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 점프를 하다 - 할인판
김대승 감독, 이병헌 외 출연 / 엔터원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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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지 점프를 하다> 포스터.
*
한편의 영화가 끝나기가 무섭게 천장의 백열등은 켜지고 사람들은 울다가 들킨 흔적을 재빠르게 수습하며 모두들 서둘러 일어났다. 마치 조금 늦게 나가면 손해라도 보는 듯이 우수수수 비상구 쪽으로 몰려나갔다.

나는 그 출몰객들을 보며 옆자리의 조카들에게 중얼거렸다. '도대체가 상식이 있는 사람들인가 없는 사람들인가. 영화 끝나고 영화 자막 올라갈 때, 우르르 일어나는 사람들이 제일 싫더라' 그러자, 조카들은 '고모 또 시작이구나'했다.

'생각을 해봐라. 아까 영화 볼 때 중간중간 웃어넘긴 저들이 아닌가. 그리고 슬픈 대목에선 찔끔거리기도 하던데 그런 만큼 영화가 감동적이었다는 뜻이었을 텐데 기본적인 예의가 없어. 스텝들 자막이 올라가기가 무섭게 불을 켜대는 영화관 측도 문제야. 감정을 수습(?)할 시간을 주어야 할 것 아닌가베. 그리고 이 멋진 영화를 어떤 사람들이 만들었는지 처음 보는 이름 이더래도 한번 훝어 봐 줌이 예의 아닌가. 나는 그렇게 생각해. 안 그런감?'

'고럼 고럼, 고모 말이 백 번 맞수다. 그런데 모두들 그렇게 하니 군중 심리 상 자동적으로 그렇게 되 버리는 것 같애. 오늘은 고모 땜에 라스트를 장식(?)해야겠네.....' 우리들의 작은 속삭임을 귓전으로 흘리며, 공중에서 푸르른 숲과 강물 사이를 날아가는 기분을 관객들에게 선사하면서 그렇게 한편의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는 끝나고 있었다.

'이제 나가자' 감동(?)적인 헐리웃 영화를 좋아하는 작은조카는 우리들을 재촉했다.'나가기 싫어 못 나갈 것 같아. 극장 문을 나서서 부딪히게 될 속세(?)가 싫어.' '나도 그래 흐흐흑....'
' 어휴, 언니랑 고모랑은 정말 영화 못 보겠어. 정말 주책 스러워. 빨리 일어들 나슈'

작은조카의 성화에 못 이겨 우리들은 극장 문을 나섰다. 큰조카의 눈은 벌겋게 충혈 되어 있었고, 나 또한 마음을 수습할 길 없었다. '아아, 여운이 너무 오래 갈 것 같아. 오우 노-!' 하던 큰조카는 '오늘 기분이다. 밥은 내가 쏜다! 가자! ' 그렇게 해서 우리는 가까운 분식 점에 들러 늦은 점심을 먹었다.

'인생이 늘 한편의 영화와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 한편의 영화를 보고 극장 문을 나설 때처럼 어질어질(!) 하면 얼마나 좋을까. 정말 현실은 건조한 사막 같아. 내 인생 그 어디에도 오아시스는 없는 것 같아. 아아, 환장할 이 청춘!'

얻어먹는 죄로 우리는 큰조카의 넋두리를 계속 들어야 했다. 물론 백 프로 공감해주면서, 유쾌하게.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는 첫눈에 반한 두 연인 인우(이병헌분)와 태희(이은주분)의 슬픈 사랑에 환상적인 터치가 가미된 영화다.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는' 플랫폼에서 시간은 자꾸 가는데 오기로 한 태희는 오다가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로서 그들의 현세적 사랑은 짧게 끝난다.

제대하고 졸업하고 국어선생이 된 인우는 담임을 맡은 그의 반에서 '태희의 언어'로 말하고 '태희의 몸짓'으로 행동하는 현빈(여현수분)을 만나게 된다.

