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청년 새끼 - 망가진 나라의 청년 생존썰
최서윤.이진송.김송희 지음 / 미래의창 / 2017년 4월
평점 :
품절


편견이란 참 오만하다. 그것은 자연 그대로의 빛을 차단하는 선글라스와 같아서 하나의 단어나 단 한 줄의 문장이라도 가치관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된다. 다소 과격한 이야기를 상상했다. 제목에 버젓이 새끼라는 말이 등장하는 책은 흔하지 않으니까. 청년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지금은 맨 눈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이건 그냥 이야기다. 거기서 우리를 발견한다면 다행이겠다.(p7)’치열하게 고민하며 스스로의 삶을 당당하게 걸어가고 있는 이들. 마음 한 구석이 찡하다. 그대로의 삶이 반짝반짝 빛나보여서이다. 눈부신 햇살을 보았을 때 느껴지는 뭉클함이랄까.

 

청년세대에 대하여 세 명의 청년이 적은 그들 자신의, 그들이 바라본 세상의 이야기이다. <먹고사니즘>, <정치>, <문화>, <연애>, <주거>등 다섯 분야로 나누어 이에 대한 생각과 경험을 서술한다.

 

<먹고사니즘>을 읽으며 드라마 쌈 마이웨이에서 본 장면을 생각한다. 아나운서를 꿈꾸는 여주인공. 면접 장소에서 그녀에게는 어떤 질문도 주어지지 않는다. 면접관은 말한다. 남들 어학연수, 유학 다녀오는 그 시간에 당신은 대체 무엇을 했느냐고. 공백으로 비어있는 이력서를 펄럭이며 스펙을 위해 아무 것도 못한 그녀를 비난한다. “! 벌었는데요!”떨리는 음성을 애써 누르며 말하는 그녀. 계속 마음에 남는 대사이다. ‘그 한 줄 너머에는 긴 시간이 존재한다.(p45)’는 저자의 말과 겹쳐진다. 주인공이 내뱉은 그 짧은 문장 너머에는 지리하고도 치열한 시간들이 존재할 것이다. 드라마를 넘어 현실에 수없이 존재할 다큐가 생각나서 마음이 답답하다. 화려한 스펙을 자랑하며 여유 있게 면접을 마친 또 다른 지원자, 번쩍이는 부모의 차를 타고 유유히 돌아간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표정이 처연하다. 생존을 위해 그저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구조적인 모순을 감추고 있는 사회는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개인에게 냉정하고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댄다.

 

업무를 하다보면 조심스럽고 불편할 때가 있다. 예컨대 학생들에게 건강보험료 8만원 이하를 납부했다는 증명서가 필요하다는 말을 전할 때이다. 저자 대담에서 끊임없이 내 불행을 증명하거나, 쓸모를 입증해야만 어느 정도의 인간다운 삶을 쟁취할 수 있잖아요.(p26)’란 문장을 접하며, 몇 달 전을 떠올린다.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취지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라 자신이 얼마나 저소득층인지 명확하게 증명을 해야 참여할 수 있다. 취지는 좋지만 업무 담당자의 입장은 종종 난감하다.

 

어린 시절을 많이 생각나게 하는 이야기는 <주거>이다. 방과 장거리 통학러, 집에 대한 저자의 경험담에 나의 10대와 20대를 떠올린다.

내방을 가져보는 게 소원이던 적이 있다. 여섯 식구가 살았던 집의 대부분은 단칸방이었다. 결혼 직전에는 방이 3개로까지 발전하지만, 부모님, 남동생, 세 자매의 공간으로 나뉘다보니 나만의 공간은 확보될 길이 없었다. 끝내 완벽한 내 방을 가져보지 못했다. 지금은 한 면에 책장이 있는 안방을 내 방화시키고 있지만, 이 역시 완벽한 내 공간은 아니다. ‘이 다음에 돈 많이 벌면에 해당하는 직업군이 아니라 영 글러먹은 꿈이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는 내 방에 대한 로망이 있다.

대학교 때는 통학을 했다. 집에서 시내버스, 시외버스,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내려 강의실까지 도착하는 데, 도보와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까지 합치면 두 시간 가까이 소요되었다. 기숙사나 자취는 꿈도 꾸지 못했다. 500원의 백반 값을 아끼려 300원짜리 국수를 사먹던 시절이었다.

초등학교 때, 나와 동갑이던 주인집 아들은 우리 집과 연결된 초인종을 자주 눌렀다. 자기 집 초인종이 버젓이 있는데도 굳이 우리 집 것을 누르는 그 녀석이 기분 나빴다. 여동생을 시켜 우리 집 초인종 누르지 마!”라 말하게 했다. 그 집이 진정한 우리 집이 아닌 것을, 그 모든 공간이 주인집의 소유인 것을 당시에는 인지하지 못했다. 어린 나는 내가 거기 살고 있으므로 그 공간이 내 공간이라 착각했나보다. 그날 낮잠을 자던 잠결에, 주인집 아주머니가 우리 엄마에게 뭐라 하는 소리를 들었다. 나의 하극상을 따지셨던 것 같다. ‘더 많은 것을 가진 사람만이 타인과 자신의 삶을 완전히 분리할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p335)’더 많은 것을 가져보지 못한, 타인의 삶과 나의 삶을 완전히 분리할 수 없던 경험은 이 문장을 좀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든다. 구병모의방주로 오세요, 정아은의 잠실동 사람들에서 그들만의 공간을 가졌던 집단이 생각나기도 한다.

