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ant bread, but want roses, too!
 (우리는 빵도 원하지만, 장미도 원한다!) 

 

- 켄 로치 감독, <빵과 장미> 중에서 - 

 

막걸리를 마시며 전태일을 꺼냈고, 함께 마신 이들과 우리의 노동을 생각했습니다.
11월13일이어서 그랬을 겁니다.

1970년 그날, 42년 전 불길 속에서 산화한 노동의 이름.

 

'전태일'이라는 이름 덕분에 나는 '노동'을 처음 알았습니다.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노동이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모두 노동자였고, 세상의 태반이 노동자였으며, 나도 노동자로 살아가야 할 것임에도, 어른들은 '노동'을 알려주지 않더군요. (자본주의 사회라면서 '자본' 역시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나는 늘 노동자였고, 지금도 노동자이며, 앞으로도 쭉 노동자일 것입니다.
그리고 별 볼 일 없는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타이틀, 커피노동자!

 

얼마 전, 밤에 창신동을 찾았었습니다.
창신동에서 마을을 가꾸는 두 청년(러닝투런-키다리와 콩)을 만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죠.

 

키다리의 안내로, 창신동 봉제공장을 처음 가봤습니다.
한창 성수기라며 그 야심한 밤에도 노동에 취한 봉제공장들의 불빛.
그리고 원단을 자르고 가공하는 노동자들의 바쁜 모습.
50년을 그 자리에서 재단 노동을 하고 있다는 엘림패션의 김 사장님.

어찌나 열성적으로 자신의 노동에 대해 말씀을 하시던지.

나는 "형님~!", 손을 잡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전태일, 떠올랐었습니다.

 

키다리와 콩은 그 노동자들이 발을 굴리는 동안,
어쩌면 방치될 수밖에 형편의 그곳의 아이들과 함께 놀면서 여러가지 재미난 실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기회를 만들어서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을 겁니다.
마을과 청년이 어떻게 창신동이라는 풍토에서 만나고 있는지.


그리고 마을과 노동. 반드시 다루어져야 할 주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마을에서 노동은 어떻게 자리매김하고, 노동과 마을은 서로 어떻게 삼투하는지.
'노동'이라는 영원히 계속돼야 할 사유와 더불어.

 

그리하여, 광고하자면, (노동에 대한 어설픈 접근이지만, 처음이니까! ^^;)
다음주 월욜(19일), 마을공동체 TV강연 '마을, 일자리를 부탁해'가 광화문 역사박물관에서 열립니다.

무료니까, 마을일자리에 대해 한 번 들어보세요.
신청은, '위즈돔'에서. ☞(클릭) [서울 마을공동체] 마을, 일자리를 부탁해!

 

 

 

 

"빵은 나누어져야 하고, 자유는 확대되어야 합니다. 빵과 자유를 위한 투쟁은 영원합니다."

 

명민한 좌파감독이자 영원한 노동자의 감독, 켄 로치 <빵과 장미>.

 

빵도 필요하지만, 장미도 당연히 필요하고 요구해야 하는 것.

그러나 이 땅은 여전히 빵조차 나누길 거부하는 사회.

낮은 자들이 높은 곳에 기어이 올라가도 콧방귀조차 끼지 않는 몰염치한 세상.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8일째 철탑 고공농성의 한파를 맞이하고 있으며,

23개의 세계가 무너진 쌍용차 노동자들.

 

42년 전의 전태일을 끊임없이 호명하고야 마는,

'자본 천국, 노동 지옥'의 아, 대한민국.

속된 말로, 일하다 죽는 것이 당연한 '일천국(잡코리아?)', 오, 대한민국.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는 말합니다. 대한민국 노동자의 연간 근무시간은 2256시간으로 OECD 회원국 중 1위(OECD 평균 1750시간). 독일보다 800시간, 일본보다 500시간 많은 반면 여가 시간에서는 뒤에서 1위, 자살률 1위. 1등만 기억하는 조까라 마이싱, 대한민국!)


당신의 노동은 안녕하신가?

 

그러니까,

내가 당신에게 권하는 건, 일 대신 커피.

노동을 뉘이는 한편 노동을 사유하는 커피 한 잔.

다시 꺼내는, 요즘 내가 꽂힌 이 노래를 들으면서 커피 한 잔.
우리의 음악.


노동이 음악으로 바뀔 수 있는 세상을 바라는 마음에서.

우리의 노동, 우리의 음악.

 

그대여, 사랑을 미워하진 마. 우리가 함께 했던 계절을. 때로는 눈부시던 시절을. 모든 게 조금씩 빛이 바랬고, 우리가 함께 듣던 노래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어.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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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나는 여전히. 세상에 음악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이 세상을 견뎌낼 수 없었을지도 몰라.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고, 다른 삶이 가능하다고, 음악은 살포시 속삭인다. 


오늘처럼, 이 음악. 우리의 음악. 


에피톤프로젝트, 고마워. 



어쩔 수 없는, 아직은 가을을 놓치고 싶지 않은 내 마음. 

 

에피톤프로젝트의 위로, 혹은 음악. 

 


이 음악으로 나는 오늘을 감사해.

 

내게 즐겁고 행복한 하루를 선사해준 당신들에게 또한 감사를.

 


3040의 어떤 이야기.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 낯선 당신들에서의 하루.

 

우리, 월요일에 만나. 가을, 우리가 함께 했던 계절로 채워지는 나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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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2-11-09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래..너무 좋군요...

책을품은삶 2012-11-14 01:03   좋아요 0 | URL
그쵸! 정말이지 참 좋아요. :)
 

가을이 끝났다. 겨울이 시작됐다. 


