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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으면 - 낮의 이별과 밤의 사랑 혹은 그림이 숨겨둔 33개의 이야기
황경신 지음 / 아트북스 / 2013년 4월
평점 :
그림 앞에 서면 궁금해지곤 했다. 작가는 어떤 마음으로 이 그림을 그렸을까. 무슨 이야기를 담고 싶었을까. 그의 어떤 생채기가 이 슬픔을 그리도록 했을까. 그림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내 앞에 서있을 뿐이다. 그래서 오히려 말을 걸려하지 않을 때가 많다. 가만히 바라보다 눈앞에서 치우면 그 뿐이라는 마음으로.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그림에 대한 많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작가도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그림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그녀의 이야기는 다소 일방적이면서도 아름다우며 거칠면서 따뜻하고 몽환적이기도 하다.
처음 책을 읽으면서는 화자에 몰입할 수 없어 애를 먹었다. 주인공을 알 시간 없이 글은 이어지고 금세 맺어지며 끝에 놓인 그림과 마주보는 일은 영 어색했다. 당신의 이야기였군요, 하고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그림으로부터 발현된 이야기, 라는 점에 주목하여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었다. 33명의 화자. 그들은 모두 미성숙했고 이별에 아팠다. 그 고통을 앓고 나오며 성장했고 다시 사랑을 기다릴 용기를 얻었다. 알면서도 그 과정 속에선 벅찬 삶의 수순들. 작가의 문장은 그 마음의 혼돈을 아름답고도 애처롭게 그려나갔다. 사각의 귀퉁이에 갇힌 그녀들의 혼란과 상처 속에서 나 또한 혼란과 아픔을 느꼈다.
이 책 속의 그림은, 작가의 첫 문장을 시작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종이에 갇혀 있던 그녀가 말을 하기 시작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나는 숨을 죽인다. 공감하고 부정하고 아파하면서 처음 만나는 그림 앞에 아련함을 느낀다. 인기척을 느낀다. 무엇도 궁금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저 그 여인의 담담한 표정과 그 먹먹한 공간 속에서, 고통을 뚫고 나오려는 몸부림이 느껴졌다. 그림을 바라보던 마음이 바깥까지 이어졌다. 그녀의 글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내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다른 이야기의 고리를 만들어 갔다.
이 책을 덮고 난 뒤 어떤 그림을 보아도 그 그림의 소리가 들렸다. 그 재잘거림이, 눈물이, 아픔이, 생생하게 내 마음 곁을 맴돌았다. 그림은 내 감정의 거울이기도 하다. 그 느낌은 현재의 내 감정을 반영한다.
무언가 그림을 바라보는 특별한 시선 하나가 생긴 기분이다. 많은 말로 할 수 없는 느낌과 기분들이 나의 손끝을 움직였고 무언가를 생각해보라 부추겼다. 특별한 방향 없이 내게 온 책. 그러나 방향이 없어 더 많은 상상을 갖게 한 책. 눈을 감으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그림이 움직이는 시간. 그 속에서 우리는 내 안의 감정과 조우한다. 그리고 그림 밖의 더 많은 것들을 만나고 아파하며 조금씩 서툴게 나아가는 당신의 삶을 애틋하게 될 것이다.
그녀가 노래한 것은 언제나 희망이었지
반짝이는 것과 따뜻한 것이 그녀를 키웠으므로
푸른 가지마다 매달아놓을 것이 많았지
그러나 겨울은 한없이 깊어가고
가시처럼 융숭한 가지들이
문득 그 노래를 그치게 할 때
따뜻한 마음과 반짝이는 눈빛이 얼어붙을 때
무정한 눈과 바람이 모든 길을 감출 때
그녀는 알게 되었지
희망이란
까만 하늘에 박혀 있는 수억 개의 별이 아님을
가장 깊고 어두운 우물 속에 감추어진
단 하나의 사람
단 하나의 생명이라는 것을
지상의 모든 노래가 사라질 때
비로소 불러야 할 이름이라는 것을
- 본문 중에서
희망은 아무것도 보지 않는다. 현재와 현실과 미래와 구원을 직시하는 순간, 희망은 희망을 잃고 만다. 희망이 희망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희망 외의 것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리하여 희망은 스스로 눈을 가린다. -p.11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