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부대 - 2015년 제3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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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슨 글씨일까. 며칠 동안 책표지만 바라보았다. ‘’? 아니다. 한글이라 하기엔 오른쪽의 획이 다소 어색하다. ‘’? 이번에는 왼쪽 획이 짧고 경사가 심하다. ‘’? 그나마 이 한자가 제일 비슷한데, ‘작을 소가 책의 내용과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답답함은 해소되지 않는다.

한 번 더 책을 읽어본다. 이번에는 3명의 주인공으로 구성된 팀 이름 알렙이 눈에 들어온다. 실제로 있는 이름일까. 검색해본다. 한글로 검색하고, 알파벳으로 검색하면서 드디어 며칠 동안 안고 있던 궁금증이 풀린다. ‘aleph(알레프)’. 히브리어 알파벳의 첫 자, 숫자로는 1에 해당하는 글자란다. 이 발견이 뭐라고! 은근히 뿌듯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답답함이 다시 내 안으로 들어온다. 이 글씨가 책의 내용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한 번 더 책을 읽어야했다. 세 번째 읽고 나서야 글씨가 상징하는 의미를 나름대로 해석하게 된다.

 

독일 나치스 정권의 요제프 괴벨스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으로 접했을 때 다가왔던 오묘한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인간의 의지가 과연 조작하는 대로 움직여질 정도로 나약할까. 정상적인 인간의 사고로 행동했다 하기에는 비인간적인 기록들이 많았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한꺼번에 움직였던 거대한 군중의 힘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이렇게 바보스럽게 각인된 채로 내 관심에서 잊혀졌다.

세 편의 영상을 접하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다른 자료를 검색하다 알게 된 사회과학 실험이었다. 나치에 의해 움직였던 이들이 바보스러웠던 것도 아니고, 나약한 의지를 가진 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대중을 교묘하게 움직이는 상황의 힘은 섬뜩한 전율로 다가왔다.

첫 번째는 <환상적인 실험>이라는 제목으로 지식채널e를 통해 방영된 영상이다. 미국의 고등학교 교사 존 론스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세 번째 물결이라는 실험이다. 10%의 나치로 홀로코스트를 일으킬 수 있었던 집단의 힘을 보여준다. 어딘가 소속되고 싶은 본능과 그 속에서 찾게 되는 안정감을 이용한 무서운 힘이다.

두 번째는 <상황의 힘>이라는 소제목으로 EBS <인간의 두 얼굴>에 소개되었다. 1971, 스탠포드 대학교의 심리학 교수가 실시한 가짜 교도소 실험이다. 교도관과 수감자의 두 그룹으로 나누어서 인간의 행동이 얼마나 상황의 지배를 받는지 알아보는 내용이었는데, 6일 만에 실험을 중단했다고 한다. 권위에 쉽게 무너지고 상황에 지배되는 인간의 심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세 번째는 <3의 법칙>과 관련된 실험이다. 한 사람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관심이 없다. 이번에는 두 사람이 같은 행동을 한다. 역시 지나치는 사람들은 반응이 없다. 세 사람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킨다. 그제야 지나가던 사람들이 세 사람의 행동에 반응을 보이며 하늘을 바라본다는 내용이다. 세 명으로부터 출발되어 집단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말하고 있다.

 

이 책은 2세대 댓글부대 시대의 시작을 보여주는 인터넷 심리전에 관한 소설이다. 작가가 차례에 적힌 문장을 언급하면서 요제프 괴벨스를 말한 순간, 예전에 보았던 세 편의 영상들이 바느질을 하듯 차례로 꿰어지며 떠올랐다. ‘부대전쟁이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지만 이제는 빛의 속도로 달리는 댓글들이 예리한 칼날이 되어 인간의 마음을 공격하는 시대이다. 그 댓글들은 ‘3의 법칙에 따라 의도를 품고 접근하는 3명에 의해 적절한 순간에 조작된다. 그리고 움직여진 대중은 묵직한 파도가 된다.

