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나는 없었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1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여기 한 소설이 있다. 쉽게 반성을 강요하거나 도덕적 교훈을 들먹이지 않는, 인간을 보여주기만 하는 소설. 서늘한 긴장과 짜릿한 현장성의 묘미를 보여주는 소설. 시위하듯 가족애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가족 사이에 흐르는 감정선을 그려내는 소설. 가족은 서로를 다 아는 것일까. 몰라서 모르거나 알면서도 몰라야 하는 가족이라는 소통의 한계와 통점에 관한 이야기. 로드니와 조앤의 경우를 보면서 공감하고, 로드니와 레슬리의 교감 앞에서는 하루가 충분히 무기력해지도록 내버려뒀다. 어쩜 인간은 이리도 쉽게 변하지 않는지.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조앤은 곧 나였고, 때로는 레슬리도 나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통찰 깊고 서늘한 문장을 잣는 이가 누구시던가. 애거사 크리스티. 그니는 봄에 자신이 없었노라고 고백하지만 그녀는 매 봄마다 내게 올 것이다. 아니, 온 겨우내 내 왼쪽 심장에 똬리를 틀고 앉아 나를 괴롭혀댈 것이다

 

   소설적 소품 또한 얼마나 잘 활용했는지. 도마뱀(103, 111), 때 이른 10월 철쭉(96 레슬리를 향한 로드니의 마음), (내가 그대에게 떠나 있던 때는 봄이었노라), 색 바랜 파란 쿠션(258레슬리를 상징하는 것 같았다.), 초록빛 갈색머리(253 쿠션에 반사된 레슬리의 머리카락), 1미터(레슬리와 로드니의 사랑의 간격,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 딱 그만큼의 거리), 코페르니쿠스(254,259) 등등 탐나는 설정들이 너무 많았다. 그 이름 애거사 크리스티.

 

   봄에 없었다. (absent in the spring) --> 내 식 해석으로 (Love was totally absent in the spring.)이라 하고 싶다. 제목 한 번 잘 지었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찾아 읽고 싶은 밤이로다. 

 

   간단 내용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쓴, 추리 소설이 아닌 여성의 삶과 사랑을 다룬 소설. 인간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 런던 근교 크레이민스터에 사는 조앤 로드니. 변호사의 아내이자 삼남매의 엄마. 결혼한 딸 바버라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바그다드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 폭우로 텔 아부 하미드 기차역 숙소에서 사흘간? 발이 묶이면서 내면 성찰을 하게 된다. 우연히 동창생을 만나 자신의 문제와 직면하는 시간. 전에는 몰랐던 사실들. 알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들. 기적처럼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 가식과 위선의 그물을 걷어내는 과정.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매정했고, 그들을 괴롭혔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다시 크레이민스터의 집에 도착했을 때 조앤은? ···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쉽게 변한다면 사람이 아니다!

 

 등장인물

<스쿠다모어네 주변>

*로드니 : 다정다감한 변호사, 온정적 이해주의자, 조앤을 사랑하나 완벽하게 소통하지 못함, 농부의 삶을 원하나 현실은 변호사, 레슬리를 향한 내밀한 열정.

*조앤 : 냉정하고 이기적, 자식들을 자기 식으로 이해함, 자식들의 신뢰를 받지 못함, 오만한 동정심, 부지불식간의 이기심을 지닌 외롭고 허한 중년 여자.

*블란치 해거드 (도너번) : 여고 동창생, 경박하고 솔직하고 직설적인 성격, 악의는 없음. 이 소설의 주요 모티프가 된 인물

*에이버릴 : 냉정하고 무심, 단단하고 깐깐. 상처 입을 용기가 있는 맏딸, 나이 많은 의사 루퍼트 카길과 연애 사건도 있었지만 논리로 무장한 로드니에게 설득 당한다. 아버지는 자신이 레슬리를 사랑하는 경험을 토대로 에이버릴을 설득한다.(속으로 사랑의 아픔을 삭이면서) 에이버릴은 로드니를 신뢰한다. 주식중개인 에드워드 해리슨 윌모트와 결혼 후 런던 생활.

