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극심한 雨期에 마음마져 끕끕해질때가 있다.
어느 비오는날,
명동 한복판에 만난 명화 우산을 쓴 낯선 사람의 모습이
날 미소짓게 했다.

새 비옷, 장화, 우산을 샀던 어린 시절.
"왜 비가 안오지?"라며 하늘을 쳐다봤던 그 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이 예쁜 우산에 전이시켜 보고싶다.

명화 우산 갖고 싶다.
그런데 무척이나 고가란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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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oven 2004-05-27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예상외로 꽤 高價더라구요.
그래도 비오는 날이 기다려질테죠?
 


 

성석제 * 내 고운 벗님 1
======================







대위가 내려왔다. 정확히는 내려온다는 연락이 왔다.
연락을 받은 중사는,
정확히는 이장천 예비역 중사는 장도룡 예비역 병장의 낚시 가게로 향했다.
대위는 무기중개상이었다. 이장천은 그렇게 알고 있었다.

대위는 건국 이래 최대의 국방산업인 '금광사업'의 에이전트였다.
대위 주제에 무슨 건국 이래 최대 국방사업의 에이전트가 되느냐고 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군대에서 대위계급의 요원을 필요로 하듯 무기거래에도 예비역 대위 같은 인물이 필요했다.

국내에는 원래 무기거래 에이전트가 드물고 일거리가 생겼을 때
그 한 건만 보고 급조되는 회사가 많다.

이런 회사는 관료나 고위 장성을 간판으로 데려다놓고
실제 일은 대위 같은 실무 정보통이 맡았다.
무기거래 관행상 에이전트에게 주어지는 수수료는 거래가 별 탈 없이 성사만 된다면
삼대가 먹고 살 만큼 된다.

대위는 이번의 '금광사업'이 성사되기까지 수많은 난관을 넘어왔고 이제 무기거래
당사국의 두 정상이 사인을 하는 일만 남겨놓았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몸도 마음도 지칠대로 지쳤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며 향기로운 술도, 아름다운 여인과 호화로운 호텔방도 지겨워졌다.
대위는 휴식을 원했다. 그 중에서도 낚시를 바랐다.
인적 드문 호숫가에서 낚싯대를 드리운 채 만사를 잊고 싶은 것이었다.

오로지 야광찌 하나만 바라보며 앉아 있다가 혹 잠이 오면 천막에 들어가 아무렇게나
쓰러져 코를 골고, 새벽에는 물안개 사이로 물고기가 뛰어오르는 소리를 들으며
깨어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 중사는 대위와 동갑이었다.
중사는 대위가 중위였을 때 그의 휘하에서 하사관으로 근무한 적이 있었다.
대위는 이 중사의 근무 기록표를 보고는 동갑내기라면서 사석에서는 친구 사이로 지내자고 했다.

중사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하자 친구가 되라고 명령했다.
그뒤부터 대위는 친구 사이니까 말을 놓아야 한다고 했지만
중사는 공석이든 사석이든 언제나 존댓말을 해왔다.

"그라이까네 그분이 우리나라에서는 첫째가는 무기 에이전트다.
하 오늘 발음 쥑인다, 이말 아입니까. 그런 분이 여기 겉은 시골 동네까지 오시마
참말로 영광이지예. 내는 죽심니데이."

장 병장은 손에 든 화투를 얌전하게 내려놓으며 말했다.
장 병장 앞에는 천 원짜리 지폐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고 군용모포로 만든 화투판 아래에는
만 원짜리 두어 장이 얌전히 누워 있을 것이었다.

그날 그는 '점 백짜리' 고스톱에서 승승장구했고 무슨 핑계로든 최대한 빨리 화투판을
걷어치우고 싶었는데 이 중사가 나타나준 것이었다.

"장사장, 돈 땄다고 그래 팍팍 죽기 있나. 그리고 장 사장은 언제부터 깅상도 사투리
배았길래 안즉도 그래빠이 모하나. 거기 어데 우리 동네 말이라,
부산 갈매기 사투리지. 쓸라만 똑바로 쓰라 카이"

맞은편 소파에서 조 세탁이 물고 늘어졌다.
이 중사는 짐짓 조 세탁의 코앞 탁자에 엉덩이를 내려놓았다.

