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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부재는 일방통행이다. 그것은 남아 있는 사람으로부터 말해질 수 있는 것이지, 떠나는 사람으로부터 말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항상 현존하는 나는 끊임없이 부재하는 너 앞에서만 성립된다. 그러므로 부재를 말한다는 것은 곧 주체의 자리와 타자의 자리가 교환될 수 없음을 단번에 상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랑하는 것만큼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을.”

 

- 롤랑 바르트 지음, 사랑의 단상, 김희영 옮김, 30~31쪽에서-

 

사랑은 일방적으로 끝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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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라슈 2018-11-26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사랑의 침묵은 극도의 고통.
 
밤 미시령 창비시선 260
고형렬 지음 / 창비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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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형렬의 산문집<은빛 물고기>를 매우 감명 깊게 읽었다. 강원도 양양 남대천에 소상하는 연어를 소재로 한 서사 산문이었는데 하나의 소재로 그렇게 아름다운 산문을 써내는 작가가 또 누가 있을까? 삶과 생명에 대한 깊은 성찰과 사색의 결정이 응집된 고형렬의 산문 문장들은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얻기 어려운 문학적 희열을 제공한다.

 

 이번엔 고형렬의 시집 <밤 미시령>.

고형렬은 1979년 현대문학에 <장자>등이 추천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작가다.

이 시집<밤 미시령>에 수록된 시의 소재들은 평범하다.

그러나 시인이 형상화해낸 뒤의 그 평범한 소재들의 이미지는 독자들에게 전혀 새로운 차원의 이미지를 선사한다. <동물원 플라타너스>라는 시는 동물원에서 본 기린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사다리 같은 긴 목을 펼쳤다.

사과모양 입이 항문처럼 오물거린다.

그 주먹 안에 혀가 있어 잎사귀를 부드럽게 말아넣는다.

내 손바닥을 덥석 따 먹을 것처럼 친구 입은 벌레와 풀을 밟지 않는

발처럼 부드럽고, 고기를 모르기에 잎사귀들 네 몸에 얼룩얼룩 나타난다.

 

                                                                           -동물원 플라타너스-

 

 위의 시에서 시인은 기린의 작은 머리와 잎사귀를 따 먹는 기린의 입을 주먹과 사과, 항문에 비유해서 묘사하고 있는데, 사과모양 입이라는 형상과 항문처럼 오물거리는 근육의 물리적 운동이 기발하게 융합되어 나뭇잎을 먹고 있는 기린의 입을 재미있는 시각적 형상으로 이미지화하고 있다.

 

 덕분에 독자들은 시인의 독특한 사물 해석과 이미지화 덕분에 새로울 것 없는 기린에게서 전혀 다른 생명을 얻는데, 이것은 시를 읽는 독자들의 적지 않은 즐거움이다.

 

 또 마지막 행 “고기를 모르기에 잎사귀들 네 몸에 얼룩얼룩 나타난다” 라는 구절에 이르면 이 시인이 바라보는 평범한 한 마리 기린은 기린만의 개성을 초월하여 자신이 먹었던 잎사귀들이 몸에 얼룩얼룩 나타나게 되는 주와 객의 구분이 사라지고 윤회의 굴레를 벗어난 불교적 해탈자의 모습까지 보여주게 된다. 고형렬의 산문과 시 곳곳에서는 불교적 색채가 짙은 세계관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시인의 詩心에 걸리는 것들은 다양하다. <메뚜기들 죽은 곳>의 가을 메뚜기 떼, <젖, 차양을 쳐주어라>의 어미 진돗개, <폐차 통지서를 받고, 서울 45라 4706>의 9년 된 프라이드 승용차 등..

 

 이 흔해빠진 사물들도 인드라망처럼 질기게 연결된 인과의 그물에서 시적운율에 맟추어 고형렬의 시세계에 등장한다. <메뚜기들 죽은 곳>이라는 시에서 시인은 시적 기본기를 여실히 보여준다. 메뚜기의 얇디얇은 겉날개와 속 날개를 “풀잎 누런 겉날개 한 벌, 연노랑 속치마”로 이미지화하고 있는데 이런 시적 이미지는 뇌리에 깊게 각인된다. 평범한 메뚜기 날개하나로 인해 정신이 풍부해지고 윤택해지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또, <젖, 차양을 쳐주어라>에서 시인은 유기견인 진돗개의 출산과 새끼를 향한 본능을 무심한 듯이 바라보고 있는데 유기견 어미견을 보살로 인식하는 시인의 시선은 무척 따뜻하다.

