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독서 - 책은 왜 읽어야 하는가
서민 지음 / 을유문화사 / 2017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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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다는 것은 매번 설레는 여행이다. 책장을 보면 두근거린다. 꽂혀있는 책들을 보며 미지의 세상으로 가는 문이 첩첩 접혀있는 상상을 한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어떤 책을 읽어볼지 훑어볼 때에는 여행지를 고르는 순간처럼 기대감에 부푼다. 그 순간의 감정에 따라 선택지는 달라지는데 아니다 싶으면 순식간에 세상을 닫아버리면 그만이다. 반드시 가야 한다는 의무감이 없기에 홀가분한 자유가 있다. 여행하고 돌아오면 이전보다 커지거나 넓어지거나 깊어지거나 분명 다른 내가 되어있을 것이다.

외롭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가라앉을 때 서민 독서로 들어가는 문고리를 잡았다. 스스로를 즐겁게 하는 일이 버겁다고 느껴질 때였다. 그럴 때면 바라보는 세상이 점점 탈색되어버리는 듯 스산하다. 이제껏 잊고 있던 무게감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서민이란 작가가 주는 유머러스하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잠시나마 나를 가볍게 할 수 있을까. 작은 희망을 안고 문 안으로 들어갔다.

 

산책하듯 책을 읽었다. ‘책은 다른 책으로 가는 문을 열어 준다.(p373~374)’ 는 말처럼, 이 책을 읽은 후에 또 다른 책을 읽고 싶어졌다. 그의 서술 방식은 매번 취향저격이다. 부드러운 토론을 하는 느낌이랄까. 적절한 근거를 토대로 책 읽기의 중요성을 어필하는 주장에는 억지스럽지 않은 논거가 있다. 과학에서 깔끔한 증명으로 명쾌한 결론이 나듯 적절한 사례가 제시될 때마다 후련함을 느꼈다. 책읽기 관련 도서의 목적은 책을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것일 텐데 나에 대해서는 그 목적을 충분히 달성한 셈이다.

객관적인 활자로 들여다보는 내용은 거리만큼의 이성을 확보해준다. ‘책은 외로운 이가 나 혼자만은 아니라는 걸 알려준다.(p12)’ 들어가는 글에 있는 문장이 뭉클하다. 토닥토닥 응원 받는 느낌이다. 가상일지라도 등장인물의 고뇌와 갈등을 공감하면서 종종 위로가 되던 기억을 떠올린다.

책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이어폰을 낀 채 커피숍에서 어두운 표정으로 책을 읽다가 갑자기 빵 터져서 당황하기도 했다. ‘개미알(p369)’ 이란 세 글자는 최근 들어본 말 중 엄지 척을 추켜세울 정도로 가장 웃겼다. 마음에 서서히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이 책의 저변에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폐해가 자주 언급된다. 저자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인터넷의 문제점은 그 정보에 참과 거짓이 섞여 있다는 것이다.(p31)’ 네이버 지식in을 처음 이용할 때만 해도 몰랐다. 놀라운 세상이었다. 검색어를 치기만 하면 관련 전문가들이 너무도 친절하게 척척 설명을 해 주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끌어다 모아놓은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책이 필요 없겠다고 생각했다.

환상이 깨진 건 연수를 받을 때 강사가 한 말을 듣고 나서부터였다. “인터넷 너무 믿지 마세요. 특히 지식in은 더 더욱이요. 답변이 올라온 시각을 보세요. 그 시각에 전문가들은 그렇게 자주 글 못 올려요. 초등학생들이 대부분 답변을 올린답니다.” 잘 모르는 분야의 답변을 읽을 때에는 판단하지 못했다. 알고 있어서 굳이 찾아볼 필요가 없었던 전공 관련 글들을 몇 가지 검색해보았다. 말도 안 되는 답변들이 얼마나 많이 포진되어있는지 그제야 보였다.

식당에서, 모임에서,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모습은 이제 일상이 되어버렸다. 언제부터 그랬을까 싶을 정도로 순식간에 퍼진 흔한 풍경이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지 않는 사람이 드물 정도이다.

