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의 덫
다니오카 이치로 지음, 양진철 외 옮김 / 심산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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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의 한나라당 탈당은 여론조사가 만든 작품이라는 기사(오마이뉴스 ‘여론조사가 만든 손학규 탈당 드라마’)가 눈길을 끈다. 사연인 즉은 올해 초 유력 경제일간지가 범여권 대선주자 지지도를 조사하면서 손학규 전 지사를 고건, 정동영, 김근태, 강금실 등과 함께 문항에 넣었고 손 전 지사는 고건 전 총리(30.0%)에 이어 2위(11.9%)를 차지했다. 그리고 고건 전 총리의 불출마 선언 직후의 여론조사에서 손 전 지사는 마침내 1위를 차지했는데 범여권의 애타는 러브콜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결과는? 아시다시피.

비슷한 사례가 있다. 1991년 미국에서 생존 중인 4명의 전직 대통령들의 인기도를 물었는데 지지율 낮기로 유명했던 카터 전 대통령이 닉슨과 포드는 물론 재직 중에 높은 인기를 누렸던 레이건까지 제치고 1위를 한 것이다. 『여론조사의 덫』의 저자 다니오카 이치로의 분석은 이렇다. 카터는 민주당이고 나머지 세 명은 공화당이니 민주당 표는 모였고 공화당 표는 세 갈래로 나뉘었다는 것. 불순한 의도에서였거나 멍청했거나, 어쨌든 하나마나 한 조사였던 셈이다.

사회조사학 외에도 범죄학, 캠블사회학이란 독특한 학문을 전공한 저자는 이런 여론조사를 거침없이 (죄민수 버전으로) ‘쑤레기’라고 말한다. 더 나아가 그는 “조사기획 권한을 주면 무엇이든 원하는 결과를 보여줄 수 있다”고 호언장담한다. 그가 지목하는 쓰레기 생산지는 데이터를 웬만해서는 공개하지 않는 정부와 항상 누이 좋고 매부 좋기로 유명한 학계, 그리고 당파성에 지나치게 충실한 언론과 시민단체들이다. 7년 전에 일본에서 나온 책이지만 읽다보면 청출어람이라고 바로 우리네 이야기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저자는 ‘리서치 리터러시(research literacy)’, 즉 여론조사를 읽고 쓰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며 책 후반부에 친절하게 연습문제도 맛보기로 달아놓았다. 최소한 알아야 속지나 않지, 하는 생각에 열심히 풀어보기는 했지만 만만치 않다. 하기야 백전백패가 빤한 것들로 꽉 채워진 인권의 항목들 앞에서 한눈팔지 말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마음이나 열심히 ‘리터러시’ 하는 게 이쯤에서의 바른 해답일지 모른다.  

- 2007년 4월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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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 이후 오퍼스 10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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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색이 기자인지라 시위 현장에서 카메라를 들이댈 일이 많지만 썩 내키지 않는다. 예전부터 불의를 보면 잘 참았던 내가 요즘 들어서는 부당한 일만 보면 만사가 귀찮아지니, 이 내키지 않음이 저 대열에 동참해야 한다는 정의감에서 비롯된 것은 분명 아니지 싶다.

불의가 저질러지는 현장에서 카메라 렌즈는 열 사람의 눈, 백 사람의 입보다 강한 무기가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사진 한 장이 역사의 현장을 증언하고 진실을 말할 수 있다는 믿음은 한낱 기대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2004년 타개한 예술평론가이자 소설가, 반전운동가로 알려진 수전 손택의 에세이 『타인의 고통』은 ‘고통’과 ‘사진’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이 왜 쓰였는지는 명쾌하다. 기술(특히 사진과 동영상)의 발달로 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끔찍한 참사들이 거의 실시간으로 전파되고 있음에도 그러한 불행과 고통은 왜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가? 잔혹한 이미지들은 TV와 컴퓨터 모니터를 통과하며 오히려 그 참상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는 일이란 점을 상기시켜 우리를 안심하도록 만드는 것은 아닐까? 대체 나와 상관없는-그렇게 보이도록 만들어진 이미지를 통해-타인의 고통을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이 책은 그러나 명쾌한 답을 내놓지는 않는다. 다만 사진은 탄생시기부터 전쟁의 부당함이 아니라 전쟁의 정당함을 찍어왔다는 사실을 일깨울 뿐이다. 또한 여러 사례들을 통해 이제는 당당히 저널리즘의 반열에 올라 뉴스의 한 부분을 담당하게 된 ‘포토’들이 얼마나 정치적인지(사진을 찍는다는 ‘shot’은 발포, 발사란 의미이기도 하다), 얼마나 피사체를 대상화 시키는지(결국 말하는 것은 사진이며 피사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를 낱낱이 들추고 있다.  

