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더 선 시스터 문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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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나열된 얼마 되지 않은 한글책 중에 하나를 골라야 했으므로 별 기대없이 읽기 시작한 책이었다.
하지만 첫페이지를 넘기면서 시작해서 마지막 페이지를 다 읽고 덮을 때까지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워낙 이야기가 짧고 가벼운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 시절의 내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했다.

고등학교때부터 친구였던 두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에 관한 이야기가 각자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첫번째, 여자의 이야기이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여대생의 이야기.
그래서 더욱 마음에 와 닿는 이야기다.
마치 나 자신의 이야기 같기도 하고 혹은 내 친구의 이야기 같기도 한, 그런 사람에 관한 이야기.
나만 이토록 평범했던게 아니라는 사실에 묘한 위로를 받고 나도 모르게 주인공에게 동일시해 가면서
'맞아 맞아, 나도 그랬었지.'하고 맞장구를 치다보면 어느새 이야기가 끝자락에 와 있다.

「자의식 과잉인 주제에 콤플렉스 덩어리였고, 간신히 프라이버시를 손에 넣고도 외로움을 탔으며, 뭔가가 되고 싶어 죽겠는데 발을 내딛기는 무서웠다.
모든 것이 모순되고 삐걱거렸다. 그래도 그곳에서 발을 내디뎠으면 조금이나마 능력을 키울 수 있었을 테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작은 사이즈에 맞춘 탓에 스스로를 넓힐 기회를 놓친 채 시간을 보냈다는 생각이 든다. - 21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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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이 영원히 계속되면
누마타 마호카루 지음, 민경욱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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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복잡하게 얼켜있는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선뜻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문화 차이 때문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전 남편의 의붓딸을 사랑하는 사이다와 밀회를 하는 주인공 미즈사와,

잔혹한 성범죄 피해자인 아사미를 치료하다 본가정을 버리고 그녀와 재혼하는 미즈사와의 전남편 유이치로,

의붓 어머니가 된 아사미를 사랑하는 미즈사와와 유이치로의 아들인 후미히코,

의붓 오빠를 사랑하게 된 후유코,

후미히코를 좋아해 후유코를 시기하다 사이다의 사고사와 후유코의 자살에 관여하게 된 미치코.


이밖에도 등장인물은 몇몇이 더 있지만 사건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인물들은 아니니 빼기로 한다.

그들의 관계를 보는 것만으로도 뭔가 비정상적인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가.

행여 이들의 복잡한 관계에 남득할만한 개연성이라도 있었다면 그런대로 괜찮았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덧붙여 불쾌함이 느껴지는 대목이 있다.

그것은 이 소설의 발단이 되는 후미히코의 실종사건에서 중심인물이 되는 아사미에 관한 것이다.

그녀는 이야기의 전면에 나서지는 않지만 등장인물들의 관계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인물로 잔혹한 성범죄의 희생자다.

작가는 미즈사와의 생각을 빌어 아사미가 잔인한 성범죄의 희생자가 된 이유를 설명하는데

그녀의 몸에 흐르는 소토오리히메라는 것이 남자들의 이상한 욕망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런, 작가는 처참한 범죄의 희생자가 그런 운명일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마치 중세시대 마녀사냥을 연상케 한다.

가해를 하도록 만든 그 무엇인가가 이미 피해자에게 존재한다는 식의 망상으로

가해자의 폭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비정상적인 논리.

이 논리대로라면 피해자는 그런 일을 당해 마땅한 사람이 되고 만다.

이런 논리는 조금 억지스럽다.


그리고 또 하나, 400페이지가 넘는 꽤 두꺼운 분량의 실종사건의 전말이

책의 말미에서 갑작스럽게 일단락되는 것은 무척 당황스러운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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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도서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카트 멘쉬크 그림 / 문학사상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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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열렬한 팬이다.
대학교 1학년때 학교 도서관에서 [상실의 시대]를 처음 접하고 부터
그의 소설은 거의 다 읽었다. (단편소설 몇가지 정도만 못 읽었을까.)

판타지류의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지만
그의 작품에서 만큼은 예외다.