죽은 태희의 영혼이 살아 돌아 온 듯한 착각 속에서 자꾸만 현빈에게 빠져드는 인우를 두고 학교에서는 동성애자라고 소문이 자자하고, 결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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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대문
김기덕 감독, 이지은 외 출연 / 에스엠픽쳐스(비트윈)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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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하면 예의 그 푹 눌러선 모자와 잠바 그리고 십년은 젊어 보이는 얼굴이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별로 돈을 들이지 않고 짧은 시일에 영화를 완성한다는 것 또한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그가 국외로 나가서 상을 몇 개 타오고 어쩌고 해도 나는 좀처럼 그의 영화에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가 만든 영화는 학창시절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외우듯이 제목만은 나도 모르게 외웠다. 시험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이젠 더 이상 시험 칠 일도 없는데, 다른 감독들의 작품은 두 개 정도만 연결시켜 기억함에 비해 김기덕 감독의 경우는 대부분 기억하고 있었다.

<악어> <섬> <수취인 불명> <나쁜 남자> <봄 여름 가을 겨울> <사마리아> <빈집> <해안선> 등이 내가 기억하는 김기덕 감독의 작품이다. 이중 본 영화는 <섬> 하나뿐이다. 그것도 다가 아닌 후반부 얼마쯤 말이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섬>이란 작품은 풍경이 참 곱고 신비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주인공들의 일련의 행위는 기이하였다.

어쩌면 ‘신비로움’과 ‘기이함’ 그로 인해 그의 다른 작품들의 제목들도 기억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제목을 나도 모르게 기억하고 있는 만큼 언젠가는 한꺼번에 몽땅 빌려서 3박 4일 보아야지 하는 생각은 늘 하고 있다.

그러던 중 지난 주 TV에서 우연히 내가 미처 기억하지 못한 그의 영화를 한편 보게 되었다. 제목은 <파란대문>이었다.

해수욕장이 있는 바닷가 마을의 파란대문 속의 ‘새장 여인숙’에서 진아(이지은분)는 여인숙 아가씨로 몸을 팔며 살아간다. 혜미(이혜은분)와 현우(안재모분)는 새장 여인숙 부부의 아들과 딸이다.

진아는 손님이 없는 낮에는 주로 그림을 그리며 지루함을 달래곤 했는데 담벼락에 벽화를 그릴만큼 그림에 일가견이 있던 주인아저씨(장항선분), 마침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진아를 욕보인다.

주인집 아들 현우 또한, 누드모델이 되어달라고 떼를 써서 허락을 받은 후 나름대로 열심히 셔터를 누른다. 그리고는 진아에게 사정한다. “누나 한 번만, 우리 반에 나만 빼고 다 해봤단 말이야.” 마음씨 착한 진아는 학생이 그러면 안 된다고 거절하다가 딱 한 번을 약속 받은 후 허락한다.

자칭 진아의 기둥서방인 험상 굳은 사나이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찾아와서 돈을 뜯어갔고, 저녁마다 멀쩡한 양복을 입은 사나이들이 ‘방 있어요? 아가씨 있어요?’하며 진아를 찾아온다.

진아와 같은 또래인 혜미는 자기네 집이 아가씨가 있는 여인숙을 한다는 것에 지독한 콤플렉스를 느끼는 대학생이다. 그녀는 매일 아침, 수돗간에서 세수와 양치를 하면서 진아에게 갖은 모욕을 준다. 그러나 진아는 그 모든 모욕을 다 받아내면서 꿋꿋하게 혜미에게 다가가려 노력한다.

아무튼 이 영화는 지루하지 않고 이야기의 전개가 세련되고 재미있었다. ‘재미있었다’라고 말하려니 진아에게 미안하지만 어쨌거나 이 영화는 관객인 나의 뻔한 생각대로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아서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가슴 짠했던 것은 매춘 단속에 걸려 경찰서 유치장에 갇혔을 때 한심한 자신의 신세에 울음을 삼키는 진아에게 주인아저씨 왈,
“울지 마라. 니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 식구 다 먹고 산다.”

영화의 후반 진아는, 혜미의 동생 현우가 찍은 누드사진이 사기를 당하여 에로잡지에 실리면서 이를 본 기둥서방의 행패와 고교생을 농락했다는 혜미 엄마의 원망에 자살을 시도한다. 자살은 혜미의 도움으로 미수에 그치고 그 과정에서 혜미는 진아를 이해하게 되고 친구가 된다.

