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요일의 기록 - 10년차 카피라이터가 붙잡은 삶의 순간들
김민철 지음 / 북라이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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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4)

트레바리에서 김민철 작가 강연이 있어서 급하게 읽었다. 결론은, 여태까지 읽은 ‘여성작가의 에세이‘ 중에서 최고. 2015년에 나온 책인데 왜 빨리 읽지 못했나, 정말 아쉽다.

책과 여행, 취미 등을 말하면서 참 공감하는 부분이 많기도 하고, 내가 모르는 분야를 말하기도 한다. 심각하지 않고 유머와 재치가 넘치는 글들. 유쾌하게 살고 말하는 저자의 태도가 정말 좋다.


> 책의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때의 나는 기억난다

책읽기에 관한 문장. 저자는 정말 뒤돌면 까먹을 정도로 워낙 기억력이 좋지 않다고 한다. 나도 기억력이 좋지 않아 책이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때의 내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또 책이 풍기는 분위기와 거기서 나오는 단 하나의 이미지만을 기억할 뿐이다. 저자의 문장이 마음으로 다가오는 이유였다.


저자 부부의 취미는 맥주 병뚜껑 모으기란다. 병뚜껑 따위, 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정말 쓰잘데기없는 물건이다. 그런데 외국 지폐와 우표를 수집했던 시아버지의 반응이 정말 재밌다.

> 하루는 시부모님이 우리 집에 놀러오셨다가 수천 개의 병뚜껑을 보셨다. 너까지 이런 걸 모으는거냐, 라며 지긋지긋한 얼굴로 아들을 바라보는 시어머니의 등 뒤에서 시아버지는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리고 한마디를 남기셨다.
“병뚜껑은 모을 만하지.”

시아버지의 흐뭇한 표정과 시어머니의 어이없는 표정, 그리고 저자 부부의 뿌듯한 표정까지 눈앞에 그려진다. 이렇게 재밌는 장면이 지나가고 저자는 맥주 병뚜껑 모으기에 새로운 의미부여를 한다. 그들은 그냥, 재미있으니까 모으는 거다. 아무것도 아닌 맥주 코너가 그들에게 보물상자가 되고 둘만의 기쁨이 탄생하는 것이다. 작은 것에서 기쁨을 찾는 태도. 일상에 매몰되지 않고 의식의 끊을 놓지 않은 채로 항상 깨어 있는 삶의 태도. 그의 말이 퍽 반갑다.


>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시오. 내가 그 사람을 짝사랑한다는 사실을 아는 친구가 그 편지를 본다면 연애편지로 읽히고,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친구에게 보내는 일상적인 편지처럼 읽히도록 쓰시오.

저자가 카피라이팅 세계에 들어오면서 친 시험의 문제 중 하나다. 그는 모호한 감정을 어렴풋이 드러내게 요구하고, 심지어 짝사랑하는 사람에게 쓰는 문제여서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답안을 써내려갔다고 한다. 흠, 나는 이 문제에 어떤 글을 써내야 할지 아직도 감이 잡히지 않는다. 요리보고 저리봐도 알 수 없는 사랑이라는 감정.


마지막 5장은 쓰기를 다루는데, 앞선 글들과 감정이 다르다. 분위기가 완전히 가라앉는다. 카피라이터로 일하면서 변한 감정선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눈에 띄었다. 이 부분을 100% 공감하지는 못하지만(나는 글을 못 쓰고, 이만한 감정을 갖기에는 깜냥이 없으니까) 책과 글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나이를 먹을 수록 책읽기와 글쓰기의 온도가 점점 낮아진다는 느낌이 들어서이다. 사실 이 부분은 읽다가 울었다니까.

