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21 | 22 | 2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지난여름 한 언론사의 ‘한국인은 무엇인가’란 설문조사에서 “가장 한국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이란 묘한 질문이 있었는데 하인즈 워드, 윤수일, 다니엘 헤니, 로버트 할리를 제치고 유승준이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이처럼 한편 웃기면서도 두려운 것이 ‘국익’이고 국익론, 국익 지상주의다.

2002년 월드컵 때 ‘붉은 악마’한테서 신문명의 원형을 봤다는 김지하는 “미국을 덮어놓고 제국주의라고 해서는 안 되고, 한국과 미국이 손잡고 네오 르네상스를 창출”해야 한다지만, 이미 한국은 미국의 뒷자리에 앉아 열심히 국익을 주워 담고 있다.

여론조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략 50%에 가까운 사람들이 이라크 자이툰 부대의 파병연장에 찬성한다. 또 50%를 훨씬 웃도는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유력 대선주자는 “미래의 에너지 전쟁에서 자이툰 부대의 역할은 중요하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닌다. 파병연장에 반대하는 대선후보들도 그 이유가 “국민과의 약속이 중요하다”(국민이 원하면 더 있을 수 있다?)거나 “더 이상 국익에 보탬이 안 된다”(더 챙길 게 있으면?)는 것이니 국익을 위해서라면 전쟁도 불사할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

이런 우울한 시국에 마눌님이 출산을 한다고 덩달아 책 한권, 영화 한편 못 보다가 우연히 주말의 영화로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보게 되었다. ‘빵과 장미’로 유명한 좌파 감독 켄 로치의 이 영화는 아일랜드 독립운동을 다루고 있는데, 후반부는 아일랜드 독립군 우파인 형 ‘데디’와 좌파 무장투쟁 노선을 견지한 동생 ‘데미안’의 갈등에 초점을 맞춘다. 이 둘은 좌우파의 대립이 생기기 전까지 함께 아일랜드의 독립을 위해 싸웠고, 형을 대신해 동생 데미안은 조직 내 반역을 했던 친구를 직접 총살하기까지 한다.

“조국이란 이렇게까지 할 가치가 있는 거겠죠?” 동생은 총을 쏘기 직전에 묻는다. 하지만 그는 결국 다른 조국을 꿈꿨다는 이유로 형 앞에서 죽임을 당하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결국 조국이니 국익이니 하는 것들은 그 앞에 ‘어떠한’이란 수식이 없는 한 그저 추상명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 영화를 굳이 보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미 너무나 많은 피의 대가로 역사를 통해 배우지 않았나.  

- 2007. 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업시간에 마빡이와 결혼하는 악몽(?)을 꾸다 깬 여고생. 고개를 드니 “열심히 공부하면 신랑 얼굴이 바뀐다”는 급훈이 눈에 딱 들어온다. 정신 번쩍 들어 불철주야 공부하는 여고생을 보여주며 끝나는 한 이동통신사 CF를 보다가 요즘은 급훈이 열심히 공부하면 집 평수가 바뀐다거나 내 집을 장만할 수 있단 것으로 바뀌지 않았을까 싶다. 다른 CF에서는 아주 품격 있는 목소리로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준다고 알려주니 벌써 변두리 어디쯤에선가 학교를 다니고 있을 아이들은 일찌감치 대포자(대학포기자)의 길을 염두에 두었을지 모를 일이다.

“17년 전 부동산 폭등 때 17명이 자살을 했는데 내년 봄 전세 철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 있다.”  

한 부동산 관련 전문가의 말이다. 통계에 의하면 대한민국에서는 30분에 한 명씩 자살을 하며 하루 3건이 생계형 자살이라고 하니 집은 분명 목숨과 깊은 연관이 있다. 어디 집 없는 자 뿐이랴. 800만 비정규직과 100만 이주노동자, 새만금 어민들과 평택 대추리의 주민들, 그리고 사회적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무수한 약자들. 그들이 받는 수모를 곁눈질하며 그들처럼 되지 않기 위해 학교에서 200대의 구타를 감수하고까지 기를 쓰고 입시교육을 버텨내는 우리의 아이들 모두 21세기 난장이들이다.