그러다보면 우리는 조작만 하지 않고 다수에게 불쾌감을 주지만 않는다면 다 팔릴 수 있고, 스펙터클하거나 잔혹할수록 더 많이 팔린다는 포터저널리즘의 어두운 면을 보게 된다. 그래서 디카 잘 찍는 법을 알려주는 책들이 허다한 서점에서 재수 없게 이 책을 집어 든다면 믿음이 의심으로 의심이 두려움으로 바뀌어 사진 찍기가 더 어려워질 수도 있으니 부디 조심하시라.  

- 2007년 3월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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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의 눈물 - 문학으로 읽는 아시아 문제 팔레스타인
수아드 아마리 외 지음, 자카리아 모하메드 엮음, 오수연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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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우연히 알게 되어 구독을 하게 된 잡지가 있다. <아시아>란 문예 계간지로 책의 절반이 영문(잡지를 후원하는 포스코 재단의 막강한 재력 덕분인지 우리 작품과 다른 나라 작품 모두를 영역해서 한글판과 같이 묶어 아시아 각국에 보내는 모양이다. 들리는 말로는 원고료도 동종업계에서 최고라 한다.)이라 살짝 구입이 망설여지기도 하지만 여간해서는 볼 수 없는 아시아 각국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기회여서 결국 철마다 구입을 하게 된다.

문제는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에 대한 이번 <아시아> 겨울호 특집을 읽다가 너무 재미있어서였는지 잡지 안에 있는 책 광고를 보고 서점으로 달려가 덥석 『팔레스타인의 눈물』(오수연 엮음, 도서출판 아시아)이란 책을 사버렸다는 것이다. 이게 애초의 내 기대를 저버리고 눈물이 날 만큼 슬프거나 감동적이지도 않고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들로 채워져 3분의 2가 넘도록 심드렁하게 책장만 넘기게 만들었다.

그렇게 책장을 다 덮을 무렵, 인터뷰 때문에 오랜만에 평택 대추리를 다녀올 일이 생겼다. 밤 10시가 다 되어서 들어갔다가 자정을 약간 넘겨서 나오는 아주 잠깐의 방문이었는데 돌아와 잠자리에 누우니 자꾸만 대추리가 아니라 팔레스타인이 떠올랐다. 그런데 책을 펴니 책은 그대로되 책장 한 장 한 장마다 대추리가 들어있고, 인혁당이 나와 있고, 김산과 윤이상이 등장하는 게 아닌가.

이스라엘 지역 동물병원에서 받은 애완견 예방접종 등록증을 검문소에서 내보이며 “나는 이 개의 운전수”라고 농담하는 작가, 1967년 이스라엘의 점령에 반대하는 저항조직의 일원으로 종신형을 받았던 이의 체험기, 어느 날 갑자기 탱크를 앞세우고 쳐들어와서 건물 몇 채를 폭파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물러난 이스라엘을 향해 담담하게 저항을 조직하는 일지…. 이 책을 엮은 소설가 오수연은 이 책이 저들이 아닌 ‘우리의 가물거리는 희망’을 위해 기획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무디기만 한 내게 희망 역시 쉽게 오지 않는 법인지, 이 겨울 나는 대추리에 가서야 팔레스타인을 만나고 책 한 권의 희망을 선물 받았다.  

- 2007년 2월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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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D] 붉은 돼지 (우리말 녹음) (2disc)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 월드디지털엔터테인먼트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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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는 국적불명의 ‘쌍춘년’ 덕에 여기저기서 날아드는 청첩으로 얇은 지갑을 더 얇게 하더니 이런, 올해는 ‘황금 돼지띠’란다. 아무리 봐도 결혼 업체에 이은 출산육아 업체들의 음모 같지만 올해가 정해(丁亥)년으로 딴에는 음양오행에서 정(丁)은 화(火)라 하고 불은 붉은 색, 재물을 뜻한다하니 황금까지는 아니어도 앞으로 닥칠 돌잔치 축의금이라도 어디서 굴러 올 런지 모르겠다.

