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일의 레시피 키친앤소울 시리즈 Kitchen & Soul series 1
이부키 유키 지음, 김윤수 옮김 / 예담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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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일본식 음식 드라마나 영화에 푹 빠져 지낸적이 있다.
감각적인 화면도 좋고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이는 맛깔난 음식도 좋고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들도 좋고 차분하게 진행되는 갈등 해소도 좋다. 그러니까 나의 모든 감각기관에 더해 정신적인 즐거움까지 얹어 주는 느낌이랄까. 하루만에 읽어버린 이 책, <49일의 레시피>도 그와 같은 연장선 상에 있는 소설이다. 조금 다른 것이라면 앞서 이야기한 드라마나 영화가 음식이 주된 소재가 된다면 이 책에 나오는 음식은 가벼운 소재 뿐 이라는 것 정도.

갑작스런 오토미의 죽음으로 아쓰타는 삻을 포기한 것 처럼 보인다. 씻지도 않고 집안에 갇혀 지내는 그는 집으로 배달되는 우유로 하루 하루 연명한다. 그리고 그의 딸 유리코. 그녀는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얼마 되지않아 남편과의 이혼을 결심하고 친정으로 돌아온다. 그것은 남편의 내연녀에게 아이가 생겼기 때문이다. 막바지에 몰린 아버지와 딸이 시골집에서 조우한다. 그들에게는 지금 희망도 열정도 없다. 그런 그들에게 생전 본 적도 없는 노란 머리의 이모토가 나타난다. 이모토는 오토미가 자원봉사하던 리본하우스의 원생이었고 생전의 오토미의 부탁으로 아쓰타의 살림을 돌봐주기 위해 나타난 것이다. 이모토는 오토미가 유언처럼 남긴 말을 아쓰타와 유리코에게 전한다. 그녀는 자신의 49재가 시끌벅적하고 즐거운 연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이 말도 안되는 유언(아마 일본에서는 이것이 상식적인 일은 아닌가 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을 따르기 위해 그들은 함께 집을 단장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을 돕기 위해 이모토의 소개로 혼혈아인 하루미가 등장하고 그들은 49일동안 함께한다.

그 뒤로 벌어지는 일들은 우리가 흔히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이다. 아쓰타가 오토미와의 추억을 되살리며 생전에 그녀가 그를 위해 해 주었던 것들의 소중함을 깨달고 여생을 혼자서 살아가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해 가는 과정, 그리고 남편에 대한 오해를 풀어 나가고 그와의 관계를 회복함과 동시에 유리코 자신이 한 인격체로 홀로서는 과정. 그 과정 속에서 안내서와 같은 역할을 해 준 것은 오토미가 생전에 그들을 위해 만들어 둔 생활 레시피 카드다. 그 카드엔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기록되어 있고 49재를 준비하는 동안 아쓰타는 그 카드를 통해 혼자서 생활하는 법을 터득한다. 그리고 유리코는 그 카드를 통해 오토미가 그녀를 사랑하는 방식을 이해한다. 마침내 클라이맥스와도 같은 49재 날의 연회는 오토미와 관련된 모든 이들의 축제가 되며 그 축제의 정점은 오토미와 관련된 모든 이들, 특히 남편인 아쓰타와 의붓딸인 유리코와의 화합이 된다.

결말로 향하는 이야기 전개에서 이 책만의 기발한 아이디어는 없다. 그러나 오토미의 레시피와 유언이 가족들의 마음을 움직여가는 과정은 따뜻하고 뭉클하다. 눈물까지는 아니더라도 뜨거운 덩어리같은 것이 가슴 속에 차 오르는 느낌이랄까. 평범한 인간은 결국 평범한 것으로부터 감동 받기 마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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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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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살인자의 일기장을 훔쳐 보는 느낌이었다. 70세 노인 김병수는 자칭 은퇴한 연쇄 살인범이다. 그는 알츠하이머로 진단을 받자 사라져 가는 기억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처음엔 그 자신에 관한 기록이었던 것이 점차 25년만에 계획하는 새로운 살인에 대한 기록으로 변해 간다. 상대는 자신의 딸 은희를 노리는 또 다른 연쇄 살인범이다.