때문에 더 이상 매일아침 세수를 하면서 싸우지 않아도 되었으나 그렇게 행복하게 끝나는 것은 좀 아쉬웠다. 그러면 진아는 계속 그렇게 몸을 팔라는 말인가. 혜미는 진아가 몸을 판 돈으로 살아가고 또 공부를 하라는 말인가.

진아가 매춘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듯한 설정이 조금 아쉬웠다. 현실이 그러하다면 영화는 좀 이상을 꿈꾸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진아가 너무 불쌍해서.

영화 <파란 대문>은 따스한 영화다. 나는 김기덕이 이렇게 따뜻한 남자인 줄 몰랐다. ‘나쁜 남자’ 인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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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 적 2 - 초회한정판
강우석 감독, 설경구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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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혹은 검찰, 법원의 추억

사례1.
몇 해 전의 일이다. 운전 면허증을 찾으러 난생처음 경찰서라는 데를 가 보았다. 마침 내가 간 시간이 오후 1시쯤이었는데 모두를 점심을 먹으러가서 오지 않았는지 외근을 나갔는지 민원실(?)안에는 40대 중반의 경찰관이 점심을 먹고 있었다.

나는 면허증을 찾으러왔다고 하였고 그는 조금 기다리라고 하였다. 그냥 찾아주고 밥 먹으면 될 것을 굳이 자기가 밥 다 먹을 때 까지 기다리라니 기분이 좀 그랬다. 조금 있으니 아저씨 한분이 와서 또 면허증 때문에 왔다고 하였고 역시나 그 경찰관은 신경질적으로 기다리라고 하였다.

아저씨 또한 기다리면서 나와 같은 불쾌감을 느끼는 듯 했다. 그러나 장소가 장소인 만큼 그냥 좀 참아보자는 듯이 보였다. 그렇게 경찰관 아저씨가 점심을 다 먹을 때가지 15분쯤 기다렸다.

경찰관 아저씨는 여유 있게 점심을 들고 이쑤시개로 마무리까지 하고는, 그제야 거만한 표정으로 다시 용건이 뭐냐고 물었다. 면허증 때문에 왔다고 하니 신분증을 확인하고는 몇 초 걸리지 않아 면허증이 놓여있는 바구니에서 우리들 것을 찾아주었다. 그렇게 쉽게 내어 줄수 있는 것을 무안하게 자신이 밥 다 먹을 때 까지 기다리게 하였다니. 물론 요즘은 많이 좋아졌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례2.
친구는 급하게 이사를 하는 바람에 전세금을 채 받지 못하고 집을 비웠다. 그러자 집 주인은 한달 두 달....일년이 넘도록 방이 나가지 않았다며 전세금을 내 주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무지 속을 썩다가 ‘전세금 반환 청구소송’인가가 있다고 하여 친구의 남편은 그것을 알아보려고 아는 형님이 근무하는 검찰청에 점심시간에 맞추어 자문을 구하러 갔었다.

난생처음 검찰청이란 데를 들어가 본 친구 남편 왈,

“와아, 내 태어나서 처음으로 검찰청이란 데를 갔는데 검찰청 복도를 지나가려니 지은 죄도 없는데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더라. 검찰청 사람들 표정은 또 어찌나 과묵하고 무표정한지. 활짝 웃는 형님을 만나니 구세주를 만난 것 같더라니까.”

사례3.
소설가 이경자씨는 이혼을 하러 법원에 가서 법원 직원들의 태도에서 뜻하지 않은 상처를 받았다. ‘판사가 나타나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동안, 법원 직원은 마치 길 잃은 바보들을 대하는, 거의 ‘버르장머리’없게 느껴지는 언행으로 우리들을 대했다‘고 하였다. 이혼 법정 하면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의 분위기가 떠오르는데 그게 아닌가 보았다.

이 모든 기억들을 가지고 검찰을 주제로 한 영화 ‘공공의 적2’를 보러갔다. 무섭다고 집에 가자는 둘째를 과자로 포섭하고 엉덩이를 토닥여 잠을 재우고는 영화에 몰입하였다.

