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은 제법 성공적이었다

고 볼 수 있다. 다이어트도 (더 빠지진 않았어도 도로 찌진 않았으니까) 괜찮았고,

굿바이 쇼핑 - 옷 안 사기도 해냈다. (세일이라든가, 독특한 디자인이라든가, 새나 물고기나 꽃무늬가 있다거나, 조그만 레이스가 오종종 달렸다는 이유로 엽서수집 하듯이 옷을 사들였던 나날들이여...) 

다이어리나 수첩도 한개도 안 샀다.(이미 나는 140살까지 써도 남을 만큼의 다이어리를 갖고 있다)

매일매일 일기도 썼고,

가계부도 적었으며,

요가도 빠지지 않았고

초단위로 뛰어다니면서 이것저것 공부도 열심히 했고

절약했고, 저축했고, 쓰레기랄지 합성세제랄지 지구에 해가 될만한 것들도 퍽 많이 줄였다. 나는 죄책감이 한결 줄어든 나날들이 썩 맘에 들었다.

 

그렇게나 잘 했는데...

 

알라딘에 부지런히 글을 써 서재의 달인이 되겠다! 는 야무진 계획은

벌써 물 건너 간 것 같다. 올해도 나는 컵을 자급자족해야 할 운명인가 보다. 크흑... 마지막 페이퍼가 일년 전에 쓴 거라니!

 

 

*

 

친정과 시댁을 오가며 설을 지내고 오는 길, 이상하게 목이 아프다 싶더니

다음 날부터 몸이 으실으실 춥고 떨렸다. 나는 어지간해서는 잘 안 아픈데, 그건 한번 아플 때 죄다 아파버리기 때문이다. 아, 이번이 그 한번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어느 새벽녘, 찬 거실로 기다시피 나가 아스피린을 으득으득 씹어먹는데

그 독특한 오렌지맛이 어찌나 독하고 서럽던지

나는 열이 오른 이마를 베란다 유리에 대고 질질 울기도 하였다.

갈비뼈 사이로 새액새액 뜨거운 바람이 지나갔다.

누가 내 폐를 철사줄로 꽁꽁 동여맨 기분이었다. 

열심히 신나게 산다고 생각했는데, 

내심 그게 좀 힘들었던 모양이다.

나는 하나를 거두기 위해 백개를 뿌리겠다고 말했고 정말로 뿌려댔다.

당연히 지나친 욕심은 좋은 결과가 못됐다.

그러니까 조급하고 화가 나서 더 하라고, 더 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할퀴고 욕하고 몰아세웠다.  

남도 아닌 내가 나를 들볶아쳐 그게 병이 되었으니 누굴 탓하랴.

 

초반부터 페이스 조절에 실패한 마라토너 같은 기분, 그건 어쩐지

실패자인 것 같아서,

삶이 너무 나한테만 심술궂다는 생각이 들어서

에라 모르겠다고 골골 앓았다.

 

 

*

 

그리고 오늘 오후쯤 늦은 잠에서 눈을 떠보니

눈이 푸지게 쏟아지는 중이었다.   

나는 두유를 컵에 따라 전자렌지에 넣고, 따끈하게 데워지는 2분 동안 눈구경을 했다.

요가를 가는 날이지만 빠지기로 했다.

꼭 가려고 했던 장소가 있었지만, 다음에 가기로 했다.

해야하는 공부도 미뤘다.

두유를 마시는데, 고소한 맛이 느껴졌다.

나는 제법 나았다는 걸 알았다. 치유는 달콤하다. 이 순간이 있어서 사람은 아파도 견딜 수가 있는 거다.

 

전유성은 동료 개그맨들이 빵빵 터트리고 잘 나갈 때 늘 그 뒤에 선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럴 때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고- 괜찮아, 어차피 평생 할 일이니까 지금 당장 튀지 않아도 돼.

그 이야기를 오래오래 생각했다.

지금 당장 튀지 않아도 돼.

그게 위로가 됐다.

 

   

*

 

기운이 났으니 책 구경을 -

 

 

오! 내가 잠깐 아픈 사이 이런 희소식이. 연수사마의 신작이라니, 나는 이 책을 되게 오래 기다려 온 것만 같다. 예약판매는 3시에 온다는 여우를 기다리는 2시의 어린왕자 같은 마음이 들게 해서 좋다. 나는 지금 2시에 있고, 이 기다림은 마냥 즐겁다. 아직 얼마간은 더 즐거울 테고,

 

받으면 더- 더- 즐겁겠지.

 

 

 

 

 

 

 

 

황정은은 여러모로 신뢰를 주는 작가다. 황정은은 황정은이다. 책 소개글을 보지 않아도, 목차를 확인하지 않아도, 덜컥 품에 안을 수 있다. 황정은이니까. 이건... 내가 그녀의 소설에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다.

 

 

 

 

 

 

 

 

 

 

나는 천명관의 소설에 그런 리뷰를 쓴 적이 있다. 그가 넘어서려고 싸워야 할 건 그의 데뷔작이라고. 길고 오랜 싸움 끝에 그가 신작을 냈다. 이 소설은 그가 영화에 보내는 마지막 프러포즈라고, 어디서 그런 글을 읽고 마음이 짠했다. 애틋하고 눈물겨운 그의 사랑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여전히 나는 그의 팬이며 그의 편이다.   

 

 

   

 

 

 

    

 

 

 

 

*

 

그리고 이 한 권의 책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고 싶다. 아픈 와중에 나는 이런 책을 읽었다. 방안에 기타 연주를 틀어놓고(우연찮게도 그것은, 번역가님의 아들이 연주한 것이었다. 이건... 참으로 드라마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펐던 게 다행이었다. 그래서 후루룩 읽어버리지 않았으니까. 쉬엄쉬엄, 천천히, 잠이 들었다 깼다 하면서, 곁에 가장 가까이 있던 책이었다. 아직도 몇장이 더 남았는데, 서둘러 읽지 않고 있다. 며칠 더 두고 읽어야지. 결말을 맘껏 상상하고 싶다.

 

나는 지금 어떤 마음이냐면, 좋아하는 연주자의 공연이 멈추는 게 두렵고 싫은, 그런 아이같은 마음.

 

이 책을 덮을 즈음, 나는 다 나았을 것이고

 

 

 

어쩌면 피멍 든 손가락과

손톱 끝에 굳은살이 박혀서, 다시

씩씩하게, 기타를 칠

용기가 생기겠지

 

그런 대책없는 희망이 생긴다.

 

아마 그때의 연주는 아프기 전보다

조금쯤은 더

아주 조금이라도

듣기에 낫겠지.

 

 

*

 

2월이 되었다.

여전히 2월에도 옷 안 사기, 절약과 저축, 죄책감없는 나날과

티가 안 나도 내 자리에서 내가 할 일을 묵묵히 하기- 라는 야무진 계획.

그러나 조금 천천히, 약간은 즐기면서

여유롭게 하려고 한다.

당장 튀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무하면서. 어차피 평생 할 거라면.

올해 아플 걸 다 몰아서 아파버렸으니 이제 아프지도 말아야지.

꼭, 그래야지.

 

 

 

 

 

 

 

 

 

 

 

 

   

    



 
 
순오기 2012-02-01 05:41   댓글달기 | URL
아래 글들은 너무 늦게 보는 바람에 댓글 달기 뻘줌해 그냥 지나쳤지만
새로운 2월에 올린 첫 페이퍼에 1빠로 댓글을 남기게 돼 기뻐요.^^
난 언제나 오즈마님 팬이고 편이라는 걸 알아주세요~
평생 할 그것도 응원하고, 올 한해 더 이상 아프지 않을거라는 말도 믿어요!!

2012-02-03 04: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즈마 2012-02-07 16:34   URL
순오기님...^^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저야말로 마음 깊이, 순오기님의 팬이고 편입니다.
제 진심이 전해지시나요?

2012-02-08 1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2-02-01 08:31   댓글달기 | URL
:)

오즈마 2012-02-07 16:34   URL
찡긋!!!

인디언소년과나비 2012-02-01 12:17   댓글달기 | URL
처음 댓글 다는 것 같아 좀 뻘쭘하네요,,^^;;
전유성이 한 말은 제게도 위안이 되었어요.
제 서재에 옮겨 담았답니다. 괜찮지요???
그리고 [기타보이]의 역자의 아들이 연주하는 것을 들으며 책을 읽으신것 저와 같아요!!
괜히 막 기뻐요,,,ㅎㅎㅎ
암튼 저도 오즈마님의 글을 읽으며 새삼 다시 결심합니다. 감사합니다.

오즈마 2012-02-07 16:37   URL
하하 인디언소년님도 하린군의 기타연주를 들으셨구나. 엄청 반가워요! 우린 같은 기타리스트의 팬인 셈이네요?^^ 공감대가 있는 사람끼리 만나면 정말 반갑죠!

인디언소년님도 저도, 사실 지금은 지치고 힘들지라도, 우린 괜찮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장 튀지 않아도... 평생 할 일을 찾았으니까. 그건 대단하다고, 믿어요. 그렇지 않아요? 우린 멋져요ㅎㅎ


날이 추운데, 햇빛이 반짝반짝거려요. 좋은 소식이 올 것 같아요. 인디언님에게도, 저에게도. 이 오후를 좀 더 즐기고 싶네요.

moonnight 2012-02-01 12:31   댓글달기 | URL
고생하셨어요. 치유의 순간 그 달콤함이 있어서 아파도 견딜 수 있다는 말씀. 무척 공감합니다. 새해라 그런지가 금방인데 벌써 한달이 지나다니 참 놀라워요. ^^; 제게도 1월은 쉽지 않았지만 2월은, 그리고 3월은 점점 더 행복해 질 거라고 믿어요. 오즈마님께도 더더욱 건강하고 행복한 시간 오시길 바랍니다. ^^

오즈마 2012-02-07 16:38   URL
1월아 지나가라 지나가라 하고 악담을 퍼부은 저 때문일까요?^^ 하지만 달빛님의 쉽지 않았던 1월이 지나가 제 맘도 좋아요. 뭐든 두번째는 쉬우니까, 2월은 우리에게 쉬울 테구, 3월은 더욱 익숙할 것이에요. 우린 더 행복해질 거에요. 진짜로, 이제 좋아질 일밖에 안 남았어요. 전 그렇게 생각해요.

