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이지누는 <절터, 그 아름다운 만행>(호미, 2006)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 본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갖춰야 하는 것보다 지니지 말아야 할 것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진득하게 한 자리에 머무는 것이었으며, 나에게서 뚝 떨어져 나를 물끄러미 볼 수 있는 거리를 지키는 것이었다.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기에 폐사지만한 곳이 없었다. 스쳐가는 사람들도 드물며 미술사의 눈으로 볼 것 또한 그리 많지 않은 그곳이 나에게는 곧 독락(獨樂)의 선방(禪房)이었으며 무문관(無門關)이었던 것이다.”

     

그는 폐사지, 그 독락의 선방에서 기다리고 기다린다. 진득하니 기다려야만 열어주는 진정한 아름다움은 휑하니 다녀가서는 결코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아름다움이다. 빛이 적어서 한없이 기다리노라면 셔터를 누를 수 있을 만큼의 빛을 열어주기도 하고, 어떤 때는 한 컷 사진도 가져가지 못할 때도 있다.

기다림은 결코 사진을 찍기 위한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머리말대로라면 자신을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서였다.

<절터, 그 아름다운 만행>을 처음 접했을 때 충격과 놀라움을 잊을 수 없다. 이제 폐사지 답사기 2권을 더하였다. 전남 편인 <마음과 짝하지 마라, 자칫 그에게 속으리니>(알마)에 이어, 전북 편인 <돌들이 끄덕였는가, 꽃들이 흔들렸다네>(알마)가 그것이다. 이 책들 역시 행간으로 읽어야 할 책들이다. 땅과 바람 속에 묻어둔 독락의 흔적을 더듬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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