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타인의 고통 이후 오퍼스 10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명색이 기자인지라 시위 현장에서 카메라를 들이댈 일이 많지만 썩 내키지 않는다. 예전부터 불의를 보면 잘 참았던 내가 요즘 들어서는 부당한 일만 보면 만사가 귀찮아지니, 이 내키지 않음이 저 대열에 동참해야 한다는 정의감에서 비롯된 것은 분명 아니지 싶다.

불의가 저질러지는 현장에서 카메라 렌즈는 열 사람의 눈, 백 사람의 입보다 강한 무기가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사진 한 장이 역사의 현장을 증언하고 진실을 말할 수 있다는 믿음은 한낱 기대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2004년 타개한 예술평론가이자 소설가, 반전운동가로 알려진 수전 손택의 에세이 『타인의 고통』은 ‘고통’과 ‘사진’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이 왜 쓰였는지는 명쾌하다. 기술(특히 사진과 동영상)의 발달로 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끔찍한 참사들이 거의 실시간으로 전파되고 있음에도 그러한 불행과 고통은 왜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가? 잔혹한 이미지들은 TV와 컴퓨터 모니터를 통과하며 오히려 그 참상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는 일이란 점을 상기시켜 우리를 안심하도록 만드는 것은 아닐까? 대체 나와 상관없는-그렇게 보이도록 만들어진 이미지를 통해-타인의 고통을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이 책은 그러나 명쾌한 답을 내놓지는 않는다. 다만 사진은 탄생시기부터 전쟁의 부당함이 아니라 전쟁의 정당함을 찍어왔다는 사실을 일깨울 뿐이다. 또한 여러 사례들을 통해 이제는 당당히 저널리즘의 반열에 올라 뉴스의 한 부분을 담당하게 된 ‘포토’들이 얼마나 정치적인지(사진을 찍는다는 ‘shot’은 발포, 발사란 의미이기도 하다), 얼마나 피사체를 대상화 시키는지(결국 말하는 것은 사진이며 피사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를 낱낱이 들추고 있다.  

그러다보면 우리는 조작만 하지 않고 다수에게 불쾌감을 주지만 않는다면 다 팔릴 수 있고, 스펙터클하거나 잔혹할수록 더 많이 팔린다는 포터저널리즘의 어두운 면을 보게 된다. 그래서 디카 잘 찍는 법을 알려주는 책들이 허다한 서점에서 재수 없게 이 책을 집어 든다면 믿음이 의심으로 의심이 두려움으로 바뀌어 사진 찍기가 더 어려워질 수도 있으니 부디 조심하시라.  

- 2007년 3월 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팔레스타인의 눈물 - 문학으로 읽는 아시아 문제 팔레스타인
수아드 아마리 외 지음, 자카리아 모하메드 엮음, 오수연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해 우연히 알게 되어 구독을 하게 된 잡지가 있다. <아시아>란 문예 계간지로 책의 절반이 영문(잡지를 후원하는 포스코 재단의 막강한 재력 덕분인지 우리 작품과 다른 나라 작품 모두를 영역해서 한글판과 같이 묶어 아시아 각국에 보내는 모양이다. 들리는 말로는 원고료도 동종업계에서 최고라 한다.)이라 살짝 구입이 망설여지기도 하지만 여간해서는 볼 수 없는 아시아 각국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기회여서 결국 철마다 구입을 하게 된다.

문제는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에 대한 이번 <아시아> 겨울호 특집을 읽다가 너무 재미있어서였는지 잡지 안에 있는 책 광고를 보고 서점으로 달려가 덥석 『팔레스타인의 눈물』(오수연 엮음, 도서출판 아시아)이란 책을 사버렸다는 것이다. 이게 애초의 내 기대를 저버리고 눈물이 날 만큼 슬프거나 감동적이지도 않고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들로 채워져 3분의 2가 넘도록 심드렁하게 책장만 넘기게 만들었다.

