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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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이면 화끈하게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자유'란 무엇일까? 어떠한 삶을 살아야 자유롭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인생의 반도 살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내내 나는 심한 강압을 받아본 적도 없었고 무엇인가 탈출하고자 미친 짓을 해본 적도 없던 것 같다. 가끔의 사소한 일탈은 있긴 했지만 그것도 벌벌 떨면서 찡찡거리곤 했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나에게 조르바가 외치는 영혼의 자유는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극찬하는 <그리스인 조르바>. 나에게도 벅차는 감동을 안겨주지 않을까하고 생각하며 중반까지 읽었으나 생각보다 크게 오지 않았다. 아마도 그리스 사회와 영혼의 대한 개념, 니체의 사상, 종교와 같은 것들까지 새겨져있는 이 글이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책에서 무언가 뽑아내겠다는 부담'이 작용한게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천천히, 침착하게 계속해서 읽었더니 진정한 조르바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조르바의 행동들에 모두 고개가 끄덕여진 것은 아니었지만, 조르바는 '자유' 그 뜻대로 '내 멋대로 하는'자신만의 삶을 만들어내는 건 성공한 것 같다. 조르바의 인생철학, 한 마디로 말해서 '한 번 사는 인생, 진흙밭에 굴러도 봐야 재미있는 거 아니겠어?' 이런 식이다. 각자의 인생의 주도권은 물론 자신에게 있지만, '내 멋대로 해라!'는 쉽고도 어려운 명령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 자신의 행동에 이유를 붙이고 결과를 생각하고 도움을 바란다. 내가 한 일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걱정한다. 내가 준 것, 받은 것을 따지고 관계를 저울질한다. 조르바처럼, 화끈하게 딱 잘라버릴 순 없을까? 쿨하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산다는 게 곧 말썽이오." 내가 대꾸하지 않자 조르바가 계속했다. "죽으면 말썽이 없지. 산다는 것은...... 두목, 당신, 산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아시오? 허리띠를 풀고 말썽거리를 만드는게 바로 삶이오!" - 149p

 

"......그리스도가 나셨소, 우리 현명한 솔로몬이여, 죄 많은 백면서생이여! 세상 잡사 꼬치꼬치 따지지 맙시다! 예수님이 태어났어요, 안 났어요? 물론 태어나셨지....... 그런데 왜 멍청하게 앉아 있어요? 확대경으로 음료수를 들여다보면 (언젠가 기술자 하나가 가르쳐 줍디다) 물에는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쬐그만 벌레가 우글거린답디다. 보고는 못 마시지...... 안 마시면 목이 마르지....... 두목, 확대경을 부숴 버려요. 그럼 벌레도 사라지고, 물도 마실 수 있고, 정신이 번쩍 들고!" - 173p

 

"새 길을 닦으려면 새 계획을 세워야지요.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잠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하는가?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조르바, 잘해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은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 - 391p

 

모든 것이 어긋났을 때, 자신의 영혼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고 그 인내와 용기를 시험해 보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보이지 않는 강력한 적 (혹자는 하느님이라고 부르고 혹자는 악마라고 부르는)이 우리를 쳐부수려고 달려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는 부서지지 않았다. 외부적으로는 참패했으면서도 속으로는 정복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 인간은 더할 나위 없는 긍지와 환희를 느끼는 법이다. 외부적인 파멸은 지고의 행복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 417p

 

인간의 머리란 식료품 상점과 같은 거예요. 계속 계산합니다. 얼마를 지불했고 얼마를 벌었으니까 이익은 얼마고 손해는 얼마다! 머리란 좀상스러운 가게 주인이지요. 가진 걸 다 걸어볼 생각은 않고 꼭 예비금을 남겨 두니까. 이러니 줄을 자를 수 없지요. 아니, 아니야! 더 붙잡아 맬 뿐이지....... 이 잡것이! 줄을 놓쳐 버리면 머리라는 이 병신은 그만 허둥지둥합니다. 그러면 끝나는 거지. 그러나 인간이 이 줄을 자르지 안흘 바에야 살맛이 뭐 나겠어요? 노란 카밀레 맛이지. 멀건 카밀레 차 말이오. 럼주 같은 맛이 아니오. 잘라야 인생을 제대로 보게 되는데! - 429p

 

 