 

<연애> 이야기에서는 불쑥 유성생식의 장점을 떠올린다. 부모가 같다 해도 복잡하게 이루어지는 유전자 조합으로 인하여 완벽하게 똑같은 아이는 단 한 명도 태어나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의 연애도 그렇지 않을까. ‘사랑이라는 제목만 같을 뿐 나의 연애와 너의 연애는 제각기 다르다. 그리고 연애의 대상이 꼭 사람일 필요는 없다. 지금 연애 중이 아니라 격하게 공감하면서 읽지는 못했지만, 연애가 선택이라는 저자의 생각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정치> 이야기를 읽다 1인 출판사 최측의농간이 생각났다. 작년 2, 책을 보내준다는 이메일을 받고, ‘공짜로? 이 험악한 세상에 왜에? 제목도 어쩐지 수상해라며 한동안 의심의 눈초리를 품고 그 의도를 파악하고자 집요하게 메일을 주고받았던 적이 있다. ‘어차피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돈 벌기가 쉽지 않다면 마음대로나 해보자는 것이다.(p122)’ ‘최측의농간의 신동혁 대표는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은빛 물고기와 함께 동봉해온 그의 손 편지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는 이들만이 뿜어낼 수 있는 열정을 보았다. 그 후로 여림의비 고인 하늘을 밟고 가는 일과 허만하의 낙타는 십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를 구입했다.

 

<문화> 이야기에서는 나를 돌아보고, 미래를 상상해본다.

낯선 눈으로 자신과 일상을 돌아보게 하고, 낯선 것들과 부딪히며 삶의 실감을 느끼게 하는 점이 여행의 매력이라고 의견이 모였다.(p187)’혼자 여행을 하고 싶은 마음이 다시 들썩인다.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왜 그것을 좋아하는지, 거기에는 어떤 사고방식이 내포돼 있는지 답하다보면 스스로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다.(p194)’나란 인간에 대하여 가끔 생각하는데, 이전에 알던 모습과 다른 면을 발견할 때가 있다. 상금에 관계없이 글짓기대회에서 상을 타고 좋아라했던 때를 생각하면, 의외로 명예를 좋아하는 인간인가 싶다.

자기를 서사화하는 과정은 스스로의 아픔과 슬픔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도록 돕는다.(p206)’여러 책에서 비슷한 얘기를 한다. 볼 때마다 공감이 가는 내용이다. 리뷰에 내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섞어내는 것도 서사화라 주장해본다. 남의 사적인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는 이는 드물다. 하지만 비슷한 이야기를 품고 내 이야기를 읽는 누군가는 공감을 할 수도 있다고 믿는다. 이런 생각에 꿋꿋하게 내 이야기를 담는다. 책에 담긴 저자들의 이야기에 자주 공감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과거를 돌아보게 하는 책이 있는가 하면, 현재를 둘러보거나 미래를 상상하게 하는 책이 있다. 이 책은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 3종 세트를 모두 돌아보게 한다. 내 어린 시절을 생각했고, 청년 시절을 떠올렸으며, 현재의 나를 바라보고 앞으로의 나도 상상해보았으니까.

삶은 결국 수많은 서사들의 연속이다. 똑같은 삶은 없지만 공명할 수 있는 삶은 있다. 우리는 글이나 그림, 음악이나 영화 등을 통해 다양한 서사들을 접한다. 20대의 서사 앞에서 나는 단지 구경꾼의 역할에 지나지 않을 줄 알았다. 그 세대로부터 20년을 넘어 50대에 접어들기 직전이기에, 서서히 분리되는 마법의 고리처럼 그들과의 접점이 거의 없을 줄 알았다. 이 책을 읽고 알았다. 세대의 구분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20대든, 30대 혹은 40대든 삶의 이야기는 인간이라는 동일한 출발선상에서 시작되는 현재형이라는 것을. 공감의 폭은 나이차가 아니라 생각의 차이, 가치관의 차이, 사람의 차이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삶은 그 자체로 살아내는 것이고, 살아지는 것이므로.

 

*p318, 밑에서 2째 줄 : 모르는 마주치는 게 싫어서... 문맥이 어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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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6-16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삶을 서사화하는 기본 과정이 일기입니다. 어렸을 때 일기를 꾸준히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어른이 돼서도 일기를 계속 씁니다. 그리고 일기 외에 다른 글도 잘 쓰는 것 같습니다. ^^

나비종 2017-06-16 16:43   좋아요 0 | URL
중학교 때까지는 전시용 벼락치기 소설 일기를 썼는데요, 고등학교 때부터는 자발적으로 쓰게 되더군요. 중간에 끊긴 적도 있지만, 생각해보니 어떤 형태로든 꾸준하게 기록을 적어왔네요. 알라디너가 되어 다이어리를 득템한 이후로는 위클리에 핵심 단어만 적는 기록을 써오고 있습니다. 그렇게만 해도 신기하게 그날이 기억나더라구요. 서사화의 기본 과정이 일기라는 말씀에 격하게 동의합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