*토니: 아버지 일 이어받지 않고 남아프리카 로디지아의 오렌지 농장으로 떠나서 남아공 더반 출신의 여자와 결혼.

*바버라 : 열정적 감정적, 자제력 없음, 윌리엄 레이와 결혼 몹시라는 딸을 낳고 바그다드에서 자리 잡았다. 리드 소령과의 썸씽으로 자살 시도를 하고 앓아 눕는다. 엄마의 간병을 바버라 부부는 원치 않지만 엄마 조앤은 바그다드로 떠난다. 바버라가 아빠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엄마의 간병 기간이 그들 부부를 합심하게 된 좋은 계기가 되어 버림

*아그네스, 에드나 : 하녀

*호디즈던 : 로드니가 마음써주는 농부 할아버지

*머나 랜돌프 : 끼 많은 이웃 아가씨. 레슬리를 머나 랜돌프로 착각하기를 바랐던 조앤.

*마이클 캘러웨이 : 조앤과 섬씽 있을 뻔한 화가.

*길비 : 여고 교장 선생님, 단호하고 권위적이며 훈화적이나 통찰력이 있음.

 

<셔스턴 집안>

*찰스 셔스턴 : 레슬리 남편, 주정뱅이 은행장이자 공금횡령 전과자

*레슬리 :억척스럽고 소박한 여자, 역경조차 명랑과 긍정의 용기로 엮는 불굴의 여자. 분주하나 만족할 줄 안다. 로즈니의 사랑을 받다 암으로 죽음. 벤치에서 로드니와 1미터 간격으로 앉는 사이.

*: 큰아들, 미얀마 숲으로 떠남.

*피터 : 둘째아들, 로드니 회사 다니다 사건 일으켜 조종 훈련 배우러 떠났다가 사고사. 사기꾼 아버지와 용기 많은 엄마를 반반 닮음.

*막내딸 : 생후 6개월에 죽음.

<숙소>

*인도인 : 호텔 지배인 // *아랍소년 : 호텔 보이

 

<기차 안>

*사샤 : 알레프에서 이스탄불까지 동행한 너그럽고 지적인 러시아 공작부인, 박학다식한 부인에게 호기심을 느끼지만 조앤은 나중에 지겨워 함.

    

 

 

98어머, 이거 당신이 꽂았던 철쭉꽃이에요. 그냥 둬, 레슬리 셔스턴을 위해 그냥 두자고. 어쨌든 우리의 친구였으니까.

104열린 공간 – 그리고 상자 속에서 살아온 그녀의 전 인생. 허수아비 자식들과 허수아비 하인들과 허수아비 남편.

104내가 그대에게서 떠나 있던 때는 봄이었노라. (세익스피어 소네트 98번 일부)



105아이는 당황한 눈길로 엄마를 쳐다봤다. 상대방이 어떤 인간인지 궁금해하는 눈빛 같았다. 자식이 엄마를 그런 식으로 쳐다봐서는 안 되는 눈빛이었다. 결코 사랑스럽지 않았다.

130그녀는 생각하는 훈련을 하고, 머릿속을 조직적으로 정리하고, 광장공포증이라는 것의 본질을 철저히 파헤쳐볼 필요가 있었다.



201가끔 난 엄마가 그 누구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토니가 그렇게 말했다. 토니의 말이 맞았다. 조앤은 자식들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로드니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몰랐다. 그들을 사랑했지만 알지는 못했다. 알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196교회 묘지. 레슬리 셔스턴의 무덤. 로드니의 코트에서 떨어진 큼직한 진홍색 철쭉꽃. 거친 바람이 5월의 고운 꽃봉오리를 흔드네.



197감정을 단련해라, 조앤. 표현을 더 정확하게 해. 무엇으로부터 도망치려는 건지 확실히 정해야지.

202사람들을 사랑하면 그들에 대해 알아야 하는 건데.

204 헌신적인 엄마 노릇을 한다는 데 끌렸던 건 아닐까? 아픈 딸과 심란한 사위에게 환영받는, 매력적이고 모험적인 자신을 기대한 건 아닐까? 이 먼 데까지 달려와 주다니 정말 좋은 분이에요 같은 말을 듣고 싶어서?

