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665248.html
'어떤 유행에도 눈 돌리지 않고, 평생 집에 틀어박혀 건축물 같은 정물만 그렸다'는 조르조 모란디(Giorgio Morandi)에 대한 기사를 신문에서 읽고 꼭 가서 봐야지, 했는데 생각보다 일찍 보게 되었다.
동료 결혼식을 빙자해서 영등포-남대문시장-덕수궁-조계사까지 한바퀴 돌고 왔는데, 오늘 제일 잘 한 일은 역시 모란디의 그림을 본 것이다. 기대이상이었다, 내게는.
뭐랄까. 처음 인상은 그림으로 빚은 정성 가득한 도자기 같았다. 그러나 보면 볼수록 도자기와는 다른 깊이가 묵직하게 전해져왔다. 군더더기 없는 단순함에 화가의 집념, 고뇌, 고독 같은 게 느껴졌다. 정물화의 매력이란 이런 것이었구나, 하는 깨달음. 그간 수없이 보아왔던 정물화는 뭐였지? 이제야 비로소 정물화에 대한 안목이 생긴 느낌이 들었다.
전시관에 비치된 화가 소개 브로셔에 실린 모란디의 말.
"가시적인 세계에서 내가 유일하게 흥미를 느끼는 것은 공간, 빛, 색, 형태다."
"현실보다 더 추상적인 것은 없다."
'하늘 아래 가을의 작은 나뭇잎 이상 위대한 것은 없다.'라고 했다는 장자의 말씀이 모란디의 그림을 보며 떠올랐다. 정물화 속의 병 하나에 우주가 들어 있고 이 이상 위대한 것은 찾을 필요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장이 심한가? 그림에 빠지면 그렇게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