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 소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6
앨리스 먼로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고 추락했다가 다시 일어선 이 책의 주인공을 보며 가난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가난에도 두 종류가 있다. 물질적으로 가난한 자와 마음이 가난한 자. 전자는 여유가 생기고 상황이 나아지면 곧 해결이 된다. 하지만 후자는 자존감 때문인지 좀처럼 바뀌질 않는다. 이들은 본인의 가치를 깎아내리면서 스스로를 가둬놓는다. 뼛속까지 꽉 차있는 자기 파괴적인 성향으로 세상을 왕따시키며 소통을 거부하거나, 혹은 잘못된 방향으로 소통을 시도하다 왕따를 당하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말로가 좋지 않은 그들을 보면 참 답답하고 안타깝고 그렇다. 현대인의 질병 중 하나라고 생각했던 그것이 오래전 세대부터 존재해왔었다는 사실에 놀라며 읽었던 이 작품을 리뷰해본다.


이 책은 로즈의 성장기를 연작소설로 구성한 작품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자란 로즈는 부잣집 남자와의 결혼으로 마침내 노동 계층을 벗어난다. 그러나 중산층 생활에 환멸을 느껴 이혼을 한 뒤로 본격 나를 찾는 여행을 떠난다. 자유가 된 그녀는 여러 남자도 만나보고, 일자리도 다양하게 구해본다. 그러나 어디서도 답을 얻지 못한 그녀에게 오춘기가 찾아오기 시작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성장 배경이나 환경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또 한번 실감하게 된다. 로즈 주위의 어른들은 강압적이고 권위적이고 책임을 회피하고 조롱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집 밖에서나 전부 어른답지 못한 사람들로만 가득했다. 안 그래도 조신함과는 거리가 먼 로즈인데, 그런 어른들만 보고 자랐으니 반항 기질이 커진 게 아닌가 한다. 십 대들의 사춘기가 다 그런 거 아니냐 할 수도 있는데, 그 시대의 사회와 가정교육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고분고분하게 자란 여성들이 대부분이었으므로 로즈의 행동은 돌연변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아버지가 바라는 여성상과 한참 다른 딸이었지만 소녀는 그런 자신이 좋았더랜다. 집안일, 지성, 교양 같은 단어들은 소녀와 영 맞지 않았고, 나중에 커서 무대 위의 배우가 되어 자신을 나타내고 싶어 했다. 내숭도 없고 매사에 당당한 그녀 모습에 반한 남자와 캠퍼스 커플을 즐기며 잠깐이나마 행복에 젖은 로즈. 그러나 중산층의 남친은 로즈를 한 여자로서 좋아했다기보다, 그녀의 가난함을 자신의 부요함으로 덮어줄 수 있다는 자기만족감에 빠져있었다. 그는 로즈가 아닌 로즈의 가난함을 사랑스러워했다. ‘코페투아왕과 거지 소녀‘라는 그림 속의 두 사람이 자신들과 닮았다며, 은연중에 계급을 확인시켜준 그였다. 왕과 거지의 신분이 하늘과 땅 차이인 것처럼, 그와 그녀의 신분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각인시키며, 제멋대로인 그녀를 본인 아래 두고 싶어 했다. 로즈는 계급장 가지고 지지리 궁상을 떨어대는 애인한테 까칠한 척 해보지만, 결국 남자의 빽을 이용해 출세하는 비겁한 사람이 되기로 한다. 여성의 가난이 사회의 걸림돌이라는 사실을 알면 알수록 좋든 싫든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자신과 집안을 경멸하는 오만한 남자일지라도 말이다.


이혼 후에 방송국 교직원이 된 그녀는 남들에게 기득권층이라는 말을 듣는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신분이 상승되어있었고 그에 맞게 형편도 나아졌지만 변한건 없었다. 어느 한 곳에 좀처럼 마음 두지 못하는 데다가, 남들과 어울릴수록 오히려 고립되었고 그래서 두려웠다. 마음의 가난에서는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 자신을 찾기 위해 자식 교육에도 전념해보고, 꿈이었던 배우로도 살아봤지만 마음은 늘 곤고했다. 그 허전함을 남자들과의 관계로 채우기 시작했다. 제 맘에 들면 바빠서 보기 힘든 남자도, 애 딸린 유부남도 가리지 않았다. 결혼 이후로는 모든 편마다 남자 만나고 데이고 슬퍼하는 내용만 나온다. 외도와 불륜, 거짓말과 이별, 만남과 인연의 반복된 내용이 분량의 절반이어서 실망했다. 새 애인과의 관계가 어긋날 때마다 구차해지는 그녀가 싫어졌다. 야무지고 당돌했던 소녀는 어디 가고, 오로지 남자에 죽고 못 사는 금사빠로 타락해가는 게 안쓰럽다 못해 지긋지긋했다. 여러 번의 경험으로 서서히 달라질 줄 알았는데 계속 제자리걸음만 하는 중이다. 성장소설치고 진도가 무진장 느린 편이니 참고하시길.


