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피아 : 돈과 마음의 전쟁
우석훈 지음 / 김영사 / 201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경제학자가 쓴 경제를 주제로 한 소설, 소설로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감이 있긴 하지만, 놀라운 시도! 경제쿠데타가 일어나고 있는 시점, 현실파악조차 못하고 있지 않으려면 필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분명 위화의 책을 한 권 읽었다고 생각했다.

<허삼관매혈기> 다음에 번역된 작품이었을텐데, 꽤 오래전 어느 독서모임에서였다.

그런데 이번에 아무리 찾아봐도 책도 없고, 인터넷서점 목록에도 없다.

그 책을 읽고난 모임에서 사람들은 주로 <허삼관매혈기>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재미있고 꼭 읽어봐야 한다는 말이 많았는데 못 읽었다.

그리고 이번 에세이 집을 받았다.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는 부제...사실 중국에 대한 관심이 통 없었다.

인상적으로 읽은 중국작가 작품도 없었다. 그렇게 유명한 위화의 작품도, 노벨상 수상자 모옌의 작품도 읽을 생각을 안했으니. 하다못해 가장 가까운데도 여행가고 싶단 생각도 안했다.

그런데 중국이라...

별 기대없이 책장을 펼쳤다.

첫 장은 '인민'

그런데 재밌다.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쭉 읽고 싶다.

 

그들은 손에 아무 무기도 들고 있지 않았지만 신념만은 대단히 확고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피와 살이 움직이면 군대와 탱크도 막아낼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들이 한데 뭉쳐 있으니 거센 열기가 솟아올랐다. 모든 사람이 활활 타오르는 횃불 같았다.
이는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 전까지 나는 빛이 사람들의 목소리보다 더 멀리 전달된다고, 또 사람의 목소리는 사람의 몸보다 에너지를 더 멀리 전달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스물아홉 살이던 그 밤에 나는 내가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민이 단결할 때 그들의 목소리는 빛보다 더 멀리 전달되고 그들 몸의 에너지가 그들의 목소리보다 더 멀리 전달되는 것이다. 마침내 나는 '인민'이라는 단어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몸으로, 삶으로 단어가 이해되는 순간. 특히 자신의 나라에 대한 평가를...외국 대학에서 하게 될 때 작가가 말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위화의 글처럼이다.

그런데도 이 책은 중국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의 현재를 보여주는 데 이것만한 아이러니가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 읽기 좋은 날]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책읽기 좋은 날 - 씨네21 이다혜 기자의 전망 없는 밤을 위한 명랑독서기
이다혜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책 표지처럼 달밤 내 방 침대나 책상에 앉아 책을 읽는다. 순간 이것보다 행복한 일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날은 한권을 읽고, 바로 다음 권을 들고 쭉 책만 읽어나간다.

어떤 날은 요새 읽기만 해서 소화불량에 걸린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책 이야기를 한다. 글을 쓴다. 그 글은 책 이야기였다가 그냥 내 이야기가 된다.

이다혜의 글도 그렇다.

책 목록을 쭉 보니 안 본 책이 많아서 재미있을라나 싶었다. 그런데 읽다보니 읽은 책이든 아니든

그냥 이다혜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심지어 책 내용과 영 상관없는 이야기 같은 것도 있다.

고등학교때 한 친구랑 만나면 서점을 자주 갔다.

서점은 누군가랑 같이 갈 필요가 딱히 없는 곳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 둘은 서점에 가서 쭉 책을 보면서 그 책과 얽힌 이야기, 아님 작가에 대한 이야기, 아님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들을 펼쳤다.

서점은 그냥 잠깐 이야기의 주제, 방향을 제시해주는 곳이었다.

이다혜의 글들도 그렇다.

책은 방향, 주제를 제시해주고 읽어나가는 건 나, 그걸로 풀어쓰는 것도 나다.

이다혜의 읽기가 재미있다.

그런데 요새 좀 기운이 빠져서 종일 한 권을 읽고, 다음 권을 펼쳐들고 싶은 마음이 든 순간, 이다혜의 읽기는...여행처럼...기운이 필요한 일이구나 싶다.

여행은 가기 위해 기운을 차리기도 하고, 어떻게 하다보니 떠나서 기운을 차리기도 하는데...

책읽기로 기운차리기, 그렇게 시작될 수도 있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마 수업 - 법륜 스님이 들려주는 우리 아이 지혜롭게 키우는 법
법륜 지음, 이순형 그림 / 휴(休)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엄마 수업>을 선물받았다. 평소 법륜스님의 활동을 좋아하고, <스님의 주례사> 같은 책의 어떤 부분은 절묘하다고 생각했다. <엄마 수업>도 뒤에 적힌 '세 살까지는 헌식적 사랑, 사춘기에는 지켜봐 주는 사랑, 성년기에는 냉정한 사랑이 필요하다.'는 말에 절대 동감한다.


