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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면 재즈가 생각난다. 재즈는 더운 여름보다는 가을이나 겨울에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물론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지만 내게 있어 재즈는 가을이나 겨울이다. 가을의 문턱에서 재즈의 백전노장 조지 벤슨이 돌아왔다.  

한때 국내에서 재즈가 엄청난 인기를 얻은 적이 있었다. 모 드라마의 영향이 큰 점도 있었지만 당시까지 재즈가 우리에게 많이 생소한 장르의 음악이었기 때문에 순간적인 관심이 폭발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관심은 오래 못가는 법인데, 아니나 다를까 잠시 반짝하더니만 재즈는 우리들의 시야를 벗어나 버렸다. 

이런 문화적인 현상을 두고 음악을 소비하는 소비자들을 탓할 수도 있고 아니면 음악을 만드는 뮤지션들을 탓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협소한 국내음악 시장의 여건과 왜곡된 음악 산업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럴때 항상 비교대상으로 등장하는 것이 이웃 나라인 일본이다. 나는 일본과 미국을 우리의 비교대상으로 설정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비슷비슷한 경제환경과 사회환경을 가진 나라를 비교대상으로 삼아야 하는데 너무 앞서가는 나라들을 비교대상으로 삼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가깝다보니 일본은 자주 우리의 비교대상으로 등장한다. 

일본은 다양한 음악 장르의 시장이 활성화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재즈에 있어서는 강국 중의 강국이다. 외국의 유명 뮤지션들이 일본에서 독자적으로 음반을 내기도 하고 일본인들이 외국 뮤지션을 발굴해서 일본에서 음반을 출시하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이는 영화음악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이나 영국 등 서구에서 발매도 되지 않은 사운드트랙을 일본에서만 발매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문화적인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감이 잘 안온다. 

일본인들은 집요할 정도로 자신들의 관심 분야에 파고들어가는 것 같다. 이런 점들은 배워야 하지 않을까 한다. 재즈 이야기를 하다가 일본인들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 버렸다. 다시 재즈 이야기로 돌아오면, 우리나라는 다양한 음악장르를 실험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지 않고 있다. 뮤지션들이 자구책으로 홍대에서 인디음악을 하며 하나의 트랜드를 만들어 낸 것은 좋은 시도다. 하지만 인디 음악도 주로 펑크를 위주로 하다보니 재즈라는 음악이 설 만한 곳은 잘 없다. 

요즘 텔레비젼을 틀어보면 모두 같은 춤에 같은 느낌의 노래에 언제나 등장하는 가수들 뿐이다. 다양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은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문화적인 획일성을 불러 오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까지 불러온다.  

가을이다. 한 번쯤 재즈를 접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물론 재즈가 아니더라도 좋다. 뉴 에이지, 클래식, 월드 뮤직 등 평소 자주 들을 수 없는 음악을 들어보면 내 귀가 모처럼 호사(?)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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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벽촌이라고 할 미주리에서 태어난 팻 매스니는 마이애미 대학에 기타 연주 전공으로 입학하여 1학기를 마치자 마자 강사로 초빙될 정도로 어려서부터 실력을 인정받았다. 21세이던 1975년에 게리 버튼의 밴드 멤버로 재즈 씬에 발을 들여 놓았고 곧 이어 베이시스트 자코 파스토리우스와 함께 기념비적인 데뷔 앨범 [Bright Size Life]를 발표하게 된다. 이후 현재까지 30여 년간 수십 장의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담은 앨범을 발표하며 재즈 아티스트로는 유례 없는 히트와 대중적 지지를 얻어 왔다. 그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 어디에서든 수천 석 규모의 공연장을 가득 채워 넣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재즈 아티스트 중 한 명이다.