내가 인생과 맺은 계약에 시한 조건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려고 나는 가장 위험한 경사 길에서 브레이크를 풀어 봅니다. 인생이란, 가파른 경사도 있고 내리막길도 있는 법이지요. 잘난 놈들은 모두 자기 브레이크를 씁니다. 그러나 (두목, 이따금 내가 어떻게 생겨 먹었는가를 당신에게 보여주는 대목이겠는데) 나는 브레이크를 버린 지 오랩니다. 나는 꽈당 부딪히는 걸 두려워하지 않거든요. 기계가 선로를 이탈하는 걸 우리 기술자들은 <꽈당>이라고 한답니다. 내가 꽈당 하는 걸 조심한다면 천만의 말씀이지요. 밤이고 낮이고 나는 전속력으로 내달으며 신명 꼴리는 대로 합니다. 부딪쳐 작살이 난다면 그뿐이죠. 그래봐야 손해 갈 게 있을까요? 없어요. 천천히 가면 거기 안가나요? 물론 가죠. 기왕 갈 바에는 화끈하게 가자 이겁니다. - 215p

 

이 부분 너무 좋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암요 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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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배꼽, 그리스 - 인간의 탁월함, 그 근원을 찾아서 박경철 그리스 기행 1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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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문명과 카잔차키스를 엿보다 <문명의 배꼽, 그리스 - 박경철>

 

 

 

 

사백 페이지를 훌쩍 넘을 정도로 두꺼운 책이다. 읽기전 후루룩 펼쳐보니 감탄할 만한 사진들이 줄곧 눈에 들어오는 이 책은 '시골의사 ...' 책으로 유명한 박경철이 어릴 때부터 꿈꾸어왔던 그리스 곳곳을 여행하고 쓴 기록이다. 사실 사진이 많고 여행 기록이라고 해서 여행 에세이 정도의 가벼운 독서를 생각하면 조금 힘들만한 책이다. 그리스의 역사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작가가 그토록 동경하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흔적과 함께 걷고 보고 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책 속의 여행 내내 박경철은 카잔차키스와 대화를 주고 받는다. 그가 지금까지 읽어왔던 수많은 카잔차키스의 입과 글에서 나온 것들을 통해서.

그리스는 친숙하면서도 알듯 모를듯한 나라이다. 어릴 때 보았던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로 이것저것 접해본 이야기들은 많고, 요즘엔 뉴스에도 많이 등장하지만 사실 '현재의 그리스'의 모습들은 상상하기 힘들다. 그 찬란한 문명의 그림들이 얼마나 남아있을지, 어떻게 남아있을지 상상하기 힘들다. 코린토스, 올림피아, 스파르타.. 그 속에 숨겨진 비밀들이 얼마나 많은지. 몇몇 관광객들은 '그리스에는 그리스가 없다'며 투덜대기도 하는데 이런 비밀들을 다 알아두고 눈으로 보아야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올 것 같다. 작가의 말마따나 그리스는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는 곳'이라 한다. 또한 책을 통해 본 그리스인들은 무척이나 정이 많고 신념이 깊은 것처럼 보였다. 특히나 스파르타 (영화 300의 영향이 큰 듯...)의 문화와 사람들은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그리스의 역사, 신화와 함께 이야기하는 그리스 여행이야기. 그리고 더불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중한 글들까지 마음에 새길 수 있는 이 책 덕분에 그리스는 후에 유럽여행을 가게 될 때 한번 꼭 들르고 싶은 장소가 되었다.

 

 

 

 

 

이성이 신에 굴복하고 영원히 그 너머의 것을 동경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의 이성은 어둠 속을 방황하며 추위에 떨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은총을 구걸하는 가련한 손바닥에 마른 빵 부스러기를 쥔 채,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목소리를 향한 경배만 올리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의 말대로 불행은 결코 인생의 교훈이 될 수 없으며 위대한 비이성적 모험은 영원히 되풀이 되어야 하는 것일지 모른다. 아니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그의 운명과 맞서 사우는 유일한 방법이며, 비록 피를 흘리는 한이 있더라도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장렬한 순교일 것이다 - 61p

 

'물의 원천을 찾아 올라가는 어부', 그렇다 우리가 굳이... 이 샘이 그들의 생명줄이었다는 해석 따위를 시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페이레네 샘은 지금도 물이 흐르고 있고, 우리는 계속 바위를 밀어올리고 있다는 사실, 하지만 그 노역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며 우리는 반드시 그 삶을 치열하게 살아내야만 한다는 의지, 그것만이 중요할 뿐인 것을. - 97p

 

