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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 세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3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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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무라카미 하루키 씨의 일기를 훔쳐 본 기분이랄까.

아니면 작품구상 중 끄적인 메모. 단상. 엉뚱한 상상 등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눈 기분이랄까.

 

짤막짤막한 글 속엔 그가 주변을 바라보고 듣고 겪으며 느낀 바가 어떤 두툼한 수식과 암시의 옷도 입지 않고 가볍고 경쾌하게, 그저 본연의 모습 그대로 놓여있는 듯 하다. 앵? 하고 끝나는 글이 있는가 하면 음……하고 끝나기도 하고, 맞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 문장을 읽기도 했다. 글을 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유쾌해지고 가벼워짐을 느꼈다. 세상을 무겁게만 바라보면 무거워지는 법이다. 그의 글들은 가볍고 바람을 따라 흐르는 비눗방울 같았다. 사라지면 그만이지만 눈을 마주하고 있는 순간은 아름답고 황홀하다.

 

책은 작가가 일 년 동안 일본 잡지 <앙앙anan>무라카미 라디오란 이름으로 자유롭게 연재했던 글을 모아 담고 있다. 표지의 제목과 그림은 p.13쪽, '잊히지 않는다, 기억나지 않는다' 부분에서 만날 수 있다.

그가 이런 연재를 하고 있으면 사람들이 으레 "매주 용케도 쓸거리가 있군요. 화제가 떨어져서 곤란한 적은 없습니까?" 란 질문을 종종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경우 미리 오십 개 정도의 토픽을 준비해두고 연재를 시작하며 날마다 생활 속에서 새로운 화제가 자연스레 생겨나니 뭘 쓰면 좋을까, 하며 고민한 기억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래, 이것도 써야지' 하고 새로운 토픽이 떠오르는 순간은 꼭 잠들기 직전일 때가 많아 문제라고 한다. '졸리지 않는 밤은 내게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만큼이나 드물다', 는 것. 샐러드 볼을 안고 포크질을 하는 사자의 그림도 그렇고, 하루키 씨의 유쾌한 표현도 기분 좋았다. 이 책 속의 이야기들도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만큼이나 드물게 지나는 시간들 속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이기에 그 제목을 만나게 된 것일까.

 

 

그래서 오후 1시경에 소파에 누워 슈베르트의 현악5중주곡을 듣는 둥 마는 둥 들으면서 "아아, 오늘도 특별히 상처 입는 일 없이 이대로 한가로이 낮잠을 잘 수 있을 것 같군. 다행이야." 하고 인생에 감사한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젊을 때 세파에 시달리며 제대로 상처를 입어두면 나이를 먹은 뒤 그만큼 편해지는 것 같다. 만약 기분 나쁜 일이 있다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푹 자면 된다. 뭐니 뭐니 해도 그게 제일이다. 힘내세요. -p.147, '낮잠의 달인' 부분

 

 

그는 삶에 심드렁하게 이야기하는 듯하면서도 진지한 자세를 잃지 않는다. 젊었을 때에 비해 바깥에서 자신을 공격해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지 않고 마주할 지혜가 생겼지만 순수하던 순간에 바깥을 향하던 호기심과 날카로움은 잃어버렸다고 이야기한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고 버리고 난 뒤엔 채워지기 마련인, 우리 삶의 이치를 그는 빙그레 웃으며 넌지시 이야기하고 있다. 부러 진지하지 않아도 삶은 충분히 진지하게 흘러가므로. 우리는 웃으며 그 시간들을 열심히 살아내기만 하면 된다. 아플 땐 충분히 아프고 싸워 견디며 웃을 수 있을 땐 마음껏 웃으면 된다. 노력하며 사는 사람만큼 강하고 무서운 존재는 없다.

