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아내 - 위대한 예술을 내조한 화가들의 아내 이야기
사와치 히사에 지음, 변은숙 옮김 / 아트북스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예술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대상황도 중요하지만 그의 주변에 어떤 인물들이 있었는지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화가의 아내>는 화가가 아닌 아내들의 삶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화가 아내로서의 삶은 어떤 것이었을까. 화폭에 담긴 화가의 아내들, 캔버스 이면을 응시하는 눈빛은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감출 수 없는 사랑의 감정도, 삶의 애환도 모두 그 속에 녹아 있었다.

대부분의 화가들은 살아있을 때는 빛을 보지 못해 가난하게 살았다. 생활고에서 오는 어려움이 컸지만 아내들에게는 그것뿐 아니라 다른 어려움도 있었다. 바로 화가와 모델의 관계 때문에 힘들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며 아내가 그 사실을 알도록 노골적이었는지 등 정도의 차이는 존재했겠지만, 몇 시간이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보면 크고 작은 연애 사건이 생길만도 하다.

모델이었다가 애인이나 아내로 발전한 경우가 종종 있기에 결혼하고서도 아내들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기도 했고 별거에 들어가기도 했다. 사랑하기에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질투와 분노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었을 것이다.

비운의 여인, 올가 피카소

그 가운데 가장 아내의 마음을 아프게 한 사람은 피카소였다. 아내 올가와 첫눈에 사랑에 빠져 결혼했지만 첫 아이를 출산할 무렵 피카소의 마음은 이미 다른 여자에게 가 있었다. 화려한 여성 편력으로 유명한 피카소는 훌륭한 화가였지만 한 사람의 남편, 아버지로서는 낙제점수다. 애당초 그에게 가정 같은 것은 어울리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결혼하지 않고 평생 연애만 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를 사랑했던 많은 여성들이 덜 상처받았을지도 모른다. 조강지처 올가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공식적으로 피카소의 아내였다. 이혼해주지 않고 평생 속을 끓이다가 세상을 등졌다. 올가가 일찌감치 피카소를 떠나보냈다면 오히려 더 행복한 삶을 살았을 텐데. 사랑은 아이러니다.

구분하기 모호한 욕망과 천재성을 모두 가진 피카소의 인생에 여자들은 미노타우로스 같은 괴수의 제단에 바쳐지는 희생자의 꽃 같다. 피카소가 눈독을 들인 여자들에겐 평온한 인생이란 있을 수 없다. 미노타우로스가 사는 미궁의 문에 들어가는 사람은 희망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여자들이 알게 되는 것은, 피카소가 멀리 떠나버려 완전히 관계없는 존재가 되거나 악마의 화신이 되고 난 후이다. 임신 중인 아내를 배신한 일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몇 번이랄 것도 없이 되풀이되는 피카소의 ‘일상생활’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올가는 그런 피카소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204쪽)

피카소는 다른 화가들과는 달리 운이 좋게도 살아서 인정받은 화가였다. 그것은 그가 다른 화가들보다 월등히 장수했다는 것에서 이유를 찾을 수도 있겠다. 말년에는 서른 중반의 자클린을 아내로 맞이하였으나 그녀는 자식들을 만나지 못하게 했다. 자기중심적이었던 피카소는 결국 마지막에는 여자에게 된통 당한 꼴이 되고 말았다.

피카소에게 사랑은 작품 활동에 있어 늘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어주는 원동력이었다. 그렇다할지라도 인간으로서 피카소를 존경하기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빛의 화가 렘브란트와 아내 사스키아

자화상을 많이 그리기로 유명한 렘브란트는 <사스키아와 함께 있는 자화상>에서 환히 웃고 있다. 바보스럽게 보일정도로 천진한 웃음을 두고 저자는 두 번 봐도 두 번 모두 웃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이야기한다. 렘브란트는 ‘인물을 그저 아름답게만 그린 화가가 아니었고 인물의 내면과 개성을 파악하여 캔버스에 옮긴 화가’였으며 그의 경계심 없이 웃는 표정을 잊을 수 없다고 저자는 회고한다.

사스키아는 아이를 네 명 낳았으나 셋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두 세상을 떠났고 네 번째 아이만이 살아남았다. 사스키아는 지병이 있었기에 일찍 세상을 떠났다. 렘브란트는 ‘아무도 이루어내지 못하는 빛과 그림자의 효과를 회화의 세계에 처음 도입한 천재 화가’였지만 가장으로서는 부적격한 사람이었다는 혹독한 평가를 받기도 했다.

