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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날들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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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올리버의 시 <기러기>를 찾아 읽었다. 천천히 옮겨 적었다. 새벽 2시의 고요함 사이에서 그것은 어떤 의식처럼 행해졌다. 마음이 알 수 없이 든든했다. 잠이 들고 싶지 않았다.

 

 

착해지지 않아도 돼

무릎으로 기어 다니지 않아도 돼

사막 건너 백마일, 후회 따윈 없어

몸속에 사는 부드러운 동물들

사랑하는 것을 그냥 사랑하게 내버려두면 돼

절망을 말해보렴, 너의 그럼 나의 절망을 말할 테니

그러면 세계는 굴러가는 거야

그러면 태양과 비와 맑은 자갈들은

풍경을 가로질러 움직이는 거야

대초원들과 깊은 숲들

산들과 강들 너머까지

그러면 기러기들, 맑고 푸른 공기 드높이

다시 집으로 날아가는 거야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너는 상상하는 데로 세계를 볼 수 있어

기러기들, 너를 소리쳐 부르잖아, 꽥꽥거리며 달뜬 목소리로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이 세상 모든 것들

그 한가운데라고

 

 

그녀의 글을 읽는 일은 가만히 창밖을 내다보는 일 같았다. 숲과 바다가 생동하며 바람이 다정히 지나가고 동물들이 우리와 시선을 나란히 한. 인간이라는 권위가 사라지고 오롯이 내가 숨 쉬는 곳 가장 가까이에 그들은 나와 함께 살아 움직이는 듯 했다. 그녀의 문장은 쉴 새 없이 그들의 생명력을 예찬하고, 자연의 품에서 시인이 받는 위로와 기쁨, 행복감을 아낌없이 드러내었다. 정지된 듯한 그녀의 글에 처음엔 집중하기 어려웠지만 욕심내지 않았다. 천천히, 물을 입에 머금듯이 문장을 읽는다. 책장 속 그녀가 바라보는 풍경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기대도, 욕심도 없이 고요하게 음미해야만 문장은 풍경과 여운을 나눠주었다. 섬세한 감정 묘사와 글 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자연의 생생함, 삶에 대한 깊은 시선과 사유들은 우리가 살며 진실로 마음을 쏟아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생각하게 했다.

 

언제나 빠른 속도를 지향하며 편리를 위해 무엇이든 희생시킬 준비가 되어있는 지금. 스마트폰과 인터넷에 갇혀 점점 좁은 시야에 익숙해져가는 현실. 그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 어떤 행복을 꿈꾸며 살아가는 것일까. 어떤 가치와 어떤 사치가 우리를 풍요롭게 해줄 수 있을까.

그냥 그녀의 글을 읽었을 뿐인데, 내 안으로 바깥이 들어왔다. 귀여운 초록 잎을 매단 나무와 노란 봄꽃들, 푸르러진 산의 전경이, 비가 오려는 어두운 하늘이 들어왔다. 낯선 사람과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듯이, 모두가 인기척을 가지고 다가왔다. 등을 마주 데고 앉아 잠들고 싶은, 그런, 따뜻함. 위로 혹은 희망 같은 것.

 

 

문제는, 삶에서든 글쓰기에 있어서든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혹독한 날씨는 이야기의 완벽한 원천이다. 폭풍우 때 우리는 무언가 해야만 한다. 어디론가 가야만 하고, 거기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속에서 우리의 마음은 기쁨을 느낀다. 역경, 심지어 비극도 우리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 스승이 된다.

우리 모두 도전과 용맹을 찬양한다. 바람 없는 날 단풍나무들이 천개를 길게 드리우고 푸른 하늘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을 때, 어느 향기로운 들판에서 불기 시작한 지 한 시간도 안 된 바람이 살그머니 우리를 스치고 지나갈 때, 우리가 하는 건 무엇인가? 너그러운 땅에 누워 편안히 쉬는 것이다. 그리고 잠이 들기 십상이다. -p.62, '완벽한 날들' 중에서

 

 

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나는 더 이상 무언가를 바라지 않게 되었다. 그저 무탈한 하루와 가족의 건강, 좁은 방에 여러 개의 이불을 깔고 함께 누워 서로 포개어져 자는 일. 그 하루에 늘 겸손하며 감사할 따름이다. 거기에 '찾아오는 장소에 따라 다른 목소리를 내는' 비와 이른 아침의 산책과 포근한 햇살 속에서 느끼는 '돌연 발작적인 행복감'이란 삶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덤'이라 생각한다. 쫓기듯 사는 삶 속에서 자연이 주는 쉼표들을 무시하고 산다면, 그건 여백 없는, 여운 없는 시간만을 살아 넘기는 일밖엔 되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일상과 그녀가 애정한 자연과 넘치는 사랑으로 써내려간 시들, 노래들. 천천히 음미할수록 그것은 짙은 향으로 내 가슴을 설레게 했다. 그녀의 글을 읽으며 내 삶에 쉼표를 찍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삶의 무게에 짓눌려 산다고 말한다. 자신에게 온 고통과 시련을 쉬이 인정하지 못하고 견디려하지 않고 피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몫의 고통을 넘겨내려고 힘써 그 고통 속으로 몸을 밀고 나아갈 때 나를 억누르는 듯 했던 무게는 어느덧 사라지고 희망이 저 발치에 있었다. 두려움은 내가 만드는 것이라고 했던가. 나는 어쩌면 우리의 삶이 내가 읽어간 이 한 권의 책과 같은 무게가 아닐까 생각했다. 내 두 손에 포옥 안기는 이 한 권의 책만큼 삶은 바람에 흔들리기도 하고 비에 젖기도 하며 그 흔적들에 위로받기도 한다. 메리 올리버, 그녀의 문장들은 그렇게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당신이 누구든, 어떤 시간을 살아내고 있든 당신이 시작한 오늘이 바로 완벽한 날들이란 것을.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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