 

 그의 산문 속에 등장하는 영북지방(강원도 속초,양양 등지를 말함)의 풍경은 비록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지만, 작가의 문학적 역량으로 인해 매우 친숙한 또 다른 고향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누구라도 그의 산문과 시를 읽는 사람이라면 영북지방으로의 여행을 꿈꾸게 한다.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고향을 꿈꾸게 만드는 능력을 가진 작가가 바로 고형렬이다.

 

 그만큼 그의 시들이 자아내는 영북의 이미지는 사람들이 가진 보편적 감수성을 자극한다. 그의 시들이 부추기는 이 여행은 실현 불가능한 꿈이 아니다. 아직은 계획에 불과하지만 그 여행이 성사되기까지 나는 영북지방의 아름다움과 유년의 눈부신 추억을 노래하는 고형렬의 글과 시들을 자양분처럼 의식에 간직하고 쌓아둘 것이다. 마침내 내가 언젠가 작가의 고향에 이른다면, 그동안 내가 쌓아왔던 자양분들은 비로소 그곳의 자연풍경과 온갖 사물에 녹아들어 그때 내가 바라보고 느끼는 모든 것들을 더욱 풍족하게 해주기를 기대한다.

 

ps: 이 글을 작성하고 2013년도 봄에 강원도 속초와 설악산 여행을 다녀왔다.

강원도 인제쪽에서 속초쪽으로 가려면 미시령을 넘어야 하는데 당시에도 미시령 터널공사가 완료되어 있었지만 고형렬의 시집<밤 미시령>을 접한 뒤라 터널이 아닌 미시령 옛길을 넘었다. 어차피 두 번 오기 힘들 곳이라는 생각에 미시령을 넘는 길을 택했는데 길은 험해 멀미가 나고 자동차 브레이크 패드 타는 냄새가 진동했지만 미시령 정상(아마 황철봉 주변일 것이다)에서 바라보는 동해와 속초 전경은 환상 그 자체였다.

 

 동해쪽에서 외설악을 타고 올라오는 시린 안개를 온 몸으로 받으면서 동해를 바라본 느낌도 잊을 수 없다. 설악 소공원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권금성에 올라 바라본 외설악의 장엄한 능선들도 감동이다. 그 높은곳에서 떨어지는 토왕성폭포를 보고 있으면 세상에 이런 곳이 다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설악산과 금강산 곳곳에 숱하게 전해내려오는 신선, 선녀 이야기들이 왜 생겼는지 짐작이 간다. 서북능선과 대청봉쪽으로 올라 공룡능선과 광대한 동해를 조망하면 조개껍질같은 도시에서 아웅다웅하며 사는 인간의 삶이란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

 

나는 이쪽 설악, 속초쪽 동네가 너무 마음에 들어 나중에 돈이 많이 생긴다면 이곳에 정착하면 어떨까하는 짧은 생각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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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9 17: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트라슈 2016-06-24 15:45   좋아요 0 | URL
나타샤 님 사연을 보니 파스칼 메르시어 소설<리스본행 야간열차>가 생각납니다.
한 권의 책이 인연이 되어 불같은 사랑을 찾아가는 아름다운 이야기..

저도 그 낙서의 뒷 이야기가 참 궁금하네요. 그런데 그렇게 갑자기 계정이 사라진 건 정말 무슨 사연이 있긴 있는 모양입니다. 아마도 미시령에 얽힌 사랑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그분과 계속 메일을 주고받았으면 <리스본행 야간열차>같은 또다른 아름다운 이야기가 탄생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사람의 삶이란 결국 무수한 사연과 이야기, 서사로 이루어지는것 같습니다.
댓글 감사드립니다. (비밀댓글인줄 모르고 공개댓글로 달았다가 수정했습니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48
천상병 지음 / 미래사 / 199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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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고등학교 3학년때로 기억된다. 당시 시인 천상병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 ‘귀천’을 보고 이 순수한 무욕의 시인을 알게 되었다. 아마 1994년쯤이었던 같다. 천상병 시인의 역할은 지금은 원로배우인 정진씨가 열연했고 시인의 부인 목순옥 여사 역할은 김자옥씨가 맡았다. 그 드라마에서 천상병 역할을 한 정 진 씨의 연기가 너무 훌륭했고 가난과 질병조차 그의 시심을 꺽지 못한 감동적인 인생을 보고   나서 바로 서점으로 뛰어가서 시인의 시집 3권을 구입했다.
시인의 시집을 펼쳐보니 드라마에서 보지 못한 감동적인 시가 몰려왔다. 당시 시를 많이 읽지 않았던 나로서는 천상병의 시를 읽고서는 시가 이처럼 쉽고 재미있고 감동을 주는 것임을 처음 알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 유명한 시인의 대표작 ‘귀천’을 처음 접했을 때 느꼈던 감동과 카타르시스는 잊을 수 없고 지금도 여전하다.