204 조앤이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을 때, 두 사람은 크게 안도했다. 그들은 속마음을 숨기고 예의를 차리느라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며 붙잡았다. 하지만 조앤이 순간적으로 마음을 바꾸려는 기미를 보이자 윌리엄이 나서서 재빨리 그녀의 의지를 꺾어놓았다.



206그때 조앤의 마음속에는 옛 친구를 업신여기는 우월감이 가득차 있었다. 제가 그 여자와 다르다는 데 감사드립니다, 하느님. 그랬다. 조앤은 감히 그런 기도까지 했다. 지금 이 순간 블란치가 곁에 있다면 무엇이라도 내줄 것 같았다! 친절하고 느긋하고 너그러운 블란치. 그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 사람. 블란치를 만난 밤, 조앤은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우월감에 휩싸여 기차역 숙소에서 기도했다. 몸을 가릴 천 쪼가리 한 장 없는 것 같은 지금은 기도라는 걸 할 수 있을까?

207난 외톨이야. 완전히 외톨이야. 무시무시한 고요. 지독한 외로움. 가여운 조앤 스쿠다모어, 멍청이, 헛똑똑이, 가식덩어리, 조앤 스쿠다모어. 사막에 혼자 있네.

213내가 그대에게서 떠나 있던 때는 봄이었노라. 그 구절을 외웠을 때 로드니가 떠올랐다. 그래서 그녀는 중얼거렸다. "하지만 지금은 11월이지." 그날 저녁 로드니가 "하지만 지금은 10월이지"라고 했던 것처럼.



213하지만 이제 그녀는 알았다. 물론 당시에도 알았던 게 분명하다. 두 사람이 그렇게 멀찍이 떨어져 앉아 있었던 이유를. 그들은 차마 더 가까이 있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랬다. 그렇지 않았을까.



214상대는 머나 랜돌프가 아니었다. ··· 로드니와 랜돌프 사이에 아무 일도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녀는 눈앞에 펼쳐진 사실을 못 본 척하려고 머나 랜돌프로 연막을 피웠다. 머나 랜돌프가 레슬리 셔스턴보다 인정하기 쉽다는 이유도 있었다. 로드니가 머나 랜돌프에게 끌렸다면 자존심이 덜 상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 하지만 레슬리 셔스턴은 아름답지도 젊지도 않고 되는 일도 없는 여자였다. 지친 얼굴, 우스꽝스럽게 한쪽이 일그러지는 미소를 짓던 레슬리 셔스턴. 로드니가 그런 여자를 사랑했다고 - 정말 열렬하게 사랑해서 1미터보다 더 가까이 다가갈 수조차 없었다고 - 인정하는 것이 싫었다.



215 로드니는 대리석 묘석을 내려다보면서 "레슬리 셔스턴이 이런 차가운 대리석 밑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지독하게 이상해"라고 말했다. 그리고 진홍색 철쭉꽃이 툭 하고 떨어졌다. "피 같아. 심장의 피." 그는 말했다. ··· "모두 다 용감할 수는 없어." ··· 그러다가 로드니는 신경쇠약 증세를 보였다. 레슬리의 죽음이 초래한 병이었다. ··· 토니의 경멸에 찬 목소리. "엄마는 아빠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그녀는 몰랐다. 왜냐하면 결코 알고 시피지 않았으니까.



218로드니는 부드러운 사람이기에 그녀와 싸우지도 그녀를 억누르지도 않았다. 그 때문에 그는 세상에서 사는 동안 완전한 남자가 아니었다. 로드니·····. 난 그것을 그에게 돌려줄 수 없어. 보상해줄 수 없어. 하지만 로드니를 사랑해. 정말로. 그리고 에이버릴과 토니와 바버라를 사랑해. (하지만 충분히는 아니었다 - 그게 답이었다 -)

223그녀는 얼마나 끔찍하게 잘난체하는 인물이었던가. 사막에서 밀려들었던 날카로운 혐오감이 지금도 남아 있었다. 자기혐오. 새로이 겸손한 마음이 생겨났다.



224이제는 도마뱀들이 구멍에서 쑥 나와 그녀를 위협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을 만났고 자신을 인정했다.

