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제 * 내 고운 벗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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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위가 내려왔다. 정확히는 내려온다는 연락이 왔다.
연락을 받은 중사는,
정확히는 이장천 예비역 중사는 장도룡 예비역 병장의 낚시 가게로 향했다.
대위는 무기중개상이었다. 이장천은 그렇게 알고 있었다.
대위는 건국 이래 최대의 국방산업인 '금광사업'의 에이전트였다.
대위 주제에 무슨 건국 이래 최대 국방사업의 에이전트가 되느냐고 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군대에서 대위계급의 요원을 필요로 하듯 무기거래에도 예비역 대위 같은 인물이 필요했다.
국내에는 원래 무기거래 에이전트가 드물고 일거리가 생겼을 때
그 한 건만 보고 급조되는 회사가 많다.
이런 회사는 관료나 고위 장성을 간판으로 데려다놓고
실제 일은 대위 같은 실무 정보통이 맡았다.
무기거래 관행상 에이전트에게 주어지는 수수료는 거래가 별 탈 없이 성사만 된다면
삼대가 먹고 살 만큼 된다.
대위는 이번의 '금광사업'이 성사되기까지 수많은 난관을 넘어왔고 이제 무기거래
당사국의 두 정상이 사인을 하는 일만 남겨놓았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몸도 마음도 지칠대로 지쳤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며 향기로운 술도, 아름다운 여인과 호화로운 호텔방도 지겨워졌다.
대위는 휴식을 원했다. 그 중에서도 낚시를 바랐다.
인적 드문 호숫가에서 낚싯대를 드리운 채 만사를 잊고 싶은 것이었다.
오로지 야광찌 하나만 바라보며 앉아 있다가 혹 잠이 오면 천막에 들어가 아무렇게나
쓰러져 코를 골고, 새벽에는 물안개 사이로 물고기가 뛰어오르는 소리를 들으며
깨어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 중사는 대위와 동갑이었다.
중사는 대위가 중위였을 때 그의 휘하에서 하사관으로 근무한 적이 있었다.
대위는 이 중사의 근무 기록표를 보고는 동갑내기라면서 사석에서는 친구 사이로 지내자고 했다.
중사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하자 친구가 되라고 명령했다.
그뒤부터 대위는 친구 사이니까 말을 놓아야 한다고 했지만
중사는 공석이든 사석이든 언제나 존댓말을 해왔다.
"그라이까네 그분이 우리나라에서는 첫째가는 무기 에이전트다.
하 오늘 발음 쥑인다, 이말 아입니까. 그런 분이 여기 겉은 시골 동네까지 오시마
참말로 영광이지예. 내는 죽심니데이."
장 병장은 손에 든 화투를 얌전하게 내려놓으며 말했다.
장 병장 앞에는 천 원짜리 지폐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고 군용모포로 만든 화투판 아래에는
만 원짜리 두어 장이 얌전히 누워 있을 것이었다.
그날 그는 '점 백짜리' 고스톱에서 승승장구했고 무슨 핑계로든 최대한 빨리 화투판을
걷어치우고 싶었는데 이 중사가 나타나준 것이었다.
"장사장, 돈 땄다고 그래 팍팍 죽기 있나. 그리고 장 사장은 언제부터 깅상도 사투리
배았길래 안즉도 그래빠이 모하나. 거기 어데 우리 동네 말이라,
부산 갈매기 사투리지. 쓸라만 똑바로 쓰라 카이"
맞은편 소파에서 조 세탁이 물고 늘어졌다.
이 중사는 짐짓 조 세탁의 코앞 탁자에 엉덩이를 내려놓았다.
"우리가 하매 만낸 지 이십 년 된 친구라. 그 사람이 지금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그 누고,
뭐 구체적으로 이름까지 알 거는 없고 그 무기거래상들하고 어깨를 나라이 한다 캐서
하는 말이 아이라, 지금 중대한 나라 일을 하고 있으이 이분이 손가락을 우째 놀리야에
따라서.."
장 낚시가 잽싸게 "따라서어!"하고 복창하면서 좌중의 주위를 환기했다.
이 중사는 김 전파, 최 오백냥, 김 목공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나라의 국운이 왔다리 갔다리 한다 이 말이라. 쉽기 말해서 똥글배이 하나만
잘못 기리도 나라가 절딴이 나는 수가 있단께로. 그래서 이번에 대위님이 오시마
우리뿐만 아이고 전 장안 군민, 읍민이 한 마음 한 몸 한 목숨으로 우리 대위님을
잘 모시야 되겄다 이말이라."
무슨 물건이든 오백 원인 잡화상을 운영해서 오백냥이 된 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키 중요한 사람이 우째 계급이 대위빠이 안 되나.
별이 달리도 한참 마이 달리야 정상 아이까."
가전 회사 서비스 센터가 코앞으로 이사 오는 바람에 홧김에 하던 전파사를 때려치웠지만
여전히 '전파'로 불리는 김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진짜배기로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은 계급도 없고 군복도 안 입는겨.
우리 영감이 보안대 출신여. 제대한 지 오십 년이 됐어도 아직 군대타령을 해대싸.
계급이 오매불망여."
----------------------------------------------- 2편에서 계속 읽어 드립니다..------
이번에 선정한 작품은 2004년 제 49회 현대 문학상을 수상한
성석제의 <내 고운 벗님>입니다.
지금까지 읽어드렸던 작품들은 제가 먼저 읽고 좋아서 올린 글들이었는데,
이번 단편은 저도 함께 타이핑 하면서 읽게 됩니다.
주문해서 배달된지 얼마 안된 따끈따끈한 책이라서요~
군대 얘기라서 왠지 딱딱할 것 같은 첫부분에 이어,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가 나오니 마음이 금새 녹아 버리네요.
무슨 이야기가 전개될지 사뭇 기대가 되고 말이죠.
'내 고운 벗님'이라..
아무래도 이중사와 대위와의 사이에서 무슨 중요한 일이 생기겠죠?
기대하면서 하루에 3페이지씩 다시 읽어 드립니다.
좋은 책을 읽는 2004년이 되시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