"우리가 하매 만낸 지 이십 년 된 친구라. 그 사람이 지금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그 누고,
뭐 구체적으로 이름까지 알 거는 없고 그 무기거래상들하고 어깨를 나라이 한다 캐서
하는 말이 아이라, 지금 중대한 나라 일을 하고 있으이 이분이 손가락을 우째 놀리야에
따라서.."

장 낚시가 잽싸게 "따라서어!"하고 복창하면서 좌중의 주위를 환기했다.
이 중사는 김 전파, 최 오백냥, 김 목공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나라의 국운이 왔다리 갔다리 한다 이 말이라. 쉽기 말해서 똥글배이 하나만
잘못 기리도 나라가 절딴이 나는 수가 있단께로. 그래서 이번에 대위님이 오시마
우리뿐만 아이고 전 장안 군민, 읍민이 한 마음 한 몸 한 목숨으로 우리 대위님을
잘 모시야 되겄다 이말이라."

무슨 물건이든 오백 원인 잡화상을 운영해서 오백냥이 된 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키 중요한 사람이 우째 계급이 대위빠이 안 되나.
별이 달리도 한참 마이 달리야 정상 아이까."

가전 회사 서비스 센터가 코앞으로 이사 오는 바람에 홧김에 하던 전파사를 때려치웠지만
여전히 '전파'로 불리는 김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진짜배기로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은 계급도 없고 군복도 안 입는겨.
우리 영감이 보안대 출신여. 제대한 지 오십 년이 됐어도 아직 군대타령을 해대싸.
계급이 오매불망여."


----------------------------------------------- 2편에서 계속 읽어 드립니다..------



이번에 선정한 작품은 2004년 제 49회 현대 문학상을 수상한
성석제의 <내 고운 벗님>입니다.

지금까지 읽어드렸던 작품들은 제가 먼저 읽고 좋아서 올린 글들이었는데,
이번 단편은 저도 함께 타이핑 하면서 읽게 됩니다.
주문해서 배달된지 얼마 안된 따끈따끈한 책이라서요~

군대 얘기라서 왠지 딱딱할 것 같은 첫부분에 이어,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가 나오니 마음이 금새 녹아 버리네요.

무슨 이야기가 전개될지 사뭇 기대가 되고 말이죠.

'내 고운 벗님'이라..
아무래도 이중사와 대위와의 사이에서 무슨 중요한 일이 생기겠죠?
기대하면서 하루에 3페이지씩 다시 읽어 드립니다.

좋은 책을 읽는 2004년이 되시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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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05-22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석제 저도 좋아해요. 님 덕분에 편하게 읽게 됐네요. 저도 님 쫓아 읽어나 가도록 하겠습니다. 고마워요.^^

motoven 2004-05-23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 한분이라도 독자가 계시다고 하니 더 열심히 적어 날라야겠네요. ^^
 


 


젊은 아더왕이 복병을 만나 이웃나라 왕에게 포로신세가 되었다.
이웃나라 왕은 아더왕을 죽이려 하였으나 아더왕의 혈기와 능력에
감복하여 어려운 질문에 1년안에 답을 하면 아더왕을 살려주겠다는
하나의 제안을 한다.

그 질문은 바로 여자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What do women really want?) 였다.

아더왕은 자신의 왕국에 돌아와서 모든 백성들에게 묻기 시작했다.
공주들, 창녀들, 승려들, 현자들, 그리고 심지어 광대들에게까지
모두 물어 보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만족할 만한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아더왕의 신하들이 왕에게 말하기를 북쪽에 늙은 마녀가 한명 사는데
아마 그 마녀는 답을 알것이라고
그 마녀를 데려오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그러나 그 마녀는 말도 안되는 엄청난 댓가를 요구하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1년이 지나 마지막 날이 돌아왔고
아더왕에게는 늙은 마녀에게 물어보는 것 이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되었다.