> 어느 날 문득, 불안해졌다. 내게 그토록 익숙했던 밤의 문장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카피라이터가 되면서, 남편을 만나면서, 이전의 나는 어디로 가버린 걸까.
지금의 나는 이전의 나와 많이 달라져버린 것 같았다. 확실히 생각은 단순해졌다. 감정도 직선으로 흐를 때가 많았다. 한 발 빼고 남의 이야기로 흘려버리는 때가 많았다. 나는 괜찮으니까, 라고 이기적으로 판단하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날들이 많았다. 감정의 끝이 많이 뭉툭해졌다. 문장 하나에 열광하는 일은 더 잦아졌지만, 문장 하나에 아파하고 끝없이 생각하고 우울해하고 결국 일기장을 꺼내는 일은 사라져버렸다. 속은 텅 비어갔지만, 사는 게 괜찮았으므로 나는 괜찮았다. 심각한 생각은 쓸데없는 구덩이를 파는 것처럼 느껴졌다. 가볍게, 최대한 가볍게, 그냥 흘려보냈다. 시간도 자각도.
그러다 보니 나는 대충 괜찮아졌고, 그런 일들이 반복이 되자, 더 이상 괜찮지 않았다. 물론 하루라도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그저 버티는 건 정말 사는 걸까’라는 노래 가사 한 줄을 며칠 동안 곱씹던 20대는 지금 내겐 너무 버거웠다. 누구의 20대가 안 그렇겠냐만은. 그러니까 말도 안 되는 욕심이었다. 20대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으면서 20대의 나를, 그때의 글쓰기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 불안했다. 입구만 있고 출구는 없는 불안함이었다.

전자책으로 읽었는데 종이책으로 한 권 들이고 우울해질 때마다 펴려고 한다. 다시 말하지만 참 마음에 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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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옳다 - 정혜신의 적정심리학
정혜신 지음 / 해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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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4)

독서모임에서 작년의 최고의 책이라고 추천받은 지 거의 반년만에 겨우 폈다. 올해 초에 한동안 마음이 무거워서, 처음부터 세월호 이야기를 하는 이 책을 꺼내들 수 없었다. 여러 일이 있고 나서 마음이 진정되고는 겨우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읽기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가자지 슬픈 에피소드를 견디기 힘들었지만 그것만 견디고나면 말과 행동, 심지어 생각까지 함부로 하면 안되겠다는 교훈 아닌 교훈을 얻었다. 그리고 어떤 일이든지 남에게 공감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책에서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하지 말라고 하지만, 우리가 대화하면서 이걸 피하기가 얼마나 힘들까. 도움이 되고 싶어서 한마디하는 것인데, 진심어린 공감 없는 충조평판은 상대에게 더 큰 상처로 남을 뿐이다. 충조평판을 빼면 달리 할 말이 없어서랜다. 아는 게 그것밖에 없으니까. 해결을 하려하는 게 아니라 그저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니, 공감이란 힘든만큼 상대에게 큰 위로가 되어주기도 한다.

제목처럼 당신은 항상 옳다, 라고 주문을 외워본다. 가장 절박하고 힘이 부치는 순간에 사람에게 필요한 건 ‘네가 그랬다면 뭔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너는 옳다’는 자기 존재 자체에 대한 수용이기 때문이다. 이게 정말 맞는 말이면서 무작정 긍정하기 힘든 것이, 나는 상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상대의 마음을 100%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완벽한 공감을 하지 못한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도 같은 고민을 털어놓는다. 책을 썼다고, 많은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고 해도 공감은 여전히 힘든 일이다.

나는 여지껏 타인의 말을 잘 들어주고 공감을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고나시 여태까지의 대화에서 내 태도가 어떠했는지 자문해본다. 남에게 개입하고 잘난척하고 싶어 충조평판을 함부로 했다. 마음은 열지 않은채 그저 귀만 열고 듣기만 했다. 내가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공감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 내가 나눴던 모든 말들은 그저 표피적인 것이었을까. 많은 생각이 들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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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센스 - 흥분하지 않고 우아하게 리드하는
셀레스트 헤들리 지음, 김성환 옮김 / 스몰빅라이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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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3)

자기계발서로 분류되는 책이어서 딱히 읽을 생각은 없었다. 부서 후배가 리디셀렉트를 통해 읽는다길래 생각나서 읽기 시작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한마디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요즘이어서 구미가 당겼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다 읽어도 딱히 새로운 건 없다. 책의 소제목만 봐도 괜찮고, 그냥 테드 동영상을 보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상세한 내용은 크게 필요 없다. 흠, 어째 테드 영상을 토대로 만들어진 책은 다들 별 게 없냐.

목차만 봐도 전체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말을 하기보다는 들으려고 노력한다,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상대에게 질문을 한다, 잘 모르면서 아는 척하지 않는다, 귀가 아닌 마음으로 듣는다, 쓸데없고 주제와 관련 없는 생각은 흘려보낸다, 옳음보다 친절함을 선택한다, 비언어적 표현에 관심을 가져본다... 어때요, 참 쉽죠?