그러나 우리는 마지막 20여 페이지를 읽는동안 혼란에 빠진다. 지금까지 기록된 김병수의 기억과 전혀 다른 사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체포된다. 경찰서에서 취조를 받는동안 25년전에 행했던 모든 살인의 기억은 정확히 소환해 내면서도 마지막 살인 행각만은 기억해내지 못한다. 심지어 마지막 살인의 희생자는 그가 지키고자 했던 딸 은희다.


어디선가 우리는 우리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어렸을땐 그게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말도 안돼. 어떻게 기억이란게 내 맘대로 골라진단 말이야.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나니 그렇지 않더란 말이다. 똑같은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혹은 그녀와 내가 기억하는 것이 다르다. 어쩔땐 정반대의 말을 한다. 처음엔 내가 맞다고 우겼다. 세상에... 당신 건망증이 너무 심하거 아냐. 그러나 같은 일이 반복되면서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혹시 잘못된 기억의 주인공은 당신이 아니라 내가 아닐까. 그리고 이건 지나간 세월때문만은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젊은 시절엔 그럴 수도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조차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거겠지. 언제나 자신 있었으니까.


그래도 다행이야, 기억도 못하는 살인사건의 주인공이 된적은 없으니까 라고 생각하지는 말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접적인 살인을 저지르지 않는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의 불완전한 기억의 희생자가 되었겠는가. 비단 나라는 사람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 그러니까 우리는 완전하지 않은 기억을 철썩같이 믿으면서 철저하게 이기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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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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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에 잠이 깼다. 그대로 침대에 누워 몇번을 뒤척이다 아무래도 다시 잠이 들 것 같지 않아 거실로 나왔다. 테이블 위에만 불을 켜고 책을 집어 들었지만 창 밖의 칠흑같은 어둠이 의식되자 등골이 오싹해졌다. 때마침 바람소리와 빗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일순간 소설의 배경인 세령호의 새벽녘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는 버티지 못하고 침대로 돌아가 이불을 머리 위까지 끌어 올렸다.

이 소설에서 가장 위대한 부분은 등장 인물들에 대한 탁월한 심리묘사다. 그들의 심리 변화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사건 속에 실존하는 인물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렇다고해서 내가 그 인물이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 사건과는 상관없지만 동일시점에서 관찰하는 관찰자가 된 느낌이랄까. 그러니까 치밀한 묘사와 더불어 냉철한 객관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사실 정보에 관한 설명은 또 어떠한가. 예로 승환과 서원이 잠수를 하는 장면은 마치 전문가가 쓴 것처럼 자세하다. 철저한 사전조사가 뒷받침 되었다는 뜻이다. 작가가 글을 쓰는 방식이 얼마나 철두철미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와같은 사실과 증거는 독자로 하여금 의문이나 의심없이 글에 몰두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다.

7년동안 계속된 오영제의 집착은 사이코패스의 광기라는 단어를 제외하고는 설명할 수 없다.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그런 그가 사회적 강자라는 것이다. 그의 올가미에 갇혀 버린 현수, 승환, 서원은 과연 그곳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52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양 중에서 오른손에 남은 페이지수가 불과 십 여 장 뿐인데도 결말을 예측할 수 가 없다. 안타깝게도 이 시점에서는 패색이 짙어 보인다. 결국 돈과 명예를 움켜진 자들에게 이 사회의 시스템은 비겁한 손을 들어주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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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 개정판
카타야마 쿄이치 지음, 안중식 옮김 / 지식여행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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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이야기는 차고 넘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의 부류는 남자와 여자, 이렇게 두 종류뿐이지만 그들의 화학적 반응은 일년 365일 어느 순간에나 계속되는 것이기 때문인가 보다. 그 오랜시간의 진화와 한정된 소재에도 불구하고 사랑 이야기는 어쩌면 그 종류가 그렇게 다양한지.

