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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 - 어느 여행자의 기억
변종모 글.사진 / 허밍버드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책을 읽는 나는 내내 사랑이 하고 싶었다. 지난 시간이 둑을 허물고 쏟아졌다. 그리움이 넘쳐 내내 마음이 휘청거렸다. 그의 여행으로부터 기록된 글들은 자꾸만 나의 가장 연약한 곳을 건드리며 나를 괴롭혔다. 깊이 사랑했던 이의 흔적을 마음으로만 내내 어루만지다 불쑥 소식을 듣게 된 것처럼, 나는 고통스러우면서도 설렘으로 뛰는 심장의 움직임을 느꼈다. 가라앉을 줄 모르는 여운이 뜨거운 계절의 볕 아래서도 나를 서럽고 울적하게 했다.

 

떠나지 못해서라고, 그렇게 이유를 달아야한다. 그래야만, 내가, 덜, 비참해질 테니까.

 

 

 

여행은 내게 꿈이고 허상이며 미래이거나 그림자에 불과한 일이다. 떠나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며 떠나고픈 마음도 잃어버린 지 오래. 그 마음을 오래 입어온 옷처럼 익숙하게 걸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의 글을 와락 끌어안을 수 있는 건 내 안에 그리움이 있고 사랑이 있어서가 아닐까. 그 마음을 더듬는 것만으로 나는 잠시 소녀가 되었다. 잃어버렸던 단어, 설렘. 두근거림. 마음속으로만 더듬는 누군가의 얼굴. 작가의 몸은 낯선 나라에 놓여 있지만 마음은, 생각은, 글은, 늘 사람과 사랑을 향해 있었다. 낯선 곳에 있지만 그는, 여행은, 이야기는 조금도 낯설지 않았다.

 

변종모 작가의 책은 이번이 두 번째. 제목에 끌려 『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거짓말』 을 처음 만났을 때, 작가의 따뜻한 사진과 섬세한 글들이 너무 좋았다. 사랑에 대한, 마음에 대한, 이별에 대한 그리고 우리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가 나를 책 속으로 깊이 이끌었다. 책 모서리를 접으며 읽다가 접혀지는 페이지들이 많아질 것 같아 그만 두었던 기억. 어디를 펼쳐 읽어도 메마른 마음을 위로받기엔 충분했다. 읽을수록 마음은 고요해지고 담담해졌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작은 위안, 같은 것이었을까.

 

 

 

이번 책, 『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에는 이전 책에서도 만날 수 있던 변종모 작가의 여행지에서 얻은 마음과 생각, 사람과 더불어 '음식'에 대한 기억들이 담겨 있다.

그의 여행은 하나 하나의 평범하고도 소소한 음식으로부터 기록되고 있다. 한강 작가가 자신의 소설 속에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파키스탄의 '훈자'. 설산이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는 곳에 그는 있다. 똑같은 슬픔을 가졌던 적이 있는 여자와 함께. 두 사람은 다시 우연히 만났고 한 끼의 식사를 나누려 한다. 하얀 쌀밥과 고소하게 만들어진 감자볶음이 전부인 가난한 식사지만 그 가난한 밥상도 진수성찬이 되고 큰 위로가 될 수 있는 건 음식의 온기가 사람의 체온을 닮았기 때문이다. 여행길에서 병이 난 자신을 위해 과일과 야채를 사서 흉내 내었던 어머니의 물김치. 그것이 담긴 병을 다른 여행자들의 음식이 쉬고 있는 냉장고 속에 넣으면서 내내 맘을 쓰던 모습. 그는 후에 뜨거워지는 코끝을 느끼며 물김치를 마셨을까.

 

저자는 여행길 위에서 자신의 눈과 귀와 입술에 닿았던 음식으로 깊이 위안 받고 치유된다. 음식을 먹음으로써 나아갈 길을 얻고, 내일을 기대할 마음을 얻는다. 그는 여행지에서 기억속의 음식들을 꺼내 만들고 먹으며 스스로를 응원하기도 하고 위로하기도 했고, 그러다 감정이 넘쳐 울컥 그리움에 떠밀리기도 했다. 그 감정들을 견디며 작가가 건져 올리는 삶의 이야기들은 아름답다. 그것이 고통일지라도, 아름다워서 너무 아름다워서 선뜻 만져보고 싶게 만든다. 여행지에서 마주보고 있는 낯선 이와 마음을 나누고 싶을 땐 음식을 나눔으로써 그 첫 발을 떼기도 한다. 타인과 나눌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온기. 음식이 주는 든든하고 평온한 위안. 그는 길 위에서 그것을 나누며 여행길을 만든다. 낯선 곳에서 자신의 발자국을 사람들의 가슴에 새기어 가는 일. 그렇게 다시, 걸음을 옮길 수 있는 힘을 비축한다. 여행이 계속된다.

 

 

 

 

내가 잠시 당신에게 빈 그릇이었나 보다.

 

문득, 텅 빈 소리가 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당신은 이미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길을 나섰고, 자주 누군가가 빈 공간을 메워주기도 했지만 그만큼 허기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걸었다. 걷지 않으면 만날 수 없고 만나지 않으면 채워질 수 없던 많은 공복의 날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생각이 나를 길 위로 내몰았다.