 

 

분명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 그 자체가 아니라, 지식을 얻고자 하는 마음과 의욕일 터. 그런 것이 있는 한, 우리는 자신이 자신의 등을 밀어주듯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 잘 풀리면 아무것도 몰라요 하고 모르는 것을 '자랑'하는 작가가 될 수도 있다. 인생이란 꽤 복잡하다. -p.63, '모릅니다, 알지 못합니다' 부분

 

아름다운 것, 바른 것은 사람 각각의 마음속에 있는 것으로 말은 그 감각을 반영시키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까? 물론 말은 소중히 해야 하지만, 말의 진짜 가치는 말 그 자체보다 말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관계성 속에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 내내 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손은 깨끗이 씻었으니 괜찮습니다. -p.207, '젖은 바닥은 미끄러진다' 부분

 

 

 

현실이 주는 것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수용할 수 있는 삶까지, 그는 어떤 시간을 지나왔을까. 소설가이기에 사람들에게 욕을 먹기도 하고, 소설가이기에 편하기도 하며, 소설가이기에 먹고 살 수 있으며, 그러므로 소설가이기에 좋다는 그의 말 하나하나에 그를 지탱하는 굵은 뼈대들이 느껴졌다. 어쩐지 사랑할 수밖에 없는, 글들이었다. 물론 이런 글로 책을 출간할 수 있는 건 무라카미 하루키이기 때문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의 수많은 작품에서 우리는 진지한 그의 사유와 이야기의 힘을 느꼈기 때문에 그의 농담도 받아들여지고 그 속에 숨어진 삶의 진짜 모습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곧 그의 장편소설이 출간될 예정으로, 많은 독자들의 그의 신간을 기다리는 만큼 오프라인 서점가와 인터넷 서점가가 뜨겁다. '다자키 쓰쿠루'의 삶은, 무엇으로 인해 달라졌을까. 그의 신간을 기다리며 느끼는 초조함과 갈증을 이 책으로 달래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 그 일어날 것 같지 않은 모호한 시간의 이름을 당신의 것으로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불가능한 듯하지만 세상에 불가능한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마음은 늘 찰나의 순간에 움직이고, 우리는 그 찰나의 순간을 만나기 위해 모든 시간을 땀 흘리며 살아가야 하는 아이러니한 '오늘'처럼.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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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으면 - 낮의 이별과 밤의 사랑 혹은 그림이 숨겨둔 33개의 이야기
황경신 지음 / 아트북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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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앞에 서면 궁금해지곤 했다. 작가는 어떤 마음으로 이 그림을 그렸을까. 무슨 이야기를 담고 싶었을까. 그의 어떤 생채기가 이 슬픔을 그리도록 했을까. 그림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내 앞에 서있을 뿐이다. 그래서 오히려 말을 걸려하지 않을 때가 많다. 가만히 바라보다 눈앞에서 치우면 그 뿐이라는 마음으로.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그림에 대한 많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작가도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그림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그녀의 이야기는 다소 일방적이면서도 아름다우며 거칠면서 따뜻하고 몽환적이기도 하다.

 

처음 책을 읽으면서는 화자에 몰입할 수 없어 애를 먹었다. 주인공을 알 시간 없이 글은 이어지고 금세 맺어지며 끝에 놓인 그림과 마주보는 일은 영 어색했다. 당신의 이야기였군요, 하고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그림으로부터 발현된 이야기, 라는 점에 주목하여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었다. 33명의 화자. 그들은 모두 미성숙했고 이별에 아팠다. 그 고통을 앓고 나오며 성장했고 다시 사랑을 기다릴 용기를 얻었다. 알면서도 그 과정 속에선 벅찬 삶의 수순들. 작가의 문장은 그 마음의 혼돈을 아름답고도 애처롭게 그려나갔다. 사각의 귀퉁이에 갇힌 그녀들의 혼란과 상처 속에서 나 또한 혼란과 아픔을 느꼈다.

 

이 책 속의 그림은, 작가의 첫 문장을 시작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종이에 갇혀 있던 그녀가 말을 하기 시작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나는 숨을 죽인다. 공감하고 부정하고 아파하면서 처음 만나는 그림 앞에 아련함을 느낀다. 인기척을 느낀다. 무엇도 궁금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저 그 여인의 담담한 표정과 그 먹먹한 공간 속에서, 고통을 뚫고 나오려는 몸부림이 느껴졌다. 그림을 바라보던 마음이 바깥까지 이어졌다. 그녀의 글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내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다른 이야기의 고리를 만들어 갔다.