그렇게 책장을 다 덮을 무렵, 인터뷰 때문에 오랜만에 평택 대추리를 다녀올 일이 생겼다. 밤 10시가 다 되어서 들어갔다가 자정을 약간 넘겨서 나오는 아주 잠깐의 방문이었는데 돌아와 잠자리에 누우니 자꾸만 대추리가 아니라 팔레스타인이 떠올랐다. 그런데 책을 펴니 책은 그대로되 책장 한 장 한 장마다 대추리가 들어있고, 인혁당이 나와 있고, 김산과 윤이상이 등장하는 게 아닌가.

이스라엘 지역 동물병원에서 받은 애완견 예방접종 등록증을 검문소에서 내보이며 “나는 이 개의 운전수”라고 농담하는 작가, 1967년 이스라엘의 점령에 반대하는 저항조직의 일원으로 종신형을 받았던 이의 체험기, 어느 날 갑자기 탱크를 앞세우고 쳐들어와서 건물 몇 채를 폭파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물러난 이스라엘을 향해 담담하게 저항을 조직하는 일지…. 이 책을 엮은 소설가 오수연은 이 책이 저들이 아닌 ‘우리의 가물거리는 희망’을 위해 기획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무디기만 한 내게 희망 역시 쉽게 오지 않는 법인지, 이 겨울 나는 대추리에 가서야 팔레스타인을 만나고 책 한 권의 희망을 선물 받았다.  

- 2007년 2월 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히로시마 노트 오에 겐자부로의 평화 공감 르포 2
오에 겐자부로 지음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한 사람의 행복은 다른 사람의 슬픔*일수도 있다는 사실을 쉽게 잊고 산다. 8월 15일은 우리에게 광복절이지만 일본에게는 패전일이다. 그러면 8월 6일은?

“정신을 차리고 튀어나와 보니, 경례하는 모습인 채, 전우들이 서 있다. ‘이봐!’ 하고 어께를 두드리자 부슬부슬 전우는 무너져 내렸다.”
“상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희생자의 다리만 두개, 콘크리트 길바닥에 달라붙어 서 있다.”
“전차 안에서 한 아가씨가 손가방을 꼭 쥔 채 상처 하나 없이, 새까맣게 탄 군인과 머리를 맞대고 죽어 있었습니다.”


일본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가 1963년부터 1965년까지 히로시마를 방문하고 쓴 <히로시마 노트>(김춘미 옮김. 고려원**)에 실린 피폭 생존자들의 증언이다. “겨우 살았다고 기뻐하던” 그들도 “몸 여기저기에 반점이 나타나거나 머리털이 몽땅 빠지거나 하면서 차례차례 죽어갔다.” 오에는 반핵투쟁 열기로 뜨거웠던 당시 히로시마의 현장을 스케치하면서 원폭 당시의 증언과 기록을 모아간다.

1950년 한 미국인 신문기자가 히로시마를 방문해 장님이 된 피폭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지금 조선에 원폭을 두서너 발 떨어뜨리면 전쟁이 끝나리라고 생각되는데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둔감함이야말로 이미 하나의 퇴폐이다. 그리고 퇴폐의 극단에 핵무기로 인한 인류 최후의 전쟁 가능성 또한 있을 것이다.

그의 경고가 현실화 되어 가는 것은 아닌지. 그는 “피폭자에게는 침묵할 권리가 있다. 만일 그럴 수만 있다면, 그들은 히로시마에 관한 모든 것을 잊어버릴 권리가 있다.”고 썼다. 하지만 그럴 권리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피폭자 대신 일본정부와 사회가 그 권리를 행사하려는 건 아닌지 심히 걱정스러운 요즘이다. 인간의 존엄을 찾아 히로시마의 비참함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던 오에의 이야기를 다시 듣고 싶어진다. 

- 2006년 8월 씀 

------------- 

*님 웨일즈의 <아리랑> 중 김산의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