늙은 마녀는 답을 안다고 선뜻 대답하였지만
엄청난 댓가를 요구하였다.
그 댓가란 아더왕이 거느린 원탁의 기사들중 가장 용맹하고 용모가
수려한 거웨인과 결혼하는 것이었다.

아더왕은 충격에 휩싸였고 주저하기 시작했다.
늙은마녀는 곱추였고 섬찟한 기운이 감돌기까지 하였다.
이빨은 하나밖에 없었고 하수구 찌꺼기 같은 냄새를 풍겼으며
항상 이상한 소리를 내고 다녔다.

아더왕은 이제까지 이렇게 더럽고 추잡한 생물은 본적이 없었고
이런 추한 마녀를 자기의 가장 충성스러운 신하인 거웨인에게
결혼하라고 명령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거웨인은 자기가 충성을 바치는 아더왕의 목숨이 달려있는
만큼 주저없이 그 마녀와 결혼을 하겠다고 자원했다.

결혼이 진행되었고 결국 마녀는
아더왕이 가진 질문에 대한 정답을 이야기하였다.

여자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삶을 자신이 주도하는 것,
곧 자신의 일에 대한 결정을
남의 간섭없이 자신이 내리는 것이라고 하였다.
('What women really want is to be in charge of her own life')

정답을 듣자 모든 사람은 손바닥을 치며
저 말이야말로 진실이고 질문에 대한 정답이라고하며
아더왕이 이제 죽을 필요가 없음에 기뻐하였다.

아더왕은 이웃나라왕에게 질문에 대한 답을 하였고
이웃나라왕은 그것이야말로 진실이며 정답이라며 기뻐하면서
아더왕의 목숨을 보장해주었다.

하지만 목숨을 되찾은 아더왕에게는 근심이 남아있었다.
자신이 가장 총애하는 거웨인의 결혼에 대한 것이었다.
아더왕은 목숨을 되찾은 기쁨에 넘쳐있었지만 동시에 거웨인에 대한
일로 근심에 쌓여있었다.
그러나 거웨인은 대단한 사람이었다.
늙은 마녀는 결혼하자마자부터 최악의 매너와 태도로 거웨인을
비롯한 모든 사람을 대했다.
그러나 거웨인은 한치의 성냄이나 멸시없이 오직 착하게 자신의
아내로서 마녀를 대했다.

첫날밤이 다가왔다.
거웨인은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최악의 경험이 될지도 모르는
첫날밤을 앞에두고 숙연히 침실에 들어갔다.

그러나 침실안의 광경은 거웨인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거웨인의 인생에서 본적없는 최고의 미녀가 침대위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놀란 거웨인이 미녀에게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다.

미녀는 말했다.
자신이 추한 마녀임에도 거웨인은 항상 진실로 그녀를 대했고 아내로
인정하였으므로 그에 대한 감사로서 이제부터 삶의 반은 추한 마녀로,
나머지 반은 이 아름다운 미녀로서 있겠노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마녀는 거웨인에게 물었다.
낮에 추한 마녀로 있고 밤에 아름다운 미녀로 있을 것인가,
아니면 낮에 아름다운 미녀로 있고 밤에 추한 마녀로 있을 것인가.
거웨인에게 선택을 하라고 하였다.

거웨인은 이 진퇴양난의 딜레마에서 선택을 해야만 했다.
만일 낮에 아름다운 미녀로 있기를 바란다면
주위사람에게는 부러움을 사겠지만
밤에 둘만의 시간에 추한 마녀로 변한다면 어찌 살것인가.
아니면 반대로 낮에 추한 마녀로 있어 주위사람의 비웃음을 사겠지만
밤에 둘만 의 시간에 아름다운 미녀로 변해 살것인가.

당신이라면 어떤 것을 선택하겠는가?



거웨인은 마녀에게 자신이 직접 선택하라고 말했다.
마녀는 이 말을 듣자마자 자신은 반은 마녀,
반은 미녀 할것없이 항상 아름다운 미녀로 있겠노라고 말했다.