 

이 책을 덮고 난 뒤 어떤 그림을 보아도 그 그림의 소리가 들렸다. 그 재잘거림이, 눈물이, 아픔이, 생생하게 내 마음 곁을 맴돌았다. 그림은 내 감정의 거울이기도 하다. 그 느낌은 현재의 내 감정을 반영한다.

무언가 그림을 바라보는 특별한 시선 하나가 생긴 기분이다. 많은 말로 할 수 없는 느낌과 기분들이 나의 손끝을 움직였고 무언가를 생각해보라 부추겼다. 특별한 방향 없이 내게 온 책. 그러나 방향이 없어 더 많은 상상을 갖게 한 책. 눈을 감으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그림이 움직이는 시간. 그 속에서 우리는 내 안의 감정과 조우한다. 그리고 그림 밖의 더 많은 것들을 만나고 아파하며 조금씩 서툴게 나아가는 당신의 삶을 애틋하게 될 것이다.

 

 

 

 

그녀가 노래한 것은 언제나 희망이었지

반짝이는 것과 따뜻한 것이 그녀를 키웠으므로

푸른 가지마다 매달아놓을 것이 많았지

그러나 겨울은 한없이 깊어가고

가시처럼 융숭한 가지들이

문득 그 노래를 그치게 할 때

따뜻한 마음과 반짝이는 눈빛이 얼어붙을 때

무정한 눈과 바람이 모든 길을 감출 때

 

그녀는 알게 되었지

희망이란

까만 하늘에 박혀 있는 수억 개의 별이 아님을

가장 깊고 어두운 우물 속에 감추어진

단 하나의 사람

단 하나의 생명이라는 것을

지상의 모든 노래가 사라질 때

비로소 불러야 할 이름이라는 것을

- 본문 중에서

 

 

희망은 아무것도 보지 않는다. 현재와 현실과 미래와 구원을 직시하는 순간, 희망은 희망을 잃고 만다. 희망이 희망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희망 외의 것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리하여 희망은 스스로 눈을 가린다.  -p.11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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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인시공 - 책 읽는 사람의 시간과 공간
정수복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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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내게 가장 멋진 옷이고, 거울이었다. 그런 책에 대해 나는 어떤 마음을 갖고 있을까. 늘 읽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렇지 않으면 나의 존재 자체가 무의미해질 것처럼 책을 읽어왔다. 그것은 적절한 긴장감이기도 했고 때론 부담이기도 했다. 내가 채운 서가를 둘러보면 읽었던 책들보다 읽지 못한 책들이 더 많다. 그러면서도 나는 매일 서점과 출판사의 사이트를 기웃거리고 내게 자극이 될 책들의 목록을 더 얻길 원한다. 좀더 괜찮은 무언가가 되고픈 내 욕망이 나를 자꾸만 책 쪽으로 이끈다.

 

대학시절엔 젊은 작가들의 소설과 시를 주로 읽었다. 그들의 문장과 생각을 닮고 싶어서였다. 직장을 얻고 일을 하면서는 띄엄띄엄 책을 읽었다. 역시 소설과 시. 그러나 다 읽지 못하고 덮기 일쑤였다. 나는 꿈을 조금씩 포기하기 시작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는 뜻밖에도 다양한 책들을 접하였다. 에세이와 실용서, 아동책, 요리책, 까지. 나의 책읽기는 리뷰로 개인적인 글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아이가 생기면서 그 아이를 위한 책 구매에 좀더 시간과 돈을 들이게 되었지만, 지금도 내게 가장 큰 소비는 책이다. 그것만큼 나를 후회 없는 소비로 이끄는 것은 없었다.

책이라고 하면 어떤 책? 을 되묻게 된다. 저자와 내용을 묻는 말이다. 한 번도, 그 누구도 책 자체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이 책의 뒷면, 김영하 작가의 추천사를 읽으며 한 번, 흔들렸다. 늘 책을 읽어야지 하면서도 왜 책, 그 자체의 존재에 대해선 생각해보지 못했을까. 대학 졸업 후에 취업으로 선택했던 편집자의 길. 그러나 보기 좋게 떨어지고 선택했던 서점 일. 책과 관련된 일을 하기 원했고 서가와 진열대마다 책이 전시된 서점에서 일을 하면서도, 그렇게 늘 책과 함께 하길 원하면서도 정작 책에 대해선 깊은 사유를 갖지 못했다. 책을 읽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와 작가가 서점을 다니며 가졌던 생각에 대한 이야기들에 또 한 번, 흔들렸다. 언젠가 새 책들의 사이를 거닐며 가졌던 마음, 그 잃어버린 설렘들이 되살아나는 듯 했다. 서점과 도서관에 있는 것이 당연하고, 마음만 먹으면 쉽게 얻고 읽을 수 있는 책. 그것은 사람 사이에서 과연 얼마만큼의 존재가치를 갖고 있을까.