로즈는 언제나 두 가지 마음을 지녔다. 사랑하면서도 거부하고, 좋으면서도 싫은 티를 내고, 간절히 원하면서도 바라지 않았고, 기대하면서도 피하고 싶어 했다. 나는 그것이 결코 이중적이거나 모순돼 보이지 않았다. 얻게 된 행복 안에 부담도 들어있다면 차라리 행복하지 않는 게 낫기 때문이다. 그녀 또한 자신의 처지와 입장을 잘 알기에 제한된 영역 안에서 계속 머물려고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왕이 거지에게 잠깐의 은혜를 베푼다 한들 거지의 신분은 달라지지 않으므로. 결국 로즈는 먼 길을 돌아서 고향을 찾아간다. 그리고 실패와 상처투성이인 자신과 닮은 이웃들을 만나면서 자신을 발견하고 또 용서를 구한다. 한때는 높은 계급과 사회적 신분이 곧 자신을 나타낸다고 믿고 살았던 그녀였다. 그러나 해답은 나와 닮은 사람들에게 있었다. 그 속에서 평안을 느끼고 부담 없는 행복도 누릴 수 있었다. 나는 이것을 마음의 가난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보았다. 자격지심이 생기지 않고, 두 마음을 갖지 않게 될 때 마주하는 진짜 나의 모습. 우리는 온전한 나를 드러낼 수 없어서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가면 덕분에 자신이 보호받는 기분이 들겠지만, 나중에는 가면이 시키는 대로 끌려다니는 자신을 보게 된다. 이제 그만 가면을 벗고 마음의 가난에서 벗어나는걸로 하자.


댓글(5) 먼댓글(0) 좋아요(4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20-07-18 1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가난한 자, 즉 마음에 병이 든 자가 가장 가엾다고 여깁니다. 마음 따뜻한 사람을 만나서 치유되는 경우가 있어요.

물감 2020-07-18 13:57   좋아요 1 | URL
맞아요. 한번 닫힌 마음은 열기도 힘들지만, 열렸을 때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는 게 싫어서 더 꽁꽁 싸매기도 하죠. 상처받는것도 치유되는것도 다 사람 때문이라는 게 아이러니해요.

나비종 2020-07-31 0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파지는 것처럼 물질적인 가난은 종종 마음도 가난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물질적으로 나아지는 속도를 마음이 따라가지 못해 가난의 관성으로 한동안은 어지러움을 느낀다고요. 주인공 로즈도 가난으로부터 완벽하게 벗어났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보여집니다.

환경의 중요성만큼 기질의 차이도 중요하다는 점도 생각했어요. 물질적으로 가난한 이들이 전부 같은 반응을 보이는 건 아니니까. 기질의 차이로 마음의 가난이 만들어지는 걸까요.

패트릭의 사랑에 대한 물감님의 관점에 공감합니다. 자기만족감 내지는 로즈의 가난함을 사랑스러워했다는 점이요.

그녀의 결핍은 어디에서 온 걸까요. 어린시절 부모님과의 비뚤어진 관계로 형성된 공허를 다른 남자들과의 관계로 계속 메우려했던 걸까요. 치유는 원인으로 되돌아가서 출발하는게 맞나봅니다. 로즈가 새어머니를 돌보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비로소 가난으로부터 벗어났다는 느낌이 들었으니까요.

재미는 없었지만 ‘가난‘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던 시간이었어요.~^^*

물감 2020-07-31 08:52   좋아요 1 | URL
물질적으로 가난한 자는 여유가 생기면 해결 된다고 썼지만 확실히 완전하게 벗어나긴 어려운거 같아요. 어릴때보단 지금이 더 잘 살고 있음에도 여전히 비싼옷을 못사겠고, 비싼 음식을 잘 못시키겠더라고요^^;; 어중간한 부가 아닌 진짜 부자가 되면 좀 다르려나요 ㅎㅎㅎ

기질의 차이까지는 생각을 못했는데, 생각해보니 누구는 악바리처럼 벌어서 성공가도를 달려가기도 하고 누군가는 적당한 삶에 안주하기도 하는걸 보면 정말 다르긴 하네요. 어쩌면 환경보다도 누군가와 지냈느냐가 더 영향이 크지 않을까 합니다. 똑같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나를 이해하고 존중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라고 생각이 드네요. 아마도 이 부분에서 말씀하신 결핍이 생겨나지 않았을까요? 평생을 쌍방이 아닌 일방의 관계만으로 살아온 로즈여서 어쩐지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해요. 화려한 연예인들도 친한 친구가 없어서 외롭다는 인터뷰를 자주 보고 듣는데, 이렇게 관계맺는 일에 어려움을 느끼는 부류는 겁나서 시도조차 안하거나 로즈처럼 잘못된 관계형성을 맺으려 하는걸 종종 봤습니다. 그나마 로즈는 나름의 답을 찾은듯해서 다행이지만 현실에서는 대부분 아웃이죠 뭐...