오늘, 비 온 뒤 온도가 '뚝' 떨어져서가 아니다.  


2012년의 플레이오프가 끝나자마자, 계절은 그렇게 바뀌었다.  


눈물 난다. 13년 만의 한국시리즈 진출, 20년 만의 우승은 산산조각났다. 


준플레이오프 승리로 충분하다고 설레발 쳤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노떼가 지는 야구, 겨울이 뜨는 신호. 


이젠 야구 없는 계절, 겨울.


겨울을 맞으라. 


야구 없는 계절, 아다치 미쓰루의 <터치>를 꺼내든다.



노떼 자얀츠, 너 없이 살겠지만.   


야구는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챔피언이었고 여전히 챔피언이다. 


물론, 노떼 자얀츠 아닌 노떼 자얀츠 팬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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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난다.  



이런 가을이라면, 더 이상 바랄 것도 없다(고 진심 담긴 뻥 치고 싶다). 



13년 만. 21세기 들어 처음이다. '드디어'라는 말, 이럴 때 쓰라고 있었구나. 

이것이 바로 가을의 '드라마'다. 



너무 오래 기다렸다. 

내 30대를 슬픔 속에 소진한 뒤 끝물에 이렇게 달궈주시다니. 

노떼 자이언츠의 포스트시즌 시리즈에서의 승리에 미친 듯 좋아하는 나는, 

어쩔 수 없이 부산 남자다. 부산 갈매기다. 

사직야구장에서 '부산 갈매기' 미친 듯이 부르고 싶어 죽것다!



이것으로 충분하다만, 

그래도 남은 바람이라면, 

1992년, 20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 

20대와 30대의 암흑기를 한방에 날려버릴 우승. 


씨바, 자이언츠 때문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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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커피를 주시오, 아니면 죽음을 주시오"


- 패트릭 헨리(미국 독립운동 지도자)


그래, 당신도 동의할 거야.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이 있어. 가령, 사랑이 그렇고, 죽음이 그래. 


오늘, 한 우주가 스러졌어. 

처음 가본 서울추모공원, 친구 아버님이 한 줌의 먼지가 되셨어. 

이 세계를 구성하던 하나의 우주가 희미해지면서 없어진다는 것, 비극.

느닷없이 닥쳐온 비극 앞에 인간은 무력할 수밖에 없지만, 이별 앞에서 필요한 것은 예의여야 함을 새삼 깨달았던 시간. 


아버님을 화장실로 보내기 직전의 곳, '고별실'이라는 팻말을 달고 있었어. 

그 '고별'이라는 말, 유난히 마음에 콕콕 박히더라. 

장례에서 죽은 사람에게 이별을 알림, 고별. 


이별해야 하는 곳. 한 우주의 스러짐을 마음으로 확인해야 하는 곳. 


그래, 익숙해지지 않는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었어.

개별의 인간이기 때문이지. 구체적인 존엄이 새겨진 개별의 인간이기 때문이었어.

숱한 죽음 앞에 내가 익숙해질 수 없는 이유가 그것이었던 거야. 

한 우주가 구축한 세계, 그 삶의 구체는 내가 알 수 없는 심연이겠지만, 

구체적 존엄 앞에 나는 고개를 숙여야했고, 추모는 마땅한 것이었어. 

이별 앞에 반드시 예의를 필요한 이유도 거기 있었고. 


화장 후 곱게 갈린 뼈라고, 개별의 구체가 아닐쏘냐.  

그래서, 성당으로 향하는, 아버님의 유골을 태운 리무진에 나는 고개를 숙여야 했어.


 

그리고, 

45년 전 오늘, 타살 당한 혁명을 떠올렸어. 

1967년 10월9일, 볼리비아에서 날아왔을 혁명의 으스러짐. 


체 게바라. 

오늘, 그에 대한 추모도 함께.

당신과 함께 타살 당한 혁명을 추모하는 것이고, 위로하는 것이지.  


비록 우리에게 혁명의 새벽은 오지 않았고,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지 몰라도,

만나지도 못한 혁명에게 이별을 말할 수는 없는 노릇.

그렇다고, 혁명과 만날 날을 포기할 순 없는 법. 

언젠가 올 혁명에 대한 예의!


그리하여, 

오늘 같은 밤에도, 노떼 자얀츠가 이겨줘야 할 것 같아.

내 마음에 꿀렁이는 이 슬픔과 추모의 마음에 대한 위로.  

당신도 여전히 우리 자얀츠 팬이지?   


그래 내겐,  

당신이 혁명이었어. 내 마음은 그래서 이미 혁명을 경험한 거야.


당신 하나로 내겐 충분히 가능했던 혁명. 


당신과 함께 보고 싶은 이 영화. 끝내 개봉하지 못하고 DVD로 직행한 이 영화, <체>.


오늘, 서울추모공원에서 만났던 커피, 향긋했어.

커피 자체 맛보다는 카페인이 필요했거든. 내 정신을 깨우고 싶은.

내 마음의 추모도 담아 마셨던 그 커피, 오늘의 나를 지지해 준 커피.

수골실 앞에서 커피 마시던 유족들 모습에서, 나는 커피가 주는 위로를 생각했어.


슬픔을 안녕~할 순 없지만, 커피는 슬픔을 위로할 수 있구나.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커피를 건네고 싶다...     

  

언젠가 이 세계에 변혁을 초래할 인간이 찾아올 것이다.

그 인간에게도 방황하는 밤이 있을 것이다.

그 밤에 문득 펼쳐본 책 한 줄의 미미한 도움으로 변혁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그 하룻밤, 그 책 한 권, 그 한 줄로 혁명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는 일은 무의미하지 않다.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 프리드리히 니체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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