2012-02-01 12:33   댓글달기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07 16: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paviana 2012-02-01 13:22   댓글달기 | URL
꼭 아프지 마세요. 약속 지켜야 돼요.
벌써 한달이 지났군요.2월은 짧으니 좀더 열심히 살아야겠어요.

오즈마 2012-02-07 16:43   URL
파비님, 이번에 제가 다 긁어모아 아파버렸으니 이제 파비님은 건강하고 행복하셔야 해요. 요새 그 두 단어가 너무나 절실해요. 건강과 행복, 건강이 없으면 행복도 없어요. 그죠?

비연 2012-02-01 14:05   댓글달기 | URL
오즈마님 글은...참 따뜻해요..^^

오즈마 2012-02-07 16:43   URL
비연님이 오즈마를 바라보는 눈은 더 더 따뜻하지요. 그 눈 빛 안에서 저는 행복한 사람이랍니다.

마노아 2012-02-01 15:32   댓글달기 | URL
오즈마님이 스스로에게 준 따뜻한 휴식과 평안에 제 마음도 달달해져요.
오즈마님은 천천히 날아오르고 있어요. 그 깃털이 눈부셔요.
오즈마님 눈에 비쳐질 찬란한 세상이 감격스럽고요.
나는 언제나 오즈마님 편! 오즈마님은 제 마음속에서 늘 달인이어요.^^

오즈마 2012-02-07 16:44   URL
마의 평안한 마노아님! 사람들이 마노아님을 사랑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어요. 이런 마노아님을 나만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미녀는 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 행복하도록 명동에 내보내야 하는 거겠죠(이건 뭔소린지) 아무튼, 마노아님의 응원을 받아, 오늘도 씩씩한 오즈마였어요! 제가 다 아파버렸으니, 올 한 해 마노아님도 절대 절대로 아프지 않을 거에요!!

책읽는나무 2012-02-02 08:54   댓글달기 | URL
아~ 오즈마님!
서재달인 아니어도 제게도 당신은 달인으로 각인되어 있답니다.
몇 년동안 자리를 지켜주시는 여러님들.
그래서 저 또한 일 년에 몇 번씩 들어와도 줄곧 님들의 이름을 발견하면 정말 반갑고 기뻐요.
(이상하네요? 저도 드문드문 들어왔지만 항상 님의 이름을 보았던 것같은데..님도 드문드문 글을 올렸던 거에요?)
알라딘에 출근하지 않아도 내맘속에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는 알라디너라면 그게 바로 서재 달인 아니겠사옵니까?(제맘속 순위엔 님은 분명 10위권 안에 들어있어요.ㅋ)

근데 참 죄송한 말인데 말입니다.
님도 겨...결..결혼이란 것을 하셨군요.어제 마태우스님 서재에서도 품절남이 된 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이젠 님마저 품절녀가 되셨다니~~~
정말 많이 늦었겠지만 그래도 님께도 축하한다는 말을 남기고 싶네요.
이젠 주부로서 김지님과 통하는 게 생겨 대화의 농도가 짙겠어요.^^

건강관리 잘하시어요.요즘 감기 독하옵니다.
그리고 올 한 해 심기일전해보아요.
저도 몇 년의 결근계 제출하고 올해는 정말 서재질 열심히 해보려구요.
올해 나도 서재안에 노란 황금 달인 딱지 붙여 보려구요.ㅎㅎ

오즈마 2012-02-07 16:47   URL
아~ 나무님! 나무님! 이 얼마나 반가운 분인가! 서재 1세대의 귀환이로군요! 반가와라!

우리 모두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다구요!
물론 그 사이, 좋은 친구도 많이 생겼지만
사실 가장 반가운 것은 오래된 친구잖아요. 그렇죠?
나무님도 가끔은 우리가 보고 싶었나요?


그 사이 시간이 이렇게나 흘러서, 저는 아줌마가 되었고 ㅋㅋ
서재에도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지요.
여기도 사람사는 곳이라, 헤어지고 만나고 그런 일들이 생기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옆에서
떠나지 않고 계속있어주면 좋겠어요.
그건 불가능하겠지요?
하지만 꿈은 꾸어도 괜찮겠지요?

이제 컴백하셨으니 어디 가지 마시고 여기 있어주세요.
우리 같이 황금딱지 붙이고 컵도 받고요 네 ㅎㅎ
반갑고, 또 반가워요.
가슴으로 안아드려요, 나무님!

레와 2012-02-02 09:51   댓글달기 | URL
오늘은 어때요, 오즈마님?


얼른 나아요. 그리고 알라딘 마을에 오즈마님의 흔적을 자주 보고파요. ^^

오즈마 2012-02-07 16:48   URL
오늘은 기다리던 소식을 받아서 기뻐요, 레와님. 별 거 아니지만, 마음으로 기다리던 일이었어요. 그래서 조금 힘이 났어요.
누군가 오늘은 어떠냐고 물어봐주니 참 좋아요. 레와님은 어떠셨어요? 그리고, 앞으로는 어떠실까요? 아, 저는 레와님의 일상과 미래가 너무나 기대되요!

또치 2012-02-02 14:28   댓글달기 | URL
응, 쉬는 건 좋은 거예요...
우리, 게으름 좀 피우면서 느긋하게, 즐겁고 행복하게 잘살아요!

오즈마 2012-02-07 16:58   URL
즐겁고 행복한 삶...제가 그걸 누리는 사람을 하나 아는데. 그 분이 저를 제주도 집에 초대해준다면 어쩌면 저도 누릴 수 있을지도..눈치는 주는 건 아니고요, 아니 머 그렇다고요...ㅎㅎ

아름다운 또치님, 행운을 주는 또치님! 요새 어떠세요? 여전히, 여전하시지요? 저는 또치님이 너무 근사해서, 막 미쳐버릴 것 같아요 ㅎㅎ 부럽고, 부럽고, 부러워요!
 

 

 

 

 

작년에 받았던 마지막 선물은, 김지님이 보내주신 택배였다. 그건 크리스마스 즈음에 도착했다. 상자 안에는 이런 것들이 들어 있었다. 손목이 긴 워머, 신랑과 나의 양말, 심지어 집에서 만든 누룽지(!!! 다이어트를 하느라 쫄쫄 굶는 나에게 뜨거운 숭늉이라도 먹이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카드. 카드는 김지님의 막내딸 몽몽이가 보냈는데, 몽몽이는 아직 애기라 글을 못 쓰니까 엄마에게 불러주었다고 한다.

오즈마 이모, 눈이 오면 만나요.

눈이 올 것 같아요.

아, 김지님은 시인을 낳았어.

 

 

나는 그 카드를 연말 내내 장식장 위에 펼쳐두고 오며가며 읽었다.

그 사이 눈이 몇 번 왔고,

뱀은 용이 되었다. 시간의 힘이란 대단해서, 폐인처럼 살던 나도 서서히 마음을 추슬렀다.

1월 1일의 기운은 쓰레기같던 내 생활에도 새 활력을 불어넣어줬다. 내가 참... 많은 것을 세월에게 빚지고 산다.

누룽지를 먹으니까 기운이 났다. 역시 사람은 곡기를 먹어야지 돼. 나는 그 힘으로 다시 외출을 시작했다. 다이어리에 날짜를 하나하나 뚜렷하게 적었다. 무려, 요가를 끊었고(이 이야기는 다음에 하겠다. 못 참고 하나만 말하자면... 내 짝꿍 할아버지가 쟁기자세 하시다 방구를 두 방이나 뀌었다!!) 어딘가 이력서를 넣기도 했고, 이것저것 새로운 일들을 마구 벌렸다. 우리 엄마가 말씀하시기를 어느 구름에 비 올지 모른다고 했다. 올해는 씨앗을 더 많이 뿌릴 것이다. 어떤 건 말라죽기도 하겠지. 잎 틔우지 않기도 하겠지. 그래도, 백 개 뿌려서 세개만 거두면, 그러면 풍년이다, 하기로 했다. 자꾸 실패하니까 욕심도 적어져서 작은 일에도 크게 기쁘다. 이것도, 세월에게 배운 거다.

 

 

 

그리고, 올해 처음으로 받은 선물 이야기.

알라딘이 나한테 영화를 보여줬다. 시사회에 담청된 거다!!! 누가? 내가! 이보게, 자네 정말 결혼 잘 했지 아니한가!!! 부러진 화살, 은 우리 부부가 꽤나 기다린 영화였다. 요가 첫수업을 마친 나와 신랑은 전철역에서 만나 씬나게 강남으로 달려갔다. 시골 부부가 강남에서 얼마나 아리버리하게 굴었는지는 차마 생략하겠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런 건, 찾아보니까 너무 좋은 글들이 이미 많았다. 더 근사하게 말할 자신이 없으면 아예 침묵하라고 했다. 나는 리뷰를 쓰려는 게 아니고, 호객 행위를 하고 싶다.

 

보세요!

이 영화, 보세요!!

하고 나팔 불고 북 치고 뚱따다뚱땅!!!

 

 

멋진 영화다. 영화의 만듦새나 캐릭터의 심리 변화의 정당성이나 그런 걸 따지자면 뭐 흠잡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좋으면 다 좋고 싫으면 다 싫은 종류의 사람이니까, 나한테 이 영화는 그냥 다 좋은 영화다.

 

 

"진실까지 가는 길이 너무 멀고 힘듭니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하지만 돌아가진 맙시다."

"안 그럴 거예요."

 

 

이쯤에서 나는 질질 울기 시작했고, 신랑은 내가 토이스토리3을 보다가도 폭풍 눈물을 흘리는 줄 아니까 당황하지 않았다.

 

언젠가! 당신들은! 국민들의! 준열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변호사가 검사를 향해 삿대질을 할 때, 나도 똑같이 외치고 싶었다. 시간은 흐르고, 언젠가 고달파 미치겠는 이 시대도 저문다. 그 후에 심판을 준비해야 한다. 당신들, 어금니 꽉 깨물어라.

