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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 : 세기말의 보헤미안 - 새롭게 만나는 아르누보의 정수
장우진 지음 / 미술문화 / 201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서양화는 시대에 따라 다양한 스타일로 전개되었다. 학자들은 그림의 스타일과 특징에 따라 그림을 유형화하여 그 시대의 그림의 흐름을 읽기도 한다. 그림을 유형화하는 작업은 그림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하지만 작가들은 자신들만의 스타일로 그림을 소화한다. 그런데 작가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를 하나의 카테고리 안에 넣어서 양식화한다는 것이 무리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알폰소 무하는 어느 범주에도 넣기가 곤란한 화가가 아닐까 한다.
무하의 그림은 다이어리, 각종 소품, 엽서, 달력, 잡지 표지, 포스터 등에서 익히 보아왔던지라 상업적인 일러스트라고만 생각을 했지 그림이라고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고전주의, 인상파, 입체파 등 주로 알려진 화가들의 그림을 주로 봐왔던지만 무하의 생애에 대해서는 아는게 별로 없었다. 이 책을 통해서 비로소 그의 그림과 생애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되었다. 무하의 그림은 보았지만,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이 무하인지는 몰랐다.
그의 그림은 판타지 게임에 나오는 캐릭터 같다. 그의 그림은 이국적인 옷을 바람결에 날리며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육감적인 몸매와 함께 매혹적인 표정을 드러내는 여성을 생각하게 된다. 보는 이로 하여금 그림으로 인식되게 하기 보다는 광고의 한 장면 같다는 느낌을 가지게 만든다. 누가 보더라도 낯선 그림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오래 전부터 봐왔던 그림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묘한 매력을 가진 그림이다.
무하는 세기말의 아르누보의 정수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조국인 체코가 공산화되면서 그의 이름과 작품은 잊혀져 갔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팝문화의 부활과 함께 무하의 작품은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많은 작품들이 대중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는데, 그의 그림이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의 그림이 매력적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자유분방함과 발랄함, 그리고 다소 퇴폐적인 듯하면서도 신비스러운 분위기는 보는 사람에게 황홀함과 함께 이국적인 느낌을 가지게 만든다. 그의 그림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받아 들여야 할 것 같다. 어느 특정 유파에 넣어서 그의 그림을 보는 것은 의미가 없다. 오히려 그렇게 본다면 그의 그림이 가지는 느낌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 것 같다. 그림은 머리보다는 가슴으로 받아 들일 때 제대로 보인다는 말이 있다. 무하의 그림이 바로 그런 그림이 아닌가 한다.
책은 무하의 삶과 생애를 그의 작품과 함께 찬찬히 살펴보고 있다. 무하만을 소개한 책이 많이 없었던 터라 책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제까지 보아왔던 다른 그림들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그림, 마치 팝아트를 보는 듯한 그림. 그의 그림은 사람의 마음을 뺏앗기에 충분했다.
‘누구나 보았지만,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화가’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화가 무하와 그의 그림에 대해서 제대로 알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으로 남는 책이었다. 새롭게 알게 된 작가나 그림이 마음에 든다면 그것 만큼 즐겁고 기분 좋은 일도 없을 것이다. 그림을 봐왔지만 제대로 알지 못했던 무하의 작품 세계와 생애를 읽는 내내 기분이 좋았던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