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샌델은 왜 공동체를 추구하는가?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통해 우리나라에 최고의 정치사회쪽에서 인기있는 교수이다. 하버드에서 강의하는 저력답게 그의 글들은 많은 예화와 깔끔한 논리와 선명한 논지 등이 돋보인다. 마이클 샌델이 한국에 온 것은 2005년 9월 다산 기념 철학 강좌의 연사로 초대받아서 였다. 이 기회를 통해 그는 서울대학교와 프레스센터, 경북대학교, 전북대학교 등에서 자신의 공동체 철학을 피력하고 갔다.  

다산 기념 철학강좌의 네 차례 강의록을 번역하여 원문과 함께 2008년에 출간한 것이 <공동체주의와 공공성>이다. 그러나 마이클 샌델을 유명하게 한 책은 우리가 잘 아는 <정의란 무엇인가?>이다. 샌델은 강의를 하면서 자신만의 주제와 논리를 일방적으로 펴나가지 않는다. 학생들에게 질문하고 답하게 하면서 반토론식의 강의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어려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따분하지 않게하고, 진지한 고민을 하게 한다. <정의란 무엇인가>가 대정적인 접근을 했다면, <생명 윤리를 말하다>는 딱딱하고 합리적 논지로 일관한다.  

 

 

 

 

 

 

 

 

샌델 교수의 학문적 위치는 1970년대 서구학계에서 많은 동조자를 얻었던 자유주의대 공동체주의 논쟁과 결부되어있다. 1971년 하버드대의 존 롤스가 <정의론>를 출간하면서 자유주의적 정의론이 무엇인가를 정의한 것이 논쟁의 시발점이 되었다. 롤를 이 책에서 자유주의보다 개인의 자유를 중요시하는 자유지상주의를 피력했다. 즉 전체의 자유보다 개개인의 자유가 우선한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공동체와 전통을 중요시하는 학자들은 공동체주의 중요성을 피력하고 자유주의와 반대입장에 서게 된다. 샌델, 찰스 테일러, 마이클 왈저 등이 공동체적 자유를 지지했다. 그러나 이들은 공동체라고 명명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고 오히려 자유주의적 공동체주의로 표현하기를 좋아했다.  

 

 

 

 

 

 

 

자유란 무엇인가는 결국 무엇에 가치를 높게 두느냐의 문제로 직결된다.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는가 아니면 특정한 삶에 대한 우선권을 부여하는가를 대비시켰다. 자유주의자들이 추구하는 자유에는 인간의 완전성이 전제되어 있다. 인간은 각 개인에게 완전한 자유를 부여할 때 사회가 안정되고 최대의 행복을 추구하게 될 것이고 말한다. 그러나 공동체주의는 약간 다르다. 인간은 불안전하기 때문에 약간의 제제와 규범이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전제는 자유주의가 진보적 성향을 가지고, 공동체주의는 보수적 전통을 따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샌델의 공동체주의는 필연적으로 공동체가 운영되기 위한 최소한의 규범이 필요로하게 된다. 이러한 필요성을 언급한 것이 <왜 도덕인가>이다. 도덕은 구약의 율법으로서 강제화된 것이 아니라 교통신호와 같이 필요한 것이다. 더 나아가 인간은 서로에 대한 도덕, 즉 관계를 원만하게 하기위한 몇 가지의 규정이 필요하게 된다. 배아복제의 문제를 다루면서 배아복제를 부정하면서도 긍정하는 양면성을 띤다. 이곳에서 샌델교수는 생명을 선물로 보기를 원한다. 부모가 태어날 아이를 조합하고 조제해서 만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으로 보고 생명은 사랑에 의한 결과물로 선물로 주어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부모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유전학은 현대의 인간들을 흔들리게 한다. 독이지 약인지 아직 분명한 선이 그어지지 않은 상태이며, 어떻게 풀아나야할지 많은 과제를 남기고 있다. 왜냐하면 현대의 유전학은 인간의 이미지에 치명적인 독을 뿌리고 있기 때문이다. 샌델교수는 <생명윤리를 말하다>에서 완벽한 아이를 탄생시키려는 무모한 욕망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때 우리나라에서도 완벽한 정자를 얻기 위해 해외 여행까지 떠난 일도 있다. 중국에서는 미인이고 유명한 대학생의 정자나 난자를 얻기 위해 수많은 돈을 들이는 일도 있었다. 생존을 위해서 불가피한 일이라고 하지만 완변학 탄생을 기대한다는 것은 인간됨을 버리고 사람은 상품화하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샌델은 공동체주의가 현대의 문제를 타개하는 답이라고 주장한다. 자유란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대한 윤리성을 스스로 부여하고 주어진 선물-아이에게 무조건적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완벽한 유전자를 추구하는 것은 타인을 경쟁상대로 보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빌미를 찾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야 말로 진정한 자유요 생명 윤리를 정의하는 토대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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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ㅎ 2014-05-23 22: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퍼갑니다^^