수집광이었던 렘브란트가 무분별하게 사들인 작품 소재용 귀금속이나 다른 화가들의 소묘작품들 때문에 후견인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 경제적으로 무능하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스키아 몫의 유산은 렘브란트가 재혼하지 않는 조건으로 아들과 렘브란트에게 남겨졌다. 후에 렘브란트는 그 재산 때문에 자신의 딸을 낳은 헨드리키와 결혼할 수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렘브란트는 파산하기에 이르렀다. 광적인 수집욕을 자신도 어쩌지 못한 탓이었다.

모딜리아니가 세상을 떠나자 며칠 후 아내 잔 에뷔테른은 투신자살을 택한다. 사랑을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여린 아내의 모습이 가슴을 울린다. 클로드 모네의 아내 카미유는 남편의 도약을 위해 생존을 위협하는 가난을 견디며 그를 도왔다. 클로드 모네가 그린 <임종을 맞은 카미유 모네>를 보면 그들 부부의 사랑을 짐작하게 된다.

화가의 아내 19명의 삶을 이야기하는 책은 300년이라는 시간을 아우르고 있다. 예술가의 삶에 있어 사랑이 차지하는 공간은 얼마나 될 것인가. 그림을 그리며 행복했을 화가들을 떠올려본다. 그 곁에서 묵묵히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 화가 아내들의 모습도 함께. 모델이 되어주기도 했던 아내들 역시 화가만큼이나 그림을 사랑했을 것이다.

영혼의 동반자로서의 몫을 톡톡히 해왔던 아내의 모습에서 독자들은 깊이 스며있는 사랑의 힘을 느낄 수 있다. 기실 예술은 사랑으로 꽃피는 그 무엇인가 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리랑 -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불꽃 같은 삶
님 웨일즈.김산 지음, 송영인 옮김 / 동녘 / 200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리랑>은 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삶을 기록한 책이다. 님 웨일즈가 김산을 만나게 된 것 자체가 어떤 운명이 아닐까. 그냥 묻힐 뻔 했던 혁명가가 님 웨일즈에 의해 다시 살아났다. 김산의 삶도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안겨주지만 님 웨일즈의 업적도 주목할 만하다.

님 웨일즈는 신문 기자로 당시 중국에 와서 사회 운동에 가담하고 있는 혁명가들의 생애를 자서전으로 만들었는데 자신이 만난 대략 25명의 혁명가 가운데 김산은 단연 돋보이는 여러 품성을 지닌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자신은 모든 것에 패배했지만, 자기 자신에게만큼은 승리했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김산이 1905년이라는 민족적 슬픔으로 가득찬 시기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아마도 훌륭한 지도자가 되어 현대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이루지 않았을까. 그는 기실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그처럼 성숙할 수 있다니 경이로울 따름이다.

나는 이따금씩 옌안에 있는 그 옹색한 방안에서 꾸밈없고 조용하게 자신의 신상 이야기를 해주던 김산의 모습을 생각한다. 그리고 미국이나 영국의 지식인 중에 철학적 객관성을 가지고 자기의 혹독한 시련을 이겨낼 수 있었던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하고 생각해 본다.

김산은 우리 시대에서 가장 많은 피를 흘리고, 가장 추악하고, 가장 혼란스러운 대변동 속으로 내던져진 한 명의 민감한 지식인이자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상주의적인 시인이요, 작가였다. 그는 아무런 환상도 갖고 있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냉소주의자도 아니었다. 그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인식했지만 또한 변화와 진보를 확신하였다. (48쪽)


님 웨일즈에 의하면 김산에게 ‘고통과 패배는 꿈을 없애버리기는커녕 오히려 그의 사상이 한층 깊은 의미를 지니고 타오르도록 만들어주었을 뿐’이라고 했다.

님 웨일즈는 도서관에서 자료를 수집하다가 특이한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한 사람의 이름으로 많은 도서가 대출되고 있어서 그를 한번 만나보고 싶었고 그는 바로 김산이었다. 님 웨일즈는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김산에게 편지를 보냈으나 한참동안 연락이 없어 포기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김산이 찾아왔다.