 

 <歸天>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귀천을 이해하는데 어렵고 복잡한 문학이론은 필요치 않다. 누구나 가진 순수한 직관과 감성만으로도 이 시를 감상하고 느끼기에 충분하다.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를 난해한 현대시와는 다르다. 그만큼 그의 시는 직관적이다. 그러나 이 ‘귀천’ 은 단순히 하늘로 돌아가려는 속세의 인간이 바라는 영원과 구원에 대한 절실한 바람으로만 읽혀지지도 않는다. 예전에는 몰랐지만 요즘 이 시를 다시 읽었을 때 시인의 현실에 대한 한없는 긍정과 애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흔히 천상병의 시에서 기독교적 세계관을 볼 수 있다고 하지만, 그의 시를 읽다가 매번 느끼는 것은 그는 결코 초월적 신과 영생불멸의 천국에 대해 말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귀천’에서 시인은 이 세상의 온갖 유한한 것들(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진 이슬, 저녁 찰나의 노을빛)과 손을 잡고 놀다가 기슭의 구름이 손짓 하면은 비로소 하늘로 돌아가리라는 다짐을 하고 있다. 게다가 하늘로 돌아오라는 전령인 구름조차 유한한 이 세상의 자연사물에 불과하다.

 

 시인은 혼자서 영원의 하늘로 돌아가려는 것이 아니라 세속의 온갖 유한한 것들과 더불어 가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이 가려는 곳은 이 시에서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다만,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라는 다짐만 언급하고 있다. 시인은 그 하늘의 세계에 무엇이 존재하고 있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곳이 천국이든 지옥이든 그저 가서 아름다웠더라는 다짐만이 시인의 유일한 관심사인 것이다. ‘귀천’ 이라는 시가 아름다운 것은 귀천이라는 과정 그 자체가 바로 아름다운 이 세상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리라. 그래서 이 시에서는 우리가 좌충우돌 부대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찬사와 예찬이 부드러운 시적 운율과 더불어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다른 시인들이 말과 글의 有爲를 추구하는데 비해 천상병은 말과 글로써 무언가를 애써 지으려고 하지 않는다. 천상병의 시를 읽고 있으면 노장(老壯)이 떠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의 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서 저절로 시가 된다.  실제로 그는 동백림 사건에 연유되어 가옥한 옥고를 치르고 난 뒤 출소하여 자신이 詩聖임을 다음과 같이 공공연히 떠벌리고 다녔다고 한다.

 

“문디 자식들, 난 서정주하고 같은 급이야, 시인이 아니고 詩聖이야. 나는 시를 짓지 않는다. 입을 열면 그대로 시가 흘러나오고 내가 원고지에 적는 것은 모두가 시야, 알겠나! 문디 자식들!”

 

 정말 그의 시들을 읽어보면 그의 시에는 시를 애써 지으려 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일기를 적 듯 시적 운율과 시적 구조에 얽매이지 않는 평범한 이야기들의 나열일 뿐임에도 그것은 분명 시로 보인다. 자신이 詩聖임을 떠벌리고 다닌 것이 허튼 과대망상은 분명히 아님을 그의 시들이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막걸리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했다. 값싼 막걸리의 얼근한 취기만이 그의 고단하고 가난한 삶의 위안이었을까? 천상병의 생전 삶은 하루 막걸리 두 되와 담배 몇 개비로 족했다. 천상병은 그의 부인 목순옥 여사가 찻집을 경영하여 벌어오는 수입으로 막걸리와 담배를 사고 하루를 만족하며 시에 몰두하다가 어느 날 새처럼 하늘로 돌아갔다. 가난과 질병조차 자유롭고 자족한 시인의 삶을 훼방하지 못했다. 많은 시인들이 가난의 미덕을 노래했지만 그는 가난의 미덕을 찬양하지 않는다. 가난은 그의 삶 그 자체였으며 그 가난의 미덕을 노래함으로써 행복하려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가 행복하기 때문에 애써 가난을 미화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행복하기 위해 시를 지은 것이 아니라 삶의 근본에 통달했기 때문에 그의 입과 손에서 나온 것은 저절로 시가 된다.