그런데 이 책은 정말 기괴하다.
표지그림에서부터 삽화, 이야기까지 모두 그렇다.
너무 짧은 이야기여서 그런가 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의 작품이라서 자꾸만 어떤 의미를 찾게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양사나이,
주인공 '나'가 읽고 싶어하는 오스만투르크 시대의 세금징수에 관한 책,
홀연히 나타나 음식을 가져다 주는 예쁜 소녀,
고압적인 나이든 사서,
사서의 개이며 어린 주인공을 물었던 검은 개,
검은 개가 입에 문 찌르레기,
도서관에 남겨 둔 가죽구두 한켤레.
상징이 될만한 것들 투성인데 그 의미가 무엇일지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나'를 지하 감옥에 가두고 음식과 책을 제공해 몸과 뇌를 살찌운 후 그 뇌를 먹는다는 이야기는
그림형제의 [헨젤과 그레텔]을 연상시킨다.
그렇다면 도서관은 과자집, 나이든 사서는 마녀가 되겠지.

헨젤과 그레텔도 기회를 엿보다 탈출에 성공했듯이
'나'도 양사나이와 찌르레기로 변한 예쁜 소녀의 도움을 받아 도서관에서 탈출해 집으로 돌아간다.
다른 것이 있다면 마녀와 마녀의 과자집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이상한 도서관과 나이 든 사서는 여전히 그곳에 그대로 있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먹잇감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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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5구의 여인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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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건
지루할 틈없이 빠르게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능력은 정말 탁월하지 않나 싶은 것.
결코 적은 양의 이야기가 아닌데 맘만 먹으면 아니 시간만 있으면 하루만에 다 읽을 수 있을 정도다.

그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늘 밑바닥까지 추락한다.

제자와 불륜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대학에서 쫓겨나고 아내와 이혼한 주인공.
그는 도망치듯 파리로 온다.
언젠가 한번쯤은 살아보고 싶다는 염원을 간직하고 있었던 곳이지만
어쨌든 지금의 처지는 그렇게 낭만적이진 못 하다.

그러나 파리라고 해서 다를까.
계속해서 그를 따라 다니는 불행한 기운.

읽다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내가 저만한 처지라면 파리마저도 떠나지 않을까 싶은데 어찌되었건 그는 악착같이 버틴다.

그러나 걱정마시라.
우연히 만난 환상의 여인은 그의 보호자임을 자처한다.
그녀의 손길이 스칠때마다 문제는 하나 둘씩 해결된다.
도무지 현실에선 가능하지 않은 방법으로
마법사가 나타나 마법의 가루를 뿌리듯이.

그의 소설에서 판타지를 만나리라곤 기대하지 못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판타지적인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의 취향때문인지
살짝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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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의 열쇠를 빌려 드립니다 이카가와 시 시리즈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임희선 옮김 / 지식여행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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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제목과 겉표지를 보고 몇 번이나 지나쳤던 소설이다.
우연히 읽은 일본 미스터리 소설들의 리뷰가 담긴 sark님의 블로그가 아니었다면 여전히 손이 가지 않았을 것.
sark님의 리뷰글을 읽으면서 어렸을때 탐닉했던 추리소설 시리즈가 생각났고
그 소설들을 읽느라 매일 한시간 일찍 피아노 학원에 갔던 일이 기억 났다.
피아노 학원엔 어린이용 추리 소설 전집이 있었는데 꽤 양이 많았다.
어찌나 재밌었는지 피아노 연습은 안하고 책만 읽어 댔는데
그래도 그 책들을 읽느라 학원엔 하루도 빠짐없이 갔더랬다.

그런 추억에 잠겨 있을 무렵,
마침 읽을 거리가 마땅치 않은 차에 도서관에 들렀고
몇가지 미스터리 소설류를 빌렸다.
그 중 하나가 이 책이다.

밀실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은 일본 만화 소년탐정 김전일을 생각나게 한다.
사건은 언제나 밀실에서 일어났고
김전일은 언제나 '범인은 이 안에 있다.'라고 외친다.
그리고는 사건을 하나 하나 풀어 가는데 그전까지 도무지 가능할것 같지 않은 일들이
그의 설명을 들으면 이해가 간다.
어린이용 추리 만화니까 딱히 복잡할 것은 없다.
그러나 언제나 범인을 찾아내는 통쾌한 결말은 신이 났다.

이 소설은 딱 그만큼까지다.
범행의 치밀함에 비해 살해 동기는 살짝 어이가 없으나
오랜만에 어린시절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유쾌한 추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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