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로워, 그들의 무엇을 기대하는가?

 

이젠 한물 간 미국식 싸이월드인 마이스페이스, 새로게 급부상한 트윗터와 페이스북이 있다. 이들을 두고 소셜네트웍이라고 부른다. 각각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하다. 특히 '팔로워'들을 거느린다는 뜻에서 더욱 그렇다. 팔로워라는 말은 트위터의 용어이지만, 페이스북 역시 친구개념으로 서로를 팔로워한다.  

  

팔로워하는 왜 하는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자. 왜 팔로워하는가? 이 글을 쓰는 나도 수많은 사람은 팔로워하고 있으며, 페이스북에서 친구로 등록하고 있다.  왜? 누구를 팔로워하는 것일까? 개인적인 소견부터 시작해보자. 먼저 필자가 팔로워하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은 존경하고 싶거나 배우고 싶은 사람들이며, 후광효과를 누리고 싶은 유명인들이다. 정치, 경제, 연예인, 체육인 등 유명한 사람들을 팔로워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의 생각이나 의견을 듣고싶고, 그들을 팔로워함으로 긍지아닌 긍지를 가지기 때문이다. 그들처럼 살지는 못하지만 그들과 가깝다는 단 한가지의 사실만으로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다.

 

 

 

 

 

 

 

 

 팔로워는 한 마디로 말하면 영향력이다. 팔로워는 단순한 인맥이 아니다. 나는 그들과 아무 상관 없으며, 그들 또한 내가 팔로워한다고해서 나를 알아주거나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렇게 함으로 나는 그들과의 관계가 있음을 스스로 자위하는 것이다. 부끄러운 말인지는 몰라도 '나는 그들의 영향을 받는 존재'다. 팔로워는 정확하게 그것을 의미한다. 그들을 닮고싶다. 그들을 따르고 싶고, 그들처럼 되고 싶은 마음이 팔로워를 통해 나타나는 것이다. 

 

팔로워는 '친구'에 대한 갈망이다. 소셜네트웍에서의 친구는 사회속의 '친구'의 개념과는 많이 다르다. 사회 속에서 친구는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맺어진 친구이거나 필요에 의하여 만들어진 친구들이다. 그러나 소셜네트웍에서의 친구는 '이상형'으로서의 친구다. 원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거절이 가능하며 과감하게 버리고 떠날 수 있는 존재다. 다른시각에서 본다면 그럼에도불구하고 친구를 맺는다는 것은 그만큼 친구를 '갈망'한다는 것을 말한다. 

 

 

현대인은 고독하다. 친구를 필요로하되 부정한다. 역설적이면서 아이러니한 관계의 모순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소셜네트웍에서의 친구는 이러한 부정과 긍정을 함께 의미하는 친구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들을 따르면서도 그들이 아니라는 것을 팔로워를 통해 보여주기 때문이다. 

 

 

 

 

'호모 사피엔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아리스토렐레스의 이말은 사람은 사회 속에서 인간의 존재의미가 확인된다는 말이다. 즉 도시 안에서만의 사람은 진정한 의미에서 사람이 된다. 사람은 혼자서 절대 사람일 수 없다. 그래서 사람은 항상 서로라는 관계속에서 형성된 자아로서 존재하게 된다. 팔로워는 내가 이상하는 또 다른 '나'를 지향하고 있다. 팔로워하는 근복적인 이유는 자신에 대한 목마름이다.

 

 

 

 

 

 

 

그런의미에서 팔로워는 관계지향적이다. 그들이 내가 꿈꾸는 '또다른 나'이든 '이상향'이든 그것은 관계다. 인류의 고독은 의심이란 지독한 만성질병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성장하였다. 아무도 믿지 못하고, 믿을 수 없는 이기적 존재로서 살아가야하는 업보가 인간에게 타락이후 지워져 있다. 불안과 두려움은 인간의 과학과 철학의 발달이라는 역설의 딜레마를 끌어안고있다. 미셀푸코는 <광기의 역사>를 통해 불안이야 말로 진정한 역사의 발전이라고 거침없이 주장한다. 광기는 매니아라는 미친이이란 뜻이지만 어떤 면에서 그것은 인간의 두려움과 공포의 위장이다. 광기는 권력 속에, 예술 속에, 학문 속에, 스포츠 속에 살기등등하게 살아가고 있다.

 

 

 

 

 

 

 

잠깐 여행 이야기를 해보자.  

여행은 무엇인가? 나는 단언하건대 여행은 죽음이다. 현재의 나를 버리고 또 다른 나를 찾아가는 영혼의 순례이다. 여행은 먼저 나를 버리고-죽이고, 그 다음은 나를 다른 것과 비교하고-얻고, 세번째는 얻음-생명-으로 여행은 마지막 단계인 재창조로 이어진다. 여행 중에 친구는 다람쥐 쳇바퀴도는 일상의 친구와는 전혀 다르다. 여행 중의 친구는 자기비움을 통한 자신의 존재를 서로 발견하는 또 다른 나로서의 비교대상으로 만나고, 전혀 다른 시각으로 접하는 나의 모습이다.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여행의 기술>에서 여행이 가지는 숭고함과 철학적 단편들을 들려준다. 자기 부정이라는 의미에서 여행은 철저하게 종교적이며, 숭고하다. 

여행 매니아인 전성복씨는 여행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여행을 서술한다. 

그는 어떤 곳을 여행하기 보다는 영혼을 찾아 떠나는 일탈로서의 여행을 설렘이란 말로 표현한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곳, 그래서 두렵고 외로운 고독한 지평선을 따라가야 하는 고충이 있다. 여행이란 그런 것이다. 

 

무속적 도가사상을 담고 있는 김동리의 <역마>라는 단편소설은 인간의 생리적으로 여행을 떠나야 하는 존재로 운명지어졌고 말한다. 여행은 자기 죽임과 동시에 잃어버린 자신을 찾는 갈망이다. 

 

 

 

 

팔로워는 거울로서 존재한다. 중국의 반전 사상가인 묵자는 '사람은 사람을 거울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람이야 말로 가장 자산을 잘 드러내주는 존재이다. 내가 지금 만나는 사람과 읽고 있는 책이 10년 뒤의 나의 모습이다.  

 겸애사상으로 세상의 사랑 없음으로 불행이 온다고 주창했던 묵자는 어느 누구와도 친구를 맺었다. 비천하든, 귀하든 그것은 상관 없었다. 단지 그가 사람이라는 이유 만으로 서로를 껴안고 사랑했다. 성을 구하고도 자신의 이름을 알리지 않은 덕에 어느 집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다 수모를 당한 일화는 친구란 찾는 것이 아니라 되어주는 것임을 보여준다.  

 

 

 

 

 

정리해 보자.  

친구는 나를 향한 목마름에서 시작한다. 친구는 나의 관계를 드러내는 동시에 나의 숨겨진 이면을 보여준다. 친구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며 미래를 보여주는 청사진이다. 현대인들은 소셜넥트워을 통해 자신의 이상향을 찾아가지만 결국 신기루처럼 허무해지는 이유는 강제된 삶의 실천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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