이유는 거웨인이 마녀에게 직접 선택하라고 할만큼
마녀의 삶과 결정권,
그리고 마녀 자체를 존중해주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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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4-05-22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여지껏 알라딘에서 만난 인연은 모두 "우연한 만남"이라는 카테고리에 넣었는데, 이것만은 딸을 위한 "여자이야기"에 넣어야겠군요.
감사하게 퍼갑니다.

motoven 2004-05-23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따님이 있으신가봐요~
세상의 모든 여자분들에게 지혜로운 남성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길..^^
 


TV를 통 안보지만, 가끔 엄마가 보시는 드라마 불새를
등넘어로 보고는 눈빛 연기에 이 남자가 좋아져버렸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그 촉촉히 젖은 눈빛.
그런 눈이 나를 향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어흑~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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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05-14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서진 좋아하는데...!^^

motoven 2004-05-23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새 전에는 별 관심 없었는데 불새 보면서 좋아졌다는..^^
 

 

그래서 그렇게 웃음이 터졌는지도 모르겠구나...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처음 알프스 모텔의 문을 열고,
사장실에서 그를 면대하던 첫 순간부터,

모텔 알프스의 사장이 아니라 물주전자 받쳐들고 숙박계 써달라고 객실 문을 두드리던
알프스장의 주인이어야 할 그 늙은 남자를,
그리고 그 남자가 그날 입 밖에 냈던 물레방앗간이라는 말을...

아마도 나는 좋아했던 모양이구나..
윤이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사장이 건넜던 건널목도 없는 길을,
고양이 한 마리가 재빠르게 뛰어 올라가다가 문득 멈춰서 윤을 돌아보았다.

어둠 속에서 노란 눈빛이, 쨍하고 빛났다.
고양이의 그 눈빛이 윤의 가슴을 베어내는 듯했다.


그날 밤 윤은 자정이 가까워서야 집으로 들어갔다.
가져갈 것이라곤 불행밖에 없는 집의 대문에 빗장이 채워져 있는 적은 없었다.

집엔 불이란 불은 전부 꺼져 있었다.
그래도 달빛인지 골목의 외등빛인지 알수 없는 것으로 마당이 밝아,
윤은 피할 것을 피해 가며 기척 없이 남편의 방문을 열 수 있었다.

남편은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윤은 그의 침대를 마주보는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여보, 자?"
남편은 대답이 없었다.
그는 정말로 잠들어 있거나, 아니면 잠든 척하고 싶어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를 깨우기 위해 그의 발바닥을 간지럽혀 본다던가 하는 일은 이젠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의 허벅지를 송곳으로 찌른다고 하더라도 그는 그 감각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윤은 언덕길을 올라가는 사장의 뒷모습을 오래 바라보고 서 있었던 것처럼,
잠들어 있는 것 같은 남편의 모습을 오래 쳐다보았다.

"여보, 정말 자는 거야?"
윤이 다시 물었으나 남편은 여전히 미동도 없었다.

설령 남편이 깨어 있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남편에겐 자는 척하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었다.
그에겐 이젠 말할 수 있는 몸 같은 것은 없었다.

윤은 무릎걸음으로 천천히 남편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소용없는 일이란 걸 뻔히 알면서도 남편의 다리를 흔들었다.
남편의 다리에 저항의 힘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윤은 그 다리에 얼굴을 묻었다.

"그러지 마, 당신.. 당신, 아직도 살아 있는 거 다 알아.
나보다 먼저 죽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아."

그러나 남편에게서는 여전히 아무런 기척도 없었고, 윤의 눈꺼풀이 졸음인지 슬픔인지
알 수 없는 것으로 저 홀로 무거워졌다.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몫의 이부자리를 침대 아래에 펴기 위해 몸을 일츠키다 말고,
윤은 갑자기 남편의 다리를 침대 한쪽으로 밀었다.

그리고는 이번엔 엉덩이를, 가슴을 그리고 팔을....
마지막으로 남편의 얼굴을 베개 한쪽으로 밀 때까지도 남편은 눈을 뜨지 않았다.

윤은 남편의 좁은 침대에 몸을 눕히고, 남편의 저항 없는 팔을 들어 팔베게를 했다.
갑자기 뺨이 뜨끈한 느낌이 들어 손바닥으로 뺨을 문대보니 물기가 만져졌다.

