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봄 밤 _김수영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이여

 

......................

 

너나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삶이다. 과연 우리는 이렇게 살다 가라고 태어났을까?

물론 내 탓이 아니다. 머리카락 휘날리며, 발바닥에 탄내 나도록 다녀야 하는 것은 그러고 싶어 그러는 것이 아니다. 나도 조용히 살다가고 싶다. 그러나 세상이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서둘지 말라는 말이 가슴에 꽂힌다. 맞다. 바삐 해결해야 할 일은 물론 서둘러서 처리해야 한다. 그러나 스위치를 꺼놓아도 좋을 밤에도 두뇌의 이방 저방 모두 불이 켜있다면, 몸은 예있어도 마음 머리칼을 천지사방 풀어헤치고 밤새 돌아다니는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혁혁한 업적은 어디에 쓰는 약인가? 우쭐대지 마라. 목에 힘 좀 빼라. 의지는 강하되 마음은 부드럽게 살다 가면 그 흔적에 고운 향이라도 남아 있기라도 하지. 반대로 너무 주저앉지도 말자. 쓸데없이 낮은 자존감도 큰 병이다. 남과 비교하지 마라. 그 남(타인)도 낮은 자존감을 쓸데없는 자존심 하나로 버티며 산다. 작년의 나보다 올해의 내가 더 잘하고, 잘 견뎌내고, 참아내고 있다면 더 이상 바랄게 무엇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사랑은     _김남주

 

 

 

겨울을 이기고 사랑은

봄을 기다릴 줄 안다

기다려 다시 사랑은

불모의 땅을 파헤쳐

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리고

천년을 두고 오늘

봄의 언덕에

한 그루 나무를 심을 줄 안다.

 

 

사랑은

가을을 끝낸 들녘에 서서

사과 하나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줄 안다

너와 나와 우리가

한 별을 우러러보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풀꽃놀이 2016-02-23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나가다가 울컥~~!
예고없이 첫사랑을 만난 기분...
이제는 주름진 얼굴로... 이 첫 봄의 문턱에...

쎄인트saint 2016-02-23 22:20   좋아요 0 | URL
제가 님의 감성을 터치해드렸군요..
때론 한 권의 책보다..한 편의 시가 가슴문을 두드리고 지나가는 듯 합니다.
꽃샘추윈가요..기온이 뚝 떨어지는 느낌입니다.
건강하십시요~^^
 

 

오늘의 시

    

    

겨울 강가에서         _안도현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내리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16-02-22 14: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풍경과 하나되어 강으로 의인화된 시적 주체가 어린 눈발을 안타까이 받아 살얼음을 까는 이미지로 시인이 절창을 노래하고 있네요. 특히 육필 시는 운치가 있어서 더욱 좋네요. 언제나 행복하시고 건필하세요. *^

쎄인트saint 2016-02-22 16:20   좋아요 0 | URL
예...역시 깊은 혜안으로 시를 품으시는군요..
가만히보면 .. 글씨도 매일 매시간...다른듯 합니다.
간혹..제가 보는 제 글씨가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더군요.
 

 

 

오늘의 시

 

 

갈대 _신경림

 

 

언제부터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

    

    

울 일이 없는 사람은 행복할까

 물론 행복이란 존재감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속 깊은 삶의 진리는 눈물 속에 묻혀있는 경우가 많다. ‘

산다는 것은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 슬픈 진리다

             

                            _ 2016021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오늘의 시]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 눈..

 

 

 

 


댓글(5)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16-02-17 16: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육필로 써내려간 시가 생동감이 있네요. *^

쎄인트saint 2016-02-18 12:1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좋은 시를 써보기 위해..요즘 시와 벗하고 있습니다.

[그장소] 2016-02-17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다...^^
떠다니던 눈.
그 눈 송이들 후르륵 잡아채서
목화솜같은 이불 만들어 간밤에 잘 덮고 잤더니
눈뜨니 꿈같이 사라지고 없더라..고,^^

쎄인트saint 2016-02-18 12:19   좋아요 1 | URL
멋집니다~!!
고운 시 한 편 남겨주셨네요..
늘 평안하신 날 되십시요~^^

[그장소] 2016-02-18 16:17   좋아요 0 | URL
아..고맙습니다 ㅡ^^
파워리뷰어님도 굿굿한 오후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