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665248.html

 

'어떤 유행에도 눈 돌리지 않고, 평생 집에 틀어박혀 건축물 같은 정물만 그렸다'는 조르조 모란디(Giorgio Morandi)에 대한 기사를 신문에서 읽고 꼭 가서 봐야지, 했는데 생각보다 일찍 보게 되었다.

 

동료 결혼식을 빙자해서 영등포-남대문시장-덕수궁-조계사까지 한바퀴 돌고 왔는데, 오늘 제일 잘 한 일은 역시 모란디의 그림을 본 것이다. 기대이상이었다, 내게는.

 

뭐랄까. 처음 인상은 그림으로 빚은 정성 가득한 도자기 같았다. 그러나 보면 볼수록 도자기와는 다른 깊이가 묵직하게 전해져왔다. 군더더기 없는 단순함에 화가의 집념, 고뇌, 고독 같은 게 느껴졌다. 정물화의 매력이란 이런 것이었구나, 하는 깨달음. 그간 수없이 보아왔던 정물화는 뭐였지? 이제야 비로소 정물화에 대한 안목이 생긴 느낌이 들었다.

 

전시관에 비치된 화가 소개 브로셔에 실린 모란디의 말.

"가시적인 세계에서 내가 유일하게 흥미를 느끼는 것은 공간, 빛, 색, 형태다."

"현실보다 더 추상적인 것은 없다."

 

'하늘 아래 가을의 작은 나뭇잎 이상 위대한 것은 없다.'라고 했다는 장자의 말씀이 모란디의 그림을 보며 떠올랐다. 정물화 속의 병 하나에 우주가 들어 있고 이 이상 위대한 것은 찾을 필요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장이 심한가? 그림에 빠지면 그렇게 되기도 한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hnine 2014-11-22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저 내일 여기 갈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보면 김수근 그림 느낌이 나지 않나요? 무채색, 두터운 질감, 복잡하지 않은 구조...

nama 2014-11-23 10:03   좋아요 0 | URL
그다지 두텁지는 않구요. 원조 같은 느낌?
하나의 행성을 발견한 기분이 든다고나 할까요. 그림 그리고 싶다는 한숨 섞인 그리움도 생기고요...

hnine 2014-11-23 20:03   좋아요 0 | URL
제가 ˝박수근˝이라고 쓴다는게 ˝김수근˝이라고 썼네요 ㅠㅠ
김수근도 워낙 유명한 사람이다보니...
저 오늘 모란디 전시회 잘 다녀왔습니다 ^^

nama 2014-11-23 20:47   좋아요 0 | URL
전시회..어떠셨는지요.
허참...저도 당연 박수근으로 읽었는데요.

sabina 2014-11-23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실, 가시적인 세계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것들은 공간을 차지하고 색과 형태가
빛으로 반사되어우리눈에 들어오는 것이므로, 그분은 유일이 아니라 전부에
흥미를 느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흥미를 느끼는 세상 전부를 화가 개인적 고찰(?)에의해, 단순화시킨 공간, 비슷한
톤의 색체, 나름의 의미를 담은 병들이라는 형태로 표현한 그림인것 같아요.
세상, 인생, 혹은 나마님 말대로 우주...이런 어떤 것의 전부에서, 쓸데없는 군더더
기를 배제시킨 본연의 바탕를 표현한 느낌입니다.(아마추어의 미숙한 추측)
인간으로서는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잘 알 수 없어서 아슴프레한 색체와 뭔지
모를 것이 담겨져 있는 병들로 그려놓고,화가는 감상하는 사람들에게 답해보라고
하는게 아닐까요? ^^
...저 병들 속을 들여다 보면 뭐가 보일까요...인생이, 세상이 뭔지 알 수 있을 까요
..........

nama 2014-11-23 20:49   좋아요 0 | URL
전시회장에는 모란디에 관한 동영상을 상영하고 있었는데 그걸 보면 이 화가는 세상사에 그리 관심이 많지 않았던 듯 싶어요. 자기방에 틀어박혀 병들을 모아놓고 골똘히 생각에 잠기거나 병들을 이리저리 옮겨가며 세밀하게 관찰했다고 해요. 병이라는 소품에서 자기만의 세계, 즉 우주를 느겼다고 생각돼요. 그런데 그게 왜 하필 병이었을까, 병을 통해서 세계를 본 것인지 세계를 병이라는 물체로 압축시킨 것인지, 아니면 그냥 우연인지 그 과정이 궁금하긴 했어요. 여기에는 서양미술사에 대한 지식도 필요해요.
인상 깊은 그림인 것만은 분명해요.

sabina 2014-11-23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렇군요.
이 화가에 대해 아는바 없이 그림 한 장 보고 나만의 감상에 빠져 봤네요.
나만의 감상으로 한 발 더 나가 보면, 맨 앞에 오른쪽 병이 내인생 모습과 닮
은 듯. ㅎㅎ
그러고 보니 박수근 그림 느낌이 많이 풍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