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구) 문지 스펙트럼 9
박태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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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 속의 서울 』에서 1969년 말에 서울 거리를 거니는 구보 씨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박태원의 구보 씨에 관한 글도 소개되었다. 구보 씨는 박태원에서 시작하여 최인훈,
주인석으로 이어지는데 다만, 시대만 다를 뿐 서울을 거니는 모습이나 소설가의 모습은 마찬가지다.
내가 만난 첫 구보 씨를 살펴본다.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

1930년 경성(당시의 서울)은 식민지 시대의 혼란과 불균형하게 일제의 목적을 위해서만 발전하고 있었
다. 그래서 주인공 구보 씨는 동경유학까지 다녀온 지식인이지만 그가 서서 꿈을 펼칠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다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문학을 통해 글을 쓰는 것이 전부였다. 작가 박태원의 필명 중 하나
가 구보(仇甫)였다. 이렇듯 작가의 반영된 모습과 글 속의 구보는 하나이면서도 둘이었다. 상당부분 그
들의 의식은 하나인 듯 보이다 어느 때는 그저 소설이라 느껴진다.


이 작품이 갖는 독특함

모데로노로지오(modernology)는 일본식 발음으로 적혀있었는데 고현학으로 일컬어진다.
박태원의 이 작품이 갖는 독특한 창작법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으로 현대인의 생활을 조사하여 현대의
세대나 풍속 등을 해석하는 학문이라 정의된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1930년대 경성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더구나 줄거리 자체가 구보 씨가 집을 나서서 온종일 걸어다니는 모습이기에 작가는 마
음껏 그려내었다. 모더니즘 소설가라고 부르는 이유를 책을 읽으니 알겠다.


고독한 구보 씨와 사람들

확실히 당시의 이런 특별함이 이 책을 언급하게 하지만 글에는 작가의 의식도 반영되어 있다.

구보는 다시 밖으로 나오며, 자기는 어데가 행복을 찾을까 생각한다. ㅡ 23쪽

구보는, 자기는, 대체, 얼마를 가져야 행복일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ㅡ 33쪽

구보 씨가 하루 동안 걸으며 마주치는 사람의 부류는 다양하다. 그 시대에 편승해 부유하게 사는 사람
부터 구보 씨보다 남루한 사람, 그와 상관없을듯하지만 같은 식민지 아래를 살아가는 그 누군가 등.
그렇더라도 구보 씨가 애달퍼보이지는 않았지만 딱 한 장면에서는 작가의 표현대로라면 애닯았다.
바로 카페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동안 사람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기를 원하는 강아지 한 마리가 모두에
게 외면받아 지쳐나자빠질 때 구보 씨는 강아지에게 관심을 보이지만 강아지는 오히려 구보 씨를 경계
한다. 이 무슨 조화란 말인가. 기다리는 친구는 그가 곧 와달라 부탁까지 했으나 곧 오지 않으며 강아지
에게까지 구보 씨는 찬밥이란 말인가. 그가 매일 집을 나서 끊임없이 걸어서 배회하는 이유는 채울 수
없는 고독과 외로움 때문일지도 모른다. 부유하는 청춘... 작가가 26세 때 쓴 책이다.


이 책을 읽는 즐거움

표지사진의 박태원의 모습에서 동그란 안경테는 당시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도 보았다. 그러나 그
의 헤어스타일을 보며 잠시 웃었다. 바가지 머리? 처음 접한 그의 작품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옛언어
라 지금은 쓰지 않는 말이나 글도 재미있다. 8세 때 천자문을 배우기 시작해 한문이 많이 들어 있는 그
의 글은 모르는 한문이 나오는 경우나 확실히 알고자 할 경우를 위해 옆에 전자수첩을 놓고 읽었다. 편
리한 세상이다. 고어의 새로운 의미를 알게 되었을 때와 모르고 있던 단어를 알게 된 즐거움이 좋다.
또 당시의 거리를 직접 산책하며 그 안의 사람들을 만나는 느낌이다. 그만큼 시각적으로 잘 표현했으며
등장하는 벗이 마구 지껄이는 문학이야기도 짧지만 재미있다. 나의 하루를 종일 걸어서 글로 적는다면
어떤 글이 나올까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책에 실린 다른 네 작품

딱한 사람들은 타국인 일본에서 궁핍한 생활을 하며 한 공간에 살게 된 소통이 단절된 두 주인공의 이
야기이다. 그래서 곳곳에 일본어가 나오는데 물론 간단한 단어들이라 읽는 데 지장은 없으나 일어를
모른다면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을지도 모른다. 괄호 안에 한국어를 써두던지 주석이라도 달았으
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최신판은 어쩌면 바뀌었을지도 모르니 넘어간다.