페이스북과 카카오스토리에 빠져 몇 년을 보냈다.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하거나 카카오톡만 주고받아도 한 시간이 후딱 가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작년 후반기부터 정신을 차렸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이제는 커피숍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에는 스마트폰을 무음으로 해놓고 쳐다보지 않는다. 뇌에서 나름대로 부여하는 정당성의 유혹을 물리치고 스스로 자제하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초등학교 때, 어머니께서는 없는 살림에도 어린이 문학 전집 50권을 사주셨다. 붉은 색 표지로 된 두께 1.5cm 정도의 책들을 몇 번이나 읽었다. 동화 속으로 들어가 상상을 하는 일은 매번 신나는 경험이었다. 그 중 소공녀를 가장 좋아했는데, 어린 나는 여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가난 속에서 찾아가는 희망을 보았던 것 같다.

커가면서는 소설을 멀리 했던 적도 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이 의미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현실과 아무 관계가 없는데 뭐 하러 읽나 싶었다.

이런 생각이 처음으로 들썩인 건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을 읽고 나서였다. ‘인간의 실존적인 상황, 그 한계를 좀 더 체계적이고도 집중적인 설정 속에서 인식하게 하고 고민을 숙고하게 만들죠.(p29)’, ‘직접적인 경험보다 간접적인 경험이 더 핵심을 보게 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p30)’ 그 책 속에 나온 두 문장은 소설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놓았다.

서민 작가 역시 소설을 많이 읽으면 감정이입을 잘하게 되고, 그 결과 역지사지의 능력이 생긴다.(p81)’ 고 말한다. 이 둘을 굳이 비교하자면, 이동진은 나를 바라보는 데에, 서민은 너를 바라보는 데에 좀 더 비중을 많이 둔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후자에 조금 더 마음이 간다.

 

책 읽는 속도가 매우 느리다. 이해가 안 가면 몇 번이나 다시 읽어보고, 인터넷을 검색해보고, 책을 덮고 한참을 생각해본다. 책 한 권 읽는 데 보통 일주일가량 걸린다. 독후감을 쓰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데, 읽는 속도는 왜 이런지. 점점 빨라지고는 있지만 가끔 답답한 마음이 들 정도로 여전히 느려 터졌다. 다음 문장이 마음에 훅 들어왔던 건 그래서일 거다. 이 책을 통틀어 내게 개미알(p369)’ 만큼의 위력을 발휘한 문장이다.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속도에 맞출 수 있다는 얘기다. 책이 생각을 바꿔줄 수 있는 힘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p131)’

영화를 별로 안 좋아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속도가 안 맞아서였다. 뭔가 생각할 점이 보여 골똘히 생각하려하면 바로 다음 장면이 등장하니 생각할 여유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는 뭘까. 드라마에서 좋아하는 부분은 표현 방식이다. 배우의 표정과 눈빛, 연기를 하는 방식, 몸동작, 대사를 이루는 문장 등. 영화는 두 시간 정도의 시간에 주제를 전달해야 하므로 사건이 더욱 빠르게 진행된다. 이런 점이 나의 속도와 잘 안 맞는 모양이다. 나는 디테일에 주목하는 편이니까.

책과 같은 친구를 사귀면 좋겠다. 나의 속도에 맞춰 기다려줄 수 있는 존재, 내가 변화되는 과정을 지켜봐주는 존재였으면 한다. 외로울 때 책이 나와 함께 나란히 걸어가 주는 것처럼.

 

책을 읽을 때 가장 먼저 앞뒤 표지를 보고, 표지 안쪽에 있는 저자의 약력을 읽는다. 이 때 빠짐없이 해보는 것은 뺄셈이다. 저자가 몇 살에 등단을 했는가, 혹은 어떤 작품을 발표 했는가 계산해본다. 항상 주저되는 부분은 너무 늦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대학 졸업 후 바로 직장 생활을 했으니 직업 세계로 빨리 뛰어든 편이지만, 글을 쓰면서 살아가기에는 많이 늦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늘 마음 한 켠에 있다. 저자가 소개한 김득신의 일화에서 많은 힘을 얻는다. ‘인간의 수명이 40세 남짓에 불과했던 과거와 달리, 100세 시대인 지금은 59세에 뭔가를 이루어도 충분하니까.(p178)’ 라는.

 

많은 책에서 공통으로 하는 말을 여기에서도 발견한다. ‘행동을 바꾸지 못하는 지식은 무용지물(p277)’ 이라는 말이다. 2005년 말 즈음부터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그 때의 나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분명 변화가 있다. 직접적인 경험의 영향도 있지만 스스로 돌아보면 책의 영향이 가장 컸다.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도 했고,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생각하지 못했을 생각을 한 적도 많았으니.

