엣지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2-13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2
제프리 디버 지음, 안재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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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빨간 책의 징크스는 그 대단한 제프리 디버조차도 피해 가지 못했다. 디버의 광팬이지만 이 책을 포함해 스탠드얼론 작은 대부분 그저 그런 수준이다. 이건 시리즈물을 쓰는 작가들의 고질병 같다. 마이클 코넬리, 마이클 로보텀, 요 네스뵈 등등 유독 스탠드얼론에서 약한 모습을 보인다. 재료도 좋은 걸 가져다 쓰고, 조리법도 나쁘지 않고, MSG도 적당히 들어가는데 왜 결과물은 실망스러울까. 이런 기분을 느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물론 출판사들이 과대광고하는 책들보다야 훨씬 낫지만 워낙 기대치가 높았던 탓에 아쉬움이 남는다. 아무튼 재미가 없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있는 것도 아닌 매우 어중간한 기분으로 완독했다. 이제껏 디버 작품은 편애한다고 느낄 만큼 극찬의 평을 남겼었는데, 드디어 비평을 날릴 차례가 온 것 같다. 유후후-


정보 추출가, 일명 캘꾼이 한 경관의 가족을 공격해온다. 경호팀은 가족들을 보호함과 동시에 캘꾼을 잡고자 하나 번번이 실패한다. 법무부는 이번 사건이 테러와 엮여있다 판단했고, 그래서 더더욱 캘꾼이 찾는 정보가 무엇인지 알아내야 한다. 거기다 캘꾼을 고용한 청부업자, 몸통도 잡아야 한다. 여러모로 바쁜 주인공에게 임무 중단이 내려지고 옷까지 벗어야 하는 상황에 이른다. 이대로 상층부의 말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이 개똥같은 판을 뒤집을 것인가.


솔직히 스릴러치고 흔한 플롯이라 설정 자체로는 매력을 못 느꼈다. 아마 디버 자신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작품의 빈약함을 보완하기 위해 언제나 악역 캐릭터에 승부를 걸어왔다. 그래서 디버 작품의 액기스는 악역의 비중이 80% 이상을 차지한다. 암튼 이번에도 화려한 악의 등장으로 스토리에 활력을 불어넣어주셨다. 이번 프로 범죄자는 정보를 캐내기 위해 모서리, 즉 대상의 약점을 이용한다. A의 정보를 캐내려 A의 약점을 직접 건드려도 되지만, B나 C의 약점을 잡아 이용한다. 그러면 B, C들이 캘꾼대신 범죄를 저질러주기도 하고, 미끼가 되어주기도 하고, 경호팀에 혼선을 주기도 한다. 누구나 꼼짝 못 하게 만드는 약점이란 바로 인질들의 가족을 위협하는 것이다. 그래서 캘꾼에게 걸리면 누구라도 복종하도록 되어있었다. 정말 수많은 범죄자를 봐왔지만 이번 범인은 악질 중에 악질이었다. 게다가 공범들까지 있었으니 참 어지간히도 어려운 상대였다. 매번 이렇게 초 신선한 적들을 창조해내는지, 작가의 뇌구조가 알고 싶다.


지금껏 디버는 범인과의 대결구도 플롯을 고집해왔다. 주인공과 범인의 교차 시점으로 미친 속도감, 불타는 심리전, 넘치는 텐션을 잔뜩 보여주던 기존작들과 다르게 이번 작품은 주인공 일인칭 시점에 가까웠다. 카메라 열 대로 촬영하던 방송이 카메라 한 대로 줄어버리면 당연히 퀄리티가 떨어지게 되어있다. 그래서 지상파 중계방송에 가깝던 디버의 스타일은 유튜브 비제이의 일인 방송으로 전락했다. 비제이들은 혼자 방송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매우 분주하다. 그처럼 이 책의 주인공도 혼자 이끌어가느라 쉴 새 없이 바쁘다. 그러다 보니 스토리는 점점 입체감이 떨어지고, 작가의 전매특허인 디테일한 묘사들은 투머치가 돼버렸다. 그 굉장한 악역의 플레이나 매력도 일부만 보여주었고, 흐름을 비틀기 위해 넣었던 조/주연들의 서브 내용들도 흐지부지한 마무리로 끝나곤 했다. 주인공을 제외한 모든 조각들이 하나 되지 못하고 따로 놀고 있어 몰입이 여러 번 끊어졌다.


대신에 주인공의 캐릭터 설정만큼은 작가가 영혼을 갈아 넣었다. 경호팀의 지휘를 담당하는 그의 역할은 캘꾼의 타깃들을 보호하고 안전장소로 대피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캘꾼에게 죽은 스승을 생각하면 어떻게든 캘꾼을 잡고 싶어 했다. 상황에 맞게 융통성을 발휘하려는 현장팀과 달리 법무부는 매뉴얼대로만 움직였고, 주인공이 범인을 쫓는 게 개인적인 욕심이라고 여겼다. 본인도 스승의 복수를 위한 집착이란 걸 어느 정도는 인정했다. 그럼 나머지는 무엇이냐. 보드게임을 좋아하는 그의 성향 때문이었다. 카드, 체스, 퀴즈, 퍼즐 같은 게임 매니아인 주인공은 캘꾼이 자신처럼 이 사태를 하나의 게임으로 생각하고 있고, 자신들을 게임 말처럼 플레이 중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모든 게임에는 룰이 있고, 그 룰에 따라 역전도 가능하고 체크 메이트도 가능하다. 눈앞에 난관이 닥칠 때마다 게임 룰을 적용하여 판을 뒤집으려는 시도가 참 새로웠다. 내가 보드게임 세계를 잘 몰라서 그냥 넘긴 구간이 많았다는 사실만 빼면 말이다. 여튼 냉정한 경호관에게 감정이 생겨 이성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재미있어 끝까지 읽었던 작품이다. 궁시렁 대면서도 디버의 스탠드얼론 작을 벌써 90% 읽었다. 디버 작품 도장 깨기도 어느덧 끝나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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