 

 

이 책은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글을 읽기 시작하여 인생의 사계절을 지나면서 흐르는 시간과 변화하는 날씨에 따라, 서재에서부터 집 안의 거실, 부엌, 침대, 화장실, 다락방, 골방, 마루, 옥탑방을 지나고 집 밖의 풀밭, 카페, 지하철, 버스, 배, 비행기, 기차, 호텔방, 산사, 바닷가, 병실, 감옥, 묘지를 지나서 서점과 도서관 등에 이르기까지 책을 읽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공간들을 찾아다니는 이야기다. 책을 읽는 시간가 공간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책의 시공간을 이야기하다보면 책에 대한 이야기와 책 읽는 사람들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이 책 곳곳에는 나 말고도 수많은 사람들의 양서예찬이 알알이 박혀 있다. 책 읽는 사람의 시공간을 이야기하는 이 책의 내용을 넉 자의 한자어로 요약하자면 '책인시공冊人時空'이 될 것이다.

-p.23~24, '책에 대한 책을 열며' 중에서

 

 

저자는 서문을 통해 소개한 대로 책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독서' 란 행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한 책은 크게 책을 읽는 시간, 집 안에서 책을 읽다, 집 밖에서 책을 읽다 로 나누어져 있고, 그 속엔 좀더 세밀한 제목들로 흥미로운 책 이야기를 채우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지만 인지하지 못하거나 지나친 사소한 것이기도 하며 오롯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최대의 가치이기도 하고 은밀하고 개인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저자가 가진 방대한 독서량만큼 책 읽는 중간 중간 적절하게 배치된 작가들의 독서 관련 글과 작품들, 옛 선인들의 독서에 대한 예찬 글도 읽으며 알 수 없이 마음이 풍요롭고 너그러워짐을 느꼈다. 푸른 잔디위에 책을 읽는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그들만의 평화로운 시간이 너무나 부러웠다. 언젠가의 나는 그렇게 책 속에서 설렘을 느꼈고 무언가를 하고픈 해내고픈 꿈을 꾸었었다. 그것을 잃어버린 것은 언제쯤 이였을까. 나조차도 모르게 훌쩍 지나가버린 시간. 꿈결처럼, 말이다.

 

나는 왜 책을 읽는 것일까, 하고 스스로에게 묻게 될 날은 누구나에게 한 번쯤 찾아올 것이다. 어떤 의미와 가치로 나는 이 한 권의 책을 선택해 읽는 것일까, 싶은 공허가 독서의 사이에 찾아올지도 모른다. 나에게도 그 의문들이 찾아왔다 떠났다. 답은, 달지 않아도 좋았다. 그저 나를 위로하고 이 삶을 견디게 하는 것이 책을 읽는 행위로부터 시작된다는 것만, 독서로부터 나의 문장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인해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책을 읽는 사람을 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전자책도 함께 발달했지만 인터넷과 게임 등으로 자투리 시간을 보내고 있기가 십상이다. 예전엔 그 시간에 한 권의 책을 펼치고 잠시라도 색다른 이야기에 눈을 붙이려 안간힘을 쓰곤 했었는데.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보낸 뒤엔 무언가 헛헛해진 느낌과 무가치한 기분을 느낄 때가 많다. 작가의 책은 책에 대해 잃어버렸던 다양한 감정들을 되찾게 하고 그 소중함을 느끼게 한다. 종이책을 읽으며 느낄 수 있는 느낌. 넘겨질 책장을 만지는 시간들. 그리고 삶을 어루만지는 기억과 추억들. 다시 읽는 순간순간마다 다른 느낌을 전해오는, 살아있는 존재와 같은 책. 책을 한 권의 사람이라 비유하는 것을 넘친다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그 모든 감정으로 독자와 소통하는 책과의 긴 대화가 정수복 작가의 손에 의해 태어났다. 우리는 그의 책을 빌려 좀더 긴 대화를, 나와 책만이 나눌 수 있는 은밀한 대화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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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6 22: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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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 - 어느 여행자의 기억
변종모 글.사진 / 허밍버드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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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나는 내내 사랑이 하고 싶었다. 지난 시간이 둑을 허물고 쏟아졌다. 그리움이 넘쳐 내내 마음이 휘청거렸다. 그의 여행으로부터 기록된 글들은 자꾸만 나의 가장 연약한 곳을 건드리며 나를 괴롭혔다. 깊이 사랑했던 이의 흔적을 마음으로만 내내 어루만지다 불쑥 소식을 듣게 된 것처럼, 나는 고통스러우면서도 설렘으로 뛰는 심장의 움직임을 느꼈다. 가라앉을 줄 모르는 여운이 뜨거운 계절의 볕 아래서도 나를 서럽고 울적하게 했다.