 

책에 관한 아킬레스건 중 하나는 고전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교과서에 나오는 부분이야 시험맞춤형으로 암기되어 있었지만, 이 책의 3부에서 언급한 대로 고전에 접근한다는 것은 주춤거리게 하는 일이었다. 축약본을 읽으며 종종 생각했다. 이 책이 왜 이렇게 유명한 거야? 어느 부분에서 감동을 느껴야할지 판단을 못한 적도 많았다. 작가가 언급한 축약본의 폐해를 읽어보니 납득이 간다. 제대로 읽고 싶어졌다. 각 나이 대를 거치면서 몇 번이나 읽어봐도 제각기 느낌이 달랐던 어린 왕자를 떠올린다. 지금 다시 읽으면 또 어떤 느낌이 추가될까. 세로줄로 어렵게 읽었지만 정말 재미있었던 제인 에어도 생각난다. 올해에는 틈틈이 고전 읽기에 도전해봐야겠다.

 

취미를 독서라고 적은 기억이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잘못된 생각이었음을 알겠다. 비약하면 저는 취미로 숨을 쉬어요, 취미로 밥을 먹어요.’ 란 말과 동급인 셈이니. 책을 읽는다는 것은 시간이 날 때 하는 일이 아닌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하는 일이었다.

책 읽기를 권유하는 책은 러시아의 목각 인형 마트료시카를 연상시킨다. 뚜껑을 열어 보면 그 안에 책이 있고, 그 책을 따라 들어가면 주인공이 들고 있는 또 다른 책이 있다. 성경에 등장한다는, 낳고 또 낳고 계속 낳고 쭉쭉 낳고 뭐 그런 식이다. 마트료시카와 다른 점은 뚜껑을 열어보면 겉과는 다른 새로운 세상이 들어있다는 점이다. 열어볼 때마다 매번 장면이 바뀌는 노트북의 배경 화면 같다는 점이다. 읽고 싶은 책을 열 권정도 메모했다. 예상치 못한 수확이다. 이제 또 다른 마트료시카의 뚜껑을 열고자 한다. 새로운 세상에 들어간다는 것은 언제나 설레는 일이다.

 

 

오타

p62 맨 마지막 줄, p177 5째줄 : . ,

p72 중간쯤 : 인류가 살 만한 새로운 별 ~ 행성(* 별은 스스로 타므로 인간이 발붙이고 살 수 없을 거라 생각한다.^^;;)

p201 댓글3 : 보내요. 보네요. (원문을 찾아보니, ‘보내요라 기재되어 있는 것이 맞긴 하다. 하지만 맞춤법을 수정해서 수록한 거라면, ‘보네요라 표기해야 한다. 만약 원문 그대로를 싣고자 하는 의도라면 그 앞에 있는 몰랐던 사실을도 원문대로 몰랏던 사실은으로 표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p212 6째줄 : 새를 달리며 달래며

p217 밑에서 3째줄 : 중성자 중간자

p256 5번 주 : YNT YTN

p371 마지막 줄 : 히가시노 게이코 게이고

 

메모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유홍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고전의 유혹> 잭 머니건, <마션> 앤디 위어,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고전문학 읽은 척 매뉴얼> 김용석, <빅 피처> 더글라스 케네디, <고래> 천명관, <호모 데우스> 유발 하라리, <세바시> 김창옥 편, 고전(을유세계문학전집, 민음사,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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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1-18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져서 그런지 영화를 잘 안 보게 돼요. 극장에서 보는 영화는 처음부터 다시 볼 수 없어요. 지나간 장면을 되돌릴 수도 없어요.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영화리뷰를 쓰는 것이 어려워요. 한 번 다 읽은 책은 얼마든지 다시 읽을 수 있어서 리뷰하기가 편해요. ^^

나비종 2018-01-18 11:24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애니매이션 영화는 영상미를 보는 재미에 그나마 덜 하지만, 근본적으로 저와 영화는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종종 한답니다.
원하는 부분을 언제든지 반복해서 펼쳐볼 수 있고, 내마음대로 빠르게도 느리게도 속도 조절이 가능하다는 점이 책이 가진 엄청난 매력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