방란장 주인은 당시 <구인회>를 조직하여 왕성한 활동을 벌인 문인 중 이상이 경영하던 다방을 모델로
하지 않았을까 싶다. 방란이란 향기 좋은 난초라는 의미인데 영업위기에 처한 방란장의 주인의 내면이
잘 묘사되어 있다. 더구나 주목할만한 점은 실로 오랜만에 보는 장거리 문장으로 쓰였다는 것이다. 즉,
한 문장이 마침표로 끝나지 않고 몇 페이지에 걸쳐 쉼표만으로 대체되어 쭉 글이 이어진다. 정말 재미
있는 기교라 생각된다. 이상의 시를 읽을 때 하나의 리듬을 타며 속도감을 더해 읽는 재미와 비슷하다
고나 할까?

성탄제는 오래전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올법한 주인공들의 이름인 영이와 순이 자매의 이야기다.
카페 여급으로 살던 언니 영이를 비난하던 순이도 결국 그 길을 걷게 되는 내용인데 조세희의『 난.쏘.
공 』에서 옆집에 살던 모녀가 떠올랐다.

최노인전 초록(抄錄)은 입담 좋은 최노인의 이야기지만 결국 외로운 노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마지막 춘보는 조선 말기가 배경인데 고단한 삶에서 희망을 놓치 않는 춘보의 이야기이다. 우직한 춘보
는 현실과 타협하거나 꾀가 있지도 않으며 그저 묵묵히 살아간다. 아마 당시 대다수 백성은 이렇지 않
았을까 싶다. 물론 그중에는 지식인 못지않게 자각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지만 그렇더라도 얼마나 구
체적으로 행동을 취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아니 허락하지도 않았다. 술을 먹고서야 바른말을 쏟아내
어도 그때뿐 운 없으면 발각되어 잡혀들어가기 일쑤였으니 말이다.


작가 박태원. 그리고 글을 정리하며

이로써 얇지만 꽉꽉 차있는 여러 작품과의 만남이 끝났다. 박태원의 작품 중 『 천변풍경 』도 읽고 싶
었는데 이 책에는 들어 있지 않았다. 확실히 구보 씨로 대표되는 작가의 글은 읽기에도 재미있었다.
작가는 10세 때 『 춘향전 』등의 고소설을 섭렵했으며 18세 때 고리키, 셰익스피어, 트루게네프 등의
서양문학에 심취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69세에 실명하고 전신불수의 몸으로 동학
혁명을 소재로 쓴 『 갑오농민전쟁 』이란 책은 구술로 받아 적어 78세에 완성했다고 한다. 그리고 같
은해 박태원은 사망한다.

<구인회>하면 학교 다니며 배웠던 기억이 난다. 이상, 김기림 등의 유명한 이들이 속해 왕성한 창작활
동을 했던 구인회. 사실 근래에 이상의 시 말고 소설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추천받은
책도 있는데 아직 읽지는 못했다. 이상의 시만을 읽고 그의 글은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연
하게 지인의 블로그에서 읽은 그의 소설에 관심이 생겼는데 때마침 박태원의 책을 접하자 당시 작가들
에게 관심이 쏠린다.

그들의 기교보다 그 안에 들어 있는 의식의 흐림이나 시대상이 알고 싶다.
내가 사는 지금과 다른 시대이나 결코 무관하지 않은 시대이며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것은 어쩌면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물론 세상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편리해진다. 그러나 과연 우리의 의식
도 지속적으로 발전하는지는 의문스럽다.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자각(自覺)이다. 자각조차 못 하
고 살아가는 것이 때로는 편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각하였더라도 현실과 부딪혀 깨내거나 해결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안다. 어쩌면 스스로 부끄러워질지도 모른다. 그런 고민을 안고 살아가지 않
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만은... 그의 소설에서 지식인인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글을 쓰는 것뿐이
었다. 나라면 과연 어땠을까. 그의 의식은 고뇌할 뿐이다. 어떤 행동을 이끌어 내진 않는다. 이런 물음
을 내게 던져줄 거란 생각은 못했는데 말이다. 낯선 느낌이지만 싫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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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정원 일의 즐거움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이레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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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십대에 처음 만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나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이후 그의 작품을 찾아가며 읽던 시간은 소중했다. 그는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이라고 말해주었으며
더욱 근원적인 물음에 다가서도록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그의 그림과 자필, 사진 등으로 엮은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사두기는 좀 되었는데 바로
읽어보지 못했다. 대신 박완서의 <호미>를 읽고 나서 바로 이어 읽으니 더 재미있었다. 그리고 자꾸만
소로우의 <월든>이 생각났다. 같은 이레 출판사의 책인데 <월든>의 경우 일 년에 한 번씩은 다시 읽
는데 이제 이 책도 추가해야 할 거 같다. 그만큼 담겨있는 내용이 마음을 가득 채운다.