영화 속의 검사

영화 속의 검사는 멋있었다. 그들은 우리 시민들의 안전은 물론이고 각종 부정부패와 사회악을 소탕하기 위하여 토막 잠을 자며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 얼마나 듬직하고 믿음직한 모습인가.

서울지검 강력계 강철중(설경구분) 검사. 그는 고교동창인 뺀질이 한상우(정준호분)가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명선 재단의 돈을 해외에 골프 장학생을 발굴한다는 빌미로 빼돌려 개인적으로 착복하는 것을 포착한다. TV화면 속에서는 늘 선 한 사회지도층 인사의 이미지로 조명을 받지만 전직 이사장 이었던 형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만큼 그는 내적으로 악랄한 사람이었다.

돈이면 무엇이든 다 된다는 논리를 가진 한상우는 정계거물 까지 동원한 철저한 방해 공작도 모자라 아예 사람을 시켜 자신의 형을 그렇게 했던 것처럼 강철중 검사를 제거하려 한다.

현관문이 열렸다는 경비아저씨의 전언은 그들이 던진 미끼였는데,그런줄도 모르고 강철중 검사대신 수하의 젊은 직원인 석신(박상욱분)이 문을 잠그러 강검사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간다.

한편, 한상우의 지시를 받은 폭주족들은 석신이 강철중 검사인 줄 아고 그가 모는 차를 둘러싸면서 차 유리를 몽둥이로 깨부수고는 유유히 사라진다.

달리는 차로에서 순식간에 당한 일이라 석신으로서는 속수무책인데 차는 공교롭게도 난간을 들이받고 지하차로로 굴러 떨어진다.

너무도 어이없는 젊은 부하 직원의 죽음과 한상우의 악랄함에 치를 떨며 강철중 검사는 자신의 직속상관 부장검사를 찾아가서 울부짖는다.

“아무리 치~즈 해도 웃어지지가 않아요.”

정계의 거물급으로 나온 박근형(부총재)씨는 느글느글하고 유들유들한 개기름 쫙쫙 흐르는 국회의원 역을 어쩜 그리도 잘 소화하는지 경탄스러웠다. 또 영화 내내 한상우가 미웠는데 그렇다면 정준호씨 또한 연기를 잘 한 것인가.

설경구씨의 경우는, 똑똑한 검찰 연기 하느라 무지 힘들었다는 인터뷰를 본적이 있는데 그는 똑똑하기보다 인간적이고 정의로운 검사였다. 비록 화면이었지만 내가 대한민국 검사들을 떼거지로 본 것은 대통령과의 평검사 대 토론회에서였는데 강철중 검사는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아니었기에 어쩜 현실과 영화를 구분 못하고 강철중 검사에게 빠져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당연히 영화 속 검사가, 검찰청의 풍경이, 현실이 되는 것이다. 강력한 권력기관으로 시민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발이 되고 지팡이가 되는 그런 따뜻한 검찰 말이다. 경험속의 검찰과 영화 속 검찰의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서글프지만 ‘나쁜 놈’은 물론이고 ‘공공의 적’을 물리치기 위하여 그래도 우리가 기댈 곳은 검찰 뿐이다.

강철중 같은 검사 현실에서 많이 볼 날은 언제 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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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동막골 (2disc) - 할인행사
박광현 감독, 정재영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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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 오빠네로 명절을 쇠러 온 엄마에게 극장에 가서 영화 한편 볼 것을 제안하였다. 내가 ‘극장’이라는 말을 꺼내자 오빠는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며 일축했으나, 나는 자신이 있었다.

엄마가 처음으로 극장에 가 본 20년 전에도 나의 제안을 엄마가 받아들였듯이 이번 또한 호기심을 가질 것이라 생각하였다. 엄마는 오빠가 안 간다고 하니 오빠보다 훨씬 더 늙은 당신이 갈 곳은 더욱 아니라고 생각하신 건지 안 간다고 우겼다.

해서 나는 ‘커다란 멧돼지’ 운운하며 엄마를 꼬셨고 엄마는 ‘그 골치 덩어리 멧돼지가 나온다면 한 번 볼만 하지 않을까’ 가늠해 보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고향 뒷산에서는 해마다 가을이면 먹을 것이 궁한 멧돼지들이 출몰하여 애써 가꾼 고구마며 콩 등을 무자비하게 서리해 가곤 하였다.