 

떠나지 못해서라고, 그렇게 이유를 달아야한다. 그래야만, 내가, 덜, 비참해질 테니까.

 

 

 

여행은 내게 꿈이고 허상이며 미래이거나 그림자에 불과한 일이다. 떠나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며 떠나고픈 마음도 잃어버린 지 오래. 그 마음을 오래 입어온 옷처럼 익숙하게 걸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의 글을 와락 끌어안을 수 있는 건 내 안에 그리움이 있고 사랑이 있어서가 아닐까. 그 마음을 더듬는 것만으로 나는 잠시 소녀가 되었다. 잃어버렸던 단어, 설렘. 두근거림. 마음속으로만 더듬는 누군가의 얼굴. 작가의 몸은 낯선 나라에 놓여 있지만 마음은, 생각은, 글은, 늘 사람과 사랑을 향해 있었다. 낯선 곳에 있지만 그는, 여행은, 이야기는 조금도 낯설지 않았다.

 

변종모 작가의 책은 이번이 두 번째. 제목에 끌려 『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거짓말』 을 처음 만났을 때, 작가의 따뜻한 사진과 섬세한 글들이 너무 좋았다. 사랑에 대한, 마음에 대한, 이별에 대한 그리고 우리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가 나를 책 속으로 깊이 이끌었다. 책 모서리를 접으며 읽다가 접혀지는 페이지들이 많아질 것 같아 그만 두었던 기억. 어디를 펼쳐 읽어도 메마른 마음을 위로받기엔 충분했다. 읽을수록 마음은 고요해지고 담담해졌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작은 위안, 같은 것이었을까.

 

 

 

이번 책, 『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에는 이전 책에서도 만날 수 있던 변종모 작가의 여행지에서 얻은 마음과 생각, 사람과 더불어 '음식'에 대한 기억들이 담겨 있다.

그의 여행은 하나 하나의 평범하고도 소소한 음식으로부터 기록되고 있다. 한강 작가가 자신의 소설 속에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파키스탄의 '훈자'. 설산이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는 곳에 그는 있다. 똑같은 슬픔을 가졌던 적이 있는 여자와 함께. 두 사람은 다시 우연히 만났고 한 끼의 식사를 나누려 한다. 하얀 쌀밥과 고소하게 만들어진 감자볶음이 전부인 가난한 식사지만 그 가난한 밥상도 진수성찬이 되고 큰 위로가 될 수 있는 건 음식의 온기가 사람의 체온을 닮았기 때문이다. 여행길에서 병이 난 자신을 위해 과일과 야채를 사서 흉내 내었던 어머니의 물김치. 그것이 담긴 병을 다른 여행자들의 음식이 쉬고 있는 냉장고 속에 넣으면서 내내 맘을 쓰던 모습. 그는 후에 뜨거워지는 코끝을 느끼며 물김치를 마셨을까.

