치기 당한 것이 틀림 없었다.

 

비염약을 바꿔치기 할 수 있는 인물은 다카히로, 미와코, 스루가, 유키자사 이상 네 명이지만 미와코에게는 별다른 동기가 없으니 사실상 셋 중 한 명이 범인이다. 먼저 다카히로는 여동생을 다른 남자, 즉 호다카에게 시집 보낼 것을 괴로워한 것이 동기이다. 스루가의 경우에는 애초에 나미오카 준코와 좋아 지냈으나 그녀가 호다카를 만난 후 그를 사랑하다가 결국 비참하게 버림 받았기 때문에 원한을 품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유키자사 가오리는 호다카의 편집 담당이었던 시절에 그와 사귀었으나 역시 버림 받은 전력이 있었다.

 

가가 교이치로는 이들 세 명의 행적을 면밀히 조사해 각각의 동기와 기회가 어떻게 범행으로 이어지려 했는지를 말한다. 나미오카 준코의 집에 시체를 옮기러 간 스루가는 그녀가 만든 초산 스트리크닌 비염약을 훔쳐 냈고, 유키자사 가오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카히로는 우연히 나미오카 준코가 약을 바꿔치기 하는 장면을 발견하고 약을 훔쳐낸다.

스루가는 다카히로가 호다카에게 증오심을 품고 있음을 알고 그를 협박해 약을 바꿔치기 하도록 강요했고, 유키자사 가오리는 스루가의 증오심을 이용해 그가 약을 바꿔칠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그들이 훔쳐낸 약들은 모두 사용되지 않은 채 다시 발견되었고, 그들 모두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다.

가가 교이치로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며 범인을 지목한다. 호다카의 필케이스에는 지금 이곳에 없는 사람의 지문이 찍혀 있고, 그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 바로 당신이 범인이다.

 

내가 좋아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가 시리즈이다. 하지만 용의자들의 1인칭 시점을 교차하며 소설이 전개되기 때문에 다른 가가 시리즈 처럼 가가 형사의 매력이 발산되는 작품은 아니다.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와 마찬가지로 모든 단서를 제공하고 난 후 독자에게 직접 범인을 맞추어 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고, 니시가미 신타의 <추리 안내서>를 봉인된 부록으로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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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타의 매 열린책들 세계문학 63
대실 해밋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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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은 길고 뼈가 불거진 데다 끝 부분이 튀어나와서 V자 모양을 이루고 그 위에 자리 잡은 입 또한 V자, 휘어진 두 개의 콧구멍도  작은 V를 그리고 숱 많은 눈썹과 갈색 머리카락까지 V자를 이루는 새뮤얼 스페이드는 전체적으로  유쾌한 금발의 악마 같은 인상을 한 탐정이다.

어느 날 비서 에피 페린이 젊고 아리따운 아가씨가 사건을 의뢰하러 왔다고 전하자 스페이드는 반색을 하며 반긴다. 의뢰인은 그녀의 여동생이 플로이드 서스비라는 불량한 남자에게 걸려들어 집을 나갔다며 그를 미행해 여동생의 행방을 알아내 주길 원한다. 스페이드는 고액의 수수료를 받은 후 동업자 마일스 아처로 하여금 서스비를 미행하도록 한다.

하지만 그날 밤, 마일스 아처가 권총에 맞아 살해당했다는 전화가 걸려오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서스비 역시 호텔 앞에서 총에 맞아 숨진다.

경찰은 스페이드를 살인 혐의로 몰아간다. 마일스의 경우 그의 아내 아이바가 스페이드와 불장난을 하다가 최근에는 이혼을 요구하는 등 치정이 얽혀 있었고, 서스비의 경우에는 동료를 살해한 범인을 스페이드가 직접 단죄한 것일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의 추궁에서 어찌어찌 벗어난 스페이드는 여자가 의뢰한 사건의 이면에 뭔가 다른 것이 있음을 직감한다. 그즈음 스페이드는 자신을 미행하는 자가 있음을 알게 된다.