228~229친구들은 제게 ‘사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어’라고 해요. 터키인, 아르메니아인, 레반트인들처럼 말이죠.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해요. ··· 조앤은 자기도 모르게 이 묘한 부인에게 매료되었다.



229혹시 자신에게만 보이는 것을 보는 중인가요? 엄청난 감정을 경험하거나 그런 감정을 지나쳐온 것 같아요. 슬픔? 아니면 엄청난 행복?



239···특이한 러시아 부인조차 마지막에는 지겨워졌다. ··· 부인이 조앤을 완전히 촌사람처럼 느끼게 했다는 점이다. 스스로를 누구와 견줘도 떨어지지 않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다독여도 소용없었다! 그 부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물론 그런 기분을 느끼는 것 자체가 몹시 바보스러웠지만.



245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자식들이 그녀를 싫어한다는 상상, 로드니가 레슬리 셔스턴을 사랑했다는 상상. ···불쾌하기 짝이 없는 모든 일. 그 상상들은 모두 사실일까? 그녀는 사실이 아니기를 바랐다. ··· 로드니, 용서해요. 난 정말 몰랐어요. 로드니, 나 왔어요. 집에 돌아왔어요. 어떤 패턴으로 할까. 어떤 것이 낫지? 조앤은 선택해야 했다. ··· 그녀는 명랑하게 말했다. "나 왔어요, 로드니. 집에 돌아왔어요."



249엄마가 여기 오겠다고 전보를 보냈을 때 전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었어요. ··· 전 기운이 하나도 없어서 별로 저항도 못했어요. ··· 사랑하는 아빠, 아빠 같은 분을 제 아빠로 두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사랑하는 바버라.



249그가 갑자기 죽는다면 조앤이 서류를 정리하다가 이 편지를 볼 테고, 아마 불필요한 고통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공연히 상처를 주고 절망에 빠뜨릴 필요가 없다. ··· 로드니는 방 한 구석으로 가서 바버라의 편지를 벽난로에 던졌다.



254"저기, 저는 코페르니쿠스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어요……"라고 (레슬 리가) 말했다.



255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어야 햇어. 로드니는 생각했다. ···그와 레슬리와 함께. 그리고 떨어져서. 고통과 가슴 타는 갈망. 두 사람은 1미터 남짓 떨어져 앉았다. 그 보다 가까우면 안전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레슬리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259"음······ 코페르니쿠스예요? 귀한 그림인가요?" 조앤은 갸웃하며 그림을 보다가 물었다.

"나도 몰라." 그는 생각에 잠긴 듯이 같은 말을 되뇌었다. "나도 전혀 모르지……"



261"그래, 당신에게는 내가 있지." 그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당신은 외톨이고 앞으로도 죽 그럴 거야. 하지만 부디 당신이 그 사실을 모르길 바라. (맨 마지막)

98어머, 이거 당신이 꽂았던 철쭉꽃이에요. 그냥 둬, 레슬리 셔스턴을 위해 그냥 두자고. 어쨌든 우리의 친구였으니까.

104열린 공간 – 그리고 상자 속에서 살아온 그녀의 전 인생. 허수아비 자식들과 허수아비 하인들과 허수아비 남편.

104내가 그대에게서 떠나 있던 때는 봄이었노라. (세익스피어 소네트 98번 일부)



105아이는 당황한 눈길로 엄마를 쳐다봤다. 상대방이 어떤 인간인지 궁금해하는 눈빛 같았다. 자식이 엄마를 그런 식으로 쳐다봐서는 안 되는 눈빛이었다. 결코 사랑스럽지 않았다.

130그녀는 생각하는 훈련을 하고, 머릿속을 조직적으로 정리하고, 광장공포증이라는 것의 본질을 철저히 파헤쳐볼 필요가 있었다.



201가끔 난 엄마가 그 누구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토니가 그렇게 말했다. 토니의 말이 맞았다. 조앤은 자식들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로드니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몰랐다. 그들을 사랑했지만 알지는 못했다. 알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196교회 묘지. 레슬리 셔스턴의 무덤. 로드니의 코트에서 떨어진 큼직한 진홍색 철쭉꽃. 거친 바람이 5월의 고운 꽃봉오리를 흔드네.