여우비 2017-10-24 17: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봤습니다! 도움이 많이 됐어용.
 

아라한 장풍 대작전 

 

시원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장풍을 날리고 하늘을 날아 다니고 축지법을 써서 순식산에 이동하는 신기한 능력을 가진 그런 존재로 살아가고 싶은 것이 인간이다.  

그런 생각을 갖는 이유가 뭘까?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은 이유가 아닐까? 불의한 세상을 개혁하여 공의가 세워지고 올바름이 세상을 지배하는 그런 평범한 세상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탄생한 것이다. 평범하지만 장풍으로 세상으로 바꾸는 그런 사람들을 시원케하는 영화다. 

 마루치와 아라치가 힘을 합하여 세상을 바꾼다.

소매치기한 강도를 찾아 떠나는 가냘픈 여인 아라치, 그러나 올려다 보기도 힘든 마천루를 뛰어 다닌다. 흡사 스파이더맨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코믹과 화려한 액션, 무협영화에 등장하는 적당한 스토리가 믹스된 '아라한 장풍 대작전'는 시원하고 통쾌하고 코믹하다. 그래서인지 유난히도 정이가는 영화이다. 이미 오래된 영화이지만 오늘 여전히 그 코믹함과 통쾌함에 비명을 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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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1-08-11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멍청해 보이는 도사 삼인방은....도대체 안성기씨는 왜 그런 배역을 맡으셨을까요?

막말녀 2012-09-26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영화배우 윤소이는
이영화에서 반말이심한
막말녀로 나온다!
특히 그녀는 영화에만
나올때면 말괄량이왈가닥
으로 180도로 바뀐다!
이런애가 영화배우라니?
지나가던개가웃겠다!
영화배우들이 원래부터
건방지고 재수없는 인간들이
많으니까
 

팔로워, 그들의 무엇을 기대하는가?

 

이젠 한물 간 미국식 싸이월드인 마이스페이스, 새로게 급부상한 트윗터와 페이스북이 있다. 이들을 두고 소셜네트웍이라고 부른다. 각각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하다. 특히 '팔로워'들을 거느린다는 뜻에서 더욱 그렇다. 팔로워라는 말은 트위터의 용어이지만, 페이스북 역시 친구개념으로 서로를 팔로워한다.  

  

팔로워하는 왜 하는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자. 왜 팔로워하는가? 이 글을 쓰는 나도 수많은 사람은 팔로워하고 있으며, 페이스북에서 친구로 등록하고 있다.  왜? 누구를 팔로워하는 것일까? 개인적인 소견부터 시작해보자. 먼저 필자가 팔로워하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은 존경하고 싶거나 배우고 싶은 사람들이며, 후광효과를 누리고 싶은 유명인들이다. 정치, 경제, 연예인, 체육인 등 유명한 사람들을 팔로워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의 생각이나 의견을 듣고싶고, 그들을 팔로워함으로 긍지아닌 긍지를 가지기 때문이다. 그들처럼 살지는 못하지만 그들과 가깝다는 단 한가지의 사실만으로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다.