통역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미 영문으로 된 책을 많이 읽은 김산은 문법에 맞는 회화를 구사하지는 않았지만 님 웨일즈와의 의사소통에는 별 무리가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김산은 님 웨일즈에게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나갔다. 러일전쟁이 한창이던 1905년 3월 10일 김산은 평양 교외의 차산리라는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자라면서 동족들이 일본 순사에게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것을 보고 자라며 혁명가의 꿈을 키웠다. 소년 시절부터 영웅에 대한 존경심이 남달랐던 김산은 독립군에 가담해서 왜놈들을 혼내주겠다는 결의를 하곤 했다.

형의 구둣가게에서 일하며 중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고 얼마 후 일본으로 건너가 고학하며 대학에 다니기로 결심했다. 당시 조선에는 훌륭한 대학이 없어서 조선학생 대부분은 일본에 가서 고등교육을 받고 싶어했다고 한다.

일본에서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도쿄제대에 응시할 준비를 하는 가운데 1923년 관동대지진이 일어났고 학생 1000명을 포함하여 이본에 거주하던 조선인 6000명이 살해되었다. 중국인도 600명 이상 피살되는 대학살이 일어났다. 그 이후 많은 한국 학생들은 더 이상 일본으로 유학을 오지 않았으며 김산도 소련에서 학교를 다니며 공부를 계속할 생각으로 일본을 떠나 중국으로 갔다.

김산은 중학교 시절부터 우상이었던 톨스토이를 떠나 마르크스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동료 김충창에 의해 자연스레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김산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중국공산당에 가담하여 일본과 맞서 싸웠다.

그러다 일본군에게 잡혀 모진 고문을 당하고 풀려났는데 주위 사람들은 그렇게 쉽게 풀려난 게 이상하다는 듯 괴소문을 퍼뜨렸다. 일본 스파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오명을 쓴 채 그가 키운 중국공산당의 보안기관에 의해 처형당하고 만다.

일본과 맞서 싸우다 말라리아에 걸리기도 하고 모진 한파와 굶주림, 모진 고문 끝에 얻은 결핵 같은 것들은 오히려 그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그런 고통 속에서도 하나의 신념을 버리지 않은 그는 진정 영웅이었다. 어느 누가 강요한 적 없지만 오로지 조국의 독립만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서도 연애의 희생물이 되지 않겠다는 말을 되뇌던 혁명가의 모습에 독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아픔으로 굴곡진 역사를 되새겨보는 것이 오늘날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말 그대로 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혁명가 김산의 이야기는 일신의 안위를 위해서도 힘겨워 하는 현대인들에게 깊은 울림을 안겨줄 것이다. 리영희 선생의 경험처럼 뭉클하게 다가오는 이 책은 두고두고 많은 이들에게 읽힐 고전이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빅토리아의 발레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김의석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책을 처음 보았을 때 화려한 무용수의 생활을 담은 것이 아닐까 잠시 생각했다. 책장을 넘길수록 그것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이야기들이 펼쳐졌다.

아름다운 발레리나의 생활이 아니라 그것을 닮고 싶은 밑바닥 인생들의 처참한 생활이 역설처럼 흐르고 있었다. 마치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의 빈민가 어느 구석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기라도 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장면 장면이 묘사되고 있었다.

앙헬은 말을 훔친 대가로 감옥에 들어간다. 감옥이란 곳은 어찌 보면 지옥과도 다름없는 세계다. 독방이라면 외롭기 때문에 지옥일 테고, 여러 명이 함께 기거하는 곳이라면 인간이기를 포기한 존재가 있기에 그와 함께 하는 고통으로 지옥이다. 감옥에서 교화되어 출감하기보다는 더 악랄한 범죄자로 전락해버리는 경우가 생기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일테다.

앙헬은 이곳 감옥에서 예쁘장한 외모 때문에 수모를 당해야했다. 죄수들이 그를 이성로 여기는 모양이었다. 그 가운데 간수 한명도 포함이 되어 있었는데 앙헬은 출옥하면 입버릇처럼 간수를 죽일 것이라고 떠들고 다녔다. 그 말이 부메랑이 되어 자신의 목을 죄어올 줄은 전혀 알지 못한 채 말이다. 간수 산토로는 희대의 살인마 리고베르토 마린을 감옥에서 빼내 한 달 간 시간을 줄테니 앙헬을 없애라고 지시를 내리고 결국 소설이 끝나갈 무렵 앙헬은 그에게 살해된다.