여튼 이번달도 아슬아슬하게 클리어하셨군요! 저도 읽으면서 그저그랬던 책이라 나비종님 걱정을 했어요 ㅎㅎㅎ 7월도 수고 많으셨어요~ 요즘 날도 습하고 비도 자주오고 해서 독서활동하기 영 좋지 않은데 말이죠... 다음 도서 선정은 좀더 재미있는 작품들을 선별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파이팅 넘치는 8월 되십시오^^

나비종 2020-07-31 10:28   좋아요 1 | URL
요즘 살까 말까 망설이다 안산 물건이 있거든요. 흰 양말이예요. 이게 오래 신다보면 발목이 늘어져서 운동화 신고 걷다보면 양말을 질겅질겅 밟게 되거든요. 그렇게 병신이 된 양말을 한 짝씩 버리다보니 3개가 남은 거예요. 더 살까 말까 그때부터 갈등이 시작되었어요.
출근길을 걷다보면 ‘명품 양말 5개 만 원‘이란 문구를 마주치게 되거든요. 어떻게 생겨먹어야 양말이 명품이 되는 걸까요. ㅋㅋ 결국 못샀어요. 비.싸.서. 언젠가 5개에 5천 원이란 문구를 본 것 같은 거예요. 저와 타협을 했죠. 2개 남을 때까지 지내보자고.
책은 몇 만원어치 휙 지르고 부모님께는 몇 십만 원을 써도 아깝지 않는데 비싼 물건은 잘 못 사겠어요. 물감님 말씀처럼 진짜 부자가 되면..ㅎㅎ 달라질까요?^^

공감해요. 물질적인 환경보다 관계성 환경이 사람의 성장 과정에서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저는 최상의 환경에서 자라났네요.ㅎㅎ 그게 나이가 들면서 점점 위력을 발휘하나 봅니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질적인 부는 상한선이 있는 걸까요. 어느 한도 이상이 되면 그때부터는 정신적인 부가 사람의 마음을 채워준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질은 밖에서 오지만 정신은 안으로부터 만들어지는 거라서 전적으로 각자의 몫이라고 보아요.

이번달도 아슬아슬^^; 온라인/ 오프라인이 병행되는 환경이 보통 때보다 배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나봐요. 오밤중까지 겁나 바빴답니다. 밤 12시, 1시에 학생 문자도 수시로 오고 저녁 때도 온라인 수강 독촉 문자 보내고 눈뜨고 있는 모든 시간이 일로 채워지더라구요.ㅠㅠ

세상에 의미없는 책은 없다고 봐요. 참 좋았던 책에서는 책안에서 의미를 무더기로 찾으면 되고, 그저 그런 책에서는 그 책을 바라보는 제안에 담겨있던 의미를 찾으면 되는 거니까요. 그러니 도서 선정에 대한 부담은 내려놓으셔도 좋아요. 좋았으면 같이 감탄하고 그지 같았으면 같이 까면 되잖아요.ㅋㅋ 드라마 <도깨비>가 생각나네요.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물감님께 이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책이 좋아서, 책이 좋지 않아서, 책이 적당해서... 선정해주신 모든 책이 좋았습니다~~~ㅎㅎ
 
엣지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2-13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2
제프리 디버 지음, 안재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시나 빨간 책의 징크스는 그 대단한 제프리 디버조차도 피해 가지 못했다. 디버의 광팬이지만 이 책을 포함해 스탠드얼론 작은 대부분 그저 그런 수준이다. 이건 시리즈물을 쓰는 작가들의 고질병 같다. 마이클 코넬리, 마이클 로보텀, 요 네스뵈 등등 유독 스탠드얼론에서 약한 모습을 보인다. 재료도 좋은 걸 가져다 쓰고, 조리법도 나쁘지 않고, MSG도 적당히 들어가는데 왜 결과물은 실망스러울까. 이런 기분을 느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물론 출판사들이 과대광고하는 책들보다야 훨씬 낫지만 워낙 기대치가 높았던 탓에 아쉬움이 남는다. 아무튼 재미가 없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있는 것도 아닌 매우 어중간한 기분으로 완독했다. 이제껏 디버 작품은 편애한다고 느낄 만큼 극찬의 평을 남겼었는데, 드디어 비평을 날릴 차례가 온 것 같다. 유후후-


정보 추출가, 일명 캘꾼이 한 경관의 가족을 공격해온다. 경호팀은 가족들을 보호함과 동시에 캘꾼을 잡고자 하나 번번이 실패한다. 법무부는 이번 사건이 테러와 엮여있다 판단했고, 그래서 더더욱 캘꾼이 찾는 정보가 무엇인지 알아내야 한다. 거기다 캘꾼을 고용한 청부업자, 몸통도 잡아야 한다. 여러모로 바쁜 주인공에게 임무 중단이 내려지고 옷까지 벗어야 하는 상황에 이른다. 이대로 상층부의 말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이 개똥같은 판을 뒤집을 것인가.


솔직히 스릴러치고 흔한 플롯이라 설정 자체로는 매력을 못 느꼈다. 아마 디버 자신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작품의 빈약함을 보완하기 위해 언제나 악역 캐릭터에 승부를 걸어왔다. 그래서 디버 작품의 액기스는 악역의 비중이 80% 이상을 차지한다. 암튼 이번에도 화려한 악의 등장으로 스토리에 활력을 불어넣어주셨다. 이번 프로 범죄자는 정보를 캐내기 위해 모서리, 즉 대상의 약점을 이용한다. A의 정보를 캐내려 A의 약점을 직접 건드려도 되지만, B나 C의 약점을 잡아 이용한다. 그러면 B, C들이 캘꾼대신 범죄를 저질러주기도 하고, 미끼가 되어주기도 하고, 경호팀에 혼선을 주기도 한다. 누구나 꼼짝 못 하게 만드는 약점이란 바로 인질들의 가족을 위협하는 것이다. 그래서 캘꾼에게 걸리면 누구라도 복종하도록 되어있었다. 정말 수많은 범죄자를 봐왔지만 이번 범인은 악질 중에 악질이었다. 게다가 공범들까지 있었으니 참 어지간히도 어려운 상대였다. 매번 이렇게 초 신선한 적들을 창조해내는지, 작가의 뇌구조가 알고 싶다.