엄마에게 들은 멧돼지의 집짓는 이야기는 너무 흥미로워 내가 아이들에게 해주는 얘기의 단골 메뉴이기도 하다. 즉, 멧돼지는 집을 얼마나 튼튼하게 짓는지 그 억센 이빨로 저돌적으로 구덩이를 판 다음 나뭇가지들을 얼기설기 엮어서 평평한 지붕을 만드는데 워낙 단단하게 엮기 때문에 사람이 밝아도 구덩이가 꺼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리고 멧돼지가 보여준 최대의 ‘쇼쇼쇼’는 작은 언니에게서 들었다. 언젠가의 추석, 버스에서 내려 얼마간 걸어가야 하는 내 고향 길 언저리에서였다. 작은 언니와 조카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걸어가다 문득 마침 냇가에서 새끼들을 데리고 물을 먹고 산비탈을 올라가던 너댓 마리의 멧돼지 어미와 그 새끼들을 보았다고 하였다.

멧돼지가 사람을 해치기도 한다는 것을 아는 작은 언니는 멧돼지를 보자마자 온몸이 쭈뼛하면서 그대로 얼어붙었다고 하였다. 이 일을 어이할까나. 제발 뒤돌아보지 말고 산으로 올라가라 주문을 외우면서도 혹시나 인기척을 느끼고 뒤돌아 돌진해 온다면 아아…. 다행히 멧돼지들은 물을 배부르게 먹어서인지 뒤돌아보지 않고 산으로 사라졌다고 하였다.

아무튼 우리 가족에게 있어 멧돼지는 흥미로우면서도 곡식을 갉아먹는 ‘웬수’였다. 그러나 영화에서 멧돼지를 본다면 ‘그 웬수’가 왠지 ‘친구’가 될 것 같았다. 엄마뿐만이 아니라 극장 가본 지 30년이 넘었다는 올케 언니 또한 멧돼지는 호기심의 대상이었고 조카들 또한 흥미진진해 하였다. 해서 우루루 떼거지로 <웰컴 투 동막골>을 보러갔다.

영화는 과연 엄마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고 엄마가 살아왔던 익숙한 지난 시대를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이제는 사라진, 80년대까지도 우리 집에 있었던 ‘디딜방아’며, ‘콩밭메기’, 그리고 ‘메밀밭 풍경’에다 쌍둥이 할아버지들의 소리까지 엄마에겐 너무도 익숙하고도 익숙한 풍경이었다.

뿐만 아니라 ‘흰 무명 치마저고리’며 ‘초가집’, ‘가마솥 뚜껑 뒤집어서 부치는 전’ 등은 엄마에게 ‘타임머신’을 탄 듯한 착각을 선사해 주는 지난 시절의 풍경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려워하지 않고도 힘찬 멧돼지를 볼 수 있었던 것이 걸작이었다.

“엄마, 정말 멧돼지 나오제?”
“그래, 정말 볼만 하더라.”
“그리고, 극장 너무 좋아졌제?”
“그래, 옛날 그 극장보다 좁기는 하다만 의자도 푹신하고 좋네.”

“엄마, 다음에 또 이런 영화 하면 보러 올래?”
“한 번 봤으면 됐지 뭘 다시 와. 한 번 본 걸로 됐다.”

엄마 나이 올해 일흔 아홉. 누가 <웰컴 투 동막골> 같은 영화 한 편 더 찍어주면 엄마랑 다시 한 번 극장 나들이를 할 수 있을 텐데 그런 날이 와 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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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선라이즈 + 비포 선셋 박스세트 (2disc) - [할인행사]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 에단 호크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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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영화 <외출>이 개봉될 즈음, 정확히 언제 개봉되는지 그리고 첫 번 상영은 몇 시인지 궁금하여 내가 살고 있는 소도시의 극장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극장 아저씨가 말하기를.