앙헬은 출옥 후 빈민가에서 우연히 빅토리아을 만나게 된다. 빅토리아는 발레리나를 지망하는 학생으로 그만 첫눈에 둘은 사랑에 빠지고 만다. 모든 것이 침울하기만 한 상황에서도 사랑은 싹튼다. 이 소설에 그다지 어울릴 법하지 않은 사랑은 소설을 이끌어 가는 힘이 되어준다.

빅토리아는 벌써 몇 달째 학원 수강료를 내지 못해서 학원 수업을 들을 수가 없다. 가난 때문에 점점 꿈과 멀어져 가는 현실이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빅토리아의 아버지는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벌이다 처참하게 살해되었다. 그 가족에게 남은 건 가난뿐이었다. 앙헬은 빅토리아가 다시 학교와 학원에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어떻게든 꿈에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최저 생계마저 위협받는 이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인지도 모른다. 삼류극장에서 빅토리아는 아저씨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학원비도 내야하고 생활비도 필요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앙헬에게 그 현장을 들키게 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여서는 안될 모습을 보인 자책감에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한다.

베르가라는 일생을 범죄자로 살았다. 그의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만한 대도였다. 나이 예순, 이제 출옥하면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감옥에서 나왔으나 그를 반겨주는 아내나 아들은 온데간데 없다. 가장으로서의 역할이 문제였다. 베르가라는 친구의 죄까지 뒤집어쓰고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한다. 친구에게 맡겨둔 돈은 이미 날아가 버렸다. 그 사실을 알고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빅토리아는 멋진 발레리나가 될 수 있을까. 아버지가 독재정권에 저항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투사로 명예를 얻었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가정은 파탄에 이르렀다.

독재정권이 물러가도 사회는 안정을 찾기 힘들어 보였다. 불우한 삶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그들을 지켜보고 있자니 마음이 착잡해졌다. 그럼에도 저자는 어쩐 일인지 낙관적이기만 하다.

하루 빨리 사회가 안정을 찾고 밑바닥 인생들도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어 열심히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소박한 꿈을 꾸며 현실이 고통스러워도 묵묵히 감내하며 내일을 위해 나아가는 것. 그것 말고는 길이 없을 테니.

소설 <빅토리아의 발레>는 밑바닥 인생의 일상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다. 저자는 아마도 그들의 일상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환기시키고 싶었던 걸까. 그것은 독자 개개인에게 돌아갈 몫으로 남겨두고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 전2권 세트
로렌 와이스버거 지음, 서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책을 읽으면 더 술술 잘 읽힐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고  두권이지만 가뿐하게 읽을 수 있었다.

억척같이 일해서 남는 게 고작 피로와 외로움이라면, 과감히 벗어던질 수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높이 올라갈수록 외로움은 더 커지는 법.

친구도 잃고, 모든 중요한 사생활은 뒤로한 채 오로지 일에만 매달리는 것은 자아실현과는 점점 멀어지는 일이었다.

결국 주인공은 예전의 제 모습으로 돌아온다.

결국 중요한 게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는 소설이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6-12-27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잎차님은 무엇을 제일 소중하게 여기실까?
두 가지만 말씀해 주세요..


연잎차 2006-12-27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을 통해 이야기하자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멀어지지 않는 일, 그리고 진정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지요^^

비로그인 2006-12-27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하는 사람들과 멀어지지 않는 일,
그리고 진정 내가 하고싶은 일 을 하며 사는 것이지요.

아, 좋은 말씀입니다.
연잎차님 고맙습니다.
저의 마음속에 '두 가지 소중함' 담아둡니다.
추천!!


연잎차 2006-12-27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님, 별말씀을요.. 감사합니다!
 
능소화 - 4백 년 전에 부친 편지
조두진 지음 / 예담 / 200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우리의 꽃 이름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지 않는 한, 그 이름을 알기가 어렵다. 자주 접해야만 사람처럼 정이 들고 이름도 알게 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몇 해 전 진주를 여행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능소화를 보았다. 살구빛 아름다운 꽃이 넝쿨째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모습은 나를 한눈에 매료시켰었다.

한 두 송이도 아니고, 소담스럽게 여러 송이가 피어있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명하기만 하다. 꽃이 떨어질 때도 꽃잎이 하나씩 떨어지는 게 아니라 동백꽃처럼 송이째 떨어진다. 그러고 보니 이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꽃도 없을 듯하다.