산과 강, 나무와 잎사귀, 뿌리와 꽃, 이 모든 자연의 형상은 우리 안에 그 원형이 내재되어 있다. 그것
은 영원성을 지닌 영혼, 우리가 비록 그 본질은 알지 못하나 사랑의 힘, 창조의 힘으로 느끼는 그 영혼
에서 유래하기 때문이다.

ㅡ 27쪽, <외면 세계와 내면 세계>



정원을 가꾸는 일은 낭만보다는 노동에 가깝다. 그저 알아서 자라는 자연을 나만의 정원으로 가꾸기
위해서는 날마다 돌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생활의 활력이 된다면 헤세처럼 즐거움이 될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여간 괴롭지 않을 것이다. 자연에 가까운 정원을 추구한 헤세의 정원이 좋았다. 인공잔
디에 인공조각물 등으로 진열한 정원을 싫어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헬리오트로프의 향기는
열광적으로 춤추다 풀어헤친 여인의 머리칼처럼
촉촉이 빛나는
검고 기이한 털을 가졌다.

ㅡ 43쪽, 향기에 관한 글 中 <헬리오트로프의 향기>



과연 어떤 향일지 여러 번을 떠올려보았다. 그래도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지만 이렇게 떠올리다 보면
기억에 오래도록 남기 때문 임을 안다. 나중에라도 헬리오트로프의 향기를 직접 맡을 기회가 올지도 모
르니 말이다. 꽃과 나무에 관한 시와 글은 음미하면서 읽으니 새록새록 자연의 모습에 다가서는 느낌이
들었다.

책표지 사진 밑에 헤세가 친필로 "내가 가꾼 몬타뇰라의 진미. 해바라기는 화가와 새들에게 최고의
진수성찬이다" 라는 글에 웃음이 고였다. 해바라기 하면 고흐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헤세도 해바라기
의 모습에 반했음이 틀림없다. 하긴 그가 반하지 않은 자연이 어디 있으랴마는...


현명하다는 것은
현자들에게는 연금술이자 유희인 것이다.
세계가 거칠고 격렬한 충동에 지배되는 동안에도,
그러니 우리는 겸허해지자. 가능하면
세계가 질주하며 흘러가는 시대 속에서도
저 영혼의 고요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ㅡ 159쪽, <정원에서 보낸 시간>



6운각으로 쓰인 <정원에서 보낸 시간>도 재미있게 읽었다. 6운각이란 이름은 이 책의 설명을 통해 알
았지만 이런 식의 글쓰기를 좋아한다. 호메로스나 오비디우스, 괴테 등이 사용한 적 있는데 시문학에
쓰여진 운율이라 한다. 책장을 덮고서도 다시 찾아 읽었다. 그리고 책 뒤쪽에 단편인 <꿈의 집>과 <아
이리스>도 집중해서 읽었다. 특히 <꿈의 집>은 전쟁 때문에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는데 완성되어 한 권
의 책으로 나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단편 또한 진지하며 사색적이다.


삶이 유혹하는 소리, 어린 시절부터 날마다 그를 부르며 그의 발걸음을 끊임없이 앞으로, 또 앞으로 몰
아세웠던 그 유혹의 소리는 점차 저세상에서 부르는 죽음의 소리로 변해 가고 있었다. 그 소리를 따라
가는 것이 생의 유혹에 대답하는 것과 별다를 바 없이 아름답고 기이하게 느껴졌다.

ㅡ 222~223쪽, 미완성 단편 <꿈의 집>



"중요한 것이란 도대체 뭐지요?"
"소박함이란다."