모두 가슴에 단도 한 자루씩 숨기고 있다가 기회만 생기면 팍! 그런데 저희들은 언제 사람들이 미쳐서 그 칼을 휘두르는지 그 타이밍을 알아낸 거죠. (중략) 그게 언제인데요? 자기가 다수가 됐을 때요. (중략) 비아냥거리는 댓글이 세 개만 연속으로 달리면 돼요.’(p77~78)

바닷물 싱겁게 만들겠다고 물을 퍼부을 수는 없어. 백만 명, 2배만 명을 한꺼번에 움직여야 해.’(p159)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걸 건드려야 해. 두려움과 죄의식. 백만 명, 이백만 명을 한꺼번에 공략하는 방법은 그것뿐이야.’(p164)

 

첫 번째 읽었을 때에는 오아시스처럼 군데군데 심어져있는 야한 장면이 집중적으로 눈에 들어왔다. 침을 꿀꺽이며 하이틴 로맨스를 몰래 읽는 청소년처럼 숨을 죽였다. 당최 뭐가 빠르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 땀 한 땀 박음질을 하는 기분으로 천천히 오아시스만 바라본 나는.

상당히 빠른 소설이라는 것은 두 번째 읽었을 때 알게 되었다. 이제는 스르륵 움직여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나타나는 사막의 사구가 보였다. 가까이서 본 모래 알갱이의 미세한 움직임은 숨 막힐 듯 긴박했다. 임상진과 찻탓캇의 인터뷰 내용과 적절하게 어우러진 이야기의 흐름은 현실감을 주는 상황과 버무려져 속도감 있게 흘러갔다. 치밀하면서도 깔끔했다.

세 번째는 다시 느리게 읽혔다. 아니, 느리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촘촘하고 묵직했다고나 할까. 그 사이로 영화 <베테랑>이 주던 시원함이 느껴졌다. 장면의 구성과 배치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했다. 악의 무리를 무찌르는 통쾌함이 아니라 전율이 일만큼 적나라하게 투영된 현실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후련함이었다. 소설로 포장된 다큐 느낌이랄까.

 

인터넷 뉴스나 알라딘 서재에 올라온 글을 읽을 때, 본문만큼 댓글에도 관심을 가진다. 그런데 은밀하게 숨어있는 메시지에 의해 나의 의지가 조작된 방향으로 흐를 지도 모른다니! 순간 소름이 돋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n분의 1의 댓글로 무수하게 매달리는 이들도, 그로 인해 삶 전체가 흔들리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글로 인해 상처를 받는 시대라니! 세 번째로 읽었을 때, ‘aleph’를 바라보며 소설 <주홍 글씨>에 나오는 ‘A’를 떠올렸다. 소설에 등장하는 수많은 댓글처럼, 현실에서 올리는 수많은 댓글이 누군가의 마음속에는 투명한 주홍 글씨로 남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무서워졌다. 댓글은 무거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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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9-30 13: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라딘도 폐쇄적인 성향이 있어서 어떻게 보면 우물 같은 공간이 될 수 있어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제일 많이 나오는 문제가 `친목질`입니다. 서로 친한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경향이 심해지면, 소수의 의견이 무시당합니다. 그리고 서로 상반된 의견이 충돌하는 일이 발생하면 사람들이 편을 갈라서 행동할 수도 있어요. 이런 상황을 노리는 사람들이 더 무서워요. 갈등을 부추기면서 자신은 슬그머니 빠져 나와서 구경해요.

나비종 2016-09-30 20:16   좋아요 1 | URL
이 소설에서도 그런 상황들이 등장합니다. 여러 사례에서 어찌나 절묘한 타이밍을 포착해서 인간의 미묘한 심리를 자극하던지 몇 번이나 감탄하면서 읽었어요.
다름과 틀림을 명확히 구분하고, 말을 해야 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를 알며, 타인의 의견을 받아들일 줄 아는 혜안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려면 더 깊고 넓은 내공을 쌓아야겠죠? 언제쯤 그런 날이 올까요?^^;

cyrus 2016-10-19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비종님, 리뷰대회 당선 축하합니다. ^^

나비종 2016-10-19 12:3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cyrus님도 2배로 축하드립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