 

그리고 길 위에서 알았다. 그 누구도 그 무엇으로도 자신의 빈 공간을 영원히 채울 수는 없다는 것. 결국 빈 공간은 처음부터 나의 것이었고 우리는 그렇게 반쯤은 빈 채로 살아가는 것이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아무리 채우고 채워도 허기질 것이다. 그래서 채우는 일보다 비우는 연습을 했어야 했다. 당신이 내 마음을 가져간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부풀려 당신을 밀어낸 건지도 모른다. - p.72, '8. 빈 그릇' 전문

 

 

우리가 각자 짊어진 모든 것들은 세상이 준 것이 아니다. 내가 스스로 세상으로부터 끊임없이 가지려 했고 원했던 것이다. 누구도 나에게 부담을 준 적이 없다. 단지 내 마음의 허기와 내 생각의 허영이 만들어낸 무게를 따라 스스로 짊어지고 사는 것이다. 모든 것은 나의 선택이었다. 누구도 권하지 않는 일을 내가 선택한 것이므로. 이제 이것을 알았으니 그만 내려놓고 가뿐해질 방법을 찾아야 한다.

 

슬픈 마음으로 술을 마시지 말라. 술의 힘을 빌려 위로하지 말라. 알코올의 힘으로 휘발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잠시 자신을 속이고자 깊이 취하지 말라. 스스로 도취되어 위로하는 마음은 달라질 것이 아무것도 없으므로. -p.75, '9. Saperavi, 2009, Dry Red Wine, Georgia' 중에서

 

 

그녀는 나의 마음을 읽었을까? 그것이 부끄러워 뜬금없이 입을 열었다.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살고 싶어요. 어차피 돌아갈 곳도 마땅치 않고 내 집이 어디인지도 모르겠으니 새로 시작하는 기분으로 말이에요."

 

그녀는 세상에 그런 곳은 없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설령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이라 할지라도, 그 마음에 들어 있는 것에서부터 멀어질 수 있나요?" -p.229, '27. 그대의 집은 어디인가' 부분

 

 

우리의 삶이란, 나무에서 떨어진 그린 파파야처럼 정해진 시간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배분하여 정확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예측하며 적절하게 사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란 반드시 그 안에 끝을 내고 다음 단계로 건너야 할 어떤 기준이 아니라, 스스로 원하는 것에 도달하는 그때가 바로 정해진 시간이다. 조금 늦는다 해도 혹은 아주 많이 늦어진다 해도, 그 시간을 사는 동안 우리는 끝내 최선을 다할 것이므로. 우리는 세상이 맞춰놓은 시간을 사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인생에 각자의 시간을 맞추며 사는 것이므로. 한 번뿐인 삶이니까. 세상의 것이 아니라 내 것이니까.

 

-p.285, '33.더 늦기 전에, 그린 파파야' 부분

 

 

 

우리는 여행을 고된 삶으로부터의 도피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여행은 우리가 살아가는 일과 너무나 닮았다. 낯섦과 싸워야 하고, 끊임없이 어딘가로 나아가야 하고, 때론 타인과 옥신각신해야 하기도 하며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가 반드시 있다. 하지만 그 때, 그래도 여행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순간을 너그럽게 감수한다. 그러나 일상에서 그런 불안을 느낄 때, 우리는 죽고 싶은 감정을 느낀다. 사는 공간과 여행하는 공간이 무엇이 다른가. 내 마음이 다른 것뿐이다. 내가 여행하는 곳은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다. 불행을 바꾸기 위해선 내 마음을 먼저 바꿔야 한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던 글이 내 마음이 되었다. 책을 읽는 동안 나의 요리는 누군가를 향한 기록이 되었다. 먹고 마시는 일에서 배고픔을 어루만지고 살아갈 에너지를 얻는 일의 따뜻함을 느꼈다. 내가 하는 요리가 의무감을 떠나면 가족의 허기진 맘을 채워 든든하게 할 수 있는 일이란 걸 느꼈을 때, 가슴은 콩닥콩닥 뛰었고 뜨거웠다. 체기가 있는 아버지를 위해 쑨 야채죽. 아이가 저녁메뉴로 고른 볶음밥. 가족등반대회 날 아삭한 오이와 부드러운 어묵을 넣어 싼 김밥. 햄과 오이로 만들었던 간편 샌드위치. 따뜻한 계란 토스트. 카레까지…… 그것은 부러 수고로움을 감수하고 음식을 먹어줄 누군가에게 체온이 되고 뜨거운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누군가의 끼니를 챙겨주는 일은 사랑을 나누는 일이며 그 사람과 삶을 나누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자 이전까지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겼던 내 삶이 조금은,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여행 속에서 삶을 길어 올리는, 그 삶이 여행과 닮았음을 다시 한 번 인정하게 하는 책이었다. 따뜻하고 섬세했던, 눈물이 방울방울 매달려 있던 글들 밖을 나오며 나는 사랑을 끝냈다. 마음으로만 마음으로만 만지던 감정을 작게, 좀더 작게 접혀 기억 한 쪽에 옮겨놓자 어느 새 새 계절을 준비해야 할 때에 섰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또 다른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처럼 짐짓 비장하다.

 

그의 여행은 내게 불가능한 여행이 아니라 가능한 여행에 대한 이야기였다. 지금 이 자리에서 시작할 수 있는 여행, 에 대한. 사랑에 대한.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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