ㅡ 249쪽, 미완성 단편 <꿈의 집>



위의 대화를 읽고 소로우의 <월든>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소로우도 말하지 않았던가.
진정으로 간소하게 살라고.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화려하거나 많은 무엇이 아
니라 단순하고 소박한 것일지도 모른다. 없는 것을 원하기보다 가진 것을 버리기가 더 어렵지 않던가.

흙을 태우는 헤세는 그 의식이 신성하다고 말했다. 늙은 작가의 사진을 보며 늙어간다는 것과 죽음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아직은 내가 풀어가야 할 것이 더 많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알맞은 시기가 오면 흙내음(살아있다는 생생함)과 흙 태우는 행위(소진되어 더러는 새롭게 혹은 無로)
만으로도 아무런 말이나 생각도 필요치 않으리라.

정원이나 전원생활에 관한 책이 지루하게 느껴진다면 천천히 음미하면서 다시 읽으면 그 맛이 달라질
것이다. 때로는 운율에 맞춰 읽어도 좋겠다. 무심코 대한다면 넘쳐나는 지루한 글자의 나열을 탑으로
쌓은 것밖에 되지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 내가 경험한 자연의 이미지와 소리와 향기를 총동원해서 대할
때 이 책의 담백한 맛이 마음으로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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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7-03-13 13:03   좋아요 0 | URL
예전에 <윌든>을 읽다가 다 읽지 못하고 접었죠. 또, 얼마전 어떤 책을 사니까 헤세의 <정원일의 즐거움>이 부록으로 배달되었더군요. 저도 삶의 소박함의 가치를 소중하게 평가하는지라 <윌든>을 다시 읽고 싶은데, 이 리뷰를 보니 어떤 책을 먼저 읽을지 고민입니다.^^

은비뫼 2007-03-13 22:56   좋아요 0 | URL
인생** 말씀이시죠? ^^ 전 이 책 읽으려고 그 책을 주문했습니다. 그 책은 동생 주었고 이 책은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습니다. <월든>도 좋고 이 책도 좋으니 행복한 고민 중이시겠네요. 즐거운 책읽기 하세요, 잉크냄새님.
 
호미 - 박완서 산문집
박완서 지음 / 열림원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책표지를 넘기자마자 작가의 환한 웃음이 나를 웃게 한다. 그 모습은 고모와 닮았다.
그래서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니 김매듯이 살아왔다. 때로는 호미자루 내던지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후비적후비적 김매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거둔 게 아무리 보잘것없다고 해도 늘 내 안팎에는 김맬 터전이 있어왔다는 걸
큰 복으로 알고 있다.

ㅡ 책머리에 쓰인 작가의 말.



앞부분의 내용은 전원생활을 하며 느낀 자연과의 교감 등이 담겨있다. 사실 처음에는 전원생활이 담긴
내용으로 알고 있었는데 작가의 산문집에 여러가지가 담겨 있었다. 삶에서 호미질을 멈출 수 없었다는
작가의 마음가짐이 들어 있는 이 책은 그래서 호미라는 이름으로 나와 만나게 되었나 보다.

사람들은 항상 필요 이상으로 바쁘다. 그래서 하늘을 쳐다보는 시간과 자연과 대화하는 시간이 사려졌
다. 사실 하늘이란 어디에나 있기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마주할 수 있으며 자연 또한 전원이 아니어
도 사무실이나 집 혹은 거리의 가로수와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언제 따뜻한 시선을 준 적이
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면 반성해야 할 것이다.

예전에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있다. 퇴원하고 집에서 회복하는 동안 봄이 오고 있었다. 밖으로 나갈 수
없었기에 나의 유일한 즐거움은 창문을 통해 뒷배란다 너머를 보는 일이었다. 앙상한 나무에서 새싹이
돋고 있었고 햇살은 적당하게 따뜻했다. 봄의 생명력은 내게까지 삶을 나눠주었고 자연을 바라본다는
자체만으로 나는 서서히 회복되어 갔다. 참 고마웠다. 그래서 식물을 그리는 일을 좋아했다. 아마도 그
때의 영향으로 식물에 큰 관심을 쏟기 시작한 거 같다. 작가가 목련 나무와 소통하는 모습에서 그때의
추억이 떠올랐다. 우리는 모두 자연에서 나고 자라며 돌아가니 별개가 아닌 동행자다.


꽃과 나무에게 말 걸기

원예가 발달한 나라에서 건너온 온갖 편리한 원예기구 중에 호미 비슷한 것도 본 적이 없는 걸 보면 호
미는 순전히 우리의 발명품인 것 같다. ㅡ 49~50쪽.