눈물인지 땀인지 알 수 없는 물기가 남편에게서부터 흘러나와 그녀의 뺨까지 적시고 있었다.
윤은 자신의 얼굴에 젖은 물기를 닦아내는 대신, 천천히 옷을 벗기 시작했다.
남김없이 옷을 벗고 벗은 몸으로 남편의 몸을 끌어안았다.

저항 없는 몸이 출렁하고 윤의 품 안으로 끌어당겨졌다.
윤은 남편의 얼굴을 자신의 목에 묻게 했다.
여보, 나를 물어... 손가락이 아니라 내 목을 물어뜯어...그리고는 절대로 놓지 마......

윤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뺨의 물기가 흥건해져 갔다.
그렇다면 울고 있는 것은 난가?
눈물 같은 건, 완전히 잊어버린 지 이미 오래였던 윤이었다.


윤은 차마 그 물기의 근원을 확인할 수가 없어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러면 아주 떠나게 될까 봐, 떠나서는 아주 돌아오지 않게 될까 봐,
그날이 바로 오늘일까 봐서...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번쩍 눈을 뜨는 윤의 눈빛이 느닷없이 반짝, 빛났다.
시어머니구나! 첫날밤, 그때처럼 늙은 시어머니가 방 안을 엿보고 있구나!
시어머니의 머리채를 휘어잡기 직전이면 언제나 그런 것처럼 윤의 눈빛이 아연, 밝아졌다.

윤은 벼락같이 일어나 방문을 와락 열어젖혔다.
그러나 그 벼락같던 행동이 무색하게 방문 밖은 텅 빈 적요뿐이었다.
시어머니의 모습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마당 한가운데로 달빛이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무엇이었나........무엇이 나를 불렀나........
대답은 긴 고양이 울음소리였다. 대문 옆 담장 위였다.
늙은 고양이 한 마리가 그녀를 내려다보며 이번에는 짧고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냈다.

윤의 가슴이 먹먹해졌다. 새끼 잃은, 어미 고양이였다.
갓 낳은 새끼들을 물속에 잠겨 죽인 어미 고양이.....
그 늙은 고양이가 새끼들을 찾고 있었다.

윤은 가만히, 방문을 가로막고 있던 자신의 몸을 비켰다.
보렴, 여기에 너의 새끼가 있다.
살아 있는 몸을 잃어버린 딱한 아들 그리고 살아 있는 몸뿐인 딸이 여기에 있다.

그리고 여기에 네 생이 끝까지 갈 기억들이 있다...
담장 위의 늙은 고양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빳빳하게 세운 꼬리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때 다시 한 번 긴 울음소리가 들렸는데, 그것은 방 안에 누워 있는 남편의 울음소리
같기도 했고 불꺼진 건넌방, 늙은 시어머니의 울음소리 같기도 했다.

담장 위의 고양이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지붕 쪽으로 느리게 걸음을 옮겨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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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정신적인 사랑만이 전부인 것처럼 알고 지내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이상적인 생각이었을까요?

사람은 몸과 정신으로 만들어진 존재인데, 사랑도 한쪽으로 기울 수는 없겠죠.
사랑 뿐이 아니겠죠. 모든 일이 그렇습니다.

여기에 정신만이 살아 있는 윤의 남편과,
몸만이 살아 있는 윤과 시어머니라는 존재가 있습니다.

모텔 알프스는 인간의 육체가 얼마나 그 정신적인 삶을 지배하는가를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장소라 하겠습니다.

새끼를 잃어버린 영물인 고양이는 반 죽은 자식을 지키는 시어머니를 닮아
더욱 구슬픈 느낌을 주게 됩니다.

자신에게 딸린 혹을 달고 윤은 어떻게 살아 나갈까요?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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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4-05-23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인숙씨의 소설 중에서 개교 기념일 과 더불어 참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motoven 2004-05-24 0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반갑네요.. 이상문학상이었나요? 현대문학상이었나요?
수상작인 개교기념일과 모텔 알프스가 같이 실렸던 기억도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