 

 

 

 

 

 

 

 

 팔로워는 한 마디로 말하면 영향력이다. 팔로워는 단순한 인맥이 아니다. 나는 그들과 아무 상관 없으며, 그들 또한 내가 팔로워한다고해서 나를 알아주거나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렇게 함으로 나는 그들과의 관계가 있음을 스스로 자위하는 것이다. 부끄러운 말인지는 몰라도 '나는 그들의 영향을 받는 존재'다. 팔로워는 정확하게 그것을 의미한다. 그들을 닮고싶다. 그들을 따르고 싶고, 그들처럼 되고 싶은 마음이 팔로워를 통해 나타나는 것이다. 

 

팔로워는 '친구'에 대한 갈망이다. 소셜네트웍에서의 친구는 사회속의 '친구'의 개념과는 많이 다르다. 사회 속에서 친구는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맺어진 친구이거나 필요에 의하여 만들어진 친구들이다. 그러나 소셜네트웍에서의 친구는 '이상형'으로서의 친구다. 원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거절이 가능하며 과감하게 버리고 떠날 수 있는 존재다. 다른시각에서 본다면 그럼에도불구하고 친구를 맺는다는 것은 그만큼 친구를 '갈망'한다는 것을 말한다. 

 

 

현대인은 고독하다. 친구를 필요로하되 부정한다. 역설적이면서 아이러니한 관계의 모순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소셜네트웍에서의 친구는 이러한 부정과 긍정을 함께 의미하는 친구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들을 따르면서도 그들이 아니라는 것을 팔로워를 통해 보여주기 때문이다. 

 

 

 

 

'호모 사피엔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아리스토렐레스의 이말은 사람은 사회 속에서 인간의 존재의미가 확인된다는 말이다. 즉 도시 안에서만의 사람은 진정한 의미에서 사람이 된다. 사람은 혼자서 절대 사람일 수 없다. 그래서 사람은 항상 서로라는 관계속에서 형성된 자아로서 존재하게 된다. 팔로워는 내가 이상하는 또 다른 '나'를 지향하고 있다. 팔로워하는 근복적인 이유는 자신에 대한 목마름이다.

 

 

 

 

 

 

 

그런의미에서 팔로워는 관계지향적이다. 그들이 내가 꿈꾸는 '또다른 나'이든 '이상향'이든 그것은 관계다. 인류의 고독은 의심이란 지독한 만성질병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성장하였다. 아무도 믿지 못하고, 믿을 수 없는 이기적 존재로서 살아가야하는 업보가 인간에게 타락이후 지워져 있다. 불안과 두려움은 인간의 과학과 철학의 발달이라는 역설의 딜레마를 끌어안고있다. 미셀푸코는 <광기의 역사>를 통해 불안이야 말로 진정한 역사의 발전이라고 거침없이 주장한다. 광기는 매니아라는 미친이이란 뜻이지만 어떤 면에서 그것은 인간의 두려움과 공포의 위장이다. 광기는 권력 속에, 예술 속에, 학문 속에, 스포츠 속에 살기등등하게 살아가고 있다.

 

 

 

 

 

 

 

잠깐 여행 이야기를 해보자.  

여행은 무엇인가? 나는 단언하건대 여행은 죽음이다. 현재의 나를 버리고 또 다른 나를 찾아가는 영혼의 순례이다. 여행은 먼저 나를 버리고-죽이고, 그 다음은 나를 다른 것과 비교하고-얻고, 세번째는 얻음-생명-으로 여행은 마지막 단계인 재창조로 이어진다. 여행 중에 친구는 다람쥐 쳇바퀴도는 일상의 친구와는 전혀 다르다. 여행 중의 친구는 자기비움을 통한 자신의 존재를 서로 발견하는 또 다른 나로서의 비교대상으로 만나고, 전혀 다른 시각으로 접하는 나의 모습이다.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여행의 기술>에서 여행이 가지는 숭고함과 철학적 단편들을 들려준다. 자기 부정이라는 의미에서 여행은 철저하게 종교적이며, 숭고하다. 

여행 매니아인 전성복씨는 여행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여행을 서술한다. 