지금껏 디버는 범인과의 대결구도 플롯을 고집해왔다. 주인공과 범인의 교차 시점으로 미친 속도감, 불타는 심리전, 넘치는 텐션을 잔뜩 보여주던 기존작들과 다르게 이번 작품은 주인공 일인칭 시점에 가까웠다. 카메라 열 대로 촬영하던 방송이 카메라 한 대로 줄어버리면 당연히 퀄리티가 떨어지게 되어있다. 그래서 지상파 중계방송에 가깝던 디버의 스타일은 유튜브 비제이의 일인 방송으로 전락했다. 비제이들은 혼자 방송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매우 분주하다. 그처럼 이 책의 주인공도 혼자 이끌어가느라 쉴 새 없이 바쁘다. 그러다 보니 스토리는 점점 입체감이 떨어지고, 작가의 전매특허인 디테일한 묘사들은 투머치가 돼버렸다. 그 굉장한 악역의 플레이나 매력도 일부만 보여주었고, 흐름을 비틀기 위해 넣었던 조/주연들의 서브 내용들도 흐지부지한 마무리로 끝나곤 했다. 주인공을 제외한 모든 조각들이 하나 되지 못하고 따로 놀고 있어 몰입이 여러 번 끊어졌다.


대신에 주인공의 캐릭터 설정만큼은 작가가 영혼을 갈아 넣었다. 경호팀의 지휘를 담당하는 그의 역할은 캘꾼의 타깃들을 보호하고 안전장소로 대피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캘꾼에게 죽은 스승을 생각하면 어떻게든 캘꾼을 잡고 싶어 했다. 상황에 맞게 융통성을 발휘하려는 현장팀과 달리 법무부는 매뉴얼대로만 움직였고, 주인공이 범인을 쫓는 게 개인적인 욕심이라고 여겼다. 본인도 스승의 복수를 위한 집착이란 걸 어느 정도는 인정했다. 그럼 나머지는 무엇이냐. 보드게임을 좋아하는 그의 성향 때문이었다. 카드, 체스, 퀴즈, 퍼즐 같은 게임 매니아인 주인공은 캘꾼이 자신처럼 이 사태를 하나의 게임으로 생각하고 있고, 자신들을 게임 말처럼 플레이 중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모든 게임에는 룰이 있고, 그 룰에 따라 역전도 가능하고 체크 메이트도 가능하다. 눈앞에 난관이 닥칠 때마다 게임 룰을 적용하여 판을 뒤집으려는 시도가 참 새로웠다. 내가 보드게임 세계를 잘 몰라서 그냥 넘긴 구간이 많았다는 사실만 빼면 말이다. 여튼 냉정한 경호관에게 감정이 생겨 이성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재미있어 끝까지 읽었던 작품이다. 궁시렁 대면서도 디버의 스탠드얼론 작을 벌써 90% 읽었다. 디버 작품 도장 깨기도 어느덧 끝나가는구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일런트 페이션트
알렉스 마이클리디스 지음, 남명성 옮김 / 해냄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치나 외교 쪽 못지않게 심리전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 가정이다. 그래서 가족을 소재로 한 심리소설은 첩보물만큼이나 넘쳐난다. 현실에서도 비극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빈번하게 발생한다. 독자들이 유독 심리소설에 열광하는 건 아마도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개연성 있는 막장 시나리오를 은근히 바란다는 거다. 그만큼 더 임팩트 있고 자극적인 걸 원한다는 뜻이겠다. 그런 면에서 심리 스릴러는 대중들이 원하는 조건을 모두 다 갖춘 퍼펙트 한 장르이다. 각종 비밀과 음모, 복잡한 과거, 잘못된 만남, 불편한 진실, 배신감과 수치스러움 등등 ‘막장‘하면 떠오르는 모든 게 들어있다. 그러면서 개연성도 있고 작품성도 갖췄다. 특히 작은 성냥불 하나가 점점 커져서 온 집안을 태워버리는 과정의 리얼리티가 압권이라 할 수 있다. 아무튼 이 장르는 뭐랄까, 읽을 때마다 알 수 없는 죄책감도 든다. 불안해하는 타인의 심리 상태를 보면서 스릴을 즐기는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무슨 변태 사이코패스같이 느껴져서 말이지. 나 같은 기분을 느껴본 독자가 또 있을지 모르겠다만, 소설인데 재미있으면 그만 아니냐라고 생각하기엔 쪼까 거시기 혀...


남편 얼굴에 총탄을 갈긴 아내는 실어증에 걸리고 정신병원에 들어간다. 심리상담사인 주인공은 모두가 포기해버린 이 환자를 치료하기로 한다. 환자의 과거를 통해 여러 가지 불행을 알게 되었지만 살인을 저지르기엔 불충분해 보인다. 남들이 말한 대로 그녀가 했던 말들이 전부 정신 나간 헛소리에 불과한 걸까. 지금의 그녀는 맛이 간 연극을 하는 것일까. 서로가 불신한다면 어떻게 심리치료를 한단 말인가.