그가 이처럼 큰 성공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자유분방한 그의 음악적 행보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분명 재즈 전통에 입각하여 공부하고 연주 활동을 시작했지만 지금까지 그가 거쳐온 길은 언제나 정통 재즈에서는 조금씩 벗어나 있었다. 세월이 변하면서 새로운 앨범을 내 놓을 때 마다 과거와는 다른 음악을 끊임없이 선보여 온 것이다. 그 결과 지금까지 나온 그가 발표한 앨범들에는 시대에 따라 포크에 가까운 어쿠스틱 재즈에서부터 뉴 에이지와 록, 또 팝적인 가벼움은 물론 매우 실험적인 프리 재즈, 정통 스탠다드 재즈 연주 등 온갖 음악 스타일이 뒤섞여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스타일의 다양함만으로 그처럼 큰 성공을 이끌거나 대중적 지지를 끌어낼 수 있는 것은 분명 아니다. 유사한 활동을 해 온 퓨전 재즈 계열의 연주자들이 많이 있음에도 팻 매스니가 독보적인 영역을 구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독보적인 멜로디와 감성이다.

 
시전통적으로 재즈는 지적인 음악에 속한다. 빌리 할리데이나 쳇 베이커 등 일부 예외를 제외한다면 재즈의 역사는 진하고 격렬한 감성의 표출보다는 화음과 리듬의 복잡성을 추구하는 쪽에 맞춰져 있었다. 재즈에 감성이 부족하다는 것이 아니라 미묘하게 숨겨져 있어서 쉽게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는 재즈의 중요한 특성이지만, 한편 재즈가 발전하면 할 수록 대중성이 떨어지는 요인으로도 작용해 왔다. 재즈를 듣고 이해하거나 즐기기 위해서는 다소나마 훈련된 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팻 매스니는 이탈리아계 특유의 속칭 '귀에 감기는' 멜로디를 무기로 일반적인 재즈에 비해 훨씬 감성적인 음악을 선보였다. 그와 동시대에 활동한 퓨전 재즈 아티스트들은 많지만 그들이 정통 재즈보다 더 복잡하거나 혹은 단순하더라도 차갑고 도시적인 음악을 추구할 때 팻 매스니는 세련되면서도 좀 더 인간 본연의 감정에 호소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이런 점은 작곡과 연주 스타일에서 동시에 나타난다. 팻 매스니의 작품들 중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곡 중 하나인 'Are You Going with Me'에서 그는 기존 재즈곡에 비해 단순화된 멜로디와 함께, 감정을 고조시켜 폭발하도록 하는 전형적인 록 기타의 어법을 따르고 있다. 한편 'Letter from Home'이나 'James' 등에서는 도시적 세련미와 목가적인 단순성이 교묘하게 결합된 조용하고도 차분한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전혀 다른 형식의 곡들이라도 재즈적 지성보다 촉촉한 감성에 호소하는 음악이라는 면에서 공통점을 갖는 셈이다.

결국 팻 매스니의 인기와 성공은 재즈를 위해 훈련되지 않은 귀로도 듣고 느낄 수 있는 음악의 보편성을 추구한 데에 그 비결이 있다. 그래서 그의 팬 층 역시 재즈 애호가들에 국한되지 않으며, 다양한 직업과 성향을 가진 성인 층에 골고루 퍼져 열렬한 지지를 보내고 있는다.

 
그러나 이런 그의 스타일에는 비판적인 목소리도 있다. 자신의 재능을 보다 정통적인 재즈 어법의 발전에 쏟지 않고 상업적인 방향만 추구한다는 것인데, 주로 골수 재즈 팬들이나 평론가 쪽에서 나오는 비판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팻 매스니는 진지한 아티스트라기 보다는 거의 팝 스타에 가까운 존재다.

비슷한 맥락에서 일부 재즈 아티스트들은 팻 매스니의 연주에 재즈적 실험성이 결여되어 있거나, 때로 테크닉에 너무 의존한다는 지적을 내 놓기도 한다. 실제로 곡 자체는 감성적이고 쉬운 편이라고 해도 솔로 연주에 있어서의 빠르고 복잡한 기교적인 면모를 그가 자주 드러내온 것은 사실이며 이는 특히 라이브에서 확연하다. 동료 연주자들에게 있어서 이런 그의 모습은 일종의 과시욕으로 비치기도 하고, 또 알고 보면 단순한 연주를 패턴과 기교로 눈속임한다는 식의 신랄한 비난도 있다.