"손님, <외출>은 내일부터 합니다만 그보다 오늘이 <비포 선셋> 마지막 날인데 영화가 너무 좋습니다. 꼭 보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그래요… 그런데 오늘은 시간이 좀…."
"그러면 이따가 저녁시간에라도 꼭 와서 보십시오. 영화가 괜찮은데 별 주목을 못 받고 간판을 내리는 일이 안타깝습니다."
"예, 가능한 보도록 노력해 볼게요."

물론 내 마지막 대답은 건성이었다. <비포 선셋>이라, 순간 '선 라잇 선 셋'이란 노래가 떠올랐다. 그 노래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 물론 관련이야 없겠지만 이름이 비슷하니 자꾸 연관지어졌다. 그리고 내가 '선 라잇 선 셋'이라는 노래에 그리 흥미가 없으니 도매금으로 <비포 선 셋>도 그냥 그랬다.

다만 무시하고 지나자니 극장아저씨가 강력 추천한 것이 뭔지 모르게 마음에 걸렸다. <외출>도 보러 갈 것처럼 말해놓고 딴 데 가서 보는 등(물론 <외출>을 두 번 보는 바람에 나중에 다시 가 보기는 했지만) <비포 선 셋>만 생각하면 극장아저씨의 선의를 무시한 나 자신이 떠올라 외면하고 싶었다.

그 후, 지인에게 무슨 얘기 끝엔가, 얼마 전 극장 아저씨가 <비포 선 셋>이라는 영화를 권했는데 당기지 않아서 그냥 보지 않았다는 말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지인은 <비포 선 셋>과 관련된 내 모르는 정보를 또 하나 알려주었다.

"그거 옛날에 나온 영화 <비포 선 라이즈>의 후속편이야."
"그래?"
"<비포 선 라이즈>에 나왔던 주인공들이 그대로 <비포 선 셋>에도 나온대."
"속편까지 찍을 정도라면 꽤 재미있었던 영화였나 보네."

순간 어떤 영화일까 살짝 궁금증이 일기는 했으나 이미 극장 간판에서 사라진 영화인지라 미련을 가져도 소용이 없었다.

아무튼 <비포 선셋>과 나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는데 며칠 전 우연히 새벽 유선방송에서 <비포 선 라이즈>라는 제목을 보게 되었다. 평소 같으면 조금 보다 내가 모르는 배우가 나옴을 확인하고 그냥 지나쳤을 것이나 위에 언급한 일화가 있기에 보게 되었다.

아름다운 이국적 풍경 속을 쉴 새 없이 재잘대며 걸어가는 두 주인공들이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음, 이 영화 보통영화가 아닌가봐 하는 인상을 받았고 그리고 바로 빠져들었다. 이런 좋은 영화를 나는 왜 듣도 보도 못했을까. 이럴 줄 알았으면 <비포 선 셋>을 극장에서 봐둘 것을.

<비포 선 라이즈>

▲ <비포 선 라이즈> 영화 포스터
ⓒ 캐슬 락 엔터테인먼트
걷다가 지치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걸으면서 쉴 새 없이 열어가는 그들의 웃음과 대화는 나에게 회한처럼 다가왔다. 맞아, 내 젊은 날 해보고 싶은 게 바로 저런 거였어. 제시와 셀린느, 스물 셋 그들은 그 나이에 어울리게 이성에 대한 동경뿐만 아니라, 세상과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고 확장해 가는 열정에 가득 차 있었다.

문득 나는 그 나이에 무엇을 생각하며 살았을까 더듬어보니 이런저런 호기심과 '나'라는 빈 그릇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 고민은 많이 했어도 영화의 그들처럼 밝지도 못하고 넓게 살아가지도 못 했다.

이웃나라가 이웃 동네 같은 유럽의 특수성을 축복 삼으며 유럽횡단열차를 타고 방학 때마다 이런저런 도시를 여행하며 보고 듣노라면 마음의 크기가 저절로 한량없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삶의 '순간'은 또 얼마나 햇살 같을까.

끊임없이 얘기꽃을 피우며 또, 서로에게 경도되는 것을 확인하며 해뜨기 전까지 충실히 보내자던 두 젊은이들의 꿈같은 밤이 지나고. 헤어짐의 순간이 다가왔다. 하프시코드 연주가 흘러나오는 어느 길가에서 그들은 각자의 눈을 카메라 렌즈로 하여 서로의 모습을 가슴 깊이 찍었다.