 

 

영화를 보고 나서, 신랑과 나는 몹시 흡족한 기분이었다. 바보 남편이 집에 가는 버스를 못 찾아서 두 정거장이나 콧물 흘리며 걸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적어도 알라딘에 올리지 않기로 약속했다) 버스 안에서 우리는 석궁 교수를 검색했고, 우리가 미처 몰랐던 사건의 내막, 진실의 뒷면, 이 시대의 진실은 어디에 있는지, 두서없는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눴다. 

 

 

집에 오니 문재인 님이 텔레비전에 나올 시간이었다. 우리는 씻지도 않고 티비 앞에 앉았다. 어느 지점에서 나는 질질 울었고, 신랑은 역시나 말리지 않았다.

 

 

참 괴로운 시대를 살고 있구나, 라고 생각한다. 너무, 힘들다. 신랑 월급만 빼고 모든 게 쭉쭉 오른다. 올 겨울 내내, 보일러 한 번을 맘놓고 못 틀어봤다. 수족냉증이 더 심해졌다. 애호박 하나를 편하게 못 샀다. 게다가 내 직업은 권리없이 의무만 많아서, 내야할 세금이 장난 아니다. 진짜로 다리가 후덜덜 하다. 우리는 하우스푸어, 대책없이 애를 낳아선 안된다고 한다(신혼부부 재테크의 첫째 항목이다. 2번은 출산 후에도 할 일을 찾아서 수입을 올리라는 거였다) 우리는 함부로 아플 수도 없고 암에도 걸리면 안된다. 정말, 너무, 가난하고, 그지같고, 후지고, 죽겠다.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전 정치인은 깔때기를 내려놓고 추운 감옥으로 들어갔고 우리가 믿을 건 달랑 팟캐스트 방송 하나 뿐이라는 생각에 맘이 우울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는 조금 희망이 생겼다. 진실은 주머니 속 송곳 같은 거라 결국 튀어나온다. 그 송곳 끄트머리라도 꺼내겠다고 목숨 거는 사람들이 있다. 이 영화도 그렇다. 이런 영화가 개봉하는 사회는 아직 희망이 있는 거다. 이런 영화를 보러 가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희망치는 올라간다. 그런 방송이 있고, 믿어도 될 만한 사람들이 몇 있다. 나는 이번에 모바일 투표를 했는데, 여기에도 희망을 걸었다. 희망은 감자줄기처럼 줄줄 딸려나오고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이 영화 보시라는 이야기다.

우윳빛깔 안성기님 연기를 직접 보시라는 말씀이다. 

이 영화, 어둡고 괴로울 것 같지만, 아니, 어둡고 괴로운 건 사실인데, 그걸 밝고 재미있게 풀었다. 거기에 백만점 준다. 힘든 얘기 힘들게 쥐어짜는 거야 누가 못하나. 근데 이 영화는 다르다. 뭐랄까, 긍정적인 에너지가 흐른다. 마지막 장면에서 안성기님 눈가 주름과 미소에 빠져들지 않는다면 그대는 냉혈한.

 

 

올해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범지구적으로,

정신없는 한 해가 될 것 같다.

우리 모두 어금니 꽉 깨물고, 팔 걷어부치고, 정신 바짝 차리고

지켜봐야 한다.

그 전에 먼저

이 영화를 보세요!!!

 

 

 

 

 

 

 

 

       



 
 
조선인 2012-01-13 08:49   댓글달기 | URL
정말 우유빛깔 안성기를 보기 위해서라도 꼭 가야죠. 이제 아이들은 지들끼리 만화 보라고 하고 난 다른 관에 쏙 들어갈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으니 꼭 봐야죠. 더군다나 오즈마님이 호객하는데 안 가면 내가 정말 친구가 아니죠. 그죠?

오즈마 2012-02-01 03:20   URL
오즈마의 자상하신 조선인님, 너무 늦은 답글이에요. 벌써 일년이 지났으니! 게으른 저를 마구 혼내...지 마시고 안아주세요 엉엉

아까 뉴스를 보니 이 영화가 200만을 넘겼다고 해서 무지 기뻤는데요, 글쎄 저와 조선인님이 보지 않았다면 199만998명이었겠지요ㅎㅎ 우리는, 뭐랄까, 좋은 세상을 위해 꾸준히 할 일을 찾아 하고 있는 하나의 꼿꼿한 화살들이 아닐런지요 :)

그나저나 제가 조선인님 친구에요? 조선인님은 제 친구고요? 우리는 이렇게나 좋은 사이고, 그건 영원히 변하지 않지요? 오오, 저는 너무나 영광이고, 진심으로 행복합니다 :)

마노아 2012-01-13 09:18   댓글달기 | URL
어금니 꽉 깨물어도, 두 주먹 불끈 쥐어도, 그래서 심장이 뜨거워져도, 이 글을 읽는 동안엔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져요. 아침에 보아서 더 좋아요. 덕분에 오늘 하루가 벅찰 것 같아요. 고마워요, 오즈마님. 이 영화 꼭 볼게요. 난 어제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를 보았는데 저도 그 영화 추천해요~ 아주, 행복해지는 영화였어요.^^

오즈마 2012-02-01 03:22   URL
마노아님 추천이라면 맨발 벗고라도 갈 텐데 제가 사는 작은 도시 작은 영화관에는 동물원 영화가 하루에 딱 한번만 해서, 헛걸음을 치고 왔지 뭐예요. 마노아님이 행복해지신 영화라 해서 저 꼭 보고 싶었는데. 지금 감기가 다 나으면, 서울로 가서, 마노아님이 받은 행복을, 저도 받아올래요.

웬디양 2012-01-13 09:25   댓글달기 | URL
토이스토리 3 보면서 펑펑 운 1인 추가요. <부러진 화살> 보셨군요! :) 저도 보고 싶은데 도무지 짬이 나질 않네요! ㅜ_ㅜ 그런데 오즈마님의 이 '부추김'이 저에게도 영향이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영화 문법이고 뭐고 좋으면 다 좋고 싫으면 다 싫고 좀 이래요. 괜히 반갑. 헤헷 :)

그리고, 요가 시작하셨다니 반가워요!!!! 저는 요즘 주 3회 요가를 채우기 위해 정말 바득바득 요가를 가고 있어요. 12월에는 총 다섯번밖에 못갔지만 (연말에 노느라 바빠서? ㅠ) 1월에는 벌써 여섯번이나! ㅋㅋ 그런데 전 다이어트는 같이 안해서 ㅠㅠ 거울속 나를 볼 때마다 좌절 또 좌절하는데, 오즈마님은 살도 빼고 요가도 하시면, 우와~ 진짜 아름다운 몸매가 되겠어요~ 흐흣~ (이뻐~)

오즈마 2012-02-01 03:24   URL
상큼발랄한 웬디양님!!! 웬디양이 요가 1년을 끊었다는 소식은 내 들었어요, 대단해요! 저는 여전히 몸이 잘 안 돌아가서, 막 부러지는 소리나고 ㅎㅎ 할아버지처럼 꿍꿍 앓는 소리나 내고 막 그래요. 제가 하는 건 명상 요가인데, 한시간 반이거든요. 한시간쯤 하고, 몸이 땀에 젖었을 무렵, 불을 끄고 누워 가만히 명상을 해요. 언젠가는 웬디양 생각도 했어요. 그녀도 나처럼 이렇게 긴 숨을 쉬며 손 끝까지 힘을 내고 있겠구나 하고. 근데 나도 열심히 하면 웬디양처럼 미녀 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생각해요, 네?

무스탕 2012-01-13 09:28   댓글달기 | URL
보고 싶은 영화가 잔뜩인 요즘인데 방학이라 애들이 제 발목을 잡네요.
물론 다 큰 녀석들이라 밥 맥여놓고 나가 놀다 와도 아무런 상관도 없는 애들이지만 (실은 엄마가 없는걸 더 좋아라 하지요;;) 엄마 맘이 그렇질 못해서리..
그래도 오즈마님에게 홀라당 넘어가서 이 영화를 꼭 보겠어요 :)

오즈마 2012-02-01 03:25   URL
무스탕님은 원래 영화광이시잖아요! 저도 무스탕님한테 꼬드김 당해서 본 영화가 얼마나 많다구요! 무스탕님은 저처럼 호객행위도 안 하시는데 막 땡기게 하시고 막! 아, 전 언제쯤 그렇게 고급스런 호객행위를 할 수 있을까요!

울보 2012-01-13 11:37   댓글달기 | URL
보고 싶은 일인 추가요,

오즈마 2012-02-01 03:26   URL
보셨어요? 꼭 보세요, 네네? 제 호객행위 쓸만하단 소리 좀 듣게요, 네! ㅎㅎ

레와 2012-01-13 11:39   댓글달기 | URL
네, 꼭 보겠습니다. 오즈마님!! ^^

오즈마 2012-02-01 03:26   URL
우왕 레와님까지 봐주신다면 전 진짜 성공한 호객오즈마가 되는 거에요!!!!

moonnight 2012-01-13 11:54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볼래요!!! 오즈마님이 호객하시는데 당연히!!! ^^

오즈마 2012-02-01 03:26   URL
역시 달빛님은 제가 외롭지 않도록 늘 곁에 있어주는 너무 너무나 좋은 분!!! 자, 전단지 받으시고 함께 나누어 주세요 ㅎㅎ

hnine 2012-01-13 14:14   댓글달기 | URL
어떻게 안볼수 있겠어요, 이리 말씀하시는데.

오즈마 2012-02-01 03:27   URL
아싸 성공이다! 저 막 으쓱으쓱 신나고 행복하고요 막!!

비연 2012-01-13 16:49   댓글달기 | URL
꼭 봐야겠어요. 오즈마님 추천이시면 더욱더!

오즈마 2012-02-01 03:27   URL
비연님 비연님, 보셨어요 보셨어요? 오즈마 호객행위 괜찮았어요? 안성기 아저씨 진짜 넘넘 근사하지 않으셔요, 네? 소주 생각나는 영화잖아요 그죠!!