그러나, 팻 매스니의 음악이 대중적이긴 하지만 그 대중성은 오직 히트만이 목적인 천박한 수준으로까지 떨어진 적은 없다는 점에서 상업성에 대한 비판은 때로 지나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오히려 팻 매스니를 통해 재즈가 더 널리 알려지고 그 결과 보다 정통적인 재즈 아티스트에게까지 관심이 돌려지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테크닉에 대한 비난은 설사 그것이 사실이라 한들 전문가들 수준에서의 논의에 가깝고, 일반 음악 팬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내용일지도 모른다. 듣고 즐기는 입장에서는 지나친 분석은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고, 더욱이 팻 매스니의 테크니컬한 연주 특성이 지금까지 팬들에게 천박한 과시욕으로까지 느껴진 경우는 별로 없다는 점을 감안해 볼 때 이를 크게 문제 삼는 것은 별로 공정하지 못한 일 같다.

이렇게 접근하는 시각에 따라 영웅이자 이단아로서의 두 얼굴을 가진 팻 매스니. 어쩌면 지난 30년간 그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논쟁의 주제인 예술성과 대중성의 경계 사이에서 교묘한 줄타기를 해 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그의 줄타기는, 비슷한 시도를 하면서도 사실은 예술성과 대중성을 둘 다 잃고 마는 다른 많은 경우들에 비해 훨씬 훌륭하게 이루어져 온 것은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팻 매스니는 분명 뛰어난 아티스트이고 또 성공한 전략가인 셈이다. 누가 뭐래도 예술가에게 있어서 자기의 작품이 널리 알려지고 사랑 받는 것 이상의 보람과 기쁨은 없고, 그는 지난 30년간 그 일을 너무도 훌륭하게 해 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웅이던 이단아건 간에, 그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따듯함의 인간미는 세상에 음악이 존재해 온 이유 그 자체와 관련되는 보편적 감성이라는 점만은 부인할 수 없다. 바로 그 힘으로 인해 그의 음악은 앞으로도 계속 많은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을 것이다.
※ 음악 포털 사이트 도시락(www.dosirak.com)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글/ 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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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전 재즈 (Fusion Jazz) 락&팝과 한솥밥 먹는 재즈
퓨전 레스토랑, 퓨전 요리, 퓨전 섹시, 그리고 “휘리릭 뽕, 퓨전!”을 외치던 제니퍼의 주문까지. 몇 년 전부터 퓨전이라는 말이 이곳저곳에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퓨전(Fusion)이란, 융합을 뜻하는 단어로 서로 다른 두 종류 이상의 것이 합해져 새로운 것이 됨을 일컫는다. 아마 퓨전 요리를 접해본 분들은 이 단어의 의미를 확실히 이해하고 있을 듯.
음악에서도 퓨전의 쓰임새는 별반 다르지 않다. 다른 두 장르의 음악이 하나 되는 것을 두고 통칭적으로 퓨전이라는 말을 붙인다. 음악에서 퓨전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장르는 재즈이다. 69년에 발표되었던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의 [Bitches Brew]가 최초의 퓨전재즈 음반으로 평가받고 있다.





글쓴이는 중학교 때부터 재즈를 들었다. 음반과 라디오를 통해 또 책을 통해 재즈란 무엇인가 알아가던 중이었는데 당시 즐겨듣던 음악들은 흔히 퓨전 재즈로 분류되던 것들이었다. 예를 들면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Grover Washington Jr.), 데이브 그루신(Dave Grusin), 리 릿나워(Lee Ritenour), 밥 제임스(Bob James), 데이빗 샌본(David Sanborn), 마이클 프랭스(Michael Franks) 같은 뮤지션들의 음악이다.
대체로 팝적인 가운데 재즈가 스며든 음악들이었다. 나름 퓨전 재즈를 통해 재즈의 안쪽까지 파고들어가고 있었는데 어느 책에선가 [Bitches Brew]가 퓨전 재즈의 문을 연 첫 작품이라는 소개를 접하게 되었다. 그래서 용돈을 모아 레코드점에 가서 앨범을 샀다. 그런데 음반이 만만치 않았다. 2장으로 나누어진 2장짜리 앨범-당시 처음 샀던 더블 앨범이었기도-이었으며 게다가 LP 한 면에 두 세곡 씩 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게다가 요상한 자켓 디자인도 왠지 범상치 않았다.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한 1분을 들었을까 나는 그만 플레이어를 꺼버리고 말았다. 투박한 리듬과 성의 없는 듯한 연주, 인내력을 갖게 하는 10분이 훌쩍 넘는 런닝 타임 등 중학생이던 초짜 ‘재즈 캣(Jazz Cat - 재즈 팬을 빗대어 하는 말)에게 [Bitches Brew]는 분명 버거운 작품이었다. 왜 당시 즐겨듣던 퓨전재즈와 [Bitches Brew]의 느낌은 그렇게 달랐던 것일까. 이에 대해 알려면 당시 재즈계 상황을 살짝 들춰봐야한다. 그럼 타임머신을 타고 60년대로 날아가 보자. (슝~)