그런데도 쉽게 책에 손이 안 갔다. 우선 엄마 수업, 이라는 제목. 요새 세상은 엄마들에게 예전 엄마들의 희생뿐 아니라 엄마로써 갖춰야 할 것을 너무 많이 요구한다. 당연히 부모가 되는 것은 준비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부모가 되는 일이 한 인간이 완성되어 가는 길과 다른 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과 엄마가 따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글로 읽는 것의 한계도 있을 것이다. 또 스님에게 주로 고민상담을 해오는게 여자, 엄마들이기에 이렇게 엄마들한테 하라는 게 많은 것일 게다. 아빠 수업이 나온다면 비슷한 말을 아빠들에게도 해야 하겠지.


하지만 우선 읽을 때 그냥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게 또 사실.


인간은 기본으로 참회해야 하는 존재로 보고 있는게 불교 사상이지만, 또 항상 깨어있어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남편이 바람을 펴서, 그것때문에 아이가 삐뚤어졌다면 남편에게 참회하라는 기도를 하라는 것은 공감할 수 없다. 차라리 바람 피는 것이 뭐 그렇게 죽일 일도 아니고, 신의를 저버린 일에 왜 그렇게 흥분하는지 내 마음을 돌이켜보고, 왜 그게 아이 마음을 상하게 하는지 들여다보고, 더 나아가 남편은 왜 바람을 폈는지 살펴보는 게 맞는 거 아닌가 싶다.


세 살까지 엄마의 희생으로 아이를 키워야 하는 것. 세 살까지 엄마들이 직장을 그만두지 못하고 다른 사람 손을 빌려 아이를 키우는 현실을 그냥 엄마들이 아이를 위한 최선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씀하신다. 물론 나도 세 살까지 아이가 안정된 분위기 속에서 자기한테 집중된 관심을 받으면서 크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게 아이를 품고 출산하고 젖을 먹이는 엄마이면 더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되지 않는다면(물론 지금 현대 사회 사람들의 일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성찰해 봐야 할 일이지만) 더 행복한 엄마가 낫다고 생각한다.


물론 가장 이상적인 것은 젖을 먹이는 1년은 엄마가 육아휴직을, 2년째는 아빠가 일년 육아휴직을, 3년째는 맡기거나 탄력 근무제를 적절히 이용하는 거지만, 이건 뭐 엄마가 3년 키우기보다 더 어려운 환타지니.


그리고 생각해보면 옛날에도 세 살까지 엄마가 온전히 본 게 아니다. 집안에 어른이 많아서 엄마들은 들일 밭일 집안일하며 젖먹이고, 애는 이손저손 타면서 자랐다.
현재 육아는 역할이 딱 지워져버린 가족 구성에서도 문제가 있다.


그래서 스님의 말은 청소년기에 좀 놔주는 사랑 부분에서부터 공감이 간다. 그런데 이때도 엄마는 눈물로 참회하는 존재보다, 엄마 역시 자기 삶에 치열하고 열정있게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아이들이 보게 된다면 그게 훨씬 아이들을 잘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부모가 아이들을 돕는 기간이 있어야 하지만, 부모이자 인간이 공존하고 그래서 행복한 순간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모 노릇과 인간 노릇이 합체되어야 부모도 아이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타델의 소년 카르페디엠 21
제임스 램지 울만 지음, 김민석 옮김 / 양철북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산이 거기 있기 때문에 오른다는 말, 너무 많이 알고 있어서 뻔한 말 같지만, 또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 말뿐이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은 알프스 최후의 산, 시타델을 날마다 마주하는 루디는 그 산을 오르지 않을 수 없다.
산에 갈 때면 정상을 다녀온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물론 히말라야나 알프스 산들은 다르겠지만) 힘들어죽겠는데도, 정상을 꼭 밟게 된다. 그냥 느긋하게 갔다오는 거야, 해도 꼭대기가 있는 것은 정상을 오르는 맛이 있다. 정상을 가기 위해, 정상만 바라보며 하는 등산은 웃기다고 생각하지만, 산을 타는 데 정상을 가지 않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건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정상은 누구에게나 허락하는 게 아닌 곳.
그래서 산악만화가, 산악소설이라는 장르가 나온다.
산에 가는 것만큼 산에 관한 책이 좋다. 산 아래 머무는 밤이 설레고, 힘든 한 걸음에 감동한다.
특히 산에 관한 이야기만큼 청소년 소설에 맞는 주제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드디어 만났다.
루디가 너무 쉽게 정상을 올라가버릴까봐, 처음 알프스의 아무도 오르지 않은 봉우리를 오르게 될까봐, 그러면서도 오르길 기대했다. 하지만 앞으로 미래가 더 넓게 펼쳐진 루디의 앞날처럼 루디에게는 또 기회가 있다.
'처음'이라는 것에 세상은 목매지만, 사실 자신에게는 언제나 처음 아닐까. 산에서 보냈을 하얀 밤이 느껴진다. 그리고 창문 너머 시타델 산이 보이는 쿠르탈 마을에 가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