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어둠 후마니타스의 문학
아서 쾨슬러 지음, 문광훈 옮김 / 후마니타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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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주의 소설의 계보에 포함되나, 볼셰비키의 내면을 깊이 있게 추적하려 한다는 점에서 차라리 ‘고참 볼셰비키의 심리학‘에 더 가까운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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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종말론 그린비 크리티컬 컬렉션 14
야콥 타우베스 지음, 문순표 옮김 / 그린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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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에게 <바울의 정치신학>으로 소개된 타우베스의 청년기 저작이다. 저자가 혁명적 열정이란 종말론적 열정이라는 것을 역설할 때마다 결기가 느껴진다. 여기서 종말론은 이 세계가 잘못되었다는 감각, 이토록 부정한 세계는 지금 당장 무너져야 한다는 감각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타우베스의 글에는 하이데거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이 책은 하이데거의 <진리의 본질에 대하여>로 시작해서 같은 책으로 끝난다.) 타우베스가 헤겔의 변증법에서 마르크스와 키르케고르의 분기를 해설할 때,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 이 둘의 합일(부정의 부정)을 긴급히 요청할 때, 그는 극좌와 극우 사이에서 격렬히 진동하는 듯하다. (하이데거의 세례를 듬뿍 받은 마지막 문단에서는 오른쪽으로, 즉 키르케고르 쪽으로 좀 더 다가가는 것 같다. 또한 청년 타우베스가 예의 '청년 마르크스'에 경도되어 '소외'를 통해 마르크스를 이해한다는 데서 정치경제학에 대한 그의 피상적인 이해를 드러낸다.) 다만 종말론 연구를 종말론적 희망으로 종결하는 데서 <바울의 정치신학>에서 만난 '묵시가' 타우베스를 거듭 확인한다.


<서구 종말론>은 초기작인 만큼 타우베스와 그의 종말론 해석을 이해하는 하나의 이정표에 머문다. 그럼에도 종말론은 자본주의와 기후위기의 시대에 더욱 주목해야 할 사유다. 신유물론과 이른바 사변적 실재론, 객체 지향 존재론이라는 지금 시대의 신학을 파악하기 위해 하이데거를 탐색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관련해 에티엔 발리바르가 쓴 <종말론 대 목적론: 데리다와 알튀세르의 유예된 대화>(<알튀세르 효과>에 수록)와 진태원의 <시간과 정의: 벤야민, 하이데거, 데리다>가 좋은 참고가 되었다. (발리바르는 알튀세르의 반反목적론과 데리다의 반反종말론을 서로 포개놓으며, 진태원은 벤야민의 '약한 메시아적 힘'과 데리다의 '메시아주의 없는 메시아적인 것(메시아성)' 사이의 차이를 하마허 등의 논의를 경유해 살펴본다.) 타우베스가 칼 슈미트와 나눈 서신과 잉에보르크 바흐만과 나눈 서신이 번역되면 좋겠다. 우리에게 낯설기 그지없는 20세기 초의 문헌을 종횡무진 가로지르며 끊임없이 인용하는 <서구 종말론>은 번역하기 어려운 책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매끄럽게 읽히지 않는 건 아쉽다. 풍부한 주석과 해설이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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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을 통해 더욱 강력한 창작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 프랑스의 울리포와 한국의 울리포주의자가 결합한 제약의 향연. 워크룸프레스 책이 200종, 300종을 넘어 1000종이 되는 그날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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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종말론 그린비 크리티컬 컬렉션 14
야콥 타우베스 지음, 문순표 옮김 / 그린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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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의 타우베스가 <바울의 정치신학>에서 드러낸 종말론적 사유를 더욱 상세하게 살펴볼 수 있다. 서구의 사유를 묵시주의적-영지주의적 종말론으로 꿰어내는 패기가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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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영원했다, 사라지기 전까지는 - 소비에트의 마지막 세대
알렉세이 유르착 지음, 김수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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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스스로 '소비에트의 마지막 세대'로서, 영원할 것만 같았던 소비에트 체제가 갑작스럽게 무너졌을 때 큰 충격을 받았음에도 이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납득해버린 동세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책이다. 소비에트의 다중적인 담론적 실천을 설명하기 위해 꼭 수행성 이론과 들뢰즈/가타리를 끌어와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억압 대 저항, 질서 대 자유, 위선 대 정의라는 '전체주의' 소련 비판을 훌쩍 뛰어넘어 다양한 문화적 실천이 지배적인 담론에 얼마나 크게 의지하며, 그와 동시에 지배적인 담론을 본래의 의도와 달리 내파할 수 있다는 것을 세밀하게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사회주의적 가치에 경도되지 않으면서도 이를 일상 속에서 갱신하고자 했던 인민의 이야기(보일러실 록커, 단파 라디오 엔지니어, 엑스레이판에 록음악을 녹음하는 애호가, 선전물을 쓰는 동시에 록콘서트를 기획하는 콤소몰 활동가)가 눈길을 끈다. 이 책에서 저자가 가장 힘있게 논의를 펼치는 곳은 후반부에 해당하는 4~7장이다. 여기서 아이러니와 역설은 1960~80년대의 '후기 사회주의'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이다. 무엇보다 '썩은 개그의 해석학'이라고 할 만한 <7장 데드 아이러니: 네크로미학, 스툐프, 그리고 아넥도트>는 '공산주의 유머'를 반공주의적으로 읽는 우리의 시선을 교정해준다.


유르착은 페레스트로이카(1985년 이후의 '개혁' 조치)가 인민의 비공식적인 수행적 활동을 공식화해 권위적 담론의 취약함을 그대로 폭로함으로써 원래 의도와 달리 체제를 급속히 붕괴시켰다고 본다. 그렇다면 남는 질문은 이렇다. 페레스트로이카는 그저 당 지도부의 실수이기만 한 것인가? 페레스트로이카는 '후기 사회주의'의 담론적 실천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유르착의 관점을 따라가다 보면 당 지도부가 아무런 '개혁' 없이 현상유지만 잘했어도 다중적인 소비에트가 좀 더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상상을 하게 된다. 과연 그런가? 또한 '체르노빌 전투'를 비롯한 경제적·생태적 위기는 소련의 해체에서 어떤 역할을 했을까? 라는 질문도 떠오른다. (한편 "모든 게 영원할 거라는 완전한 인상"이라는 말에서 뽑아낸 '영원성'이라는 시간 감각은 '소비에트 리얼리즘' 대신 '자본주의 리얼리즘'의 한복판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해당된다. 소비에트 해체의 공백은 자본주의가 채웠다. 그런데 자본주의 해체의 공백은 무엇이 채울 수 있을까? 우리에게는 소비에트가 없으므로 남은 건 공멸뿐인가?) 그러나 이 책의 범위를 넘는 질문은 다른 데서 던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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