60년대는 재즈에 있어 혼돈기라 할 수 있다. 이 때부터 재즈 신에는 ‘프리 재즈(Free Jazz)’라는 기존 재즈의 관습을 타파하는 파격적인 음악바람이 솔솔 불기 시작했다. 그리고 역풍으로 불어 닥친 락앤롤의 득세와 대중적 인기몰이는 공들여 쌓아 올려진 재즈라는 탑을 점점 허물고 있었다. 락에 밀리지 않으려면 재즈에 새로운 변화가 필요했다. 당시 재즈계의 마이더스로 통하던 트럼페터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는 이러한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 역시 락 음악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당대 최고의 기타 플레이어로 인정받던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와 절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헨드릭스와의 사이는 사적인 문제로 틀어졌지만 마일즈는 재즈와 락을 융합하는 야심 찬 계획을 보다 구체화시키게 되었다.
일렉트릭 피아노에 조 자비눌(Joe Zawinul), 일렉트릭 기타에 존 맥러플린(John McLaughlin) 등을 새롭게 멤버로 맞아 그는 69년 봄 [In A Silent Way]를 완성했으며 6개월 후에는 보다 심혈을 기울인 대작 [Bitches Brew]를 발표하게 되었다. 퓨전 재즈의 본격적인 태동을 알린 문제작으로 재즈사에 기록되어 있는 이 앨범은 사이키델릭 락의 영향을 반영하고 있으며 무궁무진한 음악적 아이디어의 솔로연주로 채색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런 음악 스타일에 대한 재즈계 내부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흑인들은 백인들의 락 음악과 재즈가 결합한 것에 대해 극심한 불만을 드러냈다. 결국 마일즈는 자신의 형제들에게 변절자라는 말까지 들어야했다.




마일즈는 70년대 내내 퓨전 재즈 성향의 음악을 추구해나갔고 다행히도 재즈계는 다시 활력을 되찾았다. '마일즈 사단'의 뮤지션들은 대거 독립하여 자신들만의 퓨전 재즈 그룹을 이끌며 70년대를 '퓨전 재즈 르네상스'로 만들었다. 대표적으로 건반 연주자 칙 코리아(Chick Corea)의 '리턴 투 포에어(Return To Forever)', 드러머 토니 윌리엄스(Tony Williams)의 '라이프타임(Lifetime)' 그리고 키보디스트 조 자비눌과 색소포니스트 웨인 쇼터(Wayne Shorter)의 '웨더 리포트(Weather Report)'와 존 맥러플린의 '마하비시누 오케스트라(Mahavishnu Orchestra)'등이 있었다.
퓨전 재즈의 인기는 8-90년대로 이어졌다. 70년대 퓨전 재즈가 락 혹은 이국적인 리듬과 재즈의 결합이었다면 80년대에는 보다 팝적인 취향으로, 그리고 90년대 들어서는 스무드(Smooth) 스타일로 시대에 맞게 변화해갔다. 특히 건반 연주자 데이브 그루신과 드러머 래리 로젠(Larry Rosen)에 의해 설립된 레이블 GRP는 8-90년대 퓨전 재즈 명반들을 양산하며 퓨전 재즈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었다. 한편 케니 지(Kenny G)같은 스타급 플레이어도 등장하여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지만 점점 퓨전 재즈가 아닌 팝 인스트루멘탈로 선회하여 재즈 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이제 퓨전재즈는 재즈 락과 컨템포러리 재즈, 그리고 스무드 재즈를 모두 포함하는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글쓴이가 겪었던 [Bitches Brew]의 에피소드는 퓨전 재즈라는 음악에 대한 의미 파악을 제대로 못한데서 비롯되었던 ‘비화’였다. 한번 들은 퓨전재즈 음반, 열 음반 안 부러우니 부디 글쓴이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
글 / 핫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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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12-30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카시오페아랑 티 스퀘어 참 많이 들었는데, 요즘은 좀 가볍다는 느낌이에요. 뭐랄까 진지함과 깊이가 없달까. 갠적으로는 카시오페아 보다는 티 스퀘어를 더 좋아해요. ^^저 위에 애들은 안들어봤는데
 