한편 스페이드의 사무실에 또 다른 의뢰인이 나타나는데 그는 조엘 카이로라는 자로 매 조각상을 찾아주면 5천 달러라는 거금을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또 다른 의뢰인 거트먼이 나타난다. 거트먼은 조엘 카이로가 제시한 금액보다 훨씬 높은 금액을 제시하며 매 조각상이 무엇인지도 알려준다.

 

예루살렘의 성 요한 기사단은 1523년 슐레이만 대제가 자신들을 로도스 섬에서 쫓아내자 크레타 섬으로 가서 1530년까지 지내다가 카를 황제를 설득하여 몰타, 고조, 트리폴리를 달라고 한다. 카를 황제는 몰타가 아직 스페인의 지배에 있다는 표시로 황제에게 매년 매 한 마리를 공물로 바치라는 조건을 내걸며 그들의 요구를 들어준다.

기사단은 해적질과 약탈로 엄청난 부를 거머쥐자 온갖 보석을 박아 넣어 공물로 바칠 매를 제작한다. 하지만 매는 운송 중 해적에게 약탈 당해 스페인에 닿지 못하고, 그 후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뀐다. 그 와중에 매의 가치를 정확히 모르던 자들의 손을 거치며 검은색 도료와 에나멜이 덧칠 되었고 현재는 그저 검은색 매 조각상이 되었다.

 

거트먼은 이 매의 가치를 알게 된 후 17년간 추적해온 자였고, 브리지드 오쇼네시 역시 매와 관련된 인물이었다.

 

얼마 후 스페이드의 사무실로 거구의 사내가 방문한다. 사내는 사무실로 들어서자 마자 꾸러미를 안은 채 쓰러져 죽고 만다. 꾸러미를 풀어보니 몰타의 매가 들어있었다. 거구의 사내는 브리지드 오쇼네시가 맡긴 매를 운송해준 선장이었다. 그리고 실종된 브리지드 오쇼네시로부터 도움을 청하는 전화를 걸려온다.

브리지드 오쇼네시가 말한 장소에는 거트먼과 조엘 카이로, 그리고 스페이드를 미행하던 젊은 총잡이가 있었다. 총구에 둘러싸인 스페이드는 태연하게 거트먼과 협상을 진행시켜 나간다. 스페이드는 거트먼에게 기꺼이 몰타의 매를 돌려주고 소정의 수고비를 받을 의사가 있으나 문제는 세 건의 살인이라며 희생양이 필요하다고 거트먼을 어른다. 경찰은 사건의 진실에 아주 근접해 있는데 희생양을 던져준다면 어떻게든 단순 살인사건으로 귀결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어물쩡 넘어가려 했다가는 몰타의 매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까지 모두 백일하에 드러나고 말것이라 말하는 스페이드의 말에 거트먼이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자 그들 사이에 미묘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젊은 총잡이는 자신이 희생양으로 경찰에 넘겨질 것이라는데 분개한다.

거트먼은 매가 진짜인지 파악하는 것이 먼저라며 매를 칠을 벗겨보는데 매는 가짜로 드러난다. 거트먼 일당은 자신들이 운송해온 매가 가짜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화를 내며 떠나고, 스페이드는 거트먼에게 경비 명목으로 천 달러를 받는다.

 

그들이 떠난 즉시 경찰에게 신고를 한 스페이드는 브리지드 오쇼네시에게 말한다. 마일스 아처는 맘에 들지 않는 자였고 동료로서도 형편 없었지만 서스비에게 당할 만큼 얼간이도 아니었다고. 브리지드 오쇼네시는 스페이드의 사랑에 희망을 걸지만 스페이드는 매몰차게 브리지드 오쇼네시를 경찰에 넘긴다. 경찰은 스페이드에게 거트먼이 젊은 총잡이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알려주고, 에피 페린은 아처의 아내 아이바가 사무실에 찾아왔음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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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실 해밋을 알게 된 것은 그의 소설이 아니라 사회과학 책에서였다. 매카시즘의 광풍에 희생된 사람들을 거론하는 구절에 작가 대실 해밋이 있었는데 그가 어떤 책을 썼는지는 몰랐었다. 그러다가 레이먼드 챈들러, 로스 맥도널드를 알게 되면서 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작가가 바로 대실 해밋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필립 말로와 루 아처는 물론이고 가깝게는 오사와 아리마사의 사메지마 등이 모두 스페이드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인물들이다.