치니 2012-01-13 17:17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보고 싶어서 이 알라딘 이벤트 신청하려다가, 강남에서 하길래 포기. 서울 살아도 강남만 가면 어버버 + 정신없어 패닉 상태 되는 건 마찬가지여요. ㅠ 그러니 우리의 오즈마 님 신랑님은 아무 죄 없는 겁니다 ~ ㅎㅎ

그래요, 이 영화도 보고, 힘도 더 내고, 어머니 말씀대로 어느 구름에서 비 내릴지 모르니까, 그 흔하지만 갖기 힘든 '희망' 가지면서, 그렇게 올해를! 왠지 내년에는 조금은 더 살 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모두 이렇게 간절하니까요.

오즈마 2012-02-01 03:29   URL
오즈마의 친절하고 다정한 치니님, 제가요. 얼마 전 정독도서관에 갔어요. 거기서 물을 한잔 마시려고 일회용 종이컵을 뽑았는데 왜 그 납작한 거 있잖아요. 근데 그 종이컵에 뭐라고 적혔느냐면, 희망이라구요. 딱 그 두 글자가. 댓글란에 사진이 올라가면 보여드리고 싶은데. 저는 왜 그 글자를 보고 눈물이 핑 났는지.
치니님은 그 이유를 알아주실까요?

알아주실 것 같았어요. 왠지, 그냥, 느낌이 그래요.

반디 2012-01-14 22:24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느 고운 님이 추천하셔셔 개봉날 조조 끊어놨습니다. 담주에 꼭 보러 가겠다고 약속했거든요. 음..소문 많이 내기로 했는데 여기 보니 제가 따로 소문 안내도 충분하겠군요^^;;
아..그리고, 백 개를 뿌려서 세 개만 건져도 풍년이라는 말씀에 반성합니다. 전 서너 개 뿌리고는 투덜댔으니 반성합니다. 그나저나 오즈마님 글이 너무 가슴에 와닿아서 슬픕니다.

오즈마 2012-02-01 03:30   URL
반디님, 그러나 백개를 뿌린다는 건 참 품이 많이 들고 지치기도 하고 그런 노동이네요. 저는 마흔아홉개쯤 뿌리다 울고, 눕기도 하고, 욕도 하고, 뭐 그렇습니다. 반디님의 밭에 주렁주렁 열매개 맺으면, 저에게도 그 꼬수운 씨앗을 조금만 나누어 주세요. 풍년을 기원합니다. 진심으로...

혜덕화 2012-01-15 11:28   댓글달기 | URL
오즈마님, 감사인사하려고 들렀어요.
노임팩트맨, 물건이야기, 굿바이쇼핑.
모두 주문했거든요.
노임팩트맨 정말 지금 제게 꼭 필요한 책입니다.
물건이야기도 좋았지만, 노임패트맨은 읽다말고 감사인사 올리러왔어요.
좋은 책 추천해주셔서 고마워요.
이 영화도 꼭 볼게요.
오즈마님 추천이라면 무조건 믿을 거예요.^^

오즈마 2012-02-01 03:31   URL
덕화님 덕화님 오즈마의 아름다운 혜덕화님, 저를 무조건 믿어주신다는 그 황홀하고 묵직한 말씀에 가슴이 쿵쾅거려요. 아! 저는 뭔가 쓸모있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아요. 힘내야지! 힘내서, 더 힘내서, 혜덕화님에게 영점 일그램이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겠어요!
 

 

 

어느 '아줌마들의 사이트'에서, 누군가 그런 걸 물어봤다. 언제 아줌마가 다 됐다고 느끼세요? 대답은 그랬다. 세일에 환장할 때, 몸매가 푹푹 퍼질 때, 지하철에서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릴 때... 그러니까, 뻔한 '아줌마'에 대한 답변이었다. 나는 경비 아저씨가 뒤에서 아줌마라고 부르자 뒤돌아봤을 때라든가, 음식물 쓰레기를 걱정할 때... 를 떠올렸다. 역시나 나도 그냥 뻔한 '아줌마'에 대한 생각이었다. 그런데, 누가 이런 답변을 달아놨다.

 

 

나를 둘러싸고 있던 얼음이 녹는 것을 느낄때요.

자존심 때문에 이익을 훼손하지 않고, 어르신들에게 싹싹할 때

아줌마라서 다행이라고 느낍니다.

 

 

나는 그 말을 적어놨다. 요새 나는 책보다 세상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학교가 아닌 사람에게서 더 풍부한 지혜를 얻는다.

 

 

 

    

   

 

 

 

 

 

 

 

 

 

 

 

 

 

얼마 전 서점에 나가서 이 책을 사왔다. 나는 모든 책을 거의 알라딘에서만 산다. 그것도 5만원어치씩 끊어서 산다(왜 그러는지는 선수끼리니까 다 알 것이다) 아마도 알라딘에서는 이 책을 무료배송해 줄 것이다. 나는 편하게 집에서 책을 받고, 적립금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왜 그랬냐면, 내가 좋아하는 어떤 아줌마가 들려준 이야기 때문이다(요새 그 사이트에 푹 빠졌다) 어떤 물건을 하나 살 때, 가격이 얼마나 싼가를 살피기 보다는 그 물건이 내게 올 때까지의 에너지가 얼마인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그게 옳은 소비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이 책을 주문하고- 출고하고- 택배 아저씨가 우리집까지 달려오시고- 하는 일련의 과정들보다는, 내가 사서 가방에 담아오는 게 훨씬 절약된다. 얼마의 적립금보다 그게 더 가치롭다. 알라딘에서는 별로 좋아할 발상이 아니겠지만... 저는 여전히 당신의 충성 고객이며 영원한 노예니까 가끔은 봐주세요...뿌잉뿌잉;

 

 

 

 

 

 

 

 

 

 

 

 

 

 

 

 

 

 

 

요즘 이런 책들을 읽고 있다.

 

 

올해는 미처 몰랐던 것,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신경쓰지 못한 부분들에 마음을 쓰기로 했다. 평소 읽지 않던 책도 읽는다. 요새 나의 화두는 환경, 절약, 소비, 그런 것들이다.

 

 

살림을 하면서 가장 놀란 건 내가 쓰레기 제조기라는 사실이었다. 우리 아파트는 일주일에 한번 분리수거를 하는데, 한주만 넘겨도 쓰레기통이 차고 넘친다. 가장 끔찍한 건 비닐 쓰레기가 어마무지하다는 거다. 꽉 차고, 꽉 차서, 막 기어나온다. 이걸 어떡하지?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될까, 정말?

 

 

'노임팩트맨' 은, 뉴욕 한복판에서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고 살아남기 1년 프로젝트를 실행한 한 사람의 이야기다. 심지어 그는 쓰레기를 만들지도 않는다.

 

 

...인생은 보잘 것 없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우리는 모두 그저 '사랑스러운 손님'일 뿐이다. 이렇게 값진 인생인데, 대수롭지 않은 것에 인생을- 그리고 우리 별의 자원을- 낭비하는 성향이 우리에게 공통적으로 내재되어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나는 대단한 신념이 있지도 않고, 야무진 사람도 못되며, 사실 큰 자신도 없다. 하지만 이미 너무 많은 쓰레기를 만들었고 만들면서 살고 있다는 걸 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대로 살아도 되는지를 고민하는 중이다. 요새 나는 덜렁대는 신랑에게 불 끄고 수도꼭지 잠그라는 잔소리가 폭풍 늘었고, 보일러와 전기 스윗치를 딱딱 내리고, 집에서도 내복을 입으며, 종이 한장을 쓸 때마다 심사숙고한다. 내가 이런다고 별로 달라지진 않겠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그렇게 사 온 김숨의 책은 침대맡에 두고 밤마다 조금씩 읽어나간다. 손이 시리니까 따뜻한 차를 타서, 절약형 스탠드를 켜고, 두꺼운 솜이불 안에서. 그러면 내가 사는 별이 얼마나 좋은 곳인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 별이 더 오래 존재했으면 좋겠다고 기원한다. 내 아이가, 우리의 아이들이, 나보다 더 많이 살아야 하는 곳이니까.

 

 

언제 아줌마가 되었다고 느끼세요? 라고 누가 물으면, 전에는 미처 몰랐거나 알려고 하지 않은 세상의 어떤 연약한 부분들을 짚고 넘어갈 때라고 답하겠다.

 

 

나는 근사한 아줌마가 되고 싶다. 이게 내 새로운 새해 목표다. 오늘이 5일이니까 작심삼일은 넘겼다. 최소한의 소비, 최대한의 절제. 이 별에 사랑스러운 손님으로 찾아와 있는 동안만큼은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지. 절대로 내가 플라타너스 한 그루 정도의 가치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2012-01-05 02:32   댓글달기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6 0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혜덕화 2012-01-05 09:32   댓글달기 | URL
어제 엄마에게 인도에 가서 배운 이야기들을 막 늘어놓으며 수다를 떨었습니다.
좀 더 절약하고 살아야겠다는 말 끝에 엄마가 그러시더군요.
나 하나 염색 안한다고 물이 더 깨끗해지지는 않겠지만, 목욕탕에서 흘려보내는 마사지와 염색 물을 보면, 나 하나는 더 보태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구요.
염색하지 않은 하얀 머리, 아이들이 생각할 때 떠오르는 할머니의 이미지랍니다.
인도에서 배워온 유용한 것 중의 하나, 휴지를 덜 쓰는 것을 배워왔습니다.
화장실마다 휴지와 휴지통 대신에 작은 수도꼭지와 바가지가 있더군요.
저도 노임팩트맨을 읽어봐야겠어요.