그리스인들에게는 인간이 곧 신이었고, 신이 곧 인간이었다. 이렇게 사상과 종교적 제약에서 자유로웠던 그리스인들은 일찌감치 인간에 눈을 떴던 최초의 인간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것을 '탁월함'이라고 불렀다. - 316p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나에게도 영웅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친구입니다." 그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그렇게 대답했다. 그리스인들에게 우정이란 이런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을 같이 사랑하고, 내가 살아가는 곳에 같이 살아가고, 내가 아끼는 것을 같이 아끼는 사람. 그것이 친구이고, 친구에게는 모든 선의를 베풀어야 하는 것. 그것이 그리스인들의 명예의 한 축을 담당하는 '우정'이란 말의 의미다. - 321p

 

어찌보면 그의 말대로 오늘날의 인간들은 노예로 태어나는지도 모른다. 태어나자마자 누구의 아들, 누구의 딸이며, 어느 나라의 국민이고, 어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의무가 부여되니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의무를 다하기 위해 헐떡거리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것은 주인이 아닌 노예의 삶에 다름 아니다. 고난에 맞서며 강건한 자세로 삶에 정면으로 다가서는 정신, 스파르타의 용맹이 새롭게 태어나야 할 시기다. - 416p

 

흰 벽이라도 어떤 안경을 쓰느냐에 따라 달리 보이게 마련이다. 붉은 안경을 쓰면 붉게 보이고, 푸른 안경을 쓰면 푸르게 보인다. 그렇다면 내가 본 이 벽은 어떤 빛깔일까? 붉은 빛? 아니면 푸른 빛? 본래의 벽이 어떠하든 간에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붉게 보이는 것도, 푸르게 보이는 것도 모두 거짓이 아니라는 점이다. '벽이 붉다'하지 말고 '내 눈에는 붉게 보인다'고 말하는 한 그 벽의 빛깔이 흰 것도, 붉은 것도, 푸른 것도 모두 진실이다. - 429p

 

 

 

이 책을 읽기 위해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었는데,

읽고 나니 이 책에 나온 것들을 다시 이해하기 위해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다시 한번 읽고 싶다.....

+ 조르바 뿐만 아니라 카잔차키스의 매력을 듬뿍 느낀듯 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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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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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들어진 문장들이 부르는 <칼의 노래 - 김훈>

 

 

 

 

 

내 책장 옆 언니의 책장 속에서 계속 눈에 아른아른 했던 <칼의 노래>의 모습. 그리고 이번에 통영 여행이야기를 다시 쓰면서 거북선 모형의 사진을 보고, 정보 검색 중에 만나게 되었던 '통제영'이라는 단어. 이 책은 이렇게 눈에 익다가 미루면서 우연히 나에게 들어오게 되었다. 이름만 들으면 다 알법한 한국 작가들 중에서 내가 아직 한 작품도 읽어보지 못한 작가분들이 많다. 김훈 작가는 그 중 하나였다. 옴니버스 에세이에서 조그만 토막글을 읽어본 것 이외에는 작품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김훈의 문장을 제대로 알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야 약간은 느껴본 것 같다.

 

<칼의 노래>는 비장함 그 자체일 것만 같았다. 충무공 이순신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왜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라는 구절은 뭐 지금이야 패러디로 많이들 이용되지만 비장함의 대명사로 남는 말이 아닌가. 그런데 <칼의 노래>는 이 비장함과 더불어 이순신 장군이 느꼈던 수많은 감정들을 내비치고 있다. 이 감정들을, <칼의 노래>는 전쟁상황에서 영웅의 행위로써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입을 빌린 그의 목소리로 보여주면서 줄기차게 가슴을 때린다. 그것도 엄청난 힘으로. 책 전체를 아우르는 분위기는 활활 타오르는 불꽃보다는 일정하게 바람타고 흔들리는 불꽃같다. 하지만 상상할 수도 없는 먼 옛날의 그 사람이 실제로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 감정이 그대로 전해져온다. 시종일관 그가 외치는 자연적인 죽음, 그리고 그가 어깨에 짊어진 백성과 조선과 왕의 무게가 나에게도 너무나 크게 느껴질 정도로. 조용히 폭발하는 그의 내면의 고민과 생각들이 내 속에도 깊이 남았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과 더불어 소중한 것들을 얻었다. 책 속의 하나하나의 문장들이다. 조용한듯, 휘몰아치는 듯, 내리치는 듯한 문장들을 만날 때마다 책을 빠른 속도로 읽곤 하는 내가 책 넘김을 멈출 정도로 매료되었다. 끝부분, 그의 눈으로 보이는 고요한 싸움 뒤에서의 관음포의 노을이 잊혀지지 않는다.