 

저자는 여행길 위에서 자신의 눈과 귀와 입술에 닿았던 음식으로 깊이 위안 받고 치유된다. 음식을 먹음으로써 나아갈 길을 얻고, 내일을 기대할 마음을 얻는다. 그는 여행지에서 기억속의 음식들을 꺼내 만들고 먹으며 스스로를 응원하기도 하고 위로하기도 했고, 그러다 감정이 넘쳐 울컥 그리움에 떠밀리기도 했다. 그 감정들을 견디며 작가가 건져 올리는 삶의 이야기들은 아름답다. 그것이 고통일지라도, 아름다워서 너무 아름다워서 선뜻 만져보고 싶게 만든다. 여행지에서 마주보고 있는 낯선 이와 마음을 나누고 싶을 땐 음식을 나눔으로써 그 첫 발을 떼기도 한다. 타인과 나눌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온기. 음식이 주는 든든하고 평온한 위안. 그는 길 위에서 그것을 나누며 여행길을 만든다. 낯선 곳에서 자신의 발자국을 사람들의 가슴에 새기어 가는 일. 그렇게 다시, 걸음을 옮길 수 있는 힘을 비축한다. 여행이 계속된다.

 

 

 

 

내가 잠시 당신에게 빈 그릇이었나 보다.

 

문득, 텅 빈 소리가 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당신은 이미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길을 나섰고, 자주 누군가가 빈 공간을 메워주기도 했지만 그만큼 허기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걸었다. 걷지 않으면 만날 수 없고 만나지 않으면 채워질 수 없던 많은 공복의 날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생각이 나를 길 위로 내몰았다.

 

그리고 길 위에서 알았다. 그 누구도 그 무엇으로도 자신의 빈 공간을 영원히 채울 수는 없다는 것. 결국 빈 공간은 처음부터 나의 것이었고 우리는 그렇게 반쯤은 빈 채로 살아가는 것이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아무리 채우고 채워도 허기질 것이다. 그래서 채우는 일보다 비우는 연습을 했어야 했다. 당신이 내 마음을 가져간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부풀려 당신을 밀어낸 건지도 모른다. - p.72, '8. 빈 그릇' 전문

 

 

우리가 각자 짊어진 모든 것들은 세상이 준 것이 아니다. 내가 스스로 세상으로부터 끊임없이 가지려 했고 원했던 것이다. 누구도 나에게 부담을 준 적이 없다. 단지 내 마음의 허기와 내 생각의 허영이 만들어낸 무게를 따라 스스로 짊어지고 사는 것이다. 모든 것은 나의 선택이었다. 누구도 권하지 않는 일을 내가 선택한 것이므로. 이제 이것을 알았으니 그만 내려놓고 가뿐해질 방법을 찾아야 한다.

 

슬픈 마음으로 술을 마시지 말라. 술의 힘을 빌려 위로하지 말라. 알코올의 힘으로 휘발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잠시 자신을 속이고자 깊이 취하지 말라. 스스로 도취되어 위로하는 마음은 달라질 것이 아무것도 없으므로. -p.75, '9. Saperavi, 2009, Dry Red Wine, Georgia' 중에서

 

 

그녀는 나의 마음을 읽었을까? 그것이 부끄러워 뜬금없이 입을 열었다.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살고 싶어요. 어차피 돌아갈 곳도 마땅치 않고 내 집이 어디인지도 모르겠으니 새로 시작하는 기분으로 말이에요."

 

그녀는 세상에 그런 곳은 없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설령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이라 할지라도, 그 마음에 들어 있는 것에서부터 멀어질 수 있나요?" -p.229, '27. 그대의 집은 어디인가' 부분

 

 

우리의 삶이란, 나무에서 떨어진 그린 파파야처럼 정해진 시간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배분하여 정확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예측하며 적절하게 사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란 반드시 그 안에 끝을 내고 다음 단계로 건너야 할 어떤 기준이 아니라, 스스로 원하는 것에 도달하는 그때가 바로 정해진 시간이다. 조금 늦는다 해도 혹은 아주 많이 늦어진다 해도, 그 시간을 사는 동안 우리는 끝내 최선을 다할 것이므로. 우리는 세상이 맞춰놓은 시간을 사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인생에 각자의 시간을 맞추며 사는 것이므로. 한 번뿐인 삶이니까. 세상의 것이 아니라 내 것이니까.

