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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
빌 브라이슨 지음, 이미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말 많은 남자, 빌 브라이슨의 호주 여행기다. 그러나 여행기라기 보다는 호주 박물지 같은 인상이 짙다. 박물지란, '동물, 식물, 광물, 지질 따위의 자연계의 사물이나 현상을 종합적으로 기록한 책'인데 이 책이 이 단어 풀이에 딱 들어맞는 책이다.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모든 대륙 가운데 가장 습도가 낮고, 가장 평탄하고, 가장 온도가 높고, 가장 건조하고, 가장 척박하고, 가장 기후가 호전적인 곳'(16쪽)인 호주는 '흥미로운 것들, 오래된 것들,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것들, 그럼에도 눈에 띄는 것들'(18쪽) 등 온갖 것들로 가득 차 있는 나라다.
이 책은 이 흥미진진한 대륙에 대한 종합 선물 세트 같은 여행기로 읽는 내내 감탄과 놀라움과 경이로움에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게다가 짖굿은 농담 같은 유머는 감칠 맛을 더한다. 가히 빌 브라이슨은 이 쪽 방면의 대가답다.
그래서 잠시 생각해 보았다. 빌 브라이슨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수 있는 이유를 말이다. 가장 중요한 요인은 바로 영어가 아닐까 싶다. 우선 영어로 된 참고 서적을 접하거나 읽는데 유리하다. 미국이면 미국, 영국이면 영국, 호주면 호주, 마음만 먹는다면 관련 서적을 얼마든지 접하고 쉽게 읽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인용하거나 언급하고 있는 수 많은 책들을 보고 떠오른 생각이다. 그리고 영어권 나라에서의 여행 또한 거칠 것이 없을 것이다. 영어를 모국어로 두고있다는 것은 그만큼 유리한 고지에 서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뜩이나 다양한 내용에 그런저런 생각을 곁들여 읽자니 책 읽는 속도가 그리 빠르지 못한 나로서는 이 책을 마치 수험서처럼 읽게 되었다고나 할까. 밑줄 긋는 대신 붙여두는 포스트잇은 왜 이리 더덕더덕 붙이게 되는지, 나중에 다시 읽을 일도 없으면서 말이다. 다시 읽더라도 다른 시각과 느낌으로 읽게 될 터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읽을 때는 전류가 흐르는 듯한 짜릿함으로 포스트잇을 붙였는데 몇 개 인용하려고 다시 살펴보니 낯설게 다가오는 이 느낌, 을 뭐라고 해야할까. 도저히 몇 개의 인용 가지고는 이 책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온통 인용하고 싶은 것들 투성이다. 직접 읽는 수 밖에.
작은 나라에 살다보니 호주는 이야기 만으로도 벅차게 다가온다. 게다가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온갖 동식물 얘기는 너무나 흥미진진하다. 그래서 빌 브라이슨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372)..과연 무엇이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는지 아무도 짐작할 수 없다. 물론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오스트레일리아는 자연과학 분야에서 매우 흥미진진한 장소다.....내가 과학계에 몸담고 있다면 어디에서 일해야 할지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미덕이자 중요성은 이런 동식물 보다는 그곳의 원주민인 애버리저니에 관한 것이다. 아메리카 대륙이나 유럽에 현생 인류가 등장하기 전인 4만 오천 년이나 6만 년 전 쯤에 등장한 애버리저니는 인종이나 언어학적인 면에서 그 지역의 이웃 종족과 뚜렷한 유사성이 없다고 한다.
'애버리저니가 지구상에서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문화를 보존해왔으며, 애버리저니 예술의 역사가 지구의 시초로 거슬러 올라간다'(136)고 한다.
이런 애버리저니에 대한 백인들의 몰이해와 박멸 수준의 대응은 참으로 끔찍하고 소름이 돋을 정도이다. 심지어 애버리저니의 자식들을 아무런 양해도 없이 - 어미개에게서 새끼강아지를 빼앗는 것처럼- 데려다가 따로 양육한 결과 가정이 무너지고 공동체가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하니(우리나라도 한때는 소록도의 한센병환자들의 자녀를 부모에게서 떼어놓는 짓을 서슴치 않았으니 우리라고 그리 자랑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런 기반 위에서 발전한 오스트레일리아를 무조건 선망의 눈으로 바라봐서는 안 될 일이다. 빌 브라이슨의 냉정하리만치 객관적인 사실을 토대로 한 애버리저니에 관한 글은 그래서 이 책에서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앞으로 호주에 관한 책을 읽을 때 애버리저니에 관한 부분이 빠져있거나 아주 미미하게 다루고 있다면 그 책은 호주에 대한 바른 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겠다. 툭하면 농담과 한담으로 책 분량을 늘려놓거나 농담과 진담사이에서 길을 헤매게 만드는 빌 브라이슨이지만 애버리저니에 관한 부분은 매우 진지하고 공정하게 다루고 있으며, 애버리저니에 대한 바른 이해를 돕고자 애쓰고 있어, 빌 브라이슨은 역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작가다.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여 읽었건만, 역시 리뷰는 별 볼일 없는 이런 글이 되었지만, 감히 빌 브라이슨의 이 대단한 여행기를 두고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리오. 그의 마지막 문장을 살짝 빌리면,
빌 브라이슨: '오스트레일리아는 흥미로운 곳이다. 참으로 흥미롭다. 내가 할 말은 이것뿐이다.'
나: 이 책은 참으로 흥미롭다. 내가 할 말은 이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