이윽고, 셀린느가 타고 떠날 파리행 플랫폼에서 이별이 아쉬운 두 주인공은 6개월 후 다시 그 자리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서야 헤어질 수 있었다. 한 사람은 공항으로 또 한 사람은 파리로 향하는 열차 안에서 각자 지난밤의 추억을 떠올렸고 영화는 그들이 지난밤 거닐고 앉았던 추억의 장소들을 하나하나 비춰주었다. 두 젊은이가 없는 그 풍경들은 조금 쓸쓸해 보였다.

검색해 보니 <비포 선 라이즈>는 95년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했다고 나와 있는데 내겐 어찌 이리 금시초문일 수가. 해서 기억을 더듬어 95년 나의 삶을 반추해보니 그때 내가 본 외국영화로는 <포레스트 검프> 딱 한 편이 기억났다. '세로자막' 읽기 싫어 외국영화 보기 싫어했는데 손해가 이렇게 클 줄이야.

<비포 선 셋>

다음날 사소한 일상들을 모두 접고 동네 비디오가게에서 달랑 하나 밖에 없는 <비포 선 셋>을 빌려왔다. '감독과 배우들이 9년만에 다시 만나서 보름 동안 해질녘에만 찍은 영화'라기에 더더욱 기대가 크고 궁금하였다.

셀린느를 '몰래 바라보곤 하던' 청년 제시는 유명작가가 되어서 책 홍보 차 파리의 한 서점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었다. 이미 그의 책을 읽었는지라 셀린느 또한 서점 한 귀퉁이에서 만감을 가슴에 품은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둘 다 늙었구나. 다음 작품에 대해 열심히 설명을 하던 제시는 무심코 고개를 돌리다가 셀린느를 발견하였다.

다시 만나게 된 그들은 조금 어색한 가운데 예전에 그랬듯이 일단은 걸었다. 오후의 햇살이 조금은 덥게 느껴지는 거리를 여리게 또각또각 발소리를 내며 두 사람은 내쳐 걸었다. '또각또각, 또각또각…' 들릴 듯 말 듯한 그 은은한 발걸음이 거듭될수록 9년의 거리감은 점점 메워졌고, 할 말이 너무 많았던 그들은 그 옛날처럼 잠시도 쉬지 않고 말들을 쏟아냈다.

"그날을 쉬이 잊어버리고 싶지 않아서 책으로 썼어. 그리고 작가가 되면 너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 이렇게 만나게 되어서 너무 기뻐."
"그렇게 말해주니 고마워."

그러나 재회의 미소 끝에는 9년이라는 세월이 가져다준 다시 되돌릴 수 없는 회한 같은 쓸쓸함이 그들의 주름과 함께 오버랩 되었다.

"결혼 했다면서?"
"응, 4살 된 아이가 있어."

▲ <비포 선셋> 영화 포스터
ⓒ 워너 브러더스
비혼들이야 어쩐지 모르겠지만 결혼한 사람들은 '결혼했고, 아이가 있다' 이 두 마디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 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들이 한눈에 이해가 될 것이다. 결혼생활을 얘기하는 제시의 표정에서 미국사람들은 자식은 아랑곳없이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기만 하는 줄 알았는데, 실지와는 얼마의 간극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미국사람들(서양인들) 또한 '자식 때문에 산다는' 핑계는 뭐랄까 인간적이었다.

6개월 후에 만나자는 약속을 제시는 지켰으나 셀린느는 할머니의 장례식이 마침 그날이라 갈 수 없었다. 9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제시를 잊지는 않았지만. 제시와의 만남은 현실이 될 수 없기에 셀린느는 재미없는 프랑스 남자들과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했다. 현재는 전선기자인 남자친구가 있긴 하나 전쟁기자라는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있으나마나한 친구였고 그녀는 몹시 외로웠다.