심리 스릴러는 일반 스릴러보다는 스릴감이 약해도 그러려니 할 수 있다. 대신 인물 간에 밀당은 정말 잘해줘야 한다. 그런데 이 책의 인물관계는 전부다 일방통행이다. 매번 오른쪽은 으르렁대고 왼쪽은 깨갱거려서 팽팽한 기싸움은 볼 수 없었다. 물론 주인공의 일인칭 시점으로 다룬 심리소설이 없지는 않으나, 대개 그런 경우는 복합장르를 다루어서 부족함을 채우곤 한다. 이 책도 나름 복합장르를 시도하긴 했다. 남편을 살해하고 벙어리가 된 아내는 미스터리 요소로 딱이지만 이전까지의 부부 이야기는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다. 건물 밖에서 아내를 구경하던 괴인의 등장으로 호러 분위기가 되었으나 정신병자 취급당한 그녀였기에 괴인의 존재는 먼지처럼 떠나갔다. 또한 아내의 주변 남자들과 복잡한 N각 관계까지 형성했지만 하나같이 엑스트라처럼 조용히 퇴장한다. 아 진짜 뭐 이러냐. 정말 용두사미라는 표현조차 아깝다잉.


두 번째로 아쉬운 건 주인공의 동기 부족이다. 심리상담사로써 환자의 실어증을 고쳐주고 싶은 건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런데 주인공은 투철한 사명감이나 선한 사마리아인의 마음으로 치료를 자원한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본인의 커리어를 위함도 아니고, 유명세를 얻으려는 것도 아니었다. 무슨 목적이 있기는 할 텐데 도무지 언급된 장면이 없다 보니 점점 그러려니 하게 된다. 두 남녀는 어릴 때 가족들에게 상처 입고 트라우마가 생겼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동병상련의 마음이 그녀에 대한 집착으로 가는가 했는데 그것마저도 아니었다. 게다가 마리화나로 오락가락하는 주인공이었기에 어디까지가 본심인지 알 수 없었다. 이렇게 뚜렷한 동기가 배제되어 있다 보니 그냥 그런갑다 하고 읽게 된다. 팥이 반만 들어있는 붕어빵을 먹는 기분이랄까.


주인공이 환자를 치료해가는 장면과, 바람난 아내에 대한 이야기가 교차되며 나온다. 그래서 낮에는 세상 친절한 얼굴로 병원에서 열 일하다가 밤이 되면 아내 문제로 골머리 앓는 중증 환자가 된다. 이렇게 괴로운데 매일매일 멀쩡하게 출근을 하고 환자를 상담하는지 좀 의아했는데 그게 다 독자를 속이기 위한 연출이었다. 궁금하면 직접 읽어보셔도 좋겠지만, 추천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여하튼 환자의 주변인들을 조사하면서 그녀의 침묵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친구인 화랑 대표는 그녀의 미술 재능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았고, 사촌 동생은 도박으로 탕진하고서 돈을 꿔갔고, 남편의 형은 그녀를 성추행했고, 부친은 모친 대신 그녀가 죽어야 했다며 폭언을 일삼았다. 이 정도면 정신병 걸릴만하겠다 싶었지만, 어째서 그녀는 적군이 아닌 유일한 아군인 남편을 쏴 죽였나. 얼마나 큰 배신감이 들었길래 그랬는지 아무리 추측해봐도 잘 모르겠더라. 위에서 말했듯이 심리전이 전혀 없는 작품이라서 추측이 불가합니다요. 아 놔.


등장인물마다 사연을 갖게 하여 스토리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점은 칭찬한다. 그런데 그렇게 비중 있는 역할들이 혜성처럼 등장했다가 어떤 매듭도 없이 사라진다. 환자의 친구는 병문안 오는 것을 굉장히 꺼려 했는데 왜 그런지에 대한 설명이 없었고, 남편의 형은 그녀가 죽어가자 갑자기 나타나 울며불며 속마음을 고백하는데 완전 뜬금없었고, 수간호사와 문제적 환자의 불미스러운 거래 관계의 뒤 내용도 없었고, 무엇보다 바람난 주인공의 아내의 뒷이야기가 뚝 잘린 게 가장 당황스러웠다. 아니, 메인 요리가 중요한 건 맞는데, 그렇다고 밑반찬을 막 만들어서야 되겠습니까. 그건 손님에 대한 성의가 없는 겁니다요. 이제 마이클리디스는 노맛집으로 등극되었습니다. 원래 맛집보다 노맛집이 더 기억에 남는 법이에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원 (양장)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한때 내가 이 세상에 사라지길 바랬어.
온 세상이 너무나 캄캄해 매일 밤을 울던 날.
차라리 내가 사라지면 마음이 편할까.
모두가 날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나 두려워…

아름답게 아름답던 그 시절을 난 아파서,
사랑받을 수 없었던 내가 너무나 싫어서,
엄마는 아빠는 다 나만 바라보는데,
내 마음은 그런 게 아닌데 자꾸만 멀어만 가… 