그는 어떤 곳을 여행하기 보다는 영혼을 찾아 떠나는 일탈로서의 여행을 설렘이란 말로 표현한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곳, 그래서 두렵고 외로운 고독한 지평선을 따라가야 하는 고충이 있다. 여행이란 그런 것이다. 

 

무속적 도가사상을 담고 있는 김동리의 <역마>라는 단편소설은 인간의 생리적으로 여행을 떠나야 하는 존재로 운명지어졌고 말한다. 여행은 자기 죽임과 동시에 잃어버린 자신을 찾는 갈망이다. 

 

 

 

 

팔로워는 거울로서 존재한다. 중국의 반전 사상가인 묵자는 '사람은 사람을 거울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람이야 말로 가장 자산을 잘 드러내주는 존재이다. 내가 지금 만나는 사람과 읽고 있는 책이 10년 뒤의 나의 모습이다.  

 겸애사상으로 세상의 사랑 없음으로 불행이 온다고 주창했던 묵자는 어느 누구와도 친구를 맺었다. 비천하든, 귀하든 그것은 상관 없었다. 단지 그가 사람이라는 이유 만으로 서로를 껴안고 사랑했다. 성을 구하고도 자신의 이름을 알리지 않은 덕에 어느 집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다 수모를 당한 일화는 친구란 찾는 것이 아니라 되어주는 것임을 보여준다.  

 

 

 

 

 

정리해 보자.  

친구는 나를 향한 목마름에서 시작한다. 친구는 나의 관계를 드러내는 동시에 나의 숨겨진 이면을 보여준다. 친구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며 미래를 보여주는 청사진이다. 현대인들은 소셜넥트워을 통해 자신의 이상향을 찾아가지만 결국 신기루처럼 허무해지는 이유는 강제된 삶의 실천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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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1-10-30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무조건 따라하기! 모방의 힘을 아는가? 

무조건 따라하기 열풍이다. 아니 지난 열풍이다. 그러나 여전히 '무조건 따라하기'는 책 제목을 정하는 데 대세다.  무조건 따라하기의 제목에는 의도적이다. 초보자를 타켓으로 정했다는 것을 말하며,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라 갈파질팡하는 사람들을 위한 대안으로서 제공하려는 의도이다. 무조건 따라하기에는 정말 무조건을 말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혹 실수 할지 모르는 이들에게 실수를 방지하고 경험이 많은 '선배'의 충고를 잘 따르라는 말도 숨겨져 있다. 무조건은 아직 서툰 이들에 대한 배려인 셈이다.

 

 

 

 

 

 

 

  

 

무조건 따라하기에는 몇 가진의 학습법이 숨겨져 있다.  

-두려움을 떨쳐라. 

낯설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내는 것이 그 첫번째 이유이다. 사람은 누구나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안정을 원하는 욕구가 발동한다. 위기를 극복하려는 힘도 결국 안정으로 가려는 목적 때문이다. 이러한 불안함을 간파한 출판사들은 '무조건 따라하기'라는 제목을 통해 안심하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안정적인 생각을 줌으로 인해 쉽게 접근하고 경험하도록 하기 위함인 것이다. 

-간단하고 초보적이다.  

무조건 따라하기의 기본은 '쉽다'는 것이다. 처음 하기 때문에 높은 수준을 요구할 수 없을 뿐더러 그렇게 하면 따라 할 수도 없게 된다.  무조건 따라하기를 제목을 삼기 원한다면 쉬우면서도 편하게 접근하도록 내용을 정리해야 하는 것이다. 

-모두가 공감해야 한다. 

세번째 특징은 모두가 공감해야 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어렵고,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 쉬운 내용이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정말 모두는 아니다. 대부분을 말하는 것이다. 공감한다는 것은 누구나 이 책을 접해고 읽었다면 쉽게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방법과 메뉴얼을 제공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러한 특징들을 가지다 보니, 무작정 따라하기의 책들은 학습과 관련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가끔 주식과 같은 낯설은 것도 있지만 말이다.

 

 

 

 

 

 

 

 

 

-따라하기는 반복해야 한다. 