재즈, 과연 대중음악의 최고봉인가.



이 공식은 단지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현실에서 자주 나타난다. 음악 마니아로 살아오며 그간 주변에 존재했던 많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변해온 과정도 거의 이런 형태였고, 필자 자신도 결과적으로 저 공식의 연장선상에서 음악의 지평을 넓혀 온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이렇게 소위 대중음악의 종착역이라는 재즈. 여기에 도달하고 나면 흔히 사람들의 관점은 많이 변하곤 한다. 옛날에 들었던 팝이나 록, 메탈에 대한 사랑은 그저 어린 시절의 유치함의 결과로 잊혀져 가고 결국 재즈에 도달하기 위한 경로로나 의미가 있었을 뿐이다. 재즈만이 대중음악 범주 내에서의 유일한 '진짜 예술'로서 클래식 음악과 견줄만한 자격이 있다는 시각도 흔하다. 그럼 과연 그럴까.



필자는 그간 다양한 형태의 음악을 여러 가지 의미에서 밀접하게 다룰 기회가 있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록 마니아였고, 20대 중반까지는 기타리스트로서 메탈과 록을 연주했으며, 이후에는 재즈를 주로 들으며 기타 교습과 평론을, 그리고 결국 유학을 통해 대학에서 록과 재즈를 정통적으로 공부하고 연주하기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그 경험을 토대로 느낀 것은 재즈는 참으로 지적인 음악이라는 점이다.

 

사실 작곡과 편곡, 연주 등에 대한 재즈의 접근법은 클래식을 능가할 만큼의 이론적인 토대를 갖고 있다. 재즈의 음악 이론은 20세기 초중반 클래식 음악의 고전적/현대적 이론을 흡수하여 재창조한 것으로 그 정교함이나 섬세함의 수준은 다른 대중음악 장르에서는 분명 상상하기 힘들다. 다시 말해 댄스나 발라드는 물론이고 메탈이나 프로그레시브 음악 조차도 화음이나 멜로디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재즈에 비한다면 초보적인 수준인 것은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분명 재즈는 대중음악의 가장 고급한 형태다.

또 재즈는 비록 처음에는 어렵게 들리지만 일단 특유의 화음과 즉흥 연주에 익숙해지고 나면 정형화된 다른 음악들에서는 찾기 힘든 변화무쌍함과 세련됨이라는 쾌감을 준다.

또 그런 지적인 부분이 단지 차갑고 기계적인 것이 아니라 흑인 음악 특유의 깊은 감정과 정서를 표출하는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기에 난해함이 사라지고 나면 다른 음악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깊은 정서적 감동을 받을 수 있다. 결국 재즈는 아주 좋은 음악이며, 흑인의 감성과 백인의 지성이 가장 이상적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점에서 음악을 사랑하는 입장이라면 놓치기는 참으로 아까운 음악이다.



그러나 그래서 재즈가 종착역이자 최고봉이라고 단순히 결론짓는다면 그건 곤란한 일이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나이 들어 동요를 다시 듣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단 재즈를 한참 듣고 나서는 다시 록이나 팝을 들을 일은 전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물론 많은 사람들이 재즈를 오래 들은 후에도 다른 많은 대중음악 곡들에 매력을 느끼고 또 즐겨 듣고 연주한다.