  

       <행복>
 

  나는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다 
      
  아내가 찻집을 경영해서                
  생활의 걱정이 없고 
  대학을 다녔으니
  배움의 부족도 없고 
  시인이니                 
  명예욕도 충분하고
  이쁜 아내니
  여자 생각도 없고
  아이가 없으니                                       

  뒤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집도 있으니

  얼마나 편안한가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더구나

  하나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시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

~전략~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빛에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후략~

                                                                           <나의 가난은> 부분


  하나님조차 자신의 행복에 대한 든든한 빽에 불과하고 햇빛에도 떳떳할 수 있는 것은 그 흔한 예금통장하나 가지지 않은 순수 무욕의 삶이었기에 가능했으리라.. 그의 시를 읽다보면 오로지 부자의 미덕에 익숙해져 있는 내 자신의 끈끈한 욕망과 작고 사소한 것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행복 불감증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한일 월드컵이 열리던 2002년 이른 봄, 나는 한 친구와 천상병 아내 목순옥 여사가 운영하는 서울 인사동의 카페 귀천을 찾았다. 여기서 파는 차는 유자차와 모과차가 전부. 커피는 팔지 않는다. 소문대로 카페 귀천은 매우 좁았다. 한 2평정도 될까? 이런 작은 공간이 찻집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이하고 놀라웠다. 찻집에 들어서니 시인의 아내 목순옥 여사는 찻집 입구의 카운터에 작은 새처럼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런 작은 찻집에 어울리는 작은 분이었다. 아니, 목순옥 여사는 처음부터 카페 귀천을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우리는 유자차를 주문했다. 마주앉은 다른 손님들과 무릎이 맞닿을 정도로 비좁았기 때문에 다른 손님과의 친밀한 거리는 어색하고 불편했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무릎이 맞닿고 어깨가 맞닿을 거리에 앉아 있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카페 귀천에 유명한 소설가나 시인이 자주 오신다고 들어서 혹시 유명 문인이라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갔는데 찾집이 너무 좁아 오래 앉아 있는 것 자체가 민폐일 것 같아 아직 식지도 않은 뜨거운 유자차를 훅훅 불어 급하게 마시고서 목순옥 여사의 자서전<날개 없는 새 짝이 되어>를 한부 구입해서 목 여사의 싸인을 받고서 황급히 카페 귀천을 떠났다. 그날 급하게 마신 유자차 때문에 입천장이 모두 데어 몹시도 쓰라렸다.

 

 이런 추억이 담긴 카페 귀천도  목순옥 여사가 별세를 하고서 운영할 사람을 찾지 못해 한동안 문을 닫았다가 목여사님의 조카분이 다시 운영을 한다고 한다. 인사동에 갈 기회가 생기면 옛 추억을 더듬어 다시 찾아가고 싶다. 이제 시인도 가고 그의 아내도 더불어 갔다. 남은 건 시인과 아내가 생전에 남긴 아름다운 말과 글, 그리고 숱한 이야기. 사람은 갔지만 그들이 생전에 가졌던 아름다운 생각들은 여전히 남아 살아있는 사람들의 정신에 감동과 영감을 불어넣어준다. 그래서 시와 문학은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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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 2 밀리언셀러 클럽 65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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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쓴 여자들 이야기. 기리노 나쓰오의 다른 작품은 더 읽어보지 못했지만 자신만의 이야기, 문장 스타일을 제대로 만든 작가라고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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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 1 밀리언셀러 클럽 64
기리노 나쓰오 지음 / 황금가지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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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그로테스크. 도시락공장에서 근무하는 네 여인 이야기. 힘있고 감질맛 나는 기리노 나쓰오의 문장과 디테일한 이야기. 내용이 좀 끔찍하지만 소장가치가 있다. 이런 분위기의 소설을 좋아하는 내가 좀 이상한가.. 인상깊게 읽었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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