 

'한국문학의 희귀한 스타일리스트'라고 불리는 김훈 작가. 사실 스타일리스트라는 단어는 왠지 좀 가벼운 느낌이 들어서 바꾸어 말하고 싶다. '멋'이라는 말로.

그의 펜 끝에서 제대로 멋들어지는 단어들, 그의 솜씨가 무척이나 멋있다. 한국문학의 새로운 '멋'을 창조한 김훈의 다음 글이 벌써부터 보고 싶다.

 

 

 

 

 

 

목이야 어디로 갔건 간에 죽은 자는 죽어서 그 자신의 전쟁을 끝낸 것처럼 보였다. 이 끝없는 전쟁은 결국은 무의미한 장난이며, 이 세계도 마침내 무의미한 곳인가. 내 몸의 깊은 곳에서, 아마도 내가 알 수 없는 뼛속의 심연에서, 징징징, 칼이 울어대는 울음이 들리는 듯했다. 나는 등판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캄캄한 바다는 인광으로 뒤채었다. - 26p

 

울어지지 않는 울음 같기도 하고 슬픔 같기도 한 불덩어리가 내 몸 깊은 곳에서 치받고 올라오는 것을 나는 느꼈다. 방책, 아아 방책. 그때 나는 차라리 의금부 형틀에서 죽었기를 바랐다. 방책 없는 세상에서, 목숨이 살아남아 또다시 방책을 찾는다. - 39p

 

내가 적을 죽이면 적은 백성을 죽였고 적이 나를 죽인다면 백성들은 더욱 죽어나갈 것이었는데, 그 백성들의 쌀을 뺏고 빼앗아 적과 내가 나누어 먹고 있었다. 나의 적은 백성의 적이었고, 나는 적의 적이었는데, 백성들의 곡식을 나와 나의 적이 먹고 있었다. - 117p

 

죽음은 저마다의 죽음처럼 보였다. 적어도, 널빤지에 매달려서 덤벼들다가 내 부하들의 창검과 화살을 받는 순간부터 숨이 끊어질 때까지 그들의 살아 있는 몸의 고통과 무서움은 각자의 몫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각자의 몫들은 똑같은 고통과 똑같은 무서움이었다 하더라도, 서로 소통될 수 없는 저마다의 몪이었을 것이다. 저마다의 끝은 적막했고, 적막한 끝들이 끝나서 쓰레기로 바다를 덮었다. 그 소통되지 않는 고통과 무서움의 운명 위에서, 혹시라도 칼을 버리고 적과 화해할 수도 있을 테지만 죽음은 끝내 소통되지 않는 각자의 몫이었고 나는 여전히 적의 적이었으며 이 쓰레기의 바다 위에서 나는 칼을 차고 있어야 했다. 죽이되, 죽음을 벨 수 있는 칼이 나에게는 없었다. 나의 연안은 이승의 바다였다. - 135p

 

칼로 적을 겨눌 때, 칼은 칼날을 비켜선 모든 공간을 동시에 겨눈다. 칼은 겨누지 않는 곳을 겨누고, 겨누는 곳을 겨누지 않는다. 칼로 찰나를 겨눌 때 칼은 칼날에 닿지 않은, 닥쳐올 모든 찰나들을 겨눈다. 적 또한 그러하다. 공세 안에 수세가 살아 있지 않으면 죽는다. 그 반대도 또한 죽는다. 수와 공은 찰나마다 명멸한다. 적의 한 점을 겨누고 달려드는 공세는 허를 드러내서 적의 공세를 부른다. 가르며 나아가는 공세가 보이지 않는 수세의 무지개를 동시에 거느리지 못하면 공세는 곧 죽음이다. 적과 함께 춤추며 흐르되 흘러들어감이 없고, 흐르되 흐름의 밖에서 흐름의 안쪽을 찔러 마침내 거꾸로 흐르는 것이 칼이다. 칼은 죽음을 내어주면서 죽음을 받아낸다. 생사의 쓰레기는 땅 위로 널리고, 칼에는 존망의 찌꺼기가 묻지 않는다. - 202p

 


읽고 싶었던 김훈 작가의 세설이 절판되었다.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라는 제목. 얼마전까지만 해도 팔고 있었던 것 같았는데 (내가 잘못봤나...)