돼지는 탐욕의 대명사다. 하지만 이는 사람들 내면에 있는 무한대의 욕망을 빗댄 말일 뿐 자신들의 황금기가 도래했는지 알 턱이 없는 돼지는 그저 돼지일 따름이다.

1992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어느 덧 중년이 되어버린 자신에게 바치는 영화라는 장편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의 주인공은 그러나 좀 복잡한 돼지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쟁의 잔혹함을 잊기 위해 스스로 마법을 걸어 돼지가 된 포로코 로소. 그는 외딴 무인도에 은둔하며 붉은 비행기를 몰고 하늘의 해적을 잡는 현상금 사냥꾼이자 “애국 따위는 인간들이나 많이 하라”며 돼지는 조국도 국경도 없다고 중얼대는 무정부주의자이고 다시 공군으로 돌아와 국가의 스폰을 받으라는 제안에 “파시스트가 되느니 차라리 돼지로 남겠다.”라고 호언하는 ‘국가비협조죄’에 ‘나태한 죄’까지 더해진 사상범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포로코는 옛 전투에서 잃은 동료의 부인이자 지금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 마담 지나와 술잔을 기울이며 “좋은 친구들은 모두 죽는다”고 쓸쓸해하는 로맨티스트 돼지다. 영화 후반, 지나가 위험한 결투를 말리며 “당신이 돼지갈비가 되는 장례식은 싫어요.”라는 애틋한(?) 고백을 하지만 “날지 않는 돼지는 돼지일 뿐이야”라고 말하는 그는 돼지가 되지 않고서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는 자의 비애를 갖고 있다. 그러니 황금 돼지들 틈에서 날지도 못하고 마법도 모르는 나는 이불 뒤집어쓰고 붉은 돼지띠를 맞아『붉은 돼지』나 봐야겠다. 

- 2007년 1월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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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시간에 마빡이와 결혼하는 악몽(?)을 꾸다 깬 여고생. 고개를 드니 “열심히 공부하면 신랑 얼굴이 바뀐다”는 급훈이 눈에 딱 들어온다. 정신 번쩍 들어 불철주야 공부하는 여고생을 보여주며 끝나는 한 이동통신사 CF를 보다가 요즘은 급훈이 열심히 공부하면 집 평수가 바뀐다거나 내 집을 장만할 수 있단 것으로 바뀌지 않았을까 싶다. 다른 CF에서는 아주 품격 있는 목소리로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준다고 알려주니 벌써 변두리 어디쯤에선가 학교를 다니고 있을 아이들은 일찌감치 대포자(대학포기자)의 길을 염두에 두었을지 모를 일이다.

“17년 전 부동산 폭등 때 17명이 자살을 했는데 내년 봄 전세 철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 있다.”  

한 부동산 관련 전문가의 말이다. 통계에 의하면 대한민국에서는 30분에 한 명씩 자살을 하며 하루 3건이 생계형 자살이라고 하니 집은 분명 목숨과 깊은 연관이 있다. 어디 집 없는 자 뿐이랴. 800만 비정규직과 100만 이주노동자, 새만금 어민들과 평택 대추리의 주민들, 그리고 사회적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무수한 약자들. 그들이 받는 수모를 곁눈질하며 그들처럼 되지 않기 위해 학교에서 200대의 구타를 감수하고까지 기를 쓰고 입시교육을 버텨내는 우리의 아이들 모두 21세기 난장이들이다.

1978년 초판이 나와 어느덧 200쇄 인쇄를 넘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 문학과지성사). 소설 이후에도 무수한 난장이들이 죽어갔다. 그러나 소설에서 그려진 빈곤과 장애, 주거와 노동의 문제 어느 하나 속 시원히 해결되기는커녕 뒷걸음질이다.

‘난쏘공’이 대명사가 되어버린 이 소설이 26년만인 내년 3월 연극무대에 오른다. 이 연극은 정말 연극처럼 80년 중앙정보부의 압력으로 1주일 만에 공연 포기각서를 쓰고 상연을 접었다. 연극 난쏘공은 중단되었지만 현실에서의 난쏘공은 중단되지 않았다. 이제 대입 막판에 버티고 있는 논술을 준비하며 난쏘공을 읽었을 난장이들을 생각하면 현실은 소설만큼이나 비극적이다. 또한 현실은 소설이나 CF보다 잔인하다. 그래서 작가 조세희는 아직도 물대포를 맞아가며 카메라를 들고 시위현장을 누비고 있다.  

- 2006년 12월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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