 

-p.285, '33.더 늦기 전에, 그린 파파야' 부분

 

 

 

우리는 여행을 고된 삶으로부터의 도피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여행은 우리가 살아가는 일과 너무나 닮았다. 낯섦과 싸워야 하고, 끊임없이 어딘가로 나아가야 하고, 때론 타인과 옥신각신해야 하기도 하며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가 반드시 있다. 하지만 그 때, 그래도 여행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순간을 너그럽게 감수한다. 그러나 일상에서 그런 불안을 느낄 때, 우리는 죽고 싶은 감정을 느낀다. 사는 공간과 여행하는 공간이 무엇이 다른가. 내 마음이 다른 것뿐이다. 내가 여행하는 곳은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다. 불행을 바꾸기 위해선 내 마음을 먼저 바꿔야 한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던 글이 내 마음이 되었다. 책을 읽는 동안 나의 요리는 누군가를 향한 기록이 되었다. 먹고 마시는 일에서 배고픔을 어루만지고 살아갈 에너지를 얻는 일의 따뜻함을 느꼈다. 내가 하는 요리가 의무감을 떠나면 가족의 허기진 맘을 채워 든든하게 할 수 있는 일이란 걸 느꼈을 때, 가슴은 콩닥콩닥 뛰었고 뜨거웠다. 체기가 있는 아버지를 위해 쑨 야채죽. 아이가 저녁메뉴로 고른 볶음밥. 가족등반대회 날 아삭한 오이와 부드러운 어묵을 넣어 싼 김밥. 햄과 오이로 만들었던 간편 샌드위치. 따뜻한 계란 토스트. 카레까지…… 그것은 부러 수고로움을 감수하고 음식을 먹어줄 누군가에게 체온이 되고 뜨거운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누군가의 끼니를 챙겨주는 일은 사랑을 나누는 일이며 그 사람과 삶을 나누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자 이전까지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겼던 내 삶이 조금은,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여행 속에서 삶을 길어 올리는, 그 삶이 여행과 닮았음을 다시 한 번 인정하게 하는 책이었다. 따뜻하고 섬세했던, 눈물이 방울방울 매달려 있던 글들 밖을 나오며 나는 사랑을 끝냈다. 마음으로만 마음으로만 만지던 감정을 작게, 좀더 작게 접혀 기억 한 쪽에 옮겨놓자 어느 새 새 계절을 준비해야 할 때에 섰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또 다른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처럼 짐짓 비장하다.

 

그의 여행은 내게 불가능한 여행이 아니라 가능한 여행에 대한 이야기였다. 지금 이 자리에서 시작할 수 있는 여행, 에 대한. 사랑에 대한.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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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날들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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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올리버의 시 <기러기>를 찾아 읽었다. 천천히 옮겨 적었다. 새벽 2시의 고요함 사이에서 그것은 어떤 의식처럼 행해졌다. 마음이 알 수 없이 든든했다. 잠이 들고 싶지 않았다.

 

 

착해지지 않아도 돼

무릎으로 기어 다니지 않아도 돼

사막 건너 백마일, 후회 따윈 없어

몸속에 사는 부드러운 동물들

사랑하는 것을 그냥 사랑하게 내버려두면 돼

절망을 말해보렴, 너의 그럼 나의 절망을 말할 테니

그러면 세계는 굴러가는 거야

그러면 태양과 비와 맑은 자갈들은

풍경을 가로질러 움직이는 거야

대초원들과 깊은 숲들

산들과 강들 너머까지

그러면 기러기들, 맑고 푸른 공기 드높이

다시 집으로 날아가는 거야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너는 상상하는 데로 세계를 볼 수 있어

기러기들, 너를 소리쳐 부르잖아, 꽥꽥거리며 달뜬 목소리로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이 세상 모든 것들

그 한가운데라고

 

 

그녀의 글을 읽는 일은 가만히 창밖을 내다보는 일 같았다. 숲과 바다가 생동하며 바람이 다정히 지나가고 동물들이 우리와 시선을 나란히 한. 인간이라는 권위가 사라지고 오롯이 내가 숨 쉬는 곳 가장 가까이에 그들은 나와 함께 살아 움직이는 듯 했다. 그녀의 문장은 쉴 새 없이 그들의 생명력을 예찬하고, 자연의 품에서 시인이 받는 위로와 기쁨, 행복감을 아낌없이 드러내었다. 정지된 듯한 그녀의 글에 처음엔 집중하기 어려웠지만 욕심내지 않았다. 천천히, 물을 입에 머금듯이 문장을 읽는다. 책장 속 그녀가 바라보는 풍경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기대도, 욕심도 없이 고요하게 음미해야만 문장은 풍경과 여운을 나눠주었다. 섬세한 감정 묘사와 글 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자연의 생생함, 삶에 대한 깊은 시선과 사유들은 우리가 살며 진실로 마음을 쏟아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생각하게 했다.