197감정을 단련해라, 조앤. 표현을 더 정확하게 해. 무엇으로부터 도망치려는 건지 확실히 정해야지.

202사람들을 사랑하면 그들에 대해 알아야 하는 건데.

204 헌신적인 엄마 노릇을 한다는 데 끌렸던 건 아닐까? 아픈 딸과 심란한 사위에게 환영받는, 매력적이고 모험적인 자신을 기대한 건 아닐까? 이 먼 데까지 달려와 주다니 정말 좋은 분이에요 같은 말을 듣고 싶어서?

204 조앤이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을 때, 두 사람은 크게 안도했다. 그들은 속마음을 숨기고 예의를 차리느라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며 붙잡았다. 하지만 조앤이 순간적으로 마음을 바꾸려는 기미를 보이자 윌리엄이 나서서 재빨리 그녀의 의지를 꺾어놓았다.



206그때 조앤의 마음속에는 옛 친구를 업신여기는 우월감이 가득차 있었다. 제가 그 여자와 다르다는 데 감사드립니다, 하느님. 그랬다. 조앤은 감히 그런 기도까지 했다. 지금 이 순간 블란치가 곁에 있다면 무엇이라도 내줄 것 같았다! 친절하고 느긋하고 너그러운 블란치. 그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 사람. 블란치를 만난 밤, 조앤은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우월감에 휩싸여 기차역 숙소에서 기도했다. 몸을 가릴 천 쪼가리 한 장 없는 것 같은 지금은 기도라는 걸 할 수 있을까?

207난 외톨이야. 완전히 외톨이야. 무시무시한 고요. 지독한 외로움. 가여운 조앤 스쿠다모어, 멍청이, 헛똑똑이, 가식덩어리, 조앤 스쿠다모어. 사막에 혼자 있네.

213내가 그대에게서 떠나 있던 때는 봄이었노라. 그 구절을 외웠을 때 로드니가 떠올랐다. 그래서 그녀는 중얼거렸다. "하지만 지금은 11월이지." 그날 저녁 로드니가 "하지만 지금은 10월이지"라고 했던 것처럼.



213하지만 이제 그녀는 알았다. 물론 당시에도 알았던 게 분명하다. 두 사람이 그렇게 멀찍이 떨어져 앉아 있었던 이유를. 그들은 차마 더 가까이 있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랬다. 그렇지 않았을까.



214상대는 머나 랜돌프가 아니었다. ··· 로드니와 랜돌프 사이에 아무 일도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녀는 눈앞에 펼쳐진 사실을 못 본 척하려고 머나 랜돌프로 연막을 피웠다. 머나 랜돌프가 레슬리 셔스턴보다 인정하기 쉽다는 이유도 있었다. 로드니가 머나 랜돌프에게 끌렸다면 자존심이 덜 상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 하지만 레슬리 셔스턴은 아름답지도 젊지도 않고 되는 일도 없는 여자였다. 지친 얼굴, 우스꽝스럽게 한쪽이 일그러지는 미소를 짓던 레슬리 셔스턴. 로드니가 그런 여자를 사랑했다고 - 정말 열렬하게 사랑해서 1미터보다 더 가까이 다가갈 수조차 없었다고 - 인정하는 것이 싫었다.



215 로드니는 대리석 묘석을 내려다보면서 "레슬리 셔스턴이 이런 차가운 대리석 밑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지독하게 이상해"라고 말했다. 그리고 진홍색 철쭉꽃이 툭 하고 떨어졌다. "피 같아. 심장의 피." 그는 말했다. ··· "모두 다 용감할 수는 없어." ··· 그러다가 로드니는 신경쇠약 증세를 보였다. 레슬리의 죽음이 초래한 병이었다. ··· 토니의 경멸에 찬 목소리. "엄마는 아빠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그녀는 몰랐다. 왜냐하면 결코 알고 시피지 않았으니까.