사실 장르에 의한 음악의 질적 구분은 큰 의미가 없다. 필자는 취향 만능주의자는 아니며 음악에도 분명 수준이라는 것이 있다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그 수준은 꼭 장르의 기준을 따라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비틀즈나 핑크 플로이드, 너바나, 들국화 같은 록 밴드들, 혹은 엘튼 존이나 아바 같은 팝, 그리고 챗 앳킨스에서 존 덴버에 이르는 컨트리 계열, 또 밥 딜런에서 김광석에 이르는 포크 등 모든 종류의 음악에 걸쳐 훌륭한 뮤지션과 명곡들이 국내외적으로 무수히 존재하며, 따라서 서로 다른 영역에서 좋은 음악을 선보여 온 이들의 수준을 서로간에 비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물론 재즈의 경우, 최소한 우리에게 알려질 정도의 뮤지션이라면 대부분 다른 장르를 기준으로 했을 때 최고 수준의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는 있고 따라서 전체적으로 수준 낮은 재즈라는 것이 드물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그래서 다른 음악보다 절대적으로 우월해야만 할 필연성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 관점은 예술 장르로서의 음악을 바라보기 위해 적합한 시각도 아닐뿐더러, 한때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 나타난, 대중음악 전체를 쓰레기로 보는 오만한 음악 엘리트주의의 경우에서처럼 좋은 점보다 부작용이 더 많다.

이는 예컨대 음식과 같은 것이다. 훌륭한 스테이크나 궁중요리, 고급 프랑스 요리라면 아무래도 그만큼의 노력과 정성이 들어간 가치 있는 것임에는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런 것만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때로는 짜장면이나 순대, 붕어빵, 핫도그 등등도 먹고 싶게 마련이다. 그리고 이 두 범주의 음식들을 서로 비교한다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고 그저 특성과 용도가 다를 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신경 써야 할 일은 고급 요리만을 늘 먹고자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들이 음식으로서의 기본을 충족하고 있는지, 즉 엉터리 재료나 더러운 시설에 의해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불량 식품은 아닌지를 파악하는 것일 뿐이다. 물론 상식적으로 비싼 고급 요리라면 제대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고, 길거리에 파는 순대라면 위생상 좋지 않을 가능성이 좀 더 높을 수 있다. 그러나 한편 최고급 스테이크에도 철사가 박혀 있을 수 있고 붕어빵에도 만드는 이의 정성이 가득 담길 수 있으며, 이는 결국 개별적 문제일 뿐 음식의 가격이나 종류에 의해 절대적으로 좌우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단지 음악 같은 예술이 음식과 다른 점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객관적인 기준이 설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질적 판단의 기준이 눈에 확 드러나지 않게 미묘하다는 것이고, 그래서 개인 취향이나 주변 환경에 더 크게 영향을 받는 점이다. 그러나 잘 만든 음악과 그렇지 못한 음악은 분명히 존재하고, 음악을 포함한 예술은 이른바 '영혼의 양식'이라는 점에서 이 부분에 대한 변별력을 키우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단지 그것이 재즈냐 록이냐 팝이냐의 장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필자는 재즈의 열렬한 팬이고 모든 사람들이 재즈를 듣고 즐기는 날이 오기를 매일같이 바라고 있다. 모두들 댄스나 발라드, 록에 열광하는 만큼의 열정으로 재즈를 즐긴다면 결국 재즈계는 크게 융성할 것이고, 또 재즈 특유의 창조성은 음악적 영향력으로 또 다른 장르에 침투해 들어가서 각각의 장르들의 발전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재즈만을 들어야 한다거나 재즈를 들음에 우월감을 가질 이유는 없고, 또 재즈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다른 장르들을 그 기준으로 재단하고 무시할 필요는 없다. 장르 같은 형식을 통해 '최고다, 아니다' 의 배타적 기준을 만들어 거기에 맞춰 살 필요도 없다. 재즈는 훌륭한, 아니 더 나아가 위대한 음악이지만 다른 장르 속에도 그런 음악들은 많은 것이다.