같은 자기계발서지만 성공을 위한 책보다 그나마 나은 점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점, 인생의 성공이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팁을 말해준다는 점이다. 자기계발서의 기조는 유지하면서(알지만 하지 않는다!) 성공과 일상의 영역은 다르니까 말이다.

오랜 후가 아니라 당장 내 옆의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 타인과 대화하면서 주변에 잘못된 반응한다 싶을 때마다 한번씩은 펴볼 만한 책이다. 그렇다고 막 좋은 건 아니고. 뭐, 그냥 테드 동영상 보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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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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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3)

괴테의 출세작이자 사랑 이야기의 대표 소설. 베르테르 효과라는 단어를 만들어 낼 정도로 사람들에게 영향력이 컸던 소설. 짝사랑의 절절함을 너무나도 잘 그려낸 소설. 이라지만 2012년에 읽었을 때에는 큰 감흥은 없었다. 진짜 사랑을 하고난 후에는 다르게 읽힐 거라는 조언으로 묵히고 묵혀서 다시 꺼내들었는데...

작품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건지, 아니면 아직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건지 이번에도 크게와닿지 않았다. 1774년, 무려 200년도 더 된 사랑 이야기를 읽는 느낌은,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은 변하는 게 없구나 싶다가도 이미 이런 류의 소설은 수도 없이 나왔으니 괴테의 불세출의 출세작이라는 문학사적 의미 말고 크게 의의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예나 지금이나 먼 미래에나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감정과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은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그 표현 방법만 달라질 뿐이지 사랑과 호감의 감정, 그리고 짝사랑이 혼자 애태우고 쩔쩔매는 마음은 어찌할 수 없지 않을까?

> 또 날씨가 너무 좋을 땐 그것을 핑계삼아 발하임으로 가는 것이다. 일단 발하임까지만 가면 로테가 살고 있는 곳은 불과 반시간의 거리밖에는 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로테를 느낄 수 있는 대기속에 너무 가까이 온 거다. 그래서 눈 깜짝하는 사이에 벌써 나는 그곳에 가 있는 거다. 나는 할머니에게 자석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배가 그 산에 너무 가까이 접근하면, 갑자기 쇠붙이란 쇠붙이는 그리로 빨려가 버리고 못 같은 산 쪽으로 날아가 버린다. 그리하여 그 배에 탔던 사람들은 모두 허물어져 떨어지는 널빤지 조각에 깔려서 비참하게 죽는다는 것이다. _69쪽

> 신께선 내가 사랑해 마지않은 그대들을 축복하시고, 내게 베풀어주시지 않았던 좋은 나날을 그대들에게 내려주시기를! _115쪽

> 때때로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이다지도 외곩으로 그녀만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지, 다른 사람을 사랑해도 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나는 그녀 외에는 아무것도, 아무도 모르고, 또 그녀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데! _1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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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5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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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3)

1. 나에게 <위대한 개츠비>는 이런 책이다. 2003년 학원 지하에 있던 동네 서점에서 내 인생 처음으로 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책. 다 읽고서는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책도 이렇게 재밌구나, 했던 책. 자주는 아니지만 2-3년에 한번씩은 꼭 읽는 책. 민음사, 문학동네, 열린책들 등 큰 출판사에서 출간한 판본을 모두 가지고 있는 책. 정말 좋아하는데 왜 좋아하는지 설명할 수 없는 책.

2. 이 책은 <어린 왕자>처럼 읽을 때마다 다르게 읽힌다. 어릴 적에는 그저 테스트를 좇고 끝을 보기 위해서 책장을 넘기기 바빴는데 커가면서 각 인물들의 모습과 성격이 매번 달리 보인다. 개츠비는, ‘위대한’ 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그토록 순수해보였는데

> 그는 그 과거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나는 그가 되돌리고 싶은 것이 데이지를 사랑하는 데 들어간, 그 자신에 대한 어떤 관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그의 삶은 혼란스럽고 무질서해졌지만, 만약 다시 한 번 출발점으로 돌아가 천천히 모든 것을 다시 음미할 수만 있다면,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낼 수 있었으리라…

라는 문장을 읽고나니, 이제는 이 인간이 순수해서인지 멍청해서인지 정말 얼탱이가 없는 모습으로 비춰진다. 그가 데이지를 정말 사랑했던 건지, 아니면 데이지가 속해 있는 상류사회와 그 속에서 나른하게 퍼질 수 있는 분위기(그런 점에서 개츠비의 연정의 대상이 꼭 데이지가 아니어도 됐으리라)를 열망한 건지 헷갈린다.