대실 해밋은 실제로 미국 최대 탐정 회사인 핑커턴에 근무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냉혹한 탐정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1920년대는 밀주법 시대였고 미국 독자들은 범죄의 낭만적 속성에 매료되었다.

대실 해밋이 작가 활동을 한 것은 그리 길지 않고 그의 행보도 언뜻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 그는 1934년 마지막 소설을 발표한 후 영화 작업에 몰두했고, 1940년대에는 정치에 몰두해 공산당 활동을 하다가 매카시즘의 광풍 아래 옥살이를 한다. 1942년에는 사병으로 재입대해 세계대전에 참전하는가 하면, 제대 후에는 제퍼슨 사회과학 대학에서 추리소설 작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소설 속에는 액자 속 이야기가 하나 나온다. 한 사내가 아내와 아이들을 둔 채 홀연히 사라진다. 그가 사라져야할 어떤 이유도 없었고, 막대한 재산도 그대로였기 때문에 아내는 남편이 사라진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내는 탐정에게 남편을 찾아달라고 의뢰했는데 사라진 남편은 성만 바꾼채 다른 곳에서 이전과 비슷한 삶을 살고 있었다. 사라진 이유를 묻는 탐정에게 사내는 말한다. 어느 날 점심 먹으러 가는 길에 공사장에서 무엇인가 떨어져 보도를 박살내는 것을 보았는데 '누군가 인생의 어두운 문을 열고 그 안을 보여 준 것 같다' 고 느꼈다고 했다. 그 길로 외부의 강요에 의해 좋은 남편이고 아버지이길 버리고 자발적으로 다른 삶을 택했다고 했다.

 

대실 해밋은 조스에게 이 작품을 헌정하고 있는데 해설자에 의하면 조스는 대실 해밋의 아내 조세핀으로 그녀와 해밋은 작품을 쓸 당시 별거중이었고 끝내 재결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작품을 헌정한 이유는 어쩌면 액자 속 이야기에서 유추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200433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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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안다는 것 열린책들 세계문학 83
아모스 오즈 지음, 최창모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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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엘은 이스라엘 국가 정보 부대의 비밀 요원으로 23년간 일을 하다가 은퇴한다. 영화 속 스파이들처럼 권총을 꺼내 들거나 추격전을 벌여 왔던 것은 아니었다. 요엘은 그저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 집중력을 발휘했고 적당한 값의 정보를 사고 팔았다. 아내 이브리아는 그런 요엘을 '이해한다'고 했다.

요엘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해외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중 아내가 감전 사고로 사망한다. 비가 오는 날 아내는 전선을 건너려다 감전 당했고, 이를 지켜보던 이웃 이타마르 비트킨이 아내를 구하려다가 함께 죽고 만다. 그것이 아내의 사망과 관련해 요엘이 전해들은 이야기였다. 

요엘은 그 이야기가 진실인지, 아니면 항간에 떠도는 소문처럼 아내와 이웃 비트킨이 함께 자살한 것인지, 또는 자신이 마지막 임무에서 실수한 무엇 때문에 아내가 살해당한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는 마지막 임무에서 잃어버린 버지니아 울프의 책 <델러웨이 부인>과 호텔 벽에서 본 도형들, 그리고 자신이 알아채지 못한 것인지도 모를 '휠체어에 탄 인물'에 대해 거듭 생각한다.

 

은퇴한 요엘은 라마트 로탄에 집을 얻고 간질병을 앓는 딸 네타, 어머니와 장모님과 함께 생활인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네타의 간질병 증세에 대해 아내 이브리아는 인정하지 않았고, 그 증세가 요엘로부터 기인한다고까지 생각했다. 요엘은 아내의 의견과 자신의 생각 중 어떤 것이 진실인지 알지 못한다. 