그저 재즈라는 음악이 지금과 달리 '고급'과 '난해함'의 개념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음악적 가치와 노력에 어울리는 사랑을 받고 또 자리를 잡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며, 그것이 재즈계, 또 대중음악계가 풀어가야 할 숙제일 뿐이다. 그 이상의 복잡한 생각과 줄 세우기가 과연 필요할까.

   
글 / 신지

음악 포털 사이트 도시락(www.dosirak.com)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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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2-14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즈를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의 글이네요.

키노 2006-12-14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악은 누구나가 즐기고 기분 좋으면 되는 것 같아요^^

비로그인 2006-12-15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즈의 세계에 깊숙이 들어가고 싶게 만드는 글이네요. 재즈의 즉흥성에 많이 이끌려요.

키노 2006-12-17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라님 안녕하세요 !! 이 겨울에 재즈 참 좋지요^^
 

◆ 컨템포러리 색소폰의 발자취

인간의 목소리를 닮은 소리, 가장 감성적인 톤, 그리고 가장 재즈적인 악기. 색소폰 예찬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모든 색소폰 연주가 재즈라 할 수 없겠지만 예나 지금이나 색소폰은 대중들에게 재즈의 느낌을 선물했다. 컨템포러리 재즈 색소포니스트, 굳이 재즈에 한정되지 않은 대중적인 연주음악을 소개했던 이 부류의 연주인들은 예술적 깊이가 담긴 연주의 내공만큼이나 이들의 연주에 환호하는 팬들의 성원에 화답했다. 갑자기 스포라이트를 받게 된 재즈 색소포니스트들의 등장은 재즈를 상업적으로 변질시킨다는 평자들의 혹독한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아름드리 친숙한 색소폰 선율을 통해 어느덧 대중들은 재즈의 감성을 체득할 수 있게 됐다.


1.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 흑인대중음악 R&B를 인기 연주음악으로 소개

1970년대 초, 재즈 퓨전의 창궐은 재즈와 록, 팝 음악간의 폭넓은 교류의 장을 제시해줬다. 이런 분위기에서 당시 팝 음악의 주류침공을 시도한 알앤비를 재즈에 접목시키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그 첫 주역은 바로 색소포니스트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였다. CTI 레이블의 설립자인 크리드 테일러 사단의 막내로 데뷔한 그는 모타운 출신 가수들의 인기곡을 감미로운 색소폰 연주로 소개했다. 대표적으로 마빈 게이의 'Inner city blues(1971)' , 빌 위더스의 'Ain't no sunshine' (1971), 스티비 원더의 'You are a sunshine of my heart'(1972)를 색소폰 연주로 소개하며 빌보드 알앤비 차트에 오른다. 그의 대중 친화 전략은 지금껏 대표작으로 칭송되는 앨범 < Mr. Magic > (1975)의 골드로 이어졌고 데뷔 10년째를 맞은 1980년작 < Winelight > 에 소개된 'Just the two of us'로 정점에 다다른다. 2개의 그래미 상 수상과 52주간 빌보드 앨범 차트에 등재됐던 < Winelight >의 부상으로 그로버 워싱턴은 재즈 뮤지션으로서 최고의 스타덤을 맛본다.

2. 데이빗 샌본-소울색 짙은 알토 색소폰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의 스타덤을 목격한 대중들은 비슷한 시기 그에 필적한 또 하나의 백인 색소포니스트의 등장에 환호한다. 바로 알토 색소포니스트 데이빗 샌본. 팝가수 스티비 원더의 'Tuesday heartbreak'(1972) 데이빗 보위의 'Young American'(1975)에서 소울색 짙은 울림을 선사한 스튜디오 세션맨으로 줏가를 올렸다. < Takin' off > (1975)을 시작으로 컨템포러리 재즈 뮤지션으로의 처녀비행을 감행한 그는 팝 뮤지션들과의 오랜 세션 경험을 바탕으로 재즈를 대중적으로 해석해내는 발군의 능력을 선보인다. 훗날 어반(Urban) 사운드로 통칭된 그의 연주는 재즈의 색체가 가미된 팝 연주의 선두격으로 기억된다. 앨범 < Hideaway > (1980)로 빌보드 알앤비 차트 1위에 오르며 인기 전선에 합류한 그는 이어지는 히트작 < Voyer > (1981)로 그래미 컨템포러리 부문이란 대어를 낚는다. 이후 데이빗 샌본은 1980년대 내내 컨템포러리 재즈계의 절대 강자로 군림한다.