1978년 초판이 나와 어느덧 200쇄 인쇄를 넘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 문학과지성사). 소설 이후에도 무수한 난장이들이 죽어갔다. 그러나 소설에서 그려진 빈곤과 장애, 주거와 노동의 문제 어느 하나 속 시원히 해결되기는커녕 뒷걸음질이다.

‘난쏘공’이 대명사가 되어버린 이 소설이 26년만인 내년 3월 연극무대에 오른다. 이 연극은 정말 연극처럼 80년 중앙정보부의 압력으로 1주일 만에 공연 포기각서를 쓰고 상연을 접었다. 연극 난쏘공은 중단되었지만 현실에서의 난쏘공은 중단되지 않았다. 이제 대입 막판에 버티고 있는 논술을 준비하며 난쏘공을 읽었을 난장이들을 생각하면 현실은 소설만큼이나 비극적이다. 또한 현실은 소설이나 CF보다 잔인하다. 그래서 작가 조세희는 아직도 물대포를 맞아가며 카메라를 들고 시위현장을 누비고 있다.  

- 2006년 12월 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소설 「양철북」의 작가 권터 그라스(Gunter Wilhelm Grass). 그는 2년 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건국 이후 최대 간첩’ 송두율 교수 사건 당시 한국 재판부에 탄원서를 보내오기도 했을 만큼 행동하는 양심으로 존경받아왔다. 그런 그가 8월 12일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너차이퉁>과의 인터뷰에서 곧 출간될 자신의 회고록 「양파의 껍질을 벗길 때」의 집필 배경을 밝히며 “15세 때 히틀러 청소년단 시절 자발적으로 입대를 신청했으나 어리다는 이유로 거절” 당했고, “2년 뒤인 17세에 무장친위대로 발령받아 종전 때까지 복무했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했다.

이를 두고 권터 그라스의 고향이기도 한 폴란드 그단스크시에서 그와 함께 명예시민증을 받은 바 있는 전 폴란드 대통령 바웬사는 그에게 명예시민증을 반납하라며 강하게 쏘아붙였다. 비단 바웬사뿐만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이 고백을 두고 자서전을 팔아먹기 위한 쇼가 아니냐며 빈정거렸고 현지의 여론도 한동안 양분되었다. 뒤질세라 한국의 보수언론들도 그의 양심은 빈 깡통이라 비아냥대며 바다 건너에서 비난의 행렬에 동참했다. 하지만 얼마 뒤 권터 그라스가 그단스크시장에게 절절한 참회의 편지를 보냈고, 시장뿐만 아니라 바웬사도 더 이상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기로 했다는 소식은 거의 보도되지 않고 있다.

지난 해 만들어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기본법>은 38조에 “완전한 진실을 고백한 가해자에 대한 화해조치” 규정을 두고 양심선언을 한 가해자에게 위원회가 특별사면과 복권을 건의할 수 있게 해놓았다. 물론 이 조항을 통해서도, 그동안의 지난했던 진상규명과 과거청산의 과정에서도 누구 하나 양심선언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는 못했다. 오히려 허원근 일병 사건에서처럼 조금이라도 진실이 밝혀질라치면 가해자들은 들개처럼 달려들어 온갖 협박과 회유를 일삼고 그 은폐의 시한을 연장하려 전력을 다할 뿐이다.

올해로 78세인 황혼의 권터 그라스는 “당시에는 못 느꼈지만 이후 전 생애를 거쳐 수치심에 짓눌렸으며 괴로웠다.”고 인터뷰 말미에서 심경을 토로했다. 그 쓸쓸함 뒤로 2차 세계대전의 혼란 속에서 성장하기를 거부하고 양철북을 쳐대던 오스카의 모습이 떠오르고 한 편으로는 한 늙은 작가의 양심의 무게에 비해 우리 사회의 성찰이 너무나도 가볍고 또 가난한 듯해서 못내 씁쓸하다.  


- 2006년 9월 씀. 제목은 윤동주의 시 '참회록'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21 | 22 | 2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