호미는 왼손잡이를 배려해 왼호미라는 게 있었다고 하니 그만큼 우리와 호미의 관계는 밀접했나 보다.
지금에야 생소하지만 흙에서 벌어먹고 살아온 공생관계였으니 말이다. 모종삽만을 만져본 내게 호미는
낯설었지만 기회가 온다면 손에 착하고 감기는 맛을 알고 싶다.

작가의 빨려들게 하는 유려한 글솜씨와 솔직함이 편했고 성숙한 사람에게서 풍기는 성찰의 시간이 좋
았다. 이 부분에서는 대놓지 않고 다만 자연의 모습을 관찰로만 쓴 글 속에 들어 있는 은유도 내게 깨
달음을 주었다.


그리운 침묵

불행한 일을 당했을 때 더 불행한 경우를 가정하고 위로받는다는 것은 치사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자위
의 방법이다. ㅡ 86쪽.


침묵이란 지친 말, 헛된 말이 뉘우치고 돌아갈 수 있는 고향 같은 게 아닐까. ㅡ 94쪽.

작가의 평소 생각이나 신념이 소탈하게 드러나는 글에서 친근함을 느꼈다. 산문집의 매력이라 생각한
다. 사람냄새가 난다는 것이 위안이 될 때가 있다.


그가 나를 돌아 보았네

작가의 소설 속에 나오는 식민시대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데 역시나 데뷔작인 <나목>은 빠지지
않고 언급되었다.


내가 문을 열어주마

엄마에게 시작해서 이이화 선생, 박수근 선생, 김상옥 선생, 이문구 선생 그리고 딸에게 전하는 말까지
이어진다. 나이가 들면 걸어온 세월을 정리하려는 마음이 생기고 그 과정에서 마음에 담은 이들을 돌아
보게 된다.

가족 그리고 친구에 이르기까지 나도 그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었다. 잊혀진 인연에게까지도 가끔
은 그러고 싶다. 누군가를 미워한 시간보다 감사한 시간이 더 많았든가도 의문이다. 아니 감정조차 없
지 않았던가 싶다. 작가의 나이에 소녀처럼 환한 미소를 지을 수 있으려면 마음부터 정갈해야 할 것이
다. 군더더기를 털어버리고 너그럽게 살고 싶다. 그러면 나도 소중한 사람들에게 웃음을 던져줄 수 있
을지도 모르니까. 이 책 엄마에게 읽으시라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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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7-03-09 16:27   좋아요 0 | URL
적은 나이가 아님에도 아직 전 뒤를 돌아보고 정리해봐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군요. 그냥 어떻게 늙고 싶다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답니다.^^

은비뫼 2007-03-09 21:48   좋아요 0 | URL
^^ 저도 제대로 생각해보진 못하겠더군요. 아직은 때가 아닌지...말씀 감사합니다.
 
로미오와 줄리엣 - Shakespeare's Complete Works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윤기.이다희 옮김 / 달궁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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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직 작은 아이일 때 불꽃처럼 타오르는 격정적인 사랑을 꿈꾸고는 했다.
그러나 시간은 많은 것을 변화하게 하며 나름의 인생관이란 것도 생기게 도와준다. 그 결과 지금은
달빛처럼 은은하며 친구처럼 편안한 사랑을 원한다. 내게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은 짧고도 강렬한
설렘과 열정으로 기억된다.

그만큼 세월이 지났어도 올리비아 핫세하면 영화의 줄리엣 이미지로 먼저 떠오르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같은 생각일 것이다. 이후 신세대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나온
영화도 있는데 달궁에서 나온 이 책은 고전적인 올리비아 핫세보다 신세대적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의 영화와 코드가 잘 맞는 느낌이다. 화려한 삽화만 해도 그렇다. 물론 그 삽화로 상당히 고심하고 읽게
되긴 했지만 시작이야 어떻든 이윤기 부녀의 번역은 매끄러웠다.