< 볼 빨간 사춘기 - 나의 사춘기에게 >


내가 요즘 가장 즐겨듣는 곡이다. 꼭 내 얘기 같아서 온몸의 신경이 멈추고 회로가 마비되는 기분이다. 힘든 가정집 아이들은 일찍 철이 들다 보니 언제나 기가 죽어있다. 나 역시도 그랬다. 친구들이 당연하게 누리는 용돈과 학원과 쇼핑과 문화생활들이 내게는 엄청난 사치였다. 차비라도 아껴보려 초중고를 다 걸어 다녔고, 음식을 남긴다는 건 상상조차 못했으며, 생일 선물 얘기는 꺼내본 적도 없었다. 불만을 가진 적도 없는 걸 보면 그렇게 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나 보다. 좋아하는 걸 얘기하면 나는 철없는 놈이 되었고, 투정이라도 부리면 세상에 둘도 없는 불효 자식이 되곤 했다. 그래서 하나둘씩 포기하며 살다 보니 커서도 내가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 가장 어려워하는 건 ‘뭐 먹고 싶냐‘라는 질문이다. 선택권 없이 주는 대로만 먹어서일까, 지금도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은 없다. 먹는 게 남는 거라지만 나는 식비로 나가는 돈이 너무나 아깝다. 지금의 내 모습들이 아마도 어릴 때 충분한 케어를 받지 못해서가 아닐까 한다. 이 책을 읽으며 위의 노래가 떠올랐고, 나의 소년 시절이 생각나버렸다. 아무런 꿈도 없이 저절로 성인이 되고 사회에 버려지는 게 두려웠던 과거가.


완전체 엄친딸인 언니는 화재 속에서 아기였던 유원을 구하고 명을 다했다. 이 사건은 지금까지도 회자되었고, 사람들은 유원을 통해 죽은 언니를 생각했다. 그렇게 유원에게는 언제나 죽은 언니가 따라다녔다. 살아있는 자신은 없는 존재였고, 죽은 언니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언니 자랑만 하는 모두가 지겨워 침묵을 택한 유원. 언제쯤이면 언니를 대신하는 삶이 아닌 온전한 나 자신의 삶을 살게 될까.


언니가 아파트 창밖으로 떨어뜨려준 아기 유원을 맨몸으로 받아낸 아저씨는 사회의 영웅이 되었으나 다리 한쪽을 평생 절어야 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유원이지만 이야기는 이 아저씨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매번 사람 좋은 얼굴로 집엘 찾아와 걸핏하면 신세 지고 돈을 꿔가는 아저씨. 생명의 은인이라는 고마움과, 딸 때문에 절름발이가 되었다는 죄책감에 간이고 쓸개고 다 주려는 부모님. 그러나 유원의 눈에는 깨갱하는 부모가 답답했고, 자꾸 선을 넘는 아저씨가 불편했다. 악의가 없는 것도 알고, 그를 외면할 입장도 아니기에 참아왔지만 아저씨는 더 이상 은인이 아니라 불청객이었다. 며칠씩 집에서 머물기도 하고, 부모가 없을 때 집에서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모든 게 내 덕분이라는 듯한 생색을 내는 아저씨를 경멸했다. 차라리 약점을 잡아서 괴롭히는 게 더 나을 지경이었다. 무엇보다 이 상황과 관계가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을 거란 사실이 소녀를 절망케 했다. 딸의 불편함을 시종일관 모르는 척하는 부모님은 대체 아군일까 적군일까.


기댈 곳이 없는 건 아니었다. 죽은 언니의 절친은 유원을 친동생처럼, 부모님을 친가족처럼 챙겨주었다. 언니 친구를 많이 의지하고 따랐지만, 그 언니마저도 유원의 얼굴에서 죽은 언니를 찾고 있었다. 언니 친구가 임신을 하자 유원은 아기가 태어나면 누구보다도 사랑해줄 것을 약속한다. 그 이유가 너무 슬펐는데, 죽은 언니를 모르는 사람은 그 아기밖에 없기 때문이라 했다. 언니라는 절대적인 존재에 얼마나 시달렸으면, 정말 오죽했으면 그런 생각을 다 할까. 자신의 인생은 의미를 상실한지 오래였고, 이제는 죽은 언니의 삶을 대신해서 살아주고 있는 유원이었다. 왜 모두가 떠난 사람을 계속 붙잡아두려 하고, 산 사람은 그 자체만으로 바라봐 주질 않을까. 제 잘못은 하나도 없었건만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주변인들의 태도가 소녀를 죄인으로 만들었다.


언니 친구와의 거리가 생긴 뒤로 다시 혼자가 된 유원은 수현 남매를 만나면서 좁았던 시야가 넓어지기 시작했다. 공부도 못하면서 당당했고, 하고 싶은 말은 절대 참지 않았고, 봉사활동에만 에너지를 쏟는 수현. 매사에 무표정이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을 가졌고, 연기자가 되어 다양한 사람들을 이해하고 싶다는 정현. 여태 자신은 방관하기만 했는데 수현 남매는 어떻게든 나아가려고 노력 중이었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자신과는 전혀 달랐던 둘을 보며 알게 모르게 자극을 받은 유원은 알지 못했다. 이 순간이 곧 송충이에서 나비로 변하는 순간이란 것을. 평생을 송충이로 살아온 소녀는 제 몸에 돋아나는 날개가 신기하기도 하고 혼란스럽기도 했다. 복잡 미묘한 마음에 부정하고 외면했던 새 감정을 조금씩 천천히 받아들였고, 어느새 높이 비상할 준비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하여 집안을 쥐락펴락하는 아저씨에게 솔직한 마음을 전했고, 질긴 인연은 그렇게 끝이 났다. 소녀의 첫 비행은 대성공이었다.