부동산 업자 아릭은 요엘에게 무조건적인 호의를 보였고 이웃에 사는 미국인 남매 랄프와 안 마리 역시 그러했다. 요엘은 안 마리와 관계를 갖기 시작하나 그 관계가 어떤 형태로 흘러갈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보 부대의 책임자 르 파트롱의 소환에 응한 요엘은 그가 제안한 복귀 요청을 거절한다. 르 파트롱은 방콕의 여자 정보제공자가 요엘을 특정했기 때문에 그가 가야한다고 주장했다. 르 파트롱은 그녀에게 요엘이 이름을 말했다는 사실에 주목해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요엘을 특정했다고 생각했다. 거듭된 간청에도 불구하고 요엘은 네타에 대한 책임감과 불길한 느낌 때문에 복귀를 고사한다. 대신 임무를 맡은 요엘의 친구 오스타쉰스키가 얼마 후 시체가 되어 이스라엘로 돌아온다.

 

죄책감을 느낀 요엘은 금기를 깨고 오스타쉰스키의 아버지를 찾아가 자신이 임무를 거절했기 때문에 그가 사망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한다. 하지만 오스타쉰스키의 누가 그를 방콕으로 보냈는지 묻고, 이름을 말하는 요엘에게 '반역자', '카인' 이라며 욕설을 퍼붓는다.

 

안 마리와 랄프가 요엘에게 관계를 명확히 할 것을 요청하나 요엘은 그들에게 부정적인 답변을 한다. 요엘은 네타가 더 이상 자신의 인생을 간섭받길 원하지 않는 성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어머니의 퇴행 증상이 심해진다. 요엘은 방콕으로 돌아가 진상을 조사하고, 혹은 조사하는 꿈을 꾸고난 후 병원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한다. 그가 자원봉사를 하면서 댄 이름은 사샤 샤인, 바로 오스타쉰스키가 자신에게 도움을 줄 때 썼던 가명이었다. 사람들은 요엘이 환자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여겼고, 요엘은 자원봉사를 통해 진실을 단번에 알게 되는 것을 단념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어느 순간 진실은 은밀하게 가물거리는 빛으로 다가올 것이고, 경계심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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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주인공 요엘을 정보 부대 요원으로 설정한 후 그의 주변에서 일어난 두 개의 죽음을 통해 개인과 국가의 조화 가능성을 묻는다. 

 

첫번째 죽음은 아내의 죽음이다. 그가 국가를 위한 임무를 수행하던 중 아내가 사망한다. 요엘은 아내의 사망을 단순한 사고사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내를 방치한 데 대한 뒤늦은 죄책감 때문에 그녀가 이웃집 남자와 연애를 하다가 자살했을지라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생각에 이르고, 더 나아가 자신이 임무 수행 중 실수한 어떤 문제 때문에 아내가 살해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으로까지 확장된다.

 

두번째 죽음은 동료의 죽음이다. 오스타쉰스키는 요엘이 복귀 요청을 거부했기 때문에 대신 임무를 수행하다가 사망한다. 요엘은 동료의 죽음에 대해서도 책임감과 죄책감을 동시에 느낀다. 하지만 정보 부대를 떠났기 때문에 동료가 죽은 원인을 밝히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개인적인 속죄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의 속죄에 대해 오스타쉰스키의 아버지는 '반역자', '카인' 이라며 비난한다.

 

요엘은 두 죽음의 진실을 알고 싶어하나 방법이 없다. 왜냐하면 그가 속한 경계의 바깥에서 죽음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가 국가적인 인물이었을 때는 아내가 죽었고, 그가 사인(私人)으로 돌아갔을 때에는 국가적인 차원의 죽음이 일어났다. 그는 각각의 죽음이 그린 경계 바깥에 스스로 위치했기 때문에 진실에 접근할 수 없고 의심과 망상의 경계를 더듬을 뿐이다. 그러한 의심과 망상에서 도피하기 위해 끊임없이 집안 일을 찾아내지만 그의 어머니는 요엘에게 무언가 '일을 하라'고 권한다. 요엘 스스로도 그런 상태가 되면 과거 자신에게 괜찮은 일거리나 수익을 제안했던 사람들을 떠올린다. 