한편, 제시는 역시 줄곧 셀린느를 잊은 적이 없다 해도 결혼과 아이는 명백한 현실이었다. 때문에 제시는 더 이상의 진전없이 '너를 이렇게 만나게 되어 너무 좋아'라는 말만 몇 번이고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겨우 할 수 있는 부탁이란 노래 한 곡 들려 달라는 것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셀린느의 집에서 제시는 그녀가 작곡했다는 몇 곡의 노래 중 한 곡을 듣게 되었다. 제시가 9년 전의 사랑을 한 권의 책으로 추억했다면 셀린느는 한 곡의 노래로 추억하였다.

"왈츠 한 곡 들어봐요/그냥 문득 떠오른 노래/왈츠 한 곡 들어봐요/하룻밤 사랑의 노래… 다시 한번 돌아가고 싶어/그날 밤의 연인이 되고 싶어/어리석은 꿈일지라도/하지만 내겐 소중한 당신/그런 사랑 처음이었죠/단 하룻밤의 사랑 나의 제시…."

영화를 떠나 실제로 에단 호크가 책을 내었고 줄리 델피가 영화 마지막에 기타 치며 부르는 왈츠노래를 직접 작곡했다는 것 또한 너무 신선했다. 영화 속 제시와 셀린느도 아름다웠지만 실지의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도 그에 못지않게 내겐 매력적이었다.

영화를 본 후의 여진(餘震)...

아무튼 <비포 선 라이즈>와 <비포 선 셋>은 내겐 너무 멋진 영화였다. 영화를 많이 보며 살지는 않았지만 하여간, 그동안 내가 본 영화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영화였고 느낌이 오래 갈 영화였다.

<비포 선셋>을 연거푸 두 번 본 후, 둘째의 학원시간이라 밖으로 나오니 아파트 마당에 동네 '아짐'들이 벤치에 앉아 얘기들을 하고 있었다. 나는 '동작 그만'을 주문하며 위의 두 영화를 보았느냐고 물어보았다. 나만 이 영화에 혼이 나갔는지 아니면 남들도 다 그랬는지 궁금하였다.

"어제 새벽에 <비포 선 라이즈>를 보고 방금 <비포 선 셋>을 보고 나왔는데 아아, 이 속세가 도무지 접속되질 않아. 영화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흑흑(?)."
"아니, 그 영화가 언젯적 영화인데 이제 와서 난리야. 하여간 뒷북은. 물론 후속편은 못 봤지만. 좀 지루하던데. 나는 하룻밤의 사랑이니 삼일간의 사랑이니 하면서 시각을 다투는 영화는 싫어."
"지루하다니? 그런 섭섭한 말이 어디 있어?"
"내 맘이여."

'아줌마' 넷 중 둘은 보고 둘은 못 본 영화였다. 저녁엔 대전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하니, "음, 그 영화 보지는 않았지만 옛날에 나왔다는 것은 알지. 여자주인공으로 '화이트'의 줄리델피가 나오잖아. 하여간 진짜 영화가 괜찮은지 너가 황당한 건지 함 봐야겠군" 한다.

자칭 영화광인 구미에 사는 중학교 동창에게 역시 물으니, "응, 알지. 나 옛날에 그 영화 극장에서 봤지.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 다 선남선녀지. <비포 선셋>이 나왔다는 것도 신문에서 보긴 했지. 그래 한 번 보지 뭐, 옛날엔 극장에서 하는 영화 중 안 본 영화가 없었지만 결혼하곤 땡이었다" 한다.

어디선가 읽으니. 남자 주인공 에단 호크가 말하기를, 40대 50대의 제시와 셀린느도 보여주고 싶다고 하였던가. 내 말이 그 말이라. 20대의 제시와 셀린느도 좋았지만 30대의 그들도 보기 좋았다. 일상의 삶이 주는 회한과 쓸쓸함까지도. 어찌 해볼 수 없는 그들의 사랑까지도. 그 이마의 주름살과 건조한 피부까지도.

설사 40대의 그들이 삶에 지쳐 더 주름지고 포악해진다 해도 보고 싶다. 아니, 그들은 더 고양되어 나타날 것이다. 때문에 40대의 제시와 셀린느를 만났을 때 내 자신이 초라하지 않도록 나도 뭔가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한편에 이 정도면 중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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