성장소설의 주인공들은 어떤 식으로 성장하는지 아시는 분? 정답은 롤모델을 잘 만나야 한다. 누군가처럼 되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뒤따라오는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이 생겨난다. 죽은 언니의 친구를, 수현과 정현을 통해 현실을 타개하고 세상 수렁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게 된 유원.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바뀌고 싶다면, 변화를 원한다면 움직여야 한다. 백날 시켜서 하는 행동이 아닌, 스스로 인식해서 하는 행동이 개혁을 일으킨다. 여하튼 너무 잘 읽었다. 솔직히 아몬드보다 훨씬 낫다. 지극히 청소년 문학이면서 전 연령층을 향한 이야기였다. 그 시절을 지내온 모두가 겪었던 고민과 감정들로 도배된 낡은 방속에 있다 나온 기분이다. 사랑 노래보다도 이별 노래가, 희망의 노래보다도 위로의 노래가 더 와닿듯이 주인공의 결핍과 고립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서 더 와닿고 공감이 되었다. 애잔하고 아련한 이 밤, 볼 빨간 사춘기 노래나 듣고 자야겠다.


※ 출판사에서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베니스의 상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6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셰익스피어 문학을 읽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이게 다 독서모임 덕분이다. 이상하게도 고전문학은 읽고 나면 내가 지성인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래서 난 지금 스스로가 너무 대견스럽고 기특하다. 가끔은 이런 자화자찬도 필요하다고 합리화해본다. 셰익스피어가 어떤 사람인지는 모른대도 그 이름을 못 들어본 사람은 없지 않을까. 간단히 소개하면 수많은 시와 극을 쓴 영국의 극작가인데, 천오백 년대에 발표한 그의 작품들이 지금까지도 연극과 뮤지컬로 재탄생하는 걸 보면 거장 중에 거장이 틀림없는 듯. 이 책은 극단 배우들의 대본집이다. 그래서 인물들의 대사 외에는 기타 문장이 없다. 극을 공연이 아닌 대본으로 읽는 게 얼마나 재밌겠나 싶어 큰 기대를 안 했는데 의외로 재미있게 읽혔다. 역자에 말에 따르면 셰익스피어 작품은 번역의 레벨이 매우 높다고 한다. 그럼에도 읽기 수월하게 번역해준 덕분에 어려움 없이 읽었다.


내용은 크게 두 가지이다. 베니스의 상인이 친구의 보증을 서주고 친구가 유대인에게 돈을 빌린다. 그러나 상인이 갚지 못하게 되자 유대인은 차용증서대로 상인의 살을 1파운드 가져가기로 한다. 친구가 돈을 두세 배로 갚겠다고 해도 유대인의 마음은 강경하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상인에게 받았던 멸시와 천대를 드디어 갚아줄 기회가 왔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인 상인과 친구들은 유대인의 무자비와 잔인성을 비난했다. 분명 절대 봐줄 생각이 없는 유대인의 태도는 냉혈하고 비열하다. 하지만 그를 이렇게 만든 건 기독교인들이었다. 그들은 성경 말씀을 인용하면서까지 유대인을 욕했지만 정작 자신들은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지 않았다. 모두가 악이라 칭하는 유대인이 기독교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자칭 선이라 믿는 기독교인이 죄를 뉘우칠 줄 모르는 이 모순은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선과 악의 입장은 정해져있지만 그 경계가 모호하므로 어느 한쪽만 손을 들어줄 수가 없는 상황이다. 이렇게 무너진 선과 악은 주위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는 가해자가 되는 뉴스가 매일 보도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법보다 빠른 주먹을 시행하는 조폭의 편을 들기도 하고, 어처구니없는 판결로 배신감 들게 하는 판사를 욕하기도 한다. 이게 다 잘못된 행동일까.


다른 내용은 벨몬트의 상속녀가 공개 구혼 자리를 마련한 것. 부친의 유언에 따라 복불복 상자 고르기에서 당첨된 자에게 운명을 맡겨야 한다. 그렇게 신세한탄하며 좌절하는 그녀를 쟁취한 용사님은 어이없게도 상인의 친구였다. 아니, 상인이 그토록 경멸하던 유대인에게 사채를 쓰게 해놓고 지는 여자를 만나러 가? 지 때문에 누구는 몸에 바람구멍 나게 생겼는데? 당장 손절해도 모자랄 놈이지만 사랑만큼이나 우정을 중요시했던 셰익스피어는 상인과 친구의 막장 브로맨스를 가지고 시청률을 최대한 뽑아내셨다. 상인에 대한 친구의 우정은 법정에서 절정을 찍는다. 아내보다도 친구가 더 중요하다고 하질 않나, 아내의 절대반지를 망설임 없이 판사에게 바치질 않나. 그 광경을 다 보고도 넘어가 준 상속녀는 진정 대인배가 아니라 지지리도 남편 복 없는 콩깍지녀에 가까웠다. 하긴, 그 어려운 복불복 테스트를 멋지게 풀었으니 반할 만도 하겠지. 어쩐지 이 작품은 사랑도 그렇고 우정도 그렇고 전혀 낭만적이지가 않다.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겠지만요.