나 하나의 힘은 작지만
그런 하나하나의 나가 모여 살아서, 그나마 세상이 아름다운거겠지요.
오즈마님, 폭풍 잔소리 듣는 신랑과 미소 가득한 한 해 되시기 바랍니다.^^

오즈마 2012-01-06 00:56   URL
혜덕화님, 오즈마의 우아한 혜덕화님. 우리 오랜만이지요. 반가워라, 반가워라.... 게다가 혜덕화님도 인도에 다녀오셨다니 더 막 반갑고. 저도 오래 전 인도에 다녀왔을 때 많은 걸 깨닫고 왔지요. 휴지 대신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는 거^^; 그리고 일회용품을 쓰지 않고도 사람은 얼마든지 살 수 있으며, 그렇게 살아야 옳다고, 인도는 그런 생각을 하게 해줬어요. 우리가 같은 나라를 걷고,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마음으로 돌아왔다는 게 저는 무척 기쁘고 자랑스럽습니다^^


노임팩트맨은 유머가 있어서 즐겁게 읽었어요. 유머는 정말 소중한 가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저런 프로젝트가 결단코 즐거울 리 없잖아요, 차라리 괴롭지. 그런데 재미있어요. 소중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못하겠지만, 안하지는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혜덕화님도 강건하세요. 올해는 더 자주 뵙고 이토록 반가운 인사를 나누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제가 잘해야겠지요?

울보 2012-01-05 12:16   댓글달기 | URL
음 반성하는 아줌마 여기있어요,,저도 정말 멋진 아줌마가 되고 싶은데
잘 안되고 매일 옆지기에게도 미안하고 나에게도 미안한 나가 되고 있어서 속상해요,,ㅎㅎ

오즈마 2012-01-06 00:57   URL
울보님 근사한 분인 건 알라딘 마을 사람들은 다 안다고요!!!! 뻥쟁이셔!!!ㅋㅋ 저는 울보님 반만 하면 좋겠는걸요. 꼬옥 전교 1,2등 다투는 학생들이 막 공부 못한다고 겸손하고 막ㅠㅠ

치니 2012-01-05 15:16   댓글달기 | URL
왜 5만원어치 씩 끊어서 사는지 모르는 1인. 이렇게 멋진 페이퍼에 이런 걸 묻는 게 어쩐지 좀 창피하지만, 나만 모르는 비법이 있는 거 같아서 궁금해 견디지 못하고....-_ㅠ
오즈마 님 같은 아줌마가 점점 많아지면 지구별은 정말 살 만해질 것 같아서, 추천 100개 날리고 싶어요!

오즈마 2012-01-06 01:00   URL
아아... 치니님.... 그것은.... 5만원 이상 사면 주는 2천원의 추가 마일리지 때문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에요!!!!! 서설마 저만 혹해서 책을 5만원치씩 지르는 것이었던 것이었나요?????? 아니라고 말해줘요 제발

다락방 2012-01-06 08:22   URL
오즈마님, 저는 오즈마님처럼 5만원어치씩 끊어사는 1人이에요. 걱정마셔요. ㅎㅎ

오즈마 2012-01-11 00:52   URL
다락방님이 함께라니 난 외롭지 아나요!!!

moonnight 2012-01-05 17:29   댓글달기 | URL
아아 사랑스러운 새댁 오즈마님. ^^
저도 요즘 절약과 절제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요. 오즈마님 말씀처럼, 잠깐 다니러 온 이 아름다운 별에 보탬은 못 되더라도 해는 덜 끼쳐야겠어요. 저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

오즈마 2012-01-06 01:01   URL
나의 달빛 나의 별빛 사랑스런 달빛님!!! 우리 같이 열심히 해요. 이렇게 깨알같이 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서, 그렇게 되면... 언젠가 모두 모두 그렇게 하고 있을 거예요!!! 아, 힘난다. 내 편이 늘었어!!!

마노아 2012-01-06 01:06   댓글달기 | URL
오늘, 이라고 말하면 12시가 넘겼으니까 어제 포함해서, 그러니까 내가 깨어서 잠들지 않고 있는 지금 이 시간까지 유일하게 웃은 건 이 페이퍼를 읽고 나서예요. 오즈마님은 참으로 따뜻하고 소중한 사람, 이 지구에 필요한 사람, 이 땅에서 아름답게 피어 있는 꽃이에요. 들꽃같고 소국같은 오즈마님이 너무 어여뻐서 내가 다 콧노래가 나와요.

오즈마 2012-01-08 15:14   URL
나의 반짝반짝 빛나는 마노아님!!! 나는 마노아님이 더 많이 더 자주 웃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노아님이 한번 웃을 때마다 세상이 환해져요. 우리는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웃어요!!!

웬디양 2012-01-06 01:11   댓글달기 | URL
노임팩트맨 보면서 저도 정말 쓰레기 안만드는 게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청소를 할 때마다, 내가 물건을 산걸까 쓰레기를 산걸까, 라는 생각을 엄청나게 많이 하거든요. 정말 쓰레기가 한보따리에요. 너무너무 심각해서, 너무너무 한심해서, 또 너무너무 엄청나서, 쓰레기를 버릴 때마다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돼요. 비닐쓰레기는 정말 짱이죠. 게다가 전 집에 정수기도 없고, 생수를 사먹어서, 그 생수통들의 압박이 엄청나요 ㅎㄷㄷ 게다가 택배박스 ㅜㅜ

요즘에 한살림에서 물건을 사는데, 여기는 일단 박스를 다시 수거해가서 좋고, 영수증에 근거리 음식을 먹음으로써 내가 아낀 에너지 같은 게 표시되거든요. 무의미하다는 거 알면서도 전 또 그런 거 보고 좋아하고 그래요 ㅋㅋ 실은 나 건강한 음식 먹자고 먹은 게 맞는데 뭔가 막 이타적인 인간이 된 것만같은 그런 기분? ㅎㅎ

오즈마 2012-01-08 15:17   URL
맞아요 맞아요 택배박스 ㅠㅠ 아 이건 울어야지 돼. 대체 내가 뭘 샀다고 이렇게 박스가 그득그득 쌓여요? 내가 이럴 자격이 되는 사람인가요? 택배박스는 재활용이나 된다 치고, 비닐은 어쩜 좋아요? 벌써 쓰레기통이 터져 나가려고 해요. 비닐이 없다면 세상이 어찌 될까요? 아니지, 비닐 때문에 정말로 세상이 어찌 되면 어쩐대요? 아... 요즘은 머리가 복잡해요.

한살림에서 물건을 사는 것 만으로도 웬디양은 현명한 소비자에요. 세상에 이렇게 영민한 아가씨를 봤나! 웬디양은 분명 너무너무나 훌륭한 아줌마가 되실 거예요. 그러면 그때 저 좀 거둬서 많이 가르쳐 주세요. 꼭입니다요!

조선인 2012-01-06 08:58   댓글달기 | URL
내가 아줌마가 됐다고 절감하는 건, 밖에서 아가들에게서 눈을 못 뗄 때라고 생각해요. 저러다 넘어지지 않을까, 찻길로 나가진 않을까, 혹은 엄마랑 떨어지면 어쩌나 아주 전전긍긍하지요. 덕분에 지하철에서 엄마 잃어버릴 뻔한 아이를 두 명이나 구해준 적이 있다구요. 으쓱으쓱.
오즈마님, 새해 복많이 받아요. 당신은 그럴만한 사람이니까. ^^

오즈마 2012-01-08 15:19   URL
조선인님, 나의 부드럽고 달콤한 조선인님, 영재 마로와 핸섬 해람이 있어서 더 더 더 부러운 조선인님! 저 마로같은 딸 낳게 고쟁이 좀;;;

제가 조선인님 같은 어른이 되려면, 일단 전 아가를 낳아야겠지요? 올해는 더 힘껏 노력해보겠어요. 예쁜 딸을 갖고 싶어요. 언젠가 어디에선가, 저에게도 마로같은 딸이 찾아오겠지요? 그럼 전 그 애를 두 팔로 꼭 껴안아 줄래요.

조선인님께도 복된 새해 되시길 빌어요. 오즈마가 너무 부족하고 모자라서 항상 죄송해요. 어서어서 좋은 사람 될게요. 좀만 더 기다려 주세요.

오즈마 2012-01-08 15:19   URL
조선인님, 나의 부드럽고 달콤한 조선인님, 영재 마로와 핸섬 해람이 있어서 더 더 더 부러운 조선인님! 저 마로같은 딸 낳게 고쟁이 좀;;;

제가 조선인님 같은 어른이 되려면, 일단 전 아가를 낳아야겠지요? 올해는 더 힘껏 노력해보겠어요. 예쁜 딸을 갖고 싶어요. 언젠가 어디에선가, 저에게도 마로같은 딸이 찾아오겠지요? 그럼 전 그 애를 두 팔로 꼭 껴안아 줄래요.

조선인님께도 복된 새해 되시길 빌어요. 오즈마가 너무 부족하고 모자라서 항상 죄송해요. 어서어서 좋은 사람 될게요. 좀만 더 기다려 주세요.

kimji 2012-01-10 02:23   댓글달기 | URL
외출 전에 남편한테 '나 아줌마 같아 보여?' 라고 물을 때,
명절이 있는 달이되면 월초부터 가슴이 답답- 해질 때.
다이어트 한다고 밥 안 먹다가, 설거지 직전, 애들이 남긴 밥을 싹싹 긁어먹고 있을 때.
한 끼 해결하자마다, 다음 끼니는 뭐 해먹나- 혼잣말할 때.
이럴 때, 내가 영락없이 아줌마라는 걸 절감.

<간과 쓸개>는 정말 좋은 책.

오즈마 2012-01-11 00:44   URL
간과 쓸개는 정말 좋은 책이었지만... 적립금 못 받은 게 하나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다만 나는 훨씬 더 잘 쓰는 모모 작가의 오덕이기 때문에...ㅎㅎ 그 작가가 얼굴도 더 이뿌고 글도 잘 씁니다. 심지어 배도 더 나왔어!!! (숨작가님을 본 적은 없지만 아마 그럴 거야)

그리고 김지님은 하나도 아줌마 안 같아요. 홍대 앞에서 샌들 신은 발을 까딱거리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모습이랄지. 그런 건 아직도 대학생인것만 같아요. 그래서 나는 막 가슴이 뛰곤 해. 언제 늙을려우? 읅긴 늙을 거야? 먹는 방부제 있음 저도 나눠주세요!
 

 

 

만세!

 

 

 

드디어 마지막 날이 왔다. 정말이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2011년이 끝나지 않을 줄 알았다. 계속 계속 이렇게 가도 가도 어둡고 막막하면 어쩌나 겁이 났다.