218로드니는 부드러운 사람이기에 그녀와 싸우지도 그녀를 억누르지도 않았다. 그 때문에 그는 세상에서 사는 동안 완전한 남자가 아니었다. 로드니·····. 난 그것을 그에게 돌려줄 수 없어. 보상해줄 수 없어. 하지만 로드니를 사랑해. 정말로. 그리고 에이버릴과 토니와 바버라를 사랑해. (하지만 충분히는 아니었다 - 그게 답이었다 -)

223그녀는 얼마나 끔찍하게 잘난체하는 인물이었던가. 사막에서 밀려들었던 날카로운 혐오감이 지금도 남아 있었다. 자기혐오. 새로이 겸손한 마음이 생겨났다.



224이제는 도마뱀들이 구멍에서 쑥 나와 그녀를 위협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을 만났고 자신을 인정했다.

228~229친구들은 제게 ‘사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어’라고 해요. 터키인, 아르메니아인, 레반트인들처럼 말이죠.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해요. ··· 조앤은 자기도 모르게 이 묘한 부인에게 매료되었다.



229혹시 자신에게만 보이는 것을 보는 중인가요? 엄청난 감정을 경험하거나 그런 감정을 지나쳐온 것 같아요. 슬픔? 아니면 엄청난 행복?



239···특이한 러시아 부인조차 마지막에는 지겨워졌다. ··· 부인이 조앤을 완전히 촌사람처럼 느끼게 했다는 점이다. 스스로를 누구와 견줘도 떨어지지 않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다독여도 소용없었다! 그 부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물론 그런 기분을 느끼는 것 자체가 몹시 바보스러웠지만.



245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자식들이 그녀를 싫어한다는 상상, 로드니가 레슬리 셔스턴을 사랑했다는 상상. ···불쾌하기 짝이 없는 모든 일. 그 상상들은 모두 사실일까? 그녀는 사실이 아니기를 바랐다. ··· 로드니, 용서해요. 난 정말 몰랐어요. 로드니, 나 왔어요. 집에 돌아왔어요. 어떤 패턴으로 할까. 어떤 것이 낫지? 조앤은 선택해야 했다. ··· 그녀는 명랑하게 말했다. "나 왔어요, 로드니. 집에 돌아왔어요."



249엄마가 여기 오겠다고 전보를 보냈을 때 전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었어요. ··· 전 기운이 하나도 없어서 별로 저항도 못했어요. ··· 사랑하는 아빠, 아빠 같은 분을 제 아빠로 두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사랑하는 바버라.



249그가 갑자기 죽는다면 조앤이 서류를 정리하다가 이 편지를 볼 테고, 아마 불필요한 고통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공연히 상처를 주고 절망에 빠뜨릴 필요가 없다. ··· 로드니는 방 한 구석으로 가서 바버라의 편지를 벽난로에 던졌다.



254"저기, 저는 코페르니쿠스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어요……"라고 (레슬 리가) 말했다.



255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어야 햇어. 로드니는 생각했다. ···그와 레슬리와 함께. 그리고 떨어져서. 고통과 가슴 타는 갈망. 두 사람은 1미터 남짓 떨어져 앉았다. 그 보다 가까우면 안전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레슬리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259"음······ 코페르니쿠스예요? 귀한 그림인가요?" 조앤은 갸웃하며 그림을 보다가 물었다.

"나도 몰라." 그는 생각에 잠긴 듯이 같은 말을 되뇌었다. "나도 전혀 모르지……"



261"그래, 당신에게는 내가 있지." 그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당신은 외톨이고 앞으로도 죽 그럴 거야. 하지만 부디 당신이 그 사실을 모르길 바라. (맨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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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7-01-11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ㅁㄴ만에 만나는 리뷰군요. 역시 명징하네요..

다크아이즈 2017-01-12 07:16   좋아요 0 | URL
리뷰랄 것도 없어요ㅠ 눈 오신다니 곰발님도 단도리 잘하고 길 나서시길요~

2017-01-11 2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2 07: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2 16: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2 09: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2 16: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2 18: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3 15: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2 18: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3 15: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3 08: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3 16: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3 17: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3 17: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3 17: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3 17: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3 2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4 1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21 09: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7-01-26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크아이즈님, 즐거운 설연휴 보내세요.
새해엔 소망하시는 일 이루는 한 해 되시길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7-02-02 15: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02 17: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02 17:2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