결국 재판에서 유대인은 자멸하고 상인은 살아났다. 처음부터 정해진 결말이었지만 찝찝함이 남는 승리였다. 판사가 준 기회들을 죄다 뿌리쳤으니 자업자득 아니냐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교도 취급을 받아온 유대인의 사정을 생각한다면 그의 태도가 마냥 미련하다고 볼 수만은 없다. 오히려 그동안 당한 게 얼마나 억울하면 저럴까 싶었다. 그리고 아무리 해피엔딩이라지만 유대인의 증오가 베이스인 이 작품이 희극으로 분류되는 게 맞는지도 의문이다. 아무튼 짧은 분량이지만 셰익스피어의 철학도, 도덕관도, 스타일도 충분히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가장 위대한 극작가라는 타이틀이 괜히 붙은 건 아닌 듯.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비종 2020-06-14 2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전문학은 종갓집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씨간장 같은 이미지가 그려져요. 여러 가지 응용 버젼이 펼쳐질 수 있기도 하지만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가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이게 바로 원조 클라쓰다~! 이런 거요.ㅎㅎ

잠깐, 딴지! 베니스의 상인이 친구의 보증을 서준 건 맞지만 유대인에게 돈을 빌린 건 친구라. 두 번째 단락의 두 번째 문장은 ‘베니스의 상인이 유대인에게 돈을 빌리는 친구의 보증을 서준다.‘라 쓰는 게 적합할 것 같습니다.^^;
유대인과 기독교인의 대립을 보면서 물감님 말씀대로 모순점을 느꼈습니다. 절대선과 절대악은 존재하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선과 악이 실은 매우 주관적일 수 있다는 점도 생각했습니다. 대다수에게 선이 되는 것을 선이라 칭하지만 그게 반드시 100% 옳은 것이라고 말하지는 못할 것 같아서요.

바람구멍 ㅋㅋㅋ 빵 터졌습니다~ ‘막장 브로맨스, 시청률, 절대반지, 지지리도 남편 복 없는 콩깍지녀‘ 물감님 글의 매력이 세 번째 단락에 듬뿍 담겨있네요. 글을 읽다 오랜만에 웃어보았습니다.ㅎㅎ
근데 복불복에서 은이 안되는 이유, 납득이 가시는지요? 제 리뷰에도 썼는데 정확하게 잘 모르겠어서요.^^;;

저도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게 과연 희극일까 하구요. ‘역사‘의 서술에 대한 관점이 생각났습니다. 역사란 강자의 기록이죠. 강자에게는 정복이지만, 약자에게는 약탈당하여 기록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다는 점입니다. 신대륙의 발견과 선주민의 피바다 뭐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뭔가를 판단하는게 조심스러워져요. 우린 너무 쉽게 판단하고 단정지어버리는 게 아닌가 해서요.^^

물감 2020-06-14 22:01   좋아요 1 | URL
원조 클라쓰! 적절한 표현입니다 ㅎㅎㅎ 지적해주신 내용도 수정했어요!
어쩌면 선과 악은 동전의 양면이나 다름 없지 않을까요. 우리가 바라보는 공산주의도 그 나라들에겐 선이고 정의일테니까요. 말씀대로 절대선, 절대악은 없을지도 모르겠어요.

사실 저는 세 상자의 대한 해석이 잘 와닿지 않아서 휙 넘겼어요 ㅋㅋㅋㅋㅋ 이 자리에서 은에 대해 생각좀 해볼까요? ‘나를 선택하는 자는 얻기에 합당한 만큼의 것을 얻으리라.‘ 여기서 키포인트는 합당하다는 건데, 귀족들은 그녀를 얻으러 왔다기 보다 그녀의 빽을 보고 왔으므로 합당치 못한게 아닌가 합니다. 그렇기에 얻을 것도 없다는 결론이 제 생각입니다. ^^

그런 말 있잖아요?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그래서 이 작품은 비극도 되고 희극도 되는 게 아닐까요? 약자로 살아온 유대인이 단 한 번 강자가 된 것인데, 만약 그의 승리로 끝났다면 이 책은 강자의 기록이 되는 걸까요? 이 역시도 쉽게 판단하기 어렵네요... ㅎㅎ

여튼 6월은 가뿐히 클리어한 것 같아 기분이 좋네요. 올해는 어쩐지 휴가다운 휴가도 못 즐길거 같아요. 여유가 많이 생기면 실컷 독서할 수 있겠네 싶지만 막상 그렇게는 안되네요. 그냥 원래 페이스나 유지해야겠어요 ^^

나비종 2020-06-14 22:20   좋아요 1 | URL
아!!! 물감님의 ‘그녀의 빽을 보고 왔으므로‘ 덕분에 ‘그림자‘의 의미를 이제야 정확하게 알겠네요ㅎㅎ
‘그림자에 입 맞추는 자들은 그림자의 축복만을 받는다.‘의 의미요. 그림자란 배경이었군요~^^

물감 2020-06-14 22:35   좋아요 1 | URL
그렇죠. 부친은 ‘상속녀‘가 아닌 ‘딸‘을 바라봐주는 남편감을 찾아주기위해 상자의 글들을 남겼을거에요. 딸에게 대시하는 사람들은 다 잘난 신분일테니 걱정이 들었겠죠. 어쩌면 포오셔의 지혜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