 

언제나 빠른 속도를 지향하며 편리를 위해 무엇이든 희생시킬 준비가 되어있는 지금. 스마트폰과 인터넷에 갇혀 점점 좁은 시야에 익숙해져가는 현실. 그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 어떤 행복을 꿈꾸며 살아가는 것일까. 어떤 가치와 어떤 사치가 우리를 풍요롭게 해줄 수 있을까.

그냥 그녀의 글을 읽었을 뿐인데, 내 안으로 바깥이 들어왔다. 귀여운 초록 잎을 매단 나무와 노란 봄꽃들, 푸르러진 산의 전경이, 비가 오려는 어두운 하늘이 들어왔다. 낯선 사람과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듯이, 모두가 인기척을 가지고 다가왔다. 등을 마주 데고 앉아 잠들고 싶은, 그런, 따뜻함. 위로 혹은 희망 같은 것.

 

 

문제는, 삶에서든 글쓰기에 있어서든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혹독한 날씨는 이야기의 완벽한 원천이다. 폭풍우 때 우리는 무언가 해야만 한다. 어디론가 가야만 하고, 거기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속에서 우리의 마음은 기쁨을 느낀다. 역경, 심지어 비극도 우리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 스승이 된다.

우리 모두 도전과 용맹을 찬양한다. 바람 없는 날 단풍나무들이 천개를 길게 드리우고 푸른 하늘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을 때, 어느 향기로운 들판에서 불기 시작한 지 한 시간도 안 된 바람이 살그머니 우리를 스치고 지나갈 때, 우리가 하는 건 무엇인가? 너그러운 땅에 누워 편안히 쉬는 것이다. 그리고 잠이 들기 십상이다. -p.62, '완벽한 날들' 중에서

 

 

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나는 더 이상 무언가를 바라지 않게 되었다. 그저 무탈한 하루와 가족의 건강, 좁은 방에 여러 개의 이불을 깔고 함께 누워 서로 포개어져 자는 일. 그 하루에 늘 겸손하며 감사할 따름이다. 거기에 '찾아오는 장소에 따라 다른 목소리를 내는' 비와 이른 아침의 산책과 포근한 햇살 속에서 느끼는 '돌연 발작적인 행복감'이란 삶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덤'이라 생각한다. 쫓기듯 사는 삶 속에서 자연이 주는 쉼표들을 무시하고 산다면, 그건 여백 없는, 여운 없는 시간만을 살아 넘기는 일밖엔 되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일상과 그녀가 애정한 자연과 넘치는 사랑으로 써내려간 시들, 노래들. 천천히 음미할수록 그것은 짙은 향으로 내 가슴을 설레게 했다. 그녀의 글을 읽으며 내 삶에 쉼표를 찍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삶의 무게에 짓눌려 산다고 말한다. 자신에게 온 고통과 시련을 쉬이 인정하지 못하고 견디려하지 않고 피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몫의 고통을 넘겨내려고 힘써 그 고통 속으로 몸을 밀고 나아갈 때 나를 억누르는 듯 했던 무게는 어느덧 사라지고 희망이 저 발치에 있었다. 두려움은 내가 만드는 것이라고 했던가. 나는 어쩌면 우리의 삶이 내가 읽어간 이 한 권의 책과 같은 무게가 아닐까 생각했다. 내 두 손에 포옥 안기는 이 한 권의 책만큼 삶은 바람에 흔들리기도 하고 비에 젖기도 하며 그 흔적들에 위로받기도 한다. 메리 올리버, 그녀의 문장들은 그렇게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당신이 누구든, 어떤 시간을 살아내고 있든 당신이 시작한 오늘이 바로 완벽한 날들이란 것을.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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