무조건 따라하기의 숨겨진 학습법은 '반복'이다. 특히 언어를 배우는 과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따라 해보는 것이다. 즉 반복하는 것이다. 듣고 그대로 모방함으로 반복하는 것이다. 이러한 반복을 통해 학습은 점진적인 과정이 이루어지고 높은 수준으로까지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다. 

너무 식상한가? 그러나 가장 중요한 학습법이다. 정말이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다. 근래에 나온 책중에 '바로잉'이란 책이 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속담을 파헤친 역작이다. 모방을 통해 배우고 해체하고 새롭게 창조하는 과정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 사람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지 못한다. 그러나 있는 것으로 수많은 것들을 새롭게 만들어 낼 수는 있다. 작가수업에 있어서도 초보일 때는 위대한 작가들의 글을 많이 읽고, 베끼는 것부터 시작한다. 작각들의 글이 나의 생각속에 체득할까지 그렇게 하는 것이다. 사람의 일이나 다 그런 것 같다. 위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훔치고 내것으로 만들어 자신 것인양 으시대니 말이다. 어쨋든 모방은 이렇게 중요하고 귀중한 자산이다.

  

 

 

 

 

 

 

 

-위대한 사람들은 모방자들이었다. 

인류의 역사를 뒤 바꾼 위대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모방자들이었다는 것을 아는가!  삼성을 보고 패플이 아이팟을 만들고 애플의 아이폰을 보고 삼성이 갤럭시 S를 만들었다. 모방은 한 사람만의 특권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모방의 원천이 된다.

 

김광호는 영웅들을 찾고 모방하고 이루라고 조언한다. 그들의 가진 위대한 삶을 모방을 통해 우리가 가진다면 우리 역시 그들의 삶을 재현할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물론 뜻대로 잘 되지는 않지만 많은 부분에서 따라갈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1등도 좋지만, 2등도 괜찬다. 

상품은 대부분이 대항마가 있다. 삼성과 애플의 예가 가장 분명하다. 해태에서 새로운 아이스크림이나 쥬스를 출시하면 얼마 안가 롯데에서도 비슷한 상품이 출시된다. 퐁퐁과 트리오, 쇠고기 다시다와 맛나가 바로 그런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끔은 2등이 1등을 체치기도 한다. 우리나라 휴대폰 시장의 거의 대부분을 점유한 SK를 제치고 1위를 찬탈한 KTF 가 그렇고, 전자 제품 세계1위의 영광을 오랜동안 차지한 소니를 누른 삼성이 바로 그들이다. 1등은 힘들지만 2등은 편하면서도 분명한 타켓이 있기 때문에 힘을 덜 들이고도 짭짭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결론을 지어볼까! 

모방은 위대한 것을 탐한다. 이미테이션 제품이 싸구려가 아닌 명품을 흉내내듯 모방이란 위대한 사람, 탁월한 물건을 흉내내는 것이다. 모방을 통해 초보자는 단박에 -시간은 걸리지만- 위대한 사람의 위치에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초기에는 단순하면서도 쉬운 것을 차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위대한 삶을 영위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군자에게 배워야 한다. 위대한 사람들의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곳에 있는 것이다.   

모방하자! 모방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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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3-25 0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알라딘 서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알라딘 서재를 운영해 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 것이다. 하루에 찾아오는 방문객에 많아야 2-30명이 고작인 때가 하루 이틀이 아니다. 과히 즐거운 이야기는 아니다. 알라딘 서재는 두 가지의 기능을 제공한다. 리뷰를 쓰는 리뷰의 공간과 페이페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생각을 글로 남기는 공간이다. 알라딘은 블로그전문 사이트가 아니다. 인터넷 서점이기 때문에 알라딘에서 제공하는 서재를 사용하는 불편함으로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리고 방문객 또한 적어서 글쓰는 재미도 일반 블로그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알라딘에서 페이퍼를 발행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것이지만, 내가 해야하나 말아야 하는 생각이 한두 번 들 때가 많다. 하루에 수백명씩 찾아오는 서재는 분명 정해져있다. 소위 서재의 달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http://blog.aladin.co.kr/town/expert/library)  높은 순위에 랭킹하기 위해 어떤 것을 해야하는지는 분명하다.  