3. 케니 G - 팝 연주음악의 황제로 등극하다.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와 데이빗 샌본의 부상은 색소폰 연주 음악이 대중들에게 충분히 어필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제 남은 건 흑인대중에게 한정된 알앤비의 장벽을 뛰어넘어 범세계적으로 어필할 색소폰 스타를 찾는 일이다. 팝가수 휘트니 휴스턴을 발굴한 아리스타 레코드의 사장 클라이브 데이비스는 팝 연주 음악의 가능성을 일찍이 간파했고 그 꿈을 실현할 주역으로 색소포니스트 케니 G를 소개한다.
예상은 적중했다. 그의 첫 앨범 < Duotones > (1986)의 수록곡 'Songbird'는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라는 기염을 토한다. 애무하듯 귀에 속삭이는 소프라노 색소폰의 울림은 이후 케니 G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졌고 컨템포러리 재즈라는 이름 대신 케니 지의 연주 앞엔 '스무드 재즈'라는 이름이 하사된다.
케니 G의 인기는 인종과 국경을 넘어섰다. 'Going home'(1989)과 영화 < 다잉 영 > 의 메인 타이틀 'Dying Young'(1991)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권에서 케니 G 선풍은 뜨거웠다. 신문, 방송 등의 매체는 너도나도 케니 G의 인기를 대중적인 재즈의 표상인 냥 홍보했고 그 여파는 여기저기에서 나타났다. 90년대 가요 음반 세션에서 자주 등장하는 색소폰 연주는 가요가 팝 사운드로 향하게 하는 성과를 가져왔고 탤런트 차인표(1994)의 부상은 색소폰 연주를 일상의 교양으로까지 자리 매김 시킨다. 아울러 케니 G의 영향을 받은 색소포니스트 대니 정의 등장(1998) 또한 주목할 만하다.

4. 그들의 후예는 누구?

상기 언급한 컨템포러리 재즈 스타의 등장은 1990년대를 기점으로 지금까지 진한 영향력으로 남아있다.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의 유산은 건반주자 밥 제임스(Bob James)의 앨범 < 12 > (1984)를 통해 데뷔한 색소포니스트 커크, 휄럼(Kirk Whalrum)으로 이어졌고,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의 음악성을 빼어 닮은 내지(Najee)의 등장 또한 환호 받았다. 알토 색소폰의 진한 울림을 선사했던 데이빗 샌본의 흔적은 1990년대 팝스타로 나선 데이브 코즈(Dave Koz)와 캐나다 출신 여성 색소포니스트 캔디 덜퍼(Candy Dulfer), 워렌 힐 (Warren Hill)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연주 음악을 팝의 경지로까지 승화시킨 케니 G는 재즈를 넘어 가요,팝, 월드 뮤직, 클래식 등 전 장르의 음악에 영향을 준다.

클럽의 이곳저곳을 누비며 카리스마적인 울림을 선사했던 색소폰은 어느덧 감미롭고 가슴깊이 스며드는 아름드리 선율 악기로 인식됐다. 컨템포러리, 스무드란 꼬리표를 달고 나온 재즈 색소폰. 분명한건 시대에 흐름에 발맞춰 여타 장르와 지속적인 만남을 가져온 것이 재즈고 그 선봉장이 바로 색소폰이었다. '가장 재즈적인 악기' 색소폰은 지금 이순간도 만인이 사랑하고 원하는 '팝'의 옷을 입고 라디오 전파와 방안의 스피커를 통해 재즈의 느낌을 전파해 갈 것이다.

  2006/12 정우식 (jasbso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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