 

한참만에 글을 쓴다. 뭐든, 다 오랜만에 하는 것들이다. 어제는 목욕탕에 갔다 왔다. 뽀독뽀독 때를 미니까 사람 같아졌다. 동네 산책도 했다. 젖은 머리가 바삭바삭 얼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빵을 사먹었다. 빵은 여전히 고소하고... 달콤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올해 나는 정말로, 뭐라도 되고 싶었다. 배가 볼록 나온 임산부가 되고 싶었고(꼭 딸이었으면 하고 바랐고) 지난 4년간 열심히 작업한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고 싶었고(그걸 알라딘 친구들에게 보내고 싶었고) 책이나 신문에 이름이 나온달지 하는 대사건을 만들고 싶었다. 
올해는 내가 돈을 많이 못 벌었으니까 신랑이 주는 걸 알뜰살뜰 모아서 대출금 갚는데 보태라고 턱 내놓고도 싶었다. 엄마한테 용돈을 펑펑 주고 싶었다. 온 식구 외식을 시켜주고 싶었다. 올해를 특히나 힘들게 버텨낸 내 친구들에게 엄청 비싼 핸드크림을 사주고 싶었다. 대용량으로.(하나는 아프고, 하나는 다쳤고, 하나는 직장을 잃었으며, 하나는 사랑을 잃었다.) 

 

 

...

나는 그걸 하나도 못했다.

결론적으로는 그렇다.

내가 뿌린 씨앗은 다 마른 쭉정이였다.

 

(나와 상관없이 이 책은 꽤나 재미있는 책이다. 첫장부터 빵빵 터진다. 김중혁은 소설계의 유세윤이다. 사... 사... 사귑시다.)

 

 

 

 

 

 

 

 

 

 

 

 

 

 

 

 

 

 

 

그리고 세상 꼴도 그렇게 보기 좋지는 않았다.

 

그날 나는 사람들이 가득 모인 여의도에 있었다. 신랑과 나는 자리도 잡지 못하고 추운 데 서서 덜덜 떨면서 그들을 응원했다. 아니, 우리를 응원했다. 그리고 자신을 응원했다. 어찌나 추웠던지 보온병도 싸늘하게 식었다. 많이 웃고, 결국 울었다. 나올 때 지갑을 톡톡 털어 후원금을 냈다. 이 책도 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직까진 그 정도 뿐이다. 부끄럽구요, 꼭 투표할게요. 쫄지 않을게요. 김포와 의정부를 지역 기반으로 하는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가 될게요.

 

요새 길을 걷다가, 뉴스를 보다가, 신문을 뒤적거리다가, 문득 문득 중얼거리는 주문같은 시구가 있다. 그것은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의 일부분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어쩌다 나는 364일 동안, 아무것도 못 했을까.

내가 열심히 안 했을까? 혹시 진심이 아니었나? 내가, 나쁜 맘을 먹었을까? 허황됐을까?

내 차례는 없는 걸까? 설마 나는 들러리인가?

결국 나는... 안 되는 걸까?

 

 

"어쩔 수 없다고 할 때마다, 나이를 먹는 것 같은 느낌, 안 들어?"

 

 

 

내 힘으로 안 되는 일들이 너무 많아서, 나는 내 힘으로 되는 일을 찾아서 했다.

다이어트를 했고, (한동안 술과 고기로 연명했더니 8킬로가 쪘... 거기서 10킬로를 뺐다. 지금은 내 인생 최저의 몸무게)

복잡한 요리에 도전했으며 (이제 꼬막무침이나 고등어된장조림 정도는 눈감고도 할 수 있게 됐다)

매일매일 집안을 유리알같이 닦고 쓸었다.

책을 싹 정리하고 옷도 싹 내다버렸다.

두문불출, 아무도 만나지 않고 누구도 찾지 않고

두어달간 방에 틀어박혀서

쫄쫄 굶으면서 

오로지 자신만 생각했다.

 

빨리 시간이 지나버렸으면...

내 안에 자학과 자책과 원망과 분노와 그런 것들이 다 빠져나가고

어서 예전처럼 다시

묵묵히 시작할 수 있게 되기를 기다렸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지금은 이게 나의 최선이다.

하지만 내가 나답게 나이를 먹고 있다면,

내 리듬을 유지하면서,

언젠가 반드시,

나만이 할 수 있는 뭔가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사유키, 너 자신의 인생을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마."

 

 

새해 나의 계획은 소박하고 사소하다.

매일 가계부를 쓴다.

일주일에 세번 운동을 한다.

200통 무료문자메세지를 전부 다 쓴다. 이건, 사람들에게 자주 연락을 하겠다는 약속이다.

분리수거를 밀리지 않는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어른이 된다.

...

아직은 이 정도다.

이 정도는 지킬 수 있을 것 같고, 이걸 해내면 더 큰 것도 할 수 있고

그러면 스스로가 자랑스러울 거라 생각한다.

 

 

아, 하나 더 있다.

2012년에는 페이퍼와 리뷰를 많이 써서 꼭 서재의 달인이 될 것이다!

그래서 머그컵이랑 달력을 꼭 받고야 말겠다. 진짜... 부럽습니다.. 나도 머그컵이랑 달력 있는데, 왜 이렇게 부럽지...

 

자, 자, 어쨌거나

이젠 인사해야 할 시간.

 

안녕, 2011년.

그리고 안녕, 2012년.

 

 

 

 

 

 

   

 

  



 
 
책세상 2011-12-31 06:22   댓글달기 | URL
너무 예쁜 오즈마님, 오즈마님 글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너무 좋아져요. 따뜻한 기운이 막 생기면서, 입꼬리가 올라가고, 나도 부지런히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각오도 하게 되고요. ^^*

남은 하루도 알뜰하게 보내시고, 새해에는 더 많이많이 복 받으세요~~~

오즈마 2012-01-01 03:11   URL
책세상님은 정말이지 세상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는 분이시군요! 이렇게 찌질찌질하게 쓴 글에도 이토록 다정하게 웃어주시니까요. 내가 이 글을 잘 썼구나, 그러니까 아주 허튼 인생은 아닌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잠시 뭉클해졌어요.
오늘은 새 날의 시작이에요. 책세상님과 저에게 올해는 입꼬리 올라가는(아, 저 왜 이 표현이 이렇게 좋지요?) 나날들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moonnight 2011-12-31 12:05   댓글달기 | URL
아, 오즈마님. 저도 열심히 하겠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먼저 열심히, 최선을 다 해서 하겠어요. 오즈마님 덕분에 기쁘게 2011년에 인사하고 2012년을 맞이할 수 있겠어요.

오즈마님. 안 좋았던 일들 다 털어버리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오즈마 2012-01-01 03:13   URL
달빛님, 오즈마의 은은한 달빛님, 보고 싶었어요. 다시 만나서 우리가 대화를 하게 되어서 기뻐요. 그러기 위해서라도 저는 꼭 서재의 달인이 되어서 머그컵과 달력을 받아야겠어요(요점이 좀 어긋났네요ㅋ)

달빛님과 저의 새해가, 그야말로 새것이어서 반짝반짝 빛나네요. 우리 이걸 잘 사용해서 뿌듯하고 보람차게 보내자구요. 올해 우리에게 신나는 일이 많이 생길 거에요. 꼭 그런 예감이 들어요.

2011-12-31 12:09   댓글달기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1 0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1 17: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웬디양 2011-12-31 12:33   댓글달기 | URL
오즈마님! 새해 첫 페이퍼는 다이어트 비법좀.... ㅠㅠㅋㅋ
올해를 마무리하면서 오즈마님 글을 보니 참 좋은데요. 오즈마님과 만나지 못했던 2011년이지만 같은 장소에 같은 마음으로 있었다는 것도 알았고, 내년엔 오즈마님을 더 자주 볼 수 있겠구나, 라는 사실도 알았고. (서재의 달인 화이팅!!)

새해 복 많이 받아요 :) 새해에 오즈마님 글을 자주 볼 수 있다니 신나요!

오즈마 2012-01-01 03:30   URL
웬디양님 식단을 살펴보면 대체 살이 찔 구석이 없는데요! 게다가 웬디양을 내가 직접 봤는데 늘씬하고 아리따운 아가씨믄서 뭘! 평균 체중에서 일이키로 왔다갔다 한다고 다이어트 하려는 얄마로운 아가씨들은 고마 궁디를 축 차뿌... 아 미안합니다 오랜 영양결핍으로 성질이 못되먹어졌어요ㅠㅠㅠㅠㅠ

결론은 웬디양님은 이미 너무도 날씬하고 아름답고 훌륭하고 매력적이라는 것, 그러니 당신에게 와인과 도시락 반찬을 허한다는 것 ㅎㅎ
난 김태희보다 웬디양이라구요. 소녀시대 아홉명을 델구와 봐요 나는 웬디양이랑 맥주 마실래.

그거 알아요? 난 알라딘 중고샵에 가면 꼭 웬디양님을 찾아요. 우린 언젠가 거기서 마주칠 거에요. 그럼 그건, 그동안 열심히 당신을 찾았던 나의 노력 덕분이란 걸 잊지 말아요:) 그땐 내가 커피 살게요.

마노아 2011-12-31 13:31   댓글달기 | URL
어여쁜 오즈마님! 요새 알라딘 서재 검색이 안 되어서 오즈마님 서재로 들어가질 못해서 발을 동동 굴렸어요. 다행히 오즈마님이 해 넘어가기 전에 새 글을 써 주셨네요.^^
2012년에는 오즈마님 글도 더 자주 만나고, 오즈마님도 실제로 만나서 두 손 붙잡고 통통 뛰며 반가워하고 싶어요. 제가 참 많이 보고 싶어하는 것 알고 있지요? 오즈마님! 사, 사랑합니다!!!

오즈마 2012-01-01 03:33   URL
마노아님 나의 아름다운 마노아님, 제가 동굴 생활을 하는 도중에도 마노아님 글을 찾아 읽었더랍니다. 요즘은 건강하신거죠? 쓰러지신 것 땜에 많이 걱정했어요. 잔소리를 좀 하고 싶은데, 그건 나중으로 미룰게요. 우리 올해는 꼭 씩씩하고 튼튼해져요. 나도 마노아님도 그게 가장 큰 숙제에요.