 

개인적인 영역과 국가적인 영역을 상정하고 각각의 영역 바깥에서 일어난 사건을 통해 '진실'이라는 것이 과연 파악될 수 있는지에 대한 아모스 오즈의 답변은 유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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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수탑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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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양친을 잃고 우에스기 백부의 손에서 자란 오토네는 먼 친척인 겐조가 백 억 엔의 유산 상속자로 자신을 지정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단 상속을 받기 위해서는 다카토 슌사쿠라는 사내와 결혼해야 하는데 그 사내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겐조는 백 세 가까운 노인으로 과거 은광 투자 때문에 다케우치 다이지라는 사내를 살해하고 미국으로 도망쳐 자수성가 한 인물이다. 그가 미국으로 도망치자 동업자인 다카토 쇼조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참수된다. 죄책감을 느낀 겐조는 일본으로 돌아와 삼수탑(三首塔)을 만들어 자신이 살해한 다케우치 다이지, 자신 대신 참수당한 다카토 쇼조, 그리고 자신의 머리를 세겨 넣은 공양탑을 만들고 막대한 부를 다케우치 다이지의 아들 다케우치 준고에게 물려주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막상 다케우치 준고를 만나보니 성정이 좋지 않아 겐조는 얼마간의 돈을 주어 준고를 일본으로 돌려보내고 자신의 후손과 다카토 쇼조의 후손을 짝지워 준 후 유산을 물려주기로 결심한다.

겐조는 자신의 후손 중 오토네라는 어린 여자아이가 마음에 들어 이 여자 아이를 다카토 쇼조의 후손 다카토 슌사쿠와 결혼시키기로 결심하고 두 아이의 지문을 두루마기에 찍어 삼수탑에 보관한 후 시간이 흐르자 위와 같은 유산 상속 조건을 내건 것이다.

 

하지만 다카토 슌사쿠를 찾았다고 생각한 순간 그가 살해되고 상속 조건은 복잡하게 변하고 만다. 만약 오토네가 슌사쿠와 결혼하지 않는다면 유산은 겐조 노인의 혈육 모두에게 균분되는 것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유산 상속인들은 모두 여성이었는데 오토네는 그들 모두가 지극히 타락한 사람들임에 경악한다. 클럽의 무희, 아크로바트 댄서, 어린 남성을 노리개로 삼아 쾌락을 즐기는 유한 마담, 수상한 서커스단의 연기자 등 직업도 수상쩍었지만 그들 모두에게는 기둥서방이라 할 만한 인물들이 하나씩 붙어 유산을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오토네 역시 다카토 슌사쿠의 사촌 다카토 고로라는 인물에게 유린당한 후 같은 처지가 되고 만다. 

 

상속인 한 명이 줄어들 때마다 배분되는 몫이 커진다는 사실을 깨닫은 직후부터 상속인들이 사망하기 시작한다. 제일 먼저 유한 마담 시마바라 아케미가 사망하고, 밤무대 댄서인 초코와 하나코까지 차례로 살해당한다. 사람들이 살해 당하면서 오토네는 자기도 모르게 다카토 고로에게 의지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오토네는 다카토 고로가 그들을 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면서도 그가 무척 냉철하면서도 자상하다는 점에 점차 이끌리는 것이다. 계속 이어지는 살인 사건의 의심이 오토네에게 쏠리면서 오토네와 다카토 고로는 유산 배분의 단초가 된 삼수탑을 찾는다. 

 

그곳에서 다카토 고로가 들려준 충격적인 진실은 오토네를 경악시키면서도 기쁘게 만든다. 바로 지금껏 악당으로 알고 있었던 다카토 고로가 사실은 다카토 슌사쿠였고, 다카토 고로는 유산을 목적으로 숙부가 자신과 바꿔치기 한 가짜라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를 증명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다카토 고로는 과거 자신의 지문이 찍힌 두루마기를 찾아 존재를 증명하기 전까지는 가짜 신분으로 살아야 했던 것.

 

다작 작가로 알려진 요코미조 세이시의 <삼수탑>은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그 격이 현저히 떨어진다. 이렇다할 수수께끼 풀이의 완성도는 보이지 않고 긴다이치 코스케는 등장은 하나 활약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작품은 전후 일본의 분위기를 적실하게 반영하고 있어 그 퇴폐적인 분위기가 농밀하게 그려진다. 여성이 정조를 잃으면 그 즉시 타락하거나 정조를 빼앗은 남성을 좇아야 한다는 관념이나 동성애를 절대악으로 보는 당시 사회 분위기 역시 잘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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