얼마 전 프랑스 뮤지컬로도 공연된 바 있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떠올리며 왜 이렇게 비현실적인 사랑의
열병이 모두에게서 꺼지지 않고 새롭게 부활하는지 궁금하다. 독자에 따라 다르겠지만 역시 그들의 사
랑을 부러워하는 것은 아닐지 자문해본다.
대리만족일지도 모르고 이런 사랑을 어쩌면 동경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현실보다 극적이니까. 둘이 만났을 때 줄리엣은 14살이 채 되기 전이었으며 로미오는 로
잘린을 짝사랑하고 있었다. 나이가 어리다는 것은 그만큼 계산하지 않는 순수함이 클테고 그래서 신중
함보다 미숙한 감정의 표현이 더 즉흥적일 수도 있다. 그렇다. 그들은 감정이 이끄는데로 행동한다.
그래서 이 어린 연인들의 이야기는 다만 치기 어린 이야기로 남지 않았다.
비극이나 결국 사랑을 이루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나이가 많이 찬 나 같은 이는 과연 앞뒤 재지 않고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을지... 힘들거 같다. 절대적으로 단정할 수 없는 이유는 사랑이란 한 번 빠지면
헤어나기 어려워도 분명히 누군가는 이런 사랑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피라모스와 티스베>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데 이야기의 비극이 된 사자가 갈기갈기 찢은 피
묻은 숄과 운명의 장난으로 엇갈린 로미오와 줄리엣의 재회는 언제 읽어도 안타깝다. 연인 사이뿐 아니
라 사랑으로 연결된 관계라면 이런 극적인 상황에서 얼마나 감정의 기복이 불안정할까. 사랑이 눈멀게
한다고 했던가. 이럴 때 이성이 더욱 냉정해져서 피묻은 숄로 좌절하기 전에 그녀를 먼저 찾아볼 생각
을 했거나 줄리엣의 차가운 몸을 보자 오열하며 독약을 넘기기보다 잠시만 그녀의 호흡이 되돌아오기
를 기다릴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이성과 마음이 언제나 의기투합하지는 않으니 문제다.
감정의 동물인 사람에게 완전무결함을 원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한 요구이다.

셰익스피어가 곳곳에 넌지시 던져놓은 자신들의 운명을 예감한 이들의 말을 들어보자.


너무 이르지 않을까 두렵군. 별들이 미처 계산하지 못한 어떤 운명이, 흥겨운 이 밤의 잔치를 그 쓰디쓴
시작으로 삼아 무시무시한 일들을 벌이지나 않을까, 그리고 그 운명이 내 안에 갇혀 있던 생의 기한을
만료시켜 때 이른 죽음이라는 비열한 벌금을 지불하게 만들지는 않을까 염려되네. 그러나 나의 뱃길의
키를 잡고 계신 분께서 나의 여정을 인도해 주시겠지. ㅡ 73~74쪽. 로미오.



나의 유일한 사랑이 유일한 원수의 집안으로부터 나오다니, 누구인지 모르는 채 너무 일찍 정을 느꼈고
누구인지 알고 보니 때늦은 다음이구나. 증오해야 할 원수를 사랑해야 하다니. 조짐이 불길한 사랑의
탄생이구나. ㅡ 85쪽. 줄리엣.



로미오의 말에 이들의 비극적인 결말이 들어 있고, 줄리엣의 말에는 이들이 비극을 맞을 수밖에 없는
원인이 들어 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사랑은 이 모든 것을 알아도 기꺼이 감수해가는 거대한
모험이다. 그래서 이들이 어리고 짧은 순간을 사랑하더라도 어리석다는 말보다 아름답다는 말을 듣는
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운명의 장난이나 시련을 맞고 있는 연인이 있어도 꿋꿋하게 돌파구를
찾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세상의 모든 로미오와 줄리엣을 위하여!