누군가에게 다정한 말을 들으면 울 것 같아요. 그런 나날을 다 지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마노아님 글을 읽으니 또 울 것 같아요. 하지만 이것은 기쁜 눈물이에요. 저는 아직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었네요. 그러니까 울지 않아요. 마노아님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 때까지, 저는 꼭 건강해질래요. 마노아님, 공식애인이신 순오기님이랑 헤어지게 되면 꼭 저랑 사... 사... 사귑시다!!!

무스탕 2011-12-31 20:28   댓글달기 | URL
바바요.. 몇 분이나 올해가 가기전에 오즈마님을 만나서 반갑다고 그러잖아요. 나도 그래요.
도대체 언제 나타날거야?! 혼자 킁킁 거리며 몇 번을 왔다 갔는지 오즈마님은 모를거에요.
올해는요 하여간 마무리가 되고 있어요. 올해에 일어났던 모든 안좋은 일들은 올해에게 가져가라고 줘 버리고 내년을 야무지게 맘 먹고 기다리고 계시면 흑룡이 좋은 일을 잔뜩 안겨줄거에요.
내년엔 올해보다 열 배 자주 만납시다!! 건강하고 새해에 복 많이 받으셔야해요~ ^^

오즈마 2012-01-01 03:37   URL
그러니까 저는 창피했어요. 무스탕님에게 꼭 뭔가 보여드리는 한해가 되고 싶었거든요. 그걸 못했어요.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제 잘못은 아니지만 뻥쟁이가 된 것 같고 막 뭐랄까...
수치스러웠어요.
해내야 하는데...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있고 기대를 충족시키고 싶은데
잘 안 되었어요.
그런다고 숨으면 뭐가 되나요. 그럴 나이도 아닌데, 자꾸 움츠러들었어요.
그게 더 창피한 짓이라는 걸 알 때까지, 그냥 그랬어요.
무스탕님... 조금 더 기다려 주시겠지요?
제게 좋은 일이 생기면 무스탕님께 뛰어가 알릴게요. 그럼 그때 내가 뭐랬어!! 하시며 저를 한번만 안아주세요.

소이진 2011-12-31 20:47   댓글달기 | URL
어머 어떡해요! 저도 김지하 시인님의ㅣ 타는 목마름으로 저 구절을
매일매일 외우고 다닌답니다. 너무 반가워요 ㅠㅠ
항상 친구들 구박 받고 다니거든요. 듣기싫다고 ㅠㅠ

헤헤, 오즈마님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오즈마 2012-01-01 03:39   URL
이진님, 반가운 소이진님^^ 구박을 하다니 친구들 으르렁- 아마 시를 외우는 소이진님이 너무 분위기 있어 보여 질투하는 걸 것이에요. 우리 그렇게 생각하기로 해요!

소이진님에게도 즐거운 일 많이 생기는 한해 되시길 바라요. 아마 그렇게 될 거에요. 그런 예감이 들어요^^

2011-12-31 21:43   댓글달기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1 0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음을데려가는人 2012-01-03 12:14   댓글달기 | URL
오즈마 님, 오랫만이에요.
어쩜, 저랑 2011년도가 비슷한지요.
뭐가 돼서, 그걸 자랑하고 싶었던 2011년이었는데.
이룬 게 하나도 없다는 절망감에
12월은 될 대로 되라, 시간아 가라, 그렇게 빌었었어요.
그래도 새해를 맞으니까 다시 한번 '희망적'이 되고 싶네요.
올핸 작년에 못 이뤘지만 노력해왔던 것들이 폭발하는 한해가 되시길 빌게요 :)

오즈마 2012-01-03 15:38   URL
마음님, 마음님, 저는 어쩐지 웃었어요. 그리고 조금 울 거 같애요. 혼자가 아니었구나. 그런 안도감이 들어서요. 제발 시간아 가라 가라, 하고 제가 낮게 웅크려 있었을 때, 그때도 마음님이 저와 같은 마음으로 버텨주셨다는 게, 위로가 되네요. 힘이 나네요. 그리고 다시 한 번 희망적이 되고 싶다는 말씀도, 저는 너무 눈부시네요.
그래서 막 달리고 싶어졌어요.
제가 사는 동네는 눈발이 날려요. 그 길을 뚫고 도서관에 다녀왔어요. 책을 스무권이나 빌릴 수 있어요. 이제부터 뭘 좀 해먹고, 침대에 누워 책을 읽을 거예요. 요즘은 저도 조금 조금씩 회복기로 접어든 것 같아요. 올해는, 아주 작은 거라도, 되겠죠 뭐. 뭐라도 되겠죠. 그러면 되게 크게 감사하고 기뻐할려구요. 나의 마음님은, 아주 아주 크게 될 거에요. 원하는 만큼 바라는 대로, 이루세요. 그리고 제게도 그 기쁜 소식을 꼭 들려주셔요.
 

 

*

 

수요일은 재활용 분리수거 날이다. 아침 6시부터 10시까지만 한다. 나처럼 올빼미 주부에게는 힘든 시간이다. 그래서 차라리 날밤을 새고 여섯시 땡 하면 버리고 와서 내처 자는 쪽을 택한다. 이번 주도 그랬다.  

지난 주에 깜빡 자버리는 바람에, 이번 주 쓰레기가 좀 많았다. 준비운동 후... 나는 원피스 잠옷 위에 후드 집업을 걸치고, 목장갑을 끼고서 바람같이 달려나갔다. 아직 어두컴컴한 새벽, 다섯시 오십오분!!! 

주섬주섬 마대자루를 펼치던 경비 아저씨가 나를 보고 활짝 웃으셨다. 나도 꾸벅 인사했다. 그리고, 아저씨는 말했다.  

"아줌마가 일등이네!" 

나는 아이고 제가 너무 일찍 왔는가봐요 하하하 웃으면서, 이게 내가 처음 듣는 아줌마 소리구나 하고 생각했다. 제가 밤을 새서 그렇지 화장 곱게 하고 아이라인 그려갖고 모자 달린 옷 입고 나가면 다 대학생이라 그러거든요!!! 라고 절규하...지는 않았다. 다만... 어두워서 그러실거야... 이따가 전구 밝히면 알아보실 거야... 초 귀요미 동안 절정의 꽃새댁이라는 것을... 하지만 불 밝힌 뒤에도 아저씨는 나를 보고 웃으면서, 

"아줌마네는 콜라랑 맥주만 먹고 사는갑소!" 하셨다. 콜라는 신랑 거, 맥주는 내 거. 나는 아이고 왜요 과자도 먹고 쥐포도 먹어요 하하하 웃으면서 사실은 눙무리 찔끔... 

 

 

결혼하고 첫명절을 치르면서, 나는 매일매일 울었다. 연휴가 삼일이었으니 꼭 세번 울었다. 한번은 엄마 때문에, 한번은 시아버지 때문에, 마지막은 제 풀에 겨워 내 분에 울었다. 울면서도 악착같이 밥은 먹었다. 입안에 밥을 가득 담고서 훌쩍훌쩍 울었다.  

결혼하면 어른 된다더니, 완전 그짓말이었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 대학가면 살 빠진다는 말 믿었다가 피봤을때 알았어야 했는데. 세상의 새빨간 거짓말은 대체 얼마나 될까. 내가 결혼하고서도 철이 안 드니까 다들 애 낳으면 어른 된다고들 한다. 뻥치시네! 내가 속나봐라. 절대 절대로 안 속을테다. 

 

구두굽을 갈러 갔는데 아저씨가 "사모님, 삼천원입니다" 하셔서 엄청 당황했다. 나는 황망해서 허리를 구십도로 숙여 인사했다. 돼지고기를 사러 간 정육점에서 "애기엄마, 찌개용이야 불고기용이야" 란 소리를 들었다. 내가 맨 것은 애기 포대기가 아니라 책가방이었는데, 이거 엄청 이쁜 최신상 백팩인데... 구두도, 사모님이 신을만큼 비싼 구두도 결코 아니었는데... 

그러니까, 이제 내 나이, 내 얼굴, 내 분위기, 나의 위치, 내가 있는 자리에 어울리는 새로운 이름들이 막 생기고, 언젠가 나는 그 이름에 익숙해지겠지. 그러고 나면, 또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런데 정말 나는 애기엄마가 되거나 사모님이라는 호칭에도 낯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결혼하고 알게 된 것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갖은 양념에 대한 것이 가장 큰 깨달음이다. 요리책을 볼때마다 머리가 깨질 것 같던 그 얼어죽을 놈의 '갖은 양념' 대체 뭔지, 뭐뭐가 들어가야 갖춰지는 건지 나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는데, 이제는 안다. 갖은 양념은 갖은 양념이다. 아, 그랬던 것이었다.  

 

파란만장한 추석을 보내고, 신랑과 짬을 내어 근처 커피숍에 갔었다. 결혼하고는 둘이 그런 데 갈 일이 절대 없었다. 우연히 공짜 티켓이 생겨서 가게 되었는데, 나는 무슨 여행이라도 가는 것처럼 잔뜩 들떠서 가방에 책도 넣고 노트도 넣고 엠피쓰리도 넣었다. 우리는 커피숍에서 이런 책을 함께 읽었다.  

 

 

 

 

 

 

 

 

신랑도 나도 이 책이 너무너무 좋아서,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이건 참 좋은 소설이었다. 과하지 않고, 거칠지 않으며, 선하고 가난하고 촌스러운 삶을 보듬은 소설. 신랑은 나는 이런 이야기가 읽고 싶었다 했다. 세상에 꼭 필요한 이야기라고도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영혼이든 결국은 집으로 돌아간다. 결국 우리는 위풍당당한 커피숍 나들이에서 두시간을 못 채우고 귀가해 다리 쭉 뻗고 테레비 보면서 졸았다. 그렇게, 가을이 되었다.  