데이지는 순백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순수한 인물로 기억됐는데,

> (개츠비의 저택을 둘러보며) 갑자기 데이지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셔츠에 머리를 파묻고 왈칵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 “너무나 아름다운 셔츠들이에요.” 겹겹이 쌓인 셔츠 더미 속에 그녀가 훌쩍거리는 소리가 묻혀 버렸다. “슬퍼져요, 난 지금껏 이렇게…… 아름다운 셔츠를 본 적이 없거든요.”

같은 문구를 보니 돈과 여유만 밝히는 미련퉁이에 엄청나게 수동적인 인물의 이미지로 바뀌었다(전형적인 전형적인 스테레오 타입의 캐릭터지만 넘어가기로 하자).

3. 닉을 제외한 모든 인물들이 부도덕적인 사실은 이번에 다시금 느껴졌다. 톰 뷰캐넌(폭력과 거친 말투를 쓰고, 배우자가 있음에도 정부를 둬서 시시덕거림), 조던 베이커(골프 경기 중 반칙을 쓰는 등 부도덕적인 인물로 그려짐) 등이 보여준 모습에서, 성공하려면 이런 자질을 가져야만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흘러넘치는 돈을 주체하지 못해 하루 걸러 하루 성대한 파티를 열었던 당시의 미국이 이겨내지 못한 도덕적 해이를 아주 뚜렷이 보여준다.

4. 디카프리오가 주연으로 출연한 동명의 영화 ‘위대한 개츠비’를 보고서 책을 읽으니 자연스럽게 영화의 장면이 하나둘 떠오르기도 한다. “내가 개츠비요.”라는 대사와 함께 뒤에서 폭죽이 터지는 장면이나, 강렬한 색감과 눈이 돌아갈 정도로 화려한 파티 장면은 책이 묘사하지 못한 미국의 ‘황금시대’의 색채를 얼마나 잘 옮겨놓았는지, 나에게는 책과 영화 모두 만점짜리 작품들이다.

6. <위대한 개츠비>는 첫문장뿐 아니라 마지막 문장도 정말 유명한데,

> 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 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라는 다소 알 수 없는 문장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방해에도 앞으로 나아가는 일은 긍정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이런 의문이 들기도 한다. 흘러간 것들을 다시 잡으려고 노력해야 하는지, 그게 잘못된 것인지 알면서도 계속 손을 뻗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지경이다. 데이지가 개츠비의 저택을 구경할 때 개츠비가 느꼈던 감정에서 실마리를 잡아보자면

> “안개만 끼지 않았더라면 만 건너에 있는 당신 집이 보일 겁니다. 당신 집의 부두 끝에는 항상 밤새도록 초록빛 불이 켜져 있더군요.” 개츠비가 말했다.
> 데이지는 느닷없이 개츠비에게 팔짱을 끼었지만 그는 자기가 방금 한 말에 정신이 팔려 있는 것 같았다. 아마 그 불빛이 지니고 있던 엄청난 의미가 이제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는지도 모른다. 그를 데이지와 갈라놓았던 그 엄청난 거리와 비교해 보면 그 불빛은 그녀와 아주 가까이, 거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정도로 가까이 있는 것 같았다. 달 가까이 있는 어떤 별처럼 그렇게 가깝게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한낱 부두에 켜져 있는 초록색 불빛에 지나지 않았다. 그에게 마법을 부렸던 물건 중 하나가 줄어든 셈이다.

라는 문장에서처럼, 과거를 애타게 그리다가 그것을 기껏 잡고나니, 그것은 그저 미화된 기억을 두르고 반짝였을 뿐이었고 실상은 별거 없었던 것이다. 우리를 미래로 이끌어가는 것은 보이지 않는 미래가 아니라 과거에 보았던 미래에 대한 희망과 열망일까? 여전히 알 수 없는 문장을 남기고 책은 다시 덮혔다. 다음에는 어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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