* 이 책은 같은 해에 쓰인 <한여름 밤의 꿈>과 같이 읽어도 좋겠다.
한편의 비극과 희극을 보며 연인들의 속삭임을 엿보는 즐거움을 느껴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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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이야기 - Shakespeare's Complete Works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윤기 외 옮김 / 달궁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그리스, 로마 신화의 저자 등으로 알려진 이윤기 작가와 셰익스피어의 만남.
딸인 이다희씨와 같이 작업한 고심의 흔적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겨울 이야기 』는 재미있게 읽어
나갈 수 있는 책이다. 셰익스피어 특유의 지루할 틈 없는 빠른 전개로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란 것이 첫 이유이며 다음으로는 제법 신경 쓴 작가의 첫말과 풍부한 이미지를 들 수 있겠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녹아 있는 신화 이야기는 널리 퍼졌지만 이윤기 작가처럼 그 텍스트와 의미
를 찾아가는 행동파 독자라면 재미없을 리가 없다. 그가 언급한 부분인데 사실 처음 왕비 헤르미오네와
안티고누스의 이름을 보자마자 관련 신화가 생각났다. 특히나 개인적으로 안티고네는 왜인지 모르게
잡아끄는 부분이라 비슷한 이름만 보아도 대입해보기 일쑤다. 그러나 사실 그런 것을 모르고 읽어도 재
미는 있다. 어린 시절 그리스, 로마 신화나 플루타르크 영웅전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거나 알고자
한다면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많은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이 작품의 모태는 <판토스토>라는 산문이라 하는데 셰익스피어가 자신만의 이야기로 새롭게 거듭나게
했다. 내용은 복잡하게 꼬아두지 않았으며 간단하다. 왕이 순결한 왕비를 의심하고 그래서 비극은 시작
되고 한 아기가 버려지고 성장해서 가족과 만나는 이야기에 주변 인물들이 등장하고 전개된다. 어찌보
면 새로울 것 없는 신파극 같다. 드라마로 만나는 출생의 비밀 같은 것을 생각하면 된다. 그렇다면,

익스피어가 어렵거나 낯설 이유가 줄어든다.
그의 작품을 읽으려고 계획했으나 다소 주저하고 있
다면 그의 4대 비극 등을 먼저 접하지 말고 희극을 먼저 접하는 것이 즐거움을 줄 것이다. 거기에는 셰
익스피어의 후반기 작품 중 하나인 이 작품도 포함된다.

그리고 희극을 읽는 재미를 느껴보길 바란다. 다소 낯설지도 모르지만 거기에 맛 들이면 계속 읽게 되
는 중독성이 있다. 마치 사극에서 사용하는 옛언어의 -하오, 그러하옵니다 등의 언어가 이상한 것이 아
닌 시대를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 되듯 희극도 마찬가지다. 옛사람들의 낭만과 풍류를 찾으며 숨은 의
미를 찾듯 셰익스피어의 언어유희를 즐기는 시간이 마냥 즐겁다.

그런데 제목이 왜 겨울 이야기일까.
내용에서 그런 언급이 있었다. 왕은 왕비와 왕자가 죽고 딸을 잃어버리고 16년의 겨울이 지나왔다는 식
의 말. 계절의 시작이 봄이라면 끝은 겨울이나 겨울이 지나면 끝이 아니라 또다시 시작한다. 그래서 비
극의 씨앗이 잉태되어 자라더라도 시간은 지나 새로운 시작이 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겪어온 겨울 이야기가 끝나는 날은 찾아온 봄을 맞는 날이며 그때야 막이 내린다. 지금의 꽃샘
추위가 지나면 봄이 오듯 우리네 삶에도 겨울이 가득하지만 또한 봄도 그때마다 주어지니 이것이 삶의
신비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개인적인 취향으로 책을 고를 때 클래식한 내용은 삽화가 없는 깔끔한 것을 선호한다. 그래서 달궁에서
나온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이 책 또 <한여름 밤의 꿈>을 읽기를 망설였다. 많은 곳에서 셰익스피어
의 책이 나오고 있으니 더욱 그랬다. 그러나 막상 접해보니 나쁘지만은 않았다. 젊은 층에게 감각적으
로 어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달궁에서도 앞으로
지속적으로 그의 책을
출판할 계획이므로 기대하고 있다.
근간으로 <비너스와 아도니스>가 나온다니 그 작품을 기다려 본다.

사실 이 책은 이번 주에 계획하지 않았던 책인데 잠시 읽는다는 것이 끝까지 읽어치우고 말았다. 그만
큼 재미있었다는 이야기겠지만. 왕비 헤르미오네의 이야기를 끝으로 적어본다.


지금 저의 삶은 관객을 즐겁게 하기 위해 교묘하게 꾸며진 비극보다도 더 슬프고 불행합니다.

ㅡ 92쪽, ACT 3 헤르미오네.



아, 이 재간둥이 셰익스피어!



* 아쉬움 : 역시 삽화는 책의 집중을 떨어뜨린다는 점이 아쉽다. 그리고 인용된 사진의 설명 등의 글자
가 너무 작았으며 깔끔하지 못했다. 또 표지를 벗기고 양장본의 겉표지를 보고 놀랐다. 칙칙한 색감은
과거 몇십 년대 같았으며 다소 반짝이기까지 하는 바탕색은 화사함보다 어서 가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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