 

 

계절이란 것이 아무도 모르게 살금 와야 하는 건데, 반팔을 입고 나갔다 싸늘해진 밤바람에 놀라 팔뚝을 쓰다듬고 아 이제 가을이구나 불현듯 놀라야 하는 건데, 어느날 갑자기 가을이 와버려서, 좀 당황스럽다. 긴팔 옷을 꺼내 세탁기를 붕붕 돌렸다. 계절은 이렇게 바뀌고, 나는 나이를 한살 더 먹고, 그렇게 시간은 물고기처럼 옆구리를 통과해 나는 아줌마가 되어가고... 

 

그렇게 사람은 변해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금요일은 우리 마을 장이 서는 날이다. 주말을 대비해 장을 봐야 하는데, 대체 뭘 사면 좋을까. 무를 하나 사서 반 갈라 오징어무국이랑 고등어조림을 할까? 양파가 많이 생겼는데 된장국을 끓이고... 오징어를 산다면 매콤하게 볶아서... 팽이버섯 한봉지도 있으니까. 냉장고 속 재료들을 하나도 상하지 않게 잘 먹는 일도 정말 어렵고 대단한 일이다. 아... 일등 아줌마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마노아 2011-09-22 23:22   댓글달기 | URL
이렇게 귀엽고 재미지고, 그리고 살뜰한 초귀요미 아줌마라니, 사진으로 한컷 찍어서 지갑 속에 고이 간직하고 싶어요.
오즈마님이 이렇게 주렁주렁 달아주는 이야기 보따리들이 귀가도의 풍경만큼이나 따뜻하고 진하게 느껴져요. 그래서 추운 가을밤이지만 춥지 않아요.^^

오즈마 2011-09-22 23:35   URL
우왕 내가 좋아라하는마노아님 댓글이다!!! 마노아님 대체 뭘 먹고 이리 아리따워지셨어요? 저도 좀 나눠먹음 안돼요? 헤헤 마노아님, 보고 싶었어요. 오늘 저 알라딘 중고서점에 처음 갔었는데, 골똘하게 책 읽는 예쁜 아가씨가 마노아님 같아 뱅뱅 맴돌다 왔어요. 마음으로부터 늘 생각하고, 고마워하고, 사..사... 좋아하고 있습니다!!!

꼬마요정 2011-09-23 00:13   댓글달기 | URL
경비아저씨가 약주 한 잔 하셨나봐요.. 아님 시력이 아주 나쁘다거나.. ^^;;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그냥 어른이 되는 게 아니라 그런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어요. 흑. 삶은 노력의 연속이에요. 좀 편하게 살고 싶은데 말이죠..;;

저도 집이 좋아서 영화도 집에서 보고 책도 집에서 보고 심지어 커피도 집에서.. 헉.. 쇼핑도 집에서 했어요, 인터넷으로. 요즘은 급해서 밖에서 사긴 하지만..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한껏 쟁여놓은 여름옷 주섬주섬 넣고 가을, 겨울옷 꺼내 옷정리 해야한다고 생각하니 앞이 깜깜해요..ㅜㅜ

오즈마 2011-09-26 14:37   URL
요정님 꼬마요정님! 오늘은 날씨가 아주 좋아요. 어제 기상캐스터는 날씨가 풀렸다는 표현을 쓰던데 괜히 어색한 거 있죠 하하. 그러면서 저는 무려 어그부츠를 꺼내놨어요! 다음주쯤이면 신고 다녀야할 정도로 추워질지도 모르니깐요 ㅎㅎ

옷정리는 정말 귀찮아요. 가끔은 쇼핑조차 귀찮아요! 하지만 이렇게 계절이 간다는 건 멋진 일이에요. 목도리를 꺼내 텰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제가 사는 동네는 눈이 오면 근사해요. 조그맣고 불편한 동네지만 그건 아주 큰 장점이죠.

계절이 여물고 있어요.
꼬마요정님 따뜻한 마음처럼요!

2011-09-23 00:17   댓글달기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6 1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1-09-23 08:43   댓글달기 | URL
'갖은 양념은 갖은 양념이다'

저 이 문장에서 완전 뿜었어요. 빵하고 우유 먹고 있다가 말이죠. 그리고 이런 결심을 했어요. 갖은 양념이 갖은 양념이라는 것을 아는 녀석과 결혼하자. 만약 갖은 양념이 갖은 양념인지를 모른다면 요리를 못할 것이고, 그렇다면 그것은 내 차지가 될 지도 모른다. 나는 요리도 설거지도 하고 싶지 않다. 갖은 양념을 아는 놈과 결혼하자. 그렇지 않은 놈들만 줄줄이 나타난다면 내내 사귀다가 발로 뻥뻥 차버리고 나는 가볍게 싱글로 살자. 갖은 양념도 모르는 녀석들이 감히 결혼하자고 덤벼들면 으르렁 거려줄테다.

하하하하하


오즈마 2011-09-26 15:57   URL
매럭적인 다락방님! 그 문장은 굉장히 의미심장한 거예요. 갖은 양념은 진짜로 양념이 갖은 모든 것이에요! 전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정말이지 씽크대를 붙잡고 울고 싶었어요ㅠㅠ

저는 다락방님이 요리를 잘 하는 남자랑 결혼하면 좋겠지만, 그래서 매일 아침 다락방님의 침대로 따끈한 식사가 담긴 트레이가 배달된다면 근사하겠지만, 제가 그렇게 살아서 하는 말이 아니라 요리 못하는 남자도 뭐 괜찮습니다. 되게 열심히 뭔가 만들려고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도 보기 좋거든요. 물론 결과물이 항상 훌륭하진 않습니다ㅋ

갖은 양념이 갖은 양념이듯, 다락방님은 우리의 사랑스런 다락방님이지요.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조선인 2011-09-23 08:51   댓글달기 | URL
아, 놀라워요. 난 아직도! 오징어를! 한 번도! 사본 적이 없어요. 님이 쑥쑥 어른이 되고 있는 동안, 난 대체 뭐한 거죠? 자그마치 11년을 헛살았나 봐요. @.@

오즈마 2011-09-26 15:58   URL
아니 나의 근사한 조선인님! 오징어 없이도 11년이나 훌륭한 식탁을 뚝딱 차려낼 수 있는 비법이 대체 뭔가요!!! 아...전 정말 할 줄 아는 요리가 한정적인 것 같아요 ㅠㅠ 새로운 메뉴가 필요해요!!!

무스탕 2011-09-23 09:47   댓글달기 | URL
재활용품을 내 놓을 시간을 맞추기란 명절 귀경길 기차표를 예매하는 노력과 맞먹는다고 생각해요. 우리동네는 훌륭한 동네라서 1주일에 세번, 수.토.일 7시에서 10시까지 수거장 문을 열어 놓는데도 왜 그렇게 제때 내놓기가 어려운건지 모르겠어요;;;

지금 옷장안엔 반팔과 긴팔이 엉켜서 아우성을 치고 있지만 귀 닫고 눈 닫고 모른척 하고 지내지가 어언 일주일째~~ ( ")

오즈마 2011-09-26 16:01   URL
일주일에 세번만 받아줘도 소원이 없겠어요! 참새 눈물만큼 주어지는 시간이라 얼마나 후딱 지나가는지 몰라요. 이놈의 쓰레기는 아무리 줄이려고 해도 계속 나오고, 쌓여가고, 못 버리면 마음의 짐이 되니 말입니다 ㅠㅠ

오늘은 시골에서 올라온 마늘을 까고, 찧고 빻아서, 냉동해 놓고, 빨래를 걷어야 하고, 세탁소도 가야 해요. 아이구, 할 일이 이렇게 많은데 저는 왜 인터넷을 켰을까요 ㅠㅠ 일등 주부가 되기란, 왜 이리도 힘들단 말인가요!!!

웬디양 2011-09-23 11:00   댓글달기 | URL
어쩐지 어제 서점에 가고 싶더라. 오즈마님이 가까이에 왔었다니. 아. 좀 설레는데요?
귀가도는 저도 찜찜찜해둔 책. 주변에서 정말 평이 좋더라고요!! 알라딘 중고서점에 안들어오나 슬쩍슬쩍 계속 봤는데, 이 책이 너무 좋은지 아무도 안파나보네요. ㅎㅎㅎ
오즈마님의 든든한 추천까지 등에 업었으니, 안심하고 사도 되겠어요 정말! :)

오즈마 2011-09-26 16:04   URL
안 그래도 중고서점에 들어서면서, 혹시나 누군가를 만나지 않을까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늘씬한 미녀가 보이면 다 웬디양인 것만 같구. 막 설레구.

어쩌면 서로 친근하게 인사 나누었지만 얼굴은 모르는 알라디너끼리 스쳐갔을지도 모르지요. 언젠가 우리 중고서점에서 벙개 한번 할까나요! 인사동도 가까우니 술 한잔 어찌 꺾지 않으리오!

귀가도는 참 좋아요. 웬디양도 마음에 들 것 같아요. 우린 소설 읽는 눈이 비슷한 거 같아요, 책을 대하는 마음도요. 나는그 사실이 정말 자랑스러워요.

레와 2011-09-23 15:17   댓글달기 | URL
난 오즈마님 페이퍼가 너무 좋아요! >_<

오즈마 2011-09-26 16:04   URL
전...전 레와님이 좋아요!!!아...고백해 버렸어

2011-09-23 17:06   댓글달기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6 16: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또치 2011-09-28 13:36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따뜻한 사람들이 이렇게 오즈마님 서재에 몰려들어 와글와글하고 있어서 좋아요.
아, 정말이지 따뜻함이 절실해요...

오즈마 2011-10-04 02:10   URL
내가 안아줄게요 나의 또치님. 또치님은 또치님이라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또치님으로 인해 따뜻하고 행복합니다. 또치님이 여기 같이 있어서 나랑 같이 와글와글 해주어서, 전 정말 기쁩니다.

같은하늘 2011-10-01 19:03   댓글달기 | URL
잘 지내시죠?
아줌마된지 13년이지만 지금도 아줌마라는 단어는 어색해요.ㅎㅎ

오즈마 2011-10-04 02:11   URL
히히 아무래도 아줌마만큼은 적응이 되지 않아요. 저처럼 살림도 못하면 특히나 더더욱 못 듣겠어요 닭살돋아서. 13년쯤 지나면, 제 엉망진창인 요리솜씨도 좀 나아질라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