택지개발 중 발견된 무덤에서 편지가 발견되고 그 편지를 재구성하여 한 편의 소설이 탄생한다. 400백 년 전에 보낸 편지라고 한다. 먼저 죽은 남편에게 아내가 보내는 편지라 하니 읽지 않아도 왠지 모를 슬픔이 스며드는 것 같다. 이를 연구하던 학자들도 시간이 흐를수록 능소화에 얽힌 이야기들에 놀라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의 운명을 예견한다는 건 조심스러운 일이다. 운명이라는 게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안 좋은 일일 경우 미리 알게 되는 것은 가혹하다. 일찍부터 죽을 운명이라거나, 남편이나 자식을 잃을 운명이라거나 하는 것은 차라리 모르고 사는 편이 낫겠다. 운명이라면 결국 우리가 어쩌지 못할 테니 말이다.

이응태는 둘째 아들로 태어나 건장하고 명석한 인물이다. 그런데 노승이 부모에게 이 아이에게 불운이 있으니 소화를 멀리하라고 말하며 세상에 이를 데 없는 박색과 혼인시켜야만 그 불운을 비켜갈 수 있으리라고 고언한다.

부모는 노승의 말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집 주위에 있는 소화나무를 모조리 뽑아 버리고 응태에게도 그 꽃을 멀리할 것을 어려서부터 당부한다. 혼인할 때가 되자 부모는 수소문하여 천하에 박색이며 성격까지 고약한 며느릿감을 찾는다. 나쁜 소문이 자자한 규수가 이름은 어찌나 고운지, 각시가 될 여인은 여늬다.

여늬 역시 불운을 비켜가기 위해 집밖 출입을 제한하며 박색에다 성격이상자로 그 부모들이 이상한 소문을 부러 내었다. 화가 들어오지 못하게끔 원천봉쇄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이었다. 그러나 실상 여늬는 이름처럼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따로 없을 만큼 아름답고 마음씨도 고왔다.

얼굴도 보지 못하고 결혼하게 된 두 사람은 결혼 후 마냥 행복했다. 서로를 아끼며 다른 부부들도 자기들처럼 그렇게 더없이 사이좋게 살아갈까 하는 의문을 가질 만큼. 아들 원이를 낳고서 더없이 행복하게 살았다.

불운을 막기 위해 부모는 응태를 처가에 머물게 했다. 처가에 기거하다 몇 해가 지나면 다시 본가도 들어오라는 말과 함께 여늬 집에 있는 소화를 모조리 뽑으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부모의 말대로 응태는 모조리 소화를 뽑으려 했다. 그러나 집안에서만 지냈던 여늬에게 유일한 벗이나 낙은 소화였으므로 자신의 안뜰에 있는 소화나무 한 그루만은 그대로 두자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아내의 뜻을 거절할 수 없어 응태는 아내의 뜻을 따랐다. 바로 문제의 시작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금실 좋은 부부를 하늘이 시기라도 하는지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한다.

원래 소화는 하늘의 꽃이었는데 너무 아름다워 인간이 그 꽃을 훔쳐 달아난 데서부터 비극이 시작되었다. 괴물 팔목수라는 옥황상제의 명을 받아 그 꽃을 훔친 아이를 찾아 나섰는데 그 아이가 바로 여늬였다.

그 일이 있은 후 어둠의 그림자는 여늬를 떠나지 않았다. 여늬가 여렸을 때 옆집 사내가 여늬 대신 죽는가 하면 이번에는 팔목수라가 여늬 대신 남편을 데리고 간 것이다. 여늬는 눈물로 세월을 보낸다. 애달픈 마음 달랠 길 없어 원이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고 또 쓴다. 기이하게도 400백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 편지만은 낡아 퇴색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어있다는 데 그것은 기실 사랑의 힘이 아니고 무엇이랴.

400백년이 지나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사랑.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응태와 여늬의 사랑은 저세상에서도 계속되었으리라. 인스턴트식 사랑이 난무하는 현대에 작은 울림이 아닐 수 없다.

제1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도모유키>의 저자 조두진의 소설이라기에 눈여겨 봐온 소설이었다. <능소화>는 <도모유키>와 빛깔은 다르지만 저자의 노력이 곳곳에 배어난 소설이다. 마치 전래동화를 읽는 듯한 기분으로 책장을 넘겼다. 곱고 아름다운 우리의 이야기인지라 청소년에게도 좋을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