이제는 회원중고에 거의 두배 가까이 가격으로 팔린다는. 그래도 갖고싶다.... ㅠㅠㅠㅠㅠㅠㅠ 살까.... 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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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여자
레몽 장 지음, 김화영 옮김 / 세계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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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여자 - 레몽 장> 시간이 지나간다. 이야기가, 단어들이 지나간다

 

 

 

이 책을 처음 만날 때부터 왠지 읽었던 책인양 제목이 낯익다고 느껴졌다. 좋아했었던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가 생각이 났다. 혹시 비슷한 이야기일까, 리메이크는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계속해서 생각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그 책과 비교를 하고 있었다. 사실 잘 짜여진 이야기 형태로 비교하자면 <더 리더>가 낫지만, <책 읽어주는 여자>는 보다 '책'과 그 텍스트에 집중하는 이야기로 독자들을 이끌게 된다. 자신의 내밀한 공간인 '소리 잘 나는 방'에서 혼자만의 책 낭송을 하던 주인공 마리 꽁스땅스. 어느날 단순한 '책 읽는 여자'였던 그녀가 '책 읽어주는 여자'로 급변하게 되고 새로운 것들을 접하게 된다. 그녀가 독자로서 접하는 텍스트가 그녀의 입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에게 전해진다. 단어가 말해지고 이야기가 입을 통해 만들어지면서 그들의 귀에 들어가게 된다. 그 후 책 '듣기'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 더욱 더 많아지면서 그녀가 순수하게 지향했던 책 읽기가 직업이 되고 그들의 책 읽기에 무언가 불쾌한 것들도 같이 관여하기 시작한다.

 

책 읽기에서 책 읽어주기로의 변화는 이렇게 말의 어미를 바꾸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먼저 독자 (여기선 청취자와 다름없지만)에게 알맞은 책을 골라야할 것이고, 독자가 원하는 책이 나에게 맞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고, 책 읽기의 행위를 넘어 무언가 다른 것이 요구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렸을 때의 동화 구연동화 말고는 책 읽어주기를 한번도 도전해보지 못한, 내가 상상한 그 행위의 여러가지가 이 책에 들어있었다. 사실 중간까지는 직접 발췌된 텍스트들과 더불어 독서의 황홀함을 책 속의 인물들과 함께 나또한 느낄 수 있었다. 결말 부분에 가서는 뭔가 우스꽝스러운 장면들이 연출되어서 불편함을 느꼈다. 마지막에 등장한 책 <소돔과 120일>. 유해물 판정을 받을 정도로 정서에 안좋은... 굉장히 불쾌하고 위험한 책이라고 들었었는데 이 책이 여기서 등장할 줄이야! 아마 이 책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책 읽어주는 여자>의 이야기의 한 부분이 어떻게 흘러갈지 상상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결말이 책 읽는 행위처럼 그렇게 끝까지 은은하게 마무리했으면 좋았을걸. 너무 극단적인 상황이었지만 어쩌면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지도. 책 읽기를 소재로 한 소설이니만큼 사건이 아닌, 책으로 결말맺길 바란건 나만의 바람이었을까.

 

어쨌든 '책 읽어주기'는 이 책을 읽고서 왠지 궁금하고 하고 싶은 것이 되었다.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말하고, 귀로 다시 듣고, 듣는 사람의 느낌을 다시 읽는 것.

이것이야말로 오감만족의 독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우리는 시를 끝까지 읽어나간다. 내가 '우리'라고 하는 까닭은, 비록 나 혼자서 읽기는 하지만 그와 나 사이에 뭔가를 강하게 함께 나누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느끼는 것이 여간 흐뭇하지 않다. 드디어 우리는 텍스트를 끝까지 다 읽었다. - 103p

 

당신은 그렇지만 '책 읽어주는 여자'만은 아니지 않아요? ...... 나는 그를 빤히 쳐다본다. 아니, 왜 아녜요. 난 '책 읽어주는 여자'예요. 그는 팔을 축 늘어뜨린다. (그야말로 문자 그대로). 좋아요. 그러면 읽으세요. 그는 다시 자기의 안락의자로 가 앉는다. 나는 <사물들의 교훈>을 다시 읽는다. - 150p

 

다시 한번 더 글쓰기의 함정이 설치된다. 다시 한번 더 나는 숨바꼭질하는 아이, 자기가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거나 가장 원하는지 알지 못하는 아이 같아진다. 숨어있을 것인가 발각될 것인가. - 178p

 