제목이 너무 장렬해서 조금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제목만큼 대놓고 슬프게 만드는게 작가의 의도라면 얼마나 지루할까 지레 겁을 먹기도 했다. 더이상 최루성 소설을 읽으며 눈물, 콧물을 흘릴 나이는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영화의 유명세는 무시할 것이 못 되는가 보다. 참으로 자주 눈에 띄더니 결국 이게 아니다 싶으면 중간에 그만두면 되지 않은가 라는 핑계를 만들어 내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열다섯살에 같은 반에서 학급위원을 맡으며 알게 된 아키와 사쿠. 그들은 같은 일을 하며 자연스럽게 가까워 진다. 그러나 그들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 건 고등학교로 진학한 후다. 서로 고백을 하거나 교제를 하자고 제안한 것도 아닌데 그들은 자연스럽게 연인이 되고 누구나 인정하는 그런 사이가 된다. 마냥 행복할 것만 같은 나날은 아키가 불치병에 걸리면서 끝이 난다. 무균실 커튼 사이로 나날이 야위어 가는 아키의 모습에서 사쿠는 무심코 죽음을 예감한다.

현실과 회상이 교차되면서 사쿠의 입장에서 서술되는 그들의 사랑은 어찌나 담백하고 청량한지 군더더기없이 깔끔하기만 하다. 그래서 그들의 입맞춤은 마치 순결한 서약같은 느낌이다. 사쿠는 아키의 죽음에 대한 그의 감정도 담담하게 묘사한다. 그렇다고해서 그가 그녀의 죽음에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갑작스런 그녀의 죽음이 그를 절망하게 만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작가는 아키의 죽음과 사쿠의 절망을 극적으로 과장되게 표현하지 않는다. 그랬더라면 그들의 사랑이 오히려 구차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을 넘나 들며 묘사되는 사쿠의 혼란스런 감정들, 아키의 죽음으로 인해 뒤죽박죽 되어버린 감정의 실타래를 그는 과연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책의 말미에서 시간적 배경은 아키의 죽음에서부터 한참을 이동한 미래이자 동시에 사쿠가 존재하는 현재가 된다. 사쿠는 고향으로 돌아와 아키를 처음 만났던 중학교 교정으로 향한다. 교정에는 예전엔 있는지도 몰랐던 벚꽃 나무들이 가로수를 이루고 있다. 벚꽃 나무를 각인한 순간 유리병에 담긴채 뼛가루로만 존재했던 아키의 모습이 현실처럼 되살아 난다. 사쿠는 그들이 처음 만난 그 장소에서 아름답게 흩날리는 벚꽃 눈 사이로 그녀의 뼛가루를 날려 보내기로 한다. 그것은 오랫동안 간직했던 아키와의 사랑에 대한 예의이자 동시에 그녀의 부재에 대한 상실감의 극복을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비로소 그는 엉켜 있던 실타래의 끝부분을 찾아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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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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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손꼽히는 일류 작가이며 우리나라에서도 인기 작가인 에쿠니 가오리는 자신의 결혼 생활에 대해 솔직하고 담담하게 말한다. 그 정도 수준의 작가라면 조금은 우아하고 과장되게 포장해도 될 텐데 그럴 마음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유명 작가의 사생활을 훔쳐 본다는 호기심에 슬쩍 김이 샌다. 하지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되는 그녀의 솔직함이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해 줄테니 말이다. 그녀가 유명 작가라는 것과 상관없이 그녀의 결혼 생활은 보통 사람과 별다를게 없다는 사실이 더 흥미롭게 와 닿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우리처럼 남편과 함께 동네를 산책하고 남편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며 남편과의 추억이 담긴 장소로 여행을 떠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결혼 생활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을 품기도 한다. 아무리 사랑해서 결혼 했어도 같은 것보다는 다른 것이 백만가지도 더 되는 서로 다른 객체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끝도 없이 보낸 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선 결혼이라는게, 남녀가 만나 이루는 가장 완벽한 합체인 것 처럼 묘사되는 것은 동화 속에서나 등장 하는 왕자님 과 공주님의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차라리 그녀처럼 결혼 생활이란 약간의 의심과 약간의 갈등이 내재된 불완전한 모양새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더 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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