첫번째 조건은 많이 리뷰하고 많이 페이퍼를 작성해야 한다. 그래도 힘들다. 왜냐하면 서재의 달인은 축적된 글에 의하여 평가되기 때문에 앞선 사람의 글의 양을 뛰어 넘어야 순위에 등극할 수 있다. 아무리 탁월한 글을 쓴다고 해서 순위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일단 서재의 달인은 질이 아닌 양이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알라딘에서 서재를 운영하다 그만 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하루에 100넘기가 정말 힘들다. 알라딘에서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알라딘에서 서재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한정적이고 왕성하게 활동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록 적다. 불편함과 적은 방분자 수 때문에 알라딘 서재는 접근하기 용이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때문인지는 몰라도 한 때 알라딘에서 한 달에 수십만원씩 책을 샀지만 서재는 거의 활용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페이퍼를 하나 둘씩 발행하기 시작했다. 원함보다는 다른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보다 책에 관련된 글은 알라딘 서재에 남겨야 겠다는 의무감 아니면 필요 때문이었다. 다음에도 다음VIEW를 신청하고 발행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나도 워낙 기대를 하지 않아서인지 별다른 생각도 없었다. 그러나 3주 전쯤부터 갑자기 방문객이 하루에 수백명을 너기 시작했다. 알라딘 서재는 유입경로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다음뷰 때문이 아닌가 싶어 다음사이트에도 가보고, 알라딘 운영자 서재등에도 들러 보았지만 내글이 노출되지는 않았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 며 어제(화 2011년 8월 9일 화)는 방문자가 무려 1533명이나 되었다. 신기하기도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유는 모른다. 이곳에 방문한 분들에게 어떻게 들어왔느냐고 댓글이라고 남겨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심정이다. 많은 방문자가 약간은 부답스럽기는 하지만 싫지도 않다.  

 

서재와 다른 의미이기도 하겠지만, 인생은 우리가 원하는 전혀 다른 곳으로 움직이기도 한다. 2007년 11월 <한비자 권력의 기술>이란 책이 발행되었다. 한비자는 중국의 진시황이 탐을 낼 정도의 법가 사상을 완성한 사람이다. 순자의 영햐을 받는 그는 사람을 신뢰해서는 안되고 체제-즉 법에의해 다스려지는 나라가 될 때 진정한 전제국가를 완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럽의 마키아벨리 쯤이라고 생각한다면 한비자에게 실례가 될지 모르겠다. 한비자와 마키아벨리가 유난히도 닮은 이유는 그가 통찰한 권력의 속성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의 아이러니는 그의 탁월한 이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름과 다르게 사람을 믿다가 결국 진시황에게 죽임을 당하고 만다. 물론 진시황이 직접 죽이려 했던 것은 아니다. 진시황을 도와 중국을 통일했던 한비자의 친구 '이사'였다. 탁월한 재상이었던 그는 한비자를 소개시켜 놓고서 진시황이 자신보다 한비자를 더 총애할 것이 두려워 모함을 씌워 옥사 시킨 것이다. 

 

 

 

 

 

 

 

 

너무 멀리 나갔다. 인생은 자신의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려고 한비자와 법가사상까지 들먹이고 있느니 말이다. 어쨋듯 내가 알지 못하는-분명 이유는 있지만-이유 때문에 지금 알라딘 서재는 수백명을 넘은 방문자가 넘쳐나고 있다는 것이다. 우연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대가를 치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것을 노력한 결과라고만 말하기에는 너무 논거가 빈약하다.  

많은 사람들이 우연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들에는 보이지 않는 필연지 존재하고 있다.   

 

리처드 파인만의 삶과 과학을 다룬 <천재>에서 파인의 만의 삶은 행운이 지배한다. 그러나 행운은 자신의 만들어 놓은 노력의 산물임을 증명해 보인다. 그러나 무엇이 우연이고 필연인지 선을 긋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답은 없다. 그냥 주저리주러리 나의 생각을 적어 본 것 뿐이다. 오늘도 여전히 방문객은 600명월 훌쩍 넘어 버렸다. 알 수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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