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한양대 건축학과 교수)의 <사라진 건축의 그림자>(효형출판, 2012)를 읽다. 기대했던 것처처럼 근본적인 물음을 가지고 한국전통건축에 접근한다. 서현은 건축에 대한 대중적 관심과 이해를 높이는 데 앞장서왔다.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효형출판, 2004), <건축을 묻다>(효형출판, 2009) 등은 많은 이들로부터 꾸준하게 사랑받아 왔다.

     

공교육의 전통건축교육은 추상에 가까웠다.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와 양식을 줄줄이 늘어놓고는 그것이 각각의 특징이라고 가르쳤다. 우리 공교육 방식은 머리에 쉽게 그려지지 않는, '고차원적'이었다. 우리 건축의 절대적 아름다움을 강요하다시피 가르쳤다. 시각 효과가 가미된 안정감의 미학 '배흘림기둥', 우리나라의 산 능선과 버선코, 궁체의 선조미를 닮은 '유려한 처마곡선', 이러한 말만 기계적으로 가르렸고, 그렇게만 배웠다. 이유와 타당성에 대한 질문과 다른 미학적 관점은 들어서볼 자리가 없었다. 20년이 지나도 되풀이해서 그렇게만 가르쳤다. 벗어나지도, 더 추가되지도, 새로운 해석이 가마되지도 않았다. 찬사만을 고스란히 외워야 했다. '민족적 미의식'이라는 말로 모든 해석의 근원을 삼았다. 그러니 예술과 문화를 보는 안목이 키워질 리가 있겠는가.

어떠한 이유 때문에 전통 건축 양식 변화가 생겨났으며, 그 양식의 차이에는 어떠한 역사적 배경과 건축미학이 들어 있는가, 하는 의문을 당연히 가져보았을 법한데, 친절하게 가르쳐준 책들은 드물었다. 서현의 <사라진 건축의 그림자>는 부제에서 암시하듯 그러한 근원적인 의문에서부터 출발한다.

이 참에 건축 관련 도서 몇 권을 더해 놓는다.

<사라진 건축의 그림자>에는 몇 가지 틀린 사실과 오자가 있었는데, 수정하고 가다듬어 재판이 출간되었다. <배흘림기둥의 고백 - 옛건축의 창조와 진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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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사거리를 지나다가 일민미술관 외벽에 걸린 플레카드를 보면서 챙겨 봐야 할 전시로 찍어두었던 건축전시 <감응: 정기용 건축>(2010. 11. 12 ~ 2011. 1. 30)을 끝내 보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씨네 큐브 광화문에서 상영한 다큐멘터리 영화 <말하는 건축가>를 보면서 정기용에 대해 다시 더듬어 생각하게 되었다.

건축가 정기용은 1996년부터 2008년까지 12년 동안 전북 무주군에서 면사무소, 공설운동장, 납골당, 버스정류장 등 30여 개의 공공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영화 제작노트에서 밝힌 것처럼 무주 공공건축 프로젝트는 현대 한국 건축계에서 한 명의 건축가가 하나의 지역을 대상으로 진행한 공공건축 프로젝트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랜 시간을 들인 우리 건축계의 사건이었다.”

   

정기용은 '사람과 자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을 건축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겼다. 내가 그의 책 가운데 가장 먼저 만난 것은 열화당에서 나온 하싼 화티의 <이집트 구르나마을 이야기> 번역서이다. 그리고 20여년이 지났다. 가까이에서 뵌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고인이 된 작가를 회고하는 나의 방식으로 그를 읽는다.

인문과 자연의 향기를 담아내는 건축이 부재한 시대이다. 국토를 도륙내고, 흐름을 제 맘대로 바꾸어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토목공사를 무슨 거창한 업적처럼 도배질하는, 그 권력자의 무지와 오만과 천박함에 역겨운 심사를 주체할 수 없는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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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이지누는 <절터, 그 아름다운 만행>(호미, 2006)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 본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갖춰야 하는 것보다 지니지 말아야 할 것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진득하게 한 자리에 머무는 것이었으며, 나에게서 뚝 떨어져 나를 물끄러미 볼 수 있는 거리를 지키는 것이었다.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기에 폐사지만한 곳이 없었다. 스쳐가는 사람들도 드물며 미술사의 눈으로 볼 것 또한 그리 많지 않은 그곳이 나에게는 곧 독락(獨樂)의 선방(禪房)이었으며 무문관(無門關)이었던 것이다.”

     

그는 폐사지, 그 독락의 선방에서 기다리고 기다린다. 진득하니 기다려야만 열어주는 진정한 아름다움은 휑하니 다녀가서는 결코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아름다움이다. 빛이 적어서 한없이 기다리노라면 셔터를 누를 수 있을 만큼의 빛을 열어주기도 하고, 어떤 때는 한 컷 사진도 가져가지 못할 때도 있다.

기다림은 결코 사진을 찍기 위한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머리말대로라면 자신을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서였다.

<절터, 그 아름다운 만행>을 처음 접했을 때 충격과 놀라움을 잊을 수 없다. 이제 폐사지 답사기 2권을 더하였다. 전남 편인 <마음과 짝하지 마라, 자칫 그에게 속으리니>(알마)에 이어, 전북 편인 <돌들이 끄덕였는가, 꽃들이 흔들렸다네>(알마)가 그것이다. 이 책들 역시 행간으로 읽어야 할 책들이다. 땅과 바람 속에 묻어둔 독락의 흔적을 더듬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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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은 상품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고 웰빙음식을 사먹고 웰빙상품을 구입하는 것으로 웰빙을 실천하고 있다고 여긴다. 그것은 ‘행복’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똑 같은 착각이며, ‘자연’에서 떨어져 나온 부작용을 치유하기 위해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것이 아니라 다시 문명의 처방전을 쓰는 식이다.”

- 정승희, 아마존은 옷을 입지 않는다, 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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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멍의 『나는 학생이다』(임국웅 옮김, 들녘, 2004)를 읽다.
인상 깊은 구절 두 군데를 옮겨본다.


“없다라는 뜻은 아주 간단하다. 속일 마음과 꾀를 부릴 마음이 없으며 이름을 얻고 실리를 추구하려는 마음을 줄이거나 제거하면 된다. 당신이 이 ‘네 가지 마음’을 버리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면, 미안하게도 이때는 정말 나도 별다른 방도가 없다. 하지만 당신이 이 ‘네 가지 마음’을 제거하고 비운 다음에도 성실하고 진정한 견실과 재능과 사려가 남았다면 당신은 진실한 모습으로 진실한 사람이 되면 된다.” (263p)

“열정과 함께 동반하는 것은 지극히 유치한 성급함으로 하루아침에 일을 성사시키려는 조급함이다. 그러한 열정과 연소는 오래 유지되지 못한다. 당신은 내일 아침, 늦어도 다음주에는 일이 성사되어 단번에 히트치기를 바라고, 즉시 호동환우 하기를 바란다. 빨리 성공하려는 심리의 반대편에는 급격히 기가 떨어지고 맥이 풀어질 가능성이 기다리고 있다. 빨리 성공하려했는데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그 과정을 수차례 반복한다면 기가 약해지고 맥이 풀리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일이든 급히 성공하려는 것은 유치한 환상이다. 급히 성공하려고 하면 오히려 성공하지 못한다.” (28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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