나는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그러면서 동시에 궁지에 몰렸다는 느낌이다. 내 직업적인 명예를 도마 위에 올려놓는 딜레마에 빠진 기분이다. 응낙을 하면 나는 그의 덫에 걸려드는 셈이다. 거절을 하면 나는 '책 읽어주는 여자'가 아니게 된다. 책 읽어주는 여자는 '읽어야 한다. 남이 요구하는 것을 큰 소리로 읽어야 한다. 그 요구가 지나친 것만 아니기를 바라지만. 그는 책을 그냥 아무데나 펼친 것 같다. 그러나 그 책이 사드의 것이고 보면! - 242p

 

 

책의 뒷편에는 번역자가 진행한 작가 '레몽 장'의 인터뷰가 담겨있다. 문학을 전공한 교수이자 작가인 레몽 장이 프랑스 문학의 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전문적인 지식이라서 그런지 눈이 어질어질했다. 프랑스 문학의 '누보 로망'(새로운 문학)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프랑스 문학에 대해 관심이 많다면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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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2월, 눈에 띄는 신간 에세이 [by. 리니Rinny]

 

 

 

  새로운 년도의 첫 달은 정신없이 지나온 것 같다. 신간평가단으로서 처음 받아본 책들을 읽고 리뷰를 써보고, 개인적으로 쓰는 서평과는 달리 왠지 낯설은 설레임과 긴장감도 느껴보았다. 이제 신간 목록을 보면서 주목 신간을 작성하는 건 어느정도 익숙해진 듯 하다. 2월, 그리고 지금. 새해를 맞이하는 본격적인 행사인 '설'을 앞두고 자꾸만 눈에 보이는 이번 달의 신간을 살펴보았다. 전달과 다르게 익숙한 작가의 이름들이 많다. 익숙해서, 그만큼 반갑고도 기분 좋은 책들이다.

 

 

 

 

  

  <가난한 사랑노래 - 신경림> 실천문학사 | 2013년 1월

  - 25년 동안 꾸준히 사랑받아온 시집

 힘없는 그리고 가난한 젊음, 그들에게 보내는 신경림 시인의 따스한 노래. 원래는 88년에 출간되었다가 절판된 책이다. 25년동안 꾸준히 사랑받아 온 한국문학사에서 없어서는 안될 신경림 시인의 핵심 시집. 외롭고 힘든 우리 민중들에게 필요한 위안의 글을 담고 있지 않을까. 목차부터 민중시인의 다정함이 느껴진다.

 

 

 

 

 

 

 

 

 

 

  <소설의 기술 - 밀란 쿤데라> 권오룡 (옮긴이) | 민음사 | 2013-01-25

   - 밀란 쿤데라의 모든 것 

 밀란 쿤데라의 에세이, 대담, 연설문들을 엮은 쿤데라 전집. 사실, '소설의 기술'이란 제목에 무척 끌린다. 이 작가의 '소설쓰기'에 대해 엿볼 수 있는 책, 너무나 매력적이다. 작가의 소설을 이미 통달한 사람에게도, 아직 읽지 않은 사람에게도 많은 관심을 주는 책일 것 같다. 쿤데라의 소설처럼 묵직하고 집중을 요하는 이번 에세이, 이쯤이면 에세이는 가볍다고 치부할 수 없겠다.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 정호승> 황문성 (사진) | 비채 | 2013-01-16

  - 내가 좋아하는 시인의 산문집

 예전에 정호승 시인의 시를 읽고 행복한 위안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내가 정말로 용기를 잃었을 때, 그의 시를 접했었는데 이번엔 '용기가 되어준 한 마디'를 주제로 에세이가 나왔다. '가끔 우주의 크기를 생각해보세요'라는 1부의 주제부터 마음을 울린다. 희망을 말하는 인생의 멘토, 정호승 시인의 토닥토닥.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보고 싶다.

 

 

 

 

 

 

 

  <엄마와 딸 - 신달자> 민음사 | 2013-01-02

  - 엄마로 45년, 딸의 이름으로 70년

 엄마와 딸의 인생을 모두 겪어본 작가가 말하는 여자들의 이야기. '엄마'라는 이름은 왠지 모르게 언제나 아련하다. '딸'의 이름은 아직 갖지 못해 알지 못하는 내게 어떤 느낌인지 궁금하게 한다. 딸이 엄마의 이름을 또하나 가지게 될 때, 비로소 엄마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더욱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다. 엄마라는 존재, 딸이